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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겨울철 호흡기 질환 증상 완화’ 해외직구제품 30개 중 10개에서 국내 반입차단 대상 원료와 성분이 확인됐다.식품의약품안전처는 19일 국내외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판매되는 직접구매 해외식품 중 겨울철 소비자 관심제품 30개를 검사한 결과 10개 제품에서 국내 반입차단 대상 원료와 성분이 확인돼 국내 반입을 차단하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번 검사는 감기, 비염 등 겨울철 질환 관리에 관심이 높은 소비자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호흡기 질환 증상 완화’, ‘히스타민 차단’ 등의 효능을 표방하는 제품이 대상이었다. 검사항목은 △호흡기 질환 개선·치료 관련 의약품 성분(테오브로민, 테오필린 등 12종) △알레르기 질환 항히스타민 성분(아크리바스틴, 아젤라스틴 등 35종) 등이며 제품에 국내 반입차단 대상 원료와 성분이 표시돼있는지도 함께 확인했다. 특히 제품에 표시된 성분 중 ‘에키네시아’, ‘엔아세틸시스테인’, ‘반하’는 기침, 기관지염 치료 또는 증상 완화 등에 사용되는 의약품 성분으로 오남용할 경우 복통, 메스꺼움, 설사 등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식약처는 해당 제품에 대해 관세청에 통관보류를 요청하고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에 온라인 판매사이트 접속차단을 요청하는 등 관계기관과 협업해 국내로 반입되지 않도록 조치했다. 아울러 소비자가 해당 제품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해외직구식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해외직구식품 올바로’에 제품명, 제조사, 위해성분, 제품사진 등 정보를 게재했다. 식약처는 “자가소비 목적으로 개인이 구매하는 해외직구 식품은 위해성분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소비자는 현명한 해외직구식품 구매를 위해 반드시 해외직구식품 올바로 누리집에서 국내 반입차단 대상 원료와 성분이 포함된 제품인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급성백혈병과 심장병으로 5년간 투병해 온 정서윤 양(15)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미술 공방을 열었다.19일 서울성모병원에 따르면 영재 피아노 학교 진학을 꿈꾸던 정 양은 2021년 갑작스러운 고열로 병원을 찾았다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이후 고용량 항암제 치료를 받으며 6살 때 진단받았던 발작성 상심실성 빈맥(PSVT)이 악화돼 심장 시술까지 받게 됐다. 병동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정 양은 음악과 그림을 통해 힘겨운 시기를 이겨냈다. 조혈모세포 이식 과정과 회복기를 거치며 그는 가족, 의료진과 병동에서 지내는 아이들의 그림을 그렸다. 지난해 입원 중 맞은 생일날에는 입원한 친구들을 위한 작은 피아노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정 양이 여러 이들에게 행복함을 전해줄 수 있던 것은 가족의 사랑 때문이었다. 2022년 초등생 남동생은 조혈모세포 기증을, 다음 해 병이 재발했을 땐 엄마가 조혈모세포를 이식했다. 두 차례의 이식 끝에 정 양은 건강을 되찾았다. 가족들은 조혈모세포 이식과정에서 생긴 상처를 서로 ‘영광의 상처’라고 부른다. 지금도 첫 번째 동생으로부터 이식받은 날은 ‘남매의 날’, 두 번째 엄마로부터 이식받은 날은 ‘모녀의 날’이라 부르며 이야기를 나누고 끈끈한 가족애를 되새긴다고 했다.투병으로 5년간 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정 양은 꿈을 잃지 않고 내년 예술고 진학을 준비 중이다. 치료 과정에서 만든 웹툰, 그림 등은 미술공방에 전시됐다. 정 양은 “앞으로도 그림을 통해 제가 느낀 작은 행복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최선희 솔솔바람(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 완화의료팀) 전문간호사 부장은 “백혈병 치료과정에서는 감염 위험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미술도구가 제한적이지만, 서윤이는 주어진 것만으로도 받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그림을 꾸준히 그려내며 꿈을 향해 흔들림 없이 걸어왔다”고 밝혔다.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이 운영하는 통합 복지 플랫폼 ‘복지로’는 복지시설 46만여 곳 가운데 97% 이상을 지도 기반으로 제공하고 개인의 수혜 이력과 신청 자격, 서비스 진행 상황 등도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복지 접근성을 크게 끌어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문화가족과 외국인을 위한 외국어 서비스까지 확대되며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디지털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복지지도’로 가까운 복지시설 쉽게 찾아‘복지로’는 복지지도, 복지지갑 등 다양한 편의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복지지도는 사용자 현위치나 주소를 검색해 인근 복지시설 정보를 지도 위에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서비스다. 전체 복지시설 약 46만 개 중 44만8000개(97.4%)를 복지지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복지시설과 보육, 교육시설, 공공기관, 의료기관 등을 통합적으로 검색할 수 있으며 카카오맵과 연계를 통해 길찾기, 로드뷰 등 편의기능이 제공된다.복지지갑을 통해 개인의 복지 혜택과 서비스를 간편하게 조회하고 관리,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이용할 수 있다. 수많은 복지 서비스 속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본인의 복지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인프라가 마련된 셈이다. 이달 24일부터는 에너지바우처 수급자에게 바우처 잔액조회 서비스가 제공된다. 예를 들어 제출한 신청서의 처리 진행 상태가 궁금한 경우 서비스 신청 현황에서 관할 주민센터와 담당자의 연락처, 신청진행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수혜중이거나 신청 가능 서비스가 궁금하다면 ‘나의 복지 자격정보’를 확인하면 된다. 복지로에 로그인해 해당 배너를 누르면 최근 1년 사이 수혜를 받거나 받고 있는 복지 서비스의 목록이 표출된다. 만약 복지멤버십에 가입한 사람은 신청 가능한 복지서비스 목록이 표출되며 복지로에서 신청 가능한 서비스라면 해당 사업명을 눌러 바로 신청할 수 있다. 이외에도 지급된 복지급여를 확인하거나 증명서 발급, 시설 이용내역 등도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다. ● 다문화가족 등 위해 6개 언어로 서비스복지서비스 찾기는 국민이 받을 수 있는 복지서비스를 나이, 지역, 생애주기, 가구 상황, 관심 주제별 조건 등에 따라 이용자가 원하는 복지서비스를 찾아볼 수 있는 ‘복지서비스 검색’ 서비스다. 중앙정부, 지자체, 민간기관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한 곳에서 제공해 개인 상황에 맞는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검색, 정보 확인, 신청 등을 할 수 있도록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검색 결과는 23개 중앙부처와 17개 시군구 및 226개 읍면동 179개 민간기관에서 제공하는 5279종 복지서비스를 기반으로 검색 정보가 제공된다. 검색 결과 제공되는 서비스 정보는 ‘담당기관(부처), 서비스 대상자, 선정 기준, 서비스 지원 내용, 신청 방법, 문의처, 근거 법령, 서식, 자료’ 등 표준화된 형식으로 정리돼있다.외국어 서비스도 핵심적이다. 복지로 홈페이지에서는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다문화가족이나 외국인 등을 위해 63종의 복지서비스 정보를 6개 언어로 제공하고 있다. 그간 지속적인 다문화 증가 추세에 따라 결혼이민자, 다문화가족, 외국인 등이 손쉽게 복지서비스 정보를 안내받을 수 있도록 다국어 번역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가데이터처의 2023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국내 다문화가족은 41만3000명으로 전년 대비 3.7% 증가했다.이에 정보원은 기존 36종 번역되던 복지서비스의 범위를 지난해 57종으로 넓혔다. 올해는 번역 언어를 6개로, 종류는 63종으로 확대했다. 이에 복지서비스의 다문화가족 신청 건은 올해 약 5만9000여 건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신청 건인 약 5만4000여 건에 비해 약 8.6% 증가했다.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지난달 6일, 일본 도쿄에서 차로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사이타마현 한노(飯能)시의 솜포요양원. 로비에 들어서자 따스한 노란 조명 아래 백발의 미와 요시오 씨(78)가 나무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오른쪽에는 27년 지기이자 법무사인 다카하시 히로시 씨가 자리했다. 긴장한 표정의 미와 씨가 입을 열었다.“저한테…. 재산이 있나요?”● ‘나다운 삶’ 위해… 12만 명이 임의 후견아내와 사별하고 아들과 떨어져 홀로 사는 그는 2년 전 치매로 진단된 후 증상이 계속 나빠져 최근에는 재산이 있다는 기억조차 희미해진 상태였다. 한국이었다면 ‘치매 머니 사냥꾼’이 군침을 흘릴 표적이 됐을 것이다.하지만 이날의 풍경은 약탈이 아닌 보호의 현장이었다. 과거 부동산업자로 일했던 미와 씨는 건강했던 4년 전 다카하시 씨를 후견인으로 정해 뒀다. 이날은 후견 활동을 공식적으로 개시하기 위해 본인 의사를 확인하는 자리였다.다카하시 씨는 미와 씨가 직접 서명했던 계약서를 꺼내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 “혹시 내가 치매에 걸려도 살던 곳을 떠나지 않겠다. 내 재산은 요양비로 우선 쓰고, 남은 돈은 지역 발전을 위해 쓰고 싶다.” 서류에서 눈을 뗀 다카하시 씨가 미와 씨와 눈을 맞췄다. “이 약속대로 저희가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겠습니다.” 미와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안심 되네요.”일본에는 미와 씨처럼 건강할 때 미리 후견인을 정해 둔 노인이 12만 명이 넘고, 실제로 후견이 개시된 사례가 1만4229명에 이른다. 후견 신청자가 229명, 개시 사례가 32명에 그친 한국과는 다르다. 수혜 대상엔 기초생활수급자도 있다. 소외 계층도 미리 준비된 시스템을 통해 ‘나다운 삶’과 재산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동네마다 ‘후견지원센터’, 문턱 낮춘 해결사일본이 이처럼 탄탄한 방어막을 갖추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같은 날 오전 한노시의 ‘사회복지협의회’를 찾았다. 한국의 행정복지센터와 비슷한데, 이곳에선 각 지방자치단체의 후견 업무를 한다. 한노시는 인구 8만 명의 소도시지만, 이곳 1층에는 ‘중핵기관’(후견지원센터)이라는 나무 팻말이 걸린 사무실이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사무실에선 사노 시게루 씨(68)가 센터 직원과 상담 중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양성한 ‘시민후견인’이다. 은퇴 후 간호사 경험을 살려 이웃 치매 노인의 후견인으로 활동하는 그는, 이날도 자신이 맡은 80대 치매 노인의 병원비 납부 문제를 상의하러 들렀다.나미키 카즈히로 한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국장은 “한국에서는 친족이 아닌 후견인을 구하려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수백만 원을 내야 한다고 들었지만, 일본은 다르다”고 했다. 일본은 2016년 ‘성년후견제도 이용촉진법’을 제정하고, 전국 지자체의 약 70%에 후견지원센터를 설치했다.이곳에서는 상담부터 서류 작성, 후견인 매칭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진다. 기댈 곳 없는 치매 노인에게는 사노 씨 같은 시민 후견인을 연결해 준다. 사노 씨는 “한 달에 한 번 치매 노인의 병원비를 정산하고, 정기적으로 면회를 가 말벗이 되어 드린다”며 “이웃을 지킨다는 책임감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시민 후견인의 시급은 1600엔(약 1만5000원)으로, 도쿄의 최저시급 1226엔(1만1600원)보다 높다. 후견인 지정 절차도 효율적이다. 한국에선 신청부터 선임까지 최소 6개월 이상 걸리지만 일본은 대체로 2개월이면 된다.후견인이 지정되기 전에도 보호망은 작동한다. 한노시는 판단력이 떨어지기 시작했으나 아직 법정 후견이 필요할 정도는 아닌 노인을 위해 ‘안심 서포트’ 제도를 운용 중이다. 누가 빼돌리지 못하게 연금이나 수당을 직접 노인에게 전달한다. 저소득층의 경우 후견인의 활동을 관리하는 감독인 비용도 국가가 대신 내준다. 일본도 아직은 사후 조치인 법정후견을 이용하는 노인이 많지만, 임의후견 활성화를 위해 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가족 약탈’의 교훈… 전문가와 신탁이 만든 ‘철벽’일본이라고 처음부터 완벽했던 건 아니다. 도쿄 신주쿠구에 있는 ‘성년후견센터 리걸서포트’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일본도 2000년대 초 뼈아픈 성장통을 겪었다”고 입을 모았다. 2016년엔 친족 후견인에 의한 횡령 피해액이 연간 56억 엔(약 520억 원)에 달했다. 