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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경임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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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1-12~2026-02-11
칼럼100%
  • [횡설수설/우경임]2차 특검 ‘김성태 변호인’ 추천 논란

    이재명 대통령이 6일 3대(내란, 김건희, 채 상병) 특검에서 미진했던 수사를 이어갈 2차 종합특검으로 조국혁신당이 추천한 권창영 변호사를 최종 임명했다. 이례적이라는 뒷말이 무성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전준철 변호사를 탈락시키고 판사 출신을 임명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민주당 추천인 전 변호사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린 전력이 있었다. 이 대통령이 “부적절한 추천”이라며 이런 후보자를 당이 걸러내지 않은 건 문제라는 취지로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를 직격한 듯한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지자 이성윤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 추천은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라는 글을 올렸다. 전 변호사는 이 의원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던 2020∼2021년 그 아래서 반부패수사1·2부장을 지낸 ‘특수통’이다. 전 변호사는 이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이 나온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과 무관한 쌍방울 임직원의 비리 사건을 맡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당내 친명계에선 “어떻게 대통령이 기소되는 데 영향을 미친 김 전 회장의 변호인을 추천하느냐”며 황당해했다. ▷이 의원이 친분을 바탕으로 무리한 추천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다. 더욱이 전 변호사는 지난해 여름 1차 특검 당시 민주당 당적 때문에 추천에서 배제됐다. 이 의원이 직접 발의한 2차 특검법에선 당적 보유 1년이 지나면 특검에 임명할 수 있도록 자격을 완화한 사실도 드러났다. 전 변호사 추천을 염두에 둔 자격 기준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정 대표는 연이틀 “대통령에게 누를 끼쳐드린 데 대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친명계 의원들의 불만이 폭발하는 모양새다. 친명계 의원들은 “이번 특검 추천 과정에서 당 최고위원회의나 국회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과 논의가 전혀 없었다”며 당 지도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배신” “반역”이라는 격앙된 목소리도 나온다.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특검 후보 추천 등을 언론 보도를 보고야 알게 되는 불투명한 ‘밀실’ 의사 결정에 당내 불만이 상당히 쌓인 상태다. ▷그간 ‘명청(이재명-정청래) 대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당내 친명-친청 갈등, 넓게는 당청 갈등이 누적되어 왔다. 정 대표 체제 아래서 정부의 검찰·사법 개혁안이 번번이 뒤집혔다. 친명계 반발을 무릅쓰고 조국혁신당과의 합당도 전격 선언됐다. 하지만 ‘김성태 변호인’ 특검 후보 추천으로 정청래 체제가 내상을 입었다는 평가가 많다. 그 바람에 3월 중 합당이란 구상도 흔들린다는 평가도 나온다. 민주당은 10일 긴급 의총을 열고 합당 문제를 논의할 예정인데 6월 지선 이후로 미루자는 의견이 힘을 얻는다고 한다. “집권 야당”이라는 성토까지 나오는 정 대표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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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알약 등장에 주가 폭락한 ‘비만약 투톱’

    ‘살이 아니라 주가만 빠졌다.’ 비만치료제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와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 주가가 5일 미국 증시에서 각각 약 8%씩 빠졌다. 특히 노보노디스크 주가는 43달러까지 내려 위고비를 출시하기 전인 2021년 주가로 돌아갔다. 지난달 주사제에 더해 위고비 알약까지 출시하면서 탄탄한 실적을 예상했던 투자자들 사이에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주가 급락의 원인은 미국 원격의료 플랫폼인 힘스앤드허스헬스(Hims & Hers Health)가 위고비 알약과 동일한 성분(세마글루타이드)으로 조제한 비만약을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했기 때문이다. 구독 첫 달에는 49달러, 이후에는 매달 99달러를 내면 된다. 현재 월 149∼299달러에 팔리는 ‘원조’ 위고비 알약에 비해 월등히 싸다. 힘스앤드허스는 원격으로 의사 진료를 보고 그 처방에 맞춰 약을 정기적으로 배송해 주는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에서 위고비 특허는 2032년 만료된다. 따라서 위고비 복제약을 만들 순 없다. 힘스앤드허스는 약국에서 파는 조제약으로 특허를 우회했다. 미국에선 약의 용량, 제형 등을 환자에 맞춰 제조할 수 있는 ‘복합 제조’가 허용된다. 예를 들어, 다섯 살 아이가 항생제를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약사가 용량을 성인의 3분의 1, 딸기 맛 시럽으로 자체 조제할 수 있다. 힘스앤드허스는 비만약도 이렇게 맞춤형으로 조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과정을 생략하고 특허법 사각지대를 공략했다. ▷복용이 편리한 알약으로 2억 명에 달하는 과체중 또는 비만 인구를 흡수하려던 제약사들은 힘스앤드허스에 허를 찔린 셈이다. 사실상 제약사의 사업 구조를 뿌리부터 흔드는 ‘변종’ 조제약에 대해 제약사는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노보노디스크는 “불법적으로 대량 조제한 모조품”이라며 “FDA 평가를 거치지 않아 환자 안전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했다. 노보노디스크는 각국에서 특허 만료가 시작된 올해 조제약까지 출시되면서 매출이 최대 13%가량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절정에서 무너졌던 노키아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는 불안이 엄습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약값을 낮추겠다며 월 1000달러가 넘던 위고비, 마운자로 주사제 가격을 거의 반의반값으로 후려쳤다. 외신들은 힘스앤드허스의 비만약 구독 서비스는 FDA 개입 여부가 그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FDA가 ‘복합 조제’가 허용되는 비만약이 공급 부족 상황이 아니라고 보거나, 안전성 검증을 요구한다면 서비스가 중단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가장 싼 약값을 지불할 것”이라는 트럼프 행정부 아래서 FDA가 그린란드 분쟁을 벌이는 덴마크의 제약사에 유리한 결정을 할지는 물음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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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다시 쉬는 제헌절… 공휴일도 시대 따라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 공포됐던 1948년 7월 17일을 기념하는 제헌절이 다시 공휴일로 지정됐다. 올해 제헌절은 마침 금요일이라 3일간 쉬는 ‘황금 주말’이 늘었다. 제헌절은 3·1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과 함께 5대 국경일이었지만 유일하게 쉬는 날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공휴일로 재지정하자는 법안이 이미 여럿 발의돼 있었고 12·3 비상계엄 이후 헌법 정신이 강조되면서 공휴일법이 29일 국회에서 통과됐다. ▷공휴일이 그 지위를 빼앗긴 건 근로 시간 단축 제도의 도입 과정과 관련이 깊다. 2004년 도입된 주 5일제는 6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확대됐다. 그래도 저항이 컸다. 기업들은 생산성 손실과 비용 부담을 호소했고 정부는 ‘당근책’으로 공휴일 축소를 추진했다. 2006년 식목일(4월 5일), 2008년 제헌절이 차례로 공휴일에서 제외된 까닭이다. 근로 일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법정 공휴일도 줄어드는 일종의 거래가 이뤄진 셈이다. ▷이보다 앞서 1991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된 국군의 날(10월 1일)과 한글날(10월 9일)은 토요일 반나절만 근무하는 주 5.5일제 시행의 여파였다. 10월의 방학이라 불렸던 ‘퐁당퐁당’ 공휴일부터 퇴출당했다. 당시 이를 논의했던 국무회의 브리핑을 보니 “사회가 너무 노는 분위기로 가는 것은 문제”라며 “공휴일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국무위원의 정제된 발언 수위가 이랬으니 사회적으로 얼마나 근면, 성실이 강조되던 분위기였을지 짐작이 간다. ▷공휴일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쉬라고 하는 날이니 시대상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유엔의 날(10월 24일)은 6·25전쟁에 참여했던 유엔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공휴일로 지정됐다. 