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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경임 논설위원입니다.

woohaha@donga.com

취재분야

2026-04-15~2026-05-15
칼럼97%
사건·범죄3%
  • [횡설수설/우경임]‘외로움’ 담당 차관

    사회적 고립이란 사회적 관계가 부족하거나 단절된 상태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1명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잠깐 집안일을 부탁하거나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할 때 도움받을 만한 사람이 없다면 ‘사회적 고립’으로 판단한다. 그 극단적인 사례가 고독사다. 해마다 늘어 2024년 사망자 100명 중 1.09명이 고독사였다. 홀로 사망하더라도 가족이나 지인이 뒤늦게 시신을 수습하거나 뜸하게 왕래가 있었다면 통계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실제 고독사는 이보다 많을 것이다. ▷사회적 고립이라는 물리적 상태에서 느끼는 감정이 외로움이다. 미 공중보건 최고책임자인 비벡 머시 전 의무 총감은 외로움을 감염병으로 정의하면서 마음뿐만 아니라 몸을 병들게 한다고 했다. 마약 중독자부터 심혈관 질환자까지 질병의 기저에는 외로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뇌에서 외로움과 배고픔은 동일한 부위에서 처리된다. 음식에 대한 욕구만큼 관계에 대한 욕구도 본능적이란 뜻이다. 집단생활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외로움은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 해석된다. ▷SNS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쉽게, 많이 연결을 경험할 수 있는 ‘초연결 사회’에 살고 있다.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친구와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더 외롭다고 느낀다. SNS에선 가장 보여주고 싶은 나를 순간 포착해 올리고, 조금이라도 불편한 관계는 쉽게 차단한다. 갈등 없는 피상적인 관계만 맺다 보니 정작 내적 감정을 공유할 사람은 없다.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이른바 인공적 친밀감(Artificial Intimacy)도 문제가 되고 있다. AI가 심리상담사를 자처하고 친구나 연인을 대체한다. 인간 대신 기계와의 관계로 도피하지만 거절도, 상처도 없는 안전한 관계에서 오는 인공적 친밀감은 결코 외로움을 해소해 주지 못한다. ‘인공적 친밀감’을 연구하는 셰리 터클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목마른 사람에게 물 사진을 건네는 격”에 비유했다. 인간의 취약성을 이용해 감정을 조종하는 알고리즘은 진짜 인간관계를 대체할 수 없다. ▷외로움에 대한 사회적 대응이 필요해지면서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한국의 초대 ‘사회적 고립 전담 차관’으로 지정됐다. 2018년 영국이 세계 최초로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했고, 2021년 일본이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신설한 데 이어 우리도 범부처 대응을 선언했다. 전담 차관을 복지부에서 맡은 건 복지 자원을 동원해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쉬운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뜻일 터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외로움의 질이 달라지고 있다. 생계 지원 같은 복지 정책을 넘어선 공동체 복원을 위한 상상력이 필요한 때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5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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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늘어나는 수업 방해 ‘금쪽이들’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회자됐던 초등 교사들의 경험담을 보면 ‘설마…’ 싶을 만큼 경악스럽다. 수업 시간에 활동을 시작할 때마다 “아,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라고 김을 빼고는 “응, 내가 (활동) 안 해도 (선생님은) 아무것도 못 하죠?”라고 빈정대는 학생도 있었다. 교실을 자꾸 돌아다니고 소리를 지르거나 수시로 음란한 대사를 읊는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쉬는 시간에 불러 훈계했더니 “쉬는 시간에 놀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한 아동 학대”라고 응수한다. 아이를 가르치려 하면 교사에게 욕설을 하고, 옥상에 올라가 죽겠다고 위협한다. ▷교사들은 실제 교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처럼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아이들은 악의를 품고 무례하게 군다기보다 정서적으로 아픈 아이들인 경우가 많다.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연구에 따르면, 서울 초중고 교사 10명 중 절반은 최근 1년간 정서·행동 위기 학생에 의한 수업 방해와 교권 침해가 증가했다고 답했다. 학교급이 낮을수록 빈도도 높았다. 초교 교사가 58.6%로 가장 높았고, 중학교 54%, 고교 42.8% 순이었다. ▷교육부는 매년 초등 1, 4학년과 중1, 고1 학생을 대상으로 정서·행동 특성 검사를 시행한다. 정서·행동 위기 징후가 있는 학생을 파악해 지원하려는 것이다. 교사 절반은 검사 결과보다 교실에서 체감하는 정도가 더 심각하다고 답했다. 문제는 교사가 학생의 이상 징후를 발견하더라도 치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이유로는 ‘보호자의 동의나 협조 부족’(78.6%)이 첫손에 꼽혔다. 학부모가 “집에서는 안 그런다” “어려서 산만하다”며 아이의 어려움을 부정하고 검사나 치료를 거부하면 학교가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정서·행동 위기를 겪는 학생은 학교 안에서 기피 대상이 되곤 한다. 누구도 담임을 맡으려 하지 않고, ‘수업 방해하는 애’ ‘친구 괴롭히는 애’로 낙인이 찍혀 교우 관계도 원만하지 않다. 그런데 이들을 지원할 교내 인프라는 부족하다. 학교의 목표는 교육이 아니라 ‘큰 사고 없이 잘 달래 집으로 보내는 것’이 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아이의 상태는 갈수록 악화된다. ▷교사들은 정서·행동 위기 학생 1명을 돌보다 보면 나머지 19명에게 쓸 시간이 부족해진다고 한다. 학부모의 무책임 탓만 할 수도 없다. 내 자식밖에 모르는 일부 학부모도 있지만, 부모가 우울증을 앓는다거나 다문화가정이라 소통이 어렵다거나 하는 사정 있는 집들이 많다. 그래서 미국, 영국 등에선 의학적 진단이 없더라도 교사의 관찰과 상담으로 위기 학생을 찾아내고 개입이 필요하면 담임·상담·특수 교사와 학부모가 팀을 꾸려 학생을 지원한다. 교사 한 명에게만 맡겨두지 않는다는 뜻이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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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여행수지 ‘만년 적자’ 반전시킨 한류의 힘

    6일 오후 5시경 대통령궁 발코니에 방탄소년단(BTS)이 모습을 드러내자 ‘아미밤’ 응원봉이 반짝이며 함성이 터져 나왔다. 북미 투어 중인 BTS가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 환담한다는 소식에 대통령궁이 보이는 소칼로 광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BTS 팬 5만 명이 운집했다. 이들의 떼창과 춤으로 소칼로 광장은 마치 거대한 공연장 같았다. 멕시코 상공회의소는 세 차례 BTS 공연으로 인한 경제적 파급 효과가 1억750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3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BTS의 복귀 공연 당시에도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했다. 이들은 평균 8.7일을 머물며 1인당 353만 원을 썼다. 올해 1분기 외국인 관광객보다 평균 2.6일을 더 체류하고, 108만 원을 더 소비한 것이다. 이 영향으로 3월 여행수지가 2014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만성적인 여행수지 적자국이었는데 136개월 만에 반전을 쓴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 관광의 주 손님은 쇼핑하러 오는 유커들이었다. 한중 관계에 훈풍이 불었던 2014년 여행수지가 반짝 흑자를 냈던 이유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한중 관계가 얼어붙자 관광업계는 직격탄을 맞았고, 그 여파가 오래갔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K팝, K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아시아뿐만 아니라 북미, 유럽, 중동에서도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급증했다. 식도락 관광, 한류 스타 관련 장소 방문 등 한국 관광의 내용도 달라졌다. ▷2024년 외래관광객조사에 따르면 ‘한류 콘텐츠를 접하고 나서’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1위로 꼽혔다. 3월 방한한 외국인들은 BTS 공연 전후로 서울 용산, 홍대, 성수 일대를 방문했다. 용산은 BTS 소속사인 하이브 사옥이 있고 인근은 ‘하이브 거리’로 불린다. 성수에는 SM엔터테인먼트 사옥이, 홍대에는 YG엔터테인먼트 사옥이 있다. 이 지역들은 아이돌 팝업스토어, 화보 촬영의 성지로 특유의 ‘힙’한 분위기가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을 보면 K팝, K드라마로 한국을 알게 됐지만 굴곡진 역사와 이를 극복한 끈질긴 한국인, 한국에 오는 비행시간 동안 배울 수 있을 만큼 체계적인 한글, 맛있고 푸짐한 한식, 개인주의 문화권에선 느끼기 힘든 친밀한 정서 등이 점점 궁금해졌다는 외국인이 많다. 과거 우리가 서구의 삶의 방식을 동경했듯이, 우리의 삶의 방식이 매력적이라는 뜻이다. 2000년대 초반 드라마 ‘겨울연가’가 인기를 끌고 그룹 ‘H.O.T.’가 활동하던 당시만 해도 한류는 짧은 유행으로 끝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 전망과 달리 이제는 한국 문화가 품은 가치관과 정서가 보편적인 공감을 얻는 단계로 넘어가는 것 같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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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우경임]“나는 선생님이다”

