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야인시대' 시청률 비결은 '안재모 눈빛'

  • 입력 2002년 10월 6일 17시 56분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 연기로 드라마 ‘야인시대’의 열풍을 이끌고 있는 안재모.사진제공 SBS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 연기로 드라마 ‘야인시대’의 열풍을 이끌고 있는 안재모.사진제공 SBS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열풍이 뜨겁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9월 30일과 1일 시청률이 각각 44.1% 48.3%(전국기준)에 이르며 50%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직장인들의 술자리에선 ‘야인시대’ 주먹들의 일화가 안주감으로 등장하고 청소년들 사이에선 ‘긴또깡’(김두한의 일본식 발음) ‘쌍칼’ ‘마적’ 등 극중 이름을 별명으로 붙이는 놀이가 유행하고 있다. ‘야인시대’의 흡인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청년 김두한을 맡은 안재모가 드라마 초반 인기를 이끌고 있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극중에서 뿜어내는 카리스마에 시청자들이 매료되고 있는 것. 장형일 PD는 “캐스팅때 ‘깡패’ 이미지와 맞지 않는 외모를 찾았다”며 “남성적인 외모로는 김두한이 ‘깡패’라는 점만 부각될 뿐 인간적 면모를 살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인기는 여성 시청자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김재일(57·회사원)씨는 “안재모라는 배우를 이 드라마를 통해 제대로 알았다”며 “대사처리가 정확하고, 표정연기가 압권이어서 시선을 뗄 수 없다”고 말했다.

안재모는 지금까지 몇차례 단막극 주인공으로 출연한 것을 제외하면 본격 주연을 맡은 적이 없다. ‘야인시대’에 캐스팅됐을 때만 해도 스포트라이트는 장년 김두한을 맡을 김영철에게 쏟아졌다. 그러나 이제는 “안재모 때문에 ‘야인시대’를 본다”는 팬들이 늘고 있다.

‘야인시대’에서 화제를 낳고 있는 화려한 액션.

그는 2000년 KBS 사극 ‘왕과 비’에서 피를 토하며 죽은 어머니에 대한 복수의 한을 품은 연산군의 광기를 열연해 ‘재목’으로 낙점받았다.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이 종로를 주름잡던 깡패들을 물리치고 주먹의 ‘보스’로 올라서는 과정은 흡사 ‘스트리트 파이터’류의 전자게임같다. ‘야인시대’가 청소년을 포함해 젊은 층에 다가서는 이유도 이 덕분.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주철환 교수는 “어려운 관문을 하나씩 넘어 조직의 1인자로 부상하는 양상이 게임을 연상시킨다”며 “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밑바닥 인생에서 상류층으로 옮겨가는 그의 삶은 고대 영웅설화와 닮았다.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김좌진 장군의 아들) 비참한 유년기를 보내다(거지 생활)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는 귀인을 만나(‘쌍칼’과의 만남) 영웅성을 발휘하는 과정(조직의 1인자로 등극)이 그것. 문화평론가 김탁환씨(건양대 국문과 교수)는 “이같은 영웅 설화는 주몽설화나 고대소설 홍길동 등 역사에서 수차례 반복되며 관심을 끌던 소재”라고 말했다.

시청자들은 ‘야인시대’가 요즘 찾아볼 수 없는 참다운 리더나 의리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고 말하고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수십년간 시청자들의 뇌리에 박힌 정치 불신과 낙담은 역설적으로 이 드라마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배경”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계의 이합집산에 실망하는 시청자들은 김두한의 의리를 하나의 모델로 여기기도 한다.

또 ‘야인시대’에서는 법(일제)이 불의를, 주먹(김두한)이 정의를 뜻한다. 이에따라 정의가 실현되기 어려운 사회적 상황을 주먹으로 풀어나가는 줄거리가 오히려 후련함을 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청자 박은선(50·여·서울 송파구 오금동)씨는 “사회 정의를 외면하는 탈법적 상황에서 주먹으로 정의를 찾아가는 김두한의 모습이 현실의 갑갑증을 해소해준다”고 말했다.

<야인시대 인기 풍경>

#풍경 하나

회사원 김모씨(45). 그날도 평소 즐겨입던 아이보리색 양복을 입고 출근했다. 회사에 들어서는 순간 집중되는 시선. 그는 종일 주위의 관심을 끌었다.

“이 참에 백구두랑 흰색 중절모도 장만하시죠. 그러면 딱 김두한인데….”

#풍경 둘

서울 C초등학교 5학년의 한 반에서는 담임 교사가 드라마에 나오는 김두한과 신마적의 대결이 허구라고 수업시간에 자세히 설명하기도. 신마적은 드라마와 달리 일본 조폭 신마치패에게 당해서 종로를 떠나는 게 ‘사실’이다. 학생들이 워낙 ‘야인시대’ 이야기를 많이 하는 바람에 ‘사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는 셈.

#풍경 셋

모처럼의 동창 모임. 회사원 이모씨(33)는 그날도 잡무가 많아 밤 9시가 다돼서야 모임에 합류했다. 평소 3차는 기본이기 때문에 밤 9시면 ‘초저녁’에 불과하다. 여유있게 도착한 이씨. 그러나 그가 오자마자 친구들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야인시대’ 보러 가야돼.”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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