하지만 북한이 세계보건기구(WHO), 유네스코 등 유엔 산하 기구에 줄줄이 가입하자 정부가 그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공휴일 지정을 취소했다. 남북 경쟁이 쉬는 날을 갑자기 일하는 날로 만들었다. 1999년부터는 1월 2일이 신정 연휴에서 제외됐다. 양력설을 권장했으나 여전히 음력설을 고수하는 사람이 많자 휴일을 축소했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난 극복이라는 명분도 있었다. ▷제헌절이 추가되면서 올해 연간 법정 공휴일(대체 휴일 포함)은 22일까지 늘어났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합하면 모두 119일, 일 년의 약 3분의 1을 쉬는 셈이다. 현재 주 4.5일제 도입도 논의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공휴일을 축소하자는 목소리가 벌써 나왔을 법도 한데 잠잠하다. 키오스크부터 휴머노이드까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기술이 등장해 노동력 투입이 곧 생산성과 직결되지 않는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분위기도 대세로 자리 잡았다. 제헌절에 출근하던 18년 동안 세상이 이렇게나 바뀌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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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명품’이 된 김장 조끼

    보통 5000∼1만 원이면 살 수 있는 ‘시장표’ 김장 조끼의 갑작스러운 신분 상승이 화제가 되고 있다. 명품 브랜드에서 김장 조끼를 그대로 베낀 듯한 제품을 출시한 것이다. 발렌티노는 알록달록한 꽃무늬에 털 장식을 단 조끼를 내놓았다. 가격이 무려 630만 원이다. 제품명 자체에 김장 조끼를 연상시키는 ‘겨울이 지난 후’(프랑스어로 Après l’Hiver) ‘작은 꽃들’(이탈리아어로 ‘Fiorellini’) 같은 단어가 들어 있다. 몽클레르도 큼직한 꽃무늬가 박힌 오리털 조끼를 233만 원에 판다. 지난해 아디다스도 진홍색 꽃무늬 재킷을 출시해 인기를 끌었다. ▷마당에 둘러앉아 고무 대야에 잔뜩 쌓인 김치를 종일 버무리려면 따뜻하면서도 팔, 다리가 움직이기 편해야 했다. 솜으로 누빈 김장 조끼와 몸뻬 바지는 실용성과 보온성을 갖춘 최고의 작업복이었다. 김장 조끼가 상징하는 ‘시골’ ‘김치’ ‘할머니’는 개발도상국 한국에서 자란 세대에겐 정겹지만 촌스러운 감성이었다. 그런데 선진국 한국에서 태어난 잘파(Z+알파) 세대는 달랐다. 거리낌 없이 할머니 옷장을 열고 ‘쿨(Cool)’하고 ‘힙(Hip)’한 패션으로 새롭게 해석했고 한국적인 것에 대한 자신을 드러냈다. ▷김장 조끼 열풍은 전형적인 ‘K컬처’ 확산 공식을 따른다. 블랙핑크 제니, 에스파 카리나가 김장 조끼를 입은 사진이 SNS를 타고 세계적으로 퍼져 나갔다. 이들이 입은 김장 조끼가 도대체 무엇인지 서사를 다룬 기사가 쏟아지고, SNS에선 인증 사진이 줄을 잇는다. 한국 문화를 체험하고 싶은 외국인 관광객의 쇼핑 목록에 오르면서 전통시장 매대를 점령했다. 외국 여행을 갔다가 김장 조끼를 입은 현지인을 봤다는 목격담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이베이(eBay), 엣시(Etsy) 등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서도 팔리고 있다. ▷한류는 K팝, K드라마를 넘어 직접 가서 입어 보고, 먹어 보는 한국의 일상을 체험하는 놀이로 진화했다. 이제 명소를 찍고 돌아가는 단체 관광이 아니라 ‘한 달 살기’처럼 한국 문화에 녹아드는 관광이 뜨고 있다. 김장 조끼와 몸뻬 바지를 걸치고 김치를 담가 보고, 광장시장 노점에서 식사하고, 구석구석 골목길을 걷는다. 우리의 일상이 ‘쿨’하게 소비된다는 건 한국이 경제 강국에서 문화 강국으로 거듭났다는 뜻일 터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3년 전 ‘기생충’ ‘오징어 게임’으로 대표되는 한류를 다룬 기사에서 ‘20세기 내내 쿨이라는 개념을 서구가 독점했지만 이제는 대중문화가 다극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구 문화의 일극 체제가 무너진 건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에서 문화가 융성하고, 온라인에서 누구나 미디어를 갖게 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는 그 드문 행운을 누리는 나라에 살고 있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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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우경임]아빠 김병기, 엄마 이혜훈

    우리나라 청년들의 삶을 설명하는 지표들이 잇달아 발표됐다. 지난해 20, 30대 ‘쉬었음’ 인구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가구당 자산이 5% 가까이 늘었는데 오직 39세 이하 청년층의 자산만 감소했다. 소득이 적어 ‘영끌’도 힘든 청년층이 집값 상승 흐름에서 배제된 까닭이다. 청년 자살률도 10년 이래 최고치였다. 이런 우울한 뉴스를 순식간에 덮은 건 김병기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끝없이 터져 나오는 의혹이었다. 역시나 ‘부모 찬스’ 의혹은 빠지지 않았다.자식 뒷바라지에 너무 바빴던 아빠 김 의원은 당무 보랴, 지역구 챙기랴 바쁜 와중에도 두 아들을 위해 ‘슈퍼맨’처럼 움직였던 것 같다. 김 의원의 장남은 4차례 국가정보원 공채에 응시한 끝에 2016년 합격했다. 장남이 2014년 공채에서 탈락하자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였던 김 의원이 국정원에 불합격 처분 취소를 지속해서 요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2016년 김 의원의 아내가 이헌수 당시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에게 낙방에 항의하는 통화 녹취록도 공개됐다. 이 실장은 “경력직을 추가로 뽑을 것이니 믿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이 통화 넉 달 뒤 장남은 합격했다. 장남은 입사 9년 차인 2024년 극비리에 수행해야 할 국정원 업무를 아버지를 통해 보좌관에게 ‘외주’를 준 정황도 드러났다. 그간 보도에 따르면 김 의원 차남은 2023년 3월 대학과 기업이 계약을 맺고 직원을 교육하는 계약학과인 숭실대 혁신경영학과에 편입했다. 그 방법이 기발했다. 차남은 편입하기 전에 A기업에 취업했다가 10개월을 채우고 그만뒀다고 한다. 김 의원이 숭실대 총장을 직접 만나 편입 방법을 문의했고, A기업 대표에게 취업 청탁 전화를 했던 정황을 볼 때 편입 조건을 갖추려는 위장 취업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차남은 졸업 후에 ‘빗썸’에 취직했는데 이때도 김 의원이 차남의 이력서를 들고 다녔고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보도됐다.청년 인턴에는 갑질, 자식은 애지중지 이 후보자의 모성애도 아들을 위해 국회의원을 했나 싶은 김 의원의 부성애 못지않다. 장남의 ‘위장 미혼’으로 가점을 얻어 로또 아파트에 당첨된 건 ‘부모 찬스’가 아닌 ‘아들 찬스’라 치자. 차남과 삼남은 집에서 가까운 지역아동센터와 경찰서에서 각각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했다. 앞으로 사실 확인이 필요하지만 공교롭게도 두 곳은 이들이 근무를 시작한 해부터 공익요원을 받았다. 이 후보자가 보좌진에게 삼남 근무지로 수박을 배달하라고 지시한 적도 있다고 한다. 자식 같은 의원실 인턴에게 “IQ가 한 자리냐” “널 죽였으면 좋겠다”며 막말을 퍼붓던 이 후보자지만 자식은 그저 안쓰러웠나 보다. 이 후보자의 아들 셋은 할머니로부터 서울 상가와 아파트, 비상장 주식을 고루 물려받았다. 당시 이들의 소득으로 미루어 볼 때 부모로부터 증여를 받아 매매 대금을 치르고 세금을 냈을 것이란 의심이 존재한다. 이 후보자의 아들 셋은 이미 10억 원대 자산을 축적했다. 보통 청년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이 격차를 극복하기 힘들 것이다. 김 의원과 이 후보자의 애끓는 자식 사랑은 청년들이 ‘부모 찬스’까지 동원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협소한 기회를 두고 끝없이 경쟁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남 탓할 줄 모르고, 반칙할 줄 모르고, 변명할 줄 모르는 많은 청년은 스스로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자책한다. 좌절이 깊어 주저앉고 만다. 이런 사회를 바꿀 책임이 있는 공직자가 공동체의 안녕보다 자식의 안녕만 챙기고 위법을 저지르고도 그 윤리의 타락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절망스럽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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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앞삼겹, 돈차돌, 뒷삼겹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아 이것마저 없다면’.(안도현 ‘퇴근길’) 시인이 노래했듯이 한국인에게 삼겹살은 음식, 그 이상이다. 그래서 비계를 밑장 깔아 파는 삼겹살이나 고기보다 비계만 많은 삼겹살 구이에 일절 관용을 베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삼겹살마저…’라는 배신감이 절로 들어서다. 최근 울릉도의 한 식당이 ‘고기 반, 비계 반’인 삼겹살 구이를 팔았다가 뭇매를 맞았다. 정부가 ‘비계 삼겹살’ 해결책으로 삼겹살을 지방량에 따라 부위를 나눠 유통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삼겹살은 돼지갈비 아래에서 다리 쪽으로 이어지는 뱃살 부위를 일컫는다. 지금까지 삼겹살의 지방 두께는 1cm 이하로 관리하도록 권고됐다. 앞으로는 지방 함량에 따라 3개 부위로 나눈다. 지방이 적정한 부위가 ‘앞삼겹’, 지방이 적은 부위는 ‘뒷삼겹’이다. 삼겹살 재명명을 촉발한 ‘비계 삼겹살’은 소고기의 차돌박이에 빗댄 ‘돈차돌’로 거듭났다. ▷돼지고기는 1+, 1, 2등급으로 나뉜다. 최상급인 1+ 등급은 중량에 따른 지방 비율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정 범위에 있어야 한다. 