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살 차준용군, 「문양 일가견」…4년걸쳐 관찰 기록

  • 입력 1997년 11월 5일 08시 34분


서울 창신동 숭신초등학교 5년 차준용군(11)은 아마추어 문양(紋樣)연구가. 제 또래들이 학원에 가거나 게임기에 붙잡혀 있을 때 고궁 용마루와 기와에 각인된 전통 문양을 찾아다닌다. 차군의 이야기는 일제가 남긴 엉터리 문양을 고궁에서 추방해달라는 편지를 문화체육부 장관실에 보내면서 알려졌다. 그는 4년에 걸쳐 86일간의 관찰 끝에 만든 1백33쪽의 기록을 제시했다. 『창덕궁 인정문과 인정전 용마루에는 구리로 된 오얏꽃 문양이 있는데 일제가 만들었어요. 일본왕은 하늘이 내린 천황이고 조선왕은 한낱 「오얏」 이(李)씨 가문 대표일 뿐이라고 깎아내리려 했던 것이지요』 놀라웠던 것은 얼마전 복원된 경복궁 영춘문에도 오얏꽃 문양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창경궁 영춘헌 담의 기와는 크기나 문양이 다른 것이 마구 뒤섞인 채였다. 『문양에 대해 잘 몰랐거나 관심이 없어서 그랬겠지요. 어쨌든 빨리 고쳐졌으면 하고 편지를 썼어요』 차군의 기록을 본 문화재관리국 관계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꼼꼼한 기록에 놀랐다』며 『전문가와 협의해 잘못된 곳을 바로잡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차군은 전자공학을 전공한 아버지의 권유로 1학년 여름방학때 개미를 기르고 겨울방학때 양파를 재배하고나서부터 사물을 차분히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2학년 여름방학때 경주에 갔다가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단청과 기와에 새겨진 이상한 무늬를 보고 문화재에 관심이 생겼어요』 문양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차군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종묘를 탐사하면서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문양은 청룡 백호 공작새 거북 꽃 물고기 문자 등 60여가지. 경복궁 영춘문 백호와 경회루 불가사리는 국가의 흉사를 막기 위해 버티고 있으며 창덕궁 낙선재의 불로초와 인동초는 왕손의 장수를 빌고 있었다. 거기에 담긴 수복장수(壽福長壽) 부귀유여(富貴有餘) 부부화합(夫婦和合) 공명출세(功名出世)의 뜻을 하나씩 확인해나가는 즐거움에 방학은 항상 너무 짧았다. 문화재 도록 등 참고서적을 뒤지기도 했지만 문양의 종류와 쓰임새, 담긴 뜻을 알아내는데는 담임 김경희교사와 과학담당 방금주교사의 지도가 큰 힘이 됐다. 아버지 차승묵씨(경호물산과장·38)는 사진자료를 챙겨 주는 조수역할을 했다. 『활짝 핀 모란에 부(富)에 대한 소망이 담겨있다면 여성용품에 보이는 석류나 포도는 많은 자손을 얻기 위한 기대가 깃들여 있어요』 초등학교 5년생 답지않은 문양풀이다. 〈조헌주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