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천문학자들의 진솔한 삶…「오레오쿠키를 먹는 사람들」

  • 입력 1997년 12월 4일 08시 16분


「50억의 사람들이 오로지 땅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관심을 갖고 산다. 그러나 여기에는 1천명 정도의 예외가 있다. 그들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과학, 즉 천문학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 천문학자들은 또한 과거를 먹고 산다. 천체망원경을 통해 하늘을 본다는 것은 과거를 보는 것. 망원경에 도달한 빛은 과거에서 출발한 빛이다. 빛은 초당 30만㎞의 엄청난 속도로 달리지만 먼 별에서 보면 달팽이가 기어가는데 비할 수 있을까. 은하계 너머에 있는 별 하나가 폭발한다면 지구의 천문학자는 5만년 후에나 망원경에서 그 섬광을 만날 수 있다. 머나먼 천체로부터 우주가 탄생하던 무렵에 발산된 빛이 지금쯤 망원경에 부딪쳐 흐를 수도 있다. 우주의 끝에서 날아온 「태초(太初)의 빛」, 「우주의 나이」와 비슷한 세월, 먼 여행을 떠나온 빛, 우주 탄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창세기의 빛. 결국 하늘의 끝을 본다는 것은 바로 우주의 시작, 시간의 기원(起源)을 보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이 우주의 끝부분에서 엄청난 빛을 발하는 「퀘이사」를 찾아 나서는 이유다. 천체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없는 우주의 끝, 우주의 경계선에 위치한 「우주의 등대」, 퀘이사. 영림카디널에서 펴낸 「오레오 쿠키를 먹는 사람들」(원제 최초의 빛). 과학기자인 리처드 프레스턴이 세계최대 규모의 헤일망원경이 있는 팔로마산 천문대에 기거하면서 천문학자들의 생활을 담았다. 과학자의 일상 속에 심오한 이론과 과학적 성취를 녹여낸 「고전과학에 대한 컬트적 작품」이라는 평. 시선은 하늘을 향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발은 땅을 디뎌야 하는 천문학자들의 진솔한 삶을, 그들의 구술을 받아 생생하게 기록했다. 「돈을 벌거나 존경을 받기 위해 천문학자의 길을 택하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야. 대부분의 천문학자들은 혼자 일하고 있지. 게다가 별 하나를 골라 그것만 열심히 바라보고 있다구. 몇개도 아니고 단 하나를 말이야. 우리는 이 도박판에 너무 많은 것을 걸고 있는 것 같아…」. 대부분의 천문학자들은 대식가다. 망원경 보호를 위해 관측실 내부의 온도를 낮게 유지하므로, 체온의 저하를 막으려면 항상 뱃속을 든든하게 채워놓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그들의 손에선 오레오 쿠키가 떠나지 않는다. 그들은 오레오 쿠키를 먹으면서 즐겨, 이런 대화를 나눈다. 『지구가 속해 있는 은하계 내부에는 볼만한 게 전혀 없어』 『생업을 위해 소행성을 관측하는 사람(지구물리학자)이 있다니…』 『지구가 우리에게 유용한 점은 딱 하나, 망원경을 떠받쳐 준다는 점이야. 그나마 주변의 대기가 시야를 가리고 있어. 언젠가 지구의 대기를 전부 걷어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천재 과학자들의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그 천진스러움과 단순함이라니. 신(神)이 만들어놓은 그 요지부동의 끔찍한 자물쇠와 씨름하게 하는 뒷심이기도 하다. 「끝내 자물쇠가 열리는 광경을 보지 못하고 과학자로서 삶을 마감할 수 있는데도」 평생을 자물쇠의 분해에 매달리는 과학자들. 자, 이제 은하를 관찰하기에 최적의 밤이 다가오고 있다. 달 없는 밤, 은하수가 지평선 위에 걸쳐 있어 시야를 가리지 않는 때, 밤안개가 계곡을 타고 내려가 도시의 불빛을 가려주고 태양이 서쪽으로 사라지면서 청백색 햇살의 끝자락을 내비치고 있다. 오늘밤엔 어쩌면, 우주의 끝에서 쏘아 올린 태초의 빛 퀘이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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