현재 1+ 등급 삼겹살 내 지방 비율은 22∼42%인데, 정부가 이를 25∼40%로 조정하기로 했다. 농가들이 지방이 적은 돼지를 사육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비계 삼겹살’ 논란에 돼지도 골고루 사료를 먹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게 됐다. ▷이번 축산물 유통 구조 개선 방안에 따라 달걀도 크기별로 새 이름을 얻었다. 기존에 달걀 크기가 큰 순서대로 왕, 특, 대, 중, 소로 불렀는데 이를 2XL, XL, L, M, S로 바꿨다. ‘달걀이 옷이냐’는 조롱도 있지만 ‘왕’이 큰지, ‘특’이 큰지 헷갈리던 차에 직관적이라는 반응이 우세하다. 사실 달걀 등급제는 크기 표시가 아니더라도 너무 복잡하다. 달걀 크기 외에도 신선도에 따라 1+, 1, 2, 3등급으로 나뉘고 사육 방식에 따라 자유 방사부터 케이지 사육까지 1, 2, 3, 4번 사육으로 표시한다. 동물복지, 무항생제, 유정란 인증은 또 별도다. 이 숫자들을 조합하다 보면 달걀 고르기가 방정식 풀기만큼 어렵다. ▷달걀 등급과 인증 표시가 복잡해지며 ‘왕’ ‘1+’ ‘1번 사육’ 달걀의 가격이 올랐다. 이처럼 돼지고기 부위를 세분해서 팔면 값만 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뒷삼겹 가격을 내리진 않고 앞삼겹 가격을 올리지 않겠냐는 말이다. 소비자가 취향대로 골라 먹을 순 있겠으나 상품성이 없었던 비계 삼겹살도 돈차돌이 되어 제값을 받게 될 것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식당에서 파는 삼겹살 200g의 평균 가격은 2만 원을 넘어섰다. 소비자는 비계 삼겹살뿐만 아니라 비싼 삼겹살도 달갑지 않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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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택배 상자에 반창고 하나 덜렁

    택배를 받아보면 물건을 샀는지, 상자를 샀는지 헷갈릴 정도다. 반창고와 양념이 떨어져 묶어 주문했는데 반창고 한 개, 양념 한 개가 각각 가로세로 족히 30cm 되는 택배 상자에 따로 배달됐다. 공책 5권을 시켰는데 택배 5개가 도착해 식겁한 적도 있다. 식품 포장은 더 심각하다. 이른바 ‘뽁뽁이’라는 완충재로 말고, 보랭팩을 여럿 넣고, 다시 비닐 충전재를 넣어 상자에 담아 보낸다. 냉동, 냉장, 상온 보관 식품을 각각 다른 상자에 담아 보내기 때문에 재활용 쓰레기 처리에 여간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다. 택배를 줄여야겠다고 결심해 보지만 그 편리함에 번번이 지고 만다. ▷기업으로선 상품이 손상돼서 반품을 받느니 포장을 많이 하는 것이 비용적으로 낫다. 택배 상자 역시 크기가 다양할수록 구입과 재고 비용, 포장 시간이 늘어난다. 표준 규격으로 설계된 자동화 설비 투자를 늘리거나, 아니면 인력을 더 고용해야 한다. 차량에 실을 때도 상자 크기가 일정하지 않으면 공간 사용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결국 기업으로선 과대 포장이 낭비가 아니라 비용 절감인 셈이다. ▷2023년 한 해 동안 재활용 폐기물 395만 t 가운데 포장 폐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47.8%로 절반 가까이 된다. 2020년까지만 해도 포장 폐기물의 비중이 30%대였는데 코로나19 유행 동안 온라인 쇼핑이 늘면서 2021년 44.2%, 2022년 45.1%로 급증했다. 실제 아파트 단지 내 재활용 분리수거장에 가면 종이 상자, 스티로폼 상자, 뽁뽁이 등 택배 포장이 정말 무덤처럼 쌓여 있다. ▷정부는 2022년 4월 택배 과대 포장 규제를 도입했다. 포장 횟수는 1회로 하고, 택배 상자의 빈 공간이 50% 이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원래 2년 유예 기간을 거쳐 2024년 시행될 예정이었는데 돌연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다며 내년 4월까지 계도 기간을 뒀다. 대상 제품이 1000만 종 이상이고, 연간 60억 개에 달하는 택배 상자를 일일이 검사하는 게 어렵다는 이유였다. 규제 도입 당시에도 익히 짐작할 수 있는 문제였다. 3년이 지나도록 정부, 기업이 제도 시행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정부는 최근 일회용컵 따로 계산제, 빨대 제공 중단 등의 내용이 담긴 ‘탈플라스틱 로드맵’을 발표했다. 하지만 전체 폐기물 가운데 가정에서 배출하는 생활폐기물은 12%밖에 되지 않는다. 더욱이 상품 포장이나 택배 포장에서 발생하는 생활폐기물은 개인이 줄이려고 해봐야 방법도 없다. 이러니 “만만한 소비자만 규제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정책 순응도가 낮아진다. 유럽연합(EU)이나 일본은 생산자 규제로 방향을 틀었다. 생산 단계에서부터 과대 포장을 줄이지 않으면 지구가 쓰레기 더미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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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우경임]교육부 장관인가, 교사부 장관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내년 규제, 금융, 공공, 연금, 노동, 교육 등 6대 구조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 개혁은 유독 방향도, 실체도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12일 교육부 업무보고에선 교육 개혁에 대한 밑그림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정작 남은 건 ‘환(환단고기)빠 발언’뿐이었다.이날 이 대통령의 발언만 논란이 된 건 최교진 교육부 장관의 업무보고가 그만큼 내용이 빈약했기 때문이다. 최 장관은 “인공지능(AI)의 발전은 경험하지 못한 대전환을 가져올 것”이라고 진단하고도 AI와 함께 살아갈 아이들에게 뭘 가르치고, 어떻게 가르칠지 제시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업무보고 1번은 ‘헌법 가치를 실천하는 민주시민·역사교육’이었다. 물론 중요하지만 이런 대전환기에 1번 정책이 맞나. 정작 현장과 불협화음을 빚는 고교학점제, 박사도 풀지 못하는 수능과 같은 민감한 이슈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이 정도면 ‘탕핑’ 아닌가사흘 뒤 최 장관의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기자들은 업무보고에서 듣지 못했던 교육 개혁 방향을 듣고 싶었다. 첫 질문은 국가 인공지능 전략위원회가 과정 중심 평가 체계를 도입하고 이를 대입에 반영하라고 권고했는데, 이에 대해 교육부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였다. 최 장관은 “서울, 경기 ‘(교육청)’에서 AI 채점 보조 시스템을 민간기업과 개발하고 있다. 그 시스템이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돕는 일을 교육부가 하겠다”고 했다. ‘교육청’이 잘하고 있다는 동문서답이다.이어 영유아 사교육 대책팀이 신설됐는데 사교육비를 줄일 방안이 있는지 물었다. “대학 입시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사교육 대응책을 ‘국가교육위원회’와 함께 논의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사교육 대책은 ‘국가교육위’가 주도할 일이라고 했다.내년 3월부터 학습 및 복지, 건강, 진로 상담을 원스톱 제공하는 학생 맞춤 통합지원법이 시행된다. 취지는 좋지만 인프라가 부족해 벌써 고교학점제 꼴이 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이에 대해 최 장관은 “선생님들의 업무를 덜어드리기 위해 ‘교육지원청’ 차원에서 학맞통 정신에 맞게 지원을 준비해 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행정기관으로 치면 시군구청에 해당하는 ‘교육지원청’까지 소환된 것이다.현재 교육청은 초중등 교육, 국가교육위는 중장기 교육 전략을 맡고 있다. 그렇다면 교육부의 업무인 고등교육에 대한 답변은 어땠을까.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은 교육부 사업이라기보다는 ‘지방시대위원회’ 사업의 교육 분야를 맡고 있는 것이다. 이 사업은 산업부, 노동부 여러 부처가 함께 각각의 역할을 하고….”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주무부처가 교육부가 아닌 줄 처음 알았다. 수능 개선안과 관련해선 “국가교육위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보완한다면 그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 제도를 시행하기 위한 준비가 교육부의 역할”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중국에서 유행한다는 ‘탕핑’(躺平·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음) 아닌가.교사 정치기본권 수호에만 적극이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출신인 최 장관이 똑부러진 대답을 한 건 업무보고에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교원의 정치기본권 보장’과 관련한 질문이었다. “SNS 정치 관련 글에 교사가 ‘좋아요’를 누르는 활동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어른인 교사는 최 장관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권리 수호가 가능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4세 고시를 보라면 봐야 하고, 퍼즐 같은 수능을 풀라면 풀어야 한다. 그가 ‘교사부’ 장관을 자처하며 교육 개혁을 주저하면 아이들은 잘못된 교육 시스템에 순응해 생존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교육은 답이 없다지만, 장관이라면 최소한 개혁 의지는 보여야 하지 않나.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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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잉사 언니, Take care.”

