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문단에선]젊은 작가들 「집필실 갖기」『붐』

  • 입력 1997년 2월 24일 20시 22분


[정은령기자] 요즘 소설가 김형경씨의 일산집으로 전화를 거는 사람들은 『김형경입니다. 메시지를 남겨주십시오』라는 메모만을 듣게된다. 새해들어 연재소설을 새로 시작한 김씨가 일산자택을 떠나 강릉에 방한칸을 얻어 꾸린 집필실에서 두문불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집필실은 신문연재 등으로 고정수입이 보장되는 일부 인기작가들만의 호사였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작품을 쓸 때면 고시생처럼 산중의 절로 들어가거나 식구들에게 「정숙」을 요구하며 집필에 몰두했다. 그러나 젊은 전업작가들이 늘어난 90년대에는 단칸셋방이라도 작품에 몰두할 수 있는 집필실을 갖는 것이 필수요건이 됐다. 작품생산력이 있는 젊은 작가들의 경우 출판사와 미리 몇 편의 작품계약을 하고 목돈을 마련할 수 있게됨에 따라 집필실을 갖겠다는 꿈도 그리 요원한 것만은 아니다. 소설가 윤대녕씨는 마포에 오피스텔을 얻어 집필실로 사용하다 최근 남양주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은희경씨는 「새의 선물」이 성공을 거둔 지난해 일산자택에서 비교적 출퇴근하기 쉬운 신촌에 원룸을 얻어 집필실을 냈다. 구효서씨도 부천자택에서 가까운 화곡동에 집필실을 갖고 있다. 30,40대 작가들중 비교적 큰 집필실을 갖고 있는 사람은 소설가 고원정씨. 작품활동 못지않게 방송이나 광고출연이 많은 고씨는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에 개인집필실을 갖고 있다. 문예진흥원에 재직하던 시절부터 직장이 있는 동숭동근처에 개인집필실을 마련해 두었던 하재봉씨는 프리랜서로 독립한 뒤에는 마포 오피스텔로 집필실을 옮겼다. 소설가 박덕규씨는 직장인 국민서관에서 「독방」을 마련해줘 「준집필실」로 사용하고 있으며 김소진씨는 전업작가가 된 이후 동창생들이 운영하는 강출판사에서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유격대」형인 소설가 박상우씨는 장편소설 출간 등의 사안이 생기는대로 몇달씩 머물 수 있는 집필실을 꾸린다. 젊은 작가들이 집필실을 내는 이유는 달라진 가족문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여성작가는 말할 것도 없고 30,40대 남성작가들도 선배세대처럼 『아버지 글 쓰시니까 조용히 하라』는 「가솔」들의 지원을 받기가 어렵다는 것. 자녀양육문제나 집안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가는 식구들의 눈총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아예 생활공간과 분리된 집필실을 원하게 된다. 전업작가로서 「프로의식」을 갖는데도 집필실은 필수적이다. 『집에서 창작을 하다보면 글이 안 써질 때 마치 내가 고등실업자인 것같은 자괴감에 빠지기 때문에 집필실이 필요하다』는 것이 젊은 작가들의 공통적인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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