자녀가 후견인이 된 뒤 부모 돈을 유흥비로 탕진하거나, 빚을 갚는 데 써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이에 일본 법원은 칼을 빼 들었다. ‘돈’과 ‘돌봄’을 분리하는 대수술을 감행한 것이다. 이에 따라 변호사·법무사 등 전문가가 후견인을 맡는 비율은 과거 10%에서 현재 80% 수준으로 상승했다.또 일본은 치매 노인이 큰돈을 신탁은행에 맡겨 두도록 ‘후견제도지원신탁’ 제도를 운영한다. 법원이 친족 후견인에게 신상 보호 권한과 그에 필요한 2000만~3000만 원 정도의 유동성 자금만 맡기고, 상대적으로 큰 자산은 금융기관이 관리하도록 사실상 강제하는 방식이다. 후견인이 부동산 판 돈 같은 목돈을 찾으려면 반드시 가정법원이 허가해야 한다. 도쿄변호사회 소속 아카누마 야스히로 성년후견전문 변호사는 “이 시스템을 도입한 후 횡령 피해가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최고재판소에 따르면 지난해 새로 맡긴 후견제도지원신탁 금액만 3845억 엔(약 3조6600억 원)에 달했다.최근에는 재산 관리는 전문 후견인이나 신탁은행이, 병원 동행이나 요양원 선택은 가족이 맡는 ‘역할 분담’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신탁금을 운용하다가 생긴 손실은 전액 금융사가 책임지도록 했다. 치매에 걸리기 전 믿을 수 있는 가족에게 자산 관리를 위탁하는 ‘가족신탁’도 활성화돼 있다. 다만, 일본은 연금 운용기관 등이 재산을 맡아주는 공공신탁은 운영하고 있지 않다.● 고액 인출하면 은행 직원이 신고일본에선 경제적 학대 조짐이 보이면 지자체가 강력한 권한을 갖고 개입한다. 학대 징후가 보여도 조사관이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인 한국과는 달랐다. 가족이 없는 경우는 물론이고, 가족이 있어도 학대가 의심되면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법원에 후견인을 신청한다. 이 비율이 전체의 30%에 달한다.금융 시스템 역시 촘촘하다. 일본 금융기관은 지자체와 협력해 치매 의심 고객의 거래 패턴을 모니터링한다. 평소와 달리 고액을 찾거나 낯선 인물이 동행해 돈을 찾으려 하면 즉시 지자체에 신고한다. 공무원은 즉각 개입해 사실관계를 확인한다.일본 성년후견법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아라이 마코토 주오대 교수는 “치매 노인의 자산이 범죄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후견 제도와 신탁을 결합해 자산은 안전하게 묶어두고, 돌봄에는 유연하게 쓰이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취재: 전혜진 박경민 최효정 기자▽프로젝트 기획: 김재희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박초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임선영 인턴QR코드를 스캔하면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사냥’의 실태를 디지털로 구현한 ‘헌트: 치매머니 사냥’()으로 연결됩니다.도쿄=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12만 명 vs 229명.치매로 기억을 잃기 전, 내 자산을 지켜줄 ‘후견인’을 미리 지정한 일본과 한국 노인의 숫자다. 치매 노인 인구는 각각 471만 명과 97만 명으로 4.9배인데, 건강할 때 후견인을 정하는 ‘임의후견’ 이용자는 500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 극명한 격차 사이로 한국 치매 노인이 평생 모은 돈은 증발하고 있다.고향 친구에게 속아 땅 800평을 빼앗기고 세상을 떠난 강대용 씨(76) 곁에는 그를 지켜줄 시스템이 전무했다. 반면, 지난달 6일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만난 미와 요시오 씨(78)는 4년 전 자신이 직접 고용한 후견인 덕분에 치매 발병 후에도 재산을 지키며 평온한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한국도 12년 전, 임의후견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2023년 기준 신청자는 229명, 실제 이용자는 32명뿐. 사실상 잊힌 제도나 다름없다. 대다수는 치매 발병 후 재산을 두고 가족 간 멱살잡이가 벌어진 뒤에야 법원이 개입하는 ‘법정후견’이라는 사후약방문에 매달린다. 그나마 이조차 이용하는 치매 환자는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이유는 명확하다. 복잡한 절차와 높은 비용 때문이다. 수백만 원의 선임 비용과 수십 건에 달하는 제출 서류도 부담인데, 후견인을 감시할 감독인 비용까지 치매 노인이 내야 한다. 전국 256개 치매안심센터는 조기 검진 업무에 허덕여 재산 보호에는 손을 놓았다. 돈을 맡아 보호해 주는 민간 은행의 신탁 상품이 있지만, 이 역시 최소 가입 금액이 수천만 원에 달해 저소득층은 문턱조차 밟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일본은 달랐다. 돈과 돌봄을 분리해 약탈을 원천 봉쇄했다. 예금과 부동산 등 큰 자산은 전문 후견인이나 신탁 상품에 맡겨 묶어두고, 서민에게는 복지사가 저렴한 비용으로 통장을 맡아 관리해 주는 ‘안심 서비스’를 제공해 사각지대를 없앴다. 동네마다 후견지원센터를 두고 모든 절차를 ‘원스톱’ 지원한다. 가족이 없거나 가난한 노인을 위해선 이웃이 시민 후견인으로 나선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파수꾼’을 자처하며 가족의 짐을 덜어줘서 가족은 횡령의 유혹 없이 환자의 돌봄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임의후견 신청자가 약 12만 명, 이용자는 2만 명에 달한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치매 노인과 가족 36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학대 판정서 379건을 전수 분석한 결론은 하나다. ‘치매 머니 사냥’은 개인의 불행이 아닌 시스템의 방조 탓이다. 154조 원에 달하는 한국의 치매 머니를 지키려면, 이제 국가가 나서야 한다.韓, 후견인 신청 서류만 최소 15종… 법률비용 수백만원재산 보고 등 후견인 부담 과중신탁상품 최소 가입액 수천만원전국 256개 치매안심센터서 후견-신탁 등 재산관리 필요“수수료 낮춘 공공신탁 도입을”믿었던 고향 친구에게 평생 모은 땅을 뺏기고 세상을 떠난 강대용 씨(73). 2년 전, 아들 강성식 씨(46)에게는 비극을 막을 한 번의 기회가 있었다. 아버지의 치매 증상이 심해지자 성식 씨가 후견인이 되기로 결심한 것. 하지만 법원에 제출할 서류 목록을 받아 든 성식 씨는 아연실색했다. 아버지의 모든 금융 거래 명세와 치매 판정서는 물론이고, 13분짜리 후견인 교육 영상을 시청했다는 확인서 등 15종이 넘는 서류를 요구한 것. 생업을 뒤로하고 산더미 같은 서류에 매달릴 수 없어 도움을 청한 법률사무소에서는 “500만 원은 주셔야 한다”고 했다. 성식 씨는 결국 후견인 신청을 포기했다.● ‘건강할 때 미리 후견’, 고작 229명치매 노인의 재산을 지키는 후견 제도는 크게 두 가지다. 건강할 때 미리 믿을 만한 자녀나 전문가를 후견인으로 정해 두는 ‘임의후견’(예방)과, 이미 치매가 발병해 판단력이 떨어진 뒤 법원이 관리자를 정해 주는 ‘법정후견’(사후 처방)이다. 만약 대용 씨가 미리 후견인을 정했다면, 고향 친구가 돈을 빼돌리는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모든 금융 거래가 후견인을 거치기 때문이다.전문가들은 이 중 임의후견이 최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건강할 때의 뜻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성적표는 처참하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3년 제도가 도입된 이래 임의후견 신청자는 229명뿐이고, 후견이 개시된 사례는 32명에 불과하다. 100만 명에 육박하는 치매 환자 규모를 생각하면 사실상 없는 제도나 다름없다.이유는 간단하다. 비싸고 불편해서다. 일단 후견인 공증과 등기를 위한 변호사 법률 비용만 수백만 원이 든다. 어렵사리 절차를 마쳐도 치매가 발병하면 또다시 후견인을 감시할 ‘감독인’을 선임해야 하는데, 그 보수도 오롯이 치매 노인의 재산에서 나간다. 제철웅 한국후견협회 부회장(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한국은 ‘부정행위 방지’에만 초점을 맞춰 이중 삼중의 고비용 구조를 만들어 놓은 탓에, 서민은 울타리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치매안심센터 256곳, ‘재산 보호’는 남 일선진국과 비교하면 이런 단점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독일에선 공증 등 법적 절차 없이 지방자치단체에 후견인 지정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신청서는 동네 문구점에서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국가가 직접 후견인의 활동을 관리해 일탈을 방지한다.후견인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우는 점도 문제다. 매년 법원에 치매 노인의 재산과 사용 명세를 보고해야 하는데, 어디에 지출했는지 영수증까지 일일이 첨부해야 한다.이를 돕는 기관도 없다. 전국 256곳에 달하는 ‘치매안심센터’는 치매를 조기 진단하고 증상을 관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치매안심센터가 저소득층과 홀몸노인을 위해 공공후견인 지정을 돕는다고 홍보하지만, 수혜자가 누적 268명에 불과하다. 독일과 일본 등에 후견 신청뿐 아니라 후견인의 활동을 돕는 전담 기관이 있는 것과 대조된다.치매에 걸린 후 뒤늦게 지정하는 법정후견의 가장 큰 문제는 ‘정신이 온전할 때 고른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통상 치매 발병 전후로 돌봐주던 가족이나 이웃이 후견인을 자처하는데, 이들이 도리어 ‘사냥꾼’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신탁도 문턱 높아… “국가·은행이 금고지기 돼야”가족도 믿을 수 없고, 후견 비용도 부담스러운 치매 노인을 위해 신탁 상품의 문턱이라도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이나 보험사가 치매 노인의 재산을 위탁받아 관리하면서 병원비나 요양비 등 필요한 곳에만 자금을 집행하는 서비스인데, 최소 가입액이 수천만 원에 이르고 수수료도 비싸다. 적은 재산이라도 저렴한 수수료로 맡길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저소득층의 경우 국가가 수수료를 지원하는 방식도 필요하다.재산과 돌봄이 연결되지 않는 점도 문제다. 가족이 없는 치매 노인은 신탁 상품에 가입했어도 운용사가 요양시설 입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다. 김규동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홀몸 치매 노인만이라도 신탁 제도와 돌봄 서비스를 연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궁극적으로는 ‘공공신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연금공단 등 공공기관이 신탁 기관이 돼주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정부 지원으로 세운 비영리 법인이 저렴한 수수료로 신탁 서비스를 제공한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공신탁을 통해 치매 노인의 자산을 안전하게 묶어두고, 이를 돌봄 서비스 비용으로만 지출되도록 연결한다면 치매 환자의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치매 노인 거래 땐 은행 직원에게 알려야”제도 밖에서는 ‘정보의 단절’이 약탈을 부추긴다.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치매 등급 판정 정보’는 은행 등 금융기관에 공유되지 않는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명목 아래, 치매라는 질병 정보가 금융 시스템과 단절된 것이다.이 틈을 타 사냥꾼들은 활개 친다. 은행 창구 직원은 통장의 주인이 중증 치매 환자인지 알 길이 없다. 대용 씨의 신분증과 도장을 든 ‘고향 친구’가 혼자 은행을 찾았을 때 직원은 의심 없이 돈을 내줬다.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는데도 방치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돈이 빠져나간 뒤 학대 정황을 포착했을 때 이를 입증할 수단이 없는 것도 문제다. 학대 조사관이 현장에 나가도, 가해자로 의심되는 가족이나 요양보호사가 “생활비로 썼다”며 통장 내역 공개를 거부하면 강제할 권한이 없다.경찰 수사도 마찬가지다. ‘친족상도례(가족 간 재산 범죄는 처벌 면제)’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지만, 수사 현장에서는 여전히 “가족 간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라”며 반려되기 일쑤다. 한 학대 조사관은 “계좌를 열어볼 권한조차 없어 사실상 맨손으로 전쟁터에 나가는 심정”이라고 말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취재: 전혜진 박경민 최효정 기자▽프로젝트 기획: 김재희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박초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임선영 인턴QR코드를 스캔하면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사냥’의 실태를 디지털로 구현한 ‘헌트: 치매머니 사냥’()으로 연결됩니다.도쿄=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 일가가 운영하는 요양원이 부당청구로 취득한 장기요양급여 14억4000만 원이 모두 환수됐다.17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공단은 지난달 6일 김 여사 일가가 운영하는 경기 남양주시 소재 요양원의 부당이득금 14억4000만 원을 전액 징수했다. 