    완벽한 경기를 완벽한 승리로 완성한 건 ‘삐약이’ 신유빈 선수의 인터뷰였다. 13일 홍콩에서 열린 월드테이블테니스(WTT) 대회에서 신 선수는 임종훈 선수와 혼합복식 조를 이뤄 우승했다. 이 대회는 WTT 시리즈 경기 성적이 상위권인 선수들을 초청해 치르는 일종의 ‘왕중왕전’이다. 임종훈-신유빈 조는 남녀 단식 세계 1위인 왕추친-쑨잉사 조와 결승전에서 맞붙어 3-0으로 완파했다. 우승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신 선수는 맞상대였던 네 살 위 쑨 선수에게 “잉사 언니, Take care(건강 챙기세요)”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임종훈-신유빈 조는 왕추친-쑨잉사 조와 파리 올림픽, 도하 세계선수권 대회 등에서 6번 맞붙어 6패를 기록했다. 이날 값진 첫 승리를 만끽할 법도 한데 신 선수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발목 부상을 안고 경기에 임한 쑨 선수부터 찾았다.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위로했고 쑨 선수도 괜찮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어진 인터뷰에선 그는 “운동선수에겐 몸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저도 마음이 아프다”라고 했다. 임 선수 역시 “프로페셔널하게 경기를 해 준 왕추친-쑨잉사 선수에게 고맙다”고 했다. 이들의 인터뷰를 지켜본 홍콩 관중들은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냈다. ▷이날 경기는 스포츠 정신의 ‘정석’ 같았다는 평가다. 부상을 당하고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 선수와 부상당한 상대 선수를 걱정하며 승리 앞에서 겸손한 선수…. 아름다운 경쟁은 중국인의 마음까지 녹였다. 웨이보 등 중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우승 세리머니를 자제하고 중국 선수를 배려한 신 선수의 매너를 칭찬하는 글이 이어졌다. 오랜 시간 살얼음판 같던 한중 관계에서 신 선수가 외교관 100명이 못 할 일을 해낸 것 같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 여자 단식 동메달 결정전에서 신 선수는 일본의 하야타 히나 선수에게 접전 끝에 패했다. 아깝게 진 경기인데도 상대 선수에게 먼저 다가가 밝게 축하 인사를 건넸고 그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신 선수는 “나를 이긴 상대들은 그만큼 나보다 더 오랜 기간, 묵묵하게 노력했던 선수들”이라며 “그런 점은 인정하고 배워야 한다”고 했다. 당시에도 일본 언론과 SNS에서 신 선수에게 매료됐다는 반응이 나왔다. ▷사실 스포츠 선수끼리는 국경, 인종, 언어를 넘어 우정을 나누곤 한다. 훈련 과정은 얼마나 고되고 경기는 긴장되는지, 승패에 통제할 수 없는 변수는 얼마나 많은지, 정당한 노력이 보상받지 못하는 패배는 얼마나 쓰라린지 ‘동병상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신 선수는 “다들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경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반경이 국경을 넘어선다는 것을 ‘삐약이’ 신 선수가 보여준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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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9번째 중도 사퇴… 교육과정평가원장 잔혹사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뀐 건 2017년 수능부터다. 원점수 90점 이상을 받으면 모두 1등급이다. 그런데 올해 수능에서 영어 1등급 비율이 3.11%에 그쳐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어 수학 등 나머지 상대평가 과목의 1등급 비율(4%)을 밑돈다.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올해 영어 1등급을 받은 수험생은 1만5145명, 지난해 절반 수준이다. 평소 모의평가 성적을 믿고 수시에 지원했던 수험생들은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대거 탈락할 처지다. “강제로 재수하게 생겼다”며 울분을 터뜨린다.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10일 이른바 ‘불(火)영어’ 사태를 책임지고 사퇴했다.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1998년 출범 이후 원장 12명(1명은 연임) 가운데 오 원장을 포함해 9명이 중도 사퇴했다. 이 중 6명은 수능 출제 오류로 물러났다. 오 원장은 ‘평가원장 잔혹사’ 명단에 수능 난이도 조절 실패로 물러난 첫 사례로 이름을 올렸다. 전임 이규민 원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킬러 문항 배제’ 지시를 따르지 않고 수능 모의평가를 출제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경질됐다. ▷오 원장은 “(수능 출제도) 결국 사람이 하는 거라 아이들에 따라, 출제자에 따라 난이도가 오락가락한다”고 했다. 입시 당락에 결정적인 수능은 ‘완벽한 시험’이기를 요구받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처음 출제 오류로 물러난 건 3대 이종승 원장이다. 2004학년도 수능 언어영역 17번 문항이 복수 정답인 것으로 인정돼 재채점이 이뤄졌다. 입시 현장의 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해임됐다. 가장 최근에는 2022학년도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이 법원 소송으로 비화했다. 소송을 제기한 응시생 92명은 세계적 유전학 석학으로부터 “문제의 전제에 모순이 있다”는 답변서를 받아 수능 공신력을 문제 삼았다. 평가원이 패소했고 당시 11대 강태중 평가원장이 물러났다. ▷암기력이 아닌 사고력을 측정하겠다며 수능이 도입된 지 32년이 지났다. 하지만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당초 취지는 온데간데없다. 전국 수험생을 일렬로 줄 세우는 변별력을 갖추려다 보니 배배 꼬인 문제가 출제된다. 최상위권 대학 합격생을 가려내기 위한 ‘킬러 문항’이 대표적이다. 32년 전과 교과과정은 다를 바 없는데 기출 문제를 피하고 변별력을 갖춘 ‘기적의 문제’를 찾아내야 한다. ▷사교육은 지문을 제대로 읽지 않고도 출제 패턴을 익혀 마치 퍼즐 풀듯 정답을 골라내는 요령을 주입하고 있다. 수능이 고교 교육과 괴리된 채, 되레 획일적 인재를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수능이 학업 성취도 측정을 넘어 대학의 역할인 학생 선발까지 떠맡아 벌어지는 일이다. ‘수능 만능주의’ 신화를 깰 때가 됐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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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초인공지능 10년 내 등장, 인류는 금붕어 될 것”

    잘 잊어버리는 사람을 금붕어에 빗댈 만큼 금붕어는 하찮은 지능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5일 이재명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초인공지능(ASI·Artificial Super Intelligence)을 언급하며 “인류는 금붕어가 되고 AI가 인간이 되는 모습이 펼쳐질 것”이라고 했다. 범용일반지능(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이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졌다면 ASI는 인간보다 1만 배 뛰어난 지능을 가진 기술이다. AI가 인간을 금붕어로 만들 만큼 똑똑해질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이다. ▷손 회장은 지난해 6월 주주총회에서 “ASI가 10년 이내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AI 긍정론자 가운데서도 가장 빠른 도래를 예상한다. 인간을 초월한 지능이 출현하면 금붕어가 인간의 행동과 의도를 이해할 수 없듯, 우리가 AI의 행동과 의도를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 손 회장은 “이제는 우리가 AI를 통제하고, 가르치고, 관리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AI와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고 어떻게 동기화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빅테크들은 ASI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메타는 7월 초인공지능연구소(MSL)를 설립해 AI 연구자들을 대거 영입했다. 