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김순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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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순덕 칼럼니스트입니다.

yuri@donga.com

취재분야

2025-04-02~202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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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3%
  • [김순덕의 도발]2024년 총선과정 167개국 중 공동 2위… 그래도 ‘부정선거’인가

    말로만 듣던 부정선거 음모론 유튜브를 처음 봤다.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일 국회에서 공병호TV를 틀었다. 2020년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 공천관리위원장을 잠깐 했다 물러난 공병호가 “가짜투표지를 집어넣어 국민들에게 사기를 친 것이 김용빈(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과 노태악(위원장)이 해온 짓거리”라고 주장했다. “서울 같은 경우는 세 장당 한 장을 집어넣는다. 진짜 진짜 진짜 가짜 표, 진짜 진짜 진짜 가짜 표. 모든 이런 가짜는 다 민주당 후보에게만 더해지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좀 유치찬란하다. 고도의 해킹이라든가 원격조작 시스템이라면 또 모른다. 대명천지에 여야 참관인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데 누가 어떻게 감히 가짜 표를 집어넣는단 말인가.윤석열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도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12·3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1월 15일 체포된 직후 ‘국민께 드리는 글’에서 “투개표 부정과 여론조사 조작을 연결시키는 부정선거 시스템은, 이를시도하고 추진하려는 정치세력의 국제적 연대와 협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며 “이 상황이 전시, 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입니까? 아닙니까?” 물었다. ● 부정선거 때문에 국가비상사태라고? 그런데 어쩌나.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 2024’는 윤석열 계엄 탓에 167개국 중 32위로 전년보다 10계단 추락했지만 선거과정만은 10점 만점에 9.58점, 공동 2위다. 지난달 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산하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내용을 다시 들여다본 결과다.EIU는 민주주의 지수를 ①선거과정과 다원주의 ②정부기능 ③정치참여 ④정치문화 ⑤시민의 자유 등 다섯개 지표에 따라 1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긴 뒤 평균치를 내 순위를 발표한다. 8점을 넘으면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 6~8점은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 4~6점은 ‘하이브리드 국가’, 4점 미만은 ‘권위주의 체제’다. 우리나라가 2020~2023년 완전한 민주주의에 속했다가 2024년 윤석열의 비상계엄으로 결함 있는 민주국가로 굴러 떨어진 것은 이미 보도됐다. 그러나 선거과정(과 다원주의)만은 부러울 것 없는 완전민주다. 10점 만점이 17개국(대만 포함)이나 돼서 그렇지, 두 번째로 높은 9.58점이었다. 우리나라와 스웨덴 스위스 네덜란드 독일 일본 영국 등 26개국이 동점, 공동 2위였다. 지난해 대선을 치른 미국은 9.17점으로 공동 3위에 그쳤다. ● 공동 2위 26개국이 전부 부정 선거 시스템? 윤석열은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대국민담화에선 부정선거의 ‘부’자도 입에 담지 않았다. 4차 담화, 즉 12일에야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결단을 내리기까지 그동안 직접 차마 밝히지 못했던 더 심각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며 “국정원 직원이 (선관위)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방화벽도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어마무시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묻고 싶다. 만일 그가 1월 15일 주장한대로 “총체적인 부정 선거 시스템이 가동”됐다면 EIU가 9.58점을 주는 것이 가능했겠나. 1월 말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윤석열 측 변호인 은 “국내외 주권 침탈 세력에 의해 거대한 선거부정 의혹이 있었으나 선관위나 법원, 수사기관을 통해 제도적으로 해결되지 못해 국가 비상 상황이 초래됐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EIU가 우리나라를 스웨덴 독일과 같은 공동 2위에 올려놓았을 리 없다. 동점이니만치 다른 25개국도 우리처럼 거대한 선거부정 의혹이 있고, 총체적 부정 선거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아니면 EIU가 멍청한 국제기구든지. 과연 그런가. 5개 민주 지표 가운데 우리나라가 그래도 제일 점수 높은 항목이 ①선거과정과 다원주의였다.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한지(언론자유와 표현자유도 중요하다), 선거 뒤 패자의 승복과 질서 있는 정권 이양이 진행되는지가 평가 내용이다. 한국은 2021~2024년 그러니까 문재인 정권 5년차부터 윤석열 계엄까지 9.58점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선거과정만은 계속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공정하게 치뤄졌다는 얘기다. 2020년 선거과정은 9.17점으로 좀 떨어졌지만 그래도 2024년 미국과 같은 수준이었다. 윤석열 주장대로 결코 부정선거가 자행됐다고 볼 순 없다는 말씀이다.● 윤석열 “선관위 군 투입 지시” 자백했다그가 국회 탄핵소추 사유를 전면 부인하면서 유일하게 인정한 것이 있다. 선관위에 군 병력 투입을 지시한 사실이다. 윤석열은 2월4일 탄핵심판 5차 변론에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의 증언이 끝난 뒤 “잠깐 말씀드려도 되겠냐”며 굳이 발언 기회를 얻어 밝혔다. 비상계엄 당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 병력을 보내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헌법기관을 불법 점거하도록 지휘 감독했다는 엄청난 자백이 아닐 수 없다. 계엄법은 비상계엄 하에서 계엄사령관이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한다고 규정해 놨다. 그러나 선관위 같은 헌법기관에 대해선 손 댈 수 없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선관위에 군이 진입한 것 자체가 명백히 헌법 위반이며 대통령이 그런 행위를 지시했다면 탄핵 사유로도 볼 수 있다”고 작년 12월 5일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진작 밝힌 바 있다. 윤석열도 위헌성을 알아챘는지 최후변론에서 부정선거론과 선관위 군 투입 지시에 대해 ‘매우 약해진’ 발언을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선관위 일부 점검 결과 심각한 보안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에 전산시스템 스크린 차원에서 소규모 병력을 보낸 것”이라고 꼬리를 내린 것이다. 고작 시스템 점검을 위해 계엄을 때렸다고? 선관위 사무총장이 대학동기인데도? ● 공천개입 의혹의 김건희와 함께 복귀시킬 건가 ‘가족회사’를 자처했다는 선관위의 특혜채용과 타락, ‘소쿠리 투표’ 같은 관리 부실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노태악 위원장이 5일 대국민사과문을 내고 “선관위 조직 운영에 대한 불신이 선거과정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에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늦었지만 당연하다. 윤석열이 절대 임명하지 않았던 대통령실 특별감찰관 아닌 ‘특별감사관’이라도 설치해 선관위는 모든 의혹을 털고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부정선거론자들이 도입을 주장하는 ‘수개표’는 우리가 이미 실시하고 있는 제도다. 사람이 먼저 수검표하고 전자 계수기로 결과를 재확인한다. 무엇보다 지금의 부정선거론은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맞붙은 2012년 18대 대선에서 촉발됐음을 지적하고 싶다.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졌다고 믿은 문재인 측은 개표 부정에서 이유를 찾으려 했고, 김어준은 2017년 영화 ‘더 플랜’으로 개표 부정 의혹에 불을 질렀다. 거기서 그쳤으면 좋았을 것을, 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한 보수층 일각에선 부정선거론에 빠져들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취임 때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선서했던 대통령이 위헌적 계엄을 선포한 건 나라망신이다. 유수한 국제기구 EIU가 세계 2위로 평가한 선거과정을 못 믿고 선관위에 군을 투입해 대한민국을 ‘결함 있는 민주국가’로 추락시켰다. 서둘러 나라를 뒤엎어야 하는 ‘진짜 이유’를 감추려 부정선거를 끌어들인 게 아닌지 의문이다. 그런 윤석열을 공천 개입 의혹이 짙은 부인 김건희와 함께 제왕적 자리로 복귀시켜도 되는지, “이재명은 안 된다”는 접어놓고 따져볼 일이다.김순덕 칼럼니스트 dobal@donga.com}

    • 202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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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이승만 계엄에 “반란적 쿠데타”라며 인촌은 부통령 사임했다

    역시나 윤석열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이 정당했다고 믿고 있었다. 25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최후변론에서 그는 반국가세력과 간첩의 준동으로 나라가 위기여서 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1952년 5월 25일 0시 대한민국 최초의 ‘친위 쿠데타’로 역사에 나쁜 선례를 남긴 이승만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도 그랬다. 공비 소탕과 공산세력 봉쇄를 내세워 야당 의원들을 잡아들였다. 이승만이 친위 쿠데타를 했다고? 놀라는 독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현대사 교과서에선 보통 ‘부산정치파동’으로 소개하기 때문이다. 권력자가 자기 권력기반 강화를 목적으로 군을 동원해 헌정질서를 중단시키는 것이 바로 친위 쿠데타다. 안보전문가 박성진도 최근 책 ‘용산의 장군들’에서 1952년 이승만 발췌개헌과 1972년 박정희 유신을 친위 쿠데타로 꼽았다. 지난날 자유민주주의를 토대로 대한민국 수립에 앞장섰고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받아낼 이승만이 자신의 재선을 위해선 자유와 민주도 뒤엎었던 것이다. 그때 분연히 사표를 냄으로써 불의에 항거한 공직자가 있었다. 부통령 인촌 김성수(1891~1955)다. 이 사실을 나는 인촌 70주기를 기념해 최근 나온 책 ‘인촌탐사 김성수; 밝은 길을 찾아가다’를 보고 알았다. 이번 글은 이승만의 1952년 계엄에 대해 인촌이 왜 “국헌을 전복하고 주권을 찬탈한 반란적 쿠데타”라고 규정했는지를 찾아본 사실의 기록이다. ● 여소야대라고 계엄이 정당화 되나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1950~54) 총선이 실시됐다(제헌의원 임기는 2년). 210석 중 친이승만계 당선자는 겨우 57명. 민국당 등 야당계도 27명에 불과했고 무소속이 126명이었다. 제헌국회를 보이콧했던 남북 협상파 즉 좌파와 중도파가 압도적이라는 얘기다. 요새로 치면 여소야대 정국이었다. 국회는 대통령이 제출한 의안을 번번이 부결시켰다. 이승만은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맞섰다. 재임 12년(1948~60) 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45건의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그 중 25건이 2대 국회 때였다. 윤석열 역시 25건이다. 12·3 전까지 2년 7개월 만에 이승만을 따라잡았다(한덕수 6건, 최상목 7건 추가하면 더 많다). 25건 중 5건이 본인과 부인 관련이었다.최후변론에서 윤석열은 ‘거대야당’을 44번 언급하며 계엄을 야당 탓으로 돌렸다. 애들 고자질 같은 소리다. 70여 년 전 대한민국은 신생국가였고 6·25전쟁 중이었지만 그 정도에 흔들리진 않았다.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하면 국회는 재표결 하는 식으로 통과시켰다. 52년 계엄으로 친이승만계가 결집하면서 부결되는 법안이 등장했으나(6건) 법률로 확정한 것도 8건이나 됐다. 2대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의미다(정진욱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2024년 논문).● 간선제로는 대통령 재선 불가능 1951년 1월 국민방위군사건이 터졌다. 정부가 국민병으로 징집한 장정 수만 명이 보급물자를 제대로 못 받아 얼어 죽고 굶어죽은 최악의 군수비리사건이다. 2월엔 공비소탕작전을 벌이다 우리 군이 무고한 우리 국민 수백 명을 사살하는 거창양민학살사건이 일어났다. 국회가 발칵 뒤집혔다. 진상조사위원회는 5월 국회 본회의에서 군 간부들이 예산을 횡령했고 이 중 일부가 여당계에 정치자금으로 흘러갔다고 보고했다. 거창을 찾아간 국회조사단에 공비로 가장한 군이 총격을 가해 사건을 은폐하려는 일까지 드러났다.이승만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결심한 것도 이런 사정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국회는 연일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하는데 제헌헌법에 따른 국회 간선제로는 다음해 여름 대선에서 재선이 불안했다. 이승만은 2월 처음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언급했다(남시욱 2021년 ‘보수세력 연구’). 국민을 동원하는 데는 이승만을 따라갈 자가 없었다. 5월 초 국방장관 신성모를 문책 경질했으나 이시영 부통령이 더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사퇴했다. 후임으로 이승만은 여당 창당 작업 중인 이갑성을 원했다. 그러나 야당인 민국당이 강하게 민 부통령은 인촌이었다. 51년 5월 16일 인촌 김성수가 부통령에 당선됐다.● ‘런종섭’ 이전에 ‘런성모’ 있었다인촌은 일주일에 두 번씩 열리는 국무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이승만은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일이 드물어 인촌이 회의를 주재하는 일이 많았다. 6·25전쟁 1주년 다음날인 51년 6월 26일 어쩐 일인지 국무회의에 참석한 이승만이 “신성모 씨를 주일대표부 공사에 임명하려고 하는데 좋다고 생각하는 분은 손을 드시오” 하는 것이었다. 국무위원 아무도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 인촌은 국방장관을 하다 국민방위군사건과 거창사건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고 물러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을 외국에 사신으로 보내는 것은 합당치 않다며 반대했다. 그래도 이승만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보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드시오.” 역시 손드는 국무위원이 없었다. 이승만은 오후에 다시 논의하자며 일어났다. 인촌은 몸이 아파 오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승만은 이미 아그레망을 받아놓고 국무회의에 회부했던 거였다. 장면 총리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 표결에 붙인 결과는 부결이었다. 그럼에도 이승만은 신성모를 주일공사로 내보내고 말았다. 윤석열도 채 상병 사망 의혹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호주 대사로 서둘러 내보낸 바 있다. ‘런종섭’의 원조가 ‘런성모’인 꼴이다. 인촌은 부통령으로서 대통령과 더불어 일할 수 없다는 절망감을 느꼈다. 이승만의 독단에 분노한 인촌에게 안면마비 증상이 나타났다. 뇌혈전증으로 오른쪽 수족을 못 움직이는 증상까지 생겨났다(이진강·황호택 ‘인촌탐사 김성수’). ● “국회 해산” 백골단…“탄핵 반대” 시위대민심은 흉흉했다. 신성모를 싸고도는 데서 보듯 이승만은 아첨꾼을 총애하는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당파를 초월한 자유민주주의자를 자처했지만 뒤로는 사당(私黨)같은 여당을 만들었다. 이승만의 리더십과 행정능력에 회의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았다. 51년 말 이승만이 국회에 제출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은 52년 1월 표결에서 찬성 19표, 반대 143표로 처참히 부결됐다. 이승만은 “민중이 원한다면 교정될 수 있다”는 성명서로 대응했다. 백골단, 땃벌떼, 민중자결단 같은 극우적 폭력조직이 귀신같이 생겨나 “국회 해산” “의원 소환”을 외치며 관제데모를 벌여댔다. 지금 탄핵반대를 주장하며 윤석열 지킴이를 자처하는 ‘흐름’도 반공정신에서든, 나라걱정에서든, 아니면 가짜뉴스에 놀아난 부화뇌동이든, 뿌리 깊은 역사가 있는 셈이다.폭력과 공포 속에 재적 2/3인 123명의 의원들이 4월 내각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재선을 포기할 수 없는 이승만은 5월 14일 다시 직선제와 양원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공고했다. 이제 대화와 타협으로 정치를 복원하면서 지지표를 늘려가면 좋으련만, 대통령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임기 만료가 두 달 앞! 이승만은 24일 원외자유당 부당수인 이범석을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함과 동시에 다음날 0시를 기해 부산과 영남 호남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 “직선제 개헌하면 종신집권 개헌도 가능”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은 군 동원을 거부했다. 그러자 이승만은 충복인 원용덕 헌병사령관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해 예정된 각본대로 밀어붙였다. 26일 국회 전용버스로 출근하던 국회의원 50여 명을 버스째 견인해 헌병대에 끌어다놓더니 국제공산당조직에 연루됐다고 조작 발표를 서슴지 않았다. 국회는 28일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재석 139명 중 96표 찬성으로 가결했다. 이승만은 이것도 무시했다. (윤석열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계엄이 ‘없었던 것’이 되진 않는다.)병상에 있던 인촌은 29일 부통령직 사표를 제출했다. 재선을 위해 계엄까지 불사한 이승만 독재에 강력히 항의하는 수단으로 공직을 던진 것이다. 장장 5000자에 이르는 부통령 사임이유서는 국회 본회의에서 낭독됐다. 계엄군 검열로 인해 국내에선 한 줄도 보도되지 못했지만 외신을 통해 해외로 퍼졌다. ‘한 사람이 거의 황제에 가까운 권한을 쥐고 있는 대통령제’가 인촌이 지적한 대통령제의 폐해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다르지 않다. 인촌은 “우리는 이미 대통령제의 산고(酸苦)를 충분히 체험했다”며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직접선거라는 것은 곧 현 집권자의 재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재선되면 장차 국회는 그의 추종자 일색으로 구성될 것이며 그 후에 그는 그의 삼선, 사선을 가능하게 하도록 헌법을 자재로 고칠 수 있을 것이니 이처럼 하여 종신 대통령이나 세습 대통령이 출현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느냐”고 피를 토하듯 밝혔다. 54년 이승만의 삼선·사선을 위한 사사오입 개헌, 72년 박정희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 개헌까지 정확히 내다본 것이다. ● “반란적 쿠데타가 아니고 무엇이냐”인촌은 대통령 직선제를 압도적 다수로 부결시킨 국회를 “의회독재”라며 험구한 이승만에 대해 ‘민의와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건전한 이성을 말살하고 절대권력을 장악하려는 전형적 독재주의 노선을 걷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때까지도 아직 대한민국의 최고 집정자가 그래도 완전히 사직(社稷)을 파멸하려는 반역 행동에까지 나오리라고는 차마 예기하지 못하였다”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돌연 비상계엄의 조건이 하등 구비되어 있지 아니한 임시수도 부산에 불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소위 국제공산당과 관련이 있다는 허무맹랑한 누명을 날조하여 계엄 하에서도 체포할 수 없는 50여 명의 국회의원을 체포 감금하는 폭거를 감행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국헌을 전복하고 주권을 찬탈하는 반란적 쿠데타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73년 후 윤석열은 국회 봉쇄와 국회의원 체포 여부에 대해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2·3 계엄의 밤은 온 국민이 지켜봤다. 체포자 명단 등에 대한 증언도 똑똑히 들었다. 그날 밤 시민들이 국회로 달려가지 않았다면, 우리 군이 자제하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이 서둘러 가결되지 못했다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 공산화보다 낫다…미국이 개입한 발췌개헌 인촌의 부통령 사임서는 미국까지 파문을 던졌다. 미 대사관과 유엔군도 분주히 대책을 논의했다. 사태를 파악한 트루먼 대통령은 6월 3일 “현 한국 정세는 나에게 큰 충격을 준 바 이것이 조속히 해결되지 않으면 중대 사태가 야기될 것”이라는 친서를 이승만에게 보냈다. 이승만은 2일 오전 국회로 날린 최후통첩(24시간 내 직선제 개헌안 통과시키지 않으면 국회 해산)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장택상 총리가 제안한 타협안이 대통령 직선제+국회 양원제라는 발췌개헌안이다. 미국은 과도한 혼란이 공산화를 가져올지 모른다며 이승만 집권연장을 용인하기로 했다(이완범 2007년 논문 ‘1950년대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의 관계에 관한 연구’). 계엄령 아래 국회가 개원됐다. 7월 4일 무장경관과 헌병이 국회의사당을 포위한 상태에서 표결이 실시됐다. 정족수 가 모자라 공산당에 연루됐다며 감금됐던 의원들까지 풀려나 기립표결 했다. 재적 166명 중 기권 3명 빼고 전원 찬성이었다.● 이승만 “인촌의 위대함 누구나 인정” 이승만은 휴전으로 나라가 또 분단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선 직선제 개헌을 통해 자신이 개선돼야 한다고 확신했다(김충남 2016년 ‘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현대사’). 그가 대통령이 된 덕분에 오늘날의 한미동맹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친위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인촌의 혜안대로 이승만은 종신집권도 가능케 하는 54년 사사오입 개헌도 감행할 수 있었다. 그러다 1960년 4·19혁명으로 물러난 불행한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그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1972년 두번 째 친위 쿠데타가 일어났고, 작년엔 세번 째 황당무계한 윤석열 친위 쿠데타가 터졌다. 인촌처럼 사표로 항거하는 고위공직자는 볼 수 없었다. (법무부 류혁 감찰관이 12월 4일 0시 계엄에 항의해 사직했으나 ‘일신상의 사유’라고 썼다.) 다시 또 우리 군이 우리 국민에게 총을 겨누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여기서 끝을 내야 한다. ※ 사족 : 1955년 2월 18일 인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승만은 상가로 조문을 왔다. 국민장을 치를 때는 대통령 조사(弔辭)를 수석 국무위원 변영태가 대독하게 했다. “중간에 불행히도 정치적 입장으로 길이 갈라지게 된 것이 김 공에게도 많은 섭섭함을 주게 되었다”면서도 “왜정 말기에 압박이 극심한 때에 이 분이 집안 재산을 털어서 교육사업을 시작했으며 일면으로는 신문(동아일보)을 내어서 일정(日政)에 반대하여 왔으니 이것만으로도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라고 애도를 표했다. 그래도 이승만은 큰 어른이었다.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 202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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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남편을 왕으로 만든 여자, ‘원경’과 김 여사

