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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경임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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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1~202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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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우경임]‘연금 개혁’ 국회 아닌 대통령이 하면 된다

    국민연금 개혁안을 논의하던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문을 닫은 셈이 됐다.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21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조급하게 하기보다 더 충실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언급했고 막판 여야 합의 가능성이 사라졌다. 1년 10개월 동안 공전을 거듭한 국회 연금특위는 무용론이 나올 정도다. 보험료율(내는 돈)을 13%까지 올리는 데는 합의했으나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43%로 올릴지, 45%로 올릴지를 두고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단 2%포인트 차이. 그래도 여야 의견이 이렇게 근접한 적이 없었다. 극적 타결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었지만 대통령 기자회견 이후 여야 협상이 중단됐다. 과거 연금 개혁 과정에선 정부가 엑셀을 밟고, 국회가 브레이크를 걸곤 했는데 이번엔 야당이 “재를 뿌렸다”고 반발했다.개혁 구호만 있고, 의지는 안 보여 이제 연금 개혁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진의가 헷갈린다. 2022년 2월 여야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대통령은 “정권 초기에 이걸(국민연금 개혁) 해야 한다”고 했고, 대선 공약으로는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해 연금 개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지금껏 어느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비판 탓인지 기자회견에선 “임기 내 국회가 고르면 될 정도의 충분한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약속드렸고 지난해 10월 말 공약을 이행했다”고 했다. 24개 시나리오를 담은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지칭한 것이라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통령의 발언 그대로 “6000쪽에 가까운, 책자로 30권 정도의 방대한 자료”일 뿐이었다. 역대 정부마다 연금 개혁이 실패한 것은 고양이 방울이 아니라,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사람이 없어서였다. 국회 연금특위에 참가한 한 전문가는 “이번 연금개혁만큼 온 우주가 응원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2018년 8월 문재인 정부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 각각 ‘11%-45%’, ‘13%-40%’인 두 개의 초안을 내놓았다. 여론이 들끓었고 연금 개혁은 없던 일이 됐다. 역대 정부마다 이처럼 연금 개혁 실패가 반복되자 연금기금 재정 고갈에 대한 국민적 학습이 이뤄졌다. ‘더 내는 안’에 대한 저항도 줄었다. 야당과 노동계가 보험료율 4%포인트 인상에 동의한 것은 상당한 진전이다.완벽한 개혁이냐, 신속한 개혁이냐 국회 연금특위안은 재정안정성 측면에서 분명 결함이 있다. 연금기금 소진 시점을 지금보다 8년 늦출 뿐이고, 재정 적자 감축 폭도 적다. 대통령이 우려한 대로 최소 70년을 끌고 갈 계획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국회에 사회적 합의를 의뢰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연금 개혁안을 제출하면 된다. 꺼져 가는 개혁의 불씨도 살릴 수 있다. 대통령 임기 내내 여소야대 정국일 텐데 다음 국회로 미룰 이유가 있나. 만약 정부안을 따로 낼 생각이 없다면, 남은 2주 동안 국회가 연금특위안을 합의해 처리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완벽한 개혁을 할 수 없다면 신속한 개혁이 차선이다. 이번에 보험료율을 13%로 올린다면 26년 만의 첫 인상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전부 은퇴하기 전에 보험료율을 올려야 연금 기금 적립액을 늘릴 수 있다. 이번에도 실기하면 선거 일정을 감안할 때 최소 2, 3년은 그냥 흘러갈 것이다. 윤 대통령은 14일 “개혁은 적을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정부로선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 개혁이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는데 연금 개혁까지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부담일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개혁 과제 중 연금 개혁만큼 진척된 과제는 없다. 이조차 결단을 망설인다면 다른 개혁은 정말 수사(修辭)로 끝나고 만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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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4년 만에 재등장한 ‘디지털 교도소’

    주로 성범죄자 신상 공개로 응징에 나섰던 웹사이트 ‘디지털 교도소’는 2020년 n번방 사건으로 사회적 공분이 일던 당시 개설됐다. 협박에 시달리다 성착취물을 찍게 된 여성들은 얼굴을 가리고 숨어 지내며 사회적 죽음을 선고받는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 또는 구매한 범죄자들은 버젓이 거리를 활보했다. 도대체 법은 어디 있느냐는 여론이 들끓었고 이를 계기로 등장한 것이 디지털 교도소다. ▷디지털 교도소는 무고하게 신상이 공개된 대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엉뚱한 피해자가 생겨나자 폐쇄됐다. 그런데 4년 만에 다시 문을 열어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부산 유튜버 살인사건 피의자, 여자 친구를 살해한 의대생 등의 정보를 공개하고 추가 제보를 받는다고 한다. 범죄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처벌인 신상 공개를 통해 피해자를 위로하겠다고 주장하지만 댓글을 통해 피해자의 신상이 유포되는 등 이미 그 부작용이 크다. ▷요즘 온라인에선 사적 제재를 다룬 콘텐츠가 넘쳐난다. 피해자는 보호하지 못한 채 가해자에게만 관대하다는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을 양분 삼아 확산되고 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의 개인 신상을 공개하는 등 언론에 보도된 범죄자의 신상을 낱낱이 공개한 일도 있었지만, 소액 사기범을 추적하거나 불륜 배우자와 그 상대를 찾아다니며 낙인을 찍기도 한다. 주차 악당이나 난폭 운전자 등도 쉽게 마녀재판에 오른다. ▷법이 주먹보다 멀고, 느린 건 인간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범죄 사실을 돌다리 두드리듯 검증해야 억울한 누명을 쓰는 피해자를 줄일 수 있다. 대전 교사 사망 사건에서 악성 민원 학부모의 신상이 공개되자 상호만 같은 다른 가게가 망할 뻔했다. 즉각적인 심판과 응징은 속은 후련하겠지만 엉뚱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 특히 사적 제재가 돈벌이가 되면서 양산되는 측면이 있다. 최근 마약 운전으로 행인을 친 롤스로이스 뺑소니 사건 가해자에게 신상 공개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3억 원을 챙긴 유튜버가 구속됐다. 4년 전 디지털 교도소 운영자는 암호화폐로 후원을 받았다. 공익을 앞세웠던 그는 사실 성범죄에 연루된 마약 사범이었다. ▷교도소는 형량을 채우면 나올 수 있지만, 디지털 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되면 영원히 갇히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거나, 묻지 마 범죄로 인생이 무너진 피해자들의 심정이야 오죽하랴 싶다. 국민 법 감정과 거리가 있는 낡은 양형 기준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사법적 절차를 밟지 않은, 자의적 기준에 따른 신상 공개는 의도와 달리 2차 피해를 부를 수 있는 범죄 행위다. 개인적인 단죄가 범람하면 우리 사회가 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는 자각이 필요하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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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세 살 조기교육 아홉 살까지만 간다