구글은 딥마인드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슈퍼인텔리전스팀’을 꾸려 ASI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인간을 초월한 지능을 가진 ASI가 등장하면 질병, 빈곤, 에너지 등 인류의 난제도 ‘1+1’을 계산하듯 쉽게 해결할 것으로 예상한다. 금붕어가 수조라는 인간이 만든 완벽한 생육 환경에서 살듯이 말이다. ▷인간이 금붕어가 되고 AI가 만든 세상이 수조가 된다면 축복일까, 재앙일까. 손 회장은 낙관적으로 봤다. 그는 “우리가 강아지를 죽이려 하지 않는 것처럼, AI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ASI가 우리를 공격하거나 먹을까 봐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금붕어를 키울 때 수조 물을 갈고, 적당한 수온을 유지하고, 시간에 맞춰 먹이를 주는 것처럼 ASI도 인간을 그렇게 돌볼 것이란 예상이다. ▷2014년 저서 ‘슈퍼 인텔리전스’로 ASI 출현을 예고한 철학자 닉 보스트롬은 지난해 출간한 ‘딥 유토피아(Deep Utopia)’에서 AI가 인간보다 모든 일을 잘하게 된 세상을 그렸다. 일하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질병 정복으로 늙지 않는 세상이 왔다. 인간은 풍요롭긴 하지만 삶의 목적을 찾기 어렵고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다. 남을 돕는 봉사, 모성을 발휘하는 육아처럼 인간의 마지막 영역이라 믿었던 일까지 AI가 오류 없이 잘할 수도 있다. 어쩌면 AI가 인간을 해치는 것보다 더 두려운 미래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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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우경임]‘스무고개’로 나온 숫자 의대 증원 2000명

    12·3 비상계엄 선포 직전 열린 ‘5분 국무회의’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윤석열 전 대통령이 발언하는 동안 국무위원 10명 중 누구도 말리지 않는다. 윤 전 대통령의 발언을 조용히 경청했고, 계엄 지시 문건을 공손히 받았다. 영상을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감사원이 최근 공개한 ‘의대 증원 추진 과정’ 감사 보고서는 ‘5분 국무회의’ 같은 비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일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윤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의대 2000명 증원이 결정됐다’는 감사 보고서의 결론보다 행간에 담긴 상식을 벗어난 국정 운영에 놀라고 말았다. 윤 전 대통령은 한 번도 2000명이라는 숫자를 콕 찍어 지시한 적이 없었다. 대통령실 참모, 정부 관료가 거친 성정의 대통령을 거스를까 마치 ‘스무고개’를 풀 듯이 집단 지성을 발휘한 결과였다.“충분히 증원” 대통령 지시 맞히기의대 증원 방안의 첫 보고는 2023년 6월이었다. 2025년부터 매년 500명씩 늘리는 방안이었다. 이에 대해 조규홍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대 증원에 관한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여 보는 차원에서 이전 정부에서 추진한 연 400명 증원을 참고해 제시한 숫자”라고 진술했다. 처음부터 과학적 추계나 의료계와의 합의는 제쳐두고 대통령의 뜻을 알아보려는 ‘간 보기 숫자’를 내밀었단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그것 가지고 문제 해결이 되겠나. 1000명 이상은 늘려야 하지 않겠나”고 이를 반려했다.복지부는 같은 해 10월 대통령 보고 초안을 다시 만들었다. 이번에는 2025년부터 3년간 매년 1000명씩 늘리고 이후 정원을 재조정하겠다고 했다. 이를 사전에 검토한 안상훈 당시 대통령사회수석비서관이 “1000명 정도로 보고하면 혼날 수도 있다”며 박민수 당시 복지부 2차관에게 다시 만들라는 뜻을 전달했다.대통령실 참모가 정책적 합리성도, 정무적 판단도 아닌 단지 대통령에게 혼날까 봐 수정을 지시했는데 그 지시가 또 통했다. 복지부는 초안을 고쳐 3년간 1000명씩 늘리고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 2000명을 증원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런데도 윤 전 대통령은 “필요한 만큼 충분히 더 늘려라”고 재차 지시했다. 그 자리 참석자 누구도 대통령에게 ‘충분히’의 뜻을 묻거나 적정 증원 규모나 의대 교육 여건을 설명하지 않았다.누구도 “안 된다” 하지 않았다두 번이나 보고가 퇴짜 맞자, 조 전 장관은 “대통령이 충분한 증원을 계속 지시했는데 복지부 장관으로서 충분히가 어느 정도인지 고민에 빠졌다”고 했다. 주무 부처 장관 고민의 수준이 이랬다. 그제야 복지부는 보고서 3건을 종합해 2035년 부족 의사 수 1만 명이라는 근거를 찾았다.복지부의 ‘1만 명 부족’ 추계를 보고받은 이관섭 당시 정책실장은 ‘2000명’이라는 숫자를 처음 꺼냈다. 조 전 장관에게 “첫해부터 2000명 일괄 증원으로 가자”는 제안을 했다. 복지부는 이를 반영해 같은 해 12월 ‘900∼2000명 단계적 증원안’과 ‘2000명 일괄 증원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윤 전 대통령은 단계적 증원안에는 반대했고 일괄 증원안에는 “더 검토를 해보라”고 지시했다. 지난해 2월 6일, 복지부는 대통령이 비토하지 않은 ‘2000명 증원안’을 대통령의 뜻이라고 보고 발표했다.그리고 1년 7개월간 의정 갈등으로 온 나라가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토론은커녕 지시에 토도 달지 못하니 의대 증원 같은 비합리적인 정책이 나오고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처럼 국력이 낭비됐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계엄으로 폭주했다. 직에 걸맞은 책임감이라고는 없던 ‘예스맨’ 관료들의 비겁함도 동력을 제공했을 것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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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분노 미끼’

    옥스퍼드 사전이 2025년 올해의 단어로 ‘분노 미끼(Rage bait)’를 선정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해 분노나 짜증을 의도적으로 유발하도록 설계된 온라인 콘텐츠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속어인 ‘어그로 끌다’, ‘낚시질하다’와 뜻이 통한다. 이 단어가 처음 쓰인 건 2002년. 깜빡이를 켜고 추월하려는 차를 보고 일부러 속도를 늦추거나 해서 ‘분노 미끼’를 던지는 운전자를 설명한 데서 유래했다. ▷올해 들어 ‘분노 미끼’ 사용 빈도는 3배가량 늘었다.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조작하려는 기술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딥페이크 영상, 인공지능(AI) 챗봇, 가상 아이돌 등 인간의 감정을 조정해 수익을 창출하려는 기술도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 기술이 인간의 감정, 감정이 일으키는 행동까지 설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분노 미끼’는 이를 꿰뚫어 본 단어라는 것이다. 지난해 단어는 ‘뇌 썩음(Brain rot)’이었다. ‘분노 미끼’는 클릭을 유도하고, 알고리즘은 이런 콘텐츠를 확산시킨다. 끝없는 클릭으로 정신적 탈진을 겪으면 ‘뇌 썩음’ 상태가 된다. ▷인간의 뇌는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생존 본능에 가깝다. 달콤한 열매보다 숨은 호랑이를 빨리 찾아야 살아남을 수 있어서다. ‘충격’ ‘최악’ ‘박살’ 같은 ‘분노 미끼’를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클릭 버튼을 누르고 있기 마련이다. 특히 분노는 행동을 촉발하는 가장 강력한 감정이다. 분노를 느끼면 댓글을 달고, 연관 영상을 계속 클릭하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SNS상 체류 시간 늘리는 데 이만큼 효과적인 미끼가 없다. 