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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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6-04-11~2026-05-11
연극33%
문화 일반23%
문학/출판13%
인사일반10%
무용6%
미술3%
미국/북미3%
역사3%
칼럼3%
행정3%
  • “판소리 주제로 영화 보듯 감상하는 전시 만들 것”

    2024년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주제가 ‘판소리―21세기 사운드스케이프’로 정해졌다.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니콜라 부리오(58)는 26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 한 장면을 재생했다. 소리꾼 송화(오정해)가 산을 바라보며 소리를 하는 30초 분량의 장면이 나온 뒤 그는 “이 영상이 다음 비엔날레의 주제와 형식을 보여준다”고 했다. 부리오 예술감독은 ‘공간’을 화두로 삼았다. 그는 기후 변화와 팬데믹 등 지구 전체에 일어난 공간의 변화를 소리의 개념으로 구현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시장, 광장 등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적 장소인 ‘판’과 ‘소리’가 결합된 판소리가 흥미로웠다고 밝혔다. 판소리가 서사를 가진 구조라는 점도 고려됐다. 부리오는 “비엔날레가 작품을 나열하는 형태가 돼서는 안 된다”며 “이야기가 있는 구조와 길을 따라가며 마치 영화를 보듯 감상하는 전시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전시를 구성할 3개 섹션은 ‘라르센 효과’ ‘다성 음악’ ‘태초의 소리’다. 라르센 효과는 여러 대의 스피커가 너무 가까이 있을 때 발생하는 소음으로, 인간 때문에 포화상태가 된 지구의 문제를 다룬다. 다성 음악은 서로 다른 소리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음악으로, 인간뿐 아니라 식물 동물 기계 등 경계를 넘나들며 여러 존재와 대화하는 예술가들의 시도를 보여준다. 태초의 소리는 단순하면서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프랑스 출신 큐레이터인 부리오는 ‘관계의 미학’(1998년), ‘포스트프로덕션’(2002년) 등 저서를 내며 현대미술 담론을 이끌어 온 인물 중 하나다. 1999∼2006년 프랑스 파리의 미술관 팔레 드 도쿄의 공동 디렉터를 맡았고, 세계 각국의 주요 비엔날레를 기획했다. 광주비엔날레에 요구하는 ‘광주 정신’에 대해서는 “명백한 방식보다 간접적 방식을 택할 것”이라며 “광주가 가진 역사적 상황과 기억, 흔적을 담는 과정에서 (광주 정신도)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제15회 광주비엔날레는 내년 9월경 개최될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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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국 작가 키우는 영국 내셔널갤러리의 전략[영감 한 스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의 개막을 맞아 1일 한국을 찾은 크리스틴 라이딩 내셔널갤러리 학예실장은 ‘전시작품 중 좋아하는 작품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 난처한 듯 웃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시에 나온 작품 모두 중요한 것이지만, 굳이 하나를 꼽자면… 제가 개인적으로는 영국 미술 전문가이기 때문에 영국 작가 작품에 애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존 컨스터블(1776∼1837)의 ‘스트랫퍼드의 종이공장’이 아무래도 애착이 가는 작품입니다.” 라파엘로, 카라바조, 마네 등의 대가를 제치고 컨스터블을 꼽은 그의 답변은 국가 미술 기관의 관리자로서 당연한 답변입니다. 그러나 컨스터블이 영국 미술 기관이 사랑하는 작가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생각하면 저에겐 인상 깊은 답변이었습니다. 그 사연을 보면 미술사가 미치는 영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프랑스에서 더 인기있던 작가컨스터블의 작품 ‘스트랫퍼드의 종이공장’은 그가 태어난 지역 공장의 풍경을 소박하게 담고 있습니다. 컨스터블은 자신이 나고 자란 서퍽 지역을 소재로 많은 풍경화를 그렸죠. 그런데 그가 작업을 한 무렵은 프랑스에서 바르비종 예술가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이때 풍경화는 신화 속 이야기나 역사적인 사건을 담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컨스터블이 영향을 받았던 프랑스 화가 클로드 로랭의 ‘성 우르술라의 출항’도 종교적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성인들의 일생을 담은 13세기 책 ‘황금 전설’ 속 일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거든요. 컨스터블은 이런 대가들의 작품을 공부하다 그림을 보고 그리는 것은 ‘간접적 진실’임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죠. 그러면서 주변에 있는 풍경으로 눈을 돌립니다. 신화 속, 책 속 저 먼 곳이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있는 땅 영국의 자연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821년 지금은 컨스터블의 대표작이 된 ‘건초 마차’가 로열 아카데미 연례전에 출품됩니다. 이 그림은 판매에 실패했지만, 프랑스 예술가들의 눈에 띄게 됩니다. 테오도르 제리코는 ‘건초 마차’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외젠 들라크루아에게 털어놓았고, 들라크루아는 컨스터블의 색을 보고 자신의 그림을 고쳤다고 일기에 적습니다. 그러나 역사도, 신화도 아닌 시골 풍경이 당시 영국인들의 눈에는 촌스럽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컨스터블은 영국에서 평생 단 20점의 그림을 팔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오히려 프랑스에서는 몇 년 만에 20점도 넘는 그림을 팔았는데 말이죠. ‘건초 마차’는 후일 영국계 프랑스인 딜러가 구매해 1824년 파리 살롱에 전시했습니다. 이 작품은 샤를 10세 프랑스 국왕이 주는 금메달을 수상하기에 이릅니다. 그뿐만 아니라 현실과 일상의 정직한 아름다움을 그리고자 했던 그의 작품은 바르비종 예술과 19세기 인상파 작가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프랑스는 이때부터 세계 미술사의 주도권을 완전히 쥐게 됩니다.영국 미술사의 뒤늦은 인정영국 미술사가 놓친 거장은 컨스터블 말고도 또 있습니다. 바로 같은 전시관에서 만날 수 있는 윌리엄 터너(1775∼1851)입니다. 터너는 컨스터블과 달리 어린 나이에 인정받고, 아카데미 회원이 되어 생전에 존경받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터너가 역사화를 그렸기 때문인데요. 중요한 변화는 터너의 말년에 일어납니다. 아카데미적 회화를 그리던 그는 마지막에는 거친 바다의 파도와 공기가 일으키는 빛의 효과를 주목한, 추상화에 가까운 작품을 그립니다. 지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상파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는 시도죠. 그런데 터너의 말년 그림은 역시 영국에서는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노망난(?) 화가의 이상한 그림 정도로 여겨졌죠. 그 대신 영국에서는 19세기 라파엘 전파의 회화를 중요한 것으로 내세웠습니다. 이때 인상파 작가들이 도시의 평범한 일상을 찬양하고 현실을 노래했다면, 라파엘 전파는 다시 종교와 문학 등 과거로 돌아가고자 했죠. 회화적 기교는 뛰어나지만 세계 미술사의 흐름과는 맞지 않는 시도였습니다. 만약 컨스터블과 터너를 알아보았다면, 영국에서도 인상파를 뛰어넘는 예술가가 나올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이런 패착을 되돌리려는 움직임을 최근 10여 년간 영국 미술 기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부터 인상파까지 흐름을 보여주는 전시인 국립중앙박물관 ‘거장의 시선’전에서도 컨스터블과 터너 작품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있죠. 라파엘 전파 작품은 존 싱어 사전트의 소품 한 점만 포함돼 있습니다. 2021년 서울 노원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선보인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에서도 터너와 컨스터블을 인상파 작품에 영향을 준 작가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미술 기관이 소장한 걸작들을 전시로 구성해 해외에서 수익을 내면서 자국 미술사를 선전하는 전략도 흥미롭습니다. 미술사를 쓰는 주도권을 잡는다는 것은 곧 자국 작가들을 성장하게 하며, 자국 예술의 가치도 높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죠. 세계적 맥락에서 한국 미술사는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금요일 오전 7시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하시면 이메일로 먼저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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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폐’ 치부됐던 韓실험미술, 미술관 주인공으로 돌아왔다

