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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2일 북한의 “심각한 균열”과 “체제 동요”를 언급한 것은 대북 제재 효과가 나타나면서 김정은 체제가 상당한 타격을 입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도록 더 강력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 있다. 박 대통령이 처음 북한 정권의 ‘붕괴’를 언급한 것은 올 2월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전후해서다. 박 대통령은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며 대북 정책 기조를 ‘대화’에서 ‘압박’으로 전환했다. 이어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조짐이 구체화되던 2월 4일에는 “(북한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장거리미사일 발사 이후 국회 연설에서는 “북한 정권이 핵 개발로는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고 성토했다. 이때까지 박 대통령의 발언은 국제사회에 대북 제재 동참을 호소하며 대북 압박 정책에 대한 의지를 밝히는 측면이 컸다. 하지만 2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국무회의에서의 발언은 북한 체제에 의미심장한 변화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데 무게가 실려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태영호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 등 김정은 체제를 떠받치던 중견 간부들이 이탈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며 “대북 제재 효과로 북한의 외교적 고립이 심화되고 있고 비공식적인 자금의 흐름도 예전 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발언이 북한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온다. 앞서 박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 간부·주민에게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어 가는 데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며 북한 정권과 분리 대응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부 당국자는 “박 대통령이 북한 정권의 교체를 직접 목표로 하는 건 아니지만 변화의 조짐이 나타날 때 고삐를 조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이날 “북한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자멸하고 말 것이란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또 박 대통령의 발언은 경각심을 갖고 철저히 대비할 것을 주문하는 측면도 있다. 북한은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군사연습이 22일 시작된 것을 계기로 외무성과 총참모부, 조평통 등을 동원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은 “사소한 침략 징후라도 보이는 경우 가차 없이 우리식의 핵 선제 타격을 퍼부어 도발의 아성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다”며 핵 공격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어 “조금이라도 분별없는 망동을 보인다면 아직 세상이 알지 못하는 상상 밖의 무차별적인 징벌이 가해질 것”이라며 테러 가능성을 내비쳤다. 정부도 북한의 위협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전날 “중국을 방문했던 탈북민 3명이 최근 북한에 납치됐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안보 위기’를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내부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행동에 단호히 대처할 것을 당부했다. 이는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거취 및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 내용 누설 의혹,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란 등과 연관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어수선한 정국을 안보 중심으로 풀어 나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또 내각과 사정기관 기강 잡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안보와 경제의 어려움을 반드시 극복해 내겠다는 우리 모두의 단합된 의지가 무엇보다 절실한 때”라며 “위기 상황을 앞에 두고 내부의 분열과 반목이 지속되고 위기를 극복해 내겠다는 국민적 의지마저 약화된다면 퇴보의 길로 접어들게 될지도 모른다”고 호소했다.장택동 will71@donga.com·주성하 기자}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사진)가 탈북한 배경은 본국으로 들어오라는 압박에 따라 신변의 위험을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은 22일 “태영호 공사가 망명을 결심한 결정적 요인은 김정은이 ‘25세 이상 외교관 자녀 본국 소환령’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했다. 해외 주재 외교관의 탈북 러시가 이어지자 김정은이 외교관 자녀들을 평양에 볼모로 잡아두려 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또 김명철 북한 노동당 39호실 유럽 자금 총책이 4000억 원 상당의 비자금을 갖고 잠적했다는 동아일보의 보도가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한 참석자는 국정원 비공개 브리핑을 듣고 나와 “김명철이나 태영호 등이 본국 소환 조치를 당하자 신변에 위협을 느껴 망명한 게 맞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해외의 북한 외교관 자녀들은 1년에 한 번 한 달간 귀국해 사상 학습과 생활총화를 한다. 현재 제3국에 있는 한 북한 외교관의 딸은 “조국(북한)에 가면 그동안 편히 살았다는 이유로 공사판에 내모는데, 그 과정을 겪으면 다시 돌아가기가 죽기보다 싫어진다”고 말했다. 태 공사도 자신을 비롯해 자식들의 귀국일이 닥쳐오자 고민 끝에 망명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태 공사 가족이 8월 초 영국에서 한국으로 직행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영국 선데이익스프레스는 21일 이들이 영국 타이푼 공군기 2대의 호위를 받으며 독일을 경유해 한국에 도착했고, 태 공사 아내가 영국 쇼핑몰 ‘마크스&스펜서’에 들르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현지 소식통은 22일 “마크스&스펜서를 광고하기 위해 꾸며 낸 소설”이라며 “태 공사 가족은 영국의 협조로 북한 여권을 갖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노동당 39호실 유럽 자금총책 김명철 씨는 유럽에서 외국인 명의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북한의 비자금을 능숙하게 분산 관리하던 전문가로 알려졌다. 