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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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6-02-27~202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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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나라 황제 황룡포는…

    청나라 황제가 입었던 황룡포(黃龍袍·사진)는 아홉 마리의 누런 용 문양이 화려하다. 그 사이에는 박쥐와 구름을 수놓았고, 하단에는 파도와 절벽 문양이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11일부터 개최하는 특별전 ‘청 황실의 아침, 심양 고궁’에 나오는 전시품이다. 중국 랴오닝성에 있는 심양(瀋陽·선양)은 1625년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요양(遼陽·랴오양)에서 이곳으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청나라의 첫 번째 수도가 됐다. 청나라가 1644년 산해관 전투에서 승리하고 베이징으로 천도한 뒤에도 제2의 수도 역할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심양 고궁의 박물관이 간직해 온 청 황실의 유물 120건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국보에 해당하는 중국의 ‘국가1급 문물’도 13점이 나온다. 청 태종 홍타이지가 실제 전쟁터에서 썼던 칼도 있다. 날카로운 칼끝과 붉은빛이 선명한 칼날 양 측면의 홈(血漕·혈조)이 여전히 섬뜩한 느낌을 준다. 청대 초기 팔기 관병이 변방을 수호할 때 신호를 전달하는 목적으로 쓴 운판(雲板·1623년 제작)에는 나라명 ‘대금(大金·후금)’과 연호 천명(天命)이 기록돼 있다. 청 태조 누르하치가 세상을 뜬 후 봉안한 시보(諡寶·시호를 새긴 인장)의 손잡이는 웅크린 용 모양이 생동감 있다. 이번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 열린다. 무료.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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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 때 쓴 ‘94자 토지문서 목간’ 나왔다

    6세기 신라의 토지관리 문서로 추정되는 목간이 출토됐다. 문화재청은 경북 경산시 와촌면 소월리 유적에서 94자가 쓰여 있는 목간(사진)이 출토됐다고 9일 밝혔다. 이 목간은 같은 장소에서 발굴돼 최근 공개된 사람 얼굴 모양의 토기 아래에서 나왔다. 목간은 길이 약 74.2cm로, 굽은 나무의 표면을 다듬어 만든 6면에 걸쳐 글자가 씌어 있다. 목간에는 우리나라 고유 한자로 논을 의미하는 ‘답(畓)’이 들어 있다. 또 조세 부과를 위한 토지 면적 단위는 ‘결(結)’이나 ‘부(負)’를 쓴 것으로 확인됐다. 기존에는 결, 부가 삼국통일을 이룩한 7세기 이후 사용한 용어로 여겨졌지만, 이번에 발견된 목간을 통해 6세기부터 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목간에 등장한 ‘곡(谷)’, ‘제(堤)’자도 주목된다. ‘곡’은 골짜기에 사는 일정한 집단이 있었다는 것을, ‘제’는 둑이 조세 부과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문화재청은 “서체나 내용으로 보아 경산 인근 지역의 토지 현황을 기록한 목간일 가능성이 크다”며 “목간을 통해 골짜기와 둑을 중심으로 한 당시 지방 촌락의 입지, 농업 생산력 증대를 위해 축조한 제방과 주변에 자리한 논의 존재, 조세를 수취하는 중앙정부의 지배 양상 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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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지마 톤즈!” 아프리카 오지서 빛이 된 이태석 신부

    “내가 봤던 곳 중에 거기가 제일 가난했어.” 장래가 보장된 의사의 길을 버리고 아프리카의 오지 남수단 톤즈에 선교 사제로 부임해 학교와 병원을 세우는 등 헌신적으로 활동한 고(故) 이태석 신부(1962∼2010). 그는 함께 사제의 길을 걷던 후배 김상윤 신부(살레시오회 청소년사목위원장)가 “왜 톤즈를 택했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의사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몸은 살피지 못하고 2010년 1월 14일 선종한 이 신부의 10주기(내년 1월 14일)를 한 달여 앞두고, 이 신부가 몸담았던 살레시오회가 10주기 행사를 소개하는 간담회를 9일 서울 영등포구 살레시오회빌딩에서 열었다. 이날 김 신부를 비롯해 이 신부와 교분을 나눴던 이들이 지난 기억을 회고했다. 김 신부에 따르면 이 신부는 부제품을 받기 전인 1999년 케냐로 선교하러 갔다가 톤즈에서 사목활동을 하던 제임스 신부를 만났다. 해외 선교를 지망하는 이 신부가 케냐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제임스 신부가 찾아온 것. 그를 따라 톤즈에 간 이 신부는 “상상을 뛰어넘는 가난을 목도하고 톤즈에서 지내는 일주일 동안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톤즈에 가겠다고 결심했다. 김 신부는 “왜 의대를 졸업하고 신부가 됐는지 물었더니, 이 신부는 ‘나는 돌을 들고 있는데, 다이아몬드가 보이면 돌을 버려야 하지 않겠니’라고 답했다”며 “사제의 길과, 청소년을 이끄는 일을 다이아몬드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살레시오회는 청소년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한 수도회다. 이 신부와 살레시오회 동기로 친구인 백광현 신부(살레시오회 부관구장)는 “이 신부는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며 “이탈리아 로마 유학 시절 내게 사진을 보여줬는데, 광대 옷을 입고 아이들하고 어울리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이 신부가 초청해 한국에 유학 온 톤즈의 청소년 2명은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했고, 수련을 더 한 뒤 남수단에 돌아가 이 신부가 했던 의료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다. 뒤에 유학 온 1명은 한국에서 토목공학을 공부하고, 인프라가 부족한 남수단에서 토목기사로 일하고 있다. ‘이태석위원회’(위원장 유명일 신부)는 ‘이태석 기념관’이 이 신부의 기일에 부산 서구 톤즈문화공원 내에 개관한다고 밝혔다. 추모미사는 다음 달 12일 광주 살레시오중고교 성당에서 열린다. 이 신부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 ‘울지마 톤즈2’는 다음 달 9일 개봉한다. 이 신부의 전기와 다큐멘터리 영화도 내년 말 선보일 예정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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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석기 보물창고 수양개 유적, 박물관으로 관리를”

