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죽음」,중세서 근대까지 「죽음의 미학」탐구

  • 입력 1997년 11월 13일 09시 08분


「중세의 가을이 무르익던 1374년 어느 날. 사람들이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길바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탈진해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추었다. 무리는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아 다녔고 그 수는 점점 불어났다. 무도행진은 독일에서 프랑스까지 이어졌다.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던 이들은 기도를 받고서야 비로소 광란을 멈추었다」. 페스트의 창궐로 인구의 절반이 쓰러지고 있던 절망의 시절,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삶의 환희를 맛보려는 절실한 욕구의 표현이다. 실제로 있었다는 이 사건은 이후 「죽음의 춤」으로 불리우는 서양화의 모티브가 된다. 세종서적에서 펴낸 「춤추는 죽음」(진중권 지음)은 유럽의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미술작품 속에 들어있는 「죽음의 이데올로기」를 탐구한다. 15세기 프라 안젤리코의 「성프란치스코의 죽음」에서부터 나치 수용소의 죽음을 그린 조란 무직의 「다카우」(1945)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사망관」이 어떻게 바뀌어왔으며 미술작품들이 어떤 형태로 이를 받아들여왔는지를 설명한다. 베를린 마리엔 교회에 있는 「죽음의 춤」(1480)은 교황과 황제로부터 농부에 이르기까지 함께 춤을 추며 죽음으로 나아가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승에서 권세를 누리던 자들이야말로 후회와 두려움없이 죽음앞에 나서야 한다는 것, 죽음 앞에서는 계급의 차이도 없다는 믿음을 깔고 있다. 죽음을 피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아닌 것으로 여겨온 중세의 내세관은이후 그내부로부터 붕괴하는조짐을보여주고 있다. 다양해진 세계관으로 인해 기독교 신앙은 흔들리게 되었고 점차 죽음의 공포와 고통이 확산되었다. 서울대 미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재야미술단체에서 몸담아온 저자는 미술품 속에 담긴 이같은 내세관의 흐름을 풍부한 도상학적 자료를 동원해 미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원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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