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의 사람들/베트남랏족]크면서 변하는 머리색 인상적

  • 입력 1997년 5월 29일 07시 56분


해방후 「알래스카」라고 불린 사람들이 있었다. 월남한 함경도 주민들을 지칭한 말로 워낙 생활력이 강하고 기질이 억센 탓에 이런 별명이 붙었던 것이다. 베트남에도 의미는 약간 다르지만 북쪽이라는 의미로 알래스카로 불리는 곳이 있다. 달랏(Da Lat)이 그곳. 원주민인 랏족의 이름을 따서 지은 지명이다. 이곳은 프랑스 식민지하에서 「작은 파리」(La Petite Paris)라고 불릴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몇해전 그곳을 찾았다. 호치민시(구 사이공)에서 북서쪽으로 3백8㎞ 떨어진 고산지대다. 정원은 9명이지만 늘 갑절 이상을 태우는 소형밴으로 6시간 걸린다. 아름다운 달랏시내에서 다시 북쪽으로 12㎞를 더 가면 해발 2천3백m의 람위언산을 만난다. 여기가 랏족의 터전이다. 주변에는 낄, 마, 끄허 등 소수민족들도 산다. 모두 합쳐 6천명이나 될까. 이중 랏족은 다섯개 부락에 3천명 정도가 산다. 그 마을로 향했다. 비포장도로지만 노면상태는 좋아 속력을 내도 좋으련만 이 동네 차들은 과속과는 담을 쌓은 듯했다. 시속 20㎞가 고작. 그 덕분에 아름다운 주변풍광을 한 시간 동안이나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마을에 들어서니 황갈색 피부의 주민들이 이방인을 탐색하느라 경계의 눈빛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물론 적의는 없었다. 호기심 많은 마을처녀들은 머리에 숄을 덮어쓴 채로 저만치 멀리서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여차하면 도망칠 기세였다. 아이들만 천진난만한 눈망울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중 금발의 어린아이가 눈에 띄었다. 다른 큰 아이들은 모두 갈색이었기 때문이다.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다. 월남전때 미군들의 소행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러나 알고 보니 전혀 달랐다. 랏족의 머리카락은 어린시절에는 금발이었다가 점점 자라면서 갈색으로 변하고 최종적으로는 검은색이 된다고 했다. 기이한 일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원을 정확히 모른다. 베트남 당국이 파악한 54개 소수민족에도 들지 않았다. 그저 인도쯤에서 흘러온 것으로 안다. 실존하면서도 잊혀진 종족이다. 집이라고 해야 함석을 덮거나 짚을 이은 판잣집이 전부. 농사가 주업으로 고랭지 채소나 쌀 커피 흑두 고구마를 키우는데 수입이 적어 늘 가난하다. 마을을 돌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자들의 화려한 귀장식이다. 특히 노인들은 한결같이 귓불에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큰 구멍을 뚫었다. 귀고리를 하기 위한 것인데 어찌나 큰지 옥수수밭 전경이 그 구멍으로 다 들어올 정도다. 한국의 동해안 유적지에서 출토된 귀고리와 가야, 신라여인들의 귀고리유물을 보았을 때도 그 엄청난 굵기에 놀란 적이 있었다. 랏족처럼 뻥 뚫린 귓불을 발리섬(인도네시아) 원주민과 캄보디아 고산족에게서도 발견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연호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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