    조기교육 나이가 얼마나 빨라졌는지 ‘4세 고시’를 보면 알 수 있다. 4세 고시는 유명 영어유치원 입학을 위한 레벨 테스트. 의대 입학이라는 종점을 향한 달리기가 이때부터 시작된다. 알파벳 읽고 쓰기, 간단한 영어 회화 등이 출제되다 보니 늦어도 3세부터 영유 입학을 위해 프렙(Prep·준비)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아야 한다. 지난해 동아일보가 초1 자녀 학부모 1만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0∼4세에 영어 사교육을 시작했다는 응답이 15.9%나 됐다. 국어는 15.4%, 수학은 13.3%였다. ▷세 살에 배운 영어, 수학 평생 갈까. 그런 믿음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팀이 유치원 입학 전 조기교육을 연구한 기존 논문들을 리뷰했더니 단기적으론 학업 성과가 올라갔지만 장기적인 효과를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가 부족했다. 미 테네시 유치원 조기교육에 참여한 3∼5세 유아들은 초등 3학년(9세)까지만 읽기, 쓰기 등에서 대조군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 이후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미 정부 유아 교육 프로그램 헤드 스타트(Head Start)에 참여한 3, 4세 유아들 역시 초3부터는 더 나은 학습 성취도를 보이지 않았다. ▷이를 설명하는 용어가 ‘페이드 아웃(fade-out)’ 효과다. 알파벳, 구구단 외우기 같은 인지적인 학습은 반복 훈련으로 금세 효과가 나타난다. 일찍 사교육을 받은 아이가 천재 소리를 듣는 이유다. 그런데 누구나 알파벳, 구구단을 외우는 나이가 되면 선행 학습의 효과는 빠르게 사라진다. ▷조기교육이냐, 적기 교육이냐. 교육계의 오래된 논쟁은 뇌과학이 발달하며 적기 교육으로 기울고 있다. 유아기엔 인성과 사회성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발달하고, 초등학생 시기엔 언어를 담당하는 측두엽과 수학 등 논리를 담당하는 두정엽이 발달한다. 그래서 4∼7세 시기에는 인지 능력보다 정서 능력을 자극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앞선 논문에서 다룬 미 테네시 유치원 유아들의 경우, 학습적인 측면에서 조기교육의 긍정적 효과는 자라면서 사라졌다. 반면 학교에서 징계를 받는 등 사회성 측면에서 부정적 효과가 관찰됐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에게 전력 질주를 시켜봤자 소용없듯이 영유아기 과도한 학습은 오히려 뇌 발달에 해로울 수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뛰어난 재능을 갖고 태어나 조기교육으로 단련돼 이른 나이에 재능을 꽃피우는 ‘천재 신화’를 동경한다. 하지만 마흔 넘어 첫 소설을 낸 고 박완서 작가나 시인을 꿈꾸며 고교 중퇴를 했다가 39세에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 등을 보라. 인간의 수명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아이의 인생을 일찍 완성하려는 부모의 조바심이 자칫 아이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4-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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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필수 의료’ 붕괴의 또 다른 주범, 실손보험

    “실비(실손의료비 보험) 있으세요?” 동네 병원에 가면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꼭 묻는 말이다. 실손보험은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자기부담금과 비급여 진료비를 보상해준다. 허리가 아플 때 받는 도수치료, 감기에 걸렸을 때 맞는 수액주사 등이 바로 비급여 진료다. 환자로선 실손보험이 없으면 치료의 질이 달라지는 건지, 돈이 안 돼서 반갑지 않단 건지 영 껄끄러운 질문이기도 하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실손보험이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을 초래한 원인이라고 보고 개선을 논의한다고 한다. ▷건보가 가격을 정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는 병원이 부르는 게 값이다. 가격이 비싸면 수요가 줄기 마련이지만 의료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국민보험이 된 실손보험 때문이다. 실손보험 가입자 수는 2010년 2080만 명에서 2022년 3997만 명으로 늘었다. 그 사이 비급여 진료비는 32조 원으로 거의 두 배가 됐다. 건보가 부담하는 급여 진료비보다 환자 개인이 내는 비급여 진료비가 빠르게 늘어난 결과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개인 의료비 부담이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힌다. ▷실손보험이 창출한 고가의 비급여 시장은 필수 의료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소득과 워라밸 격차가 점점 벌어지면서 응급실과 수술실에서 사명감으로 버티던 의사들 중 상당수가 자괴감을 느끼고 개원을 선택했다. 2020년 진료과목별 연간 평균 임금을 보면 안과 의사 4억5837만 원, 정형외과 4억284만 원, 재활의학과 3억7930만 원 순이었다. 모두 실손보험에 기대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하는 진료과목인데 의료비가 비싼 미국 의사보다 수입이 높다고 한다. ▷건보는 빈약한 재정에서 출발했다. 그렇다 보니 급여 보장 항목이 적고, 진료비는 원가에 못 미치도록 설계됐다. 병원은 ‘3분 진료’로 환자를 많이 보거나 비급여 진료를 늘려 이런 손해를 벌충해 왔다. 정부가 메스를 대려는 혼합진료가 대표적이다. 무릎이 아파 병원에 갔을 때 의사로부터 진찰받고, 급여 물리치료와 비급여 도수치료를 섞어 받는 것이 혼합진료이다. 이를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 개원가에선 의대 증원보다 더 반발 강도가 세다. ▷비급여 진료 시장은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가 만들어 낸 시장이다. 보험업계는 도수치료, 렌즈 삽입 백내장 수술 등을 보상하는 상품을 출시해 경쟁적으로 가입자를 늘려 왔다. 이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 과잉 진료를 하지 않는 의사나, 의료 쇼핑을 하지 않는 환자는 바보가 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실손보험을 이대로 두면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 얼마나 불어날지 알 수 없다. 서둘러 바로잡지 않으면 필수 의료를 살리겠단 의대 증원의 효과도 반감될 것이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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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의료 공백 탓이 아닌가[오늘과 내일/우경임]

    전공의 집단 사직 당시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보건의료 재난위기경보 ‘심각’을 발령했고 대한의사협회는 “의료 대재앙을 맞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의료 공백 사태 두 달이 되어가는 지금, 우리 사회는 예상보다 조용하다. 그 사이 응급실을 표류하다 사망한 환자가 여럿이다. 11일에는 부산에 사는 50대 심혈관 질환자가 병원 10곳 이상에서 응급실 수용을 거절당한 끝에 사망했다. 지난달에는 충북 보은군에서 도랑에 빠진 3세 여야와 충북 충주시에서 전신주에 깔린 70대 여성이, 그보다 한 달 전에는 대전에서 80대 심정지 환자가 병원마다 이송을 거부당했다. 그리고 사망했다. 신문에 보도된 사례만 추렸는데 이렇다. 정부도, 의사도 “전공의 이탈 탓 아냐”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전공의 이탈로 응급실 수용이 어려웠다며 울분을 토했다. 여기서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팽팽히 대치하던 정부와 의료계가 “전공의 이탈 탓이라 볼 수 없다”며 한목소리를 낸 것이다. 정부는 매번 전공의 이탈의 영향을 조사하겠다고 했지만, 공식적으로 그 결과를 발표한 적이 없다. 의료계는 “이송이 됐더라도 살릴 수 없었던 환자”라고 주장한다. 정부와 의사가 ‘당연한 죽음’이라는데 환자가 이를 뒤집을 방법은 없다. 부산, 대전까지 의료 취약 지역이라 봐야 하나 싶지만, 지역일수록 응급 의료가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 수도권 대학병원보다 지역 중소병원이 전공의 비율이 낮아 이탈의 영향이 덜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죽음에 정말 의료 공백의 영향은 없는 것일까. 응급실이야말로 싼 인건비로 야근시킬 전공의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구조다. 가뜩이나 열악한 지역 의료 시스템에 전공의 이탈로 과부하가 걸렸을 수도, 응급 환자의 마지막 보루인 수도권 대학병원들이 응급실을 축소해 이송받을 여력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정부나, 의료계나 이런 가능성은 배제한 채 어쩔 수 없던 일이라고 한다. 환자들의 증언은 정부나 의료계의 주장과는 다르다. 15일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에게 A중소병원에 입원 중인 만성 신부전증 환자의 전화가 걸려 왔다. 혈액 투석에 문제가 생겼다며 대학병원에 가라고 하는데 진료받던 B대학병원에선 전공의가 없다며 응급실서 받아주질 않는다고 했다. 이 병원에선 나가라고, 저 병원에선 오지 말라 한다며 울먹였다. 김 대표는 전공의가 없어 수술이 밀렸다는, 입원이 안 된다는 전화를 날마다 받고 있다. 통계도 환자들의 증언을 뒷받침한다. 소방청에 따르면 전공의 이탈 이후 119구급차가 응급실까지 갔다가 수용을 거부당한 재이송 사례가 평소의 2.5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의료 공백 사태의 책임을 피하고 싶은 정부는 의료 체계에 탈이 났다고 말하지 않는다. 의료계는 행여 의대 증원의 필요성이 부각될까 응급실은 무탈하다고 강변한다. 언제는 세계 최고 의료라더니 사실은 응급실을 표류하다 죽는 일이 일상이라고 자인하고 있는 셈이다. 고작 숫자를 두고 정부와 의사들이 힘겨루기 하는 사이 환자들은 “살려 달라”고 절규한다. 전공의는 복지부 차관을 고소했지만, 의사에게 생명을 맡긴 환자들은 치료에 차질이 생길까 의사를 고소할 수 없다. 아픈 몸을 이끌고 시위를 할 수도 없다. 치료 시기를 놓쳐 죽은 환자는 더욱이 말이 없다. 오늘의 환자 희생 강요하는 내일의 개혁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의료 개혁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했다. 의료계 반응은 싸늘하다. 극적인 해결을 고대했던 환자들은 또 절망했을 것이다. 의대 증원을 강행하는 정부도, 무조건 철회만 외치는 의료계도 “환자를 위해서”라고 한다. 내일의 환자를 위해 오늘의 환자는 희생당해도 되는가. 우리 사회 강자끼리 싸우는 동안 정작 약자인 환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다. 의료 공백은, 그래서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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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따로 자야 금슬 좋다” 수면이혼 유행

