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맨」주연 케빈 코스트너,희망의 메신저 연기

  • 입력 1998년 1월 20일 20시 12분


《섹시한 애인의 느낌과 홀로 세상을 구해내는 영웅의 이미지를 동시에 갖추기란 쉽지 않다. 케빈 코스트너는 두가지를 한몸에 드러내는 배우다. 3월 우리나라에서 개봉되는 ‘포스트맨’에서 그가 주연은 물론 감독 제작까지 맡아 매력을 한껏 드러낸다. 18일로 마흔세번째 생일을 맞은 코스트너가 하루 지난 19일 타이베이의 하얏트호텔에서 기자를 만났다. “한국에서 내 이미지가 아주 좋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한국기자를 꼭 만나고 싶었다”며 반갑게 손을 내민 코스트너는 검은색 폴로티셔츠에 흰색 바지차림으로 소탈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1백85㎝의 큰키가 소나무처럼 싱그러운 인상으로 다가왔다.》 영화 ‘포스트맨’의 배경은 2013년. 핵전쟁후 미국은 황폐해졌고 사람들은 인디언처럼 끼리끼리 집단을 이룬 채 누더기를 걸치고 산다. 독재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철저히 막고 있다. 떠돌이 코스트너가 우연히 우편집배원의 코트를 발견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진다. 단지 먹을 것을 좀더 쉽게 얻기 위해 집배원 행세를 시작한 그가 전하는 편지는 사람들 사이의 희망과 믿음, 인간성을 회복시키고 급기야 함께 뭉쳐 독재자를 물리치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우리영화 ‘편지’가 죽을 결심을 했던 최진실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처럼 코스트너의 편지도 구원의 상징이다. ‘미국판 편지’일까. 실제로 코스트너는 편지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E메일이 보편화됐지만 손으로 쓴 편지는 주고받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전해지죠.” 그는 편지가 함축한 고전적 보수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야구나 낚시처럼 몸으로 하는 일을 좋아하는 반면 컴퓨터 팩시밀리 등을 다루는데는 익숙지 않다. 누가 다른 사람을 모욕하면 대신 나서서 싸우는 것이 의무라고 느낀다. 그러니 그가 불의에 맞선 영웅 역을 자주 맡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영웅이란 시대가 만듭니다. 그들은 무언가를 위해 앞장 설 누군가가 필요할 때 그곳에 있었고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해냅니다.” 웃으면서 코스트너는 덧붙였다. “지금 한국에서도 영웅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요?” 할리우드의 슈퍼스타 코스트너도 처음부터 영웅은 아니었다. 학교다닐 때는 싸움질 잘하는 문제아였고 대학4학년때 배우공모에 나갔다가 떨어졌다. UCLA에서 영화공부를 하며 영화판 잡일로 할리우드에 얼굴을 내밀었다. 환경미화원을 하더라도 영화판쓰레기를 치우고 싶었고, 단역을 맡아도 “아카데미상 엑스트라상이 있다면 내것”이라는 신념으로 연기했다. “평생을 살아도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 행복하다”고 위안하면서…. 다만 영화 가위질이라면 한이 맺혀있다. 풋내기 시절 ‘빅 칠’이라는 영화에 몇장면 출연했는데 개봉날 가족들을 이끌고 극장에 갔으나 그의 얼굴은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별볼일 없는 역이어서 잘렸기 때문이다. 감독이었던 로렌스 캐스던은 미안했던지 그를 ‘실버라도’(85년)에 넣어줬고 비로소 코스트너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됐다. 코스트너가 2시간40분이나 되는 ‘포스트맨’에 대해 “더이상 들어낼 곳이 없다”고 한 것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1억5천만달러를 들인 ‘포스트맨’은 ‘늑대와 춤을’ 같은 웅대한 자연과 스펙터클, ‘워터월드’처럼 원시시대를 연상케하는 암울한 미래상, 그리고 악당을 물리치고 훌훌 떠나는 서부영화의 내러티브를 담고 있다. “지금처럼 과학기술만 발달하면 미래는 오히려 후퇴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말타고 달리는 생활로 되돌아갈만큼 삶이 단순해질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우편집배원의 옷을 걸치는 아주 단순한 행동이 세계를 구한다는 발상은 정말 신선하지 않은가.” 영화는 85년에 나온 데이비드 브린의 소설을 바탕으로 편지와 휴머니즘은 좋고 독재와 폭력은 나쁘다는 동화적 메시지를 일깨운다. 그래서 몇몇 평론가들은 ‘워터 월드’에 빗대어 ‘드라이 월드’ ‘썰렁한 세계’라며 스타가 감독까지 맡으면 얼마나 영화가 엉망진창이 되는지 보여준다고 혹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스트너는 이 영화가 “‘늑대와 춤을’과 똑같이 좋은 작품”이라며 흥행성적이 좋지않다고 해서 좋은 영화가 나빠질 수는 없다고 자신했다. 딴사람이 연출하면 영화의 장점이 훼손될까봐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뜻밖에도 “영화보다는 일상에서 얻는 행복이 더 소중하다”고 했다. 자신의 바람기때문에 이혼한 전 부인에게 최근 재결합을 요청한 것도 이때문이 아닐까. 국제통화기금(IMF)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가정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신(新)가족주의가 떠오른 것처럼. <타이베이=김순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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