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말 권력누수현상(레임 덕)이 가속화하면서 그동안 감춰졌던 김 대통령의 직계 및 친인척 관련 비리와 청와대 관계자들의 비리 연루의혹이 불거지자 대통령 측근들마저 방향을 잃은 채 좌고우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김영삼(金泳三) 정부 말기인 97년 차남 현철(賢哲)씨의 구속을 전후해 청와대가 사실상의 ‘국정불능’ 상태에 빠졌던 상황과 최근 상황이 상당한 유사점을 갖고 있다는 얘기도 여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측은 뾰족한 타개책을 내놓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다. 특히 장남 홍일(弘一)씨와 홍업(弘業)씨 문제에 이어 3남 홍걸(弘傑)씨의 미국 내 호화생활 문제가 증폭되자 청와대 관계자들은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것이냐”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는 현재 각종 의혹들에 대해 “검찰의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원론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외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어떤 형식으로든 김 대통령의 입장표명이 있어야 한다는 여론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그럴 단계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김 대통령이 어떤 말을 하든 검찰수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들은 조심스럽게 검찰 수사가 여론몰이에 의한 표적수사가 돼선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박지원(朴智元) 대통령비서실장도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완전 독립한 만큼 이제 여론으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무엇보다 청와대측이 걱정하는 부분은 김 대통령의 건강문제다. 김 대통령은 14일 퇴원 이후 “한 달 동안 무리해선 안 된다”는 의료진의 건의에 따라 일정을 대폭 줄였지만, 가족문제와 관련한 악재들이 계속될 경우 심고(心苦)로 건강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최근 말을 극도로 아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심기가 몹시 불편하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한다.
한 관계자는 “김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가족모임 때마다 아들들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심할 정도로 야단을 쳐왔고 그로 인해 홍걸씨가 펑펑 울면서 청와대를 나간 적도 있다”며 “그런데도 계속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데 대한 대통령의 상심은 세간의 상상 이상일 것이다”고 말했다.
이철희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