김 씨가 갖고 잠적한 차명계좌 중엔 인도인 명의의 계좌도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김 씨는 인도인 명의의 차명계좌에서 돈을 찾기 위해 예금주의 위임장을 지닌 변호사를 차명계좌가 있는 은행에 보내 다른 은행에 있는 자신의 계좌나 현지처 명의의 계좌에 돈을 입금시켰다. 이후 김 씨가 돈이 입금된 은행 지점에서 매니저를 만나 인출했다. 인도인은 김 씨가 조작한 가상의 인물이다. 김 씨는 유럽의 많은 중소은행들이 예금 유치만 중시한다는 허점을 파고들어 이런 방식을 활용해 다양한 차명계좌를 관리했다고 한다. 북한 인사 명의의 계좌는 서방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기 때문에 북한은 자금세탁 블랙요원을 활용해 비자금을 숨겨왔다. 김 씨 정도 레벨의 ‘기술자’는 북한에 몇 명 되지 않아 북한 당국의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고 한다. 김 씨는 평양엔 본부인을, 해외엔 현지인 부인을 두는 이중생활을 20년 가까이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자식은 북한 부인에게서만 낳는다는 노동당의 원칙 때문에 현지인 부인과는 자녀를 두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두 아들을 서방에서 키웠다. 김 씨는 해당 국가 영주권자이지만 두 아들은 올 상반기에 해당 국가 시민권을 차례로 획득했다. 그의 마음이 떠난 배경에는 북한의 과도한 요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몇 년 전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외화 획득 과제를 부과했고, 뜻대로 되지 않자 가족 중 한 명을 터무니없는 구실로 국가안전보위부 감방에 가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자주 쓰는 가족을 인질로 하는 압박전술이었다. 그래도 김 씨가 과제를 달성하지 못하자 구속된 가족을 고문하기 시작했고 결국 가족이 숨지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 경우 해외 요원은 철수시키는 것이 원칙이지만 김 씨를 대체할 인물이 없어 즉각 소환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김 씨가 분노해 망명길에 오르게 했다. 김 씨 가족을 숨지게 만든 보위부 요원은 처벌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현재 서방 국가의 보호 아래 주기적으로 은신처를 옮기며 잠적 생활을 하고 있다. 김 씨는 한국에서의 신변 안전 문제, 미국의 독재자 자금 전액 몰수 정책 때문에 망명지를 어디로 선택할지를 두고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유럽의 한 국가에서 6월 잠적한 북한 노동당 39호실 유럽 자금총책 김명철 씨는 북한에 살던 가족이 국가안전보위부의 고문으로 숨지자 이에 반발해 망명을 결심한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김 씨가 4000억 원이란 엄청난 금액을 들고 잠적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북한에서 대체할 수 없는 최고의 자금세탁 전문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현지 소식통은 전했다. 김 씨는 북한에 있는 정식 부인 외에 해외에 현지처를 따로 두는 것까지 묵인받을 정도로 지도부의 신임을 받았다. 그런 김 씨가 외화 할당량을 제대로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보위부가 가족을 고문해 숨지게 하자 분노한 것이다. 한편 북한은 20일 태영호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의 망명과 관련해 주민들이 접할 수도 없는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 공개하며 비난하고 나섰다. 한국 정부가 17일 태 공사의 망명 사실을 발표한 지 사흘 만이다. 북한은 태 공사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진 않은 채 “도주자는 많은 국가 자금을 횡령하고 국가 비밀을 팔아먹었으며 미성년 강간 범죄까지 감행한 것으로 하여 그에 대한 범죄수사를 위해 지난 6월 이미 소환 지시를 받은 상태”라고 주장했다. 또 “남조선(한국) 괴뢰들이 도주자가 항일 투사의 아들이라느니 하는 등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도주자의 더러운 몸값을 조금이라도 올려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고 비난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 노동당 39호실 대성지도국 유럽지국 총국장 김명철(현지 사용 이름)이 올 6월 서방의 한 국가에서 잠적하면서 유럽 내 북한 공관들이 패닉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소식통은 19일 “김 총국장이 갖고 잠적한 4000억 원가량 가운데 유럽 내 북한 공관 운영비와 외교관 생활비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사태 때문에 유럽 내 북한 외교관 중 최고 원로라고 할 수 있는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 체코대사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급히 평양에 들어갔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며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잠적한 김명철의 직책은 대성지도국 유럽지국 총국장으로 돼 있지만 유럽 공관들의 운영자금을 총괄하고 있어 북한 외교관들로부터 ‘상왕(上王)’ 대접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게 잘 보여야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북한 대사들도 그가 나타나면 머리를 숙여야 했다고 한다. 소식통은 “김 총국장의 위상은 한국에 망명한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와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높다”며 “그런 사람이 망명을 선택했기 때문에 북한 외교관들과 해외 무역일꾼들이 받았을 충격은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본국에서 특수요원까지 대거 급파해 기를 쓰고 김 총국장을 추적하는 이유도 그의 망명이 가져올 충격파가 너무나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정부 당국자는 “(김 총국장의 잠적이) 사실관계는 맞지만 한국 정부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총국장이 갖고 잠적한 4000억 원은 현금이 아닌 계좌에 든 자금으로 알려졌다. 