    “나는 내 방에서 잔다. 남편은 남편의 방에서 잔다. 그 사이에 둘이 같이 쓰는 침실이 있다.” 2015년 음악가 벤지 매든과 결혼한 할리우드 배우 캐머런 디아즈는 남편과 각방을 쓰는 사실을 고백해 화제가 됐다. 그는 부부가 각방에서 자는 이른바 ‘수면 이혼’이 “수면의 질을 높이고 부부 관계를 돈독하게 한다”고 했다. 코를 골거나 잠버릇이 심한 배우자를 억지로 참고 자느니 침대나 침실을 분리해 따로 자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미국에서 수면 이혼이 유행한다고 5일 보도했다. 미국 수면의학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성인 남녀 3명 중 1명은 수면 이혼 상태였다. 연령대가 낮을수록 이 비율이 높아 밀레니얼 세대에선 43%에 달했다. 이어 X세대의 33%, 베이비붐 세대의 22%가 각방을 쓴다고 했다. 사실 부부가 한방을 쓰는 문화가 오래되진 않았다. 20세기 들어 산업화·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생겨난 문화일 뿐, 이전에는 부부가 각방을 쓰는 문화가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부부의 속사정도 비슷하다. 한 결혼정보업체가 부부간 수면 환경을 조사했더니 3명 중 1명이 각방을 쓰거나, 한방에서 자더라도 침대를 따로 썼다. ‘수면 궁합’이 상극인 부부들이 있다. 남편 코골이가 너무 심하다며 여행 가서 호텔 방을 2개 잡는 사람도 있다. 늘 에어컨을 켜는 남편과 온수매트를 안고 자는 아내는 같이 자기 힘들다. 잠귀가 밝은데 밤새 뒤척이거나 화장실을 자주 가는 배우자랑 자다간 잠을 설친다. 수면 리듬이 현저히 다른 부부도 있다. ▷잠을 잘 자야 배우자에게도 너그러워진다. 수면이 부족하면 사소한 일에 화가 나고 공감 능력이 떨어져 배우자와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 건강에도 해롭다. 매일 밤 7, 8시간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당뇨병, 뇌·심혈관 질환 및 치매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수면 이혼을 시작한 미국 부부의 52%가 수면의 질이 개선됐다고 보고했고, 매일 평균 37분을 더 잤다. 따로 자기를 추천하는 전문가들은 “수면 이혼이 아니라 부부끼리 수면 동맹을 맺는다고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부부 일심동체’라거나 ‘부부가 싸워도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는 결혼 주례사를 듣는 우리나라에선 부부가 각방을 쓰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부부 사이가 소원해진 것 아닌지 실눈을 뜨고 보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돌연사 위험이나 심리적 고립감이 커지므로 같이 자는 것이 낫다는 반박도 한다. 하지만 핵가족을 넘어 핵개인이 출현한 시대다. 서로 억지로 맞춰 살거나 이를 견디지 못해 관계를 단절하느니, 개인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요즘 시대에 맞는 부부 관계인 것 같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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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배달비 0원’ 출혈경쟁, 그 끝은?

    배달앱 시장을 삼분하고 있는 배달플랫폼 간 점유율 전쟁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쿠팡이츠는 지난달 ‘배달비 0원’을 선언했다. 업계 막내의 도전에 배달의민족은 “이달부터 우리도 0원”이라며 응수했다. 쿠팡이츠는 와우 멤버십(월 4990원) 고객을 대상으로 무료 배달을 하고, 배민은 동선이 겹치는 곳을 묶어 배달하는 알뜰배달에 무료 혜택을 준다. 지난달 업계 2위 자리를 뺏긴 요기요 역시 배달비 무료 혜택을 받는 멤버십인 ‘요기패스X’의 월 구독료를 2900원으로 2000원 내렸다. ▷지난해 배달 음식 온라인 거래액은 26조4326억 원. 2017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줄었다. 코로나19 특수가 끝난 데다 음식값 못지않은 배달비에 배달앱을 지워버린 사람이 늘었다. 한껏 콧대가 높아졌던 배달플랫폼들이 시장이 정체되자 ‘배달비 0원’을 선언하고 고객을 사수하는 생존 게임을 시작했다. 원래 배달비는 소비자와 음식점주가 절반씩 부담한다. 배달플랫폼에서 소비자 몫을 부담해 떠나는 소비자를 붙잡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출혈 경쟁의 원조는 미국 기업 아마존이다. 당장의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가격을 낮추는 ‘제로(0) 수익’ 전략으로 소비자와 판매자를 빠르게 흡수했다. 일단 사람이 모이도록 해 시장을 독점한 다음 비용을 회수하는 전략이다. 그 결과가 ‘빅테크’로 성장한 아마존이다. 지난해 10월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아마존을 상대로 반(反)독점 소송을 제기하며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남용해 경쟁자를 퇴출시키고, 소비자와 판매자에게 과도한 비용을 부담시켰다”고 했다. ▷배달앱 시장의 90% 이상을 배민, 요기요, 쿠팡이츠가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시장 지배력이 커지면서 음식점주들은 “팔면 팔수록 손해”라고 호소한다. 지난해 음식점주가 부담하는 건당 배달비는 평균 3473원이었다. 2015년 중개수수료 0원을 내세웠던 배민은 현재 음식값의 6.8%를 수수료로 받고 있고, 2019년 중개수수료 1000원으로 시작했던 쿠팡이츠는 음식값의 9.8%를 떼는 요금제를 내놓았다. 부가가치세를 포함하면 음식점주는 각각 7.48%, 10.78%를 부담해야 한다. ▷소비자도 ‘배달비 0원’ 경쟁 초기에는 참았던 야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배달앱 삼국지가 소비자의 편익으로 결론 날지는 의문이다. 배달비는 슬금슬금 올라 기본이 3000원이고 2km가 넘어가면 7000∼9000원까지 뛴다. 음식점주들이 배달앱의 높은 수수료를 전가하기 시작하면서 외식 물가도 무섭게 올랐다. 앞으로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배달앱이 출현하면 더한 횡포를 부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 경쟁이 사라지는 시장에서 소비자는 ‘호갱’이 되기 마련이다. 그간의 혜택까지 곱절로 얹어서.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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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사과, 대파 이어 양배추… 두더지 잡기 된 먹거리 물가