    흰 상의를 입은 배우가 윤동주 김소월 나태주 모음 시집 ‘시로 배우는 예쁜 말’을 읽어 내려간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를 모은 이 책은 시 하나를 읽을 때마다 한 장씩 찢겨나가고, 찢어진 종이를 검은 양복을 입은 작가가 건네받아 흰 종이 위에 다시 쓴다. 퍼포먼스가 끝날 즈음이면 예쁜 말들은 찢어지고 구겨져서 사라지고, 텅 빈 종이는 새카맣게 차오른다.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로비에서 14일 재현된 김구림 작가(87)의 퍼포먼스 작품 ‘생성에서 소멸로’다. 김 작가가 2015년 중국 산시성 미술관의 초청을 받아 선보였던 이 퍼포먼스는 흰색과 검은색, 시가 가득했다가 사라지는 시집, 비었다가 차오르는 종이 등 대비되는 이미지를 교차시킨다. 이를 통해 고정된 개념이 존재할 수 있는지 묻는다.● 퇴폐로 치부됐던 젊은 작가들의 저항김구림, 성능경, 이강소, 이건용 등 1960, 70년대 한국 실험미술 주요 작가 29명의 작품 95점과 관련 자료 3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미국 구겐하임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청년작가연립전, 제4집단, 아방가르드협회, ST(Space&Time) 학회, 대구현대미술제 등의 과거 주요 실험미술 전시와 작품을 아우른다. 전시장 초입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의 ‘투명 풍선과 누드’(1968년), 정강자의 ‘키스미’(1967년)에는 억눌렸던 욕망을 분출했던 젊은 예술가의 패기가 담겼다. ‘투명 풍선과 누드’는 1968년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존 케이지의 음악을 배경으로 한 퍼포먼스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의 누드 배제에 대한 항의로 기획됐다. 정찬승, 강국진이 정강자의 상의를 찢으면, 관객들이 그녀의 상반신에 투명 풍선을 붙인 후 터뜨렸다. 같은 해 예술가의 등용문인 국전 심사 비리가 터지자, 세 작가는 다시 제2한강교(양화대교) 아래에 모여 구덩이를 파고 스스로를 묻었다. 퍼포먼스 작품 ‘한강변의 타살’이다. 당시엔 이러한 파격적 퍼포먼스가 펼쳐지면 ‘퇴폐 미술’이라는 비난이 이어졌고, 작가가 체포되거나 작품이 철거되곤 했다. 미술사학자 김윤수는 1973년 동아일보에 ‘전위예술은 퇴폐가 아니다’라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논란이 됐던 실험미술은 반세기가 지나 미술관의 주인공이 됐다.● 구겐하임, 해머미술관 순회전시는 총 6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나’와 논리의 세계: ST’에서는 개념적 설치미술을 선보였던 ST 학회의 활동을 소개한다. 유신정권의 언론 탄압을 비판하며 전시장으로 매일 배달된 신문의 모든 기사를 면도칼로 오려낸 성능경의 ‘신문: 1974.6.1 이후’ 등 작품을 볼 수 있다. ‘청년의 선언과 시대 전환’에서는 1960년대 후반 젊은 작가들의 실험미술 양상을, ‘도심 속, 1/24초의 의미’에서는 김구림 주도로 연극, 음악, 영화, 패션, 종교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퍼포먼스를 벌였던 제4집단의 작품을 각각 소개한다. 이밖에도 1969년 창립한 한국아방가르드협회를 다루는 ‘전위의 깃발 아래―AG’, 전통 속 모티프를 차용한 이승택의 작품을 전시하는 ‘“거꾸로” 전통’, 국내외 비엔날레를 통해 선보인 실험미술 작품을 모은 ‘청년과 지구,촌 비엔날레’가 이어진다. 전시는 9월 1일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내년 2월 1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해머미술관으로 순회한다. 김찬동 전 아르코미술관장은 “한국의 실험미술은 모더니즘에 반기를 든 세계 미술의 흐름과 맞닿았던 움직임”이라며 “단색화에 이어 한국 실험미술의 전모를 국제무대에 소개하는 발판을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7월 16일까지. 2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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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폐 미술로 불렸던 실험 미술, 미술관의 주인공 되다

    흰옷을 입은 배우가 윤동주 김소월 나태주 모음 시집 ‘시로 배우는 예쁜 말’을 읽어 내려간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를 모은 책은 시 하나를 읽을 때마다 한 장씩 찢겨나가고, 찢어진 종이는 검은 양복을 입은 작가가 건네받아 흰 종이 위에 다시 글씨로 쓴다. 시집 한 권이 끝나갈 즈음이면 예쁜 말들은 찢어지고 구겨져서 사라지고, 텅 빈 종이는 새카맣게 차오른다.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로비에서 14일 김구림 작가(87)의 퍼포먼스 작품 ‘생성에서 소멸로’가 재현됐다. 2015년 작가가 중국 산시성 미술관의 초청받아 선보였던 이 퍼포먼스는 흰색과 검은색, 시가 가득했다 사라지는 시집, 비었다가 차오르는 종이 등 반대되는 개념을 교차한다. 그러면서 정해진 개념이란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를 묻는다. ● 퇴폐 미술로 여겨졌던 젊은 저항김구림, 성능경, 이강소, 이건용 등 1960, 70년대 한국 실험미술 주요 작가 29명의 작품 약 95점, 자료 3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미국 구겐하임미술관과 공동 기획된 전시는 청년작가연립전, 제4집단, 아방가르드협회, ST 학회, 대구현대미술제 등 과거의 주요 전시와 작품을 아우른다.전시장 초입에서 볼 수 있는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의 ‘투명풍선과 누드’(1968년), 정강자의 ‘키스미’(1967년)는 억눌렸던 욕망을 분출했던 젊은 예술가들의 패기를 담고 있다. ‘투명풍선과 누드’는 1968년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존 케이지의 음악을 배경으로 이뤄진 퍼포먼스다. 정찬승, 강국진이 정강자의 상의를 찢으면, 관객들이 그녀의 상반신에 투명 풍선을 붙이고 다시 터뜨리는 순서였다.같은 해 예술가의 등용문이었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심사 비리가 터지자, 세 작가는 다시 제2한강교(양화대교) 아래에 모여 구덩이를 파고 스스로를 묻었다. 퍼포먼스 작품 ‘한강변의 타살’이다. 문화 사기꾼(사이비 작가), 문화 기피자(문화 관념론자) 등이 젊은 작가를 죽이고 있다는 항변이었다. 이러한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실험 미술은 초기 ‘퇴폐 미술’로 타블로이드 신문에 보도되고, 작가가 체포되거나 작품이 철거되곤 했다. 그리고 약 반세기가 지나 미술관의 주인공이 됐다. ● 구겐하임, 해머미술관 순회전시는 총 6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첫 주제 ‘청년의 선언과 시대 전환’이 1960년대 후반 젊은 작가들의 실험미술 양상을 소개했다면, 그다음은 김구림과 제4집단을 소개한 ‘도심 속, 1/24초의 의미’, ‘전위의 깃발 아래 -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 ‘“거꾸로” 전통’, ‘‘나’와 논리의 세계’, ‘청년과 지구,촌 비엔날레’ 등으로 이어진다.김구림의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1969), ‘현상에서 흔적으로’(1969), 하종현의 ‘작품 73-13’(1973), 이승택의 ‘무제’(1963/2018), 이건용의 ‘신체항’(2023), 성능경의 ‘신문 1974.6.1. 이후’, 이강소의 ‘무제 75031’(1975) 등을 볼 수 있다. 성능경의 ‘신문 읽기’ 퍼포먼스도 21일 미술관 로비에서 열렸다. 28일 오후 2시에는 서울관 전시실6 앞에서 이건용의 ‘달팽이 걸음’ 퍼포먼스가 진행된다.또 이 전시는 9월 1일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내년 2월 11일에는 미국 LA 해머미술관으로 순회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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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컨스터블과 영국 미술기관의 전략[영감 한 스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전 개막을 맞아 1일 한국을 찾은 크리스틴 라이딩 내셔널갤러리 학예실장은 ‘전시작품 중 좋아하는 작품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난처한 듯 웃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전시에 나온 작품 모두 중요한 것이지만, 굳이 하나를 꼽자면…. 제가 개인적으로는 영국 미술 전문가이기 때문에 영국 작가 작품에 애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존 컨스터블(1776~1837년)의 ‘스트랫퍼드의 종이공장’이 아무래도 애착이 가는 작품입니다.” 라파엘로, 카라바조, 마네 등 대가를 제치고 컨스터블을 꼽은 그의 답변은 영국 미술 기관의 관리자로서 당연한 답변입니다. 그러나 컨스터블이 영국 미술 기관이 사랑하는 작가가 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걸 생각하면 저에겐 인상 깊은 답변이었습니다. 그 사연을 보면 미술사가 미치는 영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프랑스에서 더 인기였던 작가컨스터블의 작품 ‘스트랫퍼드의 종이공장’은 그가 태어난 지역 공장의 풍경을 소박하게 담고 있습니다. 컨스터블은 자신이 나고 자란 서포크 지역을 소재로 많은 풍경화를 그렸죠. 그런데 그가 작업을 했던 무렵은 프랑스에서 바르비종 예술가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기 직전이었습니다.이 때 풍경화는 신화 속 이야기나 역사적인 사건을 담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존 컨스터블이 영향을 받았던 프랑스 화가 클로드 로랭의 ‘성 우르술라의 출항’도 종교적 테마를 담고 있습니다. 성인들의 일생을 담은 13세기 책 ‘황금전설’ 속 일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거든요.컨스터블은 이런 대가들의 작품을 공부하다가, 그림을 보고 그리는 것은 ‘간접적 진실’임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죠. 그러면서 나의 주변에 있는 풍경으로 눈을 돌립니다. 신화 속, 책 속 저 먼 곳이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있는 땅 영국의 자연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그리고 1821년 지금은 컨스터블의 대표작이 된 ‘건초 마차’가 로얄 아카데미 연례전에 출품됩니다. 이 그림은 판매에 실패했지만, 프랑스 예술가들의 눈에 띄게 됩니다. 테오도르 제리코는 ‘건초 마차’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으젠 들라크루아에게 털어 놓았고, 들라크루아는 컨스터블의 색을 보고 자신의 그림을 고쳤다고 일기에 적습니다.그러나 역사도, 신화도 아닌 시골 풍경이 당시 영국인들의 눈에는 촌스럽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컨스터블은 영국에서 평생 단 20점의 그림만을 팔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오히려 프랑스에서는 단 몇 년 만에 20점도 넘는 그림을 팔았는데도 말이죠.‘건초 마차’는 후일 영국계 프랑스인 딜러가 구매해 1824년 파리 살롱에 전시 했습니다. 이 작품은 샤를 10세 프랑스 국왕이 주는 금메달을 수상하기에 이릅니다. 뿐만 아니라 현실과 일상의 정직한 아름다움을 그리고자 했던 그의 작품은 바르비종 예술과 19세기 인상파 작가들에게까지도 영향을 주고, 프랑스는 이 때부터 세계 미술사의 주도권을 완전히 쥐게 됩니다.영국 미술사의 뒤늦은 인정영국 미술사가 놓친 거장은 존 컨스터블 말고도 또 있습니다. 바로 같은 전시관에서 만날 수 있는 윌리엄 터너입니다. 터너는 컨스터블과 달리 어린 나이에 인정을 받고, 아카데미 회원이 되어 생전에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터너가 역사화를 그렸기 때문인데요.중요한 변화는 터너의 말년에 일어납니다. 아카데미적 회화를 그리던 그는 마지막에는 거친 바다의 파도와 공기가 일으키는 빛의 효과를 주목한, 추상화에 가까운 작품을 그립니다. 