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지「아라비안나이트」『돈-사랑에 눈먼 보통사람이야기』

  • 입력 1997년 7월 15일 08시 14분


초등학교시절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알리바바와 함께 『열려라 참깨』를 외치고 신바드가 괴물에게 쫓길 때면 함께 달음질쳤던 기억들. 그러나 「아라비안나이트」에 대해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원래의 아랍어 제목을 그대로 옮긴 「천일야화(千一夜話)」는 1천일이 아니라 1천1일 밤의 이야기라는 사실부터 이 장대한 이야기가 결코 동화가 아니고 노골적인 성애묘사로 가득차 있다는 것까지…. 18세기초 프랑스인 갈랑교수가 시리아의 모래바람속에서 이 오래된 이야기책을 건져낸 이래 「아라비안나이트」번역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논란과 화제를 빚었다. 지난해부터 동아일보에 「아라비안나이트」를 연재해온 작가 하일지씨는 작품 첫회에서 『알라여! 길고 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사악한 자의 시샘으로부터 나와 독자들을 지켜주소서』라고 간구했다. 「아라비안나이트」가 원래의 야한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면 비난이 빗발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예고된 고난에 부적이라도 붙이는 심정이었다. 『원래의 성애표현은 훨씬 더 직설적입니다. 그 솔직함에 「아라비안나이트」의 묘미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원전을 훼손할 수도 없지요. 성애장면을 아름답게 묘사하는게 제게도 제일 어려운 일입니다』 최근 그는 그간의 연재분을 민음사에서 3권의 책으로 묶어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재미있고 문학적인 아라비안나이트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을 중간결산해본 것이다. 그는 단순번역자가 아니다. 18세기 프랑스의 갈랑과 19세기 영국의 버튼이 그랬듯이 20세기 한국에서 「하일지판(版)」 아라비안나이트를 만들고 있다. 『「아라비안나이트」는 채록자와 역자마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순서와 색채가 달랐어요. 프랑스에서 나온 마르드류스판과 갈랑판, 영국의 버튼판을 두루 참조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체계나 묘사 등은 순전히 제 창작입니다』 그는 21세기를 목전에 둔 한국에서 「아라비안나이트」를 열독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현상이야말로 『문화적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자신한다. 『우리는 지금껏 의를 위해 죽고 사는 「삼국지」적 인간형에 경도돼 왔어요. 그러나 이데올로기적 인물속에서는 인간적 진실이 은폐됩니다. 애욕에 눈이 멀어 부와 명예 자존심도 던져버리고 재물을 모으기 위해 목숨을 거는 「아라비안나이트」속의 범속한 주인공들이야말로 인간에 대해 심연의 진실을 알려줍니다』 하씨는 이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부지불식간에 『인샬라(알라여 뜻대로 하소서)』라고 읊조릴 만큼 「아라비안나이트」의 세계에 몰입해 있다. 〈정은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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