    쌈직한 가격에 풍성한 밥상을 차리기엔 양배추만 한 채소가 없다. 크기도 큼직하고 절여 먹어도, 삶아 먹어도, 볶아 먹어도 맛있는 ‘만능 채소’다. 덕분에 흙대파가 금(金)대파가 되고 상추 낱장을 세면서 먹는 수상한 시절에도 듬직하게 밥상을 지켜 왔다. 그랬던 양배추마저 귀해질 모양이다. 지난달 30일 서울시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양배추(특급) 8㎏당 가격은 1만6570원으로 일주일 전인 23일(8696원)에 비해 거의 두 배가 올랐다. 양배추 한 통당 소매 가격은 전국 평균 5300원. 양배추 한 통 값이 지난해 시간당 최저임금(9860원)의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2월 사과, 배 등 과일 물가가 3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차례상 차리느라 가계가 휘청했다. 정부가 할인쿠폰을 뿌리며 과일값이 겨우 진정되는가 싶더니 이번엔 채소값이 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흙대파, 애호박, 적상추가 이달 초에 비해 11∼52%가량 올랐다. 작황이 부진해 올봄 출하량이 급감한 채소들이다. 덩달아 밀가루, 과자, 설탕, 소금 등 가공식품 가격도 오르고 있다.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는 듯하다. ▷인플레이션은 실질 임금을 감소시킨다. 그 고통은 서민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주부들은 장보기가 겁나고, 식당 주인들 사이에선 곡소리가 난다. 문제는 ‘비싼 채소’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장기적인 추세라는 점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채소값이 오르는 원인으로 기상 이변, 재배 면적 감소, 국제 유가 등 비용 상승을 꼽았다. 기상 이변으로 작황이 부진한 가운데 인건비며, 유가는 오르기만 한다. 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늘고, 고령화까지 겹치면서 재배 면적 감소는 이미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전 세계가 기상 이변으로 인한 ‘푸드플레이션’(음식+인플레이션)으로 떨고 있긴 하다. 코코아, 올리브유, 감자, 오렌지 등이 자고 나면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OECD 식품 물가상승률은 10.5%였다. 한국은 농업 생산 기반이 약해진 상태에서 기상 이변까지 덮쳐 밥상 물가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민심이 술렁이자 정부는 부랴부랴 세금을 투입해 할인 품목을 늘리고, 납품 단가를 지원하는 등 물가 잡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런 일회성 대책은 시장 가격만 왜곡시킬 뿐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지속적인 농업 인구와 재배 면적 감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생산기반 구축엔 별 관심도 없던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은 대형마트를 찾아다니는 ‘보여주기 행정’에 여념이 없다. 평소에 장을 볼까 싶은 정치인들이 ‘대파값 875원 논쟁’을 벌이더니 물가 안정에 역행하는 돈풀기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이쯤이면 누가 물가를 올리고 있는지 되묻고 싶어지는 것이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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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부모에게 자녀란 ‘돈 많이 드는 인생의 기쁨’

    한국인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 그 이유야 차고도 넘치겠지만 한국인의 가치관 측면에서 이를 분석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가임기(20∼44세) 미혼과 기혼 남녀를 대상으로 출산과 자녀에 대한 가치관을 나열하고 동의하는 정도를 물은 것이다. ‘성장기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데 동의한 비율(96%)이 가장 높았다. 이어 ‘자녀를 키우며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자녀의 성장은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이다’라는 데 각각 92%, 83%가 동의했다. 부모에게 자녀란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인생의 기쁨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자녀 양육 비용이 많이 든다’는 데 동의하는 비율은 혼인 여부나 성별에 따른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자녀의 성장이 인생의 기쁨’이라는 데는 기혼 남녀가 높은 비율로 동의했다. 반면 미혼 남성은 82%, 미혼 여성은 77%만 동의했다. ‘자녀=기쁨’에 동의하지 않으므로 출산을 기피한다는 해석도, 자식을 낳아 봐야만 그 기쁨의 실체를 알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선후 관계는 알 수 없으나 자녀에 대한 가치관이 저출산의 변수라는 것은 분명하다. ▷자녀를 낳지 않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자녀가 기쁨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집단일수록 높았다. 미혼 여성의 21%가 자녀를 낳을 생각이 없었고, 이어 미혼 남성(13.7%), 기혼 여성(6.5%), 기혼 남성(5.1%) 순이었다. 이는 희망 자녀 수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혼 남성은 1.79명을 낳고 싶어 했고 미혼 여성은 1.43명을 낳고 싶어 했다. ▷한국에서 자녀가 주는 정서적 가치를 마음껏 누리기에는 출산과 양육에 드는 비용이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돈 먹는 하마’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자녀를 만 19세까지 키우는 데 2억5200만 원이 들 것으로 예상한 최근 조사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조사는 경제적인 부담이 해소되더라도 자녀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면 출산율이 반등하진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2021년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17개국을 대상으로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을 물었더니 13개국에서 ‘가족’을 1위로 꼽았다. 한국만 ‘물질적 안녕’이라고 답한 것과 비교된다. ▷흔히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 사랑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그 반대도 성립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식은 부모의 지위나 배움에 상관없이 절대적인 사랑을 주고, 아무 조건 없이 미숙함을 용서한다. 그런 관계를 경험하고 나면 자녀가 인생의 기쁨이라는 데 동의하기 마련이다. 전례 없는 한국의 저출산은 아이를 낳고 기르기 힘든 환경을 개선해 나가되 자녀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답도 다시 찾아야만 바뀔 수 있을 것 같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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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입 우회로’ 된 검정고시, 10대 응시생 역대 최대 [횡설수설/우경임]

    1950년부터 시행된 고졸 검정고시는 가난해서, 아파서 정규 교육에서 소외된 이들이 제2의 인생에 도전할 기회였다.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합격한 신문 배달 소년, 뒤늦게 만학의 꿈을 이룬 어머니,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장애인…. 역경을 극복한 검정고시 합격자들의 사연은 절절하고도 치열했다. 가난이나 여식(女息) 차별로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응시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 검정고시는 되레 서울 강남·서초 지역 고교 학생의 응시가 늘고 있다고 한다. ‘고교 자퇴→검정고시→수능’ 코스가 대학 진학의 우회로로 통하고 있어서다. ▷4월 고졸 검정고시에 응시한 10대 학생(13∼19세)이 1만6332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2022년 4월 1만2051명에 비하면 2년 새 35%가량 늘었다. 자퇴하고 수능에 올인한 고등학생들이 늘어난 때문으로 분석된다. 고졸 검정고시는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한국사 6과목과 선택 과목 1과목을 포함해 7과목이 출제된다. 학교 내신보다 공부할 과목이 줄고, 한 해 두 차례 응시가 가능하기 때문에 현역 고등학생이라면 어렵지 않게 합격한다. ▷특히 내신 경쟁이 치열한 서울 강남·서초 고교생들이 내신 성적이 부족하다 싶으면 검정고시를 보고 수능에 올인하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2022년 전국 고교생의 학업 중단율은 1.9%인 데 반해 서울 강남·서초 지역 고교 중에는 5%에 이르는 곳도 있었다. 상대평가 과목이 몰려 있는 고교 1학년 성적을 2, 3학년에 뒤집기 어렵다 보니 대입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판단하면 고1에 일찌감치 자퇴하는 것이다. 이듬해 검정고시와 수능을 보고 성적이 잘 나오면 대학 진학을 앞당기고, 그렇지 않으면 1년 더 공부해 수능을 한 번 더 친다.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인성 교육이나 교우 관계를 포기하고서라도 오로지 대입을 위해서만 내달리는 것이다. ▷국내에서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홈스쿨링, 대안학교, 국제학교가 늘어난 이유도 있다. 이 학교들을 졸업한 학생들이 국내 대학에 진학하려면 검정고시를 치르고 고졸 학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반복 응시도 늘고 있다 한다. 대학마다 다르지만 검정고시 성적이 95점 이상이면 보통 내신 2, 3등급을 받을 수 있다. 중위권 학생들은 반복 응시로 성적을 올린 뒤 내신 위주 수시 전형에 도전한다. ▷그 덕분에 검정고시 전문학원이나 검정고시 코스를 개설한 재수종합학원이 붐비고 있다. 부모가 매달 300만 원에 달하는 재수종합학원 비용을 댈 수 있다면, 아이는 고학의 상징이던 검정고시를 대입에 활용해서라도 학교 밖에서 길을 찾을 수 있다. 공교육이 포섭하지 못한 아이들이 사교육으로 몰려가는 동안, 여전히 학교가 전부인 아이들이 있다. 공교육이 따뜻하게 품고 제대로 가르쳐야 할 대상은 이런 아이들일 것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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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우경임]“부디 환자 곁으로 돌아오라”