지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상파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는 시도죠. 그런데 터너의 말년 그림은 역시 영국에서는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노망난 화가의 이상한 그림 정도로 여겨졌죠.대신 영국에서는 19세기 라파엘 전파의 회화를 중요한 것으로 내세웠습니다. 이 때 인상파 작가들은 도시의 평범한 일상을 찬양하고, 현실을 노래했다면 라파엘 전파는 다시 종교와 문학 등 과거로 돌아가고자 했죠. 회화적 기교는 뛰어나지만 세계 미술사의 흐름과는 맞지 않는 시도였습니다. 만약 컨스터블과 터너를 알아보았다면, 영국에서도 인상파를 뛰어넘는 예술가가 나올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이런 패착을 되돌리려는 움직임을 최근 10여 년 간 영국 미술 기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부터 인상파까지 흐름을 보여주는 전시인 국립중앙박물관 ‘거장의 시선’전에서도 컨스터블과 터너 작품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있죠. 라파엘 전파 작품은 존 싱어 사전트의 소품 한 점만 포함되어있습니다. 2021년 북서울미술관에서 선보인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에서도 터너와 컨스터블을 인상파 작품에 영향을 준 작가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이렇게 미술 기관이 소장한 걸작들을 전시로 구성해 수출하며 수익을 남기면서, 자국 미술사를 선전하는 전략도 흥미롭습니다. 미술사를 쓰는 주도권을 잡는다는 것은 곧 자국 작가들을 성장하게 하며, 자국 예술의 가치도 높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죠. 세계적 맥락에서 한국 미술사는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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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 삶, 욕망, 죽음 담긴 꽃의 도상 펼쳐진다

    아기가 신는 타래버선과 꽃신에서 풍요를 기원하던 화조도, 태양왕의 권위를 뽐내는 태피스트리와 삶의 덧없음을 나타낸 사진까지. 탐스럽고 아름답지만 언젠가는 시들어 없어지기에 더 매력적인 꽃은 예술에서 다양한 도상으로 활용되어 왔다. 흔히 ‘꽃 그림’이라고 하면 시장에서 쉽게 팔기 위한 상투적인 도상이라는 오해도 받는다. 하지만 그만큼 눈길을 끌고 사랑을 받는 게 꽃이다. 전남 지역 문화재부터 프랑스의 가장 화려한 시절 태피스트리까지 여러 작품을 통해 꽃을 만날 수 있는 전시 ‘영원, 낭만, 꽃’이 전남 광양시 전남도립미술관에서 20일 개막했다.● 루이 14세 찬양한 태피스트리이번 전시는 현대미술 작품뿐 아니라 공예품과 도자기, 불교미술까지 아우른다. 협력 기관의 면면을 봐도 갤러리·미술관은 물론이고 박물관과 사찰, 해외 기관까지 다양하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프랑스 모빌리에 나시오날이다. 모빌리에 나시오날은 루이 14세가 세운 왕립 가구관리소의 후신으로 가구 및 장식예술품 13만 점을 소장한 국립박물관이다. 지금도 프랑스 대통령, 장관, 외교관의 관저에 놓는 가구를 책임지고 있으며 베르사유, 퐁텐블로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궁궐과 기념 장소 복원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곳이 소장한 태피스트리, 원화 9점을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루이 14세 시대 궁정화가인 샤를 르브룅의 회화를 원작으로 한 태피스트리 ‘봄’도 포함됐다. 아레스와 아프로디테가 등장하는 신화 속 이야기를 모티프로 악기와 꽃의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20일 전시장에서 만난 아르노 드니 모빌리에 나시오날 컬렉션 담당자는 “당시 베르사유궁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빛이 닿는 부분은 금사로 표현한 아주 화려한 작품”이라며 “각 소재마다 전문 장인들이 협업해 수년에 걸쳐 제작된다”고 했다.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의 원화와 태피스트리, 모네의 ‘수련’을 원작으로 한 태피스트리도 선보인다.● 해남 대흥사 초의선사 불화 첫 외출전시는 총 5개 섹션, ‘연화화생, 재생의 염원’ ‘자유와 역동, 구체적 삶의 복귀’ ‘시대를 넘어서’ ‘미래로부터’ ‘삶의 확장, 가능성을 향해’로 구성된다. 이연우 학예연구사는 “꽃의 의미가 다양하듯 삶의 의미도 계속 변하는 가운데,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꿈과 감정에 충실한 태도를 ‘낭만’으로 봤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처럼 전시는 꽃을 주제로 삶과 욕망, 염원, 죽음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비교해 보도록 한다. 그중 전시의 초입을 장식하는 것은 연꽃을 모티프로 한 전남 해남 대흥사의 소장품인 ‘십일면천수관음보살도’와 ‘준제관음보살도’다. 두 작품은 시서화와 다도에 능했으며, 소치 허련의 스승이었던 초의선사가 그린 것으로 전한다. 두 작품에서 연꽃은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청정한 꽃을 피워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불성을 의미한다. 대흥사 밖에서 두 불화가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민속박물관과 서울공예박물관이 소장한 꽃신, 귀주머니, 보자기, 모란도와 미국 팝 아티스트인 제임스 로젠퀴스트, 여수의 동백꽃 작가 강종열과 김상돈 등 동시대 작가 작품도 볼 수 있다. 죽음과 파괴적 감성을 자아내는 미국 사진 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 연작과 동전을 바닥에 흩뿌려 떨어진 꽃잎을 연상케 하는 박기원의 설치 작품 ‘대화’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11월 5일까지. 5000원.광양=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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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이 14세가 찬양한 ‘태피스트리’, 해남 대흥사 ‘불화’ 만난다

    아기가 신는 타래버선과 꽃신에서 풍요를 기원하던 화조도, 태양왕의 권위를 뽐내는 태피스트리와 삶의 덧없음을 나타낸 사진까지. 탐스럽고 아름답지만 언젠가는 시들어 없어지기에 더 매력적인 꽃은 예술에서 다양한 도상으로 활용되어 왔다.흔히 ‘꽃 그림’이라고 하면 시장에서 쉽게 팔기 위한 게으르고 상투적인 도상이라는 오해도 받지만, 그만큼 눈길과 사랑을 받는 것이 꽃이다. 이런 꽃을 전남 지역의 문화재부터 프랑스의 가장 화려한 시절 태피스트리까지 여러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전시 ‘영원, 낭만, 꽃’이 전남 광양시 전남도립미술관에서 20일 개막했다. ● 루이 14세 찬양한 태피스트리이번 전시는 현대미술 작품뿐 아니라 공예품과 도자기, 불교미술까지 아우른다. 협력 기관의 면면을 봐도 갤러리·미술관은 물론 박물관과 사찰, 해외 기관까지 다양하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프랑스 모빌리에 나시오날이다.모빌리에 나시오날은 루이 14세가 세운 왕립 가구관리소의 후신으로 가구 및 장식예술품 13만 점을 소장한 국립박물관이다. 지금도 프랑스 대통령, 장관, 외교관이 머무는 관저에 놓는 가구를 책임지고 있으며 베르사유, 퐁텐블로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궁궐과 기념 장소 복원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곳이 소장한 태피스트리와 원화 9점을 전시에서 볼 수 있다.여기에는 루이 14세 시대 궁정화가인 샤를 르 브룅의 회화를 원작으로 한 태피스트리 ‘봄’도 포함됐다. 아레스와 아프로디테가 등장하는 신화 속 이야기를 모티프로 악기와 꽃의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20일 전시장에서 만난 아르노 드니 모빌리에 나시오날 컬렉션 담당자는 “당시 베르사유궁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빛이 닿는 부분은 금사를 이용한 아주 화려한 작품”이라며 “각 소재마다 전문 장인들이 협업해 수 년에 걸쳐 제작된다”고 설명했다.이밖에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의 원화와 태피스트리, 모네의 ‘수련’을 원작으로 한 태피스트리도 선보인다. ● 전(傳) 초의선사 불화도 첫 외출전시는 총 5개 섹션, ‘연화화생, 재생의 염원’, ‘자유와 역동, 구체적 삶의 복귀’, ‘시대를 넘어서’, ‘미래로부터’, ‘삶의 확장, 가능성을 향해’로 구성된다. 이연우 학예연구사는 “꽃의 의미가 다양하듯 삶의 의미도 계속해서 변하는 가운데,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꿈과 감정에 충실한 태도를 ‘낭만’으로 보았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처럼 전시는 꽃을 주제로 삶과 욕망 염원 죽음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비교해보도록 한다.그 중 전시의 초입을 장식하는 것은 연꽃을 모티프로 한 전남 해남 대흥사의 소장품인 ‘관음보살도’와 ‘준제보살도’다. 두 작품은 시서화와 다도에 능했으며, 소치 허련의 스승이었던 초의선사가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두 작품에서 연꽃은 진흙 속에 뿌리를 박고 청정한 꽃을 피워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불성을 의미한다. 대흥사 밖에서 두 불화가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밖에 국립민속박물관·서울공예박물관이 소장한 꽃신, 귀주머니, 보자기, 모란도와 미국 팝 아티스트인 제임스 로젠퀴스트, 여수의 동백꽃 작가 강종열과 김상돈 등 동시대 작가 작품도 소개된다. 죽음과 파괴적 감성을 자아내는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 연작과 동전을 바닥에 흩뿌려 떨어진 꽃잎을 연상케 하는 박기원의 설치 작품 ‘대화’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전시는 11월 5일까지. 5000원.광양=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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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범한 사람들 얼굴에 담긴 시대의 아픔