    드라마 ‘원경’이 지난주 막을 내렸다. 조선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가 주인공인데 tvN 홈페이지에 나온 태종 소개가 재미있다. “왕이 되는 과정에서 부인과 처가의 도움을 받았고 그로 인한 부채의식이 있다. 그러나 그것에 지배당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한 가문의 영광과 득세를 위해 왕이 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라는 거다. 드라마는 원경의 강인함과 뛰어난 정치 감각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정안군(태종)이 안으로 들어가니 부인이 곧 갑옷을 꺼내 입히고 단의(單衣)를 더하고 대의(大義)에 의거하여 권하여 군사를 움직이게 하였다’는 정종실록의 2차 왕자의 난 출정을 배우 차주영의 단호한 이마와 언어로 연출했다. 두렵다는 남편의 말에 “두려워하지 마세요. 오늘 밤 역사는 분명 우리 편입니다” 하고 용기를 주는 식이다. 거사 뒤 태종이 피 묻은 칼을 씻으며 “왕의 자질은 나보다 그대가 타고난 게 아니었나” 토로했을 정도다. ‘원경’을 도입부에 끌어들인 이유는 간단하다. 태종은 왕비의 정치 개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백성이 주인인 새로운 조선’을 위해서다. 오만방자한 왕비의 네 동생을 처단한 것은 역사에 기록돼 있다. “권세가 있다 하여 백성 위에 군림하면 아니 될 것”이라는 왕 자신의 말을 지킨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손바닥에 왕(王) 자 쓰고 나와 대통령 되는 과정에서 정치 감각 유별난 부인 김건희 여사와 처가의 도움을 받았고 그로 인한 부채의식이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윤 대통령이 왕비, 아니 대통령 부인의 국정 개입을 사실상 허용한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12·3 비상계엄 전날 김 여사가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에게 문자를 보낸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조태용은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기름 장어처럼 빠져나갔으나 대통령 부인은 공적 직위 없는 사인(私人)에 불과하다. 국정 개입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계엄 전날 정보기관 수장에게 문자를 보냈다니, 김 여사도 사전에 계엄을 알고 무슨 말을 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난해 김 여사 문자 논란이 터졌을 때, 국민의힘 대표로 나선 한동훈은 “사적 경로로 김 여사와 문자를 주고받으면 민주당에서 국정농단이라 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국회에선 김 여사에게 비화폰이 지급됐느냐는 질문에 “확인해드릴 수 없다”는 경호처 차장의 답변이 나왔다. 국무위원도 아닌 민간인 김 여사에게 비화폰이 지급됐다면 광범위한 국정 개입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정치브로커 명태균 수사에서 비롯된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 수사는 대통령 부부의 서슬 앞에 꽉 막힌 상태다. 계엄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잠시 잊혀서 그렇지, 김 여사의 국정 개입은 대통령 지지층도 돌아버릴 정도였다. 김 여사가 마포대교 위를 시찰하는 장면은 ‘원경’의 대사를 빌리면 “군왕의 모습”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황제 조사’는 물론이고 채 상병 관련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 등 김 여사가 개입된 국사로 인해 나라는 하루도 편치 않았다. 조선에선 성리학을 채택해 왕비의 정치 관여를 금했다. 대한민국은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한 민주공화국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부인의 조언을 국정농단이라고 한다면 국어사전을 다시 써야 한다”고 했으나 국민은 김 여사의 국정 개입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 중 하나가 비선의 국정농단이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사인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임의로 재위임해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했으며 대통령으로서의 공익실현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해 파면됐다. 윤 대통령이 아무리 죽고 못 사는 부인이라 해도 국민은 김 여사를 선출한 바 없다. 대통령이 김 여사에게 허락한 국정 개입은 국민이 용납 못 할 ‘권력의 사유화’요, 국민의 신임에 대한 배반이다. 계엄 실패 직후부터 윤 대통령에게는 ‘김건희 특검’을 막기 위해 계엄까지 한 남자라는 소리가 따라다닌다. 그는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대통령의 통치행위”라며 사법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입헌군주제에선 제왕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 “탄핵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은 대통령 탄핵이 기각될 경우 윤 대통령만 복귀하는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자 김 여사도 돌아온다. 대통령들은 ‘전시나 사변에 준하는 상태’라며 계엄을 선포할 수도 있고, 대통령 부인들은 세상 겁나는 것 없이 국정농단을 자행할지 모른다.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된다”만 강조하다가 탄핵의 바다에서 익사할 텐가.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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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문재인은 왜 ‘아픈 손가락, 조국’을 자꾸 강조하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통령 후보 때인 2022년 2월 “저를 아픈 손가락으로 받아주시면 좋겠다”고 페이스북에 쓴 적이 있다. 친문(친문재인) 지지층을 향한 구애였다. “2017년 (대선) 경선, 지지율에 취해 과도하게 문재인 (당시) 후보님을 비판했다”며 “정치적으로 가장 아픈 부분은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사랑하는 분들의 마음을 온전히 안지 못한 것”이라고 반성했다. 대선이 코앞인데도 ‘집토끼’ 분열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었다. “제게 여러분이 아픈 손가락이듯 여러분도 저를 아픈 손가락으로 받아주시면 좋겠다”고 이재명은 애타게 호소했었다.결과는 대선 패배였다. 당권은 장악했다. 그 뒤 이재명이 친문세력까지 아픈 손가락으로 받아들였는지는, 모두가 안다. 이제는 잊고 싶을 듯한 그 아픈 손가락 소리가 뜻밖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 입에서 튀어나왔다. 10일자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문재인은 공식 인터뷰를 마친 다음 자연스러운 대화 과정에서 이재명 아닌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를 “가장 아픈 손가락”이라며 “한없이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했다. ● 조국 장관 임명은 정권 몰락의 시발점인데전후 맥락은 이렇다. 문재인은 대통령 재임 중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계엄과 탄핵사태가 초래돼 국민께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석열이 자신을 사심 없이 총장으로 추천해준 조국에 대해 앞으로 행해질 검찰개혁에 대한 보복으로 수사해 조국 가족까지 풍비박산 났다는 거다. 개인적 안쓰러움은 이해할 수 있다. 2019년 12월 31일 조국이 11개 혐의로 기소된 다음 2020년 신년기자회견에서 문재인은 조국에 “마음의 빚을 졌다”고 했다. 2022년 초 퇴임 직전 대담에서도 그는 “마음의 빚이 있다고 해서 논란이 됐는데 지금도 변함이 없느냐”는 물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없을 수는 없다”고 했다. 잘못한 게 있어 벌을 받는 것이 맞는다 해도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돼 그런 상황에 이르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공적으로 보면, 조국 장관 임명은 정권 몰락의 시발점이었다. 반칙과 특권으로 그득한 조국의 추한 민낯, 우리 편의 비리는 죄(罪)도 아니라는 ‘이른바 진보’ ‘좌파 이권 네트워크’의 위선이 드러나면서 문 정권의 도덕성과 정당성은 사정없이 추락했다. 조국을 수사한 검찰총장 윤석열은 법치! 그리고 공정과 상식을 내걸고(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야당 대선 후보로 나서 승리할 수 있었다. 문재인이 정상적 전임 대통령이라면 조국을 책망해야 마땅하다. 그래서 궁금한 것이다. 대체 왜 문재인은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조국에 대해 짠한 감정을 중인환시리에 강조하는 것인가. ● 조국 수사가 검찰개혁 보복이라고? 한겨레 인터뷰에 단초가 있다. 그대로 인용한다. ― 윤석열 검찰총장이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길로 가고 있구나, 기대가 어긋났구나 하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시게 됐습니까?“조국 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 조국 후보자 일가에 대한 수사는 명백히 조국 수석이 주도했던 검찰개혁 또 앞으로 법무부 장관이 된다면 더 강도 높게 행해질 검찰개혁에 대한 보복이고 발목잡기였거든요. 그때 이제 처음 안 거죠.”마치 문재인은 윤석열의 조국 수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투다. 과연 그럴까. 2024년 3월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이 출간한 저서 ‘위기의 대통령’을 보면, 믿기 어렵다. ● 문재인은 조국 수사 사실상 승인했었다이 책에 따르면, 2019년 9월 6일 금요일 오후 문재인은 청와대에서 윤석열과 독대해 만찬을 함께 했다. 이미 조국 딸의 입시 특혜, 사모펀드 의혹 등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었고 윤석열은 수사에 착수한 상태였다. 함성득은 꼼꼼한 ‘취재’를 통해 대통령과 윤석열의 대화를 마치 영화처럼 묘사했다(물론 이 책은 맞느냐? 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고소고발의 대가인 대통령실을 비롯해 입때껏 어느 쪽에서도 고소고발 당한 바 없다). 윤석열의 설명을 다 들은 대통령은 “그럼 조국 수석이 위선자입니까?”라고 물었고 윤석열은 “저의 상식으로는 조국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또한 윤석열은 “조국의 부인 정경심을 기소하겠다”고 보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고 윤석열은 “법리상 그렇게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 대화가 품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대화의 행간을 제대로 읽으면 당시 법조인 출신 대통령의 의중이 보인다. 검찰총장은 조국을 이해하지 못하겠고 부인 정경심을 기소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에 대한 이해를 구하지 않았고 정경심에 대한 기소를 막지도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질문에 대한 윤석열의 대답을 묵시적으로 용인했다. 윤석열의 의사를 존중했고 사실상 승인한 것이다…(중략)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단독 만남이었다.(162~163쪽).대통령과 검찰총장의 독대, 더구나 조국의 거취를 둘러싼 독대는 극비사항이었다. 그럼에도 임명장에 잉크도 안 마른 윤석열이 감히 대통령 독대를 요구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물론 검찰도, 청와대도 부인했지만 엉뚱하게도 김건희와 최재영의 카톡이 노출되면서 독대가 확인됐다. ● 조국을 구하려 친문이 뛰었다기이한 것은 문재인의 이중성이다. ‘위기의 대통령’에 따르면 문재인은 조국 수사를 묵인했고 정경심 기소 역시 승인했다. 윤석열과 독대 후엔 긴급 참모 회의를 거쳐 조국에게 자진 사퇴를 통보까지 했다. 사실 조국은 부담스러운 존재라 할 수 있다. 2년 넘게 민정수석을 하며 조국은 문재인 딸과 사위문제 등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사흘 만에 법무부 장관에 임명할 수밖에 없었다. 친문세력이 미친 듯 구명운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어쩌면 문재인은 친문 집단지도체제 위에 올라탄 바지사장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문 실세는 이해찬과 조국이었다. 조국은 친문의 청탁을 받아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까지 무마시켜 준 바 있다. 이건 내 주장이 아니라 검찰 공소장에 적시된 혐의다. 조국의 덕을 본 친문 이권 네크워크가 발 벗고 뛰어 대통령의 장관 사퇴 지시를 뒤엎은 거다(감찰 무마 혐의는 최종심에서 유죄가 인정됐다). 장관 임명 뒤 나라는 두 쪽이 났다. 한쪽에선 장관 사퇴 시위로, 반대쪽에선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 시위로 문재인 지지율은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결국 조국은 장관에서 물러났고, 11개 혐의로 기소됐다. 진중권은 ‘좌파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책에서 “조국 사태로 진보는 파국을 맞았다”고 선언했다. 그런데도 2020년 문재인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국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다. 한없이 착한 것인지, 진짜 빚을 진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때문이다. ● 조국이 입을 열면, 문재인이 위험하다대통령 재임 중이던 2018년 문재인은 울산시장 선거에 30년 절친이자 민주당 후보였던 송철호를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를 조직적으로 개입시키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윤석열 검찰은 2020년 1월 송철호 백원우 민정비서관 등 13명을 기소하면서도 민정수석 조국, 비서실장 임종석은 기소하지 않았다. 증거가 충분하니 기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총선이 코앞이었다. 윤석열은 조국을 기소하면 야당에서 대통령 조사도 요구할 것이고, 그럼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기소를 미뤘다. 대통령 지시가 밝혀질 경우 탄핵까지 갈 수 있는 중대 사안이었다. 송철호, 백원우 등 주요인물은 1심에서 유죄가 나왔다. 210여 쪽 분량의 판결문에선 문재인이 14차례나 언급됐다. 그런데 4일 2심에선 무죄로 뒤집히고 말았다. 재판도 유독 질질 끌었는데 판결문도 특이하다. “공소사실이 유죄라는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증거가 불충분해 무죄라는 거다. 서울중앙지검은 조국을 재수사하고 있다. 잊을만하면 문재인이 조국에 대한 애정을 표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조국이 입을 열면, 문재인이 위험해지는 것이다. ● 이재명을 어찌 믿나…조국아 조국아 민주당 일각에선 왜 이제서야, 그러니까 윤석열 대통령 파면이 코앞인 지금에야 왜 윤 정권 탄생 책임을 사과하느냐고 문재인을 비난한다. 문재인으로선 숨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다. 검찰의 미친 칼춤이 퇴임 대통령한테 날아들면 어쩔 것인가. 하지만 윤석열은 자신을 검찰총장에 발탁해준 대통령에게 인간적 의리를 지키고 싶어했다는 게 함성득의 전언이다(그런데 문득 이것도 거짓말이면 어쩌지 싶다. 요즘 헌법재판소 탄핵 변론을 보니 윤석열 본인은 참말과 거짓말을 구분 못하고 살아온 사람 같다). 친문 재건이 시급한 문재인으로선 이재명에게 손을 내밀 필요가 있다. “지금 민주당엔 이재명 대표의 경쟁자가 없다”는 말도 그래서 했을 것이다. 하지만 친문을 아픈 손가락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놓고 ‘비명횡사’시켰던 이재명이다. 신뢰자본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그럴수록 확장해야 한다”는 말도 눈물을 머금고 했을지 모른다(대장동 수사도 알고 보면 윤 정권 아닌 문 정권 때 시작한 것이었다). 조기 대선이 열리고 만에 하나 이재명 대통령이 탄생할 경우, 조국을 사면 복권해줄 사람은 이재명밖에 없다. 나이로 보나, 미모로 보나, 국민 건망증으로 보나, 조국은 아직 짱짱한 PK(부산경남)의 정치자산이고 문재인의 후계자이며 입도 무거운 알리바이다. 그래서 문재인은 “조국이 내겐 아픈 손가락”이라고 동네방네 외치는 것이다. * 사족 … 앞으로 검찰이 어디로 줄 설 것인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조국을 재수사 중인 서울지검을 비롯해 명태균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창원지검 등이 살아있는 권력, 죽은 듯하지만 살아날 권력 할 것 없이 철저히 수사한다면 ‘정치검찰’의 수치를 벗고 국민의 검찰로 부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법원에서 울산시장 사건이 뒤집힐 지도 기대해 보시길.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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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제왕적 대표’ 이재명은 누가 견제하나