    “전날 밤새 비가 와 불어난 강을 건너자고 하니 뱃사공이 ‘죽으려고 작정했느냐’고 하더군요. 그렇게 건너간 고추밭에 까만 돌들이 보이는데, 죄다 석기였습니다. 그렇게 찾은 수양개 유적이 저에게는 평생의 과제가 됐네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수양개와 그 이웃들’ 국제학술회의에서 만난 이융조 충북대 명예교수(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78·사진)는 유적을 발견하던 1980년 7월 21일을 어제처럼 떠올렸다. 수양개에서는 7만 여 점의 구석기가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많은 유물은 아시아에서도 ‘톱클래스’”라고 했다. 1996부터 해마다 개최한 ‘수양개와 그 이웃들’ 국제학술회의는 올해 24회를 맞았다. 그동안 16번은 중국 미국 일본 폴란드 러시아 이스라엘 말레이시아 등에서 열었다. 해외 10개국 학자들이 학술회의 집행위원회를 함께 구성하고 있다. 한국의 구석기 유적을 소재로 해마다 국제학술회의가 열리는 건 그만큼 연구할 내용이 많다는 뜻이다. 이번에 함께 열린 베이징원인 두개골 발굴 90주년 기념 국제 고인류학 학술회의의 대회 주제발표 12개 가운데 2개가 수양개를 주제로 한 것이었다. 이 교수는 “단양의 수양개 유물 전시관에 박물관 체제를 갖추고 연구원을 보완해 세계인들이 찾는 구석기 연구 중심센터로 만들어야 한다”며 “내년 한국에서 여는 25회 학술회의를 철저히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베이징=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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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양개 유물 슴베찌르개는 4만1000년전 것… 아시아 最古”

    충북 단양 수양개 유적에서 2015년 출토된 슴베찌르개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약 4만1000년 전의 것으로 새로 밝혀졌다. 또 후기 구석기시대 초기인 이 출토층에서 주로 후대에 출토되는 소형 돌날과 몸돌 역시 발견됐다. 인근 동굴에서 나온 사람 뼈의 연대 역시 비슷한 시기로 분석돼 수양개 일대가 한반도에서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등장을 보여주는 곳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오타니 가오루 한국선사문화연구원(원장 우종윤) 연구원은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24회 ‘수양개와 그 이웃들’ 국제학술회의에서 “분석 결과 수양개 6지구 4문화층에서 출토된 슴베찌르개가 약 4만1800∼4만1200년 전의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는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연대가 오래된 것으로 한국 슴베찌르개 문화가 후기 구석기시대 초기에 이미 성립했음을 보여준다”고 발표했다. 슴베찌르개는 돌날의 한쪽을 나무나 동물 뼈로 만든 자루에 끼울 수 있게 다듬어 슴베를 만든 석기다. 창촉처럼 동물을 사냥하는 데 썼다. 슴베가 있는 석기는 일본 규슈 지역을 빼면 아시아에서도 주로 한반도에서 등장하는 특징적인 석기다. 수양개 유적은 1980년 충북대 박물관 이융조 교수팀이 이끄는 발굴단이 처음 발견해 연구해왔으며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2015년 13번째 발굴 조사를 진행해 지난해 보고서를 냈다. 또 수양개 유적의 같은 문화층에서는 소형 돌날과 몸돌 역시 다수 출토했다. 돌날은 후기 구석기의 특징적인 문화로 후대로 오면 작고 정교한 좀돌날이 등장한다. 한데 대형 돌날과 좀돌날의 중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소형 돌날이 수양개에서는 이미 약 4만 년 전 문화층에서 등장한 것이다. 오타니 연구원은 “이후 등장하는 좀돌날과 유사한 떼기 기술이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며 “소형 돌날 제작 기술이 후대의 좀돌날 제작 기술로 계승 발전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고 밝혔다. 수양개 6지구 4문화층에서 나온 슴베찌르개, 돌날 석기군의 양상은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확인되지 않은 후기 구석기문화 초기 출현기의 성격을 뚜렷하게 제시해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후기 구석기시대의 석기군이 이처럼 층위를 이뤄 집중 출토돼 석기 제작 기술을 단계적으로 밝힐 수 있는 건 한반도 내에서도 수양개 유적이 거의 유일하다. 한편 김주용 박사(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는 이 학술회의에서 수양개에서 직선거리로 약 9km 떨어진 구낭굴에서 출토된 인골의 연대가 약 4만4900∼4만900년 전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수양개 6지구 4문화층과 시기적으로도 일부 겹친다. 인골과 함께 출토된 사슴 뼈의 방사성 탄소연대를 측정하고 지층의 층위와 종합한 결과다. 김 박사는 “구낭굴 유적은 구석기인들이 강과 동굴을 동시에 생활영역으로 삼았음을 보여준다”며 “구낭굴에 살던 사람들이 수양개에 석기를 남긴 이들과 생활영역을 공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아코시마 가오루 일본 도호쿠대 교수는 수양개 출토 슴베찌르개의 날을 현미경으로 분석한 결과 “무언가를 자를 때 사용한 흔적이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슴베찌르개를 던져 동물을 사냥한 것 뿐 아니라 다양하게 활용했다는 얘기다. 이번 학술대회는 베이징원인 두개골 발굴 90주년을 기념해 ‘중국과학원 고척추동물과 고인류연구소’가 개최한 국제 고인류학 학술대회와 함께 열렸다.베이징=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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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우규 의사 조사 지켜본 日紙 “노인 맞나”