    “우리 의료 제도는 급속 성장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 불합리한 부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지식인이라면 제도를 바꾸는 과정도 냉철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부디 돌아오라.” 의대 입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20대 후반∼30대 초반, 이른바 MZ 의사들이 일제히 병원을 떠났다. 부정적인 여론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1만 명 이상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자칫 사태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와 통화를 한 건 그가 23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 때문이었다. 그는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와 정책 대안을 갖고 정부와 대화하라”고 썼다. 전공의 파업에 암묵적인 지지를 보내던 의료계의 침묵을 처음 깬 것이다. 가감없이 전달하기 위해 대화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 ―공개적으로 전공의 복귀를 촉구했다. “SNS에 쓴 대로 ‘성급한 행동으로 개인에게 큰 피해가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라 안타까워서다. 정부가 보건의료재난 위기 경보를 ‘심각’으로 격상한 것은 처음이고 그만큼 큰 권한을 행사하게 되는데 후배 의사들이 이를 정확히 검토했는지 모르겠다.” 19일 처음 수련 포기를 선언한 박단 전공의협의회장은 “의료 소송에 대한 두려움, 주 80시간 근무, 최저 시급 수준의 임금 등을 견디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튿날부터 이에 공감한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내던지듯 제출했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나. “전공의들이 많으면 절반까지도 영영 안 돌아올 수 있다고 본다. 의대 증원이 계기가 됐지만, 현재 의료 시스템에 절망한 나머지 떠나고 있다고 본다. 전공의가 없으면 병원이 마비되는 상황이야말로 우리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어떤 모순인가. “지금의 전공의 수련 시스템은 우리가 북한보다 못살던 시절 만들어진 것이다. 정부도, 병원도 돈이 없으니 이들이 싼 인건비로 오래 일하도록 해서 병원을 운영하도록 했다. 2024년을 사는 전공의들에게 이 시스템을 강요한다고 통하겠나. 이런 시스템 개선은 미뤄 둔 채 대폭 증원한다고 하니 뛰쳐나간 것이다. ―그렇다고 환자를 두고 떠나는 것이 납득되진 않는다. “의사의 직업윤리라는 측면에서 환자 생사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 행동은 용인되기 어렵다. 전공의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성급했다. 유럽 의사들도 파업은 하지만 정부와 충분한 협상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대형병원 응급실, 수술실부터 비우지도 않는다.” ―증원은 필요하지 않나. “의사 증원의 필요성은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건강보험의 근본적인 수술이 병행돼야 한다. ‘저부담-저수가’로 설계된 건강보험 내에선 의료 수요가 적은 필수-지역의료부터 무너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내과 몫 뺏어 외과 챙겨 주는 식의 현행 수가제도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권 교수는 정부와 의료계가 증원 숫자에만 매몰돼 싸울 것이 아니라 낡고 오래된 보건의료 시스템을 제대로 개혁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라도 후배들이 돌아와 달라고 재차 당부했다. 정부는 어제 29일이라는 복귀 시점을 최종적으로 통보하면서도 2000명이라는 숫자는 고수했다. 앞서 대통령실은 “연간 3000명의 의사가 더 필요하다”며 “2000명은 최소 인원”이라고 했다. 공무원 책상 위에서 1000명이 줄었는데 2000명에 집착해 필수-지역 의료 개혁을 실기할 이유가 있나. 전공의 복귀의 길을 열어줘 더 이상 환자의 피해를 막는 것도 정부의 역할일 것이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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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차라리 평교사로” 기피 보직된 교감 선생님

    평교사가 교감 되기는 대기업 평사원이 임원 되는 것 못지않게 어렵다. 지난해 전국 초중고교 교원(교사·교감·교장) 수는 44만 명쯤 되는데 이 중 교감은 2.5%(약 1만1000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감이 “평교사로 돌려보내 달라”고 요청해 화제가 됐다. 현행법상 학교의 교원 정원이 주는 등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교감 반납은 불가능하다. 자진 강등은 반려됐지만 이 교감을 다시 모셔 오는 데 꽤 애를 먹었다고 한다. ▷요즘 “괜히 승진했다”라며 후회하는 교감이 많다. 과거에는 학교 살림을 총괄하던 ‘파워맨’이었던 교감의 위상과 보상이 예전 같지 않아서다. 학교 구성원이 교사뿐 아니라 강사, 행정직, 공무직 등으로 다양해지고 이들 사이 갈등이 늘었다. 연공서열이 무너져 영도 잘 서지 않는다. 중간 관리자인 교감 생활이 여간 고달파진 것이 아니다. 여기에 교감 업무는 점점 늘어나기만 한다. 지난해 7월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 사망 이후 대부분 학교에서 학부모 민원 창구가 교감으로 일원화됐고 올 1학기부터는 늘봄학교 지원실장도 겸임한다. 학교폭력대책위원회 등 27개 위원회도 당연직으로 참석한다. ▷교감들끼린 “무엇이든 하는 자”라는 자조가 나온다. 행정 업무는 갈수록 폭증하는 반면, 그에 대한 보상은 늘지 않았다. 올해부터 교사의 담임 수당이나 보직 수당이 대폭 인상됐어도 교감의 직급보조비(25만 원)는 그대로다. 실제 같은 호봉이면 담임 교사, 보직 교사보다 월급이 적어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교감은 방학 때도 출근해야 하고, 대체 수업을 해도 수당을 받지 못한다. 이러니 “평교사가 낫다”고 한다. ▷단지 수당이 낮다고 교감을 마다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평교사가 교감이 되려면 보통 20년 이상 걸린다. 연수도 받고 부장교사도 하고, 오지 근무도 하면서 승진 점수를 쌓아야 가능하다. 학교의 궂은일을 솔선하며 교감이 되었는데 존경받기는커녕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 시달리기 일쑤다. 온갖 민원을 감당하며 교권 추락의 현실을 절감한다고 호소한다. 교감 기피 현상이 확산하면서 승진 중간 코스인 보직교사도 구인난을 겪고 있다. 지난달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이 ‘올해 보직교사를 맡을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교사 10명 중 8명이 ‘없다’고 했다. ▷교감의 비애는 어느 조직에 있든 중간 관리자라면 공감할 것이다. 기업에서도 과거 업무 스타일을 고수하는 상사와 ‘워라밸’이 당연한 팀원 사이에 낀 중간 관리자의 업무가 폭증했고 스트레스 지수도 가장 높다. 고군분투하는 교감 선생님들의 사기를 올릴 다양한 방안이 나왔으면 한다. 교감의 살림 솜씨에 따라 교사와 학생이 행복한 학교가 빚어지는 법이니 말이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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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급할 때만 찾는 ‘진료보조(PA) 간호사’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의료 대란을 막기 위해 정부가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를 투입하겠다고 하자마자 대한간호사협회가 “사전 협의된 바 없다”며 이를 일축했다. 지난해 5월 간호법 사태 이후 의사와 간호사 간 골이 깊은데도, 간협이 의사 파업을 거드는 듯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2020년 전공의 파업 당시, 정부 지시대로 대체 인력으로 일했다가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고 의사들로부터 고발당했던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서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를 대리하는 PA 간호사의 업무는 불법이다. 4년 전 환자 곁을 지켰다가 봉변을 당한 간호사들은 이번에는 “간호사에 대한 보호 약속이 선행돼야 한다”며 정부의 동원령에 발끈했다. 하지만 전공의가 떠난 병원에선 의사 업무가 간호사에게 물밀듯이 넘어오고 있다고 한다. 의료 현장에선 “지시를 거부할 수도 없는데 혹시라도 환자가 잘못되면 불법을 추궁당할까 두렵다”고 아우성이다. ▷PA는 주로 대학병원에서 전공의가 부족한 필수의료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1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의사들조차 “PA가 없으면 수술실이 마비된다”고 할 정도로 관행이 됐다. 다만 존재 자체를 ‘쉬쉬’하다 보니 정확한 집계가 이뤄지진 않는다. 주로 의사들이 기피하는 외과나 흉부외과에 속해서 수술 내용을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고 혈액 검사를 하는 등의 사전 준비부터 절개와 봉합까지 수술 전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부서 이동 없이 수술실에서만 일하다 보니 저연차 인턴·레지던트보다 숙련도가 높은 경우도 많다. ▷전공의를 뽑기 힘든 병원으로선 이들보다 비용이 덜 드는 PA 채용을 늘리지 않을 까닭이 없다. 2020년 보건의료노조 실태조사에 따르면 PA는 약물 처방, 검사, 수술 등 사실상 의사 업무 전반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PA를 제도화하면 될 터인데 의사들이 “간호사가 의사 가운을 입는다”며 반발해 논의조차 쉽지 않다. 석박사 수준의 과정을 밟고 면허를 따서 일하는 미국, 캐나다 등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체계적인 교육과 자격 검증 없이 현장에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2010년부터 PA 제도화를 시도했지만 “환자 안전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우는 의사 단체에 밀려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 정부가 ‘PA 카드’로 의사를 달랬다, 간호사를 달랬다 하면서 환자 안전을 도외시한 탓도 크다. 불법인 PA가 관행이 된 것은 그만큼 수술실과 입원 병동의 의료 인력 부족이 심각해서다. 이번에 의대 정원이 늘더라도 의사 양성까지는 10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의사 단체의 벽을 넘지 못한 PA뿐만 아니라 비대면 진료,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확대 등도 논의를 서둘러 의료 공백을 메울 필요가 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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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의대 증원’ 지역전형 확대… ‘꼼수 지방 전학’ 판칠까 걱정

