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씨 『출옥후 첫작품은 동족상잔 아픔그린 「손님」』

  • 입력 1998년 3월 16일 07시 27분


89년 방북 이후 10년만에 조국의 공기를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게 된 작가 황석영(55). 바깥세상에서의 첫 아침을 맞은 14일 그를 만났다. “바로 어제까지 있었던 감옥안의 일이 까맣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라고 낯설음을 감추지 못하던 그는 방북에 대한 소신을 묻는 질문에 “방북은 분단국가의 과도기를 사는 작가로서의 책임때문이었다”고 대답했다. 더 구체적 질문을 던지자 “차차 (작품으로)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입술을 적셨다.

그러나 얘기가 문학에 이르자 특유의 달변으로 작품구상을 펼쳐보였다. 방북의 이유와 결과를 문학적으로 정리하는 숙제가 이제 시작된 것이다.

―작품은 언제부터 쓸 건가.

“건강검진을 위해 1주일정도 병원에 입원한 뒤 퇴원하면 곧 절에라도 들어갈 생각이다. 거처가 마련되면 그간 감옥으로 격려를 보내온 분들께 답례편지부터 드리고 창작에 들어가겠다.”

―현재 구상된 작품은….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 신천에서 벌어졌던 좌우익간의 대학살을 모티브로 1천여장 분량의 ‘손님’이라는 작품을 쓸 계획이다. 우리 할아버지세대가 ‘손님’이라고 불렀던 천연두는 17,18세기 유럽에서 창궐하다 베트남과 중국 남부를 거쳐 병자호란 때 중국군을 통해 유입됐다고 한다. 내 아버지 고향이기도 한 신천은 북한 내에서 기독교가 제일 먼저 뿌리내린 곳이자 곡창지대로서 소작갈등이 적지않았다. 결국 6·25가 일어나자 한동네사람들끼리 외래사상인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으로 무장하고 대살육을 벌였는데 이것이 ‘손님’을 앓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황석영이 붙잡고 있는 화두는 서구사상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우리민족의 것’ ‘동아시아적인 문화’를 찾는 것이다. 서구열강의 식민지, 동서냉전의 대리전쟁터 노릇을 하며 근대화 길을 밟은 동아시아국가들. 그곳에서 움튼 ‘우리것 찾기’야말로 전지구화하고 있는 미국문화패권주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세기의 대체문화’라는 주장이다.

―90년대 한국문학에 대한 생각은….

“소비생활의 풍요에 휩쓸려 문학까지 흥청망청한 것같다. 사실 우리현실이 국권을 위협당하던 19세기말 상황과 얼마나 달라졌다고 할 수 있나. 특히 민족문학진영 후배들이 현실의 문제를 창조적인 형식에 담아낼 생각은 하지않고 리얼리즘이냐 모더니즘이냐 하는 식의 이론논쟁에 힘을 소모해온 것 같다.”

황석영은 “내가 하려는 것은 민족주의문학이 아니라 민족문학”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제삼세계적인 문학형식’으로 민화 전설 등에 거는 기대는 크다. “내 작품중에서도 도회지냄새가 물씬한 ‘객지’보다는 마당극으로도 만들어졌던 ‘장사의 꿈’에 더 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마당극 대본과 같은 소설을 쓰겠다.”

황석영은 “출옥 이후 수감생활의 3분의 1기간은 자숙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적어도 1년반은 술 담배를 멀리하고 작품쓰는데만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함께 북한을 방문한 뒤 미국에 체류중인 아내 김명수씨(무용가)와 아들(11)의 귀국문제를 매듭짓는 것도 그 앞에 놓인 과제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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