    “폭탄 범인 강우규는 검사국으로 호송된 후 종로경찰서 미결감에 들어가 있는데 옥중에서는 매우 유순했다. 검사국에서 조사를 받을 때에는 뭔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이 있으면 홍연대소하고 시사를 말함에 이르러서는 거만한 태도가 되어 지사(志士)인 양 탁자를 두드리며 이야기하는 광경이 노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3·1운동 뒤인 1919년 9월 2일 새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 조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1855∼1920·사진). 그의 조사 과정을 묘사한 일본 오사카 아사히신문의 그해 10월 7일자 기사다. 기사는 “만일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입을 꽉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아 일반 범인과 분위기가 사뭇 달라 조사가 어려웠다”고 전했다. 일본 신문임에도 기사 행간에서 강 의사의 의기와 강단을 느낄 수 있다.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회장 장원호)는 강 의사의 순국 99주기인 29일 서울 종로구 이북5도청에서 의거 100주년 기념학술회의 ‘강우규 의거의 역사적 위상과 성격’을 개최한다. 김형목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은 발표문에서 오사카 아사히신문을 중심으로 강우규 의거에 대한 일본 언론 보도를 살폈다. 김 연구위원은 “강 의사는 사람이 견디기 힘든 고문을 당했고, 일본 언론은 독립운동을 폄하하며 강 의사를 현실에 불만을 품은 과격파나 ‘무뢰한’으로 매도했다”고 밝혔다. 민중들이 강우규 의거를 얼마나 통쾌히 여겼는지는 당시 일제 측 조사 자료에서도 알 수 있다.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발표문 ‘강우규 의사의 민족운동’에서 1919년 10월 21일 평안북도 지사가 보고한 ‘폭탄 범인 강우규에 대한 감상’의 한 단락을 소개했다. “평안북도 철산군 지방에서의 유식계급자 간에 범인 강우규는 … 나이 60을 넘은 노구를 이끌고 멀리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경성에 잠입하여 … 그 용맹은 장자(壯者)를 능가하며 오인(吾人) 조선민족이 참으로 흔쾌하게 여기는바, 가령 극형에 처해져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지라도 그 위훈(偉勳)은 조선민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길이, 비사(秘史)상의 일(一) 미담으로서 전해질 것이라고 이를 상양(上揚·치켜올림)함과 같은 언동을 하는 자가 있다.” 박 교수는 “강우규 의거는 그 후 국내외 민족운동의 큰 기폭제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학술회에서는 김중위 기념사업회 고문(전 국회의원)이 기조강연을 하고, ‘강우규 평전’의 저자인 은예린 씨와 한동민 수원박물관장이 토론자로 나선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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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구 연설… 통금 사이렌… 역사를 듣다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고등학교 데모대는 지금 마산시청 앞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1960년 4·19혁명 당시 3월 15일 마산 시위대가 부르는 애국가와 부산MBC 라디오의 뉴스 중계 음원 가운데 일부다. 최근 발견된 자료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내년 3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여는 특별전 ‘소리, 역사를 담다’에서 들을 수 있다. ‘소리…’ 전시는 청각으로 근현대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1969년 한국을 찾은 영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공연 실황에서는 “두 유 싱 인 잉글리시(여러분들 영어로 노래해요)?”라고 묻자 “예!” 하는 관중의 함성이 생생하다. 일제강점기 조선어독본의 낭독 음원에서는 1930년대의 ‘표준 한국어 발음’을 들을 수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고 조선에 돌아온 직후, 강요된 원고 낭독을 주저하는 손기정 선수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 밖에도 해방 공간에서 남긴 독립운동가 김구 조소앙 서재필 선생의 육성, 1969년 반공웅변대회에서 초등학생이 남긴 음원, 1983년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음원 등을 들을 수 있다. 국민체조 음악, 통금 사이렌, 국기 하강식 시보 등 지난날 일상의 소리도 있다. 1959년 출시한 국산 1호 라디오 ‘A-501’, 1966∼68년 생산한 국내 최초의 흑백 텔레비전, 1940년대 단파 라디오 수신기 등 160여 점의 자료도 전시된다. 노선희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 변화 과정에서 나온 소리, 시대를 반영하는 대중매체의 소리, 주요 인물의 목소리 등을 통해 근현대사의 주요 순간을 새롭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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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제품 구입해 뚝딱뚝딱… ‘만드는 손맛’은 변함없어요”

