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승호/'황당한 공약'

  • 입력 2002년 12월 15일 18시 37분


이번 주는 뭐니 뭐니 해도 ‘대통령 선거 주간’이다. 투표일 저녁쯤이면 확인될 대선 결과에 온 나라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16일에는 주요 세 후보의 마지막 토론이 예정돼 있다. 이미 이뤄진 정치 통일 안보 경제 등에 대한 토론에 이어 이날은 사회 교육 문화 등에 대한 논의가 전개된다.

그러나 이날 토론을 기다리는 기자의 맘속에는 기대보다 걱정이 더 많다. 10일 있었던 경제 과학분야 토론을 지켜보며 ‘참으로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통령후보라는 분들은 줄곧 기업 죽이기 등 ‘쪽박 깰 일’만 거론했다. 우선 각 후보는 기업의 사회적 기여나 변화한 모습에 대해서는 전혀 평가하지 않은 채 개혁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듯한 발언을 했다.

외환위기 이후 공공 금융 기업 노동 등 4개 부문의 경제개혁이 진행돼 왔다. 기업은 재무구조 경영투명성 지배구조 등이 많이 좋아지면서 4개 부문 중 가장 눈에 띄는 개선이 이뤄진 분야이다. 단적인 예로 정치권은 이번 대선부터는 기업으로부터 뒷돈 얻어쓰기가 예전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을 느꼈을 것이다. ‘한국의 경제는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말이 여전히 유효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후보들은 줄곧 정경유착, 제2의 경제위기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재벌개혁만을 주장했다. 물론 대기업집단의 폐해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50% 이상, 포스코는 60% 이상의 주식지분을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는 세상이다. 주주무시, 불투명, 총수독단, 선단(船團)식 경영 등 ‘전통적 개념의 재벌’이 지금 한국에 몇 개나 남아 있을까? ‘재벌’이란 말은 외국인들이 한국기업의 이미지를 깎아 내릴 때 즐겨 쓰는 용어다.

나아가 세 사람의 후보는 ‘지금 기업들이 중국과의 전면전에서 살아남을 방법에 대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고민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 보였다. 적어도 10일 토론에서는 그렇게 들렸다. 어찌 현실을 이렇게 외면할 수 있을까.

“후보들이 돈 벌 궁리는 하지 않고 쓸 생각만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공계 학생 2명 중 1명은 장학금을 받도록 하겠다는 말, 대선을 겨냥해 나온 행정수도 건설 약속, 교육비 병원비 주택비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공약 등은 공허하게 들린다.

16일의 토론을 앞두고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날 주제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회 복지 교육 문화 환경 교통 여성 체육 등 하나같이 ‘돈을 쓰는 분야’라는 것이다. 재원에 대한 고려 없이 헛된 약속을 남발할 공산이 매우 크다는 뜻이다. 사실 이미 내놓은 공약집도 찬찬히 읽어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만큼 허황된 내용이 많다.

마지막 토론에서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새로운 일을 벌이겠다면 앞으로 국가재정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먼저 제시한 후 각 분야의 예산을 이야기하기를…. ‘이 일을 하는 대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를….

기자는 16일 저녁에 누구의 말이 매끄럽고 달콤한지에 귀기울이기보다는, 황당하고 엉터리 같은 약속을 누가 ‘덜’ 내놓는지를 지켜보려 한다.

허승호 경제부 차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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