공단 관계자는 “요양원에 직접 방문해 현금 고지서를 전달했고 지난달 6일 전액 납부 완료됐다”고 말했다.공단은 올해 7~10월 요양원이 청구한 급여비용에서 부당이득금을 제하는 방식으로 4억9000만 원을 확보했다. 요양원은 10월 27일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뒤 나머지 부당이득금 9억5000만 원을 한 번에 모두 납부했다. 요양원은 2017년 개원했으며 현재 김 여사의 오빠 김진우 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요양원은 부당이득금 환수를 중단해달라며 법원에 집행정지 신청을 냈지만 1심과 2심에서 모두 기각됐다. 요양원은 건강보험료 부당 청구로 104일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 현재 운영되지 않고 있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박성민 본보 정책사회부 기자(사진)가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의 2025년 ‘올해의 의학기자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노인 1000만 한국, 품위있는 죽음을 묻다’ 시리즈를 기획하며 존엄한 죽음을 위한 정부 역할과 사회적 책임을 환기한 점을 인정받았다.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전국의 요양원과 요양병원은 2023년 말 기준 5917곳. 이곳에 머무는 치매 환자는 약 31만3250명이다. 전체 치매 환자 10명 중 3명이 집을 떠나 시설에서 생활하는 셈이다. 우리요양원 7층의 연순과 옥분, 명자는 그중 셋일 뿐이다.이들처럼 새어 나가는 기억과 재산을 붙잡지 못하고 있는 ‘치매 머니 사냥’의 피해자는 전국 요양시설에 얼마나 퍼져 있을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10월 31일부터 지난달 6일까지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와 함께 전국 요양원 321곳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조사를 벌였다.그 결과, 곳곳에서 치매 노인이 자산을 뺏기고 방치되는 징후가 뚜렷했다. 설문에 응답한 시설 중 54곳(16.8%)은 “가족이나 지인에게 금융 범죄 피해를 본 치매 노인 사례를 직접 목격했거나 알고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징후도 뚜렷했다. “입소 이후 노인의 자산이 급격히 감소한 경우가 있다”고 답한 곳은 33곳(10.3%)이었다. 멀쩡하던 노인이 치매 발병 후 빈털터리가 되어 “기초생활 수급자로 전락했다”는 응답도 85곳(26.5%)에 달했다. 시설 입소 노인 약 10명 중 3명은 치매가 온 뒤 평생 모은 재산을 잃고 국가의 지원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치매 노인의 ‘금융 주권’은 사실상 박탈 상태였다. 입소 노인이 자기 재산을 직접 관리한다고 응답한 시설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반면 320곳은 “배우자나 자녀 등 보호자가 전적으로 관리한다”고 답했다. 법적 안전망인 후견 제도를 이용하는 노인이 있다는 곳은 단 1곳에 불과했다. 가족에게 통장을 맡긴 대가는 가혹했다. 117곳(36.4%)은 “재산을 가져간 보호자가 시설 비용조차 제대로 내지 않아 체납된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돈은 가족이 쓰고, 빚은 노인이 지는 구조다.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고립’이다. 208곳(64.8%)이 “특정 가족에게 입원 사실을 알리지 말라거나 면회를 막아 달라는 식의 ‘사생활 보호 조치’를 요청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한 요양원 관계자는 “재산 분쟁 중인 자녀가 부모를 독점하려고 면회를 차단하는 경우가 많다. 의도가 뻔히 보이지만 보호자 권한이 막강해 요양원이 개입하거나 신고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취재: 전혜진 박경민 최효정 기자▽프로젝트 기획: 김재희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박초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임선영 인턴QR코드를 스캔하면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사냥’의 실태를 디지털로 구현한 ‘헌트: 치매머니 사냥’()으로 연결됩니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흰색 린넨 천과 기저귀, 일회용 비닐봉지를 산더미처럼 실은 은색 카트가 복도를 가로질렀다. 밤새 어르신들이 배설한 기저귀들이 쏟아져 나오자, 비릿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찌르는 소독약 향을 뚫고 복도로 번졌다. ‘웅-웅-’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세탁기의 기계음과 요양보호사의 분주한 발소리가 적막했던 복도를 가득 메운다.카트를 밀고 도착한 706호. 절반가량 닫혀 있던 미닫이문을 활짝 열자, 4개의 침상 위 허공을 부유하던 8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문 쪽을 향했다. 어떤 눈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졸음이 가득하다. 요양보호사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젖은 기저귀를 갈아치우고 침상에 새 린넨을 끼우는 동안 블라인드가 내려진 창밖이 점차 밝아왔다. 지난달 19일 우리요양원 7층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됐다.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이 평범한 요양원의 풍경 뒤에는 전국적으로 만연한 ‘약탈’의 비극이 숨겨져 있었다. 본인도 모르는 새 다달이 기초연금을 뺏겨 통장 잔고가 바닥 난 701호 노인, 1년 넘게 요양원비가 체납됐지만 자녀는 면회를 오지 않는 703호 노인, 입소 몇 달 만에 재산의 8할이 증발해 버린 702호 노인….이들은 전국 5917개 요양시설에서 지내는 31만 명이 넘는 치매 환자 중 세 명일 뿐이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요양시설 321곳을 접촉한 결과, 54곳에서 ‘치매머니 사냥’의 신음이 포착됐다. 대도시의 요양병원부터 시골 마을의 작은 요양원까지. 입소 노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가족이나 이웃이라는 이름의 사냥꾼에게 재산을 뜯기고 있었다. 재산을 지켜줄 ‘후견인’을 둔 노인이 있다는 요양원은 단 1곳에 불과했다. 취재팀은 이중 치매 노인 43명이 생활하는 우리요양원의 7층 병동에서 24시간을 보내며 이들의 하루를 관찰했다. 특히 자산을 잃고 세상과 단절된 세 노인의 삶을 들여다봤다. 허술한 보호 시스템 틈새엔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노인의 재산을 손쉽게 가져갈 수 있는 사각지대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기초연금 뜯기고 ‘잔액 0원’ 701호, 요양원비 최장 연체 703호아들에 전재산 80% 뜯긴 702호… 요양원 7층의 ‘조용한 착취’복도 양쪽으로 8평 남짓한 방이 3개씩 마주 보고 있다. 그 안에는 전동침대에서 하루를 보내는 노인 서너 명이 각각 누워있다. 7층에서 지내는 치매 노인 18명 중 17명은 스스로 거동이 불가능하다. 직원 책상에 운영일지가 클립에 꽂혀 팔락거렸다. ‘야간→주간 전달사항’ 칸에는 밤새 벌어진 전쟁 같은 기록이 적혀 있다. ‘05시까지 안 잠. 섬망 증상’ ‘이불 던지심’… 그 중 눈에 띄는 기록이 보인다. ‘먹을 거 찾아 배회’. 와상 환자 사이에서 유일하게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김연순(가명·84) 씨다.● 오전 10시, 701호 ‘화려한 빈곤’ 김연순… 행여나 다치면 입원수속도 어려워복도 끝 10평 남짓한 701호. 연순이 혼자 지내는 사실상의 격리실이다. 밤마다 보행보조기를 끌고 복도를 서성이는 배회 증상과, 자신을 과시하는 조현 증상 때문이다. 문을 열자 연순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백성들이 다 착하고 아름다워.”그는 요양원에서 ‘대통령’으로 통한다. 겉모습부터 남다르다. 머리에는 분홍색 터번을 두르고 붉은 카네이션 핀을 꽂았다. 호피 무늬 사각 안경은 코끝에 위태롭게 걸려 있고, 왼팔에는 구슬 팔찌 3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내가 명문 사범대를 나와서 영어, 독일어, 일본어를 다 해. ABCDE… 마이 마더, 화더, 브라더.” 쉴 새 없이 쏟아내는 그의 과거는 화려했다. 하지만 요양원 직원 중 누구도 그 말이 사실인지 알지 못한다. 확실한 건, 화려한 치장 뒤 현실의 잔고는 ‘0원’이라는 사실이다.연순은 5년 전부터 요양원에서 살고 있다. 2020년 8월 단칸방에서 혼자 곰팡이가 핀 음식으로 연명하는 그를 행정복지센터 직원이 발견했다. 매달 25일 나오는 기초연금 34만 원이 유일한 수입이다. 그러나 연순은 이 돈을 만져본 적이 없다. 연순이 ‘미스터 코리아’라고 부르는 그의 남동생이 2년 전 통장을 가져가 버리고 1년 넘게 연순을 찾지 않고 있어서다.지난봄, 연순이 간식을 찾자 요양원 측은 그의 체크카드로 1만4000원어치 빵을 결제하려 했다. 그러나 포스기에는 ‘잔액 부족’ 알람이 떴다. 사회복지사가 연순의 올케에게 연락하자 그는 달랑 5만 원만 채워 넣었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 요양원 측이 “어르신에게 급한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했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연순은 이날 오전 침대에 앉아 천진하게 카스타드 빵 봉지를 만지작거리더니 연달아 2개를 해치웠다. 통장의 돈이 아니라, 정부가 지급한 소비쿠폰으로 사둔 빵이었다.비극은 단순한 간식비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텅 빈 통장은 생명과 직결된다. 고령의 치매 노인은 낙상이 잦다. 뼈가 부러져도 본인 통장에 돈이 없으면 입원 수속부터 막힌다. 시청 긴급지원에 의존하거나, 치료를 포기하고 요양원으로 다시 데려와야 한다. 가벼운 골절도 때를 놓치면 패혈증으로 악화할 수 있다.현행법상 가족이 있는 치매 노인의 통장 관리에 공공이 개입하기는 어렵다. 재산을 은행이 대신 맡아주는 신탁 서비스는 문턱이 높다. 보호자가 있다는 이유로 지방자치단체는 손을 놓고, 보호자는 그 점을 악용해 연금을 가로챈다.더 큰 문제는 ‘죽음 이후’다. 남동생 부부의 마지막 면회는 지난해 10월. 통장 잔고가 없는 무연고에 가까운 노인이 사망할 경우, 장례를 치를 비용조차 없다. 요양원 측은 연순 앞으로 나온 문화누리카드 잔액 11만 원을 쓰지 않고 남겨뒀다. 훗날 영정사진이라도 마련해주기 위해서다.● 오후 2시, 703호 임옥분의 은색 손거울… 기초연금, 아들 집 관리비로 쓰여703호 안쪽 두 번째 침상에 나른한 햇살이 비쳤다. 눈만 끔뻑이며 오전 시간을 보낸 임옥분(가명·85) 씨는 “식사 왔어요”라는 외침에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침대 등받이를 세우고 턱받이를 맸다. 불고기와 계란국이 나왔지만, 몇 숟가락 뜨지 않고 도로 자리에 누웠다.그는 은색 손거울을 조심스레 들여다봤다. 3년 전 가을 입소할 때 아들이 사준 거울이다. “나도 좀 보자.” 옆 침대 할머니가 손을 뻗자, 옥분은 화들짝 놀라며 거울을 가슴팍에 품었다. 그리고는 거울면이 바닥에 닿도록 조심스럽게 엎어놓았다. 닳을까 겁난다는 듯.나무 사물함에는 사진 3장이 붙어 있었다. 산악회 빨간 유니폼을 맞춰 입은 50대, 철쭉꽃 앞의 60대, 옥색 정장을 입은 70대. 모두 옥분의 과거다. 옥분은 하루 종일 거울 속의 늙은 자신과 사진 속의 젊은 자신을 번갈아 응시한다.그런 옥분에게도 사랑하는 아들이 있다.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나 아들 보고 싶어. 우리 아들 요즘 왜 안 온대?” 그러나 아들이 마지막으로 찾아온 건 1월 말. 옥분의 시간은 그날에 멈춰 있다.아들은 지난해 여름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했다. 그즈음부터 요양원비가 밀리기 시작하더니 연락도 잘 닿지 않았다. 그렇게 지난해 6월부터 옥분의 앞으로 체납된 원비만 602만7000원, 14개월 치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새 요양원의 최장 체납자가 됐다. 4월 체납액이 700만 원을 넘자 요양원 측은 아들에게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러자 그는 100만 원만 겨우 갚았다.지난해 옥분은 기초생활 수급자가 될 기회가 있었다. 수급자가 되면 요양원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옥분 명의의 임대주택이 걸림돌이 됐다. 현재 임대주택에는 아들이 살고 있는데, 옥분이 요양원으로 주소를 옮기면 임대주택을 처분해야 한다고 했다. 가족은 옥분의 수급자 등록을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옥분의 기초연금은 고스란히 그 집의 관리비로 빠져나간다.요양원장이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따졌다. “기초연금은 어르신 본인을 위해 써야 합니다.” 아들의 대답은 당당했다. “생활비로 쓴 거 아니에요. 어머니 명의 아파트 관리비 내는 게 무슨 문제입니까?”옥분처럼 치매 노인을 빚쟁이로 만들어놓고, 가족이 그 돈을 대신 쓰는 경우는 흔하다. 재산을 지켜주는 후견 제도가 있지만, 옥분처럼 멀쩡한 자녀가 버티고 있는 경우 제3자가 개입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결국 옥분은 아들의 집을 지키기 위한 ‘인질’이 되어 요양원 침대에 묶여 있는 셈이다.● 저녁 7시, 702호 최명자의 ‘증발한 8000만 원’… 요양원비 낸다며 돈 가로채 가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 치매 노인들의 불안은 커진다. 일과를 마쳤으니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착각하는 ‘일몰 증후군’이다. 702호 최명자(가명·84) 씨는 문을 등지고 누워 있었다. 올 2월 요양원에 들어온 그의 하루 중 절반을 눈을 감은 채 보낸다. 