    《손수 무언가를 만드는 뿌듯함을 어디 비할까. 제품을 직접 만들어 쓰며 생산자로 변하는 소비자들이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손수 하기에는 힘든 일이 많다. 어느 정도 손질된 재료나 ‘반(半)제품’을 활용해 수고는 최소화하고 만드는 기쁨은 최대한 누리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중간부터’ 만드는 셈이다.》  2년 전부터 취미로 전통 목공을 배우는 김상진 씨(58)는 식탁, 사방탁자(사방이 트이고 여러 층으로 된 전통 탁자), 의자, 휴대전화 거치대, 좌탁(坐卓) 등 웬만한 목조 가구를 만들었다. 초심자 시절부터 지금까지 난관은 단연 나무를 정확히 재단하는 것. 마름질이 잘못되면 ‘짜맞춤’(못을 쓰지 않고 목재를 연결)을 하는 건 바라기 어렵다. 그래서 재료는 마름질한 채로 공방 ‘난가소목’(경기 과천시)에서 받는다고 한다. 난가소목의 정종상 소목장(51)은 “개인이 기계톱을 갖고 있기는 어려우니,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기까지는 다듬은 재료를 활용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했다. 요즘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클릭 몇 번 하면 원하는 치수에 맞춰 재단한 목재를 배달해주기도 한다. 역시 목재로 쓰레기통, 수납장 등을 만들어 쓰는 송인석 씨(40)는 “원목부터 손질하면 가장 좋겠지만 다듬어진 목재로 만들어도 내 손으로 가구를 만들었다는 기쁨은 별 차이가 없다”고 했다. 다듬어진 재료나 반제품 시장은 자수, 액세서리, 인테리어 소품, 옷, 데스크톱 컴퓨터 등 생활용품 전반에서 형성돼 있다. 만드는 ‘손맛’을 알게 되면 기성품의 품질을 뛰어넘는 심오한 세계에 들어서기도 한다. 약 10년 전부터 취미로 천체망원경을 만들고 있는 한승환 씨(44)가 그런 경우다. 한 씨는 해외에서 렌즈용 특수 유리를 구입해 반사망원경의 핵심 부품인 반사경을 20nm(나노미터) 단위의 정밀도를 얻을 때까지 손수 오목하게 깎는다. 최대 직경 355mm(약 14인치)의 반사경을 만들고 경통 등 다른 부속을 결합하는데, 초점 조절 장비는 기성품을 쓰고, 망원경 앞뒤를 막는 금속 부품은 온라인으로 도면을 보내면 배달해준다. 이렇게 만든 망원경은 보급형보다 정밀도가 높고, 행성 사진을 고배율로 촬영할 수 있다. 한 씨는 “상상하던 망원경을 정성 들여 현실로 만들면 희열과 성취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마저도 귀찮은 소비자를 위해 80∼90% 완성된 제품에 약간의 수고만 더하면 되는 제품 시장도 활짝 열리고 있다. ‘만드는’ 느낌만 주는 것이다. 워킹맘 이연서 씨(36)의 집에는 요즘 아침마다 갓 구운 빵의 향기가 피어오른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한 냉동생지(빵 반죽)를 에어프라이어로 굽는 냄새다. 빵 만들기를 좋아해 베이킹을 배우기도 했지만 시간을 내기 어렵던 차에 아쉬운 대로 ‘굽는다는 느낌’이라도 즐긴다는 것이다. 이 씨는 “잠잘 시간도 부족한데 어느 세월에 반죽을 하고 있겠나”라며 “특히 갓 구운 향과 바삭한 느낌이 중요한 크루아상의 만족도가 높다. 때로 반을 잘라 햄, 치즈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면 느낌만은 마치 처음부터 손수 빵을 만든 듯하다”고 했다. 냉동생지 소비가 늘자 대형마트의 상품 출시도 잇따르고 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집에서 간편히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가정간편식(HMR)의 매출이 올해 11월 20일까지 전년 동기보다 7.4% 늘었다. 호떡 등을 만드는 믹스 제품도 마찬가지다. 반제품 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배경에는 취미와 여가로 ‘DIY’를 즐기는 층의 확대와 불경기 속 ‘가성비’ 소비문화가 맞물려 있다. 한국소비자원장을 지낸 이승신 건국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교수는 “다듬은 재료나 반제품을 공급하는 틈새시장에서 다양한 창조적 스타트업 기업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인 이들을 위한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조종엽 jjj@donga.com·김기윤 기자}

    •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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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드는 기쁨을 아십니까…‘중간부터’ 만드는 사람들

    손수 무언가를 만드는 뿌듯함을 어디 비할까. 제품을 직접 만들어 쓰며 생산자로 변하는 소비자들이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손수 하기에는 힘든 일이 많다. 어느 정도 손질된 재료나 ‘반(半)제품’을 활용해 수고는 최소화하고 만드는 기쁨은 최대한 누리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중간부터’ 만드는 셈이다. 2년 전부터 취미로 전통 목공을 배우는 김상진 씨(58)는 식탁, 사방탁자(사방이 트이고 여러 층으로 된 전통 탁자), 의자, 휴대전화 거치대, 좌탁(坐卓) 등 웬만한 목조 가구를 만들었다. 초심자 시절부터 지금까지 난관은 단연 나무를 정확히 재단하는 것. 마름질이 잘못되면 ‘짜맞춤’(못을 쓰지 않고 목재를 연결)을 하는 건 바라기 어렵다. 그래서 재료는 마름질한 채로 공방 ‘난가소목’(경기 과천시)에서 받는다고 한다. 난가소목의 정종상 소목장(51)은 “개인이 기계톱을 갖고 있기는 어려우니,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기까지는 다듬은 재료를 활용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했다. 요즘에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클릭 몇 번 하면 원하는 치수에 맞춰 재단한 목재를 배달해주기도 한다. 역시 목재로 쓰레기통, 수납장 등을 만들어 쓰는 송인석 씨(40)는 “원목부터 손질하면 가장 좋겠지만 다듬어진 목재로 만들어도 내 손으로 가구를 만들었다는 기쁨은 별 차이가 없다”고 했다. 다듬어진 재료나 반(半)제품 시장은 자수, 액세서리, 인테리어 소품, 옷, 데스크톱 컴퓨터 등 생활용품 전반에서 형성돼 있다. 만드는 ‘손맛’을 알게 되면 기성품의 품질을 뛰어넘는 심오한 세계에 들어서기도 한다. 약 10년 전부터 취미로 천체망원경을 만드는 한승환 씨(44)가 그런 경우다. 한 씨는 해외에서 렌즈용 특수 유리를 구입해 반사망원경의 핵심 부품인 반사경을 20nm(나노미터) 단위의 정밀도를 얻을 때까지 손수 오목하게 깎는다. 최대 직경 355mm(약 14인치)의 반사경을 만들고 경통 등 다른 부속을 결합하는데, 초점 조절 장비는 기성품을 쓰고, 망원경 앞뒤를 막는 금속 부품은 온라인으로 도면을 보내면 배달해준다. 이렇게 만든 망원경은 보급형보다 정밀도가 높고, 행성 사진을 고배율로 촬영할 수 있다. 한 씨는 “상상하던 망원경을 정성 들여 현실로 만들면 희열과 성취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마저도 귀찮은 소비자를 위해서 80~90% 완성된 제품에 약간의 수고만 더하면 되는 제품 시장도 활짝 열리고 있다. ‘만드는’ 느낌만 주는 것이다. 워킹맘 이연서 씨(36)의 집에는 요즘 아침마다 갓 구운 빵의 향기가 피어오른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한 냉동생지를 에어 프라이어로 굽는 냄새다. 빵 만들기를 좋아해 베이킹을 배우기도 했지만 시간을 내기 어렵던 차에 아쉬운 대로 ‘굽는다는 느낌’이라도 즐긴다는 것이다. 이 씨는 “잠 잘 시간도 부족한데 어느 세월에 반죽을 하고 있겠나”라며 “특히 갓 구운 향과 바삭한 느낌이 중요한 크로아상의 만족도가 높다. 때로 반을 잘라 햄, 치즈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면 느낌만은 마치 처음부터 손수 빵을 만든 듯 하다”고 했다. 냉동생지 소비가 늘자 대형마트의 상품 출시도 잇따르고 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집에서 간편히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대체식품(HMR)의 매출이 올해 11월 20일까지 전년 동기 대비 7.4% 늘었다. 호떡 등을 만드는 믹스 제품도 마찬가지다. 반제품 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배경에는 취미와 여가로 ‘DIY’를 즐기는 층의 확대와 불경기 속 ‘가성비’ 소비문화가 맞물려 있다. 한국소비자원장을 지낸 이승신 건국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교수는 “다듬은 재료나 반제품을 공급하는 틈새시장에서 다양한 창조적 스타트업 기업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인 이들을 위한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1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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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인공지능 시대의 스마트팩토리 경영

