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김충현씨 60년 「글씨인생」한눈에…예술의 전당서

  • 입력 1998년 3월 16일 07시 38분


‘정치민안(政治民安).’

서예계의 원로인 일중 김충현(77)이 최근 쓴 글귀다.

“이제 정치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줘야….”

고령인데다 오래전부터 앓아온 파킨슨병으로 거동조차 불편한 그는 지난달말 이 글을 붓끝으로 옮겼다.

서울 예술의 전당은 17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서예관에 ‘김충현전’을 마련한다. 예술의 전당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현대작가특선’의 첫초대전.

1921년 안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6세 때부터 한학을 배웠다. 그는 38년 동아일보가 주최한 제7회 전국조선남녀학생작품전람회의 중등습자부에서 특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서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60여년에 걸친 그의 ‘글씨인생’은 우리 서예사의 한페이지나 다름없다. 무심코 지나치지만 충남 아산의 이충무공 기념비, 경복궁의 건춘문과 영추문, 남산의 소월비, 국립묘지의 역대 대통령 묘비 등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면 어김없이 발견되는 게 그의 작품들이다.

무엇보다 일중을 일중답게 만드는 것은 ‘서자’ 신세나 다름없던 한글을 서예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한글은 물론 한자의 예서와 행초서 등 글자체의 융합을 통해 독창적 조형미를 이뤘다는 점이다.

독학으로 한글서체를 익힌 그는 21세때인 42년 위당 정인보가 서문을 써준 저서 ‘우리 글씨 쓰는 법’을 펴냈고 훈민정음 고판본 등을 기초로 한글 고체(古體)를 창안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이질적인 것으로만 인식돼온 한글과 한자의 융합을 시도한 ‘정읍사(井邑詞)’(62), 행초서에 예서를 결합시킨 ‘황과(黃瓜)’(81) 등 ‘일중 서도(書道)’의 변천과정을 한눈에 엿볼 수 있는 대표작품 1백63점이 출품된다.

서예가 김세호는 “일중은 우리 서예의 근대와 현대를 잇는 가교로 우뚝선 존재”라며 “특히 일가를 이뤘음에도 끊임없이 작품세계를 발전시켜온 독창성과 한글 사랑은 남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기간중인 다음달 2일 오후 2시에는 예술의 전당 음악당 리사이틀홀에서 ‘일중 김충현의 예술과 생애’를 주제로 한 세미나도 열린다. 02―580―1234

〈김갑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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