    프랑스 파리 일대에 대규모 폭동이 일었던 2005년 10월. 이 무렵 프랑스 출신 사진가·거리예술가 제이알(JR·40)은 몽페르메유 지역 청년들의 얼굴 사진을 확대 출력해 거리에 붙이는 프로젝트 ‘세대의 초상’을 하고 있었다. 성난 거리의 모습을 담은 방송 카메라에 제이알의 사진이 포착됐다. 그를 눈여겨본 한 매체가 자동차를 불태우는 청년들을 촬영해 달라고 제안하지만, 제이알은 이를 거절한다. 그 대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지역 청년들의 모습을 거리에 전시했다. 거리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로 사회적 문제를 다뤄 주목받는 작가 제이알의 개인전 ‘제이알: 크로니클스’가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가 스물한 살이던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작업한 ‘세대의 초상’을 비롯해 최근 미술관과 협업해 만든 대형 사진, 영상, 기록 등 140여 점이 전시됐다. 파리 외곽에서 동유럽과 튀니지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는 2001년부터 거리에서 그라피티 작업을 하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습득한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자신이 촬영한 사진들을 건물 외벽에 붙이고 빨간 스프레이로 액자를 만들어 ‘거리 전시회’를 열면서 작가가 됐다. 불법 사진전과 그라피티로 경찰에 수십 번 체포되는 경험을 한 작가에게선 미지의 거리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함이 엿보인다. 이 밖에 노년층의 얼굴을 강렬하게 담아낸 ‘도시의 주름’, 여성의 얼굴과 눈을 찍은 사진을 크게 프린트해 여성들의 강인함을 표현한 ‘여성은 영웅이다’ 연작 등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8월 6일까지. 1만2000∼2만 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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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옛돌박물관, ‘뮤지엄 웨이브’로 재개관

    문인석과 장군석, 동자석 등 석조유물 1000여 점을 전시했던 서울 성북구 우리옛돌박물관 실내전시관이 17일 ‘뮤지엄 웨이브’로 새롭게 개관했다. 2015년 문을 연 우리옛돌박물관은 3층 규모 실내전시관과 야외전시관으로 구성됐다. 이 중 실내전시관을 정보기술(IT) 기업 우리넷이 장기 임차해 새 이름을 붙이고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한다. 개관전 ‘SUBLIME 숭고’는 미디어아트와 설치, 조각, 회화 등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중국계 작가 재키 차이의 회화 작품과 메모 악텐, 에얄 게버의 미디어 아트 ‘Waves’, 김택상의 회화 등이 전시된다. 배우 케이트 블란쳇과 영화 감독 테런스 맬릭이 제작에 참여한 설치 작품 ‘이볼버’는 3층 공간 전체를 활용했다. 인간의 호흡과 몸의 순환을 대형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영상과 소리로 표현해 완전히 몰입해 체험할 수 있다. 우리넷은 2000년 삼성전자 출신 연구원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유무선 통신 인프라 기업이다. 2022년 계열사로 K컬처 콘텐츠 기업인 ‘제이스테어’를 설립하고, 미술품 전시·매니지먼트 기업인 ‘스타트아트코리아’를 인수했다. 최종신 우리넷 대표는 “유형의 장비를 다루는 기존 사업에서 나아가, 그 장비를 통해 오가는 무형의 문화 콘텐츠에도 도전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넷은 뮤지엄 웨이브를 전시, 공연, 패션쇼 등을 위한 장소로 대관도 할 계획이다. 우리옛돌박물관에 전시됐던 석조 유물은 야외 공간에서 계속해서 감상할 수 있으며, 입장권(3000원)도 별개로 운영한다. ‘SUBLIME 숭고’전은 입장료 1만∼2만 원이며, 9월 17일까지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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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흐가 슬픔에 잠겨도…그를 지켜준 사람들[영감 한 스푼]

    “작업은 잘 되고 있어. 그림 두 점을 완성했는데, 막 자른 풀밭을 그린 거야.” 1890년 5월 4일. 남부 프랑스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에서 언급한 그림 두 점 중 하나가 바로 국립중앙박물관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전에서 볼 수 있는 사진 속 작품입니다. 고흐의 ‘풀이 우거진 들판의 나비’는 세상과 떨어져 병원에서 지내며 본 그곳의 정원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흐는 두 달 뒤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말년에 많은 작품을 남겼고, 그 중 대부분이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특유의 스타일의 것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 ‘까마귀가 나는 밀밭’ 같은 대표작들이죠. 오늘은 고흐가 잔디밭을 그릴 무렵 겪었던 삶과 그런 그를 지지하고 사랑해주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멀리 보이는 사람의 흔적 고흐가 ‘막 풀을 자른 모습’을 그렸다고 한 것처럼 이 그림에서는 잘려나가 뻣뻣하게 뻗어나간 풀들의 묘사가 화면 절반을 차지합니다. 강렬한 선과 검은색이 곳곳에 자리한 풀들의 모습에서 생명력도 느껴지지만, 불편하고 날선 감각도 전해집니다. 작품 제목을 보면 ‘나비’를 그린 것을 알 수 있지만, 잘린 풀들의 거친 선 사이에서 파묻힐 듯 그려진 나비들은 더욱 연약해 보입니다. 저는 이 작품에서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바닥을 바라보는 고흐의 슬픔이 가득 느껴졌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듯한 그의 외로움을 극대화하는 것은 저 멀리 보이는 길과 나무의 흔적입니다. 만약 펼쳐진 들판만 있었다면 생명력과 활기가 느껴졌을 텐데, 저 멀리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보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죠. 누군가가 다니는 길이 있다는 건 그곳에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저 멀리 그려진 길은 누군가와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만 남긴 채, 혼자 떨어져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고흐의 인생 스토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선입견이 작용했을 수 있지만, 이 작품을 보면 병원 정원에서 홀로 땅을 바라보는 고흐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고흐가 남부 프랑스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은 1889년 5월부터 1890년 5월까지였습니다. 즉 이 그림을 그린 것은 병원에서 나오기 직전의 상황이었죠. 그는 1888년 잠시 작업실을 함께 썼던 폴 고갱과 관계가 악화된 후로 줄곧 정신 질환에 시달렸습니다. 고갱이 그와 함께 머물고 있는 아를을 떠나려고 하자 자신의 귀를 잘라버린 사건이 유명하죠. 그 사건 후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고흐는 결국 마을 주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 등을 이유로 아를을 떠납니다. 그리고 새롭게 정착한 생 레미에서 다시 자발적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됩니다. 극심한 외로움과 불안에 시달렸던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그를 지지하고 도와주었던 사람들 그러나 고흐는 병원에서도 풀을 깎은 정원을 그렸듯, 그림 그리기를 끊임없이 이어 갔습니다. 갇혀 있는 중에도 병원 내 외부의 여러 곳을 캔버스에 남겼고, 자신을 진찰한 의사의 초상도 그렸습니다. 나중에는 그릴 소재가 떨어지자 동생 테오에게 부탁해 이전에 그렸던 드로잉이나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보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기도 합니다. 아래 작품은 고흐가 밀레의 씨뿌리는 사람들을 보고 그린 것입니다. 그러나 고흐는 정신병원에서 나온 후 두 달 뒤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쏘았고, 동생 테오가 달려왔지만 며칠 뒤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 슬픔은 영원히 계속될 거야”라고 하네요. 이렇게 비극적인 마지막, 예술가로서의 고통으로 고흐의 삶과 작품이 지금까지 잘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비록 시간은 걸렸지만 많은 작품들이 남아 사람들을 만나고, 그가 가졌던 생각들이 알려지게 된 데에는 동생 테오의 변함없는 지지와 신뢰가 있었습니다. 우선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대부분이 그대로 남아 그가 가졌던 감정과 예술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 고갱을 아를로 데려와 형과 함께 작업을 하도록 설득한 데에도 테오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료 예술가들이 인정과 격려를 해주었던 흔적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고흐가 파리에서 만났던 툴루즈 로트렉과의 일화입니다. 1890년 1월 프랑스의 한 비평지에는 고흐를 ‘천재’라고 칭찬하는 글이 실립니다. 또 그다음 달에는 벨기에 브뤼셀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모임인 Les XX의 연례전에 초청을 받아 전시에도 참여하죠. 그런데 전시가 개막하는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한 벨기에 작가가 고흐의 작품을 모욕합니다. 이때 툴루즈 로트렉이 그에게 항의하며 그 말을 취소하지 않으면 결투 신청을 하겠다고 맞섰습니다. (이 시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보면 이렇게 종종 작품을 두고 결투를 신청했다는 일화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결투는 둘 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로트렉의 곁에 있던 화가 시냑도 만약 로트렉이 지면 그다음에는 자신과 싸워야 할 것이라며 항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 예술가는 사과하고 자리를 떴다고 합니다. 위 작품은 고흐가 조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아기의 방에 걸어줄 것을 생각하며 그린 작품입니다. 그가 예술가로서, 혹은 타고난 성질로 겪은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가족과 친구들. 그런 지지를 바탕으로 고흐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예술 세계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막 베어진 풀냄새가 날카롭지만 싱싱하게 다가오는 작품 앞에서, 그의 삶이 마주했던 복잡한 단면들을 그려보게 됩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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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산방 특별전서 만나는 한국현대미술