분노가 정의감과 결합하면 후원금을 내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다. ▷정치 유튜브는 ‘분노 미끼’를 던지는 대표적인 콘텐츠다. 유튜브 분석 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지난해 슈퍼챗(후원금) 수입 상위 30개 채널 가운데 10개 채널이 정치 관련 채널이었다. 상대 진영에 대한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분노를 땔감 삼아 돈을 벌었다. 유튜브와 현실 정치가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사회를 양극단으로 몰아가는 기제가 바로 이것이다. ▷3만 명이 넘게 참여한 온라인 투표에서 ‘분노 미끼’와 함께 마지막까지 경쟁을 벌였던 최종 후보 단어로는 ‘아우라 파밍(aura farming)’이 있다. ‘아우라 파밍’은 자신의 지위나 매력을 은근하게 전달하며 과시하는 행동이다. ‘SNS에 명품백 사진을 올리며 아우라 파밍을 했다’는 식으로 쓴다. 우리는 왜 ‘분노 미끼’를 덥석 물고 빠른 속도로 클릭하고, ‘아우라 파밍’에 몰두하고 있을까. 옥스퍼드 사전이 매년 올해의 단어를 선정하는 이유는 우리가 쓰는 언어를 탄생시킨 시대정신을 성찰하자는 뜻이라고 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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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비만약 덕에 시총 1조 달러 넘은 제약사

    창업주의 이름을 딴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 릴리는 1876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의 약국에서 시작했다.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대령 출신 약사 일라이 릴리가 약을 제조하는 실험실을 갖추고 가짜 약이 판치던 시기에 ‘화학자가 만든 약’이라며 말라리아, 매독 치료제를 팔았다. 그렇게 출발한 이 회사가 최근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기며 제약 산업의 역사를 다시 썼다. ‘빅테크’와 겨루는 ‘빅파마(Big Pharma)’로 성장한 것이다. ▷일라이 릴리 주가는 올해 들어 42% 급등했다. 당뇨 치료제 ‘마운자로’, 똑같은 성분이지만 비만 치료제로 허가받은 ‘젭바운드’의 폭발적 성장세 덕분이다. 미국 상장 기업 가운데 시총 1조 달러가 넘는 기업은 10곳뿐이다. 1∼8위는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가 차지하고 있다. 빅테크가 아닌데 1조 달러 클럽에 입성한 기업으로는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에 이어 두 번째다. 이 숫자가 얼마나 큰가 하면 머크, 화이자 등 글로벌 제약사 6곳의 시총을 모두 합쳐도 1조 달러에 못 미친다. ▷제약 산업은 테크 산업처럼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 일단 시장 규모가 작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보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많다. 감염병 유행 등 약의 수요에도 부침이 크다. 일라이 릴리는 2차 세계대전 동안 페니실린 대량 생산으로 급성장했다가 종전 이후에는 수요 급감으로 고전했다. 신약 개발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은 보통 10년 남짓이다. ‘기적의 항우울제’로 불리던 프로작이 2001년 특허가 만료되자 일라이 릴리는 다시 위기에 처했다. 정부의 규제나 약값 정책의 영향도 크다. ▷일라이 릴리가 시총 1조 달러 클럽에 등극한 건 제약 산업이 이런 한계를 딛고 범용 시장을 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비만약 선두 주자였던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가 공급 부족으로 주춤한 사이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가 감량률은 더 높고 부작용은 더 적다는 임상 결과를 앞세워 시장을 장악했다. 마운자로와 젭바운드는 머크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제치고 올해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린 약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라이 릴리는 먹는 비만약 개발 경쟁에서도 한발 앞섰다는 평가다. ▷10년 뒤면 세계 비만 인구가 19억 명이 넘고 비만약 매출이 1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아프지 않아도 먹는 약’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새로 창출된 것이다. 일라이 릴리는 프로작, 자이프렉사 등의 특허 만료로 휘청였을 당시 오히려 신약 개발에 몰두했고 지금 그 성과를 누리고 있다. 비만약 시장에 도전하고 있는 국내 제약사 중에서도 ‘빅파마’가 탄생하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길 기대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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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챗GPT 3년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혁명 같은 순간이 될 수 있다.” 2023년 5월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인공지능(AI)이 활자 인쇄처럼 인류의 역사를 바꿀 기술이라고 했다. 인쇄술은 소수가 독점하던 지식을 대량 복제함으로써 신이 주인공이던 중세 시대를 끝내고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젖혔다. 그는 AI도 지식의 생산, 유통 방식을 혁신해 우리 사회를 통째로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2년 11월 30일 올트먼이 만든 챗GPT가 처음 공개됐다. 3년이 지난 지금, 올트먼의 예언처럼 인류 역사는 ‘AI 이전’과 ‘AI 이후’로 나뉜다. 현재 세계 성인 인구의 10%가 넘는 8억 명가량이 챗GPT를 사용한다. 오픈AI가 사용자가 챗GPT와 나눈 대화 100만 건을 분석했더니, 올해 들어 조언을 구하는 ‘질문’이 업무를 위탁하는 ‘수행’을 앞질렀다. 업무 보조 도구를 넘어 쇼핑, 건강 같은 일상적 의사 결정까지 AI에 의존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AI가 ‘제2의 나’가 된 셈이다. ▷아직 서툴고 종종 엉뚱한 대답을 내놓던 챗GPT의 발전 속도는 놀랍다. 문자만 다루던 시스템은 음성을 소화하고 이미지를 인식하더니 이제는 외부 서비스와 연결되는 전천후 AI로 진화했다. 회사에선 비서로, 학교에선 교사로, 병원에선 의사로, 심지어 전장에선 동료 군인으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들며 인간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그 결과, 일자리 시장이 재편됐고 AI와 협업하는 인간과 그러지 않는 인간 사이 생산성 격차가 벌어졌다. ▷AI 등장에 따른 규범 정립이 지체되면서 ‘AI 아노미’ 현상이 나타났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AI가 만든 가짜 정보가 공론장을 오염시키고 선거를 교란한다. 권위주의 국가에선 개인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수집돼 ‘빅브러더’의 통제가 쉬워졌다. AI 기술을 선점한 기업과 개인이 부를 독식해 양극화가 심화한 것도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왔다. 딥페이크 음성을 이용한 사기, 영상을 이용한 포르노 등 새로운 유형의 범죄도 증가했다. 인류의 지적 발전을 추동해 온 엄격한 연구 윤리도 무너지고 있다. ▷AI는 문자로 쌓인 인류의 지식을 거의 흡수한 상태다. 의사·변호사 시험에 척척 붙고, 어떤 분야에선 박사급 지식을 보여준다. 지식에만 능한 줄 알았는데 창의적이기도 하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무수한 패턴 조합으로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결과를 내놓는다. AI 가수가 빌보드 차트에 오르고 AI 작가가 쓴 책이 팔린다. 아직 육체노동을 대체하진 못했지만, 곧 피지컬 AI가 보급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숨 가쁘게 진화하는 AI가 우리에게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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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선행은 돌고 돈다” 작은 친절에 목마른 한국 사회