    올해 고3이 치르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늘어나는 의대 정원 2000명은 “SKY(서울·고려·연세대) 위 대학이 하나 더 생겼다”고 할 정도로 파격적인 숫자다. 의대 증원이 발표된 이튿날인 7일 한 대형학원의 ‘의대 재수, 반수 전략’ 온오프라인 설명회에는 4100여 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의대 증원에 따른 입시 전략을 세우려는 수요라는 것이 학원 측의 설명이다. 의대 합격이 아슬아슬했던 상위권 고3 학생과 N수생, 의대에 떨어지고 이공계로 진학한 반수생, 심지어 미래가 불안한 직장인까지 의대에 도전하고 있다. ▷정부는 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해 지역 국립대와 정원 50명 이하 미니 의대를 중심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고, 신입생의 60%까지 지역인재전형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의대 지역인재전형 선발 인원이 기존의 두 배인 2018명으로 증가한다. 현재 입학 정원이 49명인 강원대 의대를 예로 들면, 두 배가량 늘어날 정원의 상당 부분을 강원 지역 고등학생으로 뽑아야 한다는 얘기다. 당연히 춘천에 사는 고등학생이 강원대 의대에 합격할 확률이 올라간다. 지금도 지역 의대 수시 전형의 경쟁률은 수도권 의대의 3분의 1 수준인데, 이 경쟁률이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지역인재전형은 고등학교를 해당 지역에서 졸업해야 지원이 가능하다. 3년 뒤인 2028학년도부터는 중학교부터 지역에서 다녀야 한다. 이미 지역 공공기관의 ‘기러기 부부’들이 서울 살림을 접고 재결합했다거나 자녀의 지방 전학을 위해 KTX를 타고 아버지가 서울로 ‘역출근’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강남 학원가에는 아이만 지역 중고교로 진학시키는 ‘지방 유학’ 문의도 늘고 있다. 세종 천안 아산같이 수도권과 가깝고 도시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곳이 인기라고 한다. ▷지자체들은 의대 증원 효과로 인구 유입이 늘고 대학 상권에 활기가 돌 것으로 기대한다. 이들이 지역에 남아 의사로 일해준다면 ‘지역 의료 대란’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체리 피커’처럼 각종 보조금을 챙기고, 의대 입시 혜택만 누리는 ‘꼼수 전학’이다. 이를 우려한 지역 대학에선 “중학교가 아닌 초등학교부터 지역에서 졸업하도록 해야 사람들이 정주한다” “지역 의대를 졸업하면 지역에서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2006년 이후 의대 입학 정원이 동결되면서 의사는 높은 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는 가장 안전한 직업이 됐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를 홀로 지방 유학을 보내거나 온 가족이 이사를 감수할 만큼 의대 진학이 자녀 교육의 전부가 된 현실은 씁쓸할 따름이다. 의대의 지역인재전형을 확대하려는 본래 취지는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인재를 키워 지역 필수 의료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똑똑한 제도 운영이 필요하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4-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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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간호사도 필러 시술… ‘무천도사’ 사라지나

    ‘프티 시술’은 보톡스, 필러 같은 주사나 레이저 시술처럼 수술의 통증 없이 살짝 예뻐지는 시술을 지칭한다. 미용·성형 카페에서 ‘프티 시술’ 잘하는 곳을 물으면 무조건 최근 출시된 제품이나 장비를 쓰는 곳으로 가라고 한다. 그다음이 시술 경험이 많은 의사다. 의료 기술의 발전이 의사 손 기술을 앞선다는 경험칙이 통하는 셈이다. 실제 피부과는 인턴·레지던트를 거치지 않은, 즉 임상 경험이 전무한 일반의가 많은 진료 과목이다. ▷일반의로 개원해서 미용 시술을 하는 의사를 ‘무천도사(無千都師)’라고 부른다. 전문의를 따지 않고도(無), 월 1000만 원 이상을 벌고(千), 도시에서 일하는(都) 의사(師)라는 뜻이다. 과거 의료계에선 전문의를 따지 못하면 낙오자로 여겼지만 요즘에는 그런 동료 압력도 사라졌다. ‘워라밸’을 포기하며 고되게 일해 봤자 개원의보다 소득은 낮은 대학병원 의사들이 되레 자괴감을 느낀다고 한다. 일반의는 최근 전체 의대 졸업생의 약 15%까지 늘어났다. ▷갓 의대를 졸업한 일반의뿐만 아니라 다른 진료과목 의사들의 개원 러시도 이어지고 있다. 2022년 기준 전국 성형외과 의원(1115곳)은 10년 전보다 34%, 피부과 의원(1387곳)은 33% 늘어났다. 지난해 6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바로 적용하는 보톡스’ ‘고지혈증 일타 강사의 족집게 강의’ 등 다른 진료과목을 배우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저출산으로 미래가 어두운 소청과 의사 800여 명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뤘다. ▷정부가 ‘프티 시술’ 일부를 의사 면허 없이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할 방침을 1일 밝혔다. ‘프티 시술’의 의사 독점 구조를 깨서 레드오션 시장이 되면 의사들의 개원이 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지금은 사람을 살리는 어려운 수술은 싸고, 미용에 가까운 피부과 시술은 비싸다. ‘프티 시술’은 건강보험의 가격 통제에서 벗어난 비급여 진료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의사 공급을 늘리더라도 이런 왜곡된 보상 체계로는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쏠림을 막을 수 없다. 의사들은 부작용 등을 이유로 반발하지만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프티 시술’뿐만이 아니다. 현재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 행위를 보면, 의사가 꼭 해야 하나 싶은 것들이 있다. 문신, 피어싱, 제모 등이 모두 의료 행위다. 반면, 정작 의사가 진료해야 할 아토피 피부염, 건선 같은 피부질환 환자들은 동네 의원서 치료받기가 어렵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 뒤에는 낮은 수가를 벌충하고자 비급여 진료에 치중하게 되는 ‘풍선 효과’가 있다. ‘프티 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의사는 의사가 할 일을 할 때 보상과 보람을 얻을 수 있도록 이참에 건강보험 수가 체계도 재설계해야 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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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443조 빚더미 中 ‘부동산 공룡’ 몰락… ‘헝다’로 끝일까

