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고 경제는 침체의 터널에 갇혀 있다. 새천년의 희망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불안과 불만만 팽배해 있다.
한국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산업혁명과 제국주의의 흐름에 둔감한 탓에 식민지로 전락한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97년 말 외환위기는 디지털혁명과 세계화의 파도에 휩쓸린 결과였다. 세상의 빠른 변화에 둔감했던 것이 실패가 반복된 원인이다. 역사는 ‘변화의 본질을 파악해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지난해의 화두는 테러전쟁이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패권은 더욱 강화되었고 미국식이 세계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그 사이 유대 자본은 국제금융을 뒤흔들었고 할리우드 영화는 고유 문화들의 존폐를 위협했다. 결국 미국의 이스라엘 편들기가 이슬람에 의한 테러를 촉발했다. 미국의 오만이 문제였다.
테러전쟁의 향방에 따라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될 전망이다. 테러 재발, 추가 공격,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확산 등이 우려되는 가운데 무력충돌과 대형사고의 리스크가 1년 내내 지속될 것이다. 미국이 오만을 벗어던진다면 사태 해결은 의외로 빨라질 수 있다. 이 경우 국제적 빈부격차 해소와 문명간 이해를 위한 국제협력도 활발해질 것이다.
국내에서는 국가 리더십의 약화가 우려된다. 현 정부는 초기에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했고 외채상환, 경기활성화, 실업대책 등에서 획기적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위기감이 사라지자 국정이 혼선을 빚고 비리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정부가 기업현장 및 국민생활과 멀어졌고 의욕을 앞세워 사회균열을 부추겼다. 지도층의 오만이 문제였다.
정권 말기인 데다 도덕성 시비가 계속될 것으로 보여 리더십 발휘가 어려울 것이다. 선거를 의식하고 노조 반발이 거세지면 노동시장 유연화나 공기업 민영화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사회 안정과 경제활성화는 리더십 복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힘의 강약이 문제가 아니라 지도층이 오만을 떨쳐버리느냐가 중요하다.
희망의 싹들도 피어날 것이다. 실험실, 생산현장, 소매시장, 농촌 등에서 기술혁신 창업 가치창출이 계속되고 실패 속에서 성공의 신화가 만들어질 것이다.
한국은 정부와 대기업 주도로 경제개발에 성공했다. 그러나 한단계 더 도약하지 못했다. 국제화, 첨단산업 육성, 규제완화 등이 구호에 그쳤기 때문이다.
세계는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처럼 표류하다가는 다시 한번 국가적 위기가 도래할 것이다. 시대 변화를 수용하고 솔선하는 ‘겸손한 리더’가 필요하다.
이 언 오 삼성경제연구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