    기자로 일하며 풀지 못한 질문이 하나 있다. 왜 어떤 사람은 남을 돕고, 어떤 사람은 남을 해칠까. 이를 설명하려는 철학적, 종교적, 과학적 이론이 존재한다. 하지만 잔혹한 범죄자부터 ‘생면부지’ 남을 구하는 의인까지, 그간 겪은 모든 사례에 꼭 들어맞진 않았다. 최근 삼성꿈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을 멘토링하는 선생님에게 주는 ‘교육상’ 심사 과정에 참여했다. 후보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떠올렸다. 장학금은 선생님 멘토와 학생 멘티가 짝을 지어 신청해야 한다. 학생은 장학금을 받지만 선생님은 아무런 보상이 없다. 그런데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찾아내고, 장학금 관리를 돕고, 정서적 지지자를 자처하는 선생님이 많았다.대가 없이 학생을 돕는 이유 ‘워라밸’을 반납하고 성과급도 없는 봉사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멘토링에 헌신적인 이유를 물었다. 특성화고에 근무하는 A 선생님은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남을 돕고 싶어서”라고 했다. 학교 특성상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많아 쌀을 사다 주거나 학부모 장례식을 같이 치른 적도 여러 번이었다. 꿈을 포기하는 학생들을 돕고 싶었지만 학교 예산도, 사비도 부족했던 탓에 장학금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혼 가정에 방치된 아이, 암 투병 아버지를 돌보는 아이가 웃음을 찾기 시작했고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찾아온다. 그는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느낀다”고 했다. B 선생님은 외부 장학금과 사업을 필사적으로 찾아 아이들과 연결해 주고 있었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랄 나이에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게 진심이 담긴 사랑을 알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10년간 학원 강사를 했던 C 선생님은 “보람은 있을 거다, 돈은 못 벌어도…”라는 은사의 말이 자꾸 생각나 교사로 전직했다. 그는 바리스타, 승강기 기능사, 지게차 기능사 등 본업과는 무관한 자격증을 5개나 땄다. 노후 준비겠거니 했는데 “학생들에게 ‘자격증을 따 보라’는 한마디를 하고 싶어서”라는 뜻밖의 답을 들려줬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 위축된 학생들에게 ‘할 수 있다’는 모범을 보인 것이다. 이날 만난 선생님들은 아이의 집을 찾아가고, 밥을 해 먹이고, 아이와 밤새 연구하고, 함께 여행을 가서 한 이불을 덮고 잤다. 요즘 교실에선 드문 일이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묻자 “나는 교사라서 행복한 사람”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건 행운”이라는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교사가 존경받지 못하는 시대라고 말하면서도 자부심이 묻어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인생이 올바로 갈 때 행복하다 선생님들이 항상 보람만 느꼈던 건 아니다. 선생님들은 공통으로 ‘장학금이 왜 늦어지냐’며 마치 빚 독촉하듯 찾아오는 학생이나 부모를 마주했던 경험이 있었다. 섭섭하기도, 좌절하기도 했지만 벼락같은 선물을 받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차츰 이해했다고 했다. 그런 성찰을 통해 “아이를 바꾸려는 욕심을 버렸다”, “믿음으로 기다리면 꽃이 핀다”며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지만 과거와 달리 그 의미가 퇴색했다. 교사와 학부모 간의 불신이 커지면서 학교는 자꾸 움츠러들고 학생은 배울 기회를 잃어 간다. 그래도 소명을 다하는 선생님들이 있기에 교실이 지탱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D 선생님은 12년간 멘토링을 통해 “인간의 행복이란 인생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스스로 변화할 기회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고 했다. 여전히 어떤 사람이 남을 돕고 어떤 사람이 남을 해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올바른 인생을 선택한 선생님들을 만나고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돕는 사람과 해치는 사람, 누가 행복할지는 말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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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고1 男 173cm, 女 161cm… 미국만큼 큰 키

    키는 유전일까, 환경일까. 개인으로 보면 유전의 영향이 우세하겠지만, 집단의 평균 신장은 환경적인 영향이 크다. 200개국 아동 및 청소년(5∼19세) 6500만 명의 평균 키와 체질량지수(BMI)를 장기간 추적한 연구 결과가 2020년 의학 저널 랜싯(Lancet)에 실렸다. 1985∼2019년 35년간 한국은 세계에서 평균 신장이 가장 빠르게 자란 나라 중 하나였다. 한국 남학생은 세 번째, 여학생은 두 번째를 기록했다. 한국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이 최상위권을 휩쓸었는데 모두 급속히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들이다. 충분한 영양, 깨끗한 위생 등 환경적 요인이 아이들을 쑥쑥 자라게 한 것이다. ▷요즘 거리마다 외국인 관광객이 붐빈다. 그런데 생각보다 키가 크지 않아서 뜻밖이었다. 과거 올림픽, 월드컵에서 우리를 이긴 외국팀 선수들을 보며 ‘서구형 체형’ ‘타고난 체력이 다르다’는 말을 듣고 자란 세대로선 놀랍기도 하다.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학생 건강검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고1 학생의 평균 키는 남학생 173cm, 여학생 161.3cm였다. 고1이면 연간 몇 cm씩 크는 성장 급등기가 거의 지난 다음이라 성인까지 비슷한 수준이 유지된다. ▷고1 학생의 평균 키는 일본을 3∼4cm가량 일찌감치 따돌렸고 미국 학생들과도 비등비등하다. 지난해 미국 국립보건통계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1에 해당하는 16∼17세 남학생 평균 키는 174.4cm, 여학생은 161.1cm다. 여학생은 오히려 한국보다 작았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인의 평균 신장이 정체되면서 양국의 키가 비슷해졌다. ▷35년간 아동과 청소년의 키는 거의 자라지 않고 몸무게만 늘어 건강이 악화한 나라가 있다. 미국, 뉴질랜드, 멕시코 등이다. 소득이 낮은 계층에서 ‘고열량 저영양’ 식단을 많이 섭취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분쟁을 겪은 콩고, 수단, 에티오피아 등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에선 아이들의 평균 신장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작아졌다. 영양 공급이 충분하지 못하고 식수가 부족한 탓이다. ▷이처럼 평균 신장은 그 나라의 경제력 총량과 불평등 정도, 복지 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고1 남학생 키가 170cm를 넘고, 여학생은 160cm를 넘어선 건 1997년이었다. 경제 호황기를 지나며 영양, 위생, 의료가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론 고1 남학생의 평균 키가 3cm가량 자랐을 정도로 증가 속도는 둔화됐다. 유전자에 숨어 있던 키는 다 자란 것 아닐까 싶다. 문제는 앞으로 미국을 따라가지 말란 법이 없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신체 활동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고1 남학생 100명 중 6명이 소아 대사증후군을 앓고 있다. 이젠 키에 집착하기보다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와야 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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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구두 대신 운동화 신는 승무원