    약 443조 원의 부채를 진 중국 2위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에 홍콩 법원이 청산 명령을 내렸다. 올해 우리 정부 예산이 657조 원이다. ‘부동산 공룡’으로 불리던 헝다의 부채가 얼마나 천문학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 실제 청산에 돌입한다면 중국 역사상 최대 파산이 된다. 2021년 역외 채권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지며 ‘중국 경제 위기론’의 진원지였던 헝다가 다시금 중국 경제를 흔들 수 있다는 비관론이 흘러나온다. ▷중국 경제는 ‘콘크리트 GDP(국내총생산)’라고 불린다. 그만큼 주택 및 인프라 투자에 기대 성장했다. 중국 정부는 매년 GDP의 40% 이상을 부동산에 투자했고, 이런 ‘건설 주도 성장’ 덕분에 토지를 소유한 지방정부도, 집을 산 개인도 부자가 됐다. 그런데 2년 전부터 헝다, 완다 계열사, 비구이위안 등 부동산 개발사들이 줄줄이 디폴트 위기에 처했다. 최근에는 이들 기업에 대출해준 중즈그룹이 파산하며 금융시장으로도 불똥이 튀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40년 고도 성장을 견인했던 중국의 성장 모델이 고장 난 것 같다”고 했다. ▷헝다그룹 회장 쉬자인은 허난성 빈민촌에서 태어나 중국 최고 부자가 됐다. 1996년 선전시에 ‘헝다 부동산’을 차린 그는 저리로 땅을 빌려 건설사에 외상 발주하며 기업을 키워 왔다. 미리 받은 분양대금으로는 축구 영화 생수 등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과열된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대출을 조이면서부터다. 곧바로 유동성 위기가 찾아왔다. ▷“내가 가진 모든 것과 헝다그룹이 이룬 것은 당과 국가, 사회 전체가 준 것이다.” 쉬자인이 중국 공산당에 극진한 감사함을 표한 것이지만, 사실에도 부합한다. 중국에서 토지는 지방정부 소유이고, 은행은 국영이다. 헝다그룹은 정부로부터 토지도, 자금도 빌려 빚잔치를 벌인 셈이다. 헝다의 빚 폭탄을 넘겨받은 데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추가적인 부양 부담도 지게 된 중국 정부야말로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일지 모른다. 지난해 9월 해외로 자산을 불법 유출한 혐의로 구속된 쉬자인과 그의 아들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이 때문에 창업주 개인 비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헝다와 은행, 지방정부의 권력형 비리로 보고 중국 정부가 칼을 빼 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홍콩 법원의 결정을 중국 본토 법원이 인정하지 않을 것이므로 중국 경제에 미칠 여파가 크지 않다고도 한다. 하지만 1위 부동산 개발사인 비구이위안의 ‘도미노 위기설’이 재부상했고, 이들 기업의 직원과 협력업체, 분양받은 집 주인까지 충격이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 정부의 고심은 깊을 수밖에 없다. 미국과의 경제 전쟁 중에 체력이 떨어지는 것도 부담이다. 여전히 중국과의 교역 규모가 큰 한국에도 결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가뜩이나 세계 무역 질서의 재편으로 고전하는 우리 기업들에 숙제가 또 늘었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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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1441일 만에 문 닫은 코로나 선별진료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동안 긴 줄이 늘어섰던 전국의 선별진료소 506곳이 지난해 12월 31일 일제히 문을 닫았다. 방역당국은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감함에 따라 선별진료소 운영을 종료하고, 확진자를 수용할 격리병상 376개도 모두 지정 해제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2020년 1월 20일부터 1441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운영됐던 선별진료소가 사라진다니 코로나19의 종식이 새삼 실감이 난다. ▷선별진료소는 확진자를 신속히 골라내 격리하고 치료하는 ‘K방역’의 최전선이었다. 거의 4년에 달하는 선별진료소 운영 기간 1억3100만 건의 유전자증폭(PCR) 검사가 이뤄졌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약 2.5회씩 검사를 한 셈이다. 주로 컨테이너에 설치됐던 선별진료소는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며 검사를 받는 ‘드라이브 스루’, 공중전화 부스 같은 1인용 음압 부스에 의료진이 손만 집어넣어 검체를 채취하는 ‘워크 스루’ 등으로 진화했다. 대기와 소독 시간이 줄면서 검사 횟수가 최대 10배까지 늘어났다. ▷의료진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던 시기에도 빠른 검사가 가능했지만 지금껏 선별진료소가 차질없이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말 그대로 의료진의 헌신 덕분이다. 의료진도 미지의 감염병이 두려웠다고 한다. 혹시 모를 감염 우려에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두려움과 싸우면서도 레벨D 방호복을 입고 N95 마스크를 낀 의료진은 묵묵히 밀려드는 검사를 했다. 확진자가 폭증할 때는 끼니도 거르고 화장실도 못 가기 일쑤였다. ▷골목을 돌고 돌아 늘어선 행렬을 안내하던 공무원들은 여름에는 더위, 겨울에는 추위와 싸웠다. 휴일 없이 일하면서도 위험한 근무를 마다하지 않았다. 선별진료소 근무자들이 버틸 수 있었던 건 시민들의 응원 덕분이기도 하다. 시민들은 빵과 커피 등 간식을 보내고 ‘힘내세요’ ‘감사해요’ 손 편지를 남기며 지친 그들을 위로했다. ▷방역당국은 지난해 6월부터 코로나19 위기 단계를 ‘경계’로 하향 조정하고 실내 마스크 착용과 확진자 격리 등을 자율에 맡겨 왔다. 현재 표본 감시로 집계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하루 평균 1000명에 못 미친다. 오미크론이 유행하던 2022년 3월 하루 최대 62만 명까지 확진자가 늘었던 것에 비하면 이제 독감처럼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 된 것이다. 변이를 거듭한 바이러스가 남아있긴 하지만 치명률은 미미하다. 최근 질병관리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이 “코로나19로부터 일상을 회복했다”고 응답했다. 끝이 보이지 않던, 전례 없이 길었던 팬데믹…. 이젠 잘 견뎌냈다고, 잘 헤쳐왔다고 서로서로 등을 두드려줘도 될 것 같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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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우경임]한국 응급실에만 보이지 않던 것