그럴 때면 이불을 뒤집어쓰거나, 베개를 침대 밖으로 던지고 웅크려 있다.명자가 유일하게 미소 짓는 순간은 가족사진을 꺼내볼 때다. 자녀들과 요양원에 오기 전 안방에서 찍은 사진이다. “우리 새끼들 다 애미 애비 닮아서 이뻐. 여기는 우리 손주. 잘생겼지?” 이렇게 말하는 그의 눈동자가 한결 또렷했다.앞선 두 노인과 달리 명자의 가족은 겉보기에 문제가 없다. 큰아들은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찾아온다. 그냥 오는 법도 없다. 명자가 좋아하는 막걸리를 요양원 몰래 우유병에 담아와 건넨다. “어머니, 한 잔 드세요.” 아들의 목소리에 명자의 눈빛이 소녀처럼 반짝인다. 요양원비도 밀린 적이 없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풍경 이면엔 전 재산의 8할을 빼앗긴 비극이 숨어 있다.명자는 요양원에 입소할 때만 해도 통장에 1억 원이 넘는 돈이 있었다. 그러나 8개월 만에 8000만 원이 증발했다. 잔액을 발견한 다른 자녀가 “어머니 재산이 어디 갔느냐”며 따지자 큰아들은 “요양원비를 냈다”고 했다. 그러나 8개월 치 요양원비는 600만 원이었다. 계산이 맞지 않자 형제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그래도 사라진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다른 학대의 증거가 없기에 요양원은 명자 가족의 일에 개입하기 어렵다. 통장 내역은 보호자만 볼 수 있다. 설사 신고해도 경찰이 가족 간의 계좌 이체 내역을 ‘횡령’으로 처벌하기는 매우 어렵다. 가족 간 재산 범죄는 형을 면제하는 ‘친족상도례’의 관습과 맞물려 수사기관조차 개입을 꺼린다.자녀들은 부모의 돈을 ‘어차피 내가 물려받을 돈’이라고 인식하고, 부모가 살아있는 동안 미리 당겨쓰는 것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가 치매로 의사 결정 능력을 잃는 순간, 부모의 통장은 자녀들의 ‘공용 지갑’이 되어버린다. 요양원 관계자는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치매 노인의 자산을 임의로 사용하는 것은 경제적 학대 아닌가”라고 되물었다.“집 앞에 감이 많이 열렸을 건데….” 평생 일군 자산이 요양원에 들어온 지 몇 달 만에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명자는 과거를 회상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치매노인 울타리 없는 요양원… “수급자 통장이라도 공적 관리를”한밤, 요양원은 침묵에 잠겼다. 복도를 비추는 폐쇄회로(CC)TV 불빛만 붉게 깜빡였다. 취재팀이 지켜본 우리요양원의 풍경은 치매 노인 100만 명 중 상당수가 경제권을 잃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연순처럼 가족이 돈만 챙기고 연락을 끊어 ‘현대판 고려장’을 당해도, 옥분처럼 기초연금으로 자녀의 집 관리비를 내도, 명자처럼 멀쩡한 가족이 수천만 원을 몰래 가져가도, 지금의 시스템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요양원비만 제때 입금되면, 혹은 가족이라는 이름만 있으면, 국가는 그 문 뒤에서 벌어지는 약탈을 ‘사적인 영역’이라며 눈감는다.요양원이 방문객으로 가장 붐볐을 때는 정부가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발행한 9월이었다. 평소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던 가족들이 “소비쿠폰 선불 카드를 받으러 왔다”며 요양원을 찾았다. 이중 태반은 가족의 얼굴은 보지도 않고 떠났다.요양원에서 실질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한정적이다. 학대 신고를 해도 통장을 압류해서 밀린 요양원비를 갚아주는 절차는 없다. 일각에서는 “입소한 기초생활 수급자의 통장만이라도 공적으로 관리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양 능력이 없다고 판정된 보호자에게통장을 맡기느니, 공공이 대신 관리하며 요양원비 등을 내주자는 얘기다.다음 날 아침, 취재진이 요양원을 나설 때까지 옥분의 은색 거울은 침대 옆 협탁에 뒤집힌 채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엎어져 있어 아무것도 비추지 못하는 거울처럼, 우리 사회의 감시망도 홀로 남겨진 이들을 전혀 비추지 못하고 있었다. 닫힌 미닫이문 너머로 거친 숨소리만이 새어 나왔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취재: 전혜진 박경민 최효정 기자▽프로젝트 기획: 김재희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박초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임선영 인턴QR코드를 스캔하면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사냥’의 실태를 디지털로 구현한 ‘헌트: 치매머니 사냥’()으로 연결됩니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2-상〉 학대 신고돼도 10%만 사법처리치매노인 자산 노린 범죄 급증, 실제 처벌은 0.1%도 안돼가해자 96%가 가족-요양시설 종사자-지인… 파악 쉽지 않아가을이 깊어 가던 2021년 10월 충남 논산시의 한 거리. 낡은 옷차림의 치매 노인 정순호(가명·71) 씨가 하염없이 배회하고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노인보호전문기관 조사관이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의 이름과 나이조차 가물가물해했다. 하나의 문장만 또렷하게 반복했다. “돈을…. 돈을 되찾아야 돼.”조사관이 확인한 순호의 통장은 참혹했다. 2020년 7월 이후 수십 차례에 걸쳐 2억 원 넘는 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치매에 걸린 후 통장 관리를 도맡았던 옛 직장 후배(69)가 유력한 용의자였다. 뭉칫돈이 후배의 딸과 지인의 계좌로 송금된 내역이 확인됐기 때문이다.하지만 조사관은 끝내 후배를 경찰에 넘기지 못했다. 후배는 항상 순호가 직접 돈을 보내게 했고, 치매 환자인 순호의 오락가락하는 진술로는 횡령 혐의를 입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관 측에서 후견인이 되어 돈을 되찾으려 했지만, 후배의 딸과 지인은 그새 파산 선고 뒤에 숨은 상태였다. 결국 순호는 돈을 다 돌려받지 못한 채 지난달 요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고통과 죽음은 노인보호전문기관의 한 장짜리 ‘학대 판정서’ 속에만 남았다.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범죄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실태 조사는 단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얼마나 많은 재산을 잃는지, 어떻게 착취당하는지 파악조차 안 된다. 지난 5년간(2020~2024년) 금융 학대에 희생된 치매 환자는 6만7443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유죄 판결문에 나타난 피해자는 고작 49명이었다. 피해자가 1000명이라면, 법의 심판을 받는 가해자는 1명도 채 되지 않는 셈이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보건복지부 산하 노인보호전문기관에 잠들어 있던 5년 치 ‘치매 노인 경제적 학대’ 판정서 379건을 분석했다. 공식 통계에 없는 ‘암수(暗數) 치매머니 사냥’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이 중 수사기관에서 인지한 사건은 34건(8.9%)뿐. 나머지 대다수는 치매 노인의 진술이라 믿기 어렵다며, 가해자가 유일한 혈육이라 달리 돌볼 사람이 없다며 제대로 된 조사로 이어지지 않았다.‘사냥꾼’은 멀리 있지 않았다. 가해자의 95.8%는 가족이나 요양시설 종사자, 지인 등 피해자와 가까운 이들이었다. 가장 믿었던 혈육과 돌보미가 노인의 판단력이 떨어지는 틈을 타 포식자로 돌변한 것이다. 방식은 치밀하고 다양했다. 치매 부모의 연금에 기생해 야금야금 돈을 빼가는 ‘빨대형’과 폭언과 흉기를 동원해 뜯어내는 ‘협박형’, 인감증명서를 위조해 부동산이나 목돈을 한꺼번에 가로채는 ‘거액 사냥형’까지. 치매 노인의 노후 자산은 ‘눈먼 돈’이 되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주머니로 사라지고 있었다.“가족인데 어떻게 감옥 보내요”치매머니 사냥 10건 중 9건 묻혀‘혈육 학대’ 피해자 다수 조사 거부‘돌볼 사람이 가족뿐’ 이유로 면죄부“횡설수설 치매 노인 말 믿냐” 역공노인전문기관, 금융자료 요청 못해경제적 학대 43% ‘의심’ 단계서 종결2020년 4월 21일, 충남 아산시의 한 주택. “아들이 치매 어머니를 때리고 돈을 빼앗아간다”는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 도착한 노인보호전문기관 조사관의 눈에 들어온 건 이혜자(가명·87) 씨의 퉁퉁 부어오른 콧잔등과 깨진 발톱이었다. 양아들이 기초생활 생계급여 통장을 내놓으라며 폭행한 흔적이었다. 패륜은 처음이 아니었다. 3년 전에도 생계급여를 빼돌리려다 신고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씨는 이번에도 조사관의 손을 뿌리쳤다. “내 자식인데 어떻게 감옥에 보내요….” 결국 조사관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취재팀이 입수한 379건의 학대 판정서에는 이처럼 법망이 닿지 않는 ‘치매 머니 사냥’의 현장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수사기관의 문턱을 넘지 못한 사건들이 가벼워서였을까. 판정서 속 현실은 정반대였다. 치매라서 진술을 믿어주지 않았고, 어렵사리 증거를 찾아도 유일한 혈육이라며 가해자는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갔다. 노인은 지옥 같은 현실에 다시 남겨졌다.먼지 쌓인 판정서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였다. 치매 노인이 이미 피해를 당한 뒤여서 늦고, 그의 재산을 지켜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면죄부“이렇게 때렸는데 죽지도 않네.” 남편은 아내(89)에게 “돈을 내놓으라”며 효자손을 휘둘렀다. 2022년 4월 제주 서귀포시에서 치매 노인이 당한 건 강도에 가까운 행위였다. 하지만 조사관은 이 사건에 ‘응급’ 딱지를 붙이고도 수사 의뢰를 하지 못했다.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한마디 때문이었다. 기관은 부부를 분리하고 복지 서비스를 연계하는 걸로 사건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전북의 한 치매 노인(80)이 8년 넘게 재산을 뜯겼지만 기관이 개입하지 못한 이유도 ‘가해자가 아들이라서’였다. 2014년 아들이 생계급여와 연금을 몽땅 가로채고 어머니에게는 월 10만 원만 쥐여준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노인은 끼니조차 잇기 힘들었지만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됐다. 그리고 8년이 지난 2022년 10월, 똑같은 신고가 접수됐다. 아들은 여전히 어머니의 통장을 쥐고 있었고, 어머니의 삶은 더 피폐해져 있었다.‘돌볼 사람이 가족뿐’이라는 이유가 면죄부가 되기도 한다. 2021년 전북에서 한 치매 노인(88)이 ‘딸이 통장을 돌려주지 않는다’고 신고했다. 통장에는 10만, 20만 원을 20여 차례에 걸쳐 빼간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딸에게 내려진 조치는 재발 방지 교육뿐이었다. 노인을 돌볼 혈육이 그 딸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이 답답한 건 노인보호전문기관도 마찬가지다. 가정 내 사건 대부분은 처벌이 어려운 데다, 가해자를 잠시 분리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조치가 없기 때문이다. 한 조사관은 “친족 간 경제적 학대는 ‘친족상도례’로 인해 대부분 진행되지 않고, ‘병원비는 냈다’는 식으로 주장하면 민사로 해결할 사안으로 보고 관여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라고 토로했다.● ‘치매’ 자체를 방패 삼는 가해자흐릿한 기억력과 판단력. 치매라는 병은 가해자에게는 법적 방패가 된다. 물증이 현금 인출 기록뿐일 때 피해자마저 횡설수설하면 수사는 제자리를 걷는다.지난해 10월 충남에 사는 치매 노인에게 벌어진 일도 이와 같았다. 통장에서 두 차례에 걸쳐 750만 원이 인출됐다. 폐쇄회로(CC)TV에는 요양보호사가 돈을 뽑는 장면이 선명하게 찍혔다. 하지만 경찰의 결론은 ‘무혐의’였다. 요양보호사가 “빌린 돈”이라고 딱 잡아뗀 반면, 치매 노인의 진술은 오락가락했기 때문이다. 수사 착수 후 슬그머니 일부 금액을 돌려준 점도 면죄부가 됐다. 가족들은 분통을 터뜨렸지만 방법이 없었다. 법망을 비웃듯, 그는 1년 뒤 같은 노인의 명의로 휴대전화를 몰래 개통해 쓰다가 다시 적발됐다.실제 가해자 대다수는 치매 환자의 판단력을 공격했다. 2020년 1월 경북 영천시. 사위가 치매 장모(78)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통장을 들고 도망쳤다. 그는 장모 명의로 몰래 차까지 뽑았다. 1년 전에도 장모를 폭행하고 돈을 빼앗아 재판에 넘겨졌지만 벌금형에 그친 경험이 있는 사위는 당당했다. 조사 과정에서 “미친 사람 얘기를 믿는 거냐”며 도리어 따지다 잠적했다. 노인보호전문기관은 노인에게 숙소를 마련해 주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해야 했다.아예 조사까지 가지도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2021년 11월 서울, 교회 목사로부터 생계급여를 착취당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하지만 피해자가 치매인 데다 청력도 떨어져 진술 확보가 불가능했다. 결국 목사에게 경제적 학대의 위험성을 알려주며 예방 교육을 하는 걸로 사건은 허무하게 종결됐다.한 노인보호전문기관장은 “치매 노인 대다수는 진술이 오락가락하거나, 피해 자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상황’이 된다”며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 무리해서 수사 의뢰도 해봤지만, 증거 부족 등으로 처벌까지 이어진 사례는 드물었다”고 했다.