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앵벌이」탈출 15세소녀 충격고백

  • 입력 1998년 3월 28일 19시 50분


“애가 애를 업었네….” 지하철 승객들이 혀를 찬다. 갓난아이를 업은 꼬마가 내미는 껌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천원짜리지폐를 건넨다.

조수미양(가명·15)은 얼마전 퇴근 시간 무렵에 지하철 4호선을 탔다가 갓 돌지난 아이를 업고 껌을 팔고 있는 여섯살배기 배다른 동생 선미(가명)를 우연히 마주쳤다.

수미는 그만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처참했던 지난날과 동생의 처지가 너무 불쌍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앵벌이들의 집결 장소인 서울역에서 과자를 쥐어주며 동생 선미를 떠나보냈다.

수미는 차창밖으로 조직원 하나가 달려와 선미가 들고 있던 과자 봉투를 빼앗는 것을 보았다. 과자를 들고 구걸을 하면 돈이 걷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구나.’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4년여동안 의붓아버지와 알코올중독 생모(生母)에 의해 앵벌이 조직에 ‘임대’됐던 조양은 현재 조직을 탈출, 숨어 살고 있다. 그는 기자에게 앵벌이 생활을 털어놓으면서 두려움에 주위를 살피곤 했다.

그가 껌팔이를 시작한 것은 앵벌이 조직원 C씨(39·여·용산구 동자동)가 수미 가족이 살고 있는 두 평 남짓한 월세 13만원짜리 방의 보증금 1백만원을 내준 후부터.

C씨는 수미를 포함해 12세와 6세짜리 배다른 여동생 셋을 각각 빌려간 뒤 수미 엄마에게 하루에 3만원, 아이들에게는 수고비로 5천원씩을 줬다. 아이 한명이 하루 저녁에 벌어오는 돈은 적게는 50만원에서 부지런히 돌아다니면 그이상도 번다는 얘기. 오후 6시부터 시작되는 앵벌이는 껌 두짝(8백개)을 다 팔 때까지 계속되며 일찍 파는 아이가 먼저 돌아갈 수 있다.

1호선 서울역과 3호선 충무로역 등에 조직원들과 함께 모여 있던 아이들은 한 전동차에 한명씩 전동차 하나 걸러 투입된다. 병원에서 2백만∼3백만원을 주고 사온 영아들은 6∼7세짜리 아이들의 등에 업힌다.

지하철 연결 통로에는 아이들의 탈출을 감시하는 건장한 사내들이 배치되고 가끔 아이가 돈을 가로채지 못하게 전동차 안에도 배치된다. 껌 두짝을 다 팔면 대개 지하철이 끊기는 자정 무렵이 된다. 아이들은 돈가방을 조직원들에게 넘기고 집으로 돌아가 대충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잠이 든다.

수미는 초등학교 6년간 절반을 결석했다. 등교할 때에도 도망을 하지 못하도록 학교까지 조직원이 쫓아와 지켰으며 공부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 늘 특수학급에 속해 있었다.

몇번 외할머니 집으로 탈출을 하기도 했으나 그곳까지 찾아온 조직원에게 강제로 끌려가 혼수 상태에 빠질 정도로 맞았다. 도망을 가서는 조직원들이 쫓아 올까봐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고 심지어 개집에 숨어도 봤다. 조직원들은 사온 아이들은 중학교에 보내지 않고 일을 시킨다.

수미는 4학년 때 잘 아는 아주머니 집으로 탈출했다. 중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조직원이 무서워 거의 등교를 못해 제적된 상태다. 그는 현재 아주머니 집에서 일을 거들면서 기거를 하고 있다.

수미는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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