    경영인을 위해 스마트팩토리(제품 생산의 전 과정을 무선통신으로 연결해 자동화한 공장)의 개념과 기술, 혜택과 구현 방법 등을 풀어 썼다. 공장 자동화와 스마트팩토리는 어떻게 다를까. 전자가 정해진 개념과 아이디어에 바탕을 두고 초기 설정값에 따라 동작한다면, 후자는 데이터와 인공지능(AI)에 바탕을 두고 실시간 데이터를 활용해 움직인다. 기존의 자동화는 미리 알고 있던 정보에 한정돼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이 정체하지만 스마트팩토리는 모르던 지식까지 새로 수용하기에 데이터가 쌓이면서 계속 발전한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포스코ICT와 KT의 사장을 지낸 전문경영인으로, 2014년 포스코ICT에서 얻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그는 “경영자는 첨단 기술에 매몰되지 말고, 어떤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에 집중하라”고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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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큐 ‘백년전쟁’ 방통위 제재 부당”… 7 대 6으로 1, 2심 뒤집은 대법원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조치는 부당하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2008년 방통위가 출범한 이래 방송의 객관성 공정성 등에 대한 방통위 제재의 적절성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단한 것은 처음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21일 백년전쟁을 방송한 시민방송(RTV)이 방통위를 상대로 낸 제재조치 명령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다수의견 7명(김명수 대법원장, 김재형 박정화 민유숙 김선수 노정희 김상환 대법관)은 이 다큐멘터리가 “공정성 객관성 균형성 유지 의무 및 사자 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은 “사실상 주류적인 지위를 점한 역사적 사실과 해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다양한 여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라며 “그 자체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고 했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묘사도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므로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반대의견 6명(조희대 권순일 박상옥 이기택 안철상 이동원 대법관)은 “방대한 자료 중 제작 의도에 부합하는 자료만 선별해 객관성을 상실했고, 제작 의도와 상반된 의견은 소개하지 않아 공정성 균형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저속하고 모욕적인 표현으로 사자 명예존중을 규정한 심의규정도 위반했다”고 밝혔다. 또 “다수의견을 따르면 편향된 일부 자료만을 근거로 특정 역사적 인물을 모욕·조롱하는 방송을 해도 ‘역사 다큐’ 형식만 취하면 아무런 제재조치를 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신철식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은 “일방적으로 건국 대통령을 폄하, 모욕하는 소설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만든 것을 방송해도 좋다는 결정은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2012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백년전쟁은 이 전 대통령 편인 ‘두 얼굴의 이승만’과 박 전 대통령 편인 ‘프레이저 보고서 제1부’ 등 두 편으로 이뤄졌다. 이 전 대통령은 사적인 권력욕을 채우려 독립운동을 했고, 박 전 대통령은 한국 경제성장의 업적을 자신의 것으로 가로챘다는 주장이 담겼다. 시민방송이 이 다큐를 55차례 방송하자 방통위는 2013년 8월 관계자 징계 및 경고 처분을 내렸다. 시민방송은 이에 불복해 방통위에 재심 청구를 했지만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1, 2심은 “특정 입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편집, 재구성해 사실을 오인하도록 조장했다”며 방통위 제재가 적법했다고 판단했다.이호재 hoho@donga.com·조종엽 기자}

    • 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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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항복 후손, 보물급 공신교서 중앙박물관 기증

    오성부원군 이항복(1556∼1618) 종가가 보물급 공신교서 등 유물 17점을 20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종가를 대표한 기증자는 15대 종손 이근형 씨(47)다. 박물관은 “호성공신(扈聖功臣·임진왜란 때 선조를 모시고 의주까지 호종한 공신) 1등 교서로는 유일한 것으로 보물급 문화재”라고 21일 밝혔다. 호성공신 교서는 이항복의 공적을 “대사마(大司馬·병조판서)에 발탁돼 홀로 수년간이나 그 책임을 맡고 있어서 사람들이 든든히 믿고 마음을 차츰 떨치게 하여 조정에서도 그에 의지하며 소중히 여겼다”고 적었다. 공신 책봉 시 하사한 초상화를 18세기에 베껴 그린 후모본(後模本) 이항복 초상화 2점, 이항복이 5세의 장손 이시중(1602∼1657)의 교육을 위해 1607년 손수 쓴 천자문도 기증했다. 이항복은 천자문에 “오십 먹은 노인이 땀을 닦고 고통을 참으며 쓴 것이니 함부로 다뤄서 이 노인의 뜻을 저버리지 말지어다”라고 적었다. 손으로 쓴 천자문 가운데 가장 시기가 이른 것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고 박물관은 설명했다. 후손들은 6·25전쟁 때도 유품을 지니고 피란을 다니며 지켰고, 평소 정기적으로 그림과 글씨를 햇볕과 바람에 말리며 보관에 힘썼다고 한다. 박물관은 기증 기념 전시를 2020년 3∼7월 상설전시실 서화관에서 연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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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주 고구려비, 광개토왕때 건립 가능성