    한국화 표구 대가이자 동산방화랑 설립자인 동산 박주환(1929∼2020)은 1980년대부터 미술관을 만들기를 꿈꿨다. 서울 종로구 환기미술관 옆 조그마한 부지도 마련하고, 표구 연구소와 전시장을 조성할 구상도 했지만 사립미술관 운영이 만만치 않은 현실에 부딪혀 끝내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 결국 미술관에 담고자 했던 작품들은 서울 종로구 동산방화랑 6층 수장고에 줄곧 보관되었고, 아들 박우홍 대표(71)가 2021년, 2022년 두 번에 걸쳐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면서 최근 관객을 만났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는 ‘동녘에서 거닐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을 통해서다. 아버지가 남긴 작품 209점에 이어 최근 15점을 추가 기증하기로 한 박 대표를 13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만났다. 그는 “수장고를 정리하다가 배접만 한 상태로 말려 있던 작품을 새로 발견해 기증하게 됐다”고 말했다. 노석 신영상(1935∼2017)과 1970년대 서울대 출신 여성 작가 3명의 그룹전인 ‘삼인행’에 출품됐던 작품 등이다. 추가 기증은 현재 심의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작품은 한국화 154점, 회화 44점, 조각 6점, 판화 4점, 서예 1점이다. 여기에는 김규진(1868∼1933)부터 현대 미술가 유근택까지 한국화 주요 작가의 다양한 작품이 포함됐다. 전시에서는 동산이 197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청전 이상범의 ‘초동’을 포함해 90여 점을 선보인다. 박 대표는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 4학년이었던 1976년부터 동산방화랑에서 일했다. 그는 ‘군대 3년을 제외하고 40여 년을 아버지 밑에서 심부름한 입장’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말년에 편찮으실 때 ‘기증을 해도 활용이 안 되면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난다”며 “그 말은 너무 부담 갖지 않고 작품을 팔아도 된다는 의미였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뜻을 지키고 싶었다는 그는 “다행히 미술관에서 화상으로서는 처음으로 기증을 받아줬고, 또 특별전까지 열게 돼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12일까지. 무료.과천=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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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산청과시장서 ‘이브의 사과’ ‘로봇 감자 나르기’ 구경해요”

    매일 새벽 청과물이 모이는 도매시장에서 채소와 과일을 주제로 한 예술 전시가 열리고 있다. 마산청과시장의 다섯 번째 예술 프로젝트 ‘소과도전(蔬果圖展)’이 9일 경남 창원내서농산물도매시장 2층 아트스튜디오에서 개막했다. 전시에서는 권순철 서용선 이강우 이기진 작가가 각자의 시선으로 해석한 채소와 과일을 작품으로 선보인다. 권순철 작가는 과일을 탄생과 죽음을 겪는 생명체로 바라본 ‘어느 과일의 넋’과 역사 속 사과의 의미를 극적으로 풀어낸 ‘이브의 사과’를 내놓았다. 이강우 작가는 명절을 앞두고 인파로 가득 찬 시장의 모습을 수차례 오가며 사진으로 포착했다. 상인들의 생활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을 담고자 했다.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이자 가수 씨엘의 아버지로 유명한 이기진 작가는 화려한 색채의 ‘로봇 감자 나르기’ 등 작품을 선보인다. 서용선 작가의 ‘수박’은 시장에서 판매되기 위해 라벨이 붙은 수박의 겉모습을 담았다. 서 작가의 ‘마산정물’은 2016년 이곳 시장에서 머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때 그린 작품이다. 마산청과시장은 2016년부터 예술가가 머물며 작업하는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전시회도 열고 있다. 전시는 2019년까지 열렸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중단됐다가 올해 다시 시작됐다. 지역에서 보기 드문 전시를 이어오는 데에는 안성진 대표의 노력이 있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서울대사범대부설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가업을 이어받은 안 대표는 “백남준이 만든 사카모토 류이치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예술에 빠져들었다”며 “경영에 창의성이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예술을 가까이하며 영감을 얻으려 한다”고 했다. 7월 1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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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국의 역사 들춘 거장… ‘잿빛으로 변하는 금빛 들판’ 작품 꺼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빛이 바랜 금빛의 들판 한가운데 검은 공터가 펼쳐져 있다. 이 공터의 안에는 불에 그슬린 지푸라기가 타다 남은 머리카락처럼 납작하게 붙어 있다. 가장자리에는 가느다란 불꽃이 활활 타오른다. 마치 남은 금빛 들판도 조금씩 천천히 삼킬 듯이…. 독일 출신의 현대미술 거장 안젤름 키퍼(78)가 1981년 그린 작품 ‘너의 잿빛 머리칼, 슐라미트’(슐라미트)가 갤러리 거고지언 홍콩에서 처음 공개됐다. 거고지언 홍콩은 8월 5일까지 키퍼의 개인전 ‘hortus conclusus(닫힌 정원)’를 열고 있다. 키퍼가 홍콩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2012년 이후 11년 만이다.● 독일의 어두운 역사 들춘 ‘슐라미트’ 거고지언 홍콩에서 지난달 30일 만난 닉 시무노비치 거고지언 홍콩 시니어 디렉터는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들을 프랑스 파리 근교 크루아시쉬르센에 있는 작업실에 직접 찾아가 키퍼와 함께 선정했다”고 말했다. 갤러리에는 키퍼의 대형 작품 8점이 걸려 있었다. 그중 ‘슐라미트’는 아시아 갤러리 전시에서 보기 힘들었던 1980년대 작품이다. 그는 “키퍼가 이번 전시를 위해 슐라미트를 출품하기로 하면서 이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슐라미트’는 키퍼가 루마니아 출신 시인 파울 첼란(1920∼1970)의 시 ‘죽음의 푸가’에서 영감을 얻었다. 유대인 출신의 첼란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홀로코스트를 겪었다. ‘죽음의 푸가’는 강제 수용소 내 죽음의 공포와 불안을 표현한 작품으로, ‘전후 유럽 문학의 게르니카’로 불린다. 키퍼는 이 시를 인용해 독일의 어두운 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을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점 제작해 왔다. ‘슐라미트’도 그중 하나다. 특히 ‘죽음의 푸가’에는 ‘너의 금빛 머리칼 마르가레테’, ‘너의 잿빛 머리칼 슐라미트’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금빛은 독일인, 잿빛은 유대인을 상징한다. 슐라미트는 유대인 여성들이 많이 쓰는 이름이다. 금빛 지푸라기에 불꽃이 일고, 이미 불에 타 잿빛으로 변한 지푸라기를 교차한 키퍼의 작품은 고통스러운 역사를 끄집어내 독일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슐라미트’도 그런 맥락에 놓인 작품이다.● 역설적 아름다움 담은 예술 세계키퍼의 예술은 어두운 역사를 고발하거나 단편적으로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숨은 이중성과 인간의 면모를 복합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에는 역사, 예술, 철학, 과학 등 심층적 해석이 덧붙여지고 키퍼는 그것을 시각 언어로 종합한다. ‘슐라미트’에 금빛과 잿빛이 한데 뒤엉켜 묘사된 것처럼. 이번 전시에선 빈센트 반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낫이 있는 밀밭’(2014년),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치명적인 곰팡이를 주제로 한 ‘Ignis Sacer(성 안토니오의 불·2016년)’도 볼 수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게르하르트 리히터, 게오르그 바젤리츠 등 독일 작가들과 함께 20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한다. 2007년에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조르주 브라크(1882∼1963)에 이어 생존 예술가로는 역사상 두 번째로 작품을 선보였다. 지난해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두칼레 궁전에 최초로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했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는 독일 영화감독 빔 벤더스가 키퍼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발표하기도 했다.홍콩=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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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두아르 마네가 사랑한 삶의 순간들[영감 한 스푼]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우리가 살면서 행복하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요?누구나 쉽게 갖지 못하는 걸 쟁취했을 때,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나를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일까요?그런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그런 때에 느끼는 감정은 행복함 보다는 우월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우월감은 이내 다른 사람들의 질투 어린 시선 속에 외로움으로 변하기도 하죠.