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성의 세상읽기]스필버그의 어머니

  • 입력 1996년 12월 9일 20시 24분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유명한 미국의 영화인은 어려서 그렇게 멍청했단다. 나가 놀지도 않고 그렇다고 책을 본다든지 뭘 열중해서 하는 것도 아니면서 방구석에 처박혀 멍하니 공상에 잠겨 있곤 했단다. 그렇지만 교육 잘하기로 유명한 유태인 가정인지라 그 어머니는 저도 무슨 제 궁리가 있겠지 하면서 이런 아들의 공상을, 그야말로 키워주었단다. 그 덕분에 그는 꿈의 공장을 세우고 우리가 수십만대의 자동차를 땀흘려 만들어 기를 쓰고 팔아 버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언뜻 듣기에 그럴 수도 있구나 하고 지나칠 수 있겠지만 따져보면 스필버그의 어머니 이야기는 우리 부모들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이야기다. 우리 부모들이 과연 스필버그의 어머니처럼 아이가 무얼 하든 제 궁리가 있겠지 하고 내버려둘 수 있을까. 며칠도 못참고 이것 시키고 저것 하라고 안달할 것이다. 설령 의지 있는 부모가 참을성을 갖고 내버려둔다고 하더라도 그 부모는 다른 부모들의 압력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아이를 무책임하게 내버려두어서 어떻게 하겠냐는 둥, 어떤 부모는 이런 저런 것까지 시키고 있다는 둥,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참을성 없이 아이들을 이렇게 저렇게 빚으려, 만들려 들다가 그만 아이들을 망가뜨리고 만다. 스필버그의 어머니 이야기는 가장 당연하면서도 가장 지키기 어려운 부모의 덕목을 말해주고 있다. 다름아닌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 감추어진 힘과 재능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도록 지켜보고 그 싹이 보이면 이윽고 도와주는 일 말이다. 수능시험 결과가 발표되고 늘 그렇듯이 누가 수석이네, 이런 눈물겨운 이야기도 있네,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그렇지만 이럴 때일수록 근본적인 문제를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이런 게임의 법칙은 과연 옳은가. 물론 우리 스스로가 늘 견주고 다투고 하는 경쟁사회에서 자라고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게임의 법칙을 깨고 나름대로 줏대있는 생각이나 교육관을 가지기도 어렵거니와, 가진다고 해도 실천하기는 더욱 어렵다. 돈 문제나 교육의 질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그렇게 미니버스에 실려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순례하는 아이들이 지금, 여기 우리 사회에서 그토록 바라는 창의력을 갖추고 공동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될리 만무하다. 그저 조금만 참고 조금만 내버려두면 저절로 될 것을 그 조금을 못참고 돈버리고, 애버리는 서로 못할 짓을 하는 것이다. 정 유 성(서강대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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