    청각장애인 손님에게 커피를 갖다준 카페 주인이 쪼그려 앉고선 “맛있게 드세요”라고 수어로 인사를 건넨다. 주인이 다가오자 황급히 수어를 멈췄던 손님들이 이내 함박웃음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수어만 오가는 11초짜리 폐쇄회로(CC)TV 영상인데 자꾸 돌려보게 된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진 사람이 많은지 143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경기 안산시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 씨는 청각장애인 손님을 응대하기 위해 유튜브로 간단한 수어를 익혔다. 카페에 오는 손님 누구라도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고 한다. 이 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선행이 돌고 돌다 보면 세상도 점점 좋아지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했다. 이미 그의 카페에선 작은 친절이 돌고 도는 ‘나비효과’가 일어난다. 이 씨는 평소 손님들에게 양팔로 ‘하트’ 인사를 건넸는데 이젠 손님들이 먼저 하트 인사를 하며 매장에 들어온다. 영상이 화제가 된 후에 수어를 무료로 가르쳐 주겠다거나, 수어 책을 보내준 손님도 있다. ▷친절은 전염성이 크다. 친절한 행위를 목격만 해도 전염된다. 2010년 미국에서 사회 연결망 연구의 원조 격인 실험이 이뤄졌다. 20달러를 받은 실험 참가자가 공동기금에 기부하라고 하면 얼마를 낼까. 참가자로서는 기부를 안 할 때 최대 이익을 얻는다. 하지만 실험 회차가 거듭될수록 공동기금이 불어났다. 기부 행위를 목격한 참가자가 다음 실험에서 기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참가자 1명의 기부 행위가 최대 3명에게까지 파급됐다.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 주거나,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작은 친절도 이타적인 행위를 퍼뜨려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나사 역할을 한다. ▷ 최근 SNS상에선 작은 미담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이다. 내복만 입은 치매 노인에게 외투를 입혀 준 편의점 직원, 폭우 속에 배수로를 막은 나뭇잎을 맨손으로 꺼내는 여성, 폐지 노인의 손수레를 밀어주는 청년, 딸에게 싱싱한 부케를 주고 싶어 예식장 주차장에 주저앉아 손수 꽃다발을 엮는 아버지…. 영상마다 ‘따뜻하다’ ‘눈물 난다’ ‘대박 나라’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평범한 이웃의 다정함이 삭막한 우리 사회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우리 사회가 작은 친절에 목말라한다. 이는 치열한 경쟁 속에 각자도생하며 정서적으로 고립된 사람이 많다는 방증일 것이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사회조사’에서 우리 사회를 믿을 수 있다는 응답이 54.6%였다. 2019년 조사 이래 처음으로 감소했다. 친절은 신뢰를 형성하고 협력을 촉진해 좋은 공동체를 만든다. 불안을 줄이고 행복을 고양해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고 느끼게 한다. 남에게 베푼 친절이 나를 보호하는 안전망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강한 것보다 다정한 것이 생존해 온 이유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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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우경임]‘이공계 인력난’ 원죄는 교육부에 있다

    사실 숫자만 보면 우리나라 이공계 인력은 지난 30년간 부족한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 연구개발(R&D) 인력은 인구 1만 명당 약 170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독일, 일본, 미국, 중국을 훨씬 앞선다. 심지어 30년간 학령인구가 급감했는데도 이공계 석박사는 꾸준히 늘었다. 그런데 인공지능(AI) 전환기를 맞아 이공계 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기업의 수요와 대학의 공급이 맞지 않는 ‘이공계 일자리 미스매치’ 탓이다. 교육부에 원죄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 등록금을 17년째 묶어 둬 교수들을 ‘앵벌이’ 연구로 내몰았다. 대학 구조조정은 미루고 미뤄 사회적 수요와 동떨어진 석박사를 양산했다. 교육부는 억울해할지 모르겠지만 연구실에서 젊음을 소진하고도 미래를 그릴 수 없는 이들에 비할 순 없을 것 같다.“이공계 인력 남아도는 것이 문제” 박기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오히려 이공계 인력이 남아도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우리나라 산업 특성상 제조업, 조선업에서 고급 연구 인력이 필요한데 대학은 생명공학, 환경공학 박사만 길러낸다. 교육부 대학 평가나 R&D 지원에서 유리한 분야 중심으로 연구실이 운영되기 때문이다. 대학 자체 재정 지원이 ‘0원’인 상황에서 교수들은 국책 과제 수주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석박사를 확보해 여러 과제를 돌려 연구비를 충당하고자 한다. 정작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았다. 학령인구 감소에도 대학이 죽지 않을 만큼만 수액을 놔 주면서 구조조정은 회피했다. 석박사 과잉 공급의 원인이다. 대학교수,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직 자리는 연간 1000개도 되지 않는데 석박사는 그 10배인 1만 명이 배출된다. STEPI 조사에 따르면, 국내 박사 인력 고용률은 84.5%이다. 언뜻 고용률이 높아 보이지만 이들 10명 중 6명은 학력 조건이 박사에 미치지 못하는 일자리에 종사한다. 박사는 석사 자리를, 석사는 학사 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뜻이다.인재 공급 기지로 전락한 한국 국내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면 ‘만능’ 연구자로 인정해 줘야 한다. ‘열정 페이’를 참아내며 정부 과제에 따른 온갖 행정 업무를 처리하고 개인 연구까지 해내야 졸업한다. 2013년부터 10년간 이렇게 힘들게 학위를 딴 이공계 석박사 9만6000명이 한국을 떠났다. 국내에 일자리가 없고, 보상 격차가 크다 보니 ‘탈한국’은 개인으로선 응당 합리적인 선택이다. 수능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도 설명된다. 앞으로가 더 암울하다. 최근 한국은행은 2030 이공계 석박사 62%가 ‘3년 내 해외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특히 전체 이공계 순유출 인력 가운데 서울대, KAIST, 포스텍 등 이공계 주요 5개 대학 석박사 인력이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첨단 산업일수록 탁월한 인재 1명의 파급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한은 보고서에서 해외 이직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연봉이었다. 빅테크와 국내 기업 연봉 격차야 비교가 어려울 정도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승진 가능성, 고용 안정성, 연구 환경 등 비금전적인 요인도 영향이 컸다. 국내 연구 생태계가 그만큼 열악하다는 방증이다. 정치적 손해가 따를 것이 뻔한 등록금 자율화나 대학 구조조정은 거론조차 하지 않는 정치, 그에 편승해 자리를 보존하는 관료들이 만든 불합리한 연구 생태계에서 젊고 재능 있는 인재들이 신음하다 떠나고 있다. 정부가 이공계 인력 지원 방안을 속속 발표하고 있지만 현금을 찔끔 쥐여주는 식이지 귀한 인적 자원을 싸게 쓰고 버리는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청년을 낭비하는 분야가 어디 이공계뿐이랴.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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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우리 헌법을 AI가 썼다고?