행복하고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건 의외로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보다 일상의 잔잔한 순간에서 올 때가 있습니다.비가 내린 뒤 물이 가득해 찰랑이는 호수에 햇볕이 내리쬐는 걸 바라볼 때, 밤새 펑펑 내려 무릎까지 쌓인 눈을 처음으로 밟을 때,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좋아하는 사람과 광화문광장에서 캔맥주 한 잔을 들이킬 때….오늘은 19세기 인상파를 이끌었던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아름다운 삶의 한 순간에 관한 그림을 살펴보겠습니다.맥주 두 잔을 손에 든 여자이 그림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무엇인가요?바로 맥주 두 잔을 손에 들고 있는 여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무대를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그녀만 관객을 향해 얼굴을 보이고 있죠. 거기에 그녀가 들고 있는 맥주잔의 반짝이는 질감과, 앞치마와 소매의 흰 천을 칠한 거친 붓터치가 더욱 시선을 끌어당깁니다.이 그림은 원래 마네가 19세기 중반 파리에서 모든 계층이 즐겨 찾았던 카페 겸 공연장인 ‘카페 콩세르’를 그리려고 한 것입니다. 마네가 1870년 새로 마련한 작업실이 이런 카페 콩세르에 가까웠는데요. 1872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1883년까지 로컬 식당, 카페, 카페 콩세르를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합니다.그런데 이 작품은 원래 그렸던 그림의 오른쪽 절반입니다. 작업을 하던 마네가 작품을 절반으로 뚝 잘라버리기로 결심한 건데요.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수정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화면 중앙에 푸른 스모킹 양복을 입은 남성의 옷을 살펴볼까요. 오른쪽 부분에 직선처럼 색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죠? 마네가 그림을 그리다 이 부분을 캔버스를 덧대어 추가한 영역입니다.즉 원래 작품에서는 맥주잔을 든 여자가 오른쪽 구석에 있었지만, 오른쪽 부분을 더하면서 이 그림의 주인공이 된 것이죠.마네는 파리의 한 카페 콩세르에서 ‘맥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여러 손님에게 재빠르게 술잔을 건네는’ 웨이트리스의 기술에 감탄하고 그녀를 그리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카페 콩세르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에게 포즈를 취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웨이트리스는 자신의 ‘보호자’가 함께 대동하고, 모델료를 받는 조건으로 그의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해주었습니다. 그림 속 푸른 스모킹 양복을 입은 남자가 그 보호자였다고 합니다. 마네는 왜 맥주잔을 든 여자를 이렇게 크고 멋지게 그린 걸까요?시간을 초월하는 몸짓이 그림에서 더 흥미로운 건 단순히 맥주잔을 그린 여자를 그렸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우선 마네가 오른쪽 캔버스 조각을 더하면서, 여자가 든 맥주잔은 하나에서 둘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여자의 시선을 따라 관객의 시선은 오른쪽으로 흐르고, 흰 앞치마를 따라 남자의 뒷모습으로 넘어갑니다.그리고 이 남자가 들고 있는 파이프 담배를 따라가면 무대로 시선이 흐르죠. 그리고 그 사이에는 회색 모자를 쓴 남자, 머리 장식을 한 여자, 또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사람들로 분주한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여기에 무대 위 서 있는 무용수가 막 몸을 돌릴 것처럼 역동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죠.즉 웨이트리스는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른손으로 테이블에 맥주잔 하나를 놓으면서, 왼손에 놓인 두 개의 맥주잔을 어디에 놓을지 쳐다보고 있죠.즐기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어느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일에 몰두한 모습입니다. 마네는 그러한 웨이트리스의 모습에 감명을 받고, 그녀를 그림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그러한 몸짓을 마치 스냅샷 사진을 찍은 것처럼 남기기로 결정했습니다.이러한 결정의 배경을 단순하게 말한다면, ‘인상파 회화가 순간을 포착하는 사조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상파 이전의 회화는 왕의 대관식, 전쟁에서 승리한 순간, 신과 성인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 등 역사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진 것만 그렸고, 인상파는 이것에 반기를 든 것이기 때문이죠.그러나 단순히 반기를 든 것을 넘어 마네는 이런 삶의 몰두하는 순간 속에 아름다움과 불멸이 있다고 믿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왕관과 권위와 명예, 이런 것들은 죽음과 함께 스러지는 것이며, 생존을 위해 동물적 감각을 발휘하는 사람들의 몸짓에서 마네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꼈던 것이죠.밀란 쿤데라의 소설 ‘불멸’에도 비슷한 대목이 등장합니다. 불멸은 작가가 우연히 본 60대 여성의 몸짓에서 시작합니다. ‘그 몸짓 덕택에, 시간에 구애되지 않는 매력의 정수가 촌각의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이상하리만치 감동했다. 그 때 나의 뇌리에 아녜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그리고 이 독특한 몸짓 속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엮어가며 소설은 전개되죠. 그러면서 우리의 기억에 남는 것은 구구절절한 이야기인가, 아니면 순간 뇌리에 강렬하게 박힌 이미지인가를 탐구합니다.살아있는 모든 인간은 불멸을 꿈꾸지만 언젠가는 끝을 맞이합니다.그런 가운데 영원히 남겨지는 것은 살아있는 순간 함께했던 찰나의 기억들이라는 것.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이미지라는 것.마네는 그런 솔직하고 현실적인 인생의 순간들을 캔버스에 아름답게 남기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마네의 작품 ‘카페 콩세르의 한 구석’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전에서 직접 감상할 수 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3-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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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이제는 뉴노멀… 유연근무를 위한 지침서

    팬데믹 기간 동안 미국인의 42%는 원격 근무를 했다. 그간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업무를 하는 것에 대한 연구는 있었지만, 원격 근무의 실행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 때문에 많은 직장인들은 일과 생활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외출도 못 하는 상태에 놓이면서 오히려 집이 아닌 ‘사무실에서 갇혀 살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두 저자는 팬데믹 이전부터 원격 근무 가능성을 시험했다. 2017년 사무실이 있었던 뉴욕 브루클린을 뒤로하고 미국 서북부 몬태나주에 정착해 재택 근무를 했다. 그 결과 원하는 시간대에 일을 할 수 있는 유연성은 얻었지만, 업무량은 더 많아졌다고 회고한다. 일터의 배경이 좀 더 아름다워졌을 뿐 뉴욕에서 했던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현실적 선택지가 되어버린 재택 근무를 유용하고 효과적으로 만들 방법을 탐구한다. 사무실 근로자, 관리자, 경영자, 연구자, 컨설턴트를 인터뷰하고 학계 연구 결과와 다양한 회사의 사례도 참고했다. 이를 통해 재택 근무, 원격 근무, 하이브리드 근무 등 유연 근무제의 현실과 가능성, 장점을 파헤쳤다. 그 결과 유연 근무를 위해서는 업무 유연성, 생산성, 효율성에 대한 경영자의 태도와 사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거의 노동 유연화는 그 혜택이 전부 회사의 몫으로 돌아갔지만, 2020년대에는 꼭 해야 할 업무와 그렇지 않은 것을 따져보고 그 선택지를 근로자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 차원에서 업무와 일상을 구별하는 튼튼한 ‘가드레일’을 설치하고, 유연근무 관련 담당자를 배치하며, 효율적인 협업 툴을 활용해 직원들의 업무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군가가 집안일을 대신해 줄 수 있는 남성을 전제로 한 오전 9시∼오후 6시 근무 형태가 아니라, 여성 등 양육자도 오전에 아이를 보고 한낮과 저녁 시간 이후에는 일을 할 수 있는 등 다양한 구성원을 배려하는 회사가 앞으로는 업무 효율을 달성하고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것. 창의성과 다양성이 중요한 미래에 유연한 근무를 위한 장기 투자에 나서라고 제안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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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긍정 에너지가 사회 변화시킨다”… 30대 韓여성 3인 기획전