    승무원들은 평소 항공 사고가 나면 골든타임인 90초 안에 승객을 기내에서 탈출시키도록 훈련받는다. 이른바 ‘90초 룰’이다. 2024년 1월 하네다 공항에 착륙하던 일본항공(JAL) 여객기가 이륙 대기 중인 항공기와 충돌했다. 벌건 화염이 치솟았으나 승무원의 침착한 안내에 따라 탑승자 379명 전원이 탈출했다. ‘90초 룰’을 지켜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이 사고를 겪은 JAL은 지난해부터 승무원이 운동화를 신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2020년부터 여성 승무원이 굽 높은 구두 대신 단화를 신을 수 있도록 한 데 이어 아예 구두를 벗도록 한 것이다. ▷대한항공도 승무원이 운동화를 신을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기로 했다. 창립 이래 57년간 고수했던 3∼5cm 굽 있는 구두 의무 착용 원칙 폐지를 논의한다고 한다. 이스타항공, 제주항공 등 저비용항공사가 운동화를 허용한 데 이어 승무원만 1만 명인 대형 항공사도 동참함으로써 항공업계의 엄격한 복장 금기가 깨질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은 2월부터 안경 착용도 허용했다. ▷장거리 비행 승무원들은 기내에서 하루 1만5000보 이상을 걷고 14시간 이상 서서 일한다고 한다. 비행기를 타 보면 그 불편한 복장으로 어떻게 강도 높은 노동을 소화하는지 딱할 정도다. 특히 여성 승무원의 달라붙는 유니폼과 굽 높은 구두는 능률을 떨어뜨리고 만성피로를 불러오는 원인으로 꼽힌다. 구두를 신고 종종걸음 하는 승무원들은 직업병처럼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다. 몸매가 드러나는 유니폼을 입고 허리를 숙이거나 짐을 올리면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속살이 보이기도 쉽다. 이 때문에 성희롱이나 몰카 촬영을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건강 고려 없이 여성성을 강요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복장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현재 유니폼은 좁은 기내에서 일하기에 불편할 뿐 아니라 안전을 책임지는 승무원이 입기에도 부적절하다. 2023년 5월 대구공항에 착륙하려던 아시아나 여객기에서 한 승객이 “답답하다”며 213m 상공에서 비상문을 열어젖혔다. 승객들의 비명 소리 속에서도 무사히 착륙했지만, 나중에 공개된 사진 한 장이 논란이 됐다. 꽉 끼는 치마 유니폼을 입은 채 구두를 신은 여성 승무원이 두 팔을 벌린 어정쩡한 자세로 비상문을 막고 있었다. ▷승무원의 용모와 엄격한 복장 규정은 항공업계의 브랜드 전략이다. 델타항공 복장 규정은 ‘승무원이 유니폼을 입는 순간부터 고객 서비스가 시작된다’고 적고 있다. 국내 항공사 승무원도 한파에도 빳빳이 다린 유니폼을 입고 출근하고, 머리핀 같은 액세서리까지 규칙에 따라야 한다. 비행기를 대중교통처럼 이용하는 시대다. 항공업계의 브랜드 전략도 고급 서비스 제공을 강조하기보다 안전에 대한 신뢰를 주는 편이 나을 것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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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학폭 변호사’, ‘학폭 보험’

    학교폭력 변호사가 학폭 대응 수칙을 알려주는 영상을 보다가 기함했다. ‘선생님을 믿지 마라’ ‘사과문을 받아 증거로 모은다’ ‘진실은 없다. 승자만 있다’ 등 너무 비교육적인 내용이었다. 다른 학폭 변호사는 증거 수집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줄을 서 있다가 새치기를 당하면 ‘왜 새치기를 하냐’고 묻고 ‘그냥’ ‘네가 싫어서’ 같은 대답을 녹음해 두라고 했다. 수업 중에 콕콕 찌른다면 그 상황을 카카오톡 ‘나와의 대화방’에 구체적으로 기록하라고도 했다. 날짜와 시간이 남아 신빙성 있는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학폭 변호사의 조언대로 증거를 수집해 학폭대책심의위에서 이기면 깔끔하게 해결될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올해 서울 주요 10개 대학 입시에서 학폭 이력이 있는 지원자 150명 중 149명이 탈락했다. 학폭이 대입 당락을 결정짓게 되자 ‘맞폭’으로 신고하거나 학폭위 처분에 수긍하지 않고 소송으로 간다. 학폭 피해자의 40%가 맞신고를 당했다는 설문도 있다. 소송을 질질 끌어 학폭 처분 기재를 미루려는 시도도 한다. ▷가해자들이 법 기술을 부리니 피해자들도 변호사를 찾게 된다.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 피해 인정을 못 받는 것은 물론이고 가해자로 몰릴 위험마저 있기 때문이다. 학폭 변호사들은 “신속히 법률 조력을 받아야만 피해자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며 의뢰인을 모집한다. 변호사 상담과 서면 대응은 100만∼300만 원, 학폭위 대응은 300만∼700만 원, 행정소송은 800만∼1500만 원이 시장 가격이라고 한다. 학폭 변호사 시장이 수천억 원대라는 법조계의 비공식적인 분석도 나온다. ▷수임료를 마련할 형편이 안 되면 피해자는 정말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다. 부모의 이런 불안을 노린 학폭 보험 시장이 급성장했다. 학폭 보험은 피해자 치료비, 변호사 선임비를 보장한다. 가해자라도 고의가 아니면 배상하는 상품, 학폭위 갈등에 휘말린 교사의 소송 비용을 지원하는 상품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주요 5개 손해보험사의 학폭 관련 보험금 지급 사례는 3443건이었다. 2021년(231건)에 비해 15배 가까이 늘었다. ▷출석정지(6호), 학급교체(7호), 전학(8호) 처분을 받는 중대한 학교폭력은 10건 중 1건도 되지 않는다. 과거라면 교사의 중재 아래 화해를 하거나 반성문을 썼을 법한 가벼운 다툼으로 학폭위가 열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학폭위가 강화되고 교사 개입이 힘든 엄벌주의로 흐르면서 학폭을 교육적으로 해결하기 힘들어졌다. 소송으로 번지면 가해자는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는다. 사과를 받지 못한 피해자는 실질적인 치유와 회복이 어렵다. 이렇게 아이들을 망치면서 법률, 보험 시장만 팽창한다니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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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우경임]‘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잊어라

    지난해 말 예정됐던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인 ‘서울대 10개 만들기’ 발표가 미뤄지고 있는 가운데 교육부가 최근 지방대 지원 방안인 앵커(ANCHOR·지역성장 인재양성체계) 사업 방향을 공개했다. 윤석열 정부의 라이즈(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사업을 개편해 ‘5극 3특’에 맞춰 광역 단위로 공유대학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단 1년 만에 라이즈 사업을 손질하기 머쓱했던지 교육부는 반성문을 썼다. 대학 선정 과정에서 예산 나눠 먹기는 없었는지, 지방정부와 대학이 적극 소통하며 사업을 추진했는지 집중 점검해서 앞으로 지원할 대상을 선정하겠다고 했다. 결국 성과 없이 예산만 증발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비단 라이즈 사업뿐일까. 역대 정부마다 지방대 지원 사업을 추진했지만 그 결과는 우리가 보는 대로다.간판만 바꿔 달아 온 지방대 사업 본격적으로 지방대 육성 사업이 시작된 건 노무현 정부부터였다. 당시 누리 사업(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 사업)을 시작하며 “지방대의 경쟁력 저하와 그에 따른 우수 학생 인력 유출로 지역 산업이 침체하고 일자리가 부족해져 수도권 편중이 심화되는 악순환 구조”를 언급했다. 지금의 현실과 꼭 닮았다. 5년간 총 1조4200억 원이 투입됐다. 이명박 정부는 대학 경쟁력을 강조하면서 지방대 지원에는 거리를 두었다. 그럼에도 광역경제권 선도 사업과 링크(LINC·산학협력선도대학) 사업을 통해 1조 원 훌쩍 넘게 지원했다. 박근혜 정부는 아예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법’을 법제화했고, CK 사업(대학 특성화 사업)을 추진했다. 문재인 정부에는 RIS(지역혁신 사업), 국립대 육성 사업, 지역선도대학 육성 사업이 있었다. 두 정부에서 각각 1조 원가량 투입했다. 윤 정부가 5년간 대학 30곳에 3조 원을 지원하기로 했던 글로컬 사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지방 명문대라는 말이 사라졌을 만큼 지방대는 추락했다. 교육부의 반성대로 ‘선택과 집중’ 없이 예산 흩뿌리기가 됐고, 선거를 앞두고는 지원 대학 수가 급증하는 일이 반복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을 뒤집으며 지속성도 떨어졌다. 대학은 자구 노력보다는 예산 따기에 급급했고 지역 기업과 협력할 역량도 부족했다. 최저임금 1만 원 실패 답습할라 지방대 지원 사업은 하나같이 이름이 복잡하고 어렵다. 우리 사회가 학벌에 민감하다 보니 대학 순위나 지역 격차 등이 드러나지 않게,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게 작명했다. 이에 비해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뇌리에 쏙 박힌다. 하지만 5년간 4조 원이라는 예산만 늘어났을 뿐 역대 정부의 지방대 지원 사업과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국토 공간 대전환’이라는 범정부 차원 과제 아래서 논의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할 순 있겠으나, 20여 년 전 누리 사업부터 지방대 육성이 지역 살리기와 별개였던 적은 없다. 2012년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의 교육 공약은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비슷한 ‘세계적 수준 지방대 만들기’였다. 이를 제안했던 류장수 국립부경대 교수는 저서 ‘교육 불평등과 지역 불균형’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대해 “예산만 충분하다면 수십 개를 만들어도 좋지만 전례 없는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불가능하다”며 “초광역권별로 3, 4개의 지역선도대학을 선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했다. 더욱이 ‘서울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왜 국립대만 지원하는지 합의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10개를 채우려고 집착해선 안 된다. 선거용 구호였던 ‘최저임금 1만 원’이 무리한 속도로 추진되면서 얼마나 탈이 났던가. 교육부의 반성문이 진정성이 있으려면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그 이름부터 버려야 한다. 적당히 예산을 나눠 주고 생색 내기에는 지역 청년의 삶이 너무 척박하다. 교육부는 절박함을 가져야 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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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달의 하늘에 뜬 지구

