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는 한글로마자 표기법]정보화시대「표기 과학화」

  • 입력 1997년 4월 29일 07시 54분


한글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방법이 바뀌면 국민들의 언어 문자생활에는 엄청난 변화가 생긴다. 당장 정부의 문서나 교과서의 영문 표기가 바뀔 수밖에 없다. 전국 도로표지판 개선에 2백90억원의 예산을 확보해 놓은 건설교통부는 문화체육부에 하루라도 빨리 확정안을 내놓으라고 재촉해 왔다. 기껏 새로 해놓고 다시 돈을 들이면서 고쳐 쓸 표지판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이 작업을 주도해 온 국어연구원 金世中(김세중)박사는 개정 이유로 현행 표기법이 사실상 사문화된 점과 컴퓨터시대에의 적응을 꼽았다. 반달표와 어깨점은 기존 방식의 큰 흠이었다. 컴퓨터 영문자판에는 없는 특수부호이기 때문. 특히 컴퓨터 인터넷 관련업계의 개정 목소리가 높았다. 김박사는 『우리말을 로마자로 정확히 표기하고 영문을 본래 의도대로 한글화하는게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로마자 모음은 a e i o u 다섯개인 반면 우리말 단모음은 ㅏ ㅓ ㅗ ㅜ ㅡ ㅣ ㅐ ㅔ 여덟개. 우리말의 로마자 표기에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안으로 반달표가 나왔지만 컴퓨터 처리에 문제가 생겼다. 격음표기에 따라다니는 어깨점도 마찬가지. 세계 각국에서 사용된 예가 없어 외국인들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 여권용 영문 이름은 본인이 특정 문안을 지정하지 않는 한 담당 공무원이 로마자 표기법에 따라 기재토록 돼 있지만 ㅓ의 ▦나 ㅡ의 ▦는 기록할 방법이 없다. 개정안이 한글 철자를 로마자 표기기준으로 택한 이유는 바로 정보화 물결과 보조를 맞추기 위한 것이다. 한글과 로마자 사이의 「과학적 호환성」을 확보하자는 것. 표음주의를 표방한 현행 방식에서는 사람에 따라 발음이 달라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통일화된 로마자 표기를 이끌어내기가 힘들다. 「독립문」의 경우「동님문」으로 소리나는 점을 들어 「Tongnimmun」으로 표기했지만 영문만 놓고 보면 본 뜻이 전달되지 않을 소지가 있다. 그래서 개정안은 맞춤법에 따라 「Doglibmwun」으로 쓰도록 했다. 새 방식이 정착되면 앞으로 한영 한불사전 등의 낱말난에 한글 대신 영문표현을 넣는 것도 가능해진다. 로마자 표기법은 지난 91년 도로표지판의 영문표현이 너무 복잡해 교통사고를 부추길 위험이 있다는 지적에 따라 행정쇄신위원회가 재개정을 권고했다. 이번 개정안은 우리말 특성과 정보화 흐름을 대폭 반영한 것이지만 부분적으로 공청회 등에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연구원측은 개정안 작성위원회에 국어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학자는 물론 컴퓨터전문가까지 망라된 만큼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박원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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