    “우리 사회는 폭력, 파괴 등 부정적인 것은 잘 묘사하지만 기쁨과 긍정적 에너지를 논하는 것은 어색해합니다. 기쁨은 재미, 행복과는 또 다른 좀 더 복잡한 개념이죠.”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즐겁게! 기쁘게!’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추스 마르티네스의 설명이다. 스위스 북서부응용과학대(FHNW)의 아트인스티튜트 학장인 그는 스위스 작가 하이디 부허(1926∼1993) 전문가로, 부허의 회고전과 맞물려 한국의 젊은 여성 작가를 초청한 기획전을 만들었다. 기쁨을 전면에 내세운 전시의 주인공은 박론디, 박보마, 우한나 작가다. 모두 30대 여성인 이 작가들에 대해 마르티네스는 “오롯이 변화해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변신’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친밀함과 긍정의 에너지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여기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박보마의 ‘결혼식의 영혼’은 헝클어지고 무너진 버진 로드를 형상화했다. “아무리 뻔한 결혼식이라도 참석하면 눈물이 나는 경험이 신기했다”는 작가는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온 의례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는다. 마르티네스는 “남녀의 결혼식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예술가와 사회 등 다양한 것들의 결합으로 의미가 확장될 수 있다”고 했다. 우한나는 천을 주재료로 여성의 신체 기관을 모티프로 한 조각 작품 ‘블리딩7’, ‘젖과 꿀―3’을 선보인다. 산뜻한 색채의 거대한 조각들은 숨기거나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졌던 신체를 전면으로, 부드럽지만 강하게 내세운다. 가로로 긴 캔버스에 달리는 말과 그 위에 널브러진 사람들을 그린 박론디의 회화 ‘나는 지치지 않아. ∼생각했다’는 노동에 잠식되면서도 강박적으로 일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담았다. 이 회화 옆에는 손목시계를 올려놓은 ‘반복하는 Y2K’를 뒀다. 두 작품을 통해 때가 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는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고찰한다. 25일까지. 5000∼1만 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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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장 넘어 아시아 미술 중심지 꿈꾸는 홍콩[영감 한 스푼]

    홍콩은 아트페어와 글로벌 갤러리, 경매까지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지로 여겨집니다. 수년 전 아트페어 취재차 홍콩을 방문했을 때 정작 좋은 미술품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은 없다는 사실을 알고 꽤 당황한 기억도 있습니다. 최근 홍콩을 가보니 중국 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품을 볼 수 있는 ‘홍콩고궁문화박물관’과 현대미술관인 ‘M+’가 시주룽(西九龍)문화지구에 문을 열었습니다. 시주룽문화지구는 홍콩을 아시아의 문화 허브로 만들겠다는 야심 아래 2000년대 초반부터 개발이 시작된 곳입니다. 최근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며 새로운 관광지로 떠올랐습니다. 이러한 홍콩의 분위기에 대해 현장에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 출신 큐레이터인 정도련 M+ 부관장, 그리고 백남준아트센터의 첫 번째 학예실장을 지냈던 토비아스 베르거 타이쿤 큐레이터입니다.“M+, 아시아의 첫 글로벌 시각 문화 뮤지엄” 정도련 부관장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 한국인 최초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 큐레이터로 일했고, 10년 전부터 M+에 합류해 준비부터 개관까지 함께했습니다. 정 부관장은 M+에 대해 “시각 미술뿐 아니라 건축·디자인, 영상 등 세 분야를 다룬다는 점에서 아시아 최초의 시각 문화를 다루는 글로벌 미술관”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직접 찾은 M+ 미술관은 영국 테이트모던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헤어초크&드뫼롱’이 맡았는데 인상적인 전시 공간이 돋보였습니다. 그에게 소장품, 전시 기획, 프로그램 중 M+가 중점을 두는 부분을 묻자 “다 중요하지만 역시 소장품이 기본”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M+는 지금 이곳이 황무지였던 2012년부터 소장품을 모으기 시작했고, 그중에서도 1970년대 중후반부터 최근까지 중국 현대미술의 태동과 발전의 궤적을 보여주는 울리 지크(중국 현대미술을 세계에 소개한 것으로 유명한 스위스 출신 컬렉터) 컬렉션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시각 문화’에 관한 미술관이기 때문에 홍콩 영화 황금기의 대중문화와 관련된 것도 수집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만 특정 국가나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홍콩에서 시작해 중국 전체를 보고, 그 후 동북아, 동남아, 남아시아와 서아시아까지 넓게 퍼져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M+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한국인으로 홍콩 미술관을 이끌게 된 사연도 궁금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인문학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미술사 개론 수업을 들었다가 빠져들었습니다. “어릴 때 그림에 소질이 있어 ‘예술고등학교에 가라’는 말도 들었죠. 그러다 미술사 수업에서 ‘이미지를 언어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마술처럼 느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학자의 길이 외롭다고 느끼던 차에 미술관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되면서 큐레이터의 길을 갑니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워커아트센터, MoMA를 거쳐 M+까지 오게 된 것이죠. 그는 글로벌 미술계로 진출하고 싶은 젊은 예술가와 큐레이터에게 “중요한 기관들의 움직임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또 개인의 커리어를 넘어 넓은 시야로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감옥을 개조한 미술관, 타이쿤다음으로 찾은 장소는 문을 연 지 5년 된 복합문화공간 ‘타이쿤’이었습니다. 홍콩 센트럴에 위치한 이 장소는 옛 경찰서와 교도소를 리모델링한 독특한 곳입니다. 타이쿤의 현대미술 전시장에서는 호주 출신 작가 퍼트리샤 파치니니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베르거를 만났습니다. 베르거는 개관 전 M+에서도 일했고, 홍콩의 유명한 비영리 예술 공간인 ‘패라 사이트’에도 있었습니다. 경매장과 갤러리의 예쁘고 얌전한 작품을 보다 타이쿤에서 파치니니의 조각을 보니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지만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감각을 자아내는 조각들은 독특한 시각 언어로 ‘모성’과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전시가 열리는 장소가 과거에는 여성 감옥이었다는 점도 특별했죠. 베르거는 5년간 1200만 명이 타이쿤을 찾았고 대부분이 10, 20대 젊은 관객이라고 했습니다. 우선 공간이 주는 특별함, 빌딩 숲으로 빽빽한 홍콩에 몇 안 되는 야외 공간이 있다는 점,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했습니다. 홍콩의 미술 기관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베르거는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일본 도쿄 현대미술관 등 나라마다 여러 기관이 있지만 국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며 “M+를 비롯한 홍콩의 기관들은 향후 아시아 내 여러 지역과 연결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국 미술계를 잘 알고 있는 그는 “1990년대부터 좋은 전시를 선보인 아트선재센터처럼 되는 것이 타이쿤의 목표”라며 “문화적으로 봐야 할 차세대 도시를 누군가 물으면 서울이라고 답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은 ‘대안공간 루프’를 비롯한 비영리 공간에 대한 지원이 오래전부터 활발했다”며 “공간 중심인 홍콩보다 한국이 더 시스템을 잘 만들어 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금요일 오전 7시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하시면 이메일로 먼저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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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파엘로부터 마네까지… 서양 미술사 명작들 한자리에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귀에는 흰 꽃을 꽂은 소년이 아픈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다. 화들짝 놀란 소년의 왼손은 허공을 움켜쥐고, 갑자기 움직인 듯 옷자락도 휘날린다. 고통스러운 듯 구부러진 소년의 오른손 세 번째 손가락에는 도마뱀이 매달려 있다. 과일을 탐내다 뜻밖의 공격을 받은 순간을 포착한 카라바조(1571∼1610)의 명작 ‘도마뱀에 물린 소년’이다.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최고의 거장 카라바조뿐 아니라 라파엘로, 벨라스케스, 렘브란트, 터너, 마네, 모네, 고갱 등 서양 미술사에서 중요한 거장들의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일 개막한 특별전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을 통해서다. 이 전시는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명화를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르네상스, 바로크 명화 국내 최초 공개영국 내셔널갤러리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거장부터 인상주의까지, 13세기∼20세기 초 유럽 회화의 명작들을 소장한 기관이다. 전시장에서 1일 만난 크리스틴 라이딩 내셔널갤러리 학예실장은 “우리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을 엄선해 ‘내셔널갤러리 미니어처’를 만들고자 노력했다”며 “미술사의 중요한 흐름, 중요한 예술가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내셔널갤러리를 그대로 보여주려 했다는 말처럼 전시는 한 지역이나 사조에 국한하지 않고, 르네상스부터 인상주의까지 다양한 시대의 주요 작품들을 52점에 압축적으로 담았다. 