    우리가 지구에 사는 한 절대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다. 달의 자전 주기와 지구를 도는 공전 주기가 똑같아서 항상 같은 면만 보게 된다. 지구와 달은 마치 마주 보고 왈츠를 추는 것처럼 움직인다. 54년 만에 발사된 유인 우주선 아르테미스 2호가 달의 뒷면에 6일 도달했다. 지구에서 약 40만 km 벗어난 지점이다. 1970년 유인 우주선인 아폴로 13호가 세운 최장 기록보다 6600km를 더 멀리 갔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아르테미스 2호가 달에 근접 비행을 하는 6일 오후 1시부터 8시간가량 교신 장면을 생중계했다. 지구 밖에 있는 우주비행사의 영상과 소리를 실시간으로 보고 들을 수 있다니 놀라웠다. 아르테미스 2호가 달의 뒷면을 도는 약 40분 동안만 통신이 끊겼는데 지구와 우주선 사이를 달이 막아서면서 전파가 차단됐기 때문이다. 그사이 우주비행사들은 달의 뒷면 분화구, 용암, 협곡을 맨눈으로 관찰하고 기록했다. ▷달의 뒷면을 돌아 앞면으로 온 아르테미스 2호는 달의 하늘에 뜬 지구, 이른바 지구돋이(Earthrise) 장면을 촬영했다. 인류 최초의 지구돋이 사진은 1968년 12월 24일 아폴로 8호가 찍었다. 온통 암흑인 우주에서 달 위로 푸른빛의 지구가 솟아올랐고 우주비행사들은 그 경이로운 장면을 보며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남겼다. 이번 아르테미스 2호의 지구돋이 사진에선 지구가 초승달 모양으로 떠 있다. 달에서부터 약 6400km 떨어진 거리에서 촬영해 아폴로 8호가 찍은 지구보다 아담하다. ▷아르테미스 2호는 달에 착륙하지 않고 지구로 귀환길에 올랐다. 지구를 오가는 셔틀 노선처럼 달을 방문할 수 있는 궤도를 여는 임무를 맡아서였다. 아르테미스 계획은 최종적으로 달에 인간이 상주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주선의 생명 유지 시스템 등 인간의 우주살이 가능성을 검증했다. 우주선 내부에 화장실이 생겼고 태양광 패널을 달았고 광통신이 연결됐다. NASA는 2028년 아르테미스 4호가 달 착륙을 시도할 것이라고 했다. 우주 영토를 두고 본격적인 패권 경쟁이 시작된 셈이다. ▷58년 전 첫 지구돋이 사진을 찍은 아폴로 8호 우주비행사 윌리엄 앤더스는 “우리는 달을 탐사하러 갔지만, 가장 중요한 발견은 지구였다”고 했다. 아르테미스 2호에 탑승한 첫 여성 우주비행사인 크리스티나 코크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지구가 아낌없이 준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라며 “그 기적은 다른 관점(우주)으로 지구를 바라보기 전까지는 결코 진정으로 깨달을 수 없다”고 했다. 광대한 우주에서 유일하게 푸르게 빛나는 작은 지구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작고, 연약한지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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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봄꽃 지고서야 맞는 식목일

    아직 쌀쌀한 듯하여 외투를 입고 집을 나섰더니 어느새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의 봄꽃 개화일은 20년 동안 평균 2주가량 빨라졌다. 올해 서울 벚꽃은 3월 30일에 처음 피었는데 2000년에는 4월 10일 피었다. 매화는 2000년보다 19일 이른 3월 11일에 개화했다. 서울에 비해 기온이 온화한 부산에선 매화는 2월 초면 피는 ‘겨울꽃’으로 통한다. ▷경남 창원의 진해군항제는 올해 64회째 열리는 국내 최대 벚꽃 축제다. 1963년 처음 군항제가 열린 날은 4월 5일이었다. 올해는 3월 27일 시작했다. 그만큼 벚꽃이 빨리 피고 빨리 지는 것이다. 2024년 진해군항제는 이른 개화 시기에 맞춰 앞당겨 개최했지만 이상 저온으로 꽃이 모두 떨어져 ‘꽃 없는 꽃 축제’가 됐다. 진해군항제만의 고민이 아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갈수록 개화 시기를 예측하기 어려운 탓에 상춘객을 놓치지 않으려는 지방자치단체들은 묘안을 짜내고 있다. 실시간 개화율을 공개하고, 생중계를 통해 먼저 꽃 상태를 확인한 뒤 방문하도록 한다. ▷꽃이 일찍 만개할 만큼 봄 시계가 빨리 돌자 4월 5일 식목일 날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원래 식목일은 24절기 중 청명(淸明)과 겹친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春分)을 지나 낮이 점점 길어지는 시기다. 국립산림과학원은 나무 심기에 적절한 지표 온도를 평균 6.5도로 제시한다. 이제 3월 중순이면 그 온도에 도달한다. 그래서 식목일을 3월 20일경인 춘분으로 옮겨야 나무가 잘 자랄 환경이 된다고 한다. 이보다 늦게 나무를 심으면 잔뿌리가 자라 수분과 영양을 충분히 흡수하기도 전에 잎을 틔우며 뿌리가 말라버린다. ▷한반도는 달궈지는 속도가 매우 빠른 편이다. 지난해 서울 평균 기온은 식목일이 처음 지정됐던 1949년보다 3도가량 올랐다. 과거 3월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 외투를 여미던 시기였다. 요즘은 3월에 반소매 차림도 흔하게 본다. 뚜렷한 사계절은 옛말이고, 이제 겨울이 봄을 건너뛰고 여름으로 직행한다. 봄철 평균 기온이 오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더웠다, 추웠다 기온 변동도 심해 나무가 뿌리 내리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우리나라는 나무 심는 날을 공휴일로 정했던 유일한 나라다. 덕분에 민둥산을 울창한 숲으로 가꿨다. 2008년 식목일 날짜 변경을 국무회의서 논의한 적이 있으나 이런 역사성을 고려해 무산됐다. 또 평균 기온이 오를 때마다 식목일을 다시 정할 것이냐는 반론도 있다. 나무는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지구 온도를 낮추는 데도 기여한다. 식목일 날짜를 옮기든, 지역별 기후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하든 기후 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다면 식목일은 그 소명을 다하는 것이겠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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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안녕, 서울. 우리 돌아왔어”

