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신대륙』아시아 뜬다…국제대회 잇달아 석권

  • 입력 1997년 10월 2일 19시 55분


『서구 문화는 전세계 문화로 적합하지 않다』 구소련의 반체제 인사로 유명했던 러시아의 원로작가 솔제니친은 최근 서구 자본주의문화에 대해 비판했다. 『대중은 쾌락만 추구하고 돈에 눈먼 영화 제작업자들과 출판업자들은 이들의 천박한 취미에 영합해 문명의 저질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 정신과 혼이 결여된 서구문화는 인류의 미래를 담기엔 너무 위험하다는 주장일까. 그들도 깨달았는가. 상업적 오락물만 쏟아내는 할리우드나 아이디어가 바닥난 유럽으로부터는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음을…. 세계가 아시아영화를 주목한다. 유럽과 북미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들이 잇따라 아시아 작품들을 치켜들고 있다. 지난 5월 열린 제50회 칸 영화제는 아시아 영화들의 축제였다.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은 이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감독의 「체리맛」과 일본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의 「우나기(뱀장어)」가 공동 수상했다. 감독상은 홍콩 왕자웨이의 「해피 투게더」가, 신인감독상은 일본인 가와세 나오미(河瀨直美)의 「수자쿠」가 차지했다. 지난 여름 캐나다 몬트리올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드 마지디 감독(이란)의 「천국의 아이들」이 그랑프리를, 이치카와 준(일본)의 「동경 자장가」가 감독상을 받았다. 베니스영화제에서는 기타노 다케시(일본)의 「하나비(불꽃)」가 황금사자상, 베를린에서는 차이 밍 량(대만)의 「하류」가 은곰상, 로카르노에서는 자파 파나히(이란)의 「거울」이 대상을 탔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탄생, 1세기를 넘긴 영화는 이제 자신의 미래를 아시아에서 찾는 것인가. 오랫동안 세계 영화계에선 돈으로 영혼의 무게를 재는 미국 상업 영화나 타성에 젖은 유럽 예술영화가 주류처럼 여겨져왔다. 이제 깊은 철학적 신비와 정신세계의 깊이를 보여주는 아시아야말로 영화의 신대륙이 되고 있는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부문 프로그래머인 김지석교수(부산예전)는 『아시아중에서도 이야기 전통이 있는, 풍부한 문학성과 깊은 문화의 뿌리를 가진 나라가 새로운 영화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이 그 대표적인 예. 중국 일본 대만 이란 베트남 등 아시아 영화가 부상하면서 국내 영화계에서도 자연스레 우리 영화의 세계화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폐막된 캐나다 토론토영화제에 자신의 작품 「지독한 사랑」이 초청됐던 이명세감독은 『영어전단 한장 없이 홀홀단신 갔는데 뜻밖에 표가 매진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며 『일본 대만 등 다른 나라들에서는 제작자 홍보담당자 통역자 등이 단체로 와서 자국 영화를 홍보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지석교수도 『무조건 작품이 좋다고 국제영화제의 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한국의 사회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국 영화가 서양에 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외 영화제들을 적극 활용해 외국 프로그래머들에게 한국과 한국영화를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 한국의 독특한 문화를 세계 보편의 언어로 표현하려는 시네아스트들의 참 실력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일차적인 과제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신연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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