● 권한 없어 “눈 감고 조사하는 거나 마찬가지”학대를 막아야 할 노인보호전문기관의 두 눈은 가려져 있다. 통장 명세를 확인하거나 금융기관에 자료를 요청할 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내가 안 가져갔다”거나 “노인을 위해 썼다”고 우기면 확인할 길이 없는 것이다.2021년 9월 경남의 치매 노인(82) 사례가 대표적이다. 딸이 어머니의 적금을 멋대로 해지하고 기초연금을 빼돌린 정황이 포착됐지만, 기관은 금융 기록과 현금인출기 앞 CCTV를 볼 수 없었다. 결국 물증이 없어 ‘잠재 학대(의심)’로 사건을 종결했다. 경제적 학대 379건 중 164건(43.2%)이 이처럼 의심 단계에서 표지를 덮었다.가해자가 조사를 거부하면 강제할 수도 없다. 경남에서는 아들이 어머니를 “죽여버린다”고 협박하며 수백만 원을 갈취해 조사관이 출동했지만, 아들의 거센 반발에 피해 노인 조사조차 하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인력 부족도 심각한 걸림돌이다. 조사관으로 활동하는 사회복지사는 전국에 400명도 되지 않는다. 오복경 충남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장은 “신고가 접수되면 72시간 이내에 2인 1조로 출동하는 게 원칙이지만, 인력난 때문에 증거 확보의 골든타임을 놓치기 일쑤다”라고 토로했다.‘암수(暗數) 치매 머니 사냥’ 이렇게 추산했습니다.치매 노인의 재산을 노린 범죄 피해의 규모는 거대한 그늘 속에 있다. 검경은 사기나 횡령 사건의 피해자 가운데 치매 환자를 따로 분류하지 않고, 관련 법원 통계도 없다. 치매 노인 100만 명 가운데 재산을 지킬 후견인 제도나 은행 신탁 상품을 이용하는 이들이 극소수임을 고려하면, 범죄 실태부터 무관심 속에 방치된 셈이다.법원도서관에서 확인한 최근 5년 치 금융범죄 유죄 판결문 중 치매 환자로 명기된 피해자는 고작 49명. 한국노년학회와 공동 추산한 전체 규모(6만7443명)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학회는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의 연간 경제적 학대 피해율(0.4%)에 국내 치매 인구를 대입한 뒤, 치매 환자가 일반 노인보다 금융 착취에 3.7배 더 취약하다는 해외 연구 결과를 종합해 이 수치를 도출했다.이런 상황에서 ‘치매 노인 경제적 학대 판정서’는 숨겨진 사냥의 실태를 보여주는 유일한 단서였다. 보건복지부 위탁 기관인 전국 38개 노인보호전문기관이 현장에서 작성한 이 기록에는 재판에 넘겨지지 못한 수많은 사건의 전말이 담겨 있었다. 취재팀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5년 치 판정서 원문을 전수 확보하고, 전문가 자문을 거쳐 그 속에 숨은 가해자의 민낯과 사법 시스템의 구멍을 분석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취재: 전혜진 박경민 최효정 기자▽프로젝트 기획: 김재희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박초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임선영 인턴QR코드를 스캔하면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사냥’의 실태를 디지털로 구현한 ‘헌트: 치매머니 사냥’(https://original.donga.com/2025/HUNT)으로 연결됩니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2-하〉 가까운 이들을 조심하라가족 52%-시설종사자 32% 차지치매노모 연금-급여에 ‘빨대’ 꽂고요양원선 돈 빼내 해외여행 경비로서류 위조해 부동산-목돈 빼앗기도그렇다면 ‘치매 머니 사냥꾼’은 누구이며, 어떤 수법으로 노인의 자산을 노렸을까. 379건의 학대 판정서에 기록된 가해자들은 낯선 사기꾼이 아니었다. 95.8%가 가족이나 요양보호사, 지인 등 피해자와 가장 가까운 이들이었다.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아들딸 등 가족(52.0%)이었다. 요양원·요양병원 등 시설 종사자(31.9%)와 이웃 등 지인(11.9%)이 뒤를 이었다.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던 이들은 노인의 기억이 흐릿해지는 틈을 타 가장 잔인한 포식자로 돌변했다. 수법은 치밀했다. 누군가는 노인을 돌봐준다는 명목으로 연금 통장에 빨대를 꽂았고, 누군가는 아예 인감을 통째로 위조해 전 재산을 자기 명의로 옮겼다.● 믿음을 뜯어먹은 혈육과 보호사, 가짜 친구치매 노인은 통장과 도장을 본능적으로 가장 믿을 수 있는 ‘피붙이’에게 건넨다. 그러나 이 믿음은 곧잘 사냥의 빌미가 됐다. 전체 절반을 넘는 197건의 가해자가 가족이었다.2022년 11월 울산의 김선자(가명·79) 씨는 치매 증상이 심해지자 아들에게 전세 보증금을 통째로 내어줬다. ‘아들이 알아서 잘 관리해 주겠지’라고 믿었다. 하지만 돈을 받은 아들은 어머니를 방치한 채 종적을 감췄다. 보증금은 아들의 주머니로 들어갔고, 선자는 지금도 거리를 배회하며 아들의 이름을 부른다.‘돌봄’을 가장한 시설 종사자의 약탈도 121건에 달했다. 이들은 가족보다 더 가까이서 노인을 돌본다는 점을 악용해 ‘감시 없는 사냥’을 즐겼다. 지난해 1월 경북의 한 요양원에서는 원장과 사무국장, 사회복지사가 한통속이 되어 입소 노인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이들은 노인들의 통장에서 돈을 빼내 직원들의 해외여행 경비로 썼고, 요양원 소파를 수리했다. 심지어 존재하지도 않는 종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며 활동비 명목으로 노인들의 쌈짓돈을 빼돌리기도 했다.무단으로 자산을 사용하고 나서 ‘치매 노인을 위해서였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23년 강원의 한 요양원장은 치매 노인 3명의 자산을 대신 관리해 준다는 명목으로 690만 원을 자신의 통장에 옮겼다가 가족이 따지자 그제야 돌려줬다. 그는 심지어 숨진 치매 노인의 물건도 몰래 팔아 운영비에 보탠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2월 충남에서는 방문요양보호사가 혼자 사는 치매 노인(75)의 신분증을 몰래 가져가 대출을 받았다. 갚으라는 독촉장이 날아오고 나서야 노인은 자신이 빚더미에 앉은 것을 알았다.‘외로움’을 파고드는 지인 사냥꾼도 45건이나 됐다. 2021년 8월, 제주에 사는 최석제(가명·77) 씨는 치매 진단 후 우울해하던 차에 옛 직장 후배의 방문을 받았다. 후배는 말벗을 자처하고 석제를 돕겠다며 통장 비밀번호를 알아냈고, 그의 명의로 대출까지 받아 챙긴 뒤 사라졌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석제는 배신감과 빚만 떠안은 채 노년을 보내고 있다.● 기생, 협박, 그리고 ‘한 방’사냥꾼이 노인의 지갑을 여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였다. 연금을 착취하는 ‘기생형’, 폭력으로 돈을 뜯어내는 ‘협박형’, 목돈을 한 번에 가로채는 ‘거액 사냥형’이다.126건은 별다른 직업 없이 치매 노인의 연금이나 기초생활 생계급여에 기생하는 유형이었다. 이들은 노인이 죽을 때까지 빨대를 꽂고 소액을 야금야금 빼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2022년 10월 서울의 한 요양원에 입소한 치매 환자(81)는 매달 100만 원씩 들어오는 공무원 연금 덕에 노후 걱정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통장을 관리하겠다고 가져간 딸은 어머니의 연금으로 인터넷 쇼핑을 즐겼다. 정작 어머니의 요양원비는 두 달 넘게 연체됐다.인지 능력이 떨어진 노인을 공포로 몰아넣어 돈을 뜯어내는 방식도 45건에 달했다. 2023년 4월 7일 전북의 82세 노인은 딸이 들이민 과도 앞에서 벌벌 떨었다. 딸은 “죽여버린다”며 곽 씨를 위협했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이 쓰던 어머니의 통장을 감췄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2016년부터 네 차례나 딸을 신고했지만, 그때마다 상황은 제자리걸음이었다.인감증명서나 등기 서류를 위조해 부동산이나 목돈을 한꺼번에 가로채는 대담한 수법은 40건이었다. 경남 창원시의 94세 노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자 몰래 요양병원에 입원시킨 뒤, 아버지 집 명의를 자기 앞으로 돌렸다. 그것도 모자라 아버지 통장에 있던 5500만 원까지 싹 찾아갔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일당 2만5000원짜리 잔디 깎기 일을 하며 평생 모은 피땀 어린 돈이었다. 뒤늦게 다른 가족들이 사실을 알고 돈을 되찾으려 했지만, 아들은 이미 돈을 자기 아들(손자)에게 송금한 뒤 사망해 버린 뒤였다.경북에서는 2022년 7월 이웃집 사위가 치매 노인을 시청에 데려가 양자 입양 신고를 하고 재산 상속권을 노린 사건도 있었다. 노인은 “갸가 와 그라노? 참 희한하다”며 양자 신고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조사에 나서자 그는 뻔뻔하게 “우리 엄마 지금 어딨어요?”라며 피해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한국노년학회 이연지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치매 노인을 대상으로 한 경제적 학대는 대부분 신체적·정서적 학대 신고를 조사하다가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며 “수면 아래 숨겨진 사냥은 우리가 파악한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조직적일 것”이라고 경고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취재: 전혜진 박경민 최효정 기자▽프로젝트 기획: 김재희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박초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임선영 인턴QR코드를 스캔하면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사냥’의 실태를 디지털로 구현한 ‘헌트: 치매머니 사냥’(https://original.donga.com/2025/HUNT)으로 연결됩니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1-하〉 이웃의 얼굴을 한 사냥꾼어떤 치매 환자에게 사냥꾼은 가까운 이웃의 얼굴을 하고 찾아왔다. 서울 종로구 서향분 씨(86) 부부의 옆집에 심영이(가명·65)가 이사 온 건 2014년 2월. 영이는 사근사근한 말투로 금세 노부부의 생활에 들어왔다. 밥을 같이 먹고, 생일이면 케이크의 초를 같이 불었다. 몸이 불편한 부부를 위해 시장에서 장을 봐다 주기도 했다. 치매 남편과 둘이 살던 향분에게 영이는 오랜만에 생긴 식구 같았다.● 이웃의 탈을 쓴 사냥꾼이혼 후 식당에서 서빙을 하며 어린 자녀 셋을 홀로 키운다는 영이에게 향분 부부는 마음이 쓰였다. 두 사람도 한때 식당을 운영했다. 광화문에 해장국집을 차려 장사를 키운 끝에 상가 한 채를 마련했다. 그 상가가 노부부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다는 걸 영이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2015년 4월, 여느 날처럼 식사하던 중 영이는 처음으로 돈 얘기를 꺼냈다. “우리 딸이 좋은 대학에 붙었는데 등록금 650만 원이 없어서 입학을 못 하게 생겼어요.” 눈물을 흘리는 영이에게 향분은 망설임 없이 장롱 속 통장을 열었다. 그 등록금이 수년에 걸쳐 집안 전체를 좀먹는 ‘사기의 씨앗’이 될 줄은 모른 채.그 후로도 영이는 명목만 바꿔가며 돈을 계속 가져갔다. 생활비가 모자란다며 100만 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며 200만 원. 어쩌다 한 번 갚기도 하며 믿음을 더 굳혔다. 돈 얘기를 꺼낼 때면 영이는 향분의 팔짱을 끼고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며느리들이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지만, 향분은 “그런 소리 할 거면 오지 마라”며 초등학생 손자의 용돈 통장까지 영이에게 넘겨줬다. 영이는 거칠 게 없었다. 은행에 갈 때도 향분 남편의 팔짱을 끼고 창구에 섰다. 청원경찰이 “할아버지랑 늘 오는 그 여자, 딸 아니냐”라고 기억할 정도였다.2016년 무렵, 영이는 한 단계 더 대담한 얘기를 꺼냈다. “동탄에 상속받을 땅이 있는데 사촌과 소송을 해야 합니다. 소송 비용만 도와주시면 바로 갚을게요.” 향분 부부는 그 말을 믿고 종로 상가를 담보로 8억7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그때부터 돈은 뭉텅이로 빠져나갔다. 2017년 7월 3일 1억 원, 9월 28일 2억7900만 원…. 차용증에 남은 기록만 따져도 영이가 가져간 돈은 39차례, 총 6억2680만 원에 이른다.“내일까지 갚겠다” “오후 3시까지 꼭 갚겠다”고 적힌 차용증과 각서가 수십 장으로 늘었지만 돈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부부의 삶은 서서히 무너졌다. 2021년, 향분은 돈을 받지 못하는 악몽을 꾸다 침대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병문안을 와서도 영이는 “금방 갚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 일가족을 좀먹다부부의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결국 이듬해 남편은 스트레스로 병세가 악화하며 숨을 거뒀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영이는 갚을 것”이라고 믿었다.남편이 떠난 뒤 향분의 삶도 급격히 무너졌다. 부부가 평생 일궈낸 종로 상가는 결국 경매로 넘어갔고, 향분은 식음을 전폐했다. 우울증과 불면에 시달리다 4층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갈비뼈가 부러졌다. 충격은 뇌까지 갉아먹었다. 가스 불을 켜두고 잊거나, 있지도 않은 사람을 찾더니, 결국 그해 치매 판정을 받았다. 주치의는 “사기를 당한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치매를 가속했다”고 진단했다. 이후 소송을 맡아 처리하던 둘째 아들마저 스트레스로 콩팥이 손상돼 일주일에 세 차례 투석을 받고 있다.