    대통령 복(福) 지지리도 없는 우리 국민이다. 지난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South Korea’s possible next leader)로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을 꼽았다.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이재명은 역대급 비호감 경쟁자였다. 3년도 안 돼 윤석열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이 정치적 자살을 했으면, 이재명은 당장이라도 대통령을 맡을 수 있을 만큼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했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우클릭하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이재명 자신의 ‘사법 리스크’ 해소가 더 시급하다. 주렁주렁 걸려있는 재판에서 무죄를 확신한다면, 조속한 판결을 요청해 유권자들의 꺼림칙함을 풀어주길 바랐다.● 2심 재판 늦추려 지연 꼼수까지 헛된 기대였다. 이재명은 윤석열 못지않은 수준임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윤석열은 4일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서 “실제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며 12·3 비상계엄을 없었던 일로 돌리려 들었다. ‘계엄 실패’가 범죄가 아니라면, 살인 미수 역시 범죄가 아니던가? 이재명도 같은 날 자신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2심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이미 헌재가 4년 전 합헌 결정을 내린 허위사실 공표죄 처벌 규정에 대해서다. 막강 대선주자가 위헌 신청하면, 허위 사실 공표 역시 범죄가 아니라던가?법원이 이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헌재가 결정을 내릴 때까지 2심 재판은 중단된다. 최대한 늦출 수 있는 데까지 재판을 늦춰서는, 2심 판결 나오기 전에 대선을 치러 대통령이 되고야 말겠다는 구차한 꼼수가 너무나 노골적이다. 어째 우리나라에선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도 이토록 좀스럽고 치사한가.● “‘행위’는 후보자의 자질·성품·능력 관련” 문제의 사건은 이재명이 작년 11월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내용도 추하고 비극적이다. 이재명은 지난 대선 때 대장동 사업 실무를 맡은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1처장에 대해 “하위 직원이라 성남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 백현동 부지 개발과 관련해선 “국토교통부 협박 때문에 용도를 상향 조정했다”라는 둥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한성진 부장판사(53·사법연수원 30기)는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그럼에도 유죄가 나오자 민주당에선 “사법살인” “미친 정권의 미친 판결” 심지어 “서울법대 나온 판사 맞느냐”는 비난을 쏟아냈다. 이재명은 1심 판결 뒤 소송 통지서를 안 받으려 요리조리 피하고, 변호인 선임도 늦추고, 추가 증인까지 신청하면서 재판을 두 달 가까이 끌었다. 그러더니 심지어 합헌 결정이 난 조항을 또 위헌 신청한 거다. 이재명이 위헌적이라고 주장하는 공직선거법 250조 1항은 당선을 목적으로 연설·방송·신문 등 방법으로 출생지·가족관계·신분·행위 등에 대한 허위 사실을 공표하면 처벌한다고 돼 있다. 그는 5일 재판에서 “‘행위’ 부분은 (범위가) 지나치게 불명확하고 포괄적”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밝혔다. 그렇지 않다. 2021년 헌재가 재판관 전원 일치 합헌으로 판단한 대목은 기록해 둘만 하다. “법 조항의 ‘행위’는 후보자의 자질·성품·능력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의 여지는 적다.”● 다수 국민은 이재명의 자질과 성품 걱정 다수 국민이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이재명의 자질과 성품이다. ‘한국의 트럼프’를 자부하는 이재명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처럼 허위 사실 발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재명의 성품과 관련된 행위로 인해 귀한 목숨을 버린 사람이 한둘이 아님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다. 이재명을 소개한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물론 한미일 3국 협력 지속에 대해 ‘이의가 없다’고 밝히는 등 외교적 급변침을 주로 다뤘지만(2022년 10월 한미일 동해 합동 훈련을 ‘극단적 친일 행위’라고 한 것을 뒤집는 태도다) “그의 인생 이야기는 디킨스 소설에 등장하는 꿈의 소재”라고 적은 것이다. 가난한 소년공에서 어렵게 공부해 인권변호사이자 노동운동가가 되고 정계에 진출해서 뻔뻔스럽지만 일은 효과적으로 해내는 경영자(an effective, if slippery, operator)라는 평판을 얻었다고 잡지는 전했다. 여기서 ‘slippery’를 어떻게 번역할지 좀 고민했다. ‘효율적이지만 계산적인 정치인’이라고 번역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디킨스까지 인용됐으면 인간의 어둡고 내밀한 본성이 표현돼야 한다고 봐서 ‘뻔뻔’이라고 했다(아니면 교활?). ● 어렵게 살아온 서사가 이재명 뿐인가 이재명의 성공담이 디킨스 소설처럼 사람을 끄는 건 사실이다. 소년공 출신의 고난 극복 스토리야 왜 없겠나. 하지만 그걸 10년이나 일기로 쓰고 출판까지 해서 알리는 건 흔치 않다. 1960년대 눈물 나는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 이후 처음 아닌가 싶다. 이재명은 김혜경씨에게 청혼할 때도 그 일기장들을 몽땅 주면서 “읽어보고 같이 살아줄만 하면 결혼해 달라”고 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고아소년 올리버는 불우한 아이들을 범죄에 이용하는 잔혹한 환경에서도 착하고 굳세게 역경을 극복하고 해피 엔딩을 맞는다. 그러나 어릴 적 겪은 정신적 육체적 폭력이 뒤틀린 흉터로 남아 개인과 사회,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점에서 단순한 권선징악 동화랄 수 없다. ‘위대한 유산’에서 디킨스는 아무리 돈과 지위로 신분상승을 한대도 도덕성을 갖추지 못하면 결코 ‘신사’가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고아소년 핍의 성장 스토리를 통해 드러냈다. 부조리한 사회, 배금주의와 양극화 문제는 소설의 배경인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포함해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도 적지 않다. 사회개혁은 그래서 중요하다. 하지만 도덕적 가치를 우습게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들 ‘윤석열 사태’ 비슷한 꼴이 또 나지 않으란 법이 없다. ● 도덕성이 대통령 기준은 아니라 해도 이재명은 “어릴 때 시장에서 주워 온 과일을 먹었던 그 아픈 기억 때문에 어린이집 과일공급 사업 시작했다”고 했다. 2022년 대선 토론에서 그런 말까지 한 사람이 경지지사 시절 법카(법인카드) 등 경기도 예산으로 과일을 2800만원 어치나 사다먹은 건 도덕성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심지어 공무원을 공노비처럼 부리며 배달심부름까지 시켰다). 60여년 전 어렵게 자란 사람이 어디 이재명 뿐이랴. 그럼에도 그는 어릴 적 정신적 육체적 폭력을 겪었다는 이유로 뒤틀린 흉터를 어쩌지 못하고 잔인하게 권력을 행사하는 형국이다(과거 이재명은 “권력행사는 잔인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민주당을 동원해 자신이 연루된 불법 대북 송금 수사, 대장동 수사 검사 등을 무더기 탄핵했고, 민주당은 이재명의 선거법 1심 유죄 선고를 내린 판사까지 탄핵하겠다고 겁박했다(그렇다고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용납될 수 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야당 대표인데도 이럴진대 만일 대통령이 된다면 얼마나 더 국가를 사유화할지, 나는 무섭다. 안다. 도덕성만이 정치인의 기준일 순 없다는 것을. 하지만 자질과 성품을 무시하고 대통령 잘못 뽑은 댓가를 우리는 지금 톡톡히 겪고 있다. 이재명의 능력이 과연 검증됐는지도 의문이다. 정권 교체에 급급해 같은 잘못을 또 저질러선 안 된다는 소리다. ● 누가 이재명을 제어할 것인가마침 대장동 개발업자들에게서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을 받았다는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6일 2심에서도 징역 5년의 실형 선고를 받았다. 정치자금이 오간 때는 이재명의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 출마 선언 직전이었고, 김용은 이재명 캠프의 총괄부본부장이었다. 6억원의 정치자금을 과연 ‘이재명의 분신’ 김용이 혼자 꿀꺽 했을까. 그런데도 대장동 관련 이재명 1심 재판은 세월아, 네월아 진행 중이다. ‘제왕적 야당 총재’ 이재명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도 없다. 그의 도덕성과 범죄성을 포함해 대선 출마자격을 가려줄 데는 지금으로선 사법부뿐이다. 5일 선거법 관련 2심 재판부는 26일 변론 종결 방침을 재확인하긴 했다. 그래도 불안하다. 이제라도 이재명이 개심해 도덕적 가치를 찾았으면 좋겠지만, 재판부에 기대는 게 빠를 듯하다. 2심 법원은 이재명의 위헌심판 신청을 기각해 재판 지연 꼼수를 막아주기 바란다. 그리고 헌법과 양심에 따라 조속히 판결을 내리는 것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다.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 2025-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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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여사 위에 도사’의 나라… 새해 복 많이 받는 방법

    을사년(乙巳年) 운세 혹시 보셨는지요? 저는 안 봐요. 사주팔자는 겁나서 안 보고 살았어요(나쁘게 나오면 어떡해요). 하지만 신문 ‘오늘의 운세’를 꼭 챙겨보는 독자가 적지 않다는 건 잘 안답니다. 어쩌다 빠지면 항의가 빗발쳤거든요. 10년 전인가, 논설실장 되고 얼마 안 됐을 때 한 극단대표님이 저녁 초대를 하셨어요. 선배와 함께 댁에 가니까 기(氣)로 사람본다는 분이 와계셨는데 저를 보더니 “당신은 그냥 동아일보 사람”이라지 뭐예요. 하하. 더 궁금한 것도, 바랄 것도 없어서 또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왜 제 얘기부터 했는지 알아채셨죠? 실은 윤석열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이 후보 때부터 손바닥에 왕(王)자 쓰고 나오더니, 부부가 영적 대화 나누다 못해 부인은 타칭 ‘지리산 도사’에게 충성을 외친 사실이 비상계엄 직전 드러났다고 쓸 작정이었어요. 그런데 설 연휴 전 책방에서 책을 잔뜩 사서 나오려는데 또 한 권이 눈에 확 띄지 뭐예요. 강신무가 쓴 ‘중년의 샤머니즘’이라는 책이었어요. ● 영적으로 연결된 윤석열 대통령 부부윤석열 부부는 영적으로 연결된 관계라고 했다. 2021년 녹취된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의 7시간 통화에 따르면, 진짜 스님은 아니지만 도를 닦는 ‘무정 스님’이 김건희에게 “너는 석열이하고 맞는다”라며 소개해서 만났단다. “우리 남편도 약간 그런 영적인 끼가 있거든요. 그래서 저랑 연결이 된 것”이라고 했는데 “너희들은 완전 반대다. 김건희가 남자고 석열이는 완전 여자다”라는 건 딱 들어맞았다.무정은 윤석열이 검사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녹취에 따르면 “(무정) 스님이 우리 남편 20대 때 만났다. 계속 사법고시 떨어져서 한국은행 취직하려고 하니까 너는 3년 더해야 한다고 했는데 붙더라”고 했다. 그런 무정과는 중간에 의절했다. “왜냐면 우리 남편 앞에서 갑자기 문재인은 망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남편 망한다는 말밖에 더 돼요? 열 받아서 다신 보지 말자고.”(이명수 ‘세븐 스캔들’. 사실 문재인이 망하는 바람에 윤석열이 흥한 게 아닌가?) 김건희는 자신의 ‘영빨’을 자신하고 있었다. “세간에서 내가 무당을 많이 만난다고 하는데 전혀 아니에요. 저는 무당 싫어해요. 웬만한 무당이 저 못 봐요. 제가 더 잘 봐요.” 그러면서 이명수의 손금과 관상을 봐줄 테니 사진을 찍어 보내 달라고 했다. “나 공부 많이 했어요. 근데 이건 공부로 해결될 문제는 아냐. 약간 타고나야 하는 거 알잖아요?”(그런데 왜 이명수한테 속아넘어갔을까)● 이태원 해결책, 명태균에게 물은 김건희 나는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고,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세상도 존재한다고 본다. 종교를 갖든 안 갖든, 무속을 믿든 안 믿든 개인의 자유이고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통령 부인에 불과한 김건희가 고도의 전문성과 능력이 필요한 정책적 문제까지 ‘예지력’ 있다는 명태균에게 자문한 건 국정농단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국회‘요원’, 그리고 장관과 고위공직자들은 몽땅 부지깽이란 말인가.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한 달 뒤 국회가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계획서를 통과시키자 김건희는 명태균에게 텔레그램으로 물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이 상태에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의견주세요” “사태 파악은 이미 다 됐으니”. 명태균은 “국정조사 위원으로 의사조율과 전투력, 언론플레이 능한 의원들을 포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정점식, 배현진, 송언석”이라고 ‘나의 완벽한 비서’처럼 답했다. 실제로 그해 12월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송언석은 “(시신이) 해밀턴호텔 옆에 골목만 있었던 게 아니다. 현장에서 무려 300미터나 떨어진 곳에도 시신이 있었다고 한다”고 말해 ‘2차 가해’라는 비판까지 받았다. ● 남에게 척을 치면 운명이 꼬인다 올 초 ‘중년의 샤머니즘’을 내놓은 유명옥은 1965년 을사년 생이다. 1997년 만신 김금화로부터 신내림굿을 받아 강신무가 됐다. 호기심 많고 지적 탐구를 좋아해 2000년 독일 유학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다른 무당들이 그의 학마살(學魔煞)을 들면서 유학에 성공하면 자기들 손에 장을 지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두고 보시라. 당신들 신령님이 맞는지, 나의 신령님이 맞는지. 유명옥은 정말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우리가 웃자고 말하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운이 70%, 재주가 30%가 아니었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점복 행위를 통해 자신의 운명과 미리 안다고 해도(운칠),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기삼) 운명을 변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성이면 감천이다이라는 소리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운명을 바꾸는 요인으로 가장 내 가슴을 찌른 대목은 “척(慼)지지 말라”는 것이었다. ‘척’이란 타인이 나에게 서운한 마음이나 원한을 갖게 하는 거다. 척신이 들러붙으면 온갖 괴로움을 주고 인생을 순탄치 못하게 하며 인간관계가 꼬이게 된다고 했다. 대통령 부부도 가슴에 손을 얹어보면 알 것이다. 앰한 사람 쫓아내고, 무고하고, 돈을 가로채 척지지 않았는지. ● 사태 파악 못하는 샤머니즘 중독자들무당이란 고조선 이래 줄곧 공동체의 안녕과 치유, 영적인 조화와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유명옥은 적었다. 그러나 윤 정권에서 일부 무당(또는 법사, 도사)은 ‘영적인 능력’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다 구속되는 등 한국무속문화 망신 다 시키는 중이다. 김건희도 명태균도 절대 자기네가 무당이라고 하지 않았다. 무당보다 더 잘 본다고, 예지력이 있다고 했을 뿐이다. ‘중년의 샤머니즘’에 따르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무당들 대부분은 경계성 인격장애,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갖고 있다. 경계성 인격장애란 성장기에 부모에게 학대나 방임을 당한 경험이 있어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인간관계가 불안정하며, 감정기복이 심하다. 자기애성 인격장애는 성공욕이 엄청난 반면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타인에게 지극히 착취적이며 사기성까지 있다. 우리가 좀 아는 그들은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점복자들을 찾는다고도 ‘답정너’ 스타일이다. 샤머니즘 중독자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지도,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도 못한다. 흑백논리와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 원하는 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쉽게 격노하고 공격성을 보인다. 혼자선 극복 못하는 절망, 고독을 치유하려다 친절한 영적 사기꾼에게 홀딱 빠져 가스라이팅을 당하기 일쑤다. 유명옥은 “샤머니즘 중독자들은 정신과적 상담과 약물치료, 인지행동 치료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는 대통령 후보 부부의 심신 건강진단 공개가 필요할 판이다. ● 귀신도 빌면 돌아선다고는 했다우리가 무속의 부정적 측면만 연달아 목격해서 그렇지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다. 연세대 교육대 학장을 지낸 김인회는 한국인의 인간중심 논리, 반(反)권위주의, 평등주의적 성향이 무속문화에서 왔다고 했다(2023년 저서 ‘한국무속문화의 실상과 한국인의 교육철학’).귀신도 빌면 돌아선다고 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들었던 그 말이 나는 참 좋다. 두 손으로 싹싹, 정성을 다해 비는 것이 문제를 푸는 기본 방식이다. 그렇다고 무속문화만으로 이 글을 맺을 순 없다(빌기만 하고 문제해결 않고 돌아서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다). 무속 근처까지 안 가도, 요즘 ‘근본주의’라고 하는 전투적 신앙 또는 이데올로기까지 안 가도 새해 복 많이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나 나는 고민했다. ● “내가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황금율‘축의 시대’쓴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인류는 한번도 ‘축의 시대’(기원전 900년~기원전 200년) 통찰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했다. ‘축의 시대’란 중국에서 공자와 묵자, 노자가 활동했고 인도에서 ‘우파니샤드’와 고타마 싯다르타가 나왔고, 이스라엘에서 예언자가,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가 제자를 기르는 등 인류 정신에 자양분이 될 위대한 현자들이 탄생했던 때다. 그 책에서 찾아낸 ‘황금률’, 그들의 일치된 결론은 다음과 같다. “네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 참 쉽지 않은가. 점치러 돈 싸들고 어디 갈 것도 없다. 좀더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관대하게 행동하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했다. 내 운명을 바꾸진 못해도 친절한 태도쯤은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친절하게 새해 인사드린다. 독자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 202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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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언론이 초갑(超甲)? 사설만 봤어도 이 지경까진 안 됐다

    논설위원을 하다 정부로 간 사람한테 들은 소리다. 매일 나라 걱정을 하며 해결책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하는 일이 비슷하다는 거다. 물론 다른 점은 백가지도 넘겠지만 매일 무슨 사설을 쓸지 발제하고, 회의하고, 쓸 때마다 논설위원들은 직업병처럼 나라를 걱정한다. ‘윤석열 사태’를 겪으며 제일 억장 무너지는 일 중 하나가 윤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이 신문을 안 본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총선 전에도 여권 인사에게 “신문 보지 말고 민심(즉, 극우 유투브)을 들으라”고 했다더니 15일 공수처에 체포되기 직전에도 “요즘 레거시 미디어(전통적 신문·방송)는 너무 편향돼 있으니 유튜브에서 잘 정리된 정보를 보라”고 했단다. 그러고는 21일 헌법재판소에선 또 “국회와 언론이 대통령보다 훨씬 강한 ‘초갑’”이라고 했다. 앞뒤 안맞는 소리가 한두 번도 아니지만 참담하다. 이런 분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요즘 신문 안 보는 이가 적지 않다는 것, 안다(그것도 자유지만 나는 안 보는 분만 손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달라야 한다. 당선인 시절인 2022년 4월엔 윤석열도 신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민심을 가장 정확하게 읽는 언론 가까이에서 제언도, 쓴 소리도 잘 경청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끊임없이 공부하면서도 신문 꼼꼼히 보기로 유명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특히 사설에 관심이 많았다. 연설문을 쓰다 “몇 월 며칠자 OO일보 사설 좀 찾아달라”고 박지원 당시 비서실장에게 전화하곤 했을 정도다. ● 대통령의 총선 패인, 사설만 봐도 안다그래서 2024년 1월 1일부터 12·3 사태 전까지 동아일보 사설을 찾아봤다. 제목만 훑어봐도 가슴이 무너진다. 대통령이 그때그때 사설을 보고 손톱만큼이라도 반응했다면, 이 지경까진 안 왔을 게 분명했다. 그 중에서도 4월 총선 직전까지 대통령 관련 사설을 보면 왜 대패했는지 누구라도 알 수 있다.(1/23)(1/24)(1/31)(2/1)(3/11)(4/2)여당 참패 다음날 사설 제목은 ‘’였다. 다시 봐도 너무나 옳은 내용이라 혼자 보기 아까워 소개한다.민심은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 운영과 독선적인 ‘검사 리더십’을 준엄하게 꾸짖었다…(중략) 윤 대통령이 스스로 바뀐다면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 수 있다…(중략) 전면적인 국정과 인사 쇄신, 열린 소통으로 신뢰부터 되찾아야 한다. 야당의 협조를 얻는 데 필요하다면 준거국 내각이라도 꾸려야 한다.” ‘’(4/20)라는 아름다운 사설도 있다. 그러나 그러나다. 대학생 때까지 부친에게 고무호스로 맞았다는 그가 어디 달라졌던가. 사흘 뒤 실린 사설 제목은 눈물이 난다. ‘’.● 계엄으로 막은 김건희-명태균 게이트대통령 취임 전부터 우리 사설이 끊임없이 우려한 것이 ‘김건희 리스크’였다. 2021년 대선 과정부터 시작해(‘주가조작’ 권오수 구속…‘김건희 의혹’도 철저히 규명하라) 2022년과(취임 뒤에도 검경의 무딘 수사가 ‘김건희 특검’ 빌미 주는 것 아닌가) 2023년에도(김건희 특검법 통과…여당 “즉각 거부” 앞서 돌이켜봐야 할 것들) 경고했지만 윤석열은 영부인 보호에 쇠심줄이었다. 결국 2024년 곪아 터졌다. (1/23)(7/7)(10/5)곧이어 터져 나온 것이 명태균 게이트다. 시작은 ‘’(10/8) 사설이었다. ‘’(10/11) 사설은 지금 보면 예언적이다.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관련자인 명태균 씨 논란이 ‘게이트’ 수준으로 번지는 양상”이라며 “이러다 한낱 정치 브로커 파문에 나라가 뒤집어질 판”이라고 경고했다. ‘’(11/22)가 다 드러날까 겁났는지 윤석열은 마침내 비상계엄을 터뜨리고 말았다. ● ‘부정선거 계엄’은 지지층 결집용 핑계가 아닌가계엄의 불가피성으로 대통령은 부정선거를 역설한다. 그러나 우리 사설에서 부정선거가 언급된 건 2012년 ‘’(3/21) ‘’(5/3) 정도가 고작이다. 문재인 정권 시절 ‘소쿠리 투표’ 같은 선관위의 허술한 관리와 친여 편향성, 특혜 문제는 사설에서 수차 지적했다. 하지만 윤석열이 말하는 그런 부정선거는 음모론으로 떠돌았을 뿐이다. 2023년 ‘’(11/16) 사설에서도 “2020년 총선 당시 11개 지역구에서 경쟁 후보끼리 사전투표의 관내·관외 득표 비율이 유사한 현상이 있긴 했지만 수사와 소송을 통해 조직적인 개표 부정이 확인된 것은 없다”고 똑 부러지게 정리했다. “과도하게 의혹을 부추긴 쪽은 자제하고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선관위는 신뢰 회복에 차질 없어야 한다”고 못을 박기도 했다. 실제로 2024년 총선은 이렇게 진행됐다. 그래도 음모론자들은 절대 안 믿는다.그리하여 더럭 의심이 드는 것이다. ‘부정선거 계엄’이란 핑계가 아닌가? ‘김건희 특검’ 막으려 계엄했다고 알려지면 얼마나 X팔리겠느냐 말이다. 부정선거를 들먹인 덕분에 직전까지 떠들썩했던 김건희 국정개입-명태균 게이트까지 쏙 들어가고 말았다. 여기에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돈 벌던 극우 유튜버는 물론, 그동안 긴가민가하던 자칭 반공-반중 애국보수마저 지지자로 끌어들이게 됐다. 거의 신의 한수가 아닐 수 없다. ● 민주당 지지율 추락 이유를 모른다고? 우리 신문 사설이 대통령만 비판한 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에 대해서도 따박따박 썼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한 지금은 대통령 다 된 모습이다. 문득 정신을 차렸는지 그가 당 지도부에 대고 “여론조사에서 당 지지율이 이렇게 나오는 정확한 이유를 분석해 달라”고 했다는 기사가 동아일보 22일자에 났다. 참내. 이재명 역시 신문도 안 보는 게 분명하다. 18일자 우리 사설엔 정답이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제목:“(중략)보수층이 결집하는 사이 대통령의 망동을 막아낸 국회 권력으로서 압도적 지지를 얻었던 민주당은 불과 한 달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지난달 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이래 여당 지지율은 상승세로, 야당은 내림세로 나타났다. 그 추락을 가속화한 것은 일방적 독주와 독선적 오만이었다…(중략) 거기에 이재명 대표의 2심 재판을 늦추려던 모습은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쳤겠는가.”● 이재명도 제발 사설을 보시라작년 총선 승리 뒤 이재명은 제왕적 대통령 뺨치는 제왕적 총재체제로 당을 사유화했다. 우리 사설은 총선 다음날 ‘야, 절제된 입법권 행사로 수권 능력 보여줘야’(4/11) 촉구했지만 헛수고였다. (5/16)(6/1)(6/13)(7/2)(8/19)(9/24)참다못해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때렸다고 쓰고 싶진 않다. 어떤 이유로도 무장군인을 동원한 걸 용납할 순 없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고 야당이 지금의 민주당처럼 사사건건 발목잡기로 나선다면 어쩔 건지 묻고 싶다(어쩌면 그는 계엄 없이도 계엄 같은 공포정치를 할 수 있을 듯한 불길한 예감이 든다). ● 충신도 하기 힘든 소리, 사설에 있다어떤 측근도, 심지어 충신도 대통령에게 “NO” 하긴 어렵다고 한다. 격노와 버럭이 일상인 윤석열 앞에선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걸 두려움 없이 업(業)으로 하는 이들이 논설위원이고 그 결과가 신문 사설이다. 그날그날의 역사 중 가장 의미 있는 두세 가지 이슈에 대한 신문사 입장을 담은 역사물이기도 하다(바쁠 때는 사설만 봐도 흐름을 파악하고 사리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답니다^^). 대통령이 임기 절반을 맞았을 때 우리 사설은 ‘’(11/11)고 충정을 다해 호소했다. 그러나 ‘’(11/16)이 터졌고 ‘’(12/5)로 파국을 맞았다. 이재명도 괜히 당 지도부나 괴롭힐 게 아니라 이제라도 사설을 읽기 바란다. 그가 물었던 지지율 추락에 대해 우리 사설은 이렇게 끝맺고 있다. 남의 실책으로 얻는 공짜 이익만 좇는 정당에 국민을 안심시키는 정치를 기대할 수는 없다(중략)…민주당이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분열의 정치를 버리지 않고선 역사에 큰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 2025-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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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위조 민주주의’에 취했던 대통령 윤석열