    ‘중원 고구려비’로 알려진 국보 제205호 ‘충주 고구려비’(사진)에서 ‘영락칠년(永樂七年)’이라는 글자를 판독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락’은 광개토왕의 연호다. 이 판독이 옳다면 이 비가 또 다른 광개토왕비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고광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22일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고대사학회가 여는 ‘충주 고구려비 발견 4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이 같은 연구를 발표한다. 미리 공개한 발표문에서 고 연구위원은 “비석 정면 상단 부분에서 ‘영락칠년세재정유(永樂七年歲在丁酉)’라는 문구를 확인했다”며 “비석이 397년(영락칠년)이나 그와 멀지 않은 시점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연호와 간지를 기재한 방식이 광개토왕비에 나오는 ‘영락오년세재을미(永樂五年歲在乙未)’와 같다. 충주 고구려비는 마멸이 심해 읽어내기 힘든 글자가 많다. 모두 500여 자가 새겨진 것으로 보이지만 판독된 건 200여 자에 불과하다. 학계에서는 장수왕(재위 413∼491)이나 문자왕(재위 491∼519)대에 건립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 왔다. 고 연구위원은 고해상도 디지털 사진과 양질의 탁본, 3차원(3D) 스캐닝 데이터, RTI 촬영(다양한 각도에서 조명을 비춰 사진을 찍는 촬영기법) 자료를 확보해 글자를 종합 분석했다. 이번 분석을 통해 이 비석이 4면 모두에 글자가 새겨진 ‘4면비’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본문에서 ‘십이월이십삼(오)일갑인(十二月廿三(五)日甲寅)’으로 판독되던 부분은 ‘십이월이십칠일경인(十二月七日庚寅)’이라고 봤다. 397년 음력 12월 27일의 간지가 ‘경인’이다. 고 연구위원은 “이번 건립 연대 추정에 따라 충주 고구려비가 세워진 뒤 나중에 광개토대왕비가 세워졌다고 볼 수 있다”며 “충주 고구려비는 신라를 ‘형제’ 관계로 표현했고, 광개토왕비는 ‘속민’으로 표현한 것에서 정치적 관계의 변동을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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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송의 문화보국정신, 이젠 국민에게 적극 보여드릴 때”