재판에서 영이의 변호인은 “많은 액수를 여러 번 빌리긴 했지만 갚을 의지가 없었던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향분의 남편은 정신이 또렷했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중앙지법은 올해 9월 영이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며 “치매 노인의 재산을 집중적으로 노린 계획적 범죄”라고 적시했다. 향분의 기억은 빠르게 지워지고 있다. 아들이 요양원에 다녀간 지난달 17일 오후에도 “왜 아들은 코빼기도 안 비추냐”고 말할 정도다. 사라진 노부부의 재산과 삶은 형벌로도 돌이킬 수 없었다.● 1원 입금 후, 빚쟁이가 된 치매 노인문영식(가명·76) 씨는 노리기 쉬운 ‘사냥감’이었다. 젊은 시절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평생 홀로 살았다. 본인의 휴대전화 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해 케이스에 적어 뒀다. 거기에 어눌한 말투까지. 그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금명선(가명·31)은 길 한복판에서 그 틈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2023년 겨울, 경남 진주 중앙시장 앞. 올이 풀린 영식의 카키색 점퍼를 누군가 잡아끌었다. “새 폰 하나 해야겠습니다. 싸게 해드릴게.” 영식이 주름진 손을 휘휘 내저으며 불편한 다리를 절뚝였지만, 명선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결국 영식의 신분증을 뺏다시피 챙겨 들고 자기 가게를 비롯해 휴대전화 대리점 5곳을 돌았다. 인터넷과 TV를 설치하겠다며 영식의 집에 찾아와 “아빠, 문 좀 열어주이소”라고 외치기도 했다.며칠 후 영식의 통장에 처음 보는 문구가 찍혔다. ‘네이버9029’ ‘토스922’ ‘4562삼성’ 같은 이름으로 1원이 입금됐다. 스마트폰의 통화 기능밖에 쓸 줄 모르는 영식의 통장에 찍힌 첫 폰뱅킹 흔적이었다. 명선이 영식의 명의로 휴대전화 3대에 통장까지 개설한 뒤 보낸 인증번호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그때부터 명선은 영식의 통장을 마치 개인 지갑인 것처럼 이용했다. 나흘 후엔 영식이 만든 줄도 몰랐던 인터넷 은행 계좌에 47만 원이 들어왔다가 곧바로 빠져나갔다. 12월 20일엔 장애수당과 생계급여 등 43만7460원이 입금되자마자 다른 계좌로 이체됐다. 기초연금 33만4810원도 당일 그대로 빠져나갔다. 설을 앞두고 들어온 명절 위문금 2만 원마저 ‘알뜰하게’ 빼 썼다.더 큰 문제는 이후였다. 잔액이 바닥나자 영식은 통신 요금을 상습 연체한 ‘빚쟁이’가 됐다. 피해액은 851만 원. 지난해 12월 31일 뒤늦게 신고를 받은 노인보호전문기관이 통장을 틀어막고, 경찰과 협력해 휴대전화를 통한 추가 인출을 차단했다. 그러나 이미 잃어버린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치매 노인의 돈을 맡아 보호해 주는 민간 은행의 신탁 상품이 있지만, 최소 가입 금액이 수천만 원이라 영식에겐 그림의 떡이었다.영식은 결국 구청에 긴급생계보호를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올 8월 치매 진단도 받았다. 노인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진단이 늦었을 뿐, 이미 오래전부터 치매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영식은 명선을 경찰에 고발했지만 그는 벌금형으로 빠져나갔다.여전히 그의 집 우편함에는 고지서가 쌓여가고, 통신료 독촉 전화가 걸려 온다. 지금 영식이 바라는 건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나는 돈만 돌려받으면 돼. 너무 억울해 잠도 안 오고, 콱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 통장을 바라볼 때마다 ‘이제 나는 껍데기만 남은 사람 아닌가’라는 생각이 스친다고 했다.“금명선이는 이제는 안 보이더라. 경찰서 가면 주소 나올 텐데….” 초점을 잃은 영식의 시선 끝에, 수십 장의 고지서와 통장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통장에 찍힌 ‘1원 입금’ 알림에서 시작된 치매머니 사냥은 그렇게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빚과 불면의 구덩이로 밀어 넣고 있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취재: 전혜진 박경민 최효정 기자▽프로젝트 기획: 김재희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박초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임선영 인턴QR코드를 스캔하면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사냥’의 실태를 디지털로 구현한 ‘헌트: 치매머니 사냥’(https://original.donga.com/2025/hunt)으로 연결됩니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1-상〉 친구의 배신평생 바친 땅 800평을 판 치매 아버지돈 뜯기고도 “나쁜 사람 아냐” 마지막 필담‘나뿌사람 아니다.’목소리를 잃은 아버지는 종이에 이렇게 적었다. ‘나쁜 사람 아니다’를 제대로 쓰지 못해, 글자 하나가 비뚤어졌다. 아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나쁜 사람 아니라고?” 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성식 씨(46)는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말했다. “아빠 돈을 말도 없이 가져갔는데, 그게 나쁜 사람이지.” 아버지 강대용 씨(73)는 이번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손톱이 하얘지도록 볼펜을 꼭 쥔 채 종이만 바라봤다.믿었던 고향 친구에게 인생과 다름없는 땅 800평을 빼앗긴 뒤에도, 아버지는 끝까지 그 사람을 감쌌다. 치매가 기억과 판단력을 앗아간 자리에 남은 건 사람을 믿고 싶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조차 누군가에겐 ‘사냥감’이었다.10월 26일 경기 화성의 한 요양원에서 나눈 그 필담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가 됐다. 이틀 뒤 아버지는 저녁 식사 도중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장례 후 찾은 요양원, 두 달 전 “복도라도 편하게 다니시라”라며 마련한 새 휠체어가 주인을 잃은 채 한쪽에 놓여 있었다. 성식은 휠체어 손잡이를 꽉 움켜쥐며 말했다. “돈은 못 받더라도 그 사람, 우리 아버지 속인 사람, 벌은 꼭 받았으면 좋겠어요.”치매 노인 100만 명 시대. 정부가 추산한 이들의 자산은 154조 원에 이른다. 20년 뒤 치매 인구는 200만 명, 이들이 가진 자산은 414조 원 규모로 불어날 전망이다. 이 거대한 ‘치매머니’를 노린 조용한 사냥이 일상과 기억의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8월부터 5개월간 자산을 빼앗긴 치매 노인과 그 가족 36명을 인터뷰하고 이 가운데 치매 노인 3명 측의 협조로 그들의 통장을 분석했다. 그 안에는 30년 만에 나타난 친구에게 고향 땅을 잃고 세상을 떠난 대용의 삶과 죽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가장 믿었던 이웃의 가면을 쓴 포식자의 잔혹한 사냥 일지가 적혀 있었다.● 30년 만에 나타난 ‘친구’지난해 5월 15일 석가탄신일. 성식은 “오늘은 아버지 모시고 고기라도 사 먹자”라는 생각에 모처럼 들떴다. 휴일을 맞아 초등학생 딸과 아내, 동생까지 함께 아버지의 요양원을 찾았다. 그런데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아버지는 뜻밖의 말을 했다. “그 사람 집으로 돈 찾으러 가야 한다.”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어 아버지의 휴대전화를 열어봤다. 성식은 그 자리에 돌처럼 굳었다. 혼자서는 외출도 어려운 아버지 통장에서 이렇게 큰돈이 오갈 리가 없었다. ‘설마 송금 실수겠지’하는 생각도 잠시, 아버지가 부르는 이름을 듣고 성식은 사달이 났음을 직감했다. 박영길(가명·76). 아버지에게 30년 만에 나타난 고향 친구였다.영길이 요양원에 처음 찾아온 건 2023년 12월. 그는 대용과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상경한 지 30년도 넘었지만, 대용은 어린 시절과 20대 청춘을 보낸 고향에 대한 애착이 컸다. 영길은 “대용이가 요양원에 있다는 소식에 얼굴이라도 보러 왔다”고 했다.성식은 아버지 지인 대부분을 알고 있었지만 영길은 초면이었다. 하지만 치매로 기억이 들쭉날쭉한 대용은 고향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얼굴이 환해졌다. 영길은 그 후로 요양원을 자주 찾았다. 면회 기록지에는 2023년 12월 3일부터 지난해 5월 7일까지 그의 이름이 열 차례 나온다. 관계를 묻는 칸에는 항상 ‘친구’라고 적었다. 영길은 요양원에 외박을 신청해 대용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재우기도 했고, 면회가 없는 날에는 틈틈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3년간 치매 아버지를 돌보다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요양원에 모신 뒤 줄곧 죄책감을 안고 살던 성식에게도 영길은 고마운 존재였다. 그에게 용돈을 건네자 “뭐 이런 걸 다 줘. 친구 보러 오는 건데”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고맙고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조용히 시작된 사냥시간이 흐르면서 영길은 대용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건드렸다. 대용은 요양원 생활을 답답해했고, 늘 30년 전 떠나온 고향이 그립다고 했다. 어느 날 영길이 말했다. “고향에 가서 살게 해줄게. 내가 다 알아봐 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집을 구하고, 요양보호사도 쓰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용에게는 한평생 일해 모은 고향 땅 2000평이 있었다. 영길은 그중 논 800평을 팔자고 했다. “자식들은 반대할 수 있으니 알리지 말자”라는 말도 덧붙였다.매주 요양원을 찾는 아들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계획은 진행됐다. 지난해 3월 영길은 “옷을 사러 다녀오겠다”라고 말하고 대용과 고향의 면사무소를 찾았다. 그는 대용의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고, 새 통장을 만들기 위해 왕복 500km 길을 하루 만에 오갔다. 인감을 파고, 땅을 살 사람도 미리 찾아뒀다.두 달 뒤인 지난해 5월 7일, 대용의 논 800평이 4500만 원에 팔렸다. 시세보다 싼값이었다. 이튿날 아침 영길은 대용의 신분증과 통장, 도장을 들고 혼자 은행을 찾아 그 돈을 모두 찾았다. 통장과 비밀번호, 도장 찍힌 청구서만 있으면 누구든 인출할 수 있는 허점을 이용했다. 대용이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치매 환자라는 걸 은행은 몰랐다.영길은 의심을 피할 ‘미끼’도 잊지 않았다. 찾은 돈 중 300만 원을 다발째 대용에게 건넸다. “이걸로 이걸로 간호사들 맛있는 것도 사주고, 너 먹고 싶은 것도 사 먹어라. 나머지는 내가 맡아뒀다가 고향 보내주는 데 쓸게.” 대용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사냥은 거의 끝나 있었다.그때부터 영길의 태도는 달라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 오던 전화는 뜸해졌고, 요양원에도 오지 않았다. 대용은 아들이 사준 효도폰 키패드에 익숙한 번호를 꾹꾹 눌렀다. 0, 1, 0, 3, 3, 4…. 그러나 영길은 바쁘다며 서둘러 끊었다. 어느 날은 10번 넘게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대용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돈 찾으러 가야 한다”라고 한 건 그제야 올라온 분노였다.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성식은 영길에게 돈을 당장 돌려달라고 했다. 영길은 오히려 화를 냈다. “대용이 요양원을 싫어해 벗어나게 해주려고 한 것인데,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도둑놈 취급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달 말까지 돌려주겠다”고 했다.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며칠 뒤 다시 영길에게 전화를 걸자 이전과는 다른 연결음이 들렸다.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니 삐 소리 후….’ 수신 거부였다. 그가 떠난 사냥터에는,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과 뒤늦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아들만 남았다.● 평생을 바친 고향 땅대용의 빼앗긴 고향 땅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었다. 고단했던 73년 삶 그 자체였다. 1952년 6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대용은 아홉 살부터 남의 집 더부살이를 했다. 입 하나라도 덜기 위해서였다. 교문은 문턱도 못 밟아봤다. 남의 논밭을 매고, 공사장에서 석재를 날랐다. 작두질을 하다 두 손가락이 잘리기도 했다. 험난한 환경 속에서도 일터에서 간식으로 나온 크림빵조차 아까워 아들에게 주려고 품에 안고 오던 아버지였다.서른둘에 가족을 이끌고 경기 안산으로 올라온 뒤에도 그의 삶은 ‘노동’ 뿐이었다. 4층 상가 건물에서 36년을 경비로 일했다. 월급은 쥐꼬리만 했다. 화장실도 없는 4평 남짓한 상가 창고가 네 식구의 집이었다.그렇게 번 돈으로 고향 땅을 조금씩 사 모았다. 아내의 결혼 패물까지 팔아 보탰다. 지인 보증을 잘못 서 폐지를 주워 팔아야 했던 시기에도 그 땅만은 지켰다. 