    “안녕, 서울. 우리 돌아왔어(We’re back).” 3년 9개월 만에 다시 뭉친 방탄소년단(BTS)의 복귀 공연은 리더 RM의 간결한 인사로 시작했다. 이어 경복궁, 광화문, 그리고 그 앞 월대까지 ‘왕의 길’이 비치고는 민요 ‘아리랑’ 선율이 삽입된 신곡 ‘보디 투 보디(Body to Body)’가 흘렀다. 태극기의 건곤감리를 응용한 미디어아트도 화려했다.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힙하게 소화한 이들을 보며, ‘국뽕’이라고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신곡 ‘에일리언스(Aliens)’에는 ‘김구 선생님, 어떠신가요(Tell me how you feel)’라는 소절이 있다. 남의 것을 모방하지 않는 ‘문화의 힘’을 갖기를 꿈꿨던 김구 선생에 대한 헌사로 들렸다. 한국적인 것을 숨긴 채 세계적인 것을 따라 하기에 급급했던 우리였다. 이날 190여 개국에 생중계된 BTS 무대는 우리가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가 한국을 보고, 한국을 입고, 한국을 즐겼다. 한국적인 것이 매력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를 품은 광화문 일대는 주말 동안 BTS 팬들의 놀이터였다. 광화문 거리는 보라색으로 물들었고, 전광판을 통해 BTS 영상과 음악이 흘렀다. 어디서나 응원봉을 흔들며 춤을 추는 BTS의 팬클럽 ‘아미(ARMY)’ 회원들을 볼 수 있었다. 신문의 특집 섹션도 여럿 발행됐다. 동아일보도 ‘BTS 컴백 기념 특별판’을 배포했는데 아미들은 호외를 굿즈처럼 소중히 챙겨 갔다. ▷‘문화의 힘’이란 단지 K팝, K드라마의 성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민 의식 같은 우리 사회의 소프트파워가 뒷받침돼야 한다. 뉴욕타임스는 “광화문광장은 놀랍도록 질서정연했다”고 보도했다. 시민들은 안전한 축제를 위해 협조했다. 관객들은 공연 입장과 퇴장 시 검색으로 시간이 지연돼도 동요 없이 차분히 움직였다. 아미들은 ‘쓰레기를 치우고 떠나자’는 게시글을 공유했고, 자원봉사단을 구성해 공연이 끝난 뒤 청소를 했다. 그 덕분에 서울시 예상보다 쓰레기가 적었고 행사장은 깨끗했다. ▷BTS는 정규 5집 ‘아리랑’ 발매에 앞서 최초 아리랑 녹음본에 대한 사연을 담은 애니메이션 예고편을 공개했다. 1896년 5월 8일 자 워싱턴포스트에는 미국 수도 워싱턴에 있는 하워드대로 유학 간 한국 청년 7명이 아리랑을 불렀고, 이를 인류학자가 축음기로 녹음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서 영감을 받아 당시 태평양을 건넜던 한국인 유학생 7명과 광화문광장 공연을 위해 경복궁 앞에 선 BTS 7명이 교차하는 영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BTS는 한이 서린 슬픈 아리랑을 신나고 진취적인 노래로 다시 불렀다. 지금의 아리랑은 그래야 맞을 것 같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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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우경임]‘의정 갈등’ 흙탕물이 가라앉은 자리

    내년 의대 정원이 490명 늘어났고, 32개 의대에 정원 배분까지 마무리됐다. 1년 반 동안 나라를 뒤흔든 의정 갈등을 떠올리면 어리둥절할 만큼 조용한 마무리다. 의정 갈등이라는 흙탕물은 그렇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뒤틀린 우리 의료 시스템은 방향을 바꾸지 못한 채 그대로 흘러가고 있다. 의대 증원 당시의 명분은 지역·필수 의료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응급실 뺑뺑이’가 사회적 문제가 됐고, ‘출산 난민’ ‘소아과 원정’처럼 지역 의료는 무너지고 있었다. 의료계 역시 해법은 달랐지만 그 명분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의대 정원을 늘리고 지역 의사를 뽑는다고 해서 지역·필수 의료가 저절로 살아나진 않는다. 의정 갈등 속에서 드러난 의료 시스템의 고질적 병폐도 바뀐 것이 없다. 지역·필수 의료의 붕괴는 원가에 못 미치는 낮은 수가, 수술보다 비싼 검사 수가 등 왜곡된 제도의 결과다. 의사들이 실손보험을 통해 수익 보전에 나서면서 거대한 비급여 시장이 형성됐다. 의료비는 매년 급증한 반면, 환자들의 만족도는 떨어졌다. 그런데 정부도 의료계도 내상이 큰 탓인지 의대 증원 이후 의료 개혁 논의는 실종된 상태다.의정 갈등에 휘발된 신뢰 자본 의정 갈등 동안 정부, 의사, 환자 사이에 불신이 쌓인 것도 의료 개혁의 동력을 살리기 어려운 이유다. 정부와 정책 파트너인 의료계는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이제는 물밑 소통도 거의 사라진 듯하다. 환자들은 의사의 직업윤리를 불신하기 시작했고, 병원에 가면 과잉 진료부터 의심한다. 의사들은 “환자 대면이 두려워졌다” “수술실을 지키는 데 힘이 빠진다”며 격한 감정을 토로했다. 모두가 좌절감에 허우적대는데 의사, 환자, 시민단체가 만나 의료 시스템을 고쳐 보자는 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정 갈등이 한창이던 2024년부터 의료 공급자인 의사, 의료 소비자인 환자와 시민단체가 자발적으로 모인 의료공동행동이 출범했다. 이들은 그간 논의를 최근 ‘위기의 한국의료, 함께 다시 그리다’라는 책으로 펴냈고 ‘환자중심의료학회’를 출범시켰다. 의사와 환자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의료계 학회는 처음이다. 병원과 학교를 이탈한 전공의·의대생을 향해 “진짜 피해자는 외면당한 환자”라고 일침했다가 의료계 내부에서 지탄을 받았던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 4명이 주축이 됐다. 당시 험한 비판을 쏟아냈던 대부분의 의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들은 의정 갈등을 촉발한 시스템을 바로잡자며 환자와 손을 잡았고, 올바른 정책의 근거를 쌓아가기로 했다. 무의미한 싸움으로 남지 않으려면 환자중심의료학회 출범을 보며 의정 갈등 당시 전공의가 병원을 뛰쳐나가기보다 환자와 연대해 정부에 맞섰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대 2000명 증원을 두고 의사들은 ‘수능 성적 좋은 의사에게 진료받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환자들의 요구는 달랐다. 학회에 합류한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장은 2014년 식도암을 진단받고 투병해 왔다. 그는 6일 출범식에서 “한국 의료는 질병을 고치는 기술은 뛰어나지만 환자의 삶을 돌보는 데는 실패했다”며 자신의 생명이 걸린 결정과 치료 과정에서 소외되는 환자의 고통을 전했다. 의사와 환자가 서로의 고통에 공감하고 정부에 잘못된 의료 시스템을 바꾸자고 요구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말이지 않았을까. 1년 반 의정 갈등이 무의미했던 싸움으로 끝나선 안 된다. 환자가 치료받기 좋은 환경은 곧 의사가 일하기 좋은 환경이다. 의대 증원, 수가 인상 같은 지엽적인 논의에서 벗어나 ‘환자 중심’이라는 원칙으로 돌아갈 때 의료계의 복잡한 난제들도 실타래를 끊듯 풀 수 있을 것이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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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역사적인 BTS 광화문 공연