    간송미술관의 현대식 수장고(가칭 ‘훈민정음 수장고’) 신축에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44억여 원을 투입한다는 소식이 지난달 전해졌다. 앞뒤 다 잘라 놓고 보면 사립미술관에 이 정도 규모의 지원을 하는 건 특혜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의를 찾기 어려운 건 약관을 갓 지난 나이에 조선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부(富)를 물려받아 민족문화유산의 보존에 털어 넣은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의 정신이 지금도 간송 가(家)에 이어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팔아서 사익을 챙길 수도 없는 보물창고의 문지기랄까. 지난해 별세한 전성우 전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의 아들인 ‘간송 3대’ 전인건 간송미술관장(48)을 18일 서울 송파구 보성고에서 만났다. ―2014년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연 전시가 올해 초 끝났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5년 동안 58만9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아 주셨다. ‘간송문화전’ 시리즈는 고미술 전시로는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다. 미디어나 현대미술과 고미술의 협업도 DDP에서만 가능했던 새로운 시도였다고 본다.” 간송미술관은 오랫동안 법적 지위가 없는 ‘임의단체’였다. ‘박물관미술관법’에 따라 미술관으로 등록하려면 1년에 300일 이상 일반 공개해야 했는데(현재는 90일 이상) 이를 충족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간송 가는 2013년 간송미술문화재단을 설립한 데 이어 지난달 미술관의 법적 등록을 마쳤다. 간송이 1938년 보화각을 세웠고 ‘간송 2대’인 전성우 전 이사장과 전영우 현 이사장이 1966년 한국민족미술연구소와 1971년 간송미술관을 출범시킨 데 이어 약 50년 만에 다시 일대 전기를 맞은 것이다. 전 관장은 “미술관은 출범 이후 연구와 교육, 그리고 보존을 중심으로 운영해 왔지만 앞으로는 수장고 공사를 마치는 대로 법에 따라 봄, 가을에 적어도 한 달 반 이상씩 전시를 열 것”이라며 “지금 시대는 국민께 더욱 적극적으로 보여 드리고 알리는 게 간송의 뜻에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축 수장고의 세미나실에서는 일반인 대상의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간송 컬렉션은 99% 이상, 거의 전부를 비영리 공익법인인 간송미술문화재단으로 귀속했다고 한다. 전 관장은 “재단이 취득한 데 따른 세금을 내야 하는데 부담이 작지 않지만 잘 풀어 가고 있다”고 했다. 세무당국에 신고하기 위해 문화재의 가치 평가를 올해 진행했는데 문화재위원급 인사들도 평가를 못 하고 손을 든 문화재가 딱 하나 있다. 국보인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실로 ‘무가지보(無價之寶·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인 셈이다. 지정문화재여서 얼마로 평가하든 법에 따라 과세되지 않는다. ‘대구 간송미술관’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미술관과 정부, 지방정부가 협력한 ‘루브르 아부다비’나 ‘빌바오 구겐하임’ 같은 모델로 국내에서는 새로운 시도다. 이달 말 설계공모에 들어가 이르면 2022년에는 문을 열 계획이다. ―어떤 문화재가 대구로 내려가나. “프로젝트에 따라 다르지만 간송의 컬렉션을 100% 활용할 것이다. 대구에 안 내려 보낸다고 정한 것도 없고, 반대로 대구에만 가 있는 유물도 없을 것이다. 대구 시립미술관의 운영을 간송 측이 위탁받는 형식이다. 대구 문화계의 일부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사진 촬영을 위해 이사장실의 가운데 의자에 잠깐 앉아달라고 하니 전 관장이 머뭇거렸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앉던 자리”라는 거다. ―아버지 전성우 이사장은 어떤 분이었나. “간송의 정신을 오롯이 지켜내려 노력하셨고, 예술가로서도 많은 것을 이룬 분이었다. ‘휘트니 비엔날레’(미국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리는 세계 3대 비엔날레 가운데 하나)의 ‘영 아메리카’ 행사에 네 번이나 초대됐다. 백남준 이전 우리나라 화가 최초로 미국에서 성공 가도를 달렸던 화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돌아와서 귀국전을 열 때 신문기사 제목은 ‘간송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1964년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와 보화각을 정리하고 미술관을 출범하지 않았으면, 미술관과 보성중고교도 지금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故) 전성우 이사장은 귀국 뒤 이화여대와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잠시 일했다가 쭉 보성고 교장, 이사장을 맡았다. 학교와 미술관 업무에 전념하느라 이후 작가로서 활동은 방학 때 동인 그룹전에 작품을 내는 정도에 머물렀다고 한다. 우리는 간송미술관을 얻은 대신, 전도유망했던 한국인 화가 한명을 잃은 셈이다. 전 관장은 ‘민족문화유산의 수호자’ 간송의 손자라는 게 부담이 되느냐고 묻자 “안 되겠습니까” 하며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아버지로부터 들은 할아버지 이야기는? “집안에서는 굉장히 자상하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자랄 적 화가의 꿈을 꾸는 것을 알고 할아버지가 유화 화구 세트를 사 왔다. 한데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다가 뒷정리를 안 하고 공을 차다 왔다. 유화는 뒷정리를 안 하면 물감이고 붓이고 다시 쓸 수가 없다. 돌아와 보니 할아버지가 다 정리해 놓으시고,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고 한다. 그 뒤로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조수를 두지 않고 직접 붓을 정리하셨다.” ―간송이 남긴 ‘무가지보’는 무엇인가. “할아버지가 문화재와 보성학교를 가족을 위해 남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문화가 빼어난 민족은 잠시 다른 민족에게 복속될 수는 있지만 반드시 빛을 되찾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언어까지 빼앗으며 민족 문화를 말살하려 했던 일제로부터 독립한 이후를 준비했던 거다. 할아버지의 유산은 문화보국(文化保國)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전 관장은 “간송이 중국 일본과 확연히 구분되면서 우리 문화 황금기를 보여주는 것을 근간으로 수집해 지켜낸 것을 봐도 일제가 파괴한 우리 문화의 자긍심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보성고 행정실장이기도 한 전 관장은 “3·1운동 당시 중학생이던 할아버지는 종로에서 보성학교 학생들이 전면에 나서 독립선언서를 뿌리는 것을 다 봤다”며 간송이 총독부의 탄압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보성학교를 인수한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과 우수성, 문화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평생을 노력한 간송의 정신을 잇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아버지와 숙부(전영우 이사장)가 한 일도, 내가 할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전 관장)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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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천하주의’ 뒷면엔 약육강식의 냉혹한 역사 도사려

    중국이 대국으로 굴기(굴起)하고자 하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가운데, 전통시대 동아시아의 질서였던 ‘천하’ 개념을 최근 정치적 담론으로 소환하는 것을 경계한 중국 석학의 저술이 번역 출간됐다. 중국 사상사와 문화사의 석학으로 꼽히는 거자오광(葛兆光) 중국 푸단대 교수의 2016년 저서 ‘전통시기 중국의 안과 밖’(소명출판·사진)이 최근 국내에 번역됐다. 거 교수는 책에서 “현대 국가의 개념으로 고대 제국의 역사를 이해해서는 안 되고, 현대 중국의 영토로 고대 중국의 강역을 이해해서도 안 된다”고 밝혔다. 거 교수는 책에서 전통시대 ‘중국’은 무엇을 가리켰는지를 우(禹) 임금 시절부터 청대까지 살폈다. 그리고 비록 현대 중국의 국경선 안에 있는 지역과 민족이라고 해도, 전통시대에는 중국의 ‘주변’이었음을 밝혔다. 서부와 북부의 흉노 선비 돌궐 토번 거란 여진 몽고 만주와 남방의 만(蠻) 등 상당히 많은 비(非)한족 민족과 이들이 차지했던 지역은 중국의 외부이자 주변이었다는 것이다. 지난날 ‘중국’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한족(漢族)의 정치 문화 공동체였을 뿐이었다. 또한 저자는 천하에는 ‘우리’(중국)와 타자의 경계가 늘 존재했고, 중국의 안과 밖은 평등하거나 조화를 이루는 국제관계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저자의 시각과 달리 중국 학계는 대체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따라 현대 중국 내부의 민족들은 과거에도 중화민족의 일부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가 이 주제에 천착한 건 중국 학계에서 ‘천하주의’가 부상하는 걸 비판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대체하고자 하며, 그를 위해서는 경제력이나 군사력뿐 아니라 보편성을 갖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이 같은 맥락에서 소환된 중국의 천하주의는 서구적 민족국가 체제와 달리 “대국과 소국의 구분도, 문명과 낙후의 구별도 없는 ‘천하’”를 지향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거 교수는 “점점 더 빗나가는 ‘천하’의 과도한 해석”이자 “역사적 맥락에서 이탈시키는 상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천하’라는 수사 뒷면에는 약육강식의 냉혹한 역사가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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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형문화재 인정’ 싸고 불공정 선정 시비 계속

