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이야기]「딸딸이 아빠」들의 『행복예감』

  • 입력 1996년 11월 9일 20시 51분


「尹喜相기자」 『동네사람 다 들어보시오. 장아무개도 아들 낳는 기술 있다아―』 옛날 남쪽지방에 살던 장아무개란 사람은 딸 넷에 이어 마침내 아들을 낳자 목조 2층건물 위에서 이렇게 소리 질렀다. 당시 그는 태극기까지 흔들어 대며 감격의 눈물도 흘렸다. 그러나 장씨는 정작 훗날 황천(黃泉)에 갈 때 장성한 딸들이 정성껏 마련해준 고운 옷과 노자로 떠났다. 「딸딸이 아빠」들을 괜히 놀리거나 동정하는 세태. 딸을 연속해서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딸딸이 엄마」들이 시댁과 친정에서 안팎 곱사등이 신셀 면치 못하는 세태는 장씨가 세상을 떠난지 수십년이 지나가도 여전한 것같다. 오히려 더한지도 모른다. 딸인 줄 알아내면 의사에게 「칼날을 들이대 달라」고 졸라댄다. 서울 강남 소문난 명의의 집앞에는 「아들 낳을 비방과 합방시간」을 받으려고 조바심치는 현대판 장씨와 그의 부인이 적지 않다. 아내의 순산을 기다리는 30대 아빠에게 『축하합니다. 순산했어요』란 간호사의 첫마디는 딸이란 뜻이다. 『한턱 내세요』라는 말이 「고추」로 통하고 이미 첫딸이 있을 경우엔 『순산했어요』 뿐이다. 『둘째 딸을 얻은 뒤부터 「여권운동」에 관심이 훨씬 높아졌어요. 아내의 건강이 염려돼 곧바로 정관수술을 했지요』(국회의원 보좌관 Y씨·33) 『큰 딸은 온유(8), 둘째 딸은 이래(3)라고 지었어요. 중성(中性)같은 이름을 갖고 살면 좀 낫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한국산업은행 S대리·38) 우리사회의 남아와 여아의 출생 성비(性比)는 지난 84년이후 줄곧 자연섭리(1백6명 대 1백명)를 거슬러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84년 1백8.3이던 성비불균형은 94년 현재 1백15.4까지 고조됐다. 특히 셋째아이는 2백6.5, 넷째아이는 2백53.4로 남아가 여아 출생의 두배를 넘고 지역별로는 △경북 1백24.3 △대구 1백21.2 △경남 1백20.2 △부산 1백19.0 순이다. 더구나 말띠해였던 90년에는 전국 평균 출생성비가 1백16.7까지 치솟았다. 한햇동안 자연의 섭리가 여아의 출생가능성을 그토록 억제했을 리는 없다. 그해에 태어날 예정이었던 수많은 딸들은 어디로 갔을까. 광주교육대 박남기교수(36·교육학)는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30대 부모들이 딸들에게 불리한 사회의 법과 제도, 관습에 대항하는 대신 일부 의사들과 공모해 무참히 제거했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딸딸이 아빠 엄마」들과 더불어 세태를 바꿔 나가려는 시도는 세력을 얻어가고 있다. 부산의 일신기독병원은 12월부터 딸낳은 산모에게 순금반지 등을 선물하기로 했다. 제일은행은 딸 낳은 가입자에게 대출금리를 깎아주는 「레이디퍼스트」통장을 개발해냈다. 일본에서 3년째 근무하는 상사원 L씨(39)는 『일본 외무장관인 이케다도 장인인 이케다 전총리의 성을 따랐다. 유명인사나 보통사람 할 것없이 「핏줄」만 따지지 않는다.「아들아들」하며 집착하는 고국의 현실이 달리 보인다』고 전했다. 딸들을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끔찍이 사랑하며 만족해하는 30대 부모도 많다. 딸 둘로 단산한 박정수씨(33·사업)는 『형과 나는 누나만큼 부모님께 못하고 처남들은 아내만큼 장인장모께 못한다』면서 『잔정많고 섬세해서 끝없이 기쁨을 안겨주는 내 딸들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대한가족계획협회 부설 성문화연구소 신동진소장(50)은 『이땅의 딸들이 자기 뜻을 펴고 남성과 공정한 경쟁을 통해 21세기의 주역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딸딸이 부모들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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