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방송을 회고하며]김영효/『독재에 안꺾인 곧은소리』

  • 입력 1998년 4월 27일 07시 05분


아! 동아방송.

청취율이라는 천하의 패권을 놓고 라디오 방송사(DBS KBS MBC CBS 등)들이 8월 염천의 불볕 더위보다 더 뜨거운 경쟁을 연출하던 60년대를 ‘라디오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른다. 동아방송은 그 치열한 청취율 경쟁시대에 언제나 선두를 달려 청취자들로부터 한국방송의 확고한 주역임을 공인받았다.

4월25일은 그 동아방송이 35년전 개국의 첫 전파를 발사한 기념비적인 날이다. 동아방송은 그날 개국 특집방송을 통해 “민족최고의 표현기관임을 자임하는 ‘신문의 동아’가 이제 티없는 젊은 지성들이 자유와 민주를 위해 족쇄에 항거하는 깃발을 흔들던 그 4월의 푸른 계절을 기려 ‘방송의 동아’ DBS를 이룩하게 되었다”며 개국 첫 인사를 했다.

동아방송은 개국 후 1년여만에 청취율 1위를 확보했고 인기프로그램 20위안에 7개가 오를 만큼 타방송사를 압도했다.

그러나 쿠데타로 역사의 고삐를 휘어잡은 군사정권은 동아방송이 ‘눈엣가시’였다. 63년10월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박정희후보는 생방송중의 동아방송 인터뷰 마이크를 향해 ‘거짓말 방송하지 말라’고 내뱉기도 했다.

이것은 개국 후 동아방송의 보도 내용에 대한 군사정권의 불만을 감정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당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동아방송 청취권 지역에서는 야당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동아방송 뉴스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 국민의 분석과 평가였다.

‘격조높은 민족의 방송’임을 자부하는 동아방송은 특히 다큐멘터리에 제작역량을 집중시켰다. ‘여명 80년’으로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개척한 동아방송은 민족사와 세계사의 재조명이라는 사명감과 거시적 안목을 갖고 계속 정진해 ‘다큐멘터리는 곧 동아’라는 명망과 평판을 얻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같은 언론통폐합조치로 80년 11월30일 특별고별방송을 마치고 뿔뿔이 흩어진 지 벌써 17년이 넘었다.

그동안 우리는 그날의 충격과 좌절감 등 착잡한 심정을 어찌할 수 없어 헤매다 개국기념일을 전후해 다시 만나 변함없는 동아에 대한 긍지와 애정을 확인하곤 했다.

DBS 동아방송이여 영원하라!!

김영효(작가·전 동아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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