이강백희곡 「느낌,극락같은」 「영월행 일기」판이한 연출

  • 입력 1998년 6월 1일 07시 29분


종이에 쓰여진 희곡은 무대 위 배우의 연기를 통해서 비로소 살냄새나는 육체를 얻는다. 하나의 희곡에 몸을 입히는 방식. 연출자의 해석이나 배우의 인물창조에 따라 동일한 작가의 희곡도 얼마나 다른 뉘앙스를 가질 수 있는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과 자유소극장에서 동시에 공연되는 이강백 작 ‘느낌, 극락같은’과 ‘영월행일기’는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이윤택이 연출한 ‘느낌, 극락같은’. 화사한 볼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연출자가 원래 대본에서 3분의 1 분량의 대사를 걷어낸 대신 작가의 메시지를 시각적 효과로 대치한 것.

‘느낌, …’의 주제는 극 초반 불상 제작의 권위자인 스승(신구 분)을 앞에 두고 필생의 라이벌 서연(조영진)과 동연(이용근)이 벌이는 말다툼 속에 집약된다.

“저는 부처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그 마음을 아직 알지 못한 채 형태만 만들었으니, 그건 무엇일까요?”(서연)

“부처의 형태를 완벽하게 만들면 반드시 그 완벽한 형태속에는 부처의 마음도 있게 마련입니다.”(동연)

두 사람의 갈등은 ‘살아있는’ 불상을 통해 관객에게 생생하게 다가간다. 대사 한마디 없이 불상을 연기하는 열두명의 배우들. 온몸에 금분(金粉), 토분(土粉), 잿빛분을 번갈아 바르고 등장해 덩실덩실 춤추거나 고뇌하는 그 불상들은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토월극장의 뒷무대까지 다 터서 더욱 깊어진 무대(15m×43m)와 만장처럼 겹겹이 드리워 무대를 싸 안는 7m 높이의 경전, 잦은 조명전환도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더한다.

‘느낌, …’이 관객의 눈에 호소한다면 채윤일이 연출하는 ‘영월행일기’는 관객의 귀를 긴장시킨다.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는 한 고서학자의 서재.

유배된 단종의 동태를 알아보라는 밀명을 받아 영월로 떠났던 신숙주의 종과 한명회 여종이 남긴 가상의 여행기. 5백여년이 지나 그 오래된 기록을 인연으로 만난 고서학자 조당전(김민수)과 ‘권력자’의 아내 김시향(정수영)은 과거의 종들이 그랬듯 자유와 사랑을 갈구하지만 끝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

1990년대와 1450년대, 서울과 영월을 오가는 엄청난 시공간의 넘나듦이 있지만 조명변화 정도가 있을 뿐 무대변화는 거의 없다. 시공간의 초월은 오로지 극에 몰입한 관객의 상상으로만 가능하다. 연출자 채윤일은 이 단조로운 연극에 관객을 빨아들이기 위해 굵고 힘있는 바리톤 목소리의 김민수를 주역 조당전으로 캐스팅했다.

두 해석에 관한 작가의 반응은 어떨까.

‘영월행일기’의 경우 리허설까지만 해도 여행길의 계절변화를 슬라이드 필름에 담은 배경화면으로 표현했지만 실제공연에서는 이를 모두 삭제했다. “무대가 너무 많이 설명해주면 관객의 상상이 싹틀 여지가 없다”는 이강백씨의 의견을 연출자가 최종단계에서 받아들인 것. 작가는 많은 것을 언어(대사)보다는 시각적으로 펼쳐 보여준 ‘느낌, …’에 대해서는 “내 창작의도와 다르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제, 관객의 평가는 어떻게 내려질까. 두 작품 모두 14일까지 공연. 평일 오후7시반 금 토 오후3시 7시반(‘느낌, 극락같은’은 토요일만 2회공연) 일 오후3시 02―580―1234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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