    군 복무를 마친 방탄소년단(BTS)이 5번째 정규 앨범 ‘아리랑’을 들고 복귀하는 21일 공연은 대한민국 모두가 치르는 잔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광장 문화’를 낳은 우리의 앞마당 광화문광장이 야외 공연장으로 변신한다.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 남쪽 시청역 인근까지 2만2000명 규모의 관람 구역이 마련된다. 각국에서 손님이 몰려들면서 최대 23만 명이 운집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공식 국가나 마찬가지인 민요 ‘아리랑’이 울려 퍼질 것으로 예상되는 현장을 넷플릭스가 190개국에 생중계한다. BTS 공연의 배경으로 당일 서울의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타는 것이다. ▷BTS 리더 RM은 앨범명이자 투어명인 ‘아리랑’에 대해 “저희다운 게 뭐냐, 저희가 어디서 출발했냐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2013년 대형 기획사 소속이 아닌 BTS가 데뷔했을 때 K팝의 상징이 될 것이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실력을 다지더니 한국 가수 최초, 한국어 노래 최초로 빌보드 차트를 석권했다. 이번 앨범의 선주문량이 400만 장을 돌파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 대중 문화의 변방이었던 한국에선 상상조차 어려웠던 일을 그들이 해냈다. ▷서울 곳곳은 이미 ‘BTS노믹스’로 들썩이고 있다. 공연 당일 서울 도심 호텔은 객실이 동났다. 인근 카페, 편의점 등은 외국어 가능 직원을 구하고 컵라면, 핫팩 등을 평소 물량의 몇 배씩 늘렸다고 한다. 백화점, 면세점은 외국인 손님 맞이에 분주하다. 광화문 대형 전광판은 기업뿐 아니라 BTS 팬클럽인 아미(ARMY)까지 가세해 광고 특수를 누리고 있다. 다음 달부터 차례로 공연이 열리는 경기 고양, 부산까지 ‘BTS노믹스’ 온기가 퍼져 나가고 있다. ▷워낙 사람이 몰리다 보니 암표가 수십 배 가격에 거래된다. 관광지 길거리 음식부터 바가지요금이 극성을 부린다. 서울시가 나서 시장 교란 행위 단속에 나섰지만, 상인들의 자정 노력 없이는 한계가 있다. 안전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공연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이 ‘명당’ 자리를 선점해 노숙하고 인파까지 몰려들면 자칫 사고가 날까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서울시는 사고, 화재 위험이 있는 곳을 집중적으로 점검했고 경찰은 인파 흐름을 통제하며 테러에 대비한 특공대까지 배치한다. ▷사실 BTS와 한국의 서사는 꼭 닮은 데가 있다. 대중 문화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올라선 BTS의 성공기는 한국이 지금과 같은 경제력과 문화력을 갖게 되기까지 걸어온 길과 겹쳐 보인다. 이번 ‘아리랑’ 공연은 그 성공을 자축하고 널리 알리는 축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손님들이 그 축제를 한껏 즐기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한국의 서사가 널리 알려지도록 제대로 손님을 치러야 할 것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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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밤낮 안 가리는 ‘약물 운전’