    이 말은 정말 쓰고 싶지 않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2024년 세계대전망’에서 소개했던 ‘위조 민주주의(counterfeit democracy).’ 민주주의 쇠퇴가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를 굳히는 가운데 2024년엔 그 중에서도 선거조작으로 정권을 잡고 또 유지하는 위조 민주주의가 우려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2023년 말 예견했다. 뒤늦게 그 용어를 발견하고 나는 혼자 부르짖었다. 아니, 영국은 여론조사를 조작(위조)해 대통령까지 만든 ‘명태균 게이트’를 어찌 알고 위조 민주주의를 미리 주목했단 말인가. 위조 민주주의로 집권한 윤석열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이 15일 공수처에 체포되면서 선거조작, 즉 위조 민주주의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음을 주장하는 글을 남겼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더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 여론조작으로 흥한 장님 무사-앉은뱅이 주술사‘국민께 드리는 글’에서 그는 “우리나라 선거에서 부정선거의 증거는 너무나 많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선관위의 엉터리 시스템도 다 드러났다”고 했다. “혼자서는 엄두도 내기 힘들다. 기껏해야 금품 살포, 이권 거래, 여론 조작 등일 것”이라고 굳이 부연 설명한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여론 조작과 김영선 전 의원 공천 거래 등이 벌어진 명태균 게이트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은연중 변명하는 모양새다. 명태균의 여론 조작은 15일 또 드러났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을 앞둔 2021년 10월 5일 김건희는 명태균에게 “이러다 홍(홍준표 후보)한테 뺏기는 거 아닐까요ㅠ (윤석열 후보가) 야당 1후보는 반드시 되어야 합니다” 문자를 보냈더니 명태균은 “네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답했다. 이태원 참사 뒤에도 김건희가 나서 “어찌하면 좋을까요” “사태 파악은 다 됐으니” 하며 명태균의 조언까지 구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대선 전 7월 3일 명태균이 미공표 여론조사 자료를 보내며 “보안 유지 부탁드립니다” 문자를 보내자 김건희가 “넵 충성!”이라고 답한 데서 재차 확인됐다. 불법에 ‘충성’으로 화답한 것이다. ‘장님 무사’가 윤석열, ‘앉은뱅이 주술사’가 김건희라더니 그 꼭대기엔 ‘여론조작 도사’ 명태균이 올라앉았던 꼴이다. ● 중국에 항의 않고 왜 우리나라에 계엄선포?그럼에도 윤석열은 “투개표 부정과 여론조사 조작을 연결시키는 부정선거 시스템은, 이를 시도하고 추진하려는 정치세력의 국제적 연대와 협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고 썼다. ‘권위주의 독재 국가, 전체주의 국가’가 주변국 정치인 매수와 선거 개입 등의 정치전, 디지털 시스템을 공격하는 사이버전 등 하이브리드 전술을 벌이고 있는데 한국의 야당이 이들과 손잡고 총선에서 대승했고, 지금 입법독재로 국정을 마비시키는 비상사태를 만들고 있어 대통령으로서 비상계엄이 불가피했다는 주장이다. 나라 이름은 입 밖에 내지 않았어도 그가 중국이나 북한을 지목했다는 건 능히 짐작된다. 하이고. 윤석열은 대선 때 ‘1일 1실언’(지금 생각하니 그게 윤석열의 본질이었다)으로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민심을 상당수 까먹었다. 2024년 총선 때는 의료 대국민담화까지 내놓아 온 국민 열받게 만든 사실도 다 까먹은 게 분명하다.물론 중국이 세계를 상대로 통일전선공작, 직간접적 총선개입 및 조작 시도, 여론전·미디어전·인지전, 외교전, 경제전, 정치전 등 초한전(超限戰) 전법을 구사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통령 윤석열은 캐나다처럼 중국에 당당하게 항의하거나, 2023년 독일처럼 “중국이 독일을 조종하려는 시도를 막을 것”이라고 선언했어야 했다. 그것도 못하면서 중국도 1989년 톈안먼 사태 때 한번 선포하고 입때껏 안하는 비상계엄을, 윤석열은 방구석 여포처럼 왜 우리나라에 대고 선포했느냐 말이다.● 천안함 음모설 믿는 좌파와 뭐가 다른가여기서 선거조작이 맞다 아니다, 음모론이다 아니다를 논하지 않겠다. 백만 자를 쓴대도 설득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 작년 여름 윤석열이 임명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김용빈 사무총장이 윤석열의 서울법대 동기다. 오죽하면 9일 국회 출석한 김용빈이 우리 시스템 상 설령 부정선거가 있다 해도 사후 밝혀질 수밖에 없다고 구구히 설명하자 국회의장이 “대통령과 동기이고 친구인데 왜 진작 그렇게 설명하지 그랬느냐”고 한탄을 했겠나.다만 음모론도 정파에 따라 믿는 바가 다르다는 최근 연구결과만은 전해야겠다. ‘음모론 신뢰의 결정 요인’이라는 이병재, 조화순, 김범수 연세대 교수의 2024년 논문이다. 2021년 서베이 데이터를 분석했더니 좌파일수록 천안함 음모론을 믿고, 우파일수록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더라는 쨍한 내용이다.먼저 “천안함은 북한군 어뢰에 의해 피격된 것이 아니다”라는 ‘천안함 음모론’. 당연히 동의하지 않는 응답자(724명)가 동의(276명)보다 훨씬 많다. 동의하는 이들의 주관적 이념을 보니 진보 성향일수록 천안함 음모론을 믿는 경향이었다. 다음은 “2020년 21대 총선은 부정선거였다”라는 ‘부정선거 음모론’. 역시 동의하지 않는 응답자(788명)가 동의(212명)보다 훨씬 많다. 동의하는 이들의 이념을 보니, 하하 역시 보수 성향일수록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왜냐. 좌파는 친북적이고 우파는 그 반대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음모론은 죽지 않는다…음모론자 죽을 때까지이들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팟캐스트, SNS 링크 및 유튜브를 더 많이 본다는 거다(그러니까 제발 종이신문을 보시라는 것이어요ㅠㅠ). 당연히 보수 성향은 보수 쪽 컨텐츠를, 진보 성향은 진보 쪽 컨텐츠를 주로 본다. 그래서 신문 방송 안 보고 그저 극우 유튜브에만 골몰했던 윤석열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져 계엄 선포라는 천인공노할 짓을 자행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놈의 음모론은 불치병에 가깝다. 이성의 회복? 맹신자에겐 불가능하다.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사태에 대해 한국과 미국, 호주, 영국, 스웨덴 전문가들의 민군합동조사단이 그해 5월 “북한 어뢰 공격으로 인한 수중 폭발로 침몰했다”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아직도 27.6%가 안 믿는 상황이다. 미국 국무부가 2018년에도 ‘천안함 사태는 한국의 조작극’이라는 북한 주장을 일축했어도 못 믿는다. 어떤 증거를 들이대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은. 부정선거 음모론 역시 다르지 않다. 중국이나 북한이 패망하고 그쪽 최고지도자가 제 입으로 “선거조작 안했다”고 자백한대도, 음모론자들은 결코 안 믿을 것이다. 나중엔 우주의 기운이 자기네가 추종하는 정당만 패배시킨다고 믿을지 모른다. 좋게 말해 확신범, 쉽게 말하면 일종의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 국힘은 당명부터 바꾸라. ‘수구(꼴통)의힘’으로윤석열은 2022년 5월 대통령 취임사에서 “정치가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라고 연설했다.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는 반지성주의가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제 입으로 분명히 내뱉었다. 그가 한 입으로 두 말한 적이 한두번도 아니지만,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음모론이야말로 위험하다. 반이성주의와 함께, 그리고 내 편은 옳고 네 편은 틀렸다는 이분법과 함께 작동해 폭력과 테러를 불러올 수 있다. 서울법대를 나와 검찰총장까지 지낸 대통령이 음모론에 빠져 국회를 해산시킨다며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마침내 탄핵심판대에 올랐다는 점에서 윤석열은 세계역사에 더럽게 기록될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윤석열을 싸고도는 국민의힘 상당수 의원들과 일부 국민이다. ‘이재명은 더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 마시라. 그건 다음 문제이고, 당신들이 떠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제 국민 앞에 무장군인을 동원한 윤석열과 절연하지 못하겠거든, 더는 ‘국민’ 욕보이지말고 당명부터 바꾸기 바란다. ‘태극기의힘’이나 ‘기득권의힘’, 아니면 쨍쨍하게 아름다운 ‘해바라기당’도 좋다. 차라리 솔직하게 ‘수구(꼴통)의힘’은 어떤가.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 202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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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무장군인 동원한 대통령, 국민 앞에 다시 설 순 없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 시절, 윤석열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한 적이 있다. “왜냐. 맡겼기 때문이다. ‘국회는 잘 아는 너희가 하라’며 웬만한 거 다 넘겼다.” 전두환 옹호냐는 논란이 터지자 윤 대통령은 “잘한 건 잘한 것이고 쿠데타와 5·18은 잘못했다고 분명 얘기했다”고 해명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독재자 전두환에게 거꾸로 배웠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웬만한 것도 맡기지 않아 여당을, 선거를, 보수를 말아먹고 정치판은 극단으로 몰고 갔다. 군 미필 윤 대통령이 일으킨 12·3 친위 쿠데타는 ‘천년의 수치’를 남길 만큼 야만적이다. 전두환도 대통령 되고 난 뒤엔 감히 비상계엄을 때리지 못했다. 1981년 1월 24일 계엄을 해제하고 나서야 4일 뒤 방미해 한미 정상회담을 할 수 있었을 정도다. “총을 쏴서라도 국회 문을 부숴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윤 대통령의 발포 명령은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다.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의 공소장에 나온다. 전두환도 5·18 발포 명령 책임은 죽을 때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계엄군이 총을 안 쐈기에 망정이지, 사람이라도 죽었다면 천년만년 ‘살인마’ 소리 들을 뻔했다. 그럼에도 이 엄동설한 관저 앞에는 ‘계엄 찬성’ ‘탄핵 무효’를 외치는 군중이 있다. 윤 대통령이 계엄 발동 이유로 들었던 야당의 입법남용, 탄핵남발, 예산삭감, 선거부정을 열거하며 “나 같아도 계엄한다”고 주장한다. 2017년 초 박근혜 탄핵 사태 때도 그랬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계엄령이 답’이라고 그들은 소리쳤다. 반공정신에 불타는 애국동지들은 계엄과 군부독재가 ‘이재명의 민주당’보다 낫다고 믿는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민주국가에선 군부가 기본권을 제한하는 계엄이란 상상도 못한다. 우리와 대만에서만 군국주의 일본의 계엄법제가 남긴 악법을 북한, 중국과 대치한다는 이유로 1980년대까지 끌고 갔던 거다. 정작 일본엔 계엄령이 없다. 프랑스는 1958년 제5공화국 헌법에 계엄령 조항이 있지만 발동한 적 없다. 미국 연방헌법, 독일 기본법도 계엄 언급 없이 국가긴급권 등만 있을 뿐이다. 현재 미얀마와 브루나이 그리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빼곤 윤 대통령처럼 평상시 비상계엄 선포한 나라는 없다. 그래서 세계가 놀라 우리를 주시했고, 헌법에 따른 탄핵소추에 박수를 보냈던 거다.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 이유에서 ‘내란죄’ 철회를 놓고 말들이 많다. 대통령 측은 “내란죄가 전제돼야 탄핵도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탄핵을, 실패한 계엄을 없었던 일로 하고 싶은 것 같다. 동의 못 한다. 헌법에 따르면, 비상계엄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하는 경우여야 선포하게 돼 있다. 비상계엄에서도 정치 활동은 금지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은 평상시인데도 국회에 무장군인을 동원해 발포 명령까지 내렸다. 내란죄가 아니어도 이것만으로도 그는 다신 대통령으로 설 수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어떤 빌미도 잡히지 않기 위해 국회가 내란죄를 철회할 경우, 여야는 탄핵소추안을 다시 표결했으면 한다. 어떤 노예근성의 여당 의원이 계엄군을 동원해 국회를 막은 대통령한테 탄핵 반대표를 주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판단을 헌재에 맡길 수도 있다. 그렇다면 헌재는 ‘이재명의 민주당’ 재판 시간표에 맞춰 서둘러 끝내선 안 될 일이다. 내란죄 여부까지 시간이 걸려도 정확하게, 또박또박 양심에 따라, 국민만 바라보고 심판하기 바란다. 민주화 투사 김영삼 대통령은 5공 군부권위주의 민정당에 민주화세력을 이식함으로써 1993년 문민정부를 탄생시켰다. 취임 100일 만에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하며 다신 쿠데타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특별법을 통해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된다는 것을, 그리하여 작가 한강이 물었듯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특수통 검사 출신 대통령 윤석열은 무능한 ‘충암파’를 동원한 45년 만의 계엄으로 좀비 같은 민정당 씨앗을 살려냈다. 검찰의 상명하복 DNA로도 모자라 군부독재 DNA까지 더해 대한민국을 반세기나 후진시키고도 법적 정치적 책임을 지기는커녕, 벙커 같은 관저에서 방탄의원들-태극기부대-극우 유튜버로 만리장성을 쌓고는 장기농성으로 국제 망신을 시킬 태세다. 윤 대통령은 전두환보다 모르면서 모질고 모자랐다. 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챙겨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면서 “그럼 개헌이라도 해”라고 한 걸 ‘계엄’으로 알아들었다는 아재 개그까지 떠돈다. 차라리 그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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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최상목은 동아가 뽑은 ‘2024년을 빛낼 100인’이었다