해외에서 노동당 자금을 관리했던 고위급 탈북자는 “그가 돈을 직접 들고 움직였다기보다는 자신이 관리하던 비자금 계좌를 챙겨 해당 국가에 망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국장의 망명 시점이 6월인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북한의 최대 비자금 은신처로 알려진 스위스 정부는 6월 2일을 기준으로 자국 내 북한 은행 지점과 계좌를 모두 폐쇄했다. 이때 다급해진 북한이 스위스 은행에 있던 자금을 황급히 옮기는 과정에서 김 총국장이 거액을 챙겨 망명할 기회가 생겼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편 김 총국장의 아들 가운데 한 명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5월 현지 언론에 자신이 시작한 금융 관련 벤처기업을 홍보하는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이 기사는 김 총국장의 망명 사실이 보도된 직후 해당 언론사 사이트에서 삭제됐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와 부인이 항일 빨치산 가문인 ‘백두산 줄기’ 출신인지에 대해 엇갈린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복수의 탈북 외교관들은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태 공사에 대해 안다고 말한 한 소식통은 18일 “태 공사가 북한 고위층 자제들과 함께 공부한 까닭에 항일 빨치산 태병렬의 아들이란 설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태 공사의 부인인 오혜선 씨가 항일 빨치산 출신인 오백룡과 6촌 간이란 이야기도 있지만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소식통은 “태 공사의 부인이 오백룡 집안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덕을 볼 만큼 가까운 관계는 아닌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백두산 줄기 출신의 첫 탈북 사례로는 잠비아 북한대사관에서 서기관으로 일하다 1996년 망명한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꼽힌다. 그의 친할아버지가 김일성과 항일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전사한 현용택이다. 현 위원의 탈북 이후에도 삼촌인 현철해가 강등되지 않고 북한군 원수까지 올랐던 데는 항일 빨치산 출신 가문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태 공사는 10년 내내 영국에서 지낸 것은 아니며 김정일 사망 전후로 홍콩에서 부영사 격으로 몇 년 동안 근무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국제 금융 중심지인 홍콩에는 김정일의 비자금이 적잖게 은닉돼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홍콩은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 등 로열패밀리는 물론이고 최룡해 등 고위 간부들이 비밀리에 치료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도 2000년대 후반 홍콩 옆 마카오에 거주했다. 태 공사는 김씨 일가의 집사 격으로 일을 하면서 최고위층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김정남에 관한 동향 보고서 작성에도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의 유럽 내 노동당 자금 총책이 올해 6월 4000억 원가량의 비자금을 갖고 잠적해 북한당국에 비상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17일 한국 입국 사실이 공개된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의 망명도 이 사건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한 대북 소식통은 18일 “노동당 39호실 대성지도국 유럽지국 총책임자인 김명철(가명) 씨가 유럽의 한 국가에서 두 아들과 함께 6월에 잠적했고 극비리에 현지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 씨가 관리하던 자금은 유로와 파운드, 달러 등을 모두 합쳐 4000억 원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며 모두 들고 나온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유럽에서 북한 사상 최대의 당 자금 탈취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개성공단이 가동될 때 북한이 1년 동안 남쪽에서 받은 돈이 9600만 달러(약 1062억 원) 정도였음을 감안할 때 북한 지도부가 크게 휘청거릴 만큼의 자금이 사라진 셈이다. 이 소식통은 “김 씨가 이동해 안전한 망명지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에서 특수 요원들을 대거 파견했고, 유럽 내 전체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혈안이 돼 있다”며 “한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도 김 씨를 망명시키기 위해 극비리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김 씨는 해당 국가에 20년 동안 살면서 북한의 유럽 내 자산 관리를 총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북한의 유럽 내 자금 흐름을 잘 알고 있고, 김정은 일가가 유럽에서 어떤 방식으로 돈을 은닉해 오고 사치품을 조달하는지 등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을 것으로 보여 북한 체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유럽 내 최고위급 외교관 중 한 명인 데다 김정은 가문의 ‘집사’ 역할을 해왔던 태 공사도 김 씨를 체포하라는 등의 지시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태 공사가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 본국 소환 뒤 처벌을 피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망명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태 공사의 가족 중 1명은 긴박한 탈출 과정에서 함께 한국으로 들어오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은 “영국이 아닌 제3국에 체류하던 자녀는 아직 현지에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주성하 zsh75@donga.com·조숭호 기자}

