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문화강좌 갈수록 전문화…장기수강생 늘고 주제 다양

  • 입력 2001년 7월 1일 18시 59분


대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1990년대 초 시작된 다양한 주제의 재야 문화강좌들이 수준 높은 전문강좌로 차원을 높이고 있다.

지난달 25일 개강한 ‘철학아카데미’에 이어 이달 초 개강하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문예아카데미’,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의 여름강좌 등이 준비한 강의 목록을 보면 이런 경향이 확연히 드러난다.

‘파노프스키 자세히 읽기’, ‘메를로 퐁티의 지각현상학의 이해’, ‘베르그송 철학의 이해’, ‘화이트 헤드의 철학’, ‘조선후기 소품문(小品文) 강독’ 등이 그것. 총론적 지식을 전달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각론적 지식을 다루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이는 우선 재야 문화강좌가 꾸준한 인기 속에 1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인기강사’가 배출됐고 이들을 중심으로 장기 수강자들이 늘어난 것이 그 원인. 초기에는 많은 사람을 끌어모아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개론적인 강의를 계획할 수 밖에 없었지만 어느정도 ‘고정 팬’이 확보되면서 주제 선정이 보다 자유로워 진 것.

조경학 분야의 박사논문을 준비 중인 김정호(40)씨는 철학아카데미에서 강의하는 이정우 씨의 수업을 3차례나 수강한 이씨의 ‘열성 팬’이다. 김씨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에서 개론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면서 “전체적 맥락을 파악하고 나니 그 중 관심가는 부분을 꼼꼼히 짚어주는 강의를 원하게 된다”고 말했다.

문화강좌들의 전문화 경향에는 수강생들의 이런 요구뿐 아니라 강사들의 새로운 고민이 반영돼 있다. 총론적 내용의 수업을 반복해서는 더 이상 학생들을 끌어모을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힌 것. 문예아카데미 강사 양운덕씨는 “이미 개론 수업은 많은 강좌에서 다룰 만큼 다뤘기 때문에 같은 내용을 더 이상 새롭게 포장하기는 어렵다”면서 “전문화는 어쩌면 문화강좌의 당연한 흐름”이라고 말했다.

강좌를 개설하는 주최측 역시 전문화를 꾀하긴 마찬가지다. 철학아카데미의 조광제 대표는 “‘그 수업, 들을 게 없더라’는 소문이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문을 닫아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서 “어정쩡하게 쉬운 수업을 개설했다간 실패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몇몇 강좌는 전문적인 내용과 별개로 아주 기초적인 내용의 수업을 마련해 강좌를 이원적으로 차별화하기도 한다. 문예아카데미는 ‘푸른철학교실’을 마련해 방학을 맞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기초적인 철학 강의를, 철학아카데미는 ‘독해를 위한 기초 불어’, ‘라틴어 입문’과 같은 초심자들을 위한 강의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런 전문화 경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강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지나치게 인물 중심으로 치우지기 때문.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이기상 교수는 “저명한 학자의 사상과 작품세계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는 자칫 주입식 교육으로 전락하기 쉽다”면서 “한 주제에 대한 사유방식을 가르치는 것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수경기자>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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