성식은 “아버지에게 땅은 ‘인생의 증거’였다”고 했다.식구를 키워낸 대용의 일터는 2018년경 재개발로 사라졌다.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철거된 상가처럼 대용의 삶도 주저앉았다. 하릴없이 집에만 있는 무기력한 하루가 되풀이됐다. 농사를 짓고 이웃들과 교류했던 고향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던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러나 치매와 외로움, 죄책감 사이로 파고든 고향 친구 한마디에 땅은 허망하게 넘어갔다.● 전세 사기범의 새로운 ‘사냥터’예방책이 없었던 건 아니다. 성식은 아버지가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 ‘후견제도’를 알아봤다. 법원이 정한 사람이 통장을 대신 관리해, 돈을 함부로 빼내지 못하게 막는 장치다. 하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변호사 비용만 수백만 원이 들어 신청을 포기했다. 멀쩡히 숨 쉬는 아버지를 금치산자로 만든다는 죄책감도 이길 수 없었다. 사냥꾼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성식은 지난해 7월 영길을 횡령 혐의로 형사 고소하고 민사소송도 냈다. 영길은 경찰 조사에서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대용이가 자식들에게 학대당하고 있다고 해서 도와준 것뿐”이라며 “돈은 대용이가 맡아달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두 차례 열린 재판 기일에도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영길은 대용의 돈을 가져간 지 닷새 만에 자기 빚 3600만 원을 갚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소유한 경기 용인 빌라는 깡통전세나 다름없었다. 우편함엔 단전 안내문 등이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한 세입자는 “집주인(영길)에게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사람만 이 건물에 6명”이라고 말했다.지난달 23일 취재팀과 마주한 영길은 여전히 당당했다. “대용이와는 형제 같은 사이였어. 돈을 돌려주려고 했는데 그 친구가 전화를 안 받았다니까.” 돈을 언제 돌려줄 생각이냐고 하자 그는 역정을 냈다. “자꾸 기분이 안 좋네. 내가 아들(성식)한테 돈 줘야 할 법적 의무가 있어요? 차용증을 썼나?”● 배신 그 이후영길에게 속았다는 사실은 대용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무너뜨렸다. 치매와 우울감은 더 심해졌고, 목소리마저 잃었다. 10월 26일 요양원에서 만난 대용이 종이에 ‘돈’이라고 적자, 성식은 “아직 돈 못 받았어, 아빠. 좀 더 기다려야 해”라고 했다. 대용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울음을 터뜨릴 듯했다. 잠시 뒤 그는 몇 글자를 더 썼다. ‘나뿌사람 아니다.’ 자신을 속인 사람을 끝까지 ‘나쁜 사람’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치매 노인의 마지막 방어선. 그 말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문장이 됐다.이틀 뒤인 10월 28일, 요양원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대용은 갑자기 의식을 잃고 고꾸라졌다. 입안에는 미처 다 넘기지 못한 밥알이 굴러다녔다. 요양보호사가 급히 가슴을 누르며 119를 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성식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대용의 심장이 멈춘 뒤였다. 온기가 남아 있는 아버지를 붙들고 아들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영길이 대용의 돈을 가져간 지 1년 5개월 만이었다.대용의 고향 마을 지인은 “두 사람은 어릴 때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서로 자주 어울리던 사이는 아니었다”고 했다. 지인은 영길에게도 대용의 부고를 전했지만, 조문은커녕 연락 한 통 오지 않았다고 한다.이제 성식은 아버지를 대신해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돈은 못 받아도 처벌은 받게 해야죠. 아버지를 ‘친구’라고 부르던 사람이, 아버지 인생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법으로라도 남겨야 할 것 같아요.”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헌트: 치매 머니 사냥’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취재: 전혜진 박경민 최효정 기자▽프로젝트 기획: 김재희 기자▽사진: 박형기 기자▽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그래픽: 박초희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임선영 인턴QR코드를 스캔하면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사냥’의 실태를 디지털로 구현한 ‘헌트: 치매머니 사냥’(https://original.donga.com/2025/hunt)으로 연결됩니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이 운영하는 포털 사이트 ‘복지로(www.bokjiro.go.kr)’에 접속하면 자신에게 맞는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검색하고 온라인 신청이 가능하며 복지위기알림, 복지소식 등을 받을 수 있다. 온라인 신청의 경우 기초연금부터 교육급여, 에너지바우처까지 단 한 번의 로그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 화면 안내만 따라가면 복잡한 신청 절차를 쉽게 할 수 있어 이용자 편의가 크게 높아졌다.10일 한국사회보장정보원에 따르면 복지로를 통해 행정복지센터(주민센터)를 방문하지 않고 온라인 신청이 가능한 서비스는 지난달 기준 54종이다. 정보원 관계자는 “국민이 처한 생활 여건에 따라 세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고 필요 서비스 접근성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서비스를 신청하려면 복지로 홈페이지 화면 우측 상단 로그인 버튼을 클릭하고 간편인증, 공동인증서, 금융인증서 중 하나로 접속할 수 있다. 상단 메뉴에서 ‘복지서비스, 서비스 찾기, 서비스 목록’을 선택한 뒤 원하는 조건을 설정하고 검색 버튼을 누르면 서비스 목록이 조회된다.만약 기초연금을 수령을 원한다면 검색결과 중 기초연금 선택하고 ‘자세히 보기’ 화면으로 이동하면 된다. 복지서비스 상세 화면의 ‘지원대상, 서비스 내용, 신청방법, 추가정보’를 확인한 뒤 수혜대상에 해당되는지 확인하려면 ‘모의계산’을 클릭해 기본 정보, 소득 정보, 재산 정보를 입력하고 예상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모의계산은 참고용으로 실제 심사 결과와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다시 복지서비스 상세 화면으로 돌아와 신청하기를 클릭하면 온라인 신청서 화면으로 이동한다. 화면 따라하기 사용자 매뉴얼을 내려받아 참고할 수 있다. 안내된 순서에 따라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제출하기를 누르면 신청 접수 완료 문자 메시지가 휴대전화로 전송된다. 신청서는 입력한 주소지 관할 주민센터로 전송된다. 신청서의 진행상태 등은 ‘복지지갑’의 ‘서비스 신청 현황’에서 확인할 수 있다.온라인 신청이 가능한 대표적인 분야는 교육이다. 보육료는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0~2세 아동을 대상으로 월 39만4000원부터 최대 월 54만 원까지 보육료를 국민행복카드로 지원하는 제도다.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 50% 이하 가구의 초중고교 자녀라면 교육급여로 최대 76만8000원을 받을 수 있다. 교육비 지원사업은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가족,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가구 자녀를 대상으로 고교 입학금과 수업료를 면제하고 방과후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이용권을 지급한다.냉난방을 위한 복지 서비스도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 에너지바우처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라 생계, 의료, 주거, 교육급여 수급 세대 중 노인, 영유아, 장애인,임산부 등이 포함된 가구가 대상이다. 도시가스, 등유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전자바우처를 지원한다. 가구당 평균 지원금액은 36만7000원이다.매년 2월에는 보육료, 양육수당, 유아학비지원 신청이 몰린다. 초중고교육비지원·교육급여는 3월, 청년내일저축계좌 5월, 에너지바우처 6월에 지원자가 몰린다. 기초연금·산모신생아건강관리지원은 상시 접수를 받는다. 에너지바우처는 통상 6~12월 신청한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2005년 첫 개설돼 올해 20년째를 맞은 복지 포털 ‘복지로’는 방문자가 꾸준히 늘며 지난해에만 2700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이 운영하는 ‘복지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제공하는 5280종의 복지 서비스 정보를 한 번에 안내한다. 검색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복지 서비스를 찾아볼 수 있으며 온라인으로 각종 급여를 신청할 수 있게 해 행정복지센터(주민센터)를 방문하지 않아도 된다.● 5300여 종 복지서비스 한곳에서 8일 한국사회보장정보원에 따르면 복지로는 이달 1일 기준 정부 369종, 지자체 4575종, 공공기관 336종 등 5280종의 복지 서비스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2005년 8월 ‘국가복지정보 포털’로 출발해 2010년 12월 ‘복지로’로 개편했다. 2021년 9월에는 본인인증을 간소화하고 복지멤버십, 복지지갑 등의 서비스를 도입했다.방문자는 2012년 388만 명에 그쳤지만 지난해 2715만 명으로 늘었다. 복지급여 온라인 신청은 2023년 월평균 9만8000건에서 올해 10월 13만3000건으로 늘었다. 서비스 규모도 확장되고 있다. 온라인 신청이 가능한 서비스는 2023년 49종, 지난해 50종이었고 올해 보육료, 주거급여 등이 추가돼 54종으로 늘었다. 복지 급여계좌를 바꾸거나 장애인 복지카드를 재발급받는 등의 서비스도 온라인 신청이 가능하다. 그동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은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따로 운영해 정작 어떤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고 싶어도 자신이 실제 대상인지 잘 몰라 이른바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사례도 있었다.복지로는 지원 대상, 선정 기준, 지원 내용, 신청 방법 등 표준화된 형식으로 복지 서비스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생애주기별, 가구 상황별, 관심 주제별로 분류해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검색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하지 않고 복지로에서 온라인 신청할 수 있는 서비스는 지난달 기준 54종이다. 임신과 출산(4종), 영유아(7종), 아동과 청소년(9종), 청년(4종), 노년(2종) 등으로 생애에 따라 필요한 지원을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 저소득층은 주거급여, 에너지바우처 등을, 장애인은 장애인 연금, 장애 수당 등을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 65세 이상은 기초연금이나 노인 맞춤 돌봄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 저소득, 한부모 등 상황에 따라 세분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다. 지난해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은 258만 명으로 총인구 대비 비중이 2015년 3.4%에서 2024년 5%로 상승했다. 복지로는 다문화가족, 임신·출산 등 63개 서비스를 영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태국어, 크메르어로 제공하고 있다.● 서비스 자동 추천하는 ‘복지멤버십’ 개인이 어떤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도 분석한다. 복지멤버십은 복지제도를 일일이 찾아보지 않아도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자동으로 추천하는 맞춤형 안내 기능이다. 신청인이 정보 제공 등에 동의하면 소득, 재산, 가구원 정보 등을 바탕으로 지원 가능성이 높은 복지 서비스를 분석해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나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안내한다. 기초연금, 교육비 지원, 청년 지원 등 복잡하게 흩어진 정보를 가입만으로 받을 수 있다. 