18일 망명 사실이 새롭게 알려진 노동당 39호실 대성지도국 유럽지국 총책임자인 김명철(가명) 씨는 현지에서 20년 동안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노동당의 유럽 자금 관리를 책임지고 있지만, 그의 활동 범위가 서유럽에만 국한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김 씨가 지냈던 국가에서 외교관으로 일했던 한 탈북자는 “그 나라는 중동과 아프리카를 오가기에 수월한 위치여서 당 자금을 벌어들이는 인물들이 가족을 현지에 정착시키고 거점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 씨가 중동과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불법 거래에도 깊숙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소식통은 “사건이 벌어진 국가 이름과 김명철의 본명은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다만 김 씨는 현지에서 활동하며 ‘김명철’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의 탈출 동기는 지난해부터 북한에 거주하던 가족과 친지들이 숙청 대상이 되면서 신변에 불안을 느꼈기 때문이다. 김 씨의 두 아들은 해당 국가에 거주하면서 올해 초 시민권을 취득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둘째 아들은 1988년생으로 현지에서 다국적 인터넷 금융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 씨 부인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한에 있을 가능성도 있다. 김 씨의 탈출로 유럽 내 모든 북한 공관에는 비상이 걸린 상태다. 한 소식통은 북한에서 특수요원들이 그가 접촉할 만한 선을 먼저 차단하느라 공작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엔 김 씨가 도움을 요청할 만한 인물들에게 김 씨 명의를 도용해 ‘도와 달라’는 e메일을 무차별 발송하는 방식도 포함돼 있다. 김 씨가 진짜 도움을 요청해도 믿지 않게 만들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김 씨는 현재 제3국 망명을 희망하고 있지만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의 사례처럼 막판에 마음을 돌려 한국행을 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태 공사가 북한 외무성에서 유럽 외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만큼 김 씨 탈북 사건에 대한 책임도 무거웠을 것으로 보인다. 또 올해 5월 방북했던 영국 BBC 기자가 김정은을 ‘뚱뚱하고 예측할 수 없다’고 보도한 혐의로 북한 당국에 억류된 사건 때문에 당시 BBC 기자의 방북 문제를 담당했던 태 공사가 책임 추궁을 당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태 공사는 제3국에 가족을 남겨둔 채 영국을 떠날 만큼 탈북을 결행하는 과정이 긴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태 공사의 남겨진 가족은 제3국에 체류하던 딸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지도부가 거액을 갖고 탈북한 김 씨의 추적에 이미 나섰고 추가 탈북과 해외 주재원 동요를 막기 위한 대대적인 검열에 착수했을 가능성이 높다.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태 공사 망명 이후 외교관 가족 소환령을 내리는 등 단속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17일 태 공사 탈북 사실을 공개하면서 “국내에 입국을 했고 널리 보도가 돼 사실 확인 차원에서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족의 일부가 제3국에 잔류하고 있는 상태인 만큼 정부의 발표가 성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력 인사의 탈북이 반복되는 것을 두고 △‘북한 체제에 구멍이 뚫렸다’ △‘붕괴가 임박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으로 보인다. 과오나 금전 문제(충성자금 미확보 등)와 같은 개인 차원에서 탈북을 결심하는 것이지 아직 북한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로까지 비화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 인구 2300만 명 가운데 탈북한 사람은 3만 명 정도”라며 “과거 동독에서는 불과 5년 동안 15만 명이 탈출한 적도 있지만 냉전이 해체될 때까지 동독은 건재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러시아에서 망명한 김철삼 주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 가족은 최근 한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조숭호 shcho@donga.com·주성하 기자}
노동당 유럽 담당 자금총책의 탈출과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가족의 망명은 최근 유엔의 강도 높은 대북제재와 김정은의 자금 독촉 압박 사이에서 갈등하는 북한 해외 파견 일꾼들의 심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북제재로 외화를 벌 길은 갈수록 막히는데도 김정은은 여명거리 건설 등 대규모 공사판을 벌여놓고 자금 상납 압박을 강화하고 처벌도 가혹하게 하고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18일 “많은 외화벌이 간부와 외교관이 지난해 노동당 창건 50주년 준비 때 빚까지 잔뜩 져가며 가까스로 상납금을 맞췄는데, 당국은 올해 들어서자마자 숨 돌릴 틈 없이 노동당 7차 대회와 여명거리 건설을 구실로 계속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이상 버틸 능력이 없어 귀국하겠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선 지원하는 후임자도 거의 없다고 한다. 이처럼 망명을 놓고 갈등하는 해외 파견 일꾼이 많지만 북한이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기 때문에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노동당 자금을 다루던 39호실 국장, 부국장급 인사 3명이 지난해 한국에 오는 등 과감하게 탈출하는 해외 체류 북한 상류층이 늘고 있다. 이들은 과거 탈북자들과는 달리 한국에 오면 북한 가족을 의식해 최대한 조용히 숨어 지내려고 하고 있다. 2000년대 이전엔 기자회견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신분이 노출됐지만 이제는 원치 않으면 입국 사실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현재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상류층 출신 탈북자들이 국내에서 숨어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돈을 챙겨 탈북한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의 생활 격차가 크게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입국한 한 간부는 고급 아파트를 현금으로 사고 자녀에게 아파트와 벤츠 자동차까지 사주기도 했다. 하지만 간부 출신이라도 따로 자금을 챙겨 오지 못해 임대아파트에서 사는 이들도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27호 탐사대원 동무. 