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위원 간담회 연기 배경]"묘안 없다" 청와대 시간끌기

  • 입력 2001년 11월 2일 18시 24분


심각한 최고의원들
심각한 최고의원들
민주당 총재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2일 저녁 3일로 예정됐던 최고위원 간담회를 돌연 7일로 연기한 배경은 당 안팎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수습할 묘책이 실제로 없다는 점을 입증한 대목이기도 하다.

전용학(田溶鶴) 대변인은 이날 “브루나이에서 4일부터 열리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한중일’ 정상회담 준비시간이 촉박한 데다 여러 현안을 시간적 여유를 갖고 차분하게 대처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연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겉기류와 달리 속기류는 2일 최고위원들의 ‘일괄사퇴’ 결의 이후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이 간담회 불참 입장을 밝히는 등 당의 상황이 ‘시계(視界) 0’의 혼미한 상황에 빠져 있다는 사실과 직결돼 있다는 것이 지배적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이날 청와대 한 수석의 전화를 받고 “대통령 똑바로 모시라”며 심한 역정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를 상식을 갖고 해야지. 한번 사퇴한다고 했으면 끝까지 (최고위원) 안 하는 거야”라며 “대통령에게는 나중에 따로 만나 할 얘기를 하겠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한 당직자는 “당 안팎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간담회를 열어봤자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청와대측이 판단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기에다 최고위원 일괄 사퇴를 수용하든, 수용하지 않든 잠재해 있는 쇄신파와 동교동 구파간의 재격돌 요인을 감안할 때 매끄러운 수습의 모양을 갖추기는 애당초 어려운 형국이었던 점도 최고위원 간담회 연기의 이유 중 하나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연기는 됐다고 하나 김 대통령이 밟을 수 있는 수순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정동영(鄭東泳)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들이 사퇴 의지를 끝까지 굽히지 않을 경우에는 결국 김 대통령이 7일 사의를 반려하더라도 일괄사퇴쪽으로 상황이 밀려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와 당 주변에서 김 대통령이 이미 일부 최고위원들이 사퇴 의지를 꺾지 않을 가능성을 전제로 장단기 수습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와 관련, 한 여권 관계자는 “어떤 식의 시나리오가 됐든 김 대통령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지도부가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만약 최고위원들의 일괄사퇴로 상황이 최종적으로 가닥 잡힐 경우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선출직 최고위원을 제외한 5명의 지명직 최고위원을 김 대통령이 지명한 뒤 이들 중 대표최고위원을 선출해 전당대회까지 과도체제로 당을 운영하는 방안이다.

이처럼 지도부가 재구성되면 향후 전당대회의 시기, 후보선출 방법 등을 논의할 당 쇄신기구의 발족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지도부에 ‘친위(親衛)’적 성격이 농후해질 경우 쇄신파들의 반발도 더욱 극렬해질 전망이어서 내분 수습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게 현재의 여권 내 기상도다.

<윤영찬·정용관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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