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작은 이야기」「씨 뿌리는 사람의 씨앗」

  • 입력 1997년 11월 27일 07시 54분


〈내가 초등학생 때 그렇게도 우리를 사랑하시던 엄마가 세상을 떠나셨다. 그로부터 얼마 안 지나 아버지마저 우리 형제를 남겨둔 채 눈을 감으셨다. 기나긴 겨울밤들이 무척 힘이 들었다. 동생의 울음을 달래기가 가장 힘들었다. 무서워서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잠든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큰아버지가 계셨지만 어쩌다 한번씩 들를 뿐, 누구 하나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 제사가 다가왔다. 큰아버지는 오지 않으셨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동생과 나는 도시락을 두 개 준비하고 아버지께서 평소 즐기시던 소주를 한 병 사 가지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계시는 산소로 갔다. 비가 오고 있었다. 우리는 도시락을 펴놓고 술을 부었다. 절을 하려고 서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엉엉 울었다….〉 샘터에서 펴낸 「작은 이야기」. 이제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샘에서 핑, 물기가 느껴지는 이야기들을 모았다. 책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진 적이 과연 언제였던가…, 새삼 자신과 주변을 돌아본다. 가쁜 숨으로 앞만 보고 달리는 사이, 가슴 속에 한움큼, 가시 돋친 엉겅퀴 수풀을 키워온 현대인들. 「작은 이야기」는 무성하게 자란 엉겅퀴 수풀 사이로 따뜻한 손을 내밀며 이렇게 속삭인다. 「냇가에 놓여 있는 조약돌을 모두 거둬낸다면 냇물은 노래를 잃고 말거야. 만약 고난과 시련의 조약돌을 다 거둬낸다면 우리의 삶도 그렇겠지…」. 동화작가 정채봉씨와 시인 류시화씨가 샘터에 실린 글 중에서 「사랑의 속눈」을 틔우는 이야기들을 정성껏 골랐다. 「사금을 체로 걸러내듯」. 올해 최대의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이레)의 국내편이라고나 할까. 출판계에 마음 명상류 서적의 붐을 몰고온 류씨. 그는 「작은 이야기」와 함께, 「101가지 이야기」의 종교편 격인 「씨 뿌리는 사람의 씨앗」도 우리말로 옮겼다. 신부이자 자연학교 교사인 브라이언 카바노프가 사랑과 지혜의 샘물이 솟는 일화들을 모은 책이다. 눈물에도 「국적」이 있는 모양이다. 「작은 이야기」에는 눈물 젖은 빵이 아닌, 「눈물 젖은 도시락」의 사연으로 가득하다. 강원도 탄광마을에서 자취를 하던 「나」. 어느날 연탄가스에 중독돼 보건소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방안에 혼자 누웠다. 〈무섭고, 외롭고, 난생 처음 어머니가 그리웠다. 늦도록 훌쩍이다 잠이 든 새벽, 두런거리는 소리에 문을 밀쳐보니 머리에 보따리를 인 어머니가 하얀 달빛 아래 서 계셨다.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충청도에서 길을 떠나 오셨건만 평창에서 막차를 놓치는 바람에 다음날 새벽 차를 기다리지 못하고 밤새 산을 넘으셨던 것. 「애가 타서 여관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서리가 하얗게 내린 동치미 보따리를 보는 순간,나는 그만 늙은 어머니의 무릎에 엎드려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열림원에서 펴낸 「씨 뿌리는 자의 씨앗」. 사랑 배움 지혜 인내의 씨앗을 파는 가게라고나 할까. 씨앗을 팔 뿐, 열매는 팔지 않는다. 그 씨앗을 마음의 밭에 심고, 싹을 틔우고,덩굴을 뻗게 하는 것은 독자 스스로의 몫. 자기 자신과 삶에 대한 신뢰를 갖는 것이 중요하며 「스스로를 위한 그네」를 타라고 이른다. 직접 작곡한 노래가 있음에도 남의 노래만을 연주하는 「나」에게 노신사가 충고한다. 『당신의 음악은 아름다워요. 그런데도 당신은 다른 곡들을 연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군요』 『내 곡은 아무 것도 아닌걸요』 노신사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곡을 연주하지 않는다면 누가 당신의 곡을 연주하겠소?』 파리 미술대학에 입학원서를 냈다 F학점을 받은 미술교사. 그가 거세게 항의하자 채점관이 말했다. 『당신의 데생은 정확했습니다. 하지만 당신 그림의 이 옆 선은 세잔이 그렸던 선이고, 위쪽의 선은 모네의 선이고, 아래쪽 선은 드가의 선입니다. 도대체, 이 그림에서 당신만의 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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