나는 당신이 남쪽에 있는지, 북쪽에 있는지, 아니면 방송 원고에만 존재하는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다만 평양방송이 격주로 금요일 오전 1시 15분에 내보내는 난수 방송을 통해 당신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저번 방송이 12일에 진행됐으니 다음 지시는 26일 금요일 오전에 또 나오겠네요. 여성 방송원이 “지금부터 27호 탐사대원들을 위한 복습 과제를 알려 드리겠다”며 “509페이지 68번, 742페이지 69번…”과 같은 식으로 다섯 자리 숫자를 읽는 것은 처음엔 남쪽 언론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언론도 곧 식상해질 겁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상관은 없습니다만, 지금도 대남 공작원을 양성하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이 문 닫았다는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후배들은 계속 훈련받고 있겠죠. 27호 동무는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모르겠지만 김현희, 김동식 등 임무를 수행하다가 체포된 당신의 선배들을 통해 북쪽의 공작원 훈련 내용을 전해 듣긴 했습니다. 공작원은 인민군 특수 병종의 4∼5배나 되는 훈련량을 소화해 철인이 된다면서요. 그런데 내가 남쪽에 와서 살아 보니 정말 시대착오적인 쓸데없는 훈련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글은 그래서 적는 것입니다. 내가 겪은 남쪽의 삶과 혹시 당신이 체험했을 경험을 두루 종합해 꼭 보고해 주길 바랍니다. 우선 육체적 능력은 거의 필요 없습니다. 공작원은 군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근육이 빵빵하고, 손에 굳은살까지 있으면 더 의심받기 쉽습니다. 공작원들이 제일 중시하는 게 산악 돌파 훈련이라면서요. “하룻밤에 40∼80km를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김정일의 ‘교시’에 따라 공작원들은 30kg의 모래 배낭을 메고 40km를 3시간 만에 가는 훈련을 한다면서요. 그 교시는 이미 유훈이 돼 누구도 감히 바꿀 엄두를 못 내고 지금도 그런 훈련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참 끔찍합니다. 그런 육체적 능력이면 차라리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제가 남쪽에 와 보니 여긴 산에 나무와 잡초가 빽빽하게 우거져 접근할 엄두조차 못 내겠습니다. 아무리 공작원이라도 산 몇 개 넘으면 탈진할 겁니다. 행군을 암만 잘해 봐야 멀리 도망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요즘엔 적외선 카메라가 설치돼 칠흑 같은 밤이라도 다 찾아냅니다. 공작원은 비트(은신처) 파는 훈련도 열심히 한다고 들었는데 그냥 땅을 깊숙이 파고 영원히 거기서 쉬는 게 안 잡히는 유일한 길 같습니다. 달리는 자동차 잡아 타기 훈련은 지금도 하나요. 여기 와 보면 알겠지만, 이젠 시골까지 포장도로가 다 돼 있어서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인 우사인 볼트도 차를 못 따라갑니다. 차는 또 어찌나 많은지 몰래 잡아 타려면 깊은 시골에서나 가능할 겁니다. 그런데 시골 가서 뭐 할 게 있겠습니까. 독도법(讀圖法)도 필수과목이라 하더군요.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도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목적지와 자기 위치를 다 아는 시대입니다. 현지화를 한다면서 서울말도 힘들게 배운다고 하던데, 그것도 필요 없습니다. 요새 남쪽은 세계화가 돼서 말투가 이상하다고 신고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제가 일하는 서울 광화문에도 중국인이 어찌나 많은지 차라리 중국인 행세를 하는 게 훨씬 안전합니다. 어쩌면 3만 명이나 되는 탈북자 흉내를 내는 게 더 쉬울지 모르겠네요. 서울말 가르칠 교관이 필요하다고 사람 납치해 가는 일도 할 필요 없습니다. 제일 웃기는 일은 단도 던지기를 배운단 소리였습니다. 중세시대도 아닌데, 참…. 요즘 남쪽은 폐쇄회로(CC)TV 카메라가 쫙 깔려 있어서 임무를 완수해도 도망갈 수 없을 겁니다. 총 암만 잘 쏘고 단도 잘 던져 봐야 어차피 범인 검거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이곳에서 빠져나가기 어렵습니다. 그런 거나 할 거면 특수 훈련 자체가 무의미하군요. 제가 볼 때는 공작원 자체가 필요 없습니다. 구글어스 돌리면 손금 보듯 볼 수 있는데 굳이 와서 정찰할 필요도 없고, 웬만한 정보는 다 신문에 실리는데 기자도 모를 진짜 비밀에 당신이 무슨 수로 접근합니까. 그러니 인터넷이나 도입해 공작원 보낼 시간에 검색을 열심히 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암살도 마찬가지입니다. 웬만하면 잡혀서 정체가 드러날 것이고, 그럼 미국이 기다렸다는 듯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할 텐데 그걸 감수할 가치가 있을까요. 그러니 27호 탐사대원 동무. 만약 남쪽에 왔다면, 그래도 견문이 넓어졌을 당신이 솔직히 말하세요. 쓸데없는 훈련은 왜 시키고, 쓸데없는 지시는 왜 내리느냐고요.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태영호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의 망명은 7차 노동당 대회 이후 내부 결속에 힘을 쏟아 오던 김정은과 북한 핵심 권력층에도 적잖은 심리적인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북한은 미국과 영국에는 충성심이 검증된 엘리트 외교관을 파견해 왔다. 태 공사가 일반 외교관들이 꿈꿀 수 없는 가족 동반이라는 특권을 누리며 영국에 10년이나 근무한 것도 북한 당국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외교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망명 신청 전 태 공사는 북한 체제를 옹호하고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태 공사가 근무하던 10년 동안 북한 이용호 외무상과 자성남 유엔 주재 북한대사가 각각 주영국 대사를 지냈다. 영국 내 대북인권단체인 국제탈북민연대의 김주일 사무총장은 17일 “영국 북한대사관은 개인 가옥을 개조해 대사관 겸 관저로 쓰면서 외교관 4명이 가족과 함께 한 집에서 함께 살다 보니 서로 유대도 끈끈하다”고 말했다. 태 공사가 망명을 선택한 동기에 대해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김정은 체제에 대한 어떤 염증,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이라고 전했다. 올해 5월 영국 재무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유럽연합(EU) 대북제재 리스트에 포함된 북한 국영보험사인 조선민족보험총회사(KNIC) 런던지사를 압수수색하면서 태 공사가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05년 헬기 추락 사고와 수재 등을 이유로 이 보험회사를 이용해 약 600억 원의 외화를 보험금으로 챙겼다. 