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람선대학 세계여행]베트남

  • 입력 1997년 9월 2일 07시 39분


배를 타고 지구가 도는 반대 방향으로 항해를 하다 보면 참으로 좋은 일이 한가지 있다. 배가 시간 경계선을 지날 때마다 그 날의 자정을 기해 배의 공식시간을 1시간씩 늦추는 것이 바로 그것. 공짜로 한시간이 그냥 덤으로 생기는 것이다. 한없이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나른한 아침에 꿀같이 달콤한 잠을 한시간 더 잘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베트남 호치민시. 중앙선도 없고 신호등도 없는 거리엔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들이 서로 뒤엉켜 그야말로 물 흐르듯이 흐르고 있었다. 소매치기나 날치기도 들끓었다. 조금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눈 뜨고 코 베이기 딱 알맞았다. 우리 유람선가족중에도 음악을 가르치는 테라다 교수를 비롯, 여러 학생들이 지갑과 안경 카메라 등을 이미 날치기당했다. 「한나라를 알려면 그 나라 영화관에 가봐라. 그곳에 가면 보이지 않던 그 나라의 속살들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경험에 의한 개똥철학 1조. 호치민시에서도 우선 어느 영화관부터 찾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호치민시의 영화관은 여관인지 영화관인지 도대체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1인용 의자가 놓여 있는 1층은 우리나라 영화관이나 큰 차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은 거의 없어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2인용의자가 놓인 2층에는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대부분 떨어지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쌍쌍이 꼭 껴안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더욱 더 웃기는 것은 영화를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 뽀뽀(?)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아슬아슬한 자세로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연인들이 희끄무레하게 보일뿐이었다. 『원 세상에, 공공연한 장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가를 알고 나서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베트남에서는 젊은 연인들이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집값이 비싸서 한집에 2,3대가 같이 사는 게 흔한 일이었다. 날씨가 더운 탓에 집구조가 사방이 훤히 뚫려 있는 것도 젊은 연인들에게는 부담스럽다는 것. 이런 사정때문에 신혼부부들조차 집안의 어른들을 피해 영화관에 가거나 어두운 밤에 집 근처 풀밭을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호텔에 가면 되지 않으냐고? 그것은 서민들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대졸자 한달 월급이 50달러선인데 비해 호텔 하루 숙박료는 1백20∼1백80달러인데 어떻게 갈 수 있겠는가. 이에 비해 영화관은 80센트 정도니 서민들도 한번 가볼만한 것이다. 우리가 홍콩에서 베트남으로 올때 우리 배에는 두 명의 특별손님이 합류했었다. 그 둘은 바로 CNN의 세계적인 종군기자 피터 아넷과 베트남 여대생 타인 트랭이었다. 그들은 베트남의 역사와 풍물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주도록 유람선대학에서 초빙한 일종의 강사였다. 피터 아넷은 우리들과 허물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기를 즐겼다. 그가 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동기도 재미있었다. 좋아하는 여행을 맘껏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자가 됐다는 것. 피터 아넷이 대학문턱에도 가지 않았다는 사실도 나를 놀라게 했다. 정작 본인은 그런것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았지만. 베트남여대생 타인은 명랑하고 춤도 잘 췄다. 입고 있던 베트남 전통옷도 너무 아름다워서 후에 유람선대학 가족들은 너도나도 그 전통옷을 사 입었다. <문형진씨 참가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