    동아일보는 창간 90주년인 2010년부터 5년간 ‘10년 후 한국을 빛낼 100인’을 선정한 바 있다. 2024년이 가기 전 “여기 2014년 뽑힌 100인 중 한 명이 있어요!” 외치고 싶은 주인공을 찾았다. 그때는 영광이었으나 지금은 피하고 싶을 듯한, 고난의 성배를 받은 인물이다. 27일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직함을 갖게 된 최상목(61). 10년 전 얼굴 뽀얀 동안(童顔)이던 그는 당시 기획재정부 정책협력실장이었다. 추천 사유는 ‘실력과 평판, 청렴성 모두 우수함’. 이제 그 실력과 평판을 유감없이 발휘해 한국을 빛내야 할, 아니 구해야 할 때다. 윤석열의 터무니없는 비상계엄 도박 때문에, 한덕수의 무책임한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 때문에, 더구나 여객기 참사까지 터지는 바람에 최상목이, 한국경제가, 나라가 백척간두에 섰다. 2024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어깨에 대한민국의 명운이 달렸다. ▶‘10년뒤 한국을 빛낼 100인’ 5년째 선정… 그들을 만든 ‘물건’은(2014년)● 계엄 반대하며 박차고 나온 최상목최상목은 대통령 윤석열이 3일 밤 불법 비상계엄 선포 직전 소집된 국무회의에서 강하게 반대 의견을 밝히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던 올곧은 인물이다. 즉각 사의를 표하려 했으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만류했다. 나라에 경제 사령탑이 버티고 있어야 대외적으로도 투자심리가 안정되기 때문이다. 최상목은 곧바로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이 참여하는 긴급 심야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F4회의)를 여는 등 국내외 경제를 안정시키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그가 신속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건 과거 경험이 있어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최상목은 기재부 제1차관이었다. 아무래도 보고 배운 것이 적지 않았을 터다.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탄핵소추안이 27일 가결되자 최상목은 당장 국가안전보장회의(NSC)부터 열었다. 미국 정부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한국 정부와 함께 일할 준비가 돼 있다”고 즉각 밝혔다.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크고도 중요한 의미인지 아는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역대정부 최하위 경제성적에 텅 빈 나라 곳간앞길이 캄캄하긴 하다. 계엄과 탄핵사태 이전에도 윤 정부의 경제성장률은 역대 최하위였다. 지난해 경제성장률 1.4%. 집권 첫해 2.7%에서 거의 반 토막 났고 잠재성장률 2%대에도 못 미치는 처참한 수준이다. 올해 성장률이 IMF와 KDI 전망처럼 2.2%일 경우, 현 정부 집권 3년간 평균 경제성장률은 2.1%에 그치게 된다. 문재인 정부(3%)나 박근혜 정부(3.1%)의 첫 3년 평균 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지진아 정부다. 그런데도 윤 정부 임기 반환점인 지난달 기재부는 자화자찬 보도 자료나 내놨다. “물가 안정, 고용 확대, 수출 활성화를 통해 글로벌 복합 위기의 충격을 최소화했다”는 낯 뜨거운 내용이다.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에이스 관료로 소문났던 최상목이 왜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도 아부성 자료나 쏟아냈는지 이해가 안 된다. 경제수석을 지내고 경제부총리까지 됐으면 이미 ‘경제 대통령’이다. 윤석열에게 잘 보여 무슨 출세를 더 하려고? 윤석열 임기 첫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중 갈등 확대까지 대외 경제 여건이 악화된 건 사실이다. 윤석열의 건전재정 방침에 따라 과거처럼 재정을 퍼붓지 못한 점도 없지 않다. 가계부채·국가부채가 쌓여있고, 야당이 법안을 통과시켜주지 않아 애가 타기도 했을 터다(그렇다고 계엄이 정당화될 순 없다!). 부자감세로 세수가 부족해 국고는 텅 비었고, 이미 온갖 기금에서 돈을 갖다 쓴 탓에 재정을 투여할 여력도 없고 해외 신인도까지 추락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가 안 나오는 형국이다. ● 위공 박세일 “한국 미래가 여러분 어깨에 걸렸다” 2014년 최상목은 동아일보 ‘10년 후 한국을 빛낼 100인’ Q&A에서 “인생을 바꾼 순간이 있었나요? 만약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귀하의 인생을 바꿨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대학교 3학년이 될 무렵 법해석을 통한 사후구제적인 사법부의 역할보다는 사전적으로 법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행정부의 역할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되어 전공인 법학서적을 덮고 경제학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최상목이 속한 서울법대 82학번은 일명 ‘X파리’로 유명하다. 판검사의 용꿈에 부푼 그들 앞에 미국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패기 넘치는 교수가 나타나 말했다. “여러분은 사회에서 엄청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후진국에서 이제 막 벗어난 대한민국을 어떻게 발전시켜 다음 세대에 선진국을 물려줄 것이냐 하는 과제가 여러분 어깨에 달렸다. 판검사보다 대한민국 선진화를 위해 뛰는 공직자가 되어 사회에 보답하라. ” 2017년 1월 세상을 떠난 고 박세일 교수다. 당시 젊은 교수의 진정 어린 호소에 감동한 ‘X파리’들은 ‘법경제학회’를 만들었고, 상당수가 ‘사시’에서 ‘행시’로 진로를 바꿨다. 법대를 수석 졸업한 최상목이 위공(爲公) 박세일의 수제자 중 한 사람이다. “대한민국 미래가 여러분 어깨에 걸려 있다” “공직자가 일을 잘해야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다”는 위공의 가르침을 최상목은 잊지 않았을 것이다. ● 권한대행의 권한대행도 공직자…헌법재판관 임명하라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은 최상목의 첫마디가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천번만번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은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덧붙인 건 걱정스럽다. 만일 최상목이 한덕수처럼 헌법재판관 3명의 임명을 보류한다면, 국정 혼란은 계속될 게 분명하다. 2016년 탄핵사태를 돌아보면 안다. 태블릿 PC문제가 터지자 주가는 푹푹 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급등했다. 코스피 지수가 1963에서 곧바로 2000을 넘었고 헌법재판소가 박근혜를 파면한 다음날은 2100으로 뛰었다. 두달 뒤 대선까지 2200으로 올라갔다. 경제가 제일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해소됐기 때문이다. 권한대행의 권한대행도 공직자는 공직자다. 단 하루를 그 자리에 있더라도 공직자는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위공은 가르쳤을 것이다. 곧 위공 8주기가 돌아온다. 스승을 기억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 아닌 오늘 당장이 최상목 당신의 어깨에 걸려있음을 절감한다면, 최상목은 헌재 재판관 3명부터 하루 빨리 임명해야 한다. ● ‘질서 있는 탄핵’이 나라와 경제 살릴 것경제는 심리와 신뢰다. 계엄이 옳지 않다고 뛰쳐나왔던 최상목이면 ‘질서 있는 탄핵’이 불확실성 해소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것이다.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는 이 복잡한 상황에 재판관이라도 임명하면, 정치리스크로 인한 경제 리스크도 가라앉기 시작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상목처럼 서울법대 나오지 않은 다수 국민도 “총 쏴서 들어가서 (의원들) 끌어내라”고 했다는 윤석열, 입만 열면 거짓말로 온국민을 속여온 윤석열, 검찰총장 출신이면서 신군부 전두환보다 악랄하게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윤석열은 용납 못한다. 설령 온갖 법기술과 둔갑술로 헌재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그런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다시 모실 순 없는 일이다. 그래도 위공의 제자 최상목은 재판관도 임명 않음으로써 윤석열 편에 설 터인가. 그간 윤석열이 죽어도 안하던 ‘야당과의 협치’도 최상목은 해냈으면 한다. 윤석열이 알지도 못하면서 신주단지처럼 붙들고 있던 ‘건전재정 도그마’도 폐기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회적 약자를 돕고 내수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보수정부의 참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입으로만 자유와 시장경제를 외치던 윤석열 눈치 보느라 그 동안 감히 못했던 정책들, 법경제학회 시절 배웠던 위공의 가르침도 한껏 펼침으로써 최상목이 한국을 빛내고 또 구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 202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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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극단적 리더는 왜 실패하는가 ; 다시 보는 윤석열과 ‘처칠 팩터’

    2년 전 여름, 그러니까 현 정부 집권 초 윤석열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과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1874~1965)을 비교하는 ‘도발’을 두 번 썼다. 성질 급한 독자들은 제목만 보고 냅다 내려가 ‘비교할 걸 비교하라’고 악플을 달았던 글이다. 어떤 분들은 지금도 내가 윤비어천가(尹飛御天歌)를 썼다고 야단을 친다.내 글에 책임을 지기 위해 다시 들여다봤다. ‘윤석열의 처칠 스타일’을 찬찬히 읽은 분은 알아챘겠지만 괜히 처칠과 윤석열을 비교했던 게 아니다. 대선 후보 시절 윤석열 자신이 처칠을 제일 존경한다고 했다.▶[김순덕의 도발]윤석열의 처칠 스타일5월 첫 국회에선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에 대해 연설까지 했다.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는 다르지만 위기 때 진영을 넘어 손을 잡았던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윤석열은 아주 강조를 했다(그렇다면 왜 국회에 군대를 밀어넣었나요? 왜!). ● “검증 못해 몰랐던 그 점 때문에 대실패”칼럼에서 독자들이 눈여겨 봐줬으면 했던 대목은 ‘두 지도자의 가장 결정적인 공통점이 과히 호감 받지 못하면서, 평소라면 가능성이 없었는데도, 시대적 상황에 의해 리더가 된 최극단의 리더’라는 점이었다. 끝부분은 거의 예언적이라 해도 좋다. “꼼꼼한 검증과정을 건너뛰는 바람에 발견 못 했던 바로 그 점 때문에 크게 실패할 공산도 크다. 윤 대통령의 처칠 스타일이 재미있고, 또 겁나는 건 이 때문이다.”탄핵소추의 직접적 이유는 윤석열이 선포한 비상계엄 때문이다. 하지만 집권 내내 뇌관으로 작용했던 대통령 부인 ‘김건희 리스크’였다. 학력과 경력 부풀리기, 석·박사 논문 표절,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급기야 대선 직전 공개된 인터넷 매체와의 통화녹음에서 김건희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정권 잡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우리 남편은 바보”…‘윤석열 리스크’였다그때 우리가 주목해야 했던 건 김건희의 권력욕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놓쳤던 건, 그래서 우리가 검증하지 못했던 건 따로 있었다.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챙겨줘야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저 사람 완전 바보다.” 아내가 챙겨줘야만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윤석열 리스크’다! 실제로 집권 2년 반 동안 용산 대통령실엔 V1과 V2가 있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나중엔 김건희가 V제로라는 소리까지). 마침내 2024년 11월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김건희는 윤석열의 스마트폰을 보지만 윤석열은 김건희의 폰을 못 본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두 사람의 권력 관계가 그 정도였던 것이다.2022년 당시, 문재인 정권을 반드시 종식시키고 보수정권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다수 국민은 ‘윤석열 리스크’ 검증을 안 했던 게 사실이다. 아니 김건희 리스크는 몰라도 설마, 서울법대를 나온 검찰총장 출신 덩치 큰 대통령이, 아무리 애처가 아니라 애처증이 심하다 해도 결국 어부인 때문에 계엄령까지 선포했다 탄핵소추 당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 자기 잘못을 고치려 노력해 봤나‘처칠 팩터’란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가 2014년에 쓴 ‘처칠 팩터(The Churchill Factor)’란 책에서 따온 말이다. ‘처칠 팩터’ 책은 “성격이 운명이라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말에 나도 동의한다”는 서문으로 시작한다. “영국인의 국민성은 대체로 처칠의 성격과 비슷해서 유머러스하지만 때로 호전적이고, 무례하지만 전통을 고수하고, 한결같지만 감상적이고…음식과 술에 예민하다”고 했다. ‘그렇게 치면 윤 대통령도 조금은 비슷하지 않나 싶다. 무례하지만 전통적이고 한결같지만 감상적이기도 하다는 점 등은 한국 꼰대의 특징 아니던가’라고 나도 덧붙였다.존슨은 “처칠이 달성한 가장 크고 중요한 승리는 자기 자신을 이긴 것”이라고 했다. 어릴 적 말을 더듬었던 처칠은 이를 고치려고 자신이 존경하는(그러나 사랑은 받지 못한) 아버지의 연설을 통째로 암기하기까지 했다. 부친에게 대학생 때까지 고무호스로 체벌을 받았다는 윤석열은 잘못을 고치려고 노력해 봤는지 모르겠다. 과도한 음주? 입때까지 못 고쳐 ‘음주성 인지장애’ 소리를 듣는 것 아닌가. 듣기보다 말을 많이 하는 버릇은? 격노는? ● 위험 뚫고 성공한 리더, 고집부리다 망해 처칠이 위대한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소개했다. 그때 대통령 취임 한지 몇 달 안 된 윤석열이 위대한 지도가가 되면 참 좋겠지만 죽어도(아니 적어도) 실패한 지도자는 되지 말라며 이렇게 썼다. ▶[김순덕의 도발]윤 대통령과 ‘처칠 팩터’“리더십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최극단의 지도자는 위험 감수를 통해 성공했고, 그래서 지나친 낙관에 빠져 남들이 말려도 자신의 뜻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중략)특히 잃을 것이 많은 상황에선 조언자의 판단을 따르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실수를 인정하는 겸허함이 사태를 헤쳐 나가는 결단력과 짝을 이룰 때, 운 좋은 지도자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탄생한다는 거다.”정말 안타깝게도 윤 대통령은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위인이다. 위험 감수를 통해 대통령이 됐지만 바로 그런 성공 경험에 빠져 대다수 국무위원들이 반대했다는데도 비상계엄 선포를 강행해 이 지경이 되고 말았다. 내가 쓴 ‘처칠’만 기억하고 아부하는 글로만 아는 분들이 있어 다시 썼다. 작은 애프터서비스라고 여기고 봐주셨으면 좋겠다. 아무리 급해도 다음 대선에선 꼼꼼한 검증을 건너뛰어선 안 된다는 당부를 드리면서.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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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비겁한 尹-비열한 李, 국민은 또 속을 것인가

    국어사전은 ‘비겁하다’를 ‘비열하고 겁이 많다’로 풀이한다. 나라를 대표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위와 외모로 보아 결코 비겁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모습은 참 비겁해 보인다.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이 예정된 7일 오전 윤 대통령은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 “임기 문제 등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한다”는 담화로 여당 탄핵 투표 불참을 유도했다. 2차 탄핵 표결을 앞둔 12일 담화에선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 행위”라고 말을 뒤집더니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했다. 그래 놓고 공조수사본부가 대통령실과 한남동 관저에 보낸 출석요구서도, 헌법재판소가 보낸 탄핵소추 의결서도 윤 대통령 측은 아예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 평생 ‘표범이 사냥하듯’ 수사를 해왔으나 정작 자신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수사와 탄핵 재판을 받게 되니 겁이 나는 모양이다. 대선 전 공개된 녹취록에서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는 ‘내가 남자이고 남편이 여자’라고 했다. 김 여사는 대통령의 휴대전화를 열어보고 답장까지 하는데 대통령은 부인의 전화를 보자고도 못 할 정도면 말 다했다. 이렇게 겁이 많으니 검찰총장 시절 신임 검사 앞에선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정의롭게 법 집행을 해야 한다”고 훈화해 놓고 정작 ‘순진한 아내’의 주가조작 혐의 등은 싸고돌았던 거다. 1차 탄핵 표결 전날 정형식 헌법재판관의 처형인 박선영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에 임명한 것도 겁이 나서가 아닌가 싶다. 현행 ‘6인 체제’로 탄핵 심판이 진행될 경우, 한 명만 반대해도 탄핵은 기각된다. 공교롭게도 이번 탄핵 심판의 주심이 정형식이다. 그러니 보험이라는 뒷말이 나오고, 야당에선 뇌물이라고 주장하는 거다. 국민의힘에서 공석인 헌법재판관 3명을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대통령과 교감 아래 탄핵 심판을 늦추려는 꼼수로 보인다. 재판의 공정성과 헌법의 정당성을 위해서라도 헌재가 ‘9인 체제’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방해 공작을 멈춰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에 비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겁이 없다. 자서전 ‘이재명은 합니다’에서도 “나는 겁이 없다”고 썼다. 그래서 비겁하다고는 못 해도 비열하다고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형수 욕설, ‘난방 열사’로 알려진 여배우와의 염문설, 대선 패배 뒤 지지자들이 망연자실해 있을 때 홀로 잘살겠다고 방산 주식을 2억 원대나 사들인 것만 봐도 그렇다. 어린 시절 청소부였던 아버지가 썩은 과일을 주워 와 가족들에게 먹이곤 했다며 나이 들어 내 돈으로 신선한 과일을 사먹게 돼 후련했다고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에 쓰더니, 경기도지사 시절 도 예산으로 2791만 원어치나 공무원을 시켜 사다 먹은 것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줄줄이 걸려 있는 자기 재판은 한없이 지연시키면서 헌재를 향해 “윤 대통령 파면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라”고 압박하는 일이야말로 비열하기 짝이 없다. 선거법 항소심 소송기록접수통지서는 ‘이사 불명’ 등의 이유로 받지 않고 ‘불법 대북 송금’ 사건 재판부에 대해선 기피 신청까지 했다. 최대한 재판을 질질 끌어선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서둘러 대선을 치르려는 속셈을 모를 국민은 없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선거법 강행규정 6·3·3(1심 6개월, 항소심과 상고심은 각각 3개월 안에 종료)을 강조한 바 있다. 이재명의 경우 지난달 선거법 1심 징역 1년 판결이 나왔으니 내년 2월까지 2심, 5월까지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야 한다. 이보다 오래 끌면 사법부가 이재명과 민주당 편에 섰다는 오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헌재도 180일 안에 윤 대통령 탄핵에 대한 결론을 내야 한다. 일각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예를 들며 석 달 안에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쟁점이 간단하다고만 할 수도 없다.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성에 대해선 비교적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해도 내란죄에선 치열한 법리 논쟁이 나올 거라는 전문가들이 있다. 법원과 헌재가, 아니 윤 대통령과 이재명이 서로 재판 속도를 놓고 내로남불 경쟁을 할 판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에야말로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도, 이재명의 2심과 3심도 법대로, 원칙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때 모처럼 국회의 쓸모를 확인했듯, 지금은 사법부가 나라의 중심을 잡고 국민을 지켜줘야 할 때다. 그리하여 다음 조기 대선에선 비겁하거나 비열한 정치인들에 혹해 마음 주고 표도 주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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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 한동훈, ‘내란 수괴’ 탄핵에 정치생명 걸라