    “의료 강국 아니었나….” 우리나라 응급실이 다른 나라 응급실과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18년째 3058명인 의대 입학 정원 확대, 두 부처 소관인 소방당국과 병원이 협력해야 하는 응급환자 실시간 이송 시스템 도입, 대형병원과 동네병원의 원격 협진…. 하나같이 중증·응급환자의 생사가 달린 정책이지만 우리나라에선 10년 넘게 아무런 진척이 없다. 하지만 동아일보 취재팀이 다녀온 나라들에선 이미 실행 중이었다. ‘시스템 도입이 어렵진 않았냐’는 질문에는 “환자를 살려야 하니까”라고 답했다. 동아일보는 10월 24∼30일 ‘환자 표류 해법, 해외에서 찾다’ 시리즈를 통해 일본, 독일, 호주, 캐나다, 미국 등의 해외 응급의료 시스템을 상세히 보도했다. 3월 28일∼4월 3일 ‘표류―생사의 경계에서 떠돌다’ 시리즈에서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병원을 찾아 떠도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의 실태를 보도한 뒤, 그 후속 작업이었다. 어느 나라에서건 필수의료 분야 의사는 힘들고 고된 직업이었고, 응급실은 피하고 싶은 직장이었다. 그렇지만 한국처럼 환자가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사망하는 ‘표류’ 같은 일은 볼 수 없었다. 장기 전망에 따라 의사들을 길러내고 있었고, 의사와 환자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일본은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가까운 병원에 경보를 울리는 ‘마못테(まもって·지켜줘) 네트워크’와 구급대원 단말기에 이송 가능한 병원을 자동으로 띄워주는 ‘오리온 시스템’을 도입했다. 독일은 중앙구조관리국이, 캐나다 앨버타주는 전원·의료지도센터가 지역 내 모든 병원의 병상과 의료진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환자를 치료할 병원을 찾아준다.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시스템인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이 있다. 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의료진과 병상 현황이 실시간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정부는 상황실 인력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는 예산을 쓰지 않는다. 소방당국은 개인정보 관리에 대한 부담을 피하려 환자 정보를 응급실과 연동하는 것을 꺼린다. 그런데 정부가 법적으로 이를 정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정보통신기술(ICT)이 발전한 한국에서 수동으로 환자가 갈 병원을 찾는 이유다. 우리 정부는 의사 수요 증가에 따른 의사 양성에도 게을렀고 필수의료 의사에 대한 처우 개선은 외면해 왔다. 의사들이 의료사고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호소하는데도 과감한 지원은 없었다. 캐나다는 의사의 책임보험을 의무화했고, 보험료(연간 500만 원)의 80%를 주 정부가 부담한다. 대만은 아예 출산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선 의사 과실이 전혀 없더라도 국가가 배상한다. 독일에서 취재팀이 만난 한 의사는 한국의 응급환자 ‘표류’ 현상을 설명하자 “인간이 만드는 어떠한 법제든 시스템이든 생명에 최우선을 두고 맞춰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신경외과 의사가 비번인 날 뇌출혈이 일어나고, 휴일에 교통사고를 당한다면 길거리를 헤매다 자칫 생명을 잃는 일을 당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응급실 어디서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려는 정부는 볼 수 없었다. 어쩌면 한국의 정책 당국자들은, 그들의 가족은 응급실 앞에서 내쳐진 적 없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경임 정책사회부 차장 woohaha@donga.com}

    • 202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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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우경임]의약분업 트라우마에 갇힌 의대 입학 정원 3058명

    ‘아이의 심장 수술을 기다린 지 1년이 지났다. 수술 날짜는 아직도 기약이 없다. 해외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해 주겠다는 브로커를 떠올렸다.’ 이런 디스토피아를 상상하게 된 건 동아일보가 10일 대한소아심장학회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기사를 읽으면서다. 이 보고서는 2035년 소아·청소년 심장 환자를 수술하는 의사가 단 17명이 남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10년이 지나면 심장 수술을 받으러 비행기를 진짜 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필수 의료 ‘의사 대란’을 두고 의료계는 의사 총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의사 배분이 왜곡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의사 수가 늘더라도 피부과·안과·성형외과로 쏠릴 뿐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외과는 외면당할 것이라고 한다.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몸이 아플 때 부작용이 있더라도 약을 써서 치료하듯이, 지금의 필수 의료 대란 역시 부작용이 있더라도 의사 증원이란 약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 수(한의사 포함)가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7명에 못 미친다는 통계를 굳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의사가 부족하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병원에 가도 의사를 만나지 못하는 환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 반년을 기다려 3분 진료를 받는다. 뇌출혈 환자가 수술할 의사를 찾지 못해 구급차에 실려 거리를 떠돈다. 수술실에 들어갔더니 의사 대신 간호보조인력(PA)이 수술을 보조하고 있다. 과연 의사 총량 증가 없이 적절한 배분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의대 입학 정원은 3058명으로 17년째 그대로다. 필수 의료 대란이 닥치기까지 단 한 명도 늘리지 못했다. 취재원을 만날 때마다 그 이유를 물어봤다. “의약분업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2000년 병원과 약국의 기능을 분리하는 의약분업 시행을 앞두고 이에 반발하는 의사들이 세 차례 파업을 했다. 전국적인 의료 대란이 벌어졌다. 의사, 약사 직역 갈등에 쩔쩔매던 정부에 국민들까지 등을 돌렸다. 우여곡절 끝에 의약분업이 시행됐지만, 2001년 건강보험 재정이 진료비와 조제료 인상으로 4조 원의 적자를 냈다. 비판 여론에 감사원은 감사에 돌입했고, 대통령의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고자 했던 보건복지부는 차관부터 과장까지 줄줄이 징계를 받게 된다. 당시 사태가 트라우마로 남아 의약계와 대립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데 정부가 소극적이라는 설명이다. 정책 파트너인 의료계도 같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의약분업 당시 세 차례 이뤄진 수가 인상이 건강보험 적자가 커지면서 없던 일이 됐다.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쌓였다. 정부는 실망한 의료계를 달래기 위해 밀실에서 의대 입학 정원 동결을 약속했다. 2002년부터 단계적으로 의대 정원을 감축해 2006년 3058명이 된 배경이다. 다음 주 정부는 의대 증원 방침과 규모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그다음이 더 중요하다. 정부와 의료계가 의약분업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립으로 치닫는다면, 의대 증원뿐 아니라 국민 생명을 위협할 정도가 된 필수 의료, 지역 의료 대란을 풀어갈 길이 없다. 상상 속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정부와 의료계가 이번만큼은 부디 대화를 통해 해법을 만들어 가야 한다.우경임 정책사회부 차장 woohaha@donga.com}

    • 202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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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흡연자 10명 중 4명, 전자담배 병용 ‘다중 흡연자’

    국내 남녀 흡연자의 10명 중 4명은 일반 담배뿐만 아니라 궐련형, 액상형 전자담배 등 2, 3개를 섞어 피우는 ‘다중 흡연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20일 ‘덜 해로운 담배? 담배 규제 정책 관점에서 바라본 전자담배’를 주제로 금연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지난해 11월 성인 남녀(20∼69세) 8000명을 대상으로 한 ‘전자담배 사용 행태 및 조사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 연구에 따르면 남성 흡연자의 40.3%, 여성 흡연자의 42%가 ‘다중 흡연자’였다. 특히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자의 62%는 ‘다중 흡연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액상형 전자담배를 마치 금연보조제인 것처럼 홍보하거나 맛과 향을 첨가해 담배가 아닌 것처럼 팔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행법(담배사업법)상 담뱃잎이 아닌 줄기나 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이나 합성 니코틴을 사용하는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로 정의하지 않아 각종 규제를 피해 판매된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담배 사용 행태가 급변하고 신종 담배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유통되고 있어 이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담배제품통제센터(CTP) 소장을 맡고 있는 브라이언 킹 박사는 “미국 내에서도 합성 니코틴 전자담배가 확산됨에 따라 지난해부터 연초를 쓰지 않더라도 니코틴을 함유한 제품이라면 동일하게 규제하고 있다”며 “FDA로부터 사전에 판매를 허가받지 않은 담배는 판매할 수 없다”고 말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2023-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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