이곳이 폐쇄되면 유럽 금융 중심지인 영국에서의 북한의 외화벌이 활동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고민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유엔의 대북 제재로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의 활동이 급격히 위축된 상황도 그의 탈북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고강도 제재로 북한 대사관의 외부 활동이 극심하게 위축되는 가운데 본국의 잇단 압박 움직임이 부담감이 됐다는 것. 그런 상황에서 영국 주재 북한 외교관들은 런던에 정착한 수백 명의 탈북민과 유난히 자주 마주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무총장은 “북한 외교관들은 코리아푸드라는 한국 마트에 자주 왔는데, 이곳 계산원 대부분은 영국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이라며 “10∼20파운드(약 1만4500∼2만9000원)만 들고 와서 탈북자들 앞에서 라면이나 쌀만 사가기를 부끄러워했고, 나중엔 김일성 배지를 떼고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또 “태 공사와도 자주 마주쳤는데 내가 말을 걸려고 하면 ‘김 선생하고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피했다”고 덧붙였다. 탈북 외교관들에 따르면 태 공사는 고등중학교 재학 중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1995년 2월 사망), 허담 전 노동당 비서(1991년 5월 사망) 등 북한 최고위층과 함께 중국에서 유학하며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다. 핵심권력층이 아니면 접근하기 힘든 기회를 잡았던 북한판 ‘금수저’인 셈이다. 또 고령화가 심각한 북한에서 불과 마흔 살에 외무성 서구라파국(외무성 8국) 국장대리 겸 EU 담당 과장을 지냈다. 이 때문에 태 공사의 집안도 상당한 고위층이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가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냈던 태병렬(1997년 사망)의 아들로 이른바 북한 최고의 명문가라는 항일빨치산 출신인 ‘백두산줄기’라는 얘기도 나온다. 태 공사는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한 뒤 덴마크어 1호 통역 후보생(김정일 총비서 전담통역 후보)으로 뽑혀 덴마크에서 유학하기도 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의 태영호 공사(55·사진)가 가족과 함께 탈출해 한국에 입국했다.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은 17일 “태 공사가 현재 부인, 자녀들과 함께 한국에 도착해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다”며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현학봉 대사에 이은 서열 2위에 해당하며, 지금까지 탈북한 북한 외교관 중에서는 최고위급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장승길 전 주이집트 북한 대사는 1997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태 공사는 지난달 중순 아내와 아들 2명과 함께 10년 동안 근무한 영국 런던을 떠나 잠적했다. 태 공사의 직책은 대사 다음이지만 북한이 미국과 영국에는 핵심 외교관을 파견하기 때문에 웬만한 국가의 대사보다 더 신임을 받는 자리로 평가된다. 영국을 거점으로 북한 체제를 선전하던 최고위급 외교관이 탈북을 선택한 것이어서 북한 체제에도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 간부들과 주민들을 향해 “통일은 동등하게 대우받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힌 배경에 태 공사의 망명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태 공사는 북한 외무성 유럽연합(EU) 담당 과장 등을 지냈고 2001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한과 EU의 인권 대화에 북한 대표단 단장으로 참가했다. 또 지난해 5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형인 김정철이 영국의 유명 가수 에릭 클랩턴의 공연을 보기 위해 런던을 방문했을 때 직접 수행하는 등 북한 최고 권력층의 신임도 돈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BBC는 그가 “김정은의 통치가 외부에서 오해를 받고 잘못 보도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며 북한을 변호하는 임무에서 마음이 떠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국가안전보위부, 조직지도부 등 핵심 기관 주요 간부에 이어 외교관까지 탈출하면서 북한 내부 권력층의 이탈 움직임이 가속화될지 주목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파리=동정민 특파원}
올해 4월 7일 중국에서 탈출해 한국으로 입국한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이 최근 조사를 마치고 4개월 만에 일반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16일 “4월 입국한 북한식당 여성 종업원 12명과 남성 지배인 1명이 사회 각지로 진출했다”며 “하지만 시기와 지역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은 이 종업원들에게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점을 감안해 대다수 탈북자가 거치는 탈북 정착지원 시설인 하나원 대신 안가(안전가옥)에 머무르게 하며 한국 사회를 체험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신분을 노출할 수 없는 고위급 탈북자들에게 해당되는 정착 과정이다. 이들의 거주지도 한곳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전국 각 도시에 분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임대주택이 밀집된 지역에서 다른 탈북자들과 같이 생활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북한 당국이 여전히 이들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당국의 신변 보호는 다른 탈북자들보다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 탈북자들도 국내에 들어온 지 4개월 만에 사회에 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여종업원들도 특별히 오래 안가에 머무른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여종업원들이 강제로 구속돼 있다고 주장해 온 북한 당국의 주장과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광복절을 맞아 북한이 제안한 ‘통일대회합 연석회의’ 성사를 위한 ‘남북·해외 실무회의’가 11, 12일 중국 선양(瀋陽)에서 남측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지만 결국은 북한에 이용당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회의는 참가자 공동 명의로 연석회의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의 공동보도문을 채택했지만 남측에서 공개한 보도문과 북한이 발표한 보도문에는 차이가 있었다. 