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의 세상읽기]그 나이가 어때서…

  • 입력 1996년 12월 20일 19시 33분


며칠전 친한 친구끼리 모인 자리에서 신년희망에 대해 얘기가 오고갔다. 『뭐 별다른 거 있겠니. 그저 중학교에 들어갈 아이 공부 잘하고 남편 승진되는거지 뭐』 『넌 밤낮 수예방 같은 가게하고 싶다고 했잖아』 『말이 그렇다는거지.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새해를 계획하는 자리에서 뜬금없이 나이타령이 나온다. 그리고 곧 『내가 5년만 젊었어도』로 이어졌다. 일순 예쁜 이 친구의 얼굴이 몹시 나이들어 보이면서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정상에 우뚝 서서 행복해 하는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산을 좋아하는 이 할머니는 평생 꼭 해보고 싶었던 등정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마음 설레며 신이 났을까. 아프리카 최고봉도 오를 수 있다는 젊은 생각을 한 그 할머니는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그런데 왜 그 친구는 겨우 불혹의 나이에 자기만을 위한 계획도 없고 무엇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혹시 새롭게 뭔가를 시도하는 것이 두렵고 자신이 없다고 말하기는 싫으니까 그저 안전하게 나이핑계를 대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 대다수 여자들은 나이가 많아서 또는 여자니까라는 토를 달며 자기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사는 것같다.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는 도전해 보기전에는 모르는 일이건만 끈기도 없이 능력의 한계선을 그어 버리고 「나는 이것 밖에는 못하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사람은 신체구조상 수영할 줄 몰라도 물에 뜨게 되어있는데 단지 나는 뜨지 못한다는 생각때문에 물에 빠졌을 때 허우적대는 이치를 생각해보라. 여자나 나이탓이 아니다. 내 친구의 신년희망처럼 자기보다 가족들이 더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름다운 어머니의 마음이다. 그리고 남편과 자식이 자기없으면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느 기간까지는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10년이나 20년후에도 그럴까. 분명히 아닐것이다. 그러니 주부들이야말로 거창하든 소박하든 자기만의 꿈과 세계가 있어야 한다. 꼭 돈을 벌거나 무엇인가를 가시적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문제는 아까 말한 맹렬 할머니처럼 자기가 세운 목표를 향해 열심히 가고 있는 그 자체가 생활에 큰 즐거움과 에너지를 준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엄마들을 생기있게 만드는 근원이자 주부들이 그렇게 바라는 행복이 가득한 가정의 필수조건이다. 이제부터 절대로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말은 하지말자. 이 나이에라니, 도대체 무슨 나이말인가. 한 비 야<오지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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