    ‘젊은 운전자가 앉은 비틀거리는 외제차는 무조건 피해라.’ 마약 등 약물 운전으로 인한 사건 사고가 빈발하자 운전자 사이에서 이런 방어 운전 수칙이 회자된다. 특히 서울 강남에선 대낮에 약물에 취한 운전자들이 심심찮게 적발되고 있다. 마약 접근이 쉬운 유흥업소,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하는 성형외과 등이 밀집해 있어 벌어지는 일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약물 복용 운전으로 인해 면허가 취소된 사례는 237건으로 2020년에 비해 약 4.4배 늘었다. ▷약물 운전의 위험성이 공론화된 계기는 2023년 8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역 인근에서 길을 걷던 20대 여성을 치어 숨지게 한 롤스로이스 뺑소니 사건이다. 30대 남성 운전자는 사고를 낸 직후 태연히 도주해 공분을 샀는데 운전 당시 케타민에 취한 상태였다. 한 달 뒤 압구정 로데오거리에서는 주차 시비 끝에 “칼침 맞아봤냐”며 흉기를 휘두른 람보르기니 운전자도 붙잡혔다. 그 역시 필로폰, 엑스터시 등 마약 양성 반응이 나왔다. 알고 보니 롤스로이스와 람보르기니 운전자는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며 수익을 공유하던 사이였다. ▷최근엔 마약뿐 아니라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에 따른 약물 운전도 심각하다. 지난달 30대 여성이 몰던 포르쉐가 반포대교에서 추락해 한강 둔치로 떨어졌다.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포르쉐 안에서는 프로포폴 빈 병과 주사기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프로포폴은 의사 처방 없이 구할 수 없고 외부로 반출할 수도 없다. 불법 유통이 만연했다는 의심이 든다. 지난해 의료용 마약류 무단 투약 및 유통으로 검거된 인원은 총 1089명이다. 3년 전에 비해 3.4배 늘었다. 지난달에는 서울 서초구 일대에서 교통신호를 무시한 채 3km가량 운행하던 벤츠 운전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운전자는 손목에 주사기 바늘을 꽂은 채 잠들어 있었다. ▷정상적으로 의사 처방을 받았더라도 방심할 순 없다. 공황장애 치료제인 벤조디아제핀 계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인 메틸페니데이트 계열과 같은 향정신성 의약품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인지, 행동 반응을 느리게 한다. 지난달 압구정역 인근에서 50대 남성이 차량 3대를 잇달아 들이받아 4명이 다쳤다. 그는 항불안제를 복용했다고 했다. 영국과 독일은 향정신성의약품 복용 후 24시간, 호주는 12시간 운전을 금지하지만 우리는 아직 뚜렷한 기준이 없다. ▷술자리가 파한 뒤 주로 밤에 일어나는 음주 운전과 달리 약물 운전은 도로가 붐비고 행인이 많은 낮에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 위험이 더 치명적이라는 지적에 따라 4월부터 음주 운전만큼 처벌이 강화된다. 약물 운전은 마약류 투약 후 2차 범죄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마약, 의료용 마약의 불법 유통부터 뿌리 뽑는 것이 시급하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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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자기 결정권 없는 콧줄 영양공급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의식이 희미해지고 기력이 떨어진다. 신체 기능이 하나씩 멈추는 것이다. 그쯤이면 쇠약해진 몸은 음식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다. 죽조차 삼키기 어렵다. 의학이 발전하기 전에는 이런 상태를 ‘곡기를 끊는다’고 표현하고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길이 60cm 콧줄(코와 위를 연결하는 비위관)을 통해 강제로 영양을 공급한다. 삽관 과정도 고통스럽지만 이물감으로 답답함을 느끼는 고령 환자들이 자꾸 콧줄을 빼려고 한다. 그래서 요양병원에서 콧줄을 뽑지 못하도록 억제 장갑을 끼우거나 아예 손발을 묶어두기도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병의원에서 콧줄을 삽관한 환자는 27만3850명이었다. 이들 4명 중 1명은 임종 말기 영양 공급을 위해서였다. 특히 요양병원은 중환자실도 없는데 콧줄을 쓰는 환자 수는 7만7322명이다. 요양병원, 요양원에선 법적으로 영양 공급이 의무라는 이유로 콧줄을 하지 않으면 입원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쇠약한 고령 환자에게 일일이 음식을 먹이기 힘드니 콧줄을 끼워 두는 편이 환자 돌보는 데 편리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가 거부할 수 있는 연명의료 행위를 심폐소생술·혈액 투석·항암제 투여·인공호흡기 등으로 몇 가지만 인정한다.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거부 의사를 밝혔거나, 가족이 환자의 분명한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전달하더라도 콧줄·위루술 같은 영양 공급은 마지막 순간까지 중단할 수 없도록 했다.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당시 종교계를 중심으로 물과 음식을 끊는 것은 생명을 해하는 것이라 반대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사후 법적 책임을 우려해 일단 콧줄을 권하고, 한번 꽂게 되면 뺄 방법이 없다. ▷콧줄을 쓸지, 말지 결정해야 할 순간 자식은 부모를 굶기는 것 같아 후자를 선택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는 건강한 사람의 사고일지 모른다. 임종기를 연구한 의사들 다수는 생의 말기에 곡기를 끊어도 큰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본다. 신체 기능이 저하돼 배고픔이나 목마름을 잘 인지하지 못해서다. 임종기에 억지로 영양을 공급하는 것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시간’만 연장하는 것이라고 의사들은 말한다. ▷2000년 일찌감치 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한 대만은 한국과 달리 강제 영양 공급을 환자가 거부할 수 있는 연명의료 행위로 정해뒀다. 일본은 후생노동성 가이드라인에 따라, 미국과 영국은 의료계 자체 가이드라인으로 임종기 환자의 영양 공급을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300만 명을 넘어섰다.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 요구가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죽음을 대하는 사회적 문화가 달라진 만큼 연명의료의 재정의를 생각할 때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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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루이비통 꺾은 48년 명품 수선 공방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는 1978년부터 48년간 명품 수선을 해 온 작은 공방이 있다. 이곳에선 낡은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제품을 새것처럼 복원해 주거나 쓸 만한 가죽을 잘라내 작은 가방이나 지갑을 만들어 준다. 1980년대 봉제공장에서 기술을 익혔다는 평균 경력 35년 장인들의 솜씨가 입소문을 타면서 옷장 속에 고이 모셔 뒀던 명품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사별한 남편이 사준 가방, 어머니가 물려주신 가방, 첫 월급으로 산 지갑 등 애틋한 사연이 있는 수선 요청이 많다. ▷2022년 루이비통이 이곳에서 대를 이어 공방을 운영하는 이경한 씨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 씨는 보통 10만∼70만 원씩을 받고 루이비통 가방을 해체한 뒤 원단과 금속 부품을 활용해 새로운 디자인의 가방, 지갑을 만들었다. 루이비통은 리폼 제품에 자사 로고가 드러나 있기 때문에 상표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5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리폼 업체가 한둘이 아닌데 왜 이 씨의 공방만 소송을 당했을까. 이 씨가 직접 밝힌 사정은 이렇다. 2022년 루이비통은 법무법인을 통해 국내 명품 리폼 업체들에 “리폼이 적발되면 법적 소송을 하겠다”며 앞으로 중단하겠다는 확약서를 받았다고 한다. 겁에 질린 소상공인들은 도장을 찍었지만, 이 씨만 이를 거절했다. 이 씨는 한 유튜브에 출연해 “리폼을 해서 파는 것도 아니고 소비자가 맡기면 기술을 제공할 뿐인데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았다”고 했다. 소송 비용 부담에도 자칫 수선업체가 줄도산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버텼다. ▷1, 2심에선 이 씨가 졌다. 리폼 제품도 독립된 교환 가치를 지닌 상표법상 ‘상품’에 해당한다고 법원은 봤다. 판결이 알려지자 비싼 가격에 비해 부실한 사후서비스(AS)가 불만이던 소비자들은 뿔이 났다. 명품을 AS 맡기면 본국으로 보내야 한다며 수개월을 기다리라 하기 일쑤다. 그 비용도 상당하다. 그러면서 ‘내돈내산’ 리폼까지 안 된다니 수백만 원짜리를 버리란 말이냐는 항변이다. ‘자동차 튜닝도 금지하나’ ‘옷 줄여서 아이 입히면 불법이냐’ 등 냉소적 반응이 쏟아졌다. 중국 짝퉁 시장은 방치하면서 한국에선 영세 소상공인에게까지 쩨쩨하게 군다는 불만도 있다. ▷대법원은 다르게 봤다. 리폼 제품이 개인적 용도로만 사용되는 한 상표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고 26일 원심을 파기했다. 리폼은 개성을 표현하거나 재활용 등을 통해 제품 수명을 연장하는 행위이므로 소유권 행사 및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원 순환이라는 환경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고이고이 아껴 쓰는 소비자,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고친 장인에게 죄를 묻는 건 상식적으로 아니지 않나.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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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훈식 형 현지 누나” 돌아온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단에 김남국 전 대통령실 국민디지털소통비서관이 합류했다. ‘훈식이 형, 현지 누나’ 문자 논란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지 두 달여 만이다. 김 대변인은 2020년 총선 때 국회에 입성했다. 이른바 ‘조국 사태’ 당시 검찰을 비판하는 조국백서위원회에 참여하면서 민주당에 발탁됐고, 검찰 개혁을 앞당길 30대 젊은 변호사라는 이유로 경기 안산 단원을에 전략 공천됐다. “매일 밤 조국을 위해 기도한다”면서 ‘친조(친조국)’임을 내세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으나, 점차 ‘친명(친이재명)’ 색깔이 뚜렷해졌다. 원조 ‘친명’과 중앙대 선후배들이 뭉친 7인회에 참여해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이던 시절 우군을 자처했다. ▷초선 의원이었던 그가 다선 의원보다 유명해진 건 2023년 5월 거액의 코인을 보유한 사실이 보도되면서부터다. 비록 가상자산을 신고할 법적 의무는 없더라도 고의로 감춘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의정 활동 중에 빈번하게 코인 거래를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2022년 11월 ‘이태원 참사’ 현안 보고가 있었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도중 코인 매매를 한 사실이 보도됐고 여론이 들끓었다. 국민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상실한 행동이었다. ▷코인 의혹이 불거진 지 9일 만에 김 대변인은 “부당한 정치 공세”라며 탈당했다. 당의 징계도 없었고, 코인도 지켰다. 당시 당 대표 측근이라 온정적으로 대처한다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나왔다. 그는 2024년 3월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슬그머니 입당했다가 그해 4월 총선 이후 민주당과 합당되면서 우회 복당했다.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실 국민디지털소통비서관을 맡았다. ▷지난해 12월 청와대 입성 반년 만에 그는 사실상 경질되고 만다. 7인회 멤버였던 문진석 민주당 의원과 주고받은 문자 내용이 공개된 것이다. ‘우리 중(앙)대 출신. (이재명) 대통령 (경기도) 지사 출마 때 대변인도 했고 자동차산업협회 본부장도 해서 회장 하는 데 자격은 되는 것 같다.’ 문 의원의 문자에 김 대변인은 ‘넵 형님, 훈식이 형이랑 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발랄하게 답했다. 그 자리에 맞는 공적 의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한 통의 문자로 청와대가 민간 협회 인사까지 개입하고, 학맥과 그림자 실세가 인사를 좌지우지한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코인 보유 논란에도, 인사 청탁 논란에도 그를 감쌌던 민주당은 이번에는 대변인 등용으로 정치적 재기의 길을 열어 줬다. 세간에선 ‘남국 불패’냐고 한다. 박수현 민주당 대변인은 한 방송에서 “두 번의 큰 고비를 겪으면서 반성도 했을 것이고, 젊은 정치인이 집에 틀어박혀서 위축된 생활을 보내게 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라고 했다. 반복된 선처를 경험할 기회도 못 가져 본 청년 정치인들은 이 말에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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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우경임]차라리 군수를 수입하자