    미국에서 인공지능(AI) 판독기인 GPT제로로 미 독립선언문을 돌려봤더니 AI가 작성했을 가능성이 98.51%로 나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챗GPT가 출시되기 246년 전 1776년의 글인데 AI가 쓴 것이라 우긴 것이다. AI 판독기는 언제 쓰였는지, 누가 썼는지 등 모든 맥락을 제거한 채 단어와 이어질 단어 사이 통계적 확률만 계산한다. 독립선언문의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문장처럼 정제될수록, ‘사람’ 다음에 ‘평등’처럼 특정 단어 뒤에 올 확률이 높은 단어가 배치될수록 AI가 썼다고 판단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대한민국 헌법,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사,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수상 소감을 세 종류의 AI 판독기에 돌려봤다. AI가 써줬을 가능성이 각각 최대 85∼99%까지 나왔다. 심지어 세 종류의 AI 판독기가 각기 다른 이유로 서로 다른 확률을 제시했다. AI 판독기의 오류율을 측정한 논문들은 인간이 쓴 글을 AI가 쓴 것으로 판단할 확률을 약 10∼20%로 보고한다. 논문이나 연설문처럼 감정적인 언어가 배제된 간결한 글일수록 AI가 쓴 것으로 오인받기 쉽다. ▷AI 판독기의 오류율이 상당하지만 기업과 대학에서는 점점 널리 사용되는 추세다. 그 결과 잘못된 판독 결과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고 있다. 자기소개서가 AI 작성물로 판정돼 채용 과정에서 탈락하는 취업준비생, 과제를 0점 처리당하는 학생 등이다. 특히 채용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한 지원자들은 이유조차 모른 채 떨어지고, 설령 AI 판독기의 오류임을 안다고 하더라도 AI와 싸워 결백을 입증할 방법이 없다. 그저 통계적인 패턴을 분석한 것일 뿐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괜한 피해를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글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팁이 공유된다고 한다. 영어 논문을 쓸 때 관사(a, the)를 틀리게 쓰거나 생소한 수식어를 붙이는 식이다. MS 워드나 구글 문서처럼 수정 기록이 남아 작업 과정을 증명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작성하는 것도 권장된다. AI 판독기에 미리 돌려본 뒤 다시 수정해 제출하기도 한다.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사람의 글을 AI가 썼다고 판단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도 있다. AI 판독기로 외국인의 토플 에세이와 미국 중학생의 에세이를 돌려봤더니, 토플 에세이의 61%를 AI가 썼다고 판정했다. 미국 중학생 에세이(5%)의 12배였다. 시험장에서 쓰는 에세이는 AI로 작성할 가능성이 0%다. 하지만 외국인은 제한된 단어로 정형화된 문장을 쓰기 때문에 부정행위로 의심받기 쉬워진다. 외국인 연구자의 논문이 AI가 쓴 것으로 판정받는 확률도 높다. 인간보다 오류가 많고, 인간보다 편견이 심한 AI에 심판을 맡기고 안심해도 되는 걸까.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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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우경임]농어촌 기본소득이라는 ‘제로섬 게임’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에 인구감소지역 7개 군(郡)이 선정됐다. 이곳에 사는 22만 명이 내년부터 매달 15만 원씩 지역화폐로 받는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지역화폐를 대량 발행하고 농어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농촌 인구가 늘어나지 않겠나”라며 “퍼주는 게 아니라 국민이 낸 세금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에서 현금성 복지를 한다고 ‘퍼주기’로 단정 지을 순 없다. 서울도 청년수당, 상병수당 등 현금성 복지를 늘려 왔다. 같은 정책인데 재정자립도를 잣대로 달리 평가한다면 서울과 지방의 삶의 질 격차를 좁힐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농어촌 기본소득은 결국 ‘퍼주기’로 끝날 공산이 커 보인다. 이 정책이 성공하려면 대통령이 말했던 것처럼 인구가 늘어나거나, 아니면 최소한 이탈을 막는 효과가 있어야 한다. 줄어드는 인구 두고 ‘빼앗기’ 경쟁 총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본소득과 인구 증가의 인과관계는 분명하지 않다.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였던 2022년, 농어촌 기본소득이 시범적으로 도입됐던 경기 연천군 청산면의 인구는 그 이후에도 줄었다. 설령 이번 시범사업에서 인구가 늘어난다 치자. 월 15만 원을 받으려고 수도권에서 이사를 결심하긴 어렵다. 경기 연천군으로, 강원 정선군으로, 충남 청양군으로 인근 지역에서 이사 온다 한들, 지자체 간 인구를 빼앗고 빼앗기는 ‘제로섬 게임’이 벌어질 뿐이다. 지금까지 현금성 복지는 한 번 시작하면 판이 커지고 판돈이 올랐다. 정부는 이번 시범사업을 평가해 2028년부터 모든 인구감소지역 89곳에 농어촌 기본소득 도입을 검토한다. 시(市)지역도 인구가 감소하고 농민도 거주한다. 곧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것이다. 벌써 더불어민주당 농어촌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정부의 추가적인 재정 부담과 시범지역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지역마다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인구 유입이라는 정책 효과는 상쇄된다. 전국 리그에서 ‘제로섬 게임’이 펼쳐진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그 효과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재정 부담은 즉각적이다. 이번 시범사업은 국비와 지방비(광역+기초)가 4 대 6 매칭으로 진행된다. 정부는 내년에 약 1700억 원을 투입하는데 지방정부는 이보다 많은 2800억 원을 투입해야 한다. 지자체의 의무지출이 증가해 정작 필요한 곳에 재정을 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주민 성화에 시범사업을 신청했지만 재정 마련이 버거웠던 일부 군은 탈락 소식에 내심 안도했다고 한다. 공공건물 공사를 늦추거나 보조금 지급을 보류하는 곳도 있다. 재정 투입 역시 ‘제로섬 게임’이란 얘기다.총선 직전 본사업… 누가 효과 따질까 농어촌 기본소득이 인구감소지역 272만 명 모두에게 지급되면 연간 소요 예산은 5조 원까지 늘어난다. 이번 시범사업에는 69개 군이 앞다퉈 신청했다. B 군수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농민회 시위, 주민 민원이 이어지니 신청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고 했다. “나야 군만 책임지면 되지만 정부는…”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지방 재정이 휘청일 것”이라며 비판적이었던 국민의힘 도지사도 “원론적 반대”였다며 선정된 군에 도비를 매칭하겠다고 한다. 시범사업에 선정된 군수는 치적 홍보에 나섰고, 탈락한 군수는 지방선거 경쟁 후보의 공격과 주민 항의에 시달린다. 농어촌 기본소득과 중복 지급 논란을 빚고 있는 농어민 수당이 있다. 지자체별로 연간 30만∼80만 원을 준다. 지방선거를 앞둔 2021∼2022년 7개 도 중 5개 도가 ‘우르르’ 지급하며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됐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종료되는 2년 뒤, 공교롭게도 총선을 앞두고 있다. 아마 그때는 누구도 정책적 효과를 따지지 않을 것이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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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우경임]車 사고 환자 몰리는 한방병원… 보험치료비 연 1조 원

    요즘 운전 중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나면 “일단 한방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응급실로 가봤자 환자 대접은커녕 귀가를 종용받곤 하지만, 한방병원에선 바로 입원해서 치료받기 쉽다는 것이다. 교통사고 환자가 한방병원으로 쏠리면서 자동차보험 한방병원 치료비가 지난해 1조 원을 넘어섰다. 9년간 약 6배가 늘어났다. 지난해 양방병원 치료비가 1329억 원이고 같은 기간 1.6배 늘어난 것에 비하면 그 증가세가 가파르다. ▷교통사고 환자의 94%는 상해 급수 12∼14급에 해당하는 경상 환자이다. 응급실에 가면 엑스레이를 찍고 이상이 없으면 돌려보내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교통사고 환자가 몰리는 일부 대형 한방병원에선 자기공명영상(MRI)처럼 비싼 검사를 받고 입원부터 한다. 침도 맞고 뜸도 뜨고 한약도 먹는다. 한방병원은 객관적 임상 데이터보다 의사 진단 의존도가 높다 보니 적정 치료에 대한 기준이 상대적으로 애매하다. 그래서 가벼운 타박상을 입은 환자도 “통증이 있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고 몇 달씩 치료를 받는 일이 벌어진다. ▷지난해 4대 손해보험사 경상 환자 1인당 평균 진료비는 한방병원(100만7000원)이 양방병원(32만5000원)의 3배가 넘었다. 한방병원은 양방병원 대비 진료 기간이 2배 가까이 길고, 기본 침을 제외한 대부분이 ‘부르는 게 값’인 비급여 항목이다. 햄버거·감자튀김·콜라를 묶은 세트 메뉴처럼, 침·뜸·부항을 묶은 ‘세트 치료’ 청구가 급증한 것도 이유라고 한다. 뒤 범퍼를 살짝 긁는 사고를 당한 운전자 커플이 2년 넘게 뒷목 통증을 호소하며 1684만 원의 치료비를 쓴 보험업계의 전설도 있다. ▷적잖은 환자들에게 한방병원이 자기 돈 들이지 않고 온갖 검사와 치료를 받고 쉬어가는 일종의 웰니스센터처럼 여겨지나 보다. 여기에 ‘나이롱 환자’를 받아서라도 수익을 올리려는 몇몇 한방병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과잉 진료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교통사고가 난 뒤 상대 차주나 보험사가 비협조적이면 ‘어디 당해보라’는 식으로 입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워낙 치료비가 많이 나오니 보험사가 적당히 보상금을 챙겨 주고 합의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올해 자동차보험은 약 5000억 원대 적자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2500만 명이 가입한 자동차보험료가 내년에 약 3% 오를 요인이 된다. 일부 환자와 병원의 도덕적 해이로 발생한 손실을 온 사회가 나눠서 떠안는 셈이다. 자동차보험 가입자들은 1인당 평균 69만 원의 연간 보험료를 낸다. 이들 상당수는 1년 내내 무사고이고 병원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정직하게 진료하는 의사, 정직하게 치료받는 환자가 오히려 손해를 본다면 그 제도는 바꿔야 한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202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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