회의에 참가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가 배포한 보도문에는 “올해 광복절에 연석회의를 가지지 못하였지만”이란 구절이 있다. 하지만 북한이 15일 노동신문에 공개한 보도문엔 같은 대목이 “연석회의가 내외 반통일 세력의 방해 책동으로 성사되지 못했다”고 다르게 표시돼 있다. 북한이 지칭한 내외 반통일세력은 연석회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한국 정부를 가리키는 셈이다. 결국 남쪽 대표단의 회의 참가는 북한이 주민을 상대로 “한국 정부가 반통일 세력이라는 데 남쪽 인사들도 동감했다”는 식으로 선전하는 데 들러리를 선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모임엔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조성우 상임대표와 북측준비위원회 김완수 부위원장, 연석회의 해외 측 준비위원회 손형근 부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정부는 15일 “승인 없이 북측 인사와 접촉한 회의 참가자들을 법에 따라 응당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명칭이 국가안전보위성으로 변경됐다고 정통한 대북 소식통이 14일 밝혔다. 북한이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신설한 뒤 우리의 경찰청 격인 인민보안부를 인민보안성으로, 국방부 격인 인민무력부를 인민무력성으로 변경한 사실은 이미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 체제의 핵심 수호조직인 보위부가 부(部)에서 성(省)으로 변경됐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식통은 이와 관련해 “최고인민회의에서 보안부와 무력부가 성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보위부도 함께 성으로 명칭을 바꾸었다”고 전했다. 보안성과 무력성은 1990년대 후반에 부에서 성으로 명칭이 변경됐다가 2000년대 들어 다시 부로 바뀌었고, 올해 다시 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하지만 보위부는 1973년 창설 이래 한 번도 ‘성’으로 불린 적이 없었다.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북한에서는 부가 성보다 높은 조직으로 인식되는 점을 감안할 때 보위부는 꾸준히 신임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번 개편으로 북한 최고 실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사진)도 내각의 다른 수장들과 마찬가지의 지위로 불리게 됐다. 이번 명칭 개편 과정에서 보위성이나 보안성, 무력성 모두 내각 산하에는 들어가지 않고 국무위원회 직속으로 남은 것으로 전해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의 15일 광복절 경축사 대북 메시지는 대화나 교류라는 표현 대신 북한 당국에 대해 핵 개발과 도발 위협을 즉각 중단하라는 요구로 채워졌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북한 당국에 “우리 국민을 위협하고 대한민국을 위협하기 위한 어떤 시도도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과는 달리 북한 간부와 주민들에게는 통일 이후 동등한 대우를 하고 행복 추구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분리 접근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이는 김정은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 핵심 지도부와 일반 간부, 주민을 따로 겨냥하는 새로운 대북 접근법을 예고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과거 정부에서 대통령이 북한 간부와 주민을 향해 별도의 메시지를 던진 전례는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의 인권 문제까지 부각한 것은 다음 달 초 북한인권법이 시행되고 북한인권재단이 출범하는 것을 계기로 북한 주민을 직접 겨냥한 다양한 정책이 나올 것을 시사한 대목이기도 하다. 대화와 교류 대신 북한의 변화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이산가족 상봉 및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조성(2013년), 평창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 북한 참여 희망(2014년), 이산가족 생존자 전원 명단 교환(2015년) 등 다양한 대북 제안을 내놓았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중국이 식량 무상 지원과 함께 대북 원유 공급 등 대북 지원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 식량 지원이나 원유 공급 자체가 유엔 대북 제재 결의 위반은 아니지만 6월 방중한 이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중국에 핵 개발 고수 의지를 천명한 가운데 중국이 대북 식량 지원으로 화답한 것은 북핵 폐기에 대한 중국의 의지를 의심케 만들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의 대북 식량 무상 지원의 규모가 역대 최대 규모인 50만 t에 이른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핵실험 및 장거리미사일 발사 직후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에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나서서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북한의 핵 개발을 가장 강력하게 압박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대북 지원을 늘려 강력한 지원 메시지를 보내는 중국이 과연 국제질서에 대한 책임을 걸머진 주요 2개국(G2)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대규모 식량 지원과 더불어 북-중 간 교역도 본격적으로 되살아나 유엔의 대북 제재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증거와 증언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가 시작된 뒤 한동안 이에 동참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던 중국이 최근 북한과의 관계 회복에 나서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남중국해 분쟁을 놓고 미국과 일본을 압박하는 동시에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에 대한 반발 움직임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 해관(세관)총서가 8일 공개한 국가별 월 무역액 통계에 따르면 6월 북-중 무역총액은 5억377만 달러(약 5564억 원)로 작년 같은 달 4억6042만 달러(약 5085억 원)보다 9.4% 증가했다. 