어떤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을지 미리 계산해 주는 시스템도 마련됐다. ‘모의계산’ 기능을 이용하면 기초연금 등 10종의 복지서비스별 수혜 대상 여부를 자가 진단할 수 있다. ‘복지지갑’을 통해 개인별 복지수급과 서비스 신청 여부 등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본인이나 이웃의 필요한 사연을 작성하면 행정복지센터, 보건복지상담센터 등을 연결해 지원하는 ‘복지위기 알림’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김현준 한국사회보장정보원 원장은 “개인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복지 서비스에 연결고리를 제공해 주는 것은 국민 안전에도 도움이 된다”며 “안전망을 겹겹이 만들어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겠다”고 말했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인플루엔자(독감) 환자 수가 6주 만에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가 폭은 다소 줄어든 추세지만 환자 수는 유행 기준의 7.6배로 여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수준이다. 5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48주 차(11월 23~29일) 300개 의원급 표본감시 의료기관 외래환자 1000명당 독감 증상을 보인 의심 환자는 69.4명으로 직전 주(70.9명)보다 2.1% 줄었다. 42주 차 7.9명, 44주 차 22.8명, 46주 차 66.3명으로 증가세를 이어오던 독감 의심 환자 수는 6주 만에 감소세를 보였다. 유행을 주도하던 초등학생 연령대에서 환자 수가 줄어든 것이 주요 원인으로 풀이된다. 7~12세 초등학생 연령대는 48주 차 기준 175.9명으로 47주 차(189명) 대비 환자 수가 감소했다. 다만 중학생~고등학생 연령대인 13~18세의 경우 47주 차 130.7명에서 48주 차 137.7명으로 의심 환자 수가 증가했다. 독감은 아직 중장년층까지 크게 확산하지 않고 있다. 50~64세의 경우 47주 18.5명에서 48주 19.8명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65세 이상은 47주 12.9명에서 48주 11.9명으로 감소했다. 현재 유행 중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A형(H3N2)으로 분석된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검출률은 48주 43.1%로 전주 45%보다 1.9%포인트 감소했다. 다만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검출률 5.1%의 8배 수준이었다. 병원급 기관 인플루엔자 입원환자는 48주 705명으로 전주 대비 16.9% 증가했다. 반면 병원급 기관 코로나19 입원환자는 45주 153명, 46주 145명, 47주 135명, 48주 138명 등을 기록했다. 상급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의 입원 환자 수는 최근 4주간 10명 내외를 기록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65세 이상 어르신과 어린이, 임신부를 대상으로 지난 9월 22일부터 국가 예방접종을 시행하고 있다. 있지만,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지난달 22일 예방접종에 참여하며 “고위험군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한 입원, 중증화 및 사망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는 예방접종을 서둘러 받아달라”고 말했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대학입시에서 ‘지역의사 선발 전형’으로 의대에 합격해 의사 면허를 딴 뒤 지역에서 10년간 의무 근무하도록 하는 지역의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의료법 개정안도 통과해 비대면 진료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날 국회를 통과한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지역의사법)’은 지역·필수의료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추진됐다. 지역의사제는 ‘복무형’과 ‘계약형’으로 나뉜다. 복무형은 대입에서 ‘지역의사 선발 전형’으로 뽑힌 의대생들이 졸업 후 10년간 해당 지역에서 의무복무하는 제도다. 국가, 지방자치단체에서 등록금, 교재비, 기숙사비 등을 지원받는다. 복무형 지역의사로 선발된 이들이 제적, 자퇴, 3년 내 국가시험(국시) 불합격, 의무복무 불이행 등을 하면 받은 학비를 반환해야 한다. 지역 의무복무 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시도지사가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의사 면허가 정지된다. 계약형 지역의사는 기존 전문의 중 특정 지역에서 5∼10년 종사하기로 국가·지자체, 병원과 계약하는 의사다. 이들은 주거 및 직무교육 지원, 해당 지역 내 의료기관 우선 채용 등의 혜택을 받는다. 지역의사전형의 시행 시기는 법안에 정해 두지 않았다. 모집 규모는 2027학년도 의대 정원이 나오면 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복지부는 “법률안 제정을 계기로 의료인력이 지역에서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양한 지원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면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지역의사 전형을 통해 선발된 인원이 현장에 배치되기까지 최소 10년이 소요되는데, 지역의료 공백을 메우는 데 실효성이 있을지 우려된다”고 반발했다. 비대면 진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부터 6년가량 시범사업으로 운영됐던 제도다. 의료법 개정안에 따라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되 △대면 진료 우선 △의원급 의료기관 및 재진환자 중심 △비대면진료 전담기관 금지 등 원칙을 적용했다. 환자 안전성을 위해 비대면진료를 통해 마약류 등의 의약품은 처방할 수 없도록 했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대학 입시에서 ‘지역의사 선발 전형’으로 합격하면 의사 면허를 딴 뒤 해당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비대면진료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개정안,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안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는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지역의사법)’을 합의 처리했다. 법안에 따르면 지역의사제는 복무형과 계약형으로 나뉜다. 복무형은 지역의사 선발 전형으로 뽑힌 의대생들이 졸업 후 10년간 특정 지역에서 의무복무하는 제도다. 계약형 지역의사는 기존 전문의 중 특정 지역에서 5∼10년 종사하기로 국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과 계약한 의사들이다. 복무형 지역의사는 국가나 지자체로부터 입학금과 수업료, 교재비, 기숙사비 등을 지원받는 데 제적이나 자퇴, 3년 이내 국시에 합격하지 못하거나 의무복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는 학비 등을 반환해야 한다. 보건복지부 장관 또는 시도지사는 지역 의사가 의무복무 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복지부 장관이 면허 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다. 복무형 지역의사의 모집 규모는 2027학년도 의대 정원의 윤곽이 나오면 확정될 전망이다.복지부는 “이번 법률안 제정을 계기로 의료인력이 지역에서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양한 지원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대면 진료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의료법 개정안’도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에는 △대면진료 우선 △의원급 의료기관 및 재진환자 중심 △비대면진료 전담기관 금지 등의 원칙이 적용됐다. 환자 안전성을 위해 비대면진료로 마약류 등의 의약품은 처방할 수 없도록 규정됐다. 비대면진료 환자에게 배달하는 약은 섬·벽지 거주자, 장기요양 수급자, 등록 장애인, 1∼2급 감염병 확진자, 희귀질환자 등에 한해 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지역 내에서 배송이 허용한다. 이날 전공의의 연속 수련시간 상한을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도 통과됐다. 전공의의 휴게, 휴일 연장 및 야간 근로 등의 조건을 근로기준법에 따르도록 한 내용이 골자다. 의료사고·의료분쟁 발생 시 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수련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논의가 제도 변화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합성 니코틴을 포함한 액상형 전자담배를 ‘담배’로 규제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도 이날 국회 문턱을 넘었다. 개정안은 담배 정의를 현재 ‘연초의 잎’을 원료로 제조한 것에서 ‘연초 및 니코틴’을 원료로 하는 제품으로 확대해 합성니코틴 전자담배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환자를 보고 있는 동안에는 돈을 생각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30일 제5회 김우중의료인상을 수상한 최명석 전남 신안군 비금도 신안대우병원장(64)은 평소 어떤 마음으로 환자를 진료하는지 묻자 이같이 답했다. 최 원장은 2008년 신안대우병원을 인수해 비금도와 인연을 맺은 뒤 이후 18년째 2주에 한 번만 육지에 나간다. 의료 취약지인 지역 주민들의 주치의 역할을 전담하고 있다. 최 원장이 비금도에서 진료를 시작할 당시엔 야간 응급환자가 낚싯배를 타고 육지로 가야 했다. 이런 상황을 경험하면서 최 원장은 닥터헬기 등 응급환자 이송 체계 도입을 제안했다. 신안대우병원 응급실은 2010년 신안군 유일 지역 응급 의료기관으로 지정됐다. 최 원장은 “내가 여기서 나가면 병원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진료를 그만두더라도 이 병원이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함께 상을 받은 위상양 전 장수군 보건의료원장(82)은 20년간 네 차례 보건의료원장을 맡으며 환자들을 돌봤다. 1971년 무의촌 근무로 장수군 보건소와 처음 연을 맺은 뒤 전북 전주시에서 18년간 개인 의원을 운영했다. 이후 지자체 요청으로 6년간 임실군 보건의료원 원장을, 14년간 세 차례 장수군보건의료원 원장을 맡았다. 위 원장은 “환자들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락이 와 휴대전화를 24시간 꺼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환자 곁에 있는 걸 큰 영광으로 생각하겠다”고 말했다.전진동 미즈메디병원 진료부장(53)은 20년간 분만 1만여 건을 집도하며 산모와 태아의 안전을 지킨 공로로 수상자로 선정됐다. 의료봉사상은 2019년부터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라스데스타병원에 상주하며 현지 의료진에게 백내장 수술을 전수하고 있는 윤창균 KOICA 글로벌협력의사(48), 17년째 부산 무료 진료소 ‘도로시의 집’에서 이주노동자와 소외된 이들을 진료하는 박재용 페리오치과의원장(58)이 선정됐다. 이형심 진도군 광석보건진료소장(54), 대한여성치과의사회도 함께 봉사상을 받았다. 김우중의료인상은 의료 사각지대에서 헌신하는 의료인을 지원하기 위해 2021년 대우재단이 제정했다. 대우재단은 1978년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사재로 세운 재단이다. 시상식은 9일 연세대 백양누리에서 열린다. 김선협 대우재단 이사장은 “올해는 특히 인구가 감소한 의료 취약지와 섬처럼 고립돼 가고 있는 필수 의료 부문을 눈여겨 살폈다”고 말했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지역 필수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7월 시작된 계약형 지역필수 의사제가 모집 정원 96명 중 81명을 채운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필수 의사제는 지방의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가 지역에 장기 근무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근무수당과 주거 등 정주 여건을 지원하는 제도다. 3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강원, 경남, 전남, 제주 등 4개 지역에서 진행 중인 지역필수의사제 시범사업에 지원한 전문의는 81명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 강원은 24명으로 정원을 100% 채웠고 경남 22명, 전남 19명, 제주 16명 등이었다. 과목별로는 내과 34명, 응급의학과 14명, 외과 9명, 소아청소년과 6명, 신경외과 6명, 심장혈관흉부외과 4명, 신경과 3명, 산부인과 2명 등이었다. 계약형 지역필수 의사제 시범사업은 종합병원급 이상 병원과 5년가량 장기 근무를 계약한 5년 차 이내 필수의료 전문의에게 정부가 월 400만 원 수당을 추가로 지급한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정착 비용 등을 지원하고, 지역 여건에 맞게 지역필수의사가 근무할 의료기관을 선정한다. 정부는 계약형 지역필수 의사제와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지역 의사제를 병행할 계획이다. 지역 의사제는 의대 신입생 중 일부를 지역의사선발 전형으로 선발한 뒤 10년 동안 지역에서 의무 복무하게 하는 제도다. 관련 법안은 연내 국회 본회의 의결을 남겨 두고 있다.박경민 기자 me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