    두 번은 없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간동훈’ 이미지를 깰 기회는 이번뿐이다. 한때 깍듯이 모신 보스였든, 김건희 여사와 ‘함께 지금껏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어온 동지’였든, 사실상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과의 질긴 연을 끊고 홀로 설 때는 지금이 마지막이다.윤석열이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한 3일 밤, 한동훈은 정치지도자로서 믿음직했다. 국회로 달려가 “국민과 함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 비상계엄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다짐했고, 친윤 세력의 방해공작을 뚫고 결국 성공했다. 그 기상과 기개로 한동훈은 ‘탄핵 트라우마’ 속에 고뇌하는 국힘 의원들을 돌려 세워야 한다. 최소한 국힘의 탄핵 반대 당론을 깨고 의원 개개인의 양심에 투표를 맡기는 데 대표직을 걸기 바란다. 당 대표라는 ‘직’은 그런 데 걸라고 있는 것이다. 성공하면, 한동훈은 당을 내란 수괴에서 구해낸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다. 실패하면? 내란 수괴가 버티는 정당에서 무슨 정치를 한다는 건가.● 윤석열을 더는 믿을 수 없다한동훈이 탄핵에 앞장서야 할 이유는 첫째, 윤석열은 역시 못 믿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7일 오전 국회 탄핵 표결이 있기 전, 윤석열은 “저의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래놓고 국힘에서 10일 조기 퇴진안(내년 2~3월 퇴진, 4~5월 대선)을 마련하자 윤석열은 하야 의지가 없음을 드러냈다고 한다. 당장 탄핵 투표 가결만 막겠다고 또 한번 전 국민을 속인 꼴이다. 설령 윤석열은 약간의 뜻이 있다 해도 김건희가 반대하면 과연 내려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둘째, ‘질서 있는 퇴진’이란 없다. 비선실세의 국정개입과 사익추구를 허용해 탄핵에 몰렸던 2016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 때 질서 있는 퇴진 소리가 나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박근혜가 비상계엄을 선포했던가?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막고, 계엄군을 지휘한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본회의장 문을 부수고 들어가 의원들을 끄집어내라”고 명령했던가? ● ‘탄핵 트라우마’에 빠질 이유가 없다박근혜는 2016년 11월 초 국회에 총리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했고, 여야가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기로 의견을 모은 적도 있었다. 그러고는 일방적으로 김병준 총리 내정을 발표해 어그러졌던 거다. 결국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세 번째 대국민 담화를 냈고, 여야 정치 원로뿐 아니라 종교계 어른들까지 머리를 맞대고 ‘내년 4월 퇴임, 6월 대선’ 일정을 내놓아 새누리당(지금의 국힘)이 12월 1일 당론으로 채택했다.윤석열처럼 한밤 중 국무회의 같지 않은 국무회의에서 거의 모든 국무위원들이 반대하는데도 계엄을 밀어붙인 광기 어린 대통령을 몇 달 씩 ‘대통령직’에 놔두고도 ‘질서’가 유지되리라는 국민은 단언컨대, 많지 않다. 국힘은 물론 한때 윤석열을 지지했던 보수층이 ‘탄핵 트라우마’에서 허우적댈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때는 탄핵 찬성 여당 의원들이 ‘배신자’ 소리를 들었다지만 지금은 윤석열이 배신자다. 국민의 신임을 배신했고, 대한민국 헌법과 법치를 배신한 내란 수괴가 윤석열인 상황이다.● 내란 수괴를 싸고도는 정당으로 남을 텐가결국 윤석열의 대통령 권한을 조속히, 합법적으로 정지시키는 방법은, 탄핵뿐이다. 본인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자진 하야가 좋겠으나(지난번 도발 ‘친위 쿠데타 실패로 윤건희 정권은 끝났다’ 에서 썼다) 그놈의 불뚝 성질, 황소고집에 물 건너갔다. 2016년 탄핵 때도 집권당 당론은 ‘4월 퇴진, 6월 대선’이었다. 탄핵안 표결 이틀 전인 12월 7일 의총 모두발언에서 친박 당 대표였던 이정현은 당론 고수를 말했다. 당시 원내대표, 현재는 대통령 비서실장인 정진석은 달랐다. “당론으로 우리 의원들의 투표행위를 기속시키지 않겠다”며 “의원 개개인이 독립적인 헌법기관으로서 자유 투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친박계는 탄핵안 불참을 대통령에 대한 의리라고 생각을 하는 모양인데 대통령이 구속됐을 때 구치소를 찾아가는 게 의리”라고 멋지게 받아쳤던 의원도 있었다. 당시 비주류였던, 지금은 찐윤으로 원내대표 경선에 나온다는 권성동이다. 아직도 박근혜를 짠하게 여기는 이들이 없지 않다. 그러나 비선실세에게 국정개입과 사익추구를 허용한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 국민의 요구였고, 당대의 정의였다. 그래서 탄핵에 앞장섰던 비주류 권성동이 지금 주류 중에 주류다(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으니 이 무슨 역사의 아이러니냐). 그래도 ‘탄핵 트라우마’에 빠져, 이번엔 내란 수괴를 싸고도는 정당으로, 정치인으로 남을 텐가. ● “당론 반대…헌법기관 양심대로 투표” 말하라한동훈은 소수 친한계 수장이 아니다. 친윤 중심 의총에서 탄핵 반대 당론을 정했다고는 하나 당 대표는 엄연히 한동훈이다. 8년 전 정진석이 말했던 것처럼 국민의 편에서, 헌법의 편에서 말해야 한다. “독립적 헌법기관으로서 개개인의 양심에 따라, 의원들의 자유의사에 따라 표결에 임해 달라”고.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로부터 대통령 권한을 박탈하는 탄핵이 시급하므로 탄핵 반대라는 ‘당론에 반대’한다고 밝히면 더 분명할 것이다. 물론 친윤 쪽에선 8년 전 비박처럼 탄핵 반대 당론 유지를 강조한다. 친한계가 이탈해 탄핵되면 한동훈은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바로 그거다. 친한계가 이탈해 탄핵에 성공하면, 한동훈은 내란 수괴로부터 국힘을 분리해낸 당 대표로 기록될 수 있다. 설령 친윤세력에 의해 당에서 쫓겨난대도 그런 당은 오래 못 간다. 국민의 외면을 받고 또 간판을 내리거나, 바꿔달거나, 아예 폐족이 돼 보수정당 폐업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한동훈에게 또 기회가 온다. 잠깐씩 ‘간동훈’이 되긴 했으나 윤석열 폭주 아래 ‘김건희 리스크’에 대해 그만큼이라도 말할 수 있었던 대표는 한동훈 뿐이기 때문이다. ● 나라를 위해 절벽에서 뛰어내려야 할 때다탄핵에 실패하면…국힘도, 한동훈도 끝이다. 내란 수괴를 싸고도는 정당이 무슨 보수정당이란 말인가. 이런 정당에서 어떻게 감히 집권을, 대통령을 꿈꿀 수 있나. 탄핵 투표가 부결돼(또는 불성립돼) 기사회생한 윤석열이 한동훈과 화해할 리도 없다. 나라와 국민 편이 아니라 ‘간’만 보다 내란 수괴를 끌어내리는 데도 실패한 한동훈에게 정치적 미래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탄핵되면 끌어내리겠다’는 친윤은 안 무서워도 “탄핵 반대”를 외치는 극렬 친윤 지지층은 두려울지 모른다. ‘누가 한국의 극우인가?’라는 최근 논문(성균관대 좋은민주주의센터 황인정 전임연구원)에 따르면 0(매우 진보)~10(매우 보수)까지 눈금 중 스스로 10을 택한 응답자는 2.8%, 9~10은 5.3%, 8~10은 13%에 불과했다.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을 찍었고, 반공과 한미동맹을 중시하며, 민주주의가 항상 최선은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많아야 열명 중 한두 명 꼴인 이들에게 휘둘려선 안 될 일이다. 한동훈은 다음 대통령이 돼야겠다는 욕심을 버리기 바란다. 그러면 ‘간동훈’에서 벗어나서 길이 보일 것이다. “나라가 잘됐으면 좋겠고 또 국민들이 잘됐으면 좋겠다. 그걸 위해서 절벽에서 뛰어내려야 될 상황이 되면 주저하지 않고 뛰어내려 보려고 한다”던 9월 18일 자신의 말을 기억한다면, 이번 내란 수괴 탄핵에 정치생명을 걸어야 한다. 절벽에서 뛰어내려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 202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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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 ‘친위 쿠데타’ 실패로 ‘윤건희 정권’은 끝났다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국회와 정당, 언론사 앞엔 계엄군이 진을 치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3일 밤 계엄군에게 체포됐다. “어디로 끌려갔다더라” 소리는 반국가세력의 체제 전복 행위라거나, 가짜뉴스·여론조작·허위선동으로 간주돼 계엄법 14조에 의해 처단된다(한동훈이 6일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과천 수감장에 감금돼 있을 터다). 계엄사령관의 포고령 1호는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10·26 사태 직후 계엄령에도 없던 대목이다. 국회의원들이 계엄 해제 요구결의안을 채택하려 해도 할 수가 없다. 계엄 철폐를 요구하는 집회, 시위도 금지됐다.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 될 판이다. 당연히 이 따위 글도 못 쓴다. 언론 출판은 계엄사 통제 대상이다(그간 써온 글 때문에 벌써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 당했을지 모른다). ▶3일 윤석열 대통령 계엄선포 직후 발표된 포고령 1호 전문 보기만일 3일 밤 계엄군이 의원들보다 먼저 국회에 진입했다면, 용감한 시민 수천 명이 국회로 달려가 무장군인들과 맞서며 국회가 표결할 시간을 벌어주지 않았다면, 이 말도 안 되는 일들은 벌써 현실이 돼 있을 것이다.● 비상계엄이 야당 경고성이었다고? 윤석열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은 ‘야당의 폭거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는 거다. 통탄할 일이다. 친위 쿠데타가 실패했으니 하는 엉뚱한 소리지, 아파트 전체를 불태워놓고 아랫집에서 층간소음 내는 걸 알리려 불 질렀다는 소리보다 비정상이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의 5일 한 인터뷰에 따르면, 윤석열은 어떻게 군이 투입됐는데 국회 하나 점령을 못 하느냐고 크게 질책했다고 한다. 4일 오전 1시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이 의결됐음에도 4시 27분까지 계엄 해제 담화를 발표하지 않은 것도 일말의 미련을 버리지 않아서가 아닌가 싶다. 육사도 아니고 서울법대를 나온 검찰총장 출신이, 박정희-전두환을 능가하는, 어떤 독재자도 감히 하지 못했던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고도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고? 윤석열이 긴급 담화에서 밝힌 대로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탄핵과 특검, 야당 대표의 방탄으로 국정이 마비 상태’에 있는 점도 부인할 순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대국민 호소문을 내놓았어야 할 일이다. 아니면 총선 패배 뒤 밀사를 보내 야당 대표와 ‘딜’을 시도했던 것처럼 총리나 내각 절반을 내놓을 테니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대화와 타협을 했어야 했다. 지난번 같은 기자회견 말고 진솔한 회견으로 국민 앞에 털어놓고 협조를 구했어도 국민은 대통령 편이 돼 줄 수 있었다. 대통령실과 내각 개편은 진작했어야 할 일이다.● “위반 시 처단한다”고 전공의 복귀하겠나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정상이다. 나 같은 사람을 비롯해 주류 언론에선 입과 팔이 아프도록 말하고 또 썼다. 계엄 선포 담화대로, 아니 극우 유튜브 말마따나 국회에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 ‘체제전복을 노리는 반국가세력’이 있다면, 윤석열은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민주당에서 경찰의 대공 수사에 쓰일 특활비 특경비까지 삭감했기 때문에 윤석열이 ‘종북세력’이라며 격분해 계엄을 결심했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북에서 오물풍선 날리고 그 전날 밤엔 “모든 공격 수단을 준비 태세에 놓겠다”고 경고까지 했던 10월 12일도 골프나 쳤던 윤석열은 체제수호자란 말인가. 야당에서 내년 예산안 677조4000억 원 중 1%도 안 되는 감액을 했다고, 줄줄이 탄핵한다고 계엄령을 선포하는 대통령을 그대로 둘 수 있는지, 대한민국 체제가 더 불안하고 불쌍하다. 만에 하나, 계엄군의 국회 진입이 성공해 비상계엄이 살아있다 해도 윤석열이 뭘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포고령대로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이 본업에 복귀’할 리 없다. 이미 군에 입대하거나 다른 업종에 취업한 의사는 어쩌란 말인가. ● ‘윤석열 유신’이라도 감행할 능력 있나 민생을 위한 통치를 하려 해도 국회가 민생법안을 통과시켜야 가능하다. ‘윤석열 유신헌법’과 ‘윤석열 정당’을 만들고 관제선거를 해서라도 다수당이 돼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비상계엄 아니라 계엄 할아버지에 성공한대도 박정희는커녕 전두환도 못 되는 윤석열 능력과 그릇으로 ‘윤석열 유신’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유신이라니!! 아무리 글로벌 민주주의 쇠퇴와 함께 스트롱맨이 활개 치는 세상이 됐다 해도 우리나라가 52년 전 같은 유신독재로 돌아갈 순 없다. 대통령 탄핵에 못내 주저하던 한동훈도 “윤석열이 계속 대통령직을 수행하면 또 비상계엄 같은 극단적 행동을 저지를 우려가 있다”며 조속한 대통령 직무정지의 필요성을 밝혔다. 탄핵 찬성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친윤(친윤석열)은 물론 한때 윤석열을 지지했던 사람들도 심경이 복잡할 터다. 어떻게 교체한 보수정권인데 2년 반 만에 망한단 말인가. 이대로 탄핵이 진행될 경우, 내년 초 대선에서 필시 ‘이재명 대통령’에게 정권 상납할 게 분명하다는 근심이 자자하다.● ‘윤건희 정권’ 사죄하고 윤석열 스스로 사임하라 그러나 설령 윤석열이 탄핵되지 않는다 해도 달라질 건 없다. 다수 국민은 이미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있든 못 있든, 윤석열이 할 수 있는 게 없는 형국이다. V 제로 김건희 여사가 국정에 관여해 온 ‘윤건희 정권’이긴 해도 김건희가 전면에 나설 수도 없다. 결국 탄핵되든 안 되든 그들 부부가 설 자리는 없는 꼴이다. ‘탄핵 트라우마’로 인해 대통령 탄핵만은 피하고 싶은 게 사실이다. 탄핵만 하면 자유민주주의가 절로 살아나는 것도 아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뒤 문재인 정권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로 몰고 갔다. 이대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이재명 정권이 들어서 ‘죽어도 경험하기 싫은 나라’로 끌고 갈까 두려운 거다.윤석열은 국민 앞에 절절히 사죄하는 것으로 마지막 소임을 다하기 바란다. 지난 2년 반, 절대 변하지 않는 윤석열을 죽도록 보긴 했지만 그래도 한 번 더 희망을 갖고 싶다. 또 한 번 탄핵당하는 불행한 보수 대통령으로 기록되기보다 국민 앞에 사죄하고 스스로 사임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 낫다. 물론 김건희와 함께 사법적 책임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탄핵보다는 사퇴가 덜 수치스럽다. 그리하여 다음 대선까지 ‘거국내각’이 들어서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국민을 위한 마지막 봉사라고 본다.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 202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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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윤 대통령은 왜 노무현을 좋아한다고 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주자 시절인 2021년 9월,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부른 적이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 서거 때부터 추모식마다 등장하는 곡이다. 높은 음까지 내진 못했지만 “2009년 대구지검에 있을 때,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그때 내가 이 노래를 많이 불렀다”고 했다. 노무현 연설을 다 외울 정도로 윤 대통령은 정말 고인을 좋아한다고 했다. 노무현 영화를 보고 혼자 두 시간을 운 일도 있다고 한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대선 전, 한 인터넷 매체 기자와 통화 녹음에서 부부가 다 노무현 팬이라며 했던 말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특히 국가지도자로서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은 어딘가 닮아 있고 따라 하려 애쓰기 마련이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한 주간지와의 대화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타고난 정치적 감각은 메시이고 호날두인데 문 정권 사람들은 그걸 따라 하려고 하지만, 그만큼 되지는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독특한 해석이다. 6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 1위가 노무현이긴 해도 (2위는 박정희, 3위는 김대중) 살아생전 그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서다. 무엇보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고, 열린우리당이라는 ‘대통령당’이 생겼다 사라졌으며, 가족과 측근 관리에 실패해 세상을 등진 아픔이 있다. 윤 대통령에게 노무현 같은 정치적 감각이 있다면, 시대정신을 읽고 ‘공정과 상식’을 대선 구호로 들고나와 다수 국민을 열광시켰다는 점이다. 그러나 노무현도 윤 대통령처럼 임기 1년도 안 돼 직무수행 평가가 20%대(한국갤럽 조사)로 곤두박질쳤다는 사실을 윤 대통령은 아는지 의문이다. 2004년 초 대통령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고 열린우리당이 152석의 거대여당이 됐음에도 노무현은 2004년 2분기 반짝 34% 지지율을 올렸을 뿐, 임기 말까지 대부분 30%를 넘기지 못했다. 이유는 취임 직후 줄줄이 터진 측근 비리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공정과 상식처럼 노무현은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대선 구호로 들고나왔다. 도덕성과 연계된 가치 쟁점은 한 번 흠집이 나면 좀처럼 회복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경제성장 같은 대선 공약은 기대가 환멸로 바뀌기까지 3년은 기다려 줄 수 있으나 알고 보니 ‘내로남불’이라는 배신감으론 지지율 반등도 힘들다. 최준영 인하대 교수가 2014년 논문에서 밝힌 연구 결과다. 집권 4년 차 12%까지 지지율이 추락했음에도 노무현은 국가보안법·사립학교법·과거사진상규명법·언론관련법을 개혁입법이라며 밀어붙였다. 성공할 리 없다. 지지층이 떨어져 나가고 강한 야당(지금의 국민의힘)이 반대해도 개혁을 고집해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 소리까지 들었을 정도다. 윤 대통령이 진정 노무현을 좋아한다면, 정치 감각이 아니라 지지율부터 신경 쓸 필요가 있다. 노무현은 측근 비리를 사과하고 국민 재신임을 받겠다고 했다가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윤 대통령에게는 아직 방법이 없지 않다. 노무현처럼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말없이) 고집할 상황이 아니다. 김 여사가 일반 국민과 똑같이 검찰에 수사 받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제라도 공정과 상식이 살아 있음을 입증하기 바란다. 그러면 실망했던 지지층이 돌아온다. 그 힘으로 ‘양극화 해소’라는 윤 대통령의 새 국정과제에 국민의 힘을 모을 수 있고, 정권 재창출의 희망도 가질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구 집권을 못할 바에야 어차피 김 여사에 대한 수사는 피할 수 없다. 정권을 뺏기기 전에, 차라리 윤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을 때 받고 넘어가는 게 여러모로 낫다. 이를 통해 윤 대통령은 검찰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이 좋아했던 노무현은 청와대가 간섭하지만 않으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이뤄진다고 믿은 대통령이었다. 청와대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검찰개혁을 추구했다던 노무현이 지금 검찰 출신 대통령에, ‘검사 위에 여사의 나라’가 된 대한민국을, 하늘나라에서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노무현이 최고의 관료로 꼽았던 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노무현의 대체불가능한 장점이 “그럼 내가 생각을 바꾸지요”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들어보고 맞다 싶으면 자신과 반대되는 생각도 유연하게 받아들였고,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반박해 주는 것을 즐겼다고 최근 저서에 적었다.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노래나 부를 게 아니라 윤 대통령이 그런 사람이 되면,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기 때문이다.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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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이재명 리스크’ 민주당은 몰랐단 말인가