    문화재청이 4년 동안 논란이 이어진 국가무형문화재 승무와 태평무, 살풀이춤의 보유자(8명) 인정을 15일 의결했지만, 탈락한 인사들과 무용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승무(이매방류) 전수교육조교 김묘선 씨(62)는 “이매방 선생(1927∼2015)이 생전 승무를 계승해야 한다고 한 검증된 전수조교는 떨어뜨리고, 불공정 논란으로 발표도 못했던 4년 전의 심사 결과를 반영한 이번 결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17일 밝혔다. 보유자는 이수자에서 전수교육조교를 거쳐 인정되는 게 통상적 과정이었다. 김 씨는 9월 문화재청이 발표한 보유자 인정 예고 명단에서 빠진 뒤 청와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여 왔다. 무용계 원로 등이 구성한 ‘무용 분야 무형문화재 보유자인정 불공정심사에 대한 비상대책위’도 “9월 무형문화재위 심의는 태평무 의결 시 위원 11명 가운데 5명만 참석해 정족수 미달이었고, 정작 무용 전공 위원은 자리에 한 명도 없었다”고 14일 주장했다. 문화재청은 승무에 채상묵 씨(75), 태평무에 이현자(83) 이명자(77) 양성옥(65) 박재희 씨(69), 살풀이춤에 정명숙(84) 양길순(65) 김운선 씨(60)의 보유자 인정을 15일 의결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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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문화/과학’ 100호… ‘인간과 미래’ 주제 특집 실어

    진보적 문화이론과 비판적 문화연구를 소개해 온 계간지 ‘문화/과학’이 2019년 겨울호로 100호(사진)를 맞는다. 시대 변화 속에서 문화운동 담론이 필요하다는 공감에 바탕을 두고 1992년 창간호를 낸 지 27년 만이다. 이 계간지는 창간호 특집 주제인 ‘과학적 문화론을 위하여’를 시작으로 육체, 욕망, 문화공학, GNR(생명 나노 로봇공학) 혁명, 문화행동, 동물문화연구, 페미니즘2.0, 플랫폼자본주의, 인류세 등을 다루며 학제적 접근으로 한국 사회의 문화적 현상을 해명해 왔다. 100호 특집 주제는 ‘인간의 미래’다. 이동연 편집인은 “기술 혁명과 점증하는 ‘혐오’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윤리를 다시금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1호부터는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와 박현선 서강대 연구교수가 공동편집인을 맡아 편집진도 일신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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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인가족 위한 ‘작은도서관’ 열었다

    군인과 그 가족을 위한 ‘작은도서관’ 2곳이 잇따라 개관했다.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은 12일 경남 김해시 제5공중기동비행단에 ‘꿈마루 작은도서관’의 문을 열었다. 부산 육군53사단에도 ‘북적북적 작은도서관’을 개관했다. 두 도서관은 관사 아파트의 편의시설 내에 그간 활용하지 않았던 유휴 공간을 이용했다. 열람실과 원목서가, 어린이방을 설치하고 각각 장서 3300여 권을 비치했다. 이정규 제5비행단 부사관은 “아이들이 독서 습관을 기를 수 있는 도서관이 생겨 너무나 반갑다”고 말했다. 개관식에는 ‘책 읽는 버스’가 찾아와 동화 구연을 했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은 KB국민은행, 국방부와 함께 문화시설이 부족한 군 관사에 작은도서관을 조성하고 있다. 올해만 경남 진해시와 경북 예천군 등에 4개관이 새로 독서가를 맞이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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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치 허련이 만년에 그린 노송도 첫 공개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1808∼1893)이 만년에 그린 노송도(老松圖)가 새로 공개됐다. 허련은 추사 김정희가 높이 평가했던 제자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내년 3월 15일까지 서울 용산구 박물관에서 여는 ‘손세기·손창근 기증 명품 서화전 3·안복(眼福)을 나누다’에서 노송도를 전시한다. 열 폭 병풍에 소나무 한 그루를 가득 그린 대형 작품이다. 박물관은 “눈 덮인 산속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소나무의 모습에서 허련의 완숙하고 거침없는 필력을 느낄 수 있다”며 “거대한 규모, 둥치의 껍질과 구불거리는 가지의 역동적 표현은 스승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화풍을 이룬 것을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전시에서는 민영익(1860∼1914), 장승업(1843∼1897), 오세창(1864∼1953) 등 19세기 서화가들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작품 15점도 공개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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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神이 없는 세상은 공허할까

    해제를 쓴 장대익 서울대 교수는 저자들을 “무신론을 지키려는 ‘어벤져스’”에 비유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의 저자이고, 다른 이들도 무신론 설파로 손꼽히는 철학자, 신경과학자, 저널리스트다. 네 사람이 2007년 한자리에 모여 벌인 대담과 나중에 쓴 글을 엮었다. 샘 해리스는 “종교의 독단이 정직한 지식의 성장을 방해하고, 인류를 쓸데없이 갈라놓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논리보다 더 와 닿는 것은 ‘신이 없는 세상의 공허’에 대한 도킨스의 답이다. 도킨스는 말한다. “무신론적 세계관에는 도덕적 용기도 필요하다”고. ‘하늘의 아버지’라는 버팀목을 포기하고, 세상을 떠나면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려주는 신성한 책’이 존재하지 않는 삶에서도 “당신이 살아갈 유일한 인생을 온전하게 살 도덕적 용기, 당신이 왔을 때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떠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원제는 ‘네 기사(Four Horsemen)’.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9-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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