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뒤엔 이곳에 가보자⑨]포천 운악산-명덕온천

  • 입력 1998년 4월 9일 19시 55분


‘경기도의 금강산’이라는 운악산. 아기자기하고 수려한 산세. 바위틈 곳곳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진달래를 보며 비로소 봄을 느낀다.

계절을 남보다 항상 한 템포씩 늦게 느끼는 남자 김병건씨(34·W개발과장·서울 종로구 혜화동). 거리에 경쾌한 미니스커트가 늘어나는 4월초까지도 우중충한 겨울 양복. “털갈이 좀 해. 게을러 빠졌어.” 옷을 제대로 챙겨주지도 않으면서 핀잔만 주는 신세대 아내….

휴일근무 대휴(代休)날인 7일. 서울을 떠난지 1시간40분만에 운악산(해발 9백65m)입구 하판리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주차장에서 산 중턱 현등사(懸燈寺)까지는 쉬엄쉬엄 걸어 50여분(2㎞). 길은 차가 다닐 만큼 평탄했지만 아내는 한번도 손을 놓지 않는다.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직후인 540년 처음 지어졌다는 현등사. 자그마하지만 곳곳에서 풍겨나는 오랜 세월의 내음이 봄향기에 섞인다.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기암괴석, 하늘을 가리는 활엽수림, 산자락을 향해 굽이치는 오묘한 계곡….’ 현등사까지의 짧은 산행만으론 등산안내서에서 묘사한 운악산의 그런 참맛을 느끼긴 어렵다. 하지만 골짜기 가득 완연한 봄의 정기(精氣). 둔감한 김씨도 수다쟁이가 된다.

“8백여년전 어느날.운악산 중턱에서 사흘간 영롱한 빛이 발했대. 찾아보니 산속 관음전 남쪽에 옥등이 있었다는 거야. 그래서 지은 이름이…” 아내가 화장실(재래식)에 간 사이 몰래 읽어둔 안내문. 연애시절처럼 오밀조밀해진 남편의 목소리가 아내는 반갑다.

운악산을 내려와 다시 차로 15분가량. 야트막한 산 사이에 분지처럼 자리잡은 명덕온천에 몸을 담근다. 탄산가스(CO2)가 녹아있는 탄산천으로 유명한 곳. 목욕한 뒷맛이 따끔따끔하다. 아침엔 사이다처럼 뽀글뽀글한 물방울이 몸에 달라붙는단다.

조선시대 전통의 한증방식이라는 불한증막에도 들어가본다. 참나무를 태워 데웠다는 10여평의 한증막속. 거적을 둘러쓰고 가마니 위에 앉으니 삽시간에 비오듯 쏟아지는 땀. 널찍한 노천탕의 냉탕을 거쳐 봄볕이 따사한 선탠의자에 눕는다. 아무 생각할 겨를 없이 빠져드는 낮잠.

“한시간이나 기다렸잖아.” 다시 독이 오른 아내의 잔소리를 귀로 흘리며 온천입구 포장마차에서 칡즙 한잔. 동해안에서 중대장을 하다 96년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으로 해직됐다는 포장마차 주인의 인생담이 기구하다.

인근에 클레이사격장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찾아가 본다. 차로 5분거리. 간단한 사격요령을 듣고 아내와 나란히 사선(射線)에 선다. “영화에선 쐈다하면 명중이던데.” “자긴 군대도 안갔다왔어?” 접시는 날아오르는데 아내는 입으로만 총을 쏜다.

〈포천〓이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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