    김희수 진도군수의 ‘처녀 수입’ 발언 영상을 찾아봤다.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광주·전남이 통합할 때 인구 소멸에 대한 것을 법제화해서, 정 못하면 스리랑카나 베트남이나 그쪽 젊은 처녀들 좀 수입을 해서 농촌 총각들 장가도 보내야 한다.” 2026년 한국에서 공직자가, 그것도 공적 자리에서 한 발언이라곤 믿기지 않는다. 사람은 사고팔지 않는다. 반인권적이다. 성 경험이 없는 여성이란 뜻을 내포하는 처녀라는 단어도 사라진 지 오래다. 성차별이다. 물론 총각이란 단어도 마찬가지다. 여성을 인구를 늘리기 위한 출산 도구로 봤다. 성차별이다. 스리랑카, 베트남을 여성 공급 기지쯤으로 치부했다. 인종차별이다. ‘71세 한국 남성’인 본인을 제외한 모두를 배제하는 그의 발언이 경악스러웠다.외국인 13% 넘는 진도군 책임자가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광주·전남 행정통합 타운홀 미팅’에 진도군수로 참석했으니, 발언의 무게를 몰랐을 리 없다. 단순한 실언이 아니라 평소 생각이 여과 없이 드러난 것으로 봐야 한다. 평소 그의 발언이라면 좌중이 고개를 끄덕여 주는 ‘소권력’을 누려 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것이다. 이날 타운홀 미팅에서 그의 발언이 끝나자 싸늘하게 식을 줄 알았던 장내에선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행정안전부의 2024년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을 보면 전남 진도군은 총인구(2만9448명) 가운데 외국인 주민의 비중이 13%를 넘어섰다. 전국 지자체 평균(5%)의 2.6배에 달한다. 이런 지역의 군수가 ‘혐오 발언’을 당당히 내뱉고, 인권 감수성의 결핍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른다. 비단 김 군수뿐이랴. 지난해 11월 김종훈 당시 울산 동구청장은 “동남아에 사는 것 같다” “불안해서 못 살겠다”와 같은 주민 발언을 직접 인용하며 “단지 막연한 불안감이라고 얘기할 수 있나”라고 했다. 2023년 5월 양태석 경남 거제시의원은 “외국 사람들은, 특히 베트남 애들, 이런 애들은 관리가 안 된다”며 “베트남 애들 10명 중 1명은 ‘뽕’을 한다”고 했다. 2019년 6월에는 정헌율 전북 익산시장이 다문화 가정 자녀를 향해 “잡종”이라고 불렀다. 그는 “생물학적, 과학적으로 얘기한다면 잡종 강세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고 했고 해당 발언이 논란이 되자 ‘튀기’라는 말을 쓸 수 없어 ‘잡종’이라고 했다는 기괴한 해명을 했다. 모든 발언이 사석이 아니라 공적 업무를 보던 중에 나왔다. 울산 동구, 전북 익산, 경남 거제의 외국인 주민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7.9%, 4.3%, 7.9%였다. 권력을 가진 지역 정치인이 이들을 공개적으로 비하하거나 잠재적 위협으로 낙인찍는 행위는 사회에 ‘혐오 허가증’을 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외국인 유입이 없으면 존립이 위태로운 지역에서 아직도 이들을 ‘2등 시민’으로 취급한다.차별 정서에 편승해 갈등 부추겨 2019∼2024년 전국 지자체 10곳 중 9곳에서 외국인 주민이 증가했다. 특히 인구 소멸 지역일수록 외국인 주민 수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5년간 50% 이상 증가한 곳이 35곳이나 된다. 이들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고 공장이 돌아가지 않으며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없다. 이미 우리 사회의 주요 구성원이다. 이들을 포용해야 마땅한 지자체장과 지역 의원이 외국인 차별 정서에 편승해 공적 폭력을 마구 휘두른다. 김 군수의 발언이 알려지자, 주한 베트남 대사관은 전남도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 “여성의 존엄과 명예를 존중하는 것이 베트남과 한국 양국이 공유하는 가치이자 자산이며 원칙”이라고 했다. 절제되고 품격 있는 언어였다. 이런 나라에선 자질 있는 군수를 수입해야 맞지 않나.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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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2차 특검 ‘김성태 변호인’ 추천 논란

    이재명 대통령이 6일 3대(내란, 김건희, 채 상병) 특검에서 미진했던 수사를 이어갈 2차 종합특검으로 조국혁신당이 추천한 권창영 변호사를 최종 임명했다. 이례적이라는 뒷말이 무성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전준철 변호사를 탈락시키고 판사 출신을 임명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민주당 추천인 전 변호사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린 전력이 있었다. 이 대통령이 “부적절한 추천”이라며 이런 후보자를 당이 걸러내지 않은 건 문제라는 취지로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를 직격한 듯한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지자 이성윤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 추천은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라는 글을 올렸다. 전 변호사는 이 의원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던 2020∼2021년 그 아래서 반부패수사1·2부장을 지낸 ‘특수통’이다. 전 변호사는 이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이 나온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과 무관한 쌍방울 임직원의 비리 사건을 맡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당내 친명계에선 “어떻게 대통령이 기소되는 데 영향을 미친 김 전 회장의 변호인을 추천하느냐”며 황당해했다. ▷이 의원이 친분을 바탕으로 무리한 추천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다. 더욱이 전 변호사는 지난해 여름 1차 특검 당시 민주당 당적 때문에 추천에서 배제됐다. 이 의원이 직접 발의한 2차 특검법에선 당적 보유 1년이 지나면 특검에 임명할 수 있도록 자격을 완화한 사실도 드러났다. 전 변호사 추천을 염두에 둔 자격 기준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정 대표는 연이틀 “대통령에게 누를 끼쳐드린 데 대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친명계 의원들의 불만이 폭발하는 모양새다. 친명계 의원들은 “이번 특검 추천 과정에서 당 최고위원회의나 국회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과 논의가 전혀 없었다”며 당 지도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배신” “반역”이라는 격앙된 목소리도 나온다.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특검 후보 추천 등을 언론 보도를 보고야 알게 되는 불투명한 ‘밀실’ 의사 결정에 당내 불만이 상당히 쌓인 상태다. ▷그간 ‘명청(이재명-정청래) 대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당내 친명-친청 갈등, 넓게는 당청 갈등이 누적되어 왔다. 정 대표 체제 아래서 정부의 검찰·사법 개혁안이 번번이 뒤집혔다. 친명계 반발을 무릅쓰고 조국혁신당과의 합당도 전격 선언됐다. 하지만 ‘김성태 변호인’ 특검 후보 추천으로 정청래 체제가 내상을 입었다는 평가가 많다. 그 바람에 3월 중 합당이란 구상도 흔들린다는 평가도 나온다. 민주당은 10일 긴급 의총을 열고 합당 문제를 논의할 예정인데 6월 지선 이후로 미루자는 의견이 힘을 얻는다고 한다. “집권 야당”이라는 성토까지 나오는 정 대표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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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알약 등장에 주가 폭락한 ‘비만약 투톱’

    ‘살이 아니라 주가만 빠졌다.’ 비만치료제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와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 주가가 5일 미국 증시에서 각각 약 8%씩 빠졌다. 특히 노보노디스크 주가는 43달러까지 내려 위고비를 출시하기 전인 2021년 주가로 돌아갔다. 지난달 주사제에 더해 위고비 알약까지 출시하면서 탄탄한 실적을 예상했던 투자자들 사이에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주가 급락의 원인은 미국 원격의료 플랫폼인 힘스앤드허스헬스(Hims & Hers Health)가 위고비 알약과 동일한 성분(세마글루타이드)으로 조제한 비만약을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했기 때문이다. 구독 첫 달에는 49달러, 이후에는 매달 99달러를 내면 된다. 현재 월 149∼299달러에 팔리는 ‘원조’ 위고비 알약에 비해 월등히 싸다. 힘스앤드허스는 원격으로 의사 진료를 보고 그 처방에 맞춰 약을 정기적으로 배송해 주는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에서 위고비 특허는 2032년 만료된다. 따라서 위고비 복제약을 만들 순 없다. 힘스앤드허스는 약국에서 파는 조제약으로 특허를 우회했다. 미국에선 약의 용량, 제형 등을 환자에 맞춰 제조할 수 있는 ‘복합 제조’가 허용된다. 예를 들어, 다섯 살 아이가 항생제를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약사가 용량을 성인의 3분의 1, 딸기 맛 시럽으로 자체 조제할 수 있다. 힘스앤드허스는 비만약도 이렇게 맞춤형으로 조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과정을 생략하고 특허법 사각지대를 공략했다. ▷복용이 편리한 알약으로 2억 명에 달하는 과체중 또는 비만 인구를 흡수하려던 제약사들은 힘스앤드허스에 허를 찔린 셈이다. 사실상 제약사의 사업 구조를 뿌리부터 흔드는 ‘변종’ 조제약에 대해 제약사는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노보노디스크는 “불법적으로 대량 조제한 모조품”이라며 “FDA 평가를 거치지 않아 환자 안전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했다. 노보노디스크는 각국에서 특허 만료가 시작된 올해 조제약까지 출시되면서 매출이 최대 13%가량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절정에서 무너졌던 노키아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는 불안이 엄습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약값을 낮추겠다며 월 1000달러가 넘던 위고비, 마운자로 주사제 가격을 거의 반의반값으로 후려쳤다. 외신들은 힘스앤드허스의 비만약 구독 서비스는 FDA 개입 여부가 그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FDA가 ‘복합 조제’가 허용되는 비만약이 공급 부족 상황이 아니라고 보거나, 안전성 검증을 요구한다면 서비스가 중단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가장 싼 약값을 지불할 것”이라는 트럼프 행정부 아래서 FDA가 그린란드 분쟁을 벌이는 덴마크의 제약사에 유리한 결정을 할지는 물음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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