    가관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자 당 안팎은 거의 폭탄 맞은 분위기다. “정치 판결” “미친 정권의 미친 판결” “사법 살인” 소리가 터져 나온다. 심지어 공직선거법에서 ‘허위사실공표죄’를 삭제하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이재명을 위한 아부성 법안 상납이다. 묻고 싶다. 민주당은 입때껏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를 몰랐단 말인가? 당 대표 비서실장 이해식 의원이 이재명의 빗속 연설 사진과 함께 올린 “신의 사제, 신의 종”이라는 글처럼 신성(神性) 가득한 무균 무때 정치인인 줄 알았던가? 2021년 8월 말 ‘이재명 후보님, (주)화천대유 자산관리는 누구 것입니까’란 칼럼이 경기경제신문에 실린 이후, 아니 실은 그 전부터, 이재명 주변엔 꺼림칙한 법적 도덕적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지느냐가 문제일 뿐. 그래서 이재명은 대선에서 패하기 무섭게 금배지에 당 대표직까지 겹겹이 방탄복을 껴입고는 민주당을 볼모로 장악했던 거다. 패장은 잠시 정계를 떠나는 기존 정치문법까지 무시한 채.● 이낙연 측 “대장동 문제로 민주당 위기” 민주당은 이번 판결이 윤 정권의 ‘대선 후보 죽이기’라고 주장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대선 후보 치고 이재명 같은 전례가 없다. 범죄 혐의 그득한 사람을 민주당이 대선 후보로 뽑았을 뿐이다. 심지어 대선 경선 내내 이낙연 캠프 측은 “대장동 문제가 정권 재창출의 위기, 민주당의 위기가 돼선 안 된다”고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를 누누히 경고했다. 귀담아 듣지 않았던 민주당, 특히 이재명 지지자들은 제 발등 찍어야 마땅하다.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숱한 네거티브를 겪은 사례는 있다. 아들이 병역을 회피했다는 병풍(兵風) 의혹은 거의 치명상이었다. 병풍을 터뜨린 김대업은 2004년 대법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선 후보로서 이회창이 ‘내 삶에서 가장 치욕스럽고 뼈아픈 회한을 남긴’ 일이라던 차떼기 불법 대선자금 사건은 2003년 10월 터졌다. 그는 누구처럼 잡아떼지 않았다. 전모를 다 알진 못했다지만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라며 곧바로 대검중수부로 가서 조사받았다. 불법 대선자금은 이회창 측 823억원, 노무현 측 119억원으로 드러났고 검찰은 당시 노 대통령과 이회창에 대해선 모금과정에 직접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입건 처리하고 실무자들만 처벌하고 끝냈다. ‘정치보복’은 없었던 셈이다(수사 검사 중 윤석열 검사가 있었다). ● 민주당 대선 후보는 바뀔 수도 있었다이재명의 ‘혐의’는 다르다. 대선 후보일 때, 그러니까 현 대통령의 정적일 때 지은 죄가 아니고, 과거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때 저지른 자업자득이다. 이낙연 측에선 “이재명 후보가 구속될 수도 있다” “대장동 의혹이 당에 위험요인이 되지 않기 바란다”고 분명히 경고했다. 이 때문인지 2021년 10월 5일 마지막 TV토론 뒤 국민여론조사 성격이 강한 3차 선거인단 투표에선 이낙연이 62.37%로 이재명(28.30%)을 크게 앞섰을 정도다. 만일 최종합계에서 중도사퇴한 정세균 김두관 표를 사표처리하지 않고 전체 투표자 수에 합쳤다면, 이재명의 누적 득표율은 50.29% 아닌 49.3%로 내려간다.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이낙연과 결선투표를 해야 한다. 민주당 대선 후보가 뒤바뀔 수도 있었다는 의미다. 패자의 흔쾌한 승복 없이 이재명을 대선 후보로 뽑은 지 열흘도 안 돼 대장동 의혹 핵심 인물 중 하나인 남욱이 미국서 돌아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한국에 며칠만 일찍 들어왔으면 (이재명) 후보가 바뀌었을 수도 있겠네요.” 귀국 바로 다음날 이재명 최측근 김용이 체포돼 사흘 만에 구속된 것이다. 대장동 일당으로부터의 자금 수수 자체를 부인했던 김용은 결국 그들에게 경선 무렵 선거자금을 받은 혐의로 작년 11월 1심 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돈을 건넨 남욱은 징역 8개월이다. 그 ‘윗선 의혹’이 있는 이재명에 대해선? 마냥 늘어지게 재판중이다. ● 민주당은 단체로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렸나대선 패장은 “오롯이 내 책임”이라며 당분간 해외로 떠나든지 보통 자숙의 기간을 갖는다. 1992년 김대중(DJ)부터 2022년 경선 패자 이낙연도 대충 비슷했다. 엄밀히 보면 이 공식은 2012년 문재인 때 깨졌다. 그는 대선 출마 때도 의원직을 놓지 않았고 대선에 패하자 백의종군한다면서도 여의도에서 국정 발목잡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재명은 한술 더 떴다. 대선에 패한 뒤 청년정치인 박지현을 앞세워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부터 장악했다. 새미래민주당 전병헌 대표의 한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민주당은 아직 친문(친문재인)이 주류였다. 친문은 이낙연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 당을 수습하려 했다. 그런데 대선 패배 책임을 진다며 대표직을 사퇴했던 송영길이 돌연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고 인천 계양 의원직을 던진다. 그 자리에 이재명이 나섰다. 지역구 유세 중 이재명이 제 손으로 제 목 치는 시늉까지 해가며 “이번에 이재명 지면 정치생명 끝장난다. 진짜요. 끽” 하는 영상을 보면, 의원 불체포특권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실감이 난다. 금배지도 못 미더웠는지 이재명은 그해 8월 당대표로 나섰다. 그리곤 검찰이 기소해도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게 방탄 당헌으로 고치고, 공천권을 무기로 ‘비명횡사, 친명횡재’를 밀어붙여 민주당을 완전 이재명당으로 만들었다. 올 8월엔 대표 연임까지 성공해 24년 만에 DJ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이재명 유일체제가 된 70년 역사의 민주당에서 지금 이재명한테 ‘개인 비리 혐의’가 수두룩했다는 소리는 입 밖에도 내기 힘들다. 그래놓고 이제와서 생전 처음 이재명의 범죄 혐의를 들은 것처럼 “정치 판결” 운운하는 건, 솔직히 웃긴다. 마치 인질들이 인질범에 애정과 연민, 애착을 갖게 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린 것 같다. ● 가난하게 자랐다고 다 이재명 같진 않다이재명에게 강점이 많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가난 속에 태어나 열세 살에 공장노동자가 됐고 장애도 입었으나 검정고시로 대학에 갔다. 고시 합격 후 호의호식 마다하고 노동변호사로, 시민운동으로, 마침내 어려운 사람을 위해 정치하겠다고 나선 서사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감동을 뛰어넘는다. 이재명이 대선 후보일 때 유시민은 ‘머리 좋고 학습 능력이 뛰어나 목표를 정하면 자기 자신을 계속 바꿔나가는 사람’이라고 MBC에 나와 평했다. 비슷한 의미로 진중권은 이재명을 ‘극단적으로 발달한 기회 이성의 소유자’라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어떤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그래서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드는 강한 추진력이 장점인데 누구처럼 자신만 알고 공사(公私)구분을 못한다는 게 나는 무섭다.1960년대 가난하게 자란 사람이 어디 이재명 뿐이랴. 그는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에서 청소부였던 아버지가 썩은 과일을 주워와 가족들에게 먹이곤 했다고 썼다. 나이 들어 내 돈으로 신선한 과일을 사 먹게 되니 어찌나 후련했는지 모른다고도 했다. 그런 사람이 경기도지사 시절 도 예산으로 과일을 2791만원어치나 먹었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법카 불법 사용을 공익제보한 조명현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법카’에서 지사 공관 냉장고에 아침마다 모닝 샌드위치 3종 세트(샌드위치 2개, 닭가슴살 샐러드, 컵과일 2개)를, 락앤락 반찬통엔 산딸기나 블루베리를, 야채 칸에는 사과와 복숭아를 지퍼 팩에 넣어두어야 했다고 썼다. 7급 공무원의 꼼꼼한 제보 덕에 검찰은 최근 이재명의 1억 원 넘는 경기도 예산 사적 사용과 법인 카드 유용을 기소할 수 있었다. 쪼잔한 기소라고? ‘공적 지위를 남용한 사적 이익 추구’가 바로 부패다. 저서에선 성남시 ‘청년 배당’ 덕에 3년 만에 처음 과일을 사먹었다는 학생을 눈물겹게 소개하면서 뒤로는 태연히 자기 잇속 차리는 이재명의 다면성이 섬뜩한 거다. ● 이재명과 민주당을 분리하라민주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연구보고서 ‘민주당의 역사와 정치철학’에서 “민주당은 K시대를 선도하는 대한민국 대표정당”이라고 했다. 2024년 8월 ‘다시 뛰는 대한민국’을 약속한 이재명 대표의 연임으로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당원 중심 정당, 함께 잘 사는 미래를 만드는 준비된 정당”을 선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 한 사람을 결사 옹위하는 정당은 민주정당이랄 수 없다.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일 뿐이다. 이재명이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진작 대표직을 내려놓고 재판 받아야 했다. 진정 자신 있고 당당하다면 애초 금배지를 달겠다고 나서지도 않았을 터다. 안타깝게도 이재명에게 공선사후(公先私後)는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 국민의 복이 거기까지인지 슬프지만 만일 그에게 공적 책무감이 남아 있다면, 이제라도 다수당 대표로서 정부 도울 일은 돕겠다고 나서주면 좋겠다. 이재명을 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못한다면, 민주당은 이재명과 갈라설 길을 찾아야 한다. 70년 역사의 민주당이,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역사적으로 구현해온 정통정당’이라는 민주당이, 숱한 범죄 혐의를 안고 있는 이재명에 인질로 사로잡힌 모습을 더는 봐줄 수 없다. 이재명만 아니라면 민주당을 지지하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윤석열 정부가 너무 못해서, 그동안 바친 순정이 아까워서, 이재명을 버릴 수 없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고 억지로 되는 일은 없다. 국고보조금을 받는 민주당은 극성 당원들만의 정당일 수 없다. 백범이 원했던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원한다면, 민주당은 이제 이재명으로부터 놓여날 수 있어야 한다. 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 2024-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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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선조 때 ‘사화 트라우마’… 지금은 ‘탄핵 트라우마’

    노파심에 밝히자면, 나는 또 탄핵이 있어선 안 된다고 본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적지 않은 국민이 ‘탄핵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당 대표나 비서실장, 장관한테는 대면보고 한번 안 받으면서 사인(私人)의 국정농단을 허용한 전임대통령. 대통령 권력을 남용한 ‘유신 공주’만 파면하면 자유민주주의가 절로 복원될 줄 알았다. 아니었다. 후임 대통령 문재인은 우리국민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몰고 갔다. ● 대통령 부부는 안드로메다에 살고…윤석열 대통령의 기자회견으로 대통령 내외가 안드로메다에 살고 있음이 확인됐다. 그럼에도 선뜻 탄핵 소리가 안 나오는 건 탄핵 트라우마 때문이다. 설령 윤 대통령이 공천개입을 했거나 부인이 국정관여를 했다고 해도 별로 놀라지도 않는 분위기다. 그래서 당장 대통령이 물러나면 어쩔 건데? 우파궤멸도 겁나지만 ‘이재명의 민주당’ 집권은 더 겁난다. 죽어도 경험하기 싫은 나라로 끌고 간다면, ‘검찰공화국’이나 ‘김건희의 나라’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답답할 때는 혹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역사를 들여다본다. 세상에 이럴 수가. 1498년(연산군 4년) 무오사화, 1504년(연산군 10년) 갑자사화, 1519년(중종14년) 기묘사화, 1545년(명종 원년) 을사사화 등 4대 사화(士禍)로 사대부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새 임금이 등극한 조선 선조 시절(재위 1567~1608), ‘사화 트라우마’가 ‘마이너스 에너지’로 작용했다는 거다. 류성룡 관련 학술지인 2023년 ‘서애연구’에서 발견한 대목이다. ● 사화 후유증에 사대부들은 몸을 사렸다“문정왕후의 사망과 선조의 등극을 계기로 이른바 ‘훈척의 시대’가 가고 소위 선비들이 주 도하는 ‘사림의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무오·갑자·기묘·을사의 ‘4대 사화’가 가져다 준 깊은 트라우마가 남아 있었다. 이 트라우마는 새로운 국면에서 마주 하 게 되는 군신 또는 신하들 사이의 통합을 저해하는 ‘마이너스의 에너지’이자 ‘소모적인 정 치적 비용’으로 작용하게 된다.” (백권호 논문 ‘류성룡에 대한 일부 부정적 실록 기록의 재해석에 관한 연구’) 명종 말 선조 초 영의정을 지낸 이준경(1499~1572)은 여섯 살 나이에 갑자사화를 겪었다. 조부와 부친이 연루돼 유배를 떠났으나 2년 뒤 중종반정이 일어나는 바람에 풀려날 수 있었다. 덕분에 이준경은 강직한 성품에도 조심성은 어쩌지 못했다. 상경한 퇴계 이황(1502~1571)에게 선비들이 몰려들자 “제2의 조광조가 되려고 하십니까” 우려했을 정도다. 국왕을 능가하는 인기나 영향력을 갖게 되면 중종 때 기묘사화로 죽임을 당한 조광조처럼 변을 당할 수 있다는 경고다. 퇴계 역시 아끼는 후배 기대승에게 편지를 보내 “불에 뛰어드는 나방을 본받지 말고, 담장 밑에 서 있다가 압사하는 화를 당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성급한 개혁 추진의 위험성을 경계한 거다. 언제든 왕권이 오작동해 나라가 거꾸로 갈 수 있다는 깊은 불신. 그럼에도 사화 트라우마 때문에 임진왜란 같은 더 큰 화를 막지 못했다고는 죽어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 잘난 체하면서도 개혁의지 없는 선조왕후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은 첫 국왕이었던 선조는 원만하거나 진취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중종의 후궁의 손자였던 그는 왕이 될 꿈도 못 꾸었던 처지 때문인지 명확한 국정목표도, 개혁의지도 갖지 못했다(방상근 2019년 논문 ‘동서분당과 선조의 리더십’). 이준경은 선조에 대해 명철하지만 그릇이 큰 인물은 아니라고 봤다. 선조 5년 죽음을 앞둔 그는 “이 늙은이 흙 속으로 돌아가며 전하께 당부드립니다”로 시작되는 유언을 남긴다(이한우의 군주열전 ‘선조’). 요약하면 학문에 힘쓰고, 아랫사람을 대할 때는 위의(威儀·위엄 있고 엄숙한 태도)가 있어야 하고, 군자와 소인을 분간하고, 사사로운 붕당을 깨뜨려야 한다는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다. 들여다보면, 어찌나 우리 현실과 들어맞는지 기가 막힌다. “사사건건 직설적으로 드러내면서 스스로 잘난 체 하는 것을 아랫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 됩니다. 계속 지금처럼 하신다면 백관이 맥이 풀려 수없이 터지는 잘못을 이루 다 바로잡지 못할 것입니다.”● 환관의 국사 개입까지 허용했다안타깝게도 선조는 명재상의 유언조차 귀담아 듣지 않은 듯하다. 고집은 있는데 의심 많고,일관성이 없는데다 의지력과 결단력도 부족했던 선조는 율곡 이이가 줄기차게 국정개혁을 주장해도 “거행하기 어려울 듯하다”며 거부했다. 조보(조선시대 관보) 유출을 꺼리는 등 비판세력을 봉쇄한 건 물론이다. 심지어 임진왜란이 터지기 반년 전까지 기축옥사 뒤끝으로, 대대적 사대부들 처벌로 조선은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이상혁 2009년 논문 ‘조선조 기축옥사와 선조의 대응’). 전형적 왕조 순환의 방식에 따르면, 새 왕조는 초기 번영의 시기를 구가한다. 정적들은 제거됐고 모든 부(富)는 왕의 곳간에 쌓여 있다. 하지만 귀족과 관료가 늘고 이들에게 토지와 특혜를 나눠줄수록 조세부담자가 줄면서 창건 100년도 안 돼 재정적 어려움을 맞는다. 이 때 과감한 개혁을 하면 내리막길을 멈출 수 있다. 그러나 무능과 무책임과 부패로 개혁을 못하면, 망하는 거다. 중국 60개 왕조의 평균 수명이 70년도 못 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명나라는 276년만에 왕조가 바뀌었는데 조선이 무려 518년을 기신기신 버틴 것도 놀랍지 않은가. “심하게 타락한 관료제 국가는 중국같은 거대제국보다 한국같이 작은 나라에서 더 오랫동안 유지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존 페이뱅크, 에드윈 라이샤워 등은 ‘동양문화사’에서 분석했다. 어느 정도 타락했느냐고? 조선 개국 200년 임란이 발발하자 선조는 환관의 국정개입까지 허용했을 정도다. 명의 황제에게 원병을 청해야 한다는 제안을 처음 낸 것이 비변사 아닌 환관 이봉정이라고 선조가 호종공신을 책봉하며 밝힌 것이다. 환관의 국사 참여를 엄격하게 금지했던 조선 대신들로선 억장이 무너질 노릇이었다. ● 트라우마 속에서도 당쟁은 벌어졌다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거냐? 닦달하지 마시기 바란다. 사화 트라우마가 존재하던 선조 때 시작된 것이 당파요, 당쟁이었다. 기개 있는 군자라면 “아니되옵니다!” 목숨 걸고 국왕의 잘못을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하길 마다하지 않았다. 천만다행히도 그 무렵은 인재가 쏟아져 나온 시기이기도 했다. 실학자 이익도 “선조 때 뛰어난 인물들이 가장 많이 나왔다”고 했다. 임란과 정유재란까지 맞고도 선조가 나라와 왕조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도 인복이 있었기 때문일 터다(사화 트라우마로 뻑하면 사직서를 내고 낙향하긴 했다). 특히 이순신을 천거했던 류성룡은 당대 보기 드문 현실주의적 정치인이었다. 율곡처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서슴지 않고 직간(直諫)하는 대신, 때와 형세에 맞춰 수위를 달리하는 수시지의(隨時之義)가 신하로서의 의리라고 봤다. 아무리 필요한 간언이라 해도 우선 국왕에게 공감을 표시하며 군주가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일 자세가 됐는지 살피고,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은 물론 자리까지 내려놓고 간곡히 할 말을 하며 전쟁 중 재상으로 나라를 지켰다(백권호 논문).● 탄핵의 존재 의미 “대통령도 조심하라” 선조 이후, 사화 트라우마가 있어 사화는 더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도 탄핵 트라우마가 있어 대통령 탄핵은 더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탄핵이란, 잘못하면 대통령 직(職)에서 파면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만 처절히 새기고 있다면 말이다.문제는 윤 대통령이 과연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있는지 여부다. 공천 개입 의혹이 계속 터져 나오는데도 거짓 해명으로 국민 염장을 지르거나, 부인의 국정 개입 의혹이 역력한데도 “절대 국정 개입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끝내 안 하는 걸 보면, 과연 윤 대통령이 국민을 두렵게 여기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검찰 출신 대통령인지라 자신이 검찰을 장악했다고 믿기 때문일 수 있다(검찰이 언제까지 ‘권력의 주구’일지 궁금하다). 헌법재판소를 믿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탄핵 결정에는 헌법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행 6인 체제에선 한명이라도 이견이 있으면 탄핵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영부인 사주’가 있다는 부인을 믿는다는 소문도 나돈다^^.● 대통령 부인도 국민 위에 존재할 순 없다그래서 윤 대통령이 자신만만한 것이라면, 제발 생각을 바꿔주기 바란다. 엄혹한 글로벌 환경 변화로 보나, 죽을 만큼 힘든 우리 삶으로 보나, 대통령 내외가 여유부릴 때가 아니다. 윤 대통령에게 이대로 국정을 맡겨놔도 되는지 국민적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속히 대통령 비서실장부터 바꾸고, 야당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새 국무총리를 들여야 한다. 찔끔찔끔 말고 가시적 개편이 시급하다. 헌법대로 총리 제청을 받아 유능한 인물로 새 내각을 구성해 내각제처럼 운영하는 등 확 달라지는 모습을 뵈주는 것이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본다.무엇보다 윤 대통령이 세번 째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을 휘두르기 전, 부디 심사숙고했으면 한다.(관저에 가서 물어보라는 뜻 아님). 저널리스트 마이클 브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국민과의 계약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썼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계약 말이다. 대통령(V1)은 물론 대통령 부인(V0)도 법 위에, 국민 위에 존재할 순 없음을 윤 대통령은 명심해야 한다. 임계점을 넘으면 우리 국민 감정 속 ‘야수’가 튀어나올 수 있다.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 202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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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본질은 대통령 부인의 국정개입 의혹이다

