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원가 줄어도 가격 그대로’ 식품사들… 이러다간 역풍 맞을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6일 2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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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료비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올렸던 식품 기업들이 원재료비가 하락해도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주요 식품 기업 20곳의 올해 1분기 매출원가율을 조사한 결과, 16곳의 매출원가율이 하락했다. 올해 들어 매출액 대비 원가 부담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16곳 중 12곳은 제품 가격을 인상했거나, 앞으로 인상을 예고했다.

국내 주요 치킨 프랜차이즈는 지난해부터 메뉴 가격을 약 10∼20%씩 인상했거나, 조만간 인상할 예정이다. 유지류 가격 상승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일찌감치 가격을 올린 한 치킨 업체는 올해 1분기 매출원가율이 8.6% 하락했고, 영업이익은 2배 넘게 늘었다. 식품 납품가 인상으로 대형마트에서 파는 초콜릿, 음료수, 김, 간장 등 가공식품 가격도 다음 달부터 일제히 오른다. 그런데 그 상승 폭이 최대 25%에 달하는 등 원재료비 상승 폭을 훌쩍 뛰어넘는다.

국제 곡물 가격이 2년 새 25% 내리는 등 원재료비는 안정을 찾아가는 추세다. 그런데 한 번 오른 식품 가격은 도통 내리지 않는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원가 상승만큼 원가 하락도 빠르게 반영해야 한다”며 가격 인하를 촉구했다. 기업들은 재료비 외에 인건비 물류비 등도 올라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올해 1분기 주요 식품 기업은 사상 최대 실적을 내는 등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했다. 가격 인상으로 비용 상승분을 상쇄하고 이익까지 남겼다는 뜻이다. 식품 기업의 행태가 고물가를 틈타 과도하게 가격을 올려 다시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그리드플레이션’(탐욕+물가 상승)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식품 기업의 실적이 개선된 것은 해외 수출이 급증한 덕이 크다지만, 외식 물가가 치솟으며 간편식 등 외식을 대체한 수요가 늘어난 것도 그 원인이다. 이처럼 서민들은 씀씀이를 줄여가며 고물가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사지 않을 수 없는 식품을 파는 기업들이 호황을 누리면서 원가 절감분조차 제때 반영하지 않는다면 결국 소비자의 신뢰를 잃고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식품사#원재료비#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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