안보리 제재 결의 채택 이후 4, 5월에 줄어들던 교역 규모가 회복된 것은 중국이 대북 수출량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7월 이후 교역 규모는 더욱 크게 증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요미우리신문은 북한으로 가는 원유 송유관 시작 지점인 단둥(丹東) 외곽 원유 저장 시설을 드나드는 화물열차의 운항이 대북 제재 초기 하루 1편에서 6월 하순부터는 2, 3회로 늘었다고 전했다. 북-중 소식통은 이런 추세라면 올해 원유 지원 규모가 예년 평균인 50만 t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문은 또 유엔 제재 품목인 중국의 북한 철광석 수입이 올해 6월 전년 대비 2.7배로 증가했고 톈진(天津) 항에서는 대북 제재 이후 중단됐던 석탄 하역 작업이 이달 들어 재개됐다고 보도했다. 대북 소식통은 북-중 국경에선 중국이 북한에 시멘트를 10만 t 이상 지원한다는 소문도 퍼져 있다고 전했다. 그는 “김정은의 지시로 건설되는 여명거리 공사가 막바지 단계에 이르면서 이를 부정부패의 기회로 보고 크게 한탕 해 먹으려는 북한 간부와 중국 상인 간의 거래가 북-중 국경에서 활발해졌다”고 전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도 단둥 소식통을 인용해 “낮에는 중국이 대북 제재를 시행하는 것처럼 조용하다가 오후 8시만 되면 특수용접봉, 상수도관, 창유리, 타일, 시멘트 등 건설자재를 실은 북한행 차량이 긴 행렬을 이루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얼마 전까지 북한으로 들어가는 화물차량의 통관은 1주일에 이틀만 가능했지만, 요즘은 매일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단둥에서는 지난달부터 신의주를 당일 둘러보는 여행이 시작돼 하루 관광객이 1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최근 중국이 자국 사업자 보호를 이유로 북-중 무역 통관을 다시 느슨하게 하고 있으며 밀무역도 대폭 묵인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중국 쪽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중국의 식량 지원 결정(6월 1일)은 한국 정부가 사드 체계 배치를 발표(7월 8일)하기 전에 내린 것이어서 사드 결정과 직접 연관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최근 대북 지원 움직임이 보인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중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 지원에 나섰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14일 “중국이 올해 중으로 북한에 식량 50만 t을 무상 지원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중국 관계자들에게서 확인했다”며 “8월 초 대북 지원 옥수수를 실은 20t급 트럭들이 북한으로 들어가는 것을 북-중 국경 지역에서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지금까지 북한에 최소한으로만 식량을 지원했는데 올해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이와 함께 최근 대북 원유 공급과 무역 규모도 늘리고 있다고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이날 북-중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 및 남중국해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중국 압박이 이어지자 대북 제재를 완화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3월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에는 항공유(로켓 연료 포함) 대북 공급 금지가 포함됐으나 중국은 제재 직후 한동안 송유관이 막히지 않을 정도의 원유를 공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대규모 대북 지원 재개는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대북 제재 기류에 역행하는 것으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이에 앞장선다는 것은 책임 의식을 망각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의 대북 식량 지원은 6월 1일 대규모 사절단을 거느리고 방중한 이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을 때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친서를 갖고 시 주석을 만난 이 부위원장은 식량 100만 t 지원을 요청했고, 중국은 50만 t을 제공하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북한이 올해 들어 공개 처형을 대폭 늘리는 등 공포통치에 집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날이 갈수록 김정은 체제에 대한 주민들의 충성도가 떨어지고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 집단 탈출과 같은 조직화된 민심 이반 조짐이 나타나자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소식통은 12일 “지난달 말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이 다 아는 고위 간부를 공개 처형하고 다수의 고위직을 좌천시키면서 공포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소식통도 “김정은의 눈에 찍히면 죽는다는 분위기 때문에 국가안전보위부나 인민보안성 등 공안기구들이 실적 경쟁을 하는 바람에 애매한 주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측과 통화했다는 것만으로도 간첩으로 몰리고, 과거엔 교화형(징역형)에 처했던 죄도 국가반역죄를 적용해 처형한다는 것. 다른 대북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올해 들어 지금까지 처형한 사람만 60명이 넘으며 이는 김정은 집권 이후 연평균 처형자(30여 명)의 2배에 이르는 수치”라고 전했다. 국가정보원도 “올해 처형자가 대폭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올 2월 초 북한 공안기구들은 탈북민 재북 가족과 송금브로커 수십 명을 체포해 간첩 혐의로 처형했고, 4월에는 양강도 혜산에서 주민들의 탈북을 돕던 브로커 10여 명을 처형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한국 영화 및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마약을 유통하고 사용하던 사람들도 10명 넘게 공개 처형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김정은이 올 3월 공안기구에 “주민들에게 자유시간을 주면 돈벌이 생각과 사회 불평만 늘고 종파 음모도 커지기 때문에 통제를 강화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5월 노동당 7차 대회를 앞두고 ‘70일 전투’를 진행한 뒤 연이어 12월 말까지 ‘200일 전투’를 다시 벌이는 것도 이런 주민들의 불만을 억누르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