    “김 여사 남미 순방 가야 되거든.” 이달 말로 알려졌던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이 돌연 7일로 당겨지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소리다. 다음 주부터 페루와 브라질에서 다자 외교무대가 잇달아 열린다. ‘조선 제일 사랑꾼’ 윤 대통령이 부인 김건희 여사를 이번에도 동반할지 말들이 많다. 하지만 국민의 곱지 않은 눈길도 당연하다. 윤 대통령은 순방 전, 김 여사 활동이 외교와 의전에 그친다고 밝힌 뒤 함께 나서고 싶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김 여사는 자랑스러운 외교사절이랄 수 없다. 해외 순방 때 명품 숍에 들러 국민을 낯 뜨겁게 한 적도 있고 9월 체코에선 표절과 탈세 의혹이 있는 영부인으로 현지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심지어 최근 두 달간 ‘명태균 게이트’와 ‘김대남 사태’로 K정치의 추한 속살이 속속 드러나는 상황이다. 첫째, 우리나라 권력 1순위가 김 여사임이 재차 확인됐다. “오늘 여사님 전화 왔는데 내 고마움 때문에 김영선 걱정하지 말라고, 나보고 고맙다고. 자기 선물이래.” 정치브로커 명태균의 통화 내용이 맞다면, 김 여사는 대선을 도와준 ‘선물’로 지역구 공천도 하사할 수 있는 최고 권력자다. 선임행정관 출신 공기업 감사였던 김대남은 녹취록에서 김 여사가 ‘한남동 라인’을 통해 공천과 공기업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했다. 정권을 잡으면 공직과 이권을 가신(家臣)에게 배분하는 전근대적 가산주의(家産主義) 약탈국가로 돌아간 형국이다. 둘째, 윤 대통령의 대통령 자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명태균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에게 5년을 버틸 내공이 없다고 했다. 국민으로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소리다. “(김 여사가) 명 선생이 이렇게 아침에 놀라서 전화 오게 만드는 오빠가 대통령으로 자격이 있는 거야?”라는 음성 파일도 공개됐다. 이 말을 정말 했다면, 대선 전 “우리 남편은 바보” 녹취록이 절로 떠오른다. 윤석열 정부 2년 반 동안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 김 여사의 국정 개입 의혹이었다. 이번 담화를 앞당긴 것도 김 여사가 동의했기 때문이란 말이 나온다. 국민만 보고 해야 할 대통령담화까지 부인 동의를 받아야 가능하다면, 그게 바로 사인(私人)의 국정 개입 아니고 뭔가. 김 여사는 지극한 선의를 가진 대통령 부인으로서 남편 일에 관여하는 게 잘못이냐고 할지 모른다. 1894년 갑오개혁 당시 고종이 발표한 최초의 근대적 헌법 홍범14조는 ‘국왕이 정사를 친히 각 대신에게 물어 처리하되, 왕후·비빈·종실 및 척신이 관여함을 용납지 않는다’고 제3조에 못 박아 놨다. 근대국가라면 왕후도 용납되지 않는 국정 관여를 대통령 부인이 해선 안 될 일이다. 국민은 김건희를 대통령으로 뽑지 않았다. 수사를 통해 밝혀낼 일이지만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아무리 부인일지언정 선출되지 않은 사인에게 공천과 국정 개입을 허용했다면, 권력 남용이고 대의민주주의 훼손이다. 특히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검 출신 윤 대통령으로선 법치주의에 대한 모독이요, 국민에 대한 배신이 아닐 수 없다. 셋째, 윤 대통령에게 위기의식이 없다는 건 나라의 위기다. ‘인위적 인적 개편’이 없다니 대체 무엇으로 국정 동력을 살릴 것인지 통탄할 판이다. 명태균과 관련해 “정치적, 법적, 상식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고 국민에게 오만하고 대통령에게만 충성스럽게 국회 답변한 정진석 비서실장을 비롯해 대통령실부터 전면 개편해야 한다. 한남동 라인이 건재하는 한, 김 여사의 조용한 내조를 믿을 사람은 1도 없다. ‘텔레(그램) 정치’가 얼마든지 가능해서다. 7일 김 여사 문제를 포함해 이태원 참사와 의료대란 등 무능·무책임·무대책 2년 반에 대해 윤 대통령이 통렬한 사과를 하든 안 하든, 권위와 신뢰는 이미 잃었다. 내각 개편은 그래서 절실하다. 야권 동의를 받을 수 있는 현명한 총리를 새로 들이고, 헌법대로 총리 제청을 받아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장관과 교육부총리 등을 임명해 행정 각부를 통할케 하면서 민생경제를 살리고 지지율도 끌어올리는 것이 최선이다. 무엇보다 ‘김 여사 특검’을 더는 피할 수 없음을 대통령 내외는 깨달았으면 한다. 다수 국민에게 ‘탄핵 트라우마’가 있고, ‘이재명의 민주당’에 정권을 맡기기 꺼림칙한 것도 사실이다. 보수 궤멸을 막기 위해서도 탄핵이나 ‘임기 단축 개헌’은 원치 않지만 윤 대통령 자신이 대단히 사랑했던 검찰 조직을 망가뜨린 탓에 도리가 없다. 차라리 정무감각 있는 김 여사가 여야 합의 가능한 특검 수용을 결단해 주기 바란다. 잔 다르크처럼 내 한 몸 희생해 나라를 구하겠다고.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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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왕후의 국정개입 금지한 130년 전 갑오개혁

    뮤지컬 ‘명성황후’가 내년 30주년을 맞는다. 1997년 아시아 뮤지컬 최초로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 첫날 주연을 맡았던 김원정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성격, 두 사람의 관계, 그리고 조선의 운명을 가장 잘 드러낸 대목이 환궁 장면이라고 했다. 1882년 임오군란 때 피신한 황후가 살아 돌아오자 고종이 감격에 겨워 복받치듯 애정을 쏟아낸다. “거칠고 사나운 폭도에 쫓겨/ 거친 들을 헤매던 가여운 그대이제야 그대를 다시 또 맞으니/ 꿈에서 깨인 듯 구름 걷힌 듯안심하시오.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않으리다.” 그러자 황후는 단호하고도 위엄 있는 음색으로 이렇게 받아 노래한다. “이제 국왕의 권위 되찾고/ 외세 각축을 방비하소서.”즉 황후에게는 절절한 사적(私的) 애정보다는 국왕의 권위와 국가의 종묘사직이 더 중했던 것이다. ● 명성황후는 “가여운 그대” 아니었다 왜 난데없이 명성황후냐고? 현 정치상황과 전혀 관계없다. 내 젊은 연극기자 시절 탄생한 작품이라 내겐 기억도, 사연도 각별할 뿐이다(마침 12월부터 30주년 기념공연이 시작된다). 원작 희곡 ‘여우사냥’을 쓴 이문열은 25주년 기념공연 무렵 한 인터뷰에서 “마음먹고 매달리면 질기기가 쇠심줄 같은 친구(연출가 윤호진)가 등 떠밀어 쓴 작품”이라며 “명성황후에 대한 애정이 없어 처음엔 곤혹스러웠다”고 했다. “일본 자료와 달리 영미권 자료는 명성황후에 우호적이라서 도움이 됐다. 하기사 증오도 문학생산의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증오도 열정이다.”그렇게 그려진 황후의 캐릭터는 뛰어난 지략으로 “전하를 위해, 만백성 위하여, 이 한 몸을 바치리다”던 ‘조선의 잔다르크’다. 선교사이자 여의사로 1889년 언더우드 목사와 결혼해 15년간 조선에 살았던 언더우드 부인도 ‘폭넓고 진보적인 정책에 탁월성을 보였고 애국적이었으며 또 조국의 최대 이익에 헌신했고 동양의 왕비들에게 기대되는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백성에게 이익을 주었다’고 조선견문록 ‘상투의 나라’에 썼다. ● “짐이 근심하면 황후는 대책을 세워주었다” 이런 황후를 고종이 깊이 의지한 것은 당연했을 터다. 고종은 ‘어제행록’에 이렇게 적었다. ‘순간공(황후의 부친 민치록)에게서 글을 배웠는데 두세 번만 읽으면 곧 암송하였다…(중략) 슬기로운 지혜는 타고난 천성이어서 기미를 아는 것이 귀신같았다. 어려운 때를 만난 다음부터는 더욱 살뜰히 도왔으므로 짐의 기분이 언짢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아침까지 기다리고 앉아 있었으며 짐이 근심하고 경계하는 것이 있으면 대책을 세워 올려주었다.’(고종실록 1897년 11월 22일)고종은 인사문제부터 외교 전략에 이르기까지 정치 전반에 걸쳐 뛰어난 정치력을 보여준 황후를 훌륭한 내조자로 회상하고 있다(이희주 ‘명성황후 평전’). 이런 왕과 왕비의 관계는 당시 백성들 사이에도 소문이 파다했던 모양이다. 지식인의 야사(野史)로 볼 수 있는 황현의 ‘매천야록’은 1874년, 그러니까 꼭 150년 전 고종이 친정을 시작하던 해 이렇게 썼다. ‘황후는 총명하고 민첩하며 권변(權變)의 계략이 풍부하여 항상 임금의 측근에서 임금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필했다. 처음에는 임금에 의지해서 사랑과 미움을 나타냈지만 시일이 지남에 따라 제 마음대로 방자함이 날로 심해졌으며 임금이 도리어 제재를 받는 바가 되었다.’ ● 상소문을 당일 받아볼 만큼 권력 공유명성황후가 남긴 한글편지 146통을 분석한 장영숙 상명대 계당교양교육원 교수의 최근 연구를 보면 구체적 실상을 알 수 있다. 1882년 임오군란 직후부터 1894년 동학농민혁명 시기에 주로 생산됐는데 인사와 매관매직 문제가 가장 많고(47.3%) 다음이 국내 정치(7.5%), 국제문제와 대원군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는 내용이 각각 4.1%, 나머지는 일상적 안부편지였다(2024년 ‘명성황후의 국정 개입 실태와 권력 행사 방식 연구’). 주목할 만한 점은, 황후가 ‘조정에 올라오는 상소를 당일에 바로 받아볼 정도로 정치적 현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883년 임오군란 위기를 극복했다며 국왕 내외의 공덕을 칭송하는 성대한 행사를 열자는 상소에 형조참판이 반대상소를 올리자 황후가 “편지의 구절이 몹시 통분하다”며 분노를 표출하는 식이다. 이는 명성황후가 제가문(諸家文)과 사기에 통달해 백관의 장주(章奏·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던 글)를 친히 봤다는 당대의 소문이 한갓 떠도는 얘기가 아니었음을 실증한다.정치문제에 개입해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은 물론이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급진 개화파 박영효를 국왕 편으로 끌어들이려 애썼던 것을 비롯해 황후는 외국공사의 동향과 청국 주요 행사를 챙기는 등 기민하게 대응했다. 이런 권력행사와 정치참여는 고종의 내략 위에 행해졌다는 점에서 그들은 권력을 공유했던 운명공동체였다는 분석이다.● 정치개혁은 왕권제한과 왕후 관여 금지 꼭 130년 전 시작된 갑오개혁(1894.7~1896.2)은 조선이 명나라를 모델삼아 500년에 걸쳐 구축한 주자성리학 봉건체제가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모델로 하는 근대국가 체제로 전환되는 분수령이었다(함재봉 ‘한국사람 만들기Ⅳ’). 특히 정치부분에선 군주권 제한이 핵심인데 그 일환으로 정부조직개편과 함께 왕실개혁이 이뤄졌다. 조선왕조는 전통적으로 궁부일체론(宮府一體論), 즉 궁중과 부중이 공(公)의 가치로 일체가 돼야 한다고 믿어왔다. 왕실개혁의 요체는 궁중과 부중의 분리, 즉 왕실과 국가의 구별이었다(2024년 양진아 논문 ‘개혁기 왕실 개혁 추진과 왕실 관련 법령의 구상’).1894년 12월 고종이 발표한, 한국사 최초의 근대적 헌법이라고 볼 수 있는 홍범14조 중 다섯 조문이 왕실개혁에 관한 것이다. 일단 4조까지만 봐도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다. 제1조 청국에 의존하는 생각을 끊고 자주독립의 기초를 세운다.제2조 왕실 전범(王室典範)을 작성하여 대통(大統)의 계승과 종실(宗室)·척신(戚臣)의 구별을 밝힌다.제3조 국왕(大君主)이 정전에 나아가 정사를 친히 각 대신에게 물어 처리하되, 왕후·비빈·종실 및 척신이 관여함을 용납지 않는다.제4조 왕실 사무와 국정사무를 분리하여 서로 혼동하지 않는다.● ‘왕후 국정관여 금지’ 삭제… 근대화 개혁 실패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895년 삼국간섭이라는 암초를 맞는다. 조선이 러시아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자 일본은 왕실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왕후의 정치 관여를 금지하는 구절을 삭제했다. 이로써 왕실개혁은 실패로 돌아갔다.근대화를 간단히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핵심은 개인의 자유와 소유권이고, 왕권의 제한이라고 본다. 1729년 영국을 방문한 몽테스키외는 “법으로 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데 성공한 영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국민”이라고 감탄했다. 집단이 아닌 개인이 주체가 되고, 과학적 사고와 합리성이 전통적 사고를 대체하며, 자본주의가 발흥해 궁극적으로는 산업화로, 정치적 민주화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박지향 ‘근대화의 길’). 근대성이 처음 구현된 곳이 영국이고 아시아에선 일본이었다.갑오개혁 실패 뒤 1896년 창설된 서재필의 독립협회는 민(民)의 계몽에 힘쓰며 왕권의 제도적 제한을 주장했다. ‘윤치호 일기’에 따르면 이런 서재필을 고종은 증오했다. 1897년 10월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등극한 고종은 독립협회를 강제해산시켰다. 독립협회 복설을 요구한 만민공동회 역시 실패로 끝났다. 1899년 황제는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를 통해 스스로 무한 군권(君權)을 보유한 전제군주임을 선언했다.● 제왕적 대통령제… 대한민국은 근대국가인가근대국가를 꿈꾼 개혁세력이 극복하지 못한 장애물은 외세의 각축이나 근왕주의 세력의 공격만이 아니었다. 백성의 심성에 깊이 각인된 국왕에 대한 전근대적 충성심과 왕권에 대한 동경이라고 김종학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분석했다(2017년 논문 ‘국=가와 국/가; 왕권을 둘러싼 정치투쟁과 대한제국).그래서 궁금한 것이다. 대통령제에 대한 집착이 혹시 우리 심성에 남아 있는 왕권에 대한 동경은 아닌가. 제왕적 대통령과 선출되지 않은 그 일가에 대한 충성심이 우리가 극복하지 못한 전근대성은 아닌가. 대한민국은 과연 근대적 국가인가. 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 20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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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대통령은 ‘패밀리 비즈니스’가 아니다

    국민으로서 일종의 병(病)에 걸린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세대 수시모집 논술시험 문제 유출 논란과 관련해 15일 교육 당국에 엄정한 조치와 철저한 문책을 주문했다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한 사람만 무혐의 처분이 예고되는 판국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싶어서다. 김건희 여사가 ‘공천 개입 의혹’ 핵심 관련자인 명태균 씨에게 보낸 카카오톡 기사를 본 뒤 병이 깊어진 게 분명하다. “철없이. 떠드는, 우리오빠, 용서해주세오” “무식하면 원.래그래요”. 대통령이 뭔 말을 해도 권위가 느껴지지 않는, 이름하여 ‘무권위증’이다. 대통령실에선 그 ‘오빠’가 김 여사의 친오빠라고 서둘러 밝혔다. 김 여사와 친오빠가 대선캠프에 관여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윤 대통령도 대선 기간 중 ‘개사과’ 논란이 벌어지자 “원래 선거는 시쳇말로 패밀리 비즈니스라고 하지 않느냐”고 했다. 하지만 명태균은 김 여사의 오빠가 정치를 논할 상대는 아니라고 했다. 며칠 전 한 방송에서 그는 “여사가 물어봐요. 우리 오빠가 상태가 어떠냐고”라고 말함으로써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을 ‘오빠’로 칭한다는 걸 시사했다.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을 어떻게 보는지는 세상이 다 안다. 대선 전 김 여사 측이 MBC 상대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 ‘7시간 통화’ 발언이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저 사람 완전 바보다.” 중장년 남자들은 자신들도 집에선 그런 대접 받는다며 낄낄 웃었다. 그러나 공(公)과 사(私)는 다르다. 문재인 정권 때 북에서 삶은 소대가리 운운한 것과도 차원이 다른 소리다. 공직 활동도 부인이 챙겨줘야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라면, 나라가 무너질 일이다. 그러니 선임행정관이 대통령을 꼴통으로 여기고, 공직사회는 움직이지 않으며, 민생경제는 어려워지는데 대통령은 의대 증원 2000명 같은 정책이나 불쑥 내미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년 반 동안의 많은 의문이 풀리는 듯하다. 김 여사는 비서실에 ‘김 여사 라인’을 두고 국정을 챙길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제2부속실은 둘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와 제2부속실을 설치한다지만 달라질 것도 없다. 김 여사가 지금 같은 활동을 계속한다면 말이다. 문제는 전임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 경험했듯 우리 국민은, 헌법은 사인(私人)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김 여사가 아무리 선의로 “막상 대통령이 되면 좌나 우나 그런 거보다는 진짜 국민들을 먼저 생각하게끔 되어 있다”고 해도 국민은 그런 대통령 부인을 용납하지 않는다.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에게서 그게 결국 국정농단으로, 사익 추구로 이용된다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벌써 국정감사장마다 김 여사 관련 업체 특혜 의혹과 구린내가 진동을 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을 지낸 마키노 요시히로의 2017년 글을 굳이 인용하면, 한국인이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그토록 분개한 이유는 학식도 공적 직함도 없는 최순실 등 대단할 것 없는, 자격 없는 자들이 불공정한 방법으로 양반 노릇을 했기 때문이었다. 김 여사의 공적 활동에 다수 국민이 공분을 금치 못하는 데는 아내 역할만 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학력 위조 전력이 있는, 주가조작 의혹이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검찰총장을 지냈고 대선 출마에 나서면서 ‘공정과 상식’을 내건 윤 대통령이 부인 문제에 단호할 필요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집권 세력은 11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1심 유죄 판결만 나오면 전세가 역전되리라고 믿고 싶겠지만 이런 식으로 2년 반을 버티긴 쉽지 않다. 한번 탄핵을 겪은 우리 국민이 또다시 탄핵 사태를 원치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야권은 더 세진 ‘김건희 특검법’을 들이밀 것이고, 윤 대통령이 또 거부권으로 맞서면 보수층도 더는 참아주기 어렵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 하면 김 여사는 흡족할지 몰라도 대통령 부인 한 사람 지키기 위해 나라가 흔들려선 안 될 일이다. 윤 대통령은 냉정해지기 바란다. 도이치모터스 사건만이라도 철저히 수사받게 하는 것이 오히려 김 여사를 구하는 길일 수 있다. 임기 반환점을 맞아 김 여사 라인 제거를 포함한 대통령실 전면 개편을 발표해 국민 앞에 떳떳해지고 새출발 함으로써 나라를 구했으면 한다. 윤석열 정부를 예고한 ‘7시간 통화’에서 김 여사는 “일반 국민은 바보”라고 했다. 그러나 국민은 ‘사인 김건희 씨’만큼 바보가 아니다. 대통령은 패밀리 비즈니스가 아니어야 한다.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 20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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