특히 국내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 명화들을 직접 감상할 수 있어 애호가들은 물론이고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도 의미 있는 교육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르네상스 시기 회화로는 산드로 보티첼리의 ‘성 제노비오의 세 가지 기적’, 라파엘로의 대표적 스타일을 볼 수 있는 ‘성모자와 세례 요한’, 조반니 벨리니의 ‘성모자’, 야코포 틴토레토의 초상화 ‘빈첸초 모로시니’ 등이 있다. ‘도마뱀에 물린 소년’은 바로크 거장 카라바조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 순간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안정과 조화를 강조했던 르네상스와 달리, 종교개혁과 맞물려 감정을 폭발시키고 극적 효과를 강조한 카라바조의 회화는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한 소년의 표정, 몸짓과 함께 정물의 세부를 훌륭하게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신에서 사람으로…서양 미술 흐름 보여전체 전시는 1부 ‘르네상스, 사람 곁으로 온 신’, 2부 ‘분열된 교회, 서로 다른 길’, 3부 ‘새로운 시대, 나에 대한 관심’, 4부 ‘인상주의, 빛나는 순간’으로 구성된다. 각각 르네상스, 종교개혁 이후 예술, 18∼19세기 작품, 인상주의를 다룬다. 서양 미술의 흐름이 종교와 신에 대한 관심에서 사람으로 흘러간 과정을 보여준다. 덕분에 유명 사조는 물론이고 국내에선 다소 생소한 미술적 경향도 볼 수 있다. 메인더르프 호베마의 풍경화 ‘작은 집이 있는 숲 풍경’ 등 17세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유행한 풍경화와 일상 풍속화, 안토니 반 다이크의 ‘존 스튜어트와 버나드 스튜어트 형제’ 등 18세기 영국 상류층에서 유럽 여행이 유행했을 때 귀족들이 의뢰한 초상화도 선보인다. 전시의 대미는 인상주의 작품이 마무리한다. 에두아르 마네의 ‘카페 콩세르의 한구석’, 빈센트 반 고흐의 ‘풀이 우거진 들판의 나비’, 클로드 모네의 ‘붓꽃’ 등을 볼 수 있다. 10월 9일까지. 7000∼1만8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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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장 넘어 아시아 미술 중심지 꿈꾸는 홍콩[영감 한 스푼]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홍콩은 아트페어와 갤러리, 그리고 경매까지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지로 생각되곤 합니다. 수 년 전 아트페어 취재를 위해 홍콩을 방문했다가, 정작 좋은 미술품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은 없다는 걸 알고 당황한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홍콩을 가보니 중국 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품을 볼 수 있는 ‘홍콩고궁문화박물관’과 현대미술관인 ‘M+’가 서구룡문화지구에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서구룡문화지구는 홍콩을 아시아의 문화적 허브로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개발이 시작된 곳입니다. 최근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관광지로 떠올랐습니다. 이러한 홍콩의 새로운 분위기에 대해 두 미술계 전문가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두 분 다 한국 미술과 인연이 있습니다. 한국 출신 큐레이터인 정도련 M+ 부관장, 그리고 백남준아트센터의 첫 번째 학예실장을 지냈던 토비어스 베르거 타이쿤 큐레이터입니다.“M+, 아시아의 첫 글로벌 뮤지엄” 정도련 M+ 부관장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한국인 최초 뉴욕 현대미술관(MoMA) 큐레이터로 일했고, 10년 전부터 M+에 합류해 준비 과정부터 개관까지 맞았습니다. 정 부관장은 M+가 “시각 미술뿐 아니라 건축·디자인, 영상 등 세 분야를 다룬다는 점에서 아시아 최초의 현대 시각 문화를 다루는 글로벌 미술관”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직접 찾은 M+ 미술관은 영국 테이트 모던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헤르조그&드뫼롱이 맡아, 인상적인 전시 공간이 돋보였습니다.그에게 소장품, 전시 기획, 프로그램 중 M+가 중점을 두는 부분을 묻자 “다 중요하지만 역시 소장품이 기본”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M+는 지금 이곳이 건물도 없는 황무지였던 2012년부터 소장품을 모으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도 1970년대 중후반부터 최근까지 중국 현대미술의 태동과 발전의 궤적을 보여주는 울리 지그 컬렉션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시각 문화’에 관한 미술관이기 때문에, 홍콩 영화 황금기의 대중문화와 관련된 것도 수집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만 특정 국가나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에는 홍콩에서 시작해 중국 전체를 보고, 그 후 동북아, 동남아, 남아시아와 서아시아까지 넓게 퍼져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M+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한국인으로 홍콩 미술관을 이끌게 된 사연도 궁금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인문학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미술사 개론’ 수업을 들었다가 빠져들었습니다.“어릴 때 그림에 소질이 있어 ‘예고에 가라’는 말도 듣곤 했어요. 그러다 미술사 수업에서 ‘이미지를 언어로 바꿀 수 있다’는 게 마술처럼 느껴졌죠.” 그러나 아시아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학자의 길이 외롭다고 느끼던 차에 우연히 미술관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되면서 큐레이터의 길을 가게 됩니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워커아트센터, MoMA를 거쳐 M+까지 오게 된 것이죠. 그는 글로벌 미술계로 진출하고 싶은 젊은 예술가·큐레이터들에게 “중요한 기관들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또 글로벌 커뮤니티에서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해주었습니다.감옥을 개조한 미술관, 타이쿤다음으로 찾은 장소는 문을 연지 5년 된 복합문화공간 ‘타이 쿤’이었습니다. 홍콩 센트럴에 위치한 이 장소는 옛 경찰서와 교도소를 리모델링한 독특한 곳입니다. 이곳의 리모델링 역시 헤르조그&드뫼롱이 맡았습니다. 타이 쿤의 현대미술 전시장에는 호주 출신 작가 패트리샤 파치니니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토비어스 베르거를 만났습니다. 베르거는 개관 전 M+에서도 일했고, 홍콩의 유명한 비영리 예술 공간인 ‘파라 사이트’에도 있었습니다. 경매장과 갤러리의 예쁘고 얌전한 작품을 보다, 타이 쿤에서 파치니니의 조각을 보니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지만, 어딘가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감각을 자아내는 조각들은 독특한 시각 언어로 ‘모성’과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전시가 열리는 장소가 과거에는 여성 감옥이었다는 점도 특별했죠. 베르거는 지난 5년 간 1200만 명이 타이쿤을 찾았고, 대부분이 10~20대 젊은 관객이라고 했습니다. 우선은 감옥과 경찰서였던 공간이 주는 특별함, 그리고 빌딩숲으로 빽빽한 홍콩에 몇 안 되는 야외 공간이 있다는 점, 또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했습니다. 홍콩의 미술 기관에 대해서도 물었는데요. 베르거는 “한국에 국립현대미술관, 일본 도쿄 현대미술관 등 여러 기관이 있지만 국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며 “M+를 비롯한 홍콩의 기관들은 향후 아시아 내 여러 지역과 연결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습니다.다만 한국 미술계에도 경험이 많고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그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좋은 전시를 선보인 아트선재센터처럼 되는 것이 타이쿤의 목표”라며 “문화적으로 봐야할 차세대 도시를 누군가 물으면 서울이라고 답한다”고 했습니다.이유에 대해 묻자 “한국에서는 ‘대안공간 루프’를 비롯한 비영리 공간에 대한 지원이 오래 전부터 활발하게 이어졌다”며 “공간 중심인 홍콩보다 한국이 더 시스템을 잘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뉴스레터 구독 신청 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3-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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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시장과 창작’…제9회 미술사학대회 3일 개최

    한국미술사학회는 3일 오전 10시 반부터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대강당에서 제9회 미술사학대회 ‘미술시장과 창작’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학술대회는 서양미술사학회, 한국미술사교육학회, 한국미술이론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후원으로 열린다. 이번 학술대회는 미술작품의 제작과 소비에서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는 미술시장에 주목한다. 1부에서는 서양 고대부터 중국 근대까지 미술시장이 창작에 미친 영향을 다룬 논문 4편이 발표된다. 주제는 ‘아테네 도기화와 고전기 그리스 도기 시장’(조은정·목포대), ‘대(大) 루카스 크라나흐: 사회적, 종교적, 심미적 요구를 충족시킨 수완가’(한유나·서울대), ‘불석제 불상의 조성과 이운을 통해 본 조선후기 불상 조성의 일면(유대호·조계종 총무원), 19세기 상하이 미술시장과 창작의 대중성 모색(이희정·명지대) 등이다. 2부에서는 20세기 후반부터 2020년까지 한국과 홍콩 아트페어에 관한 주제 발표 4편이 이어진다. ‘한국 현대미술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한 예술성의 변화와 확장 사례 연구’(김민아·앨라배마대), ‘아시아의 미술시장과 수묵화의 당대성’(문정희·국립타이난예술대), ‘경매 재거래로 본 이우환의 작품값 경향’(조상인·서울경제), ‘미술작품에서 미술콘텐츠로: 미술시장과 미술산업’(장수희·덕성여대) 등이다.   한국미술사학회는 “이번 학술대회는 동서고금 미술시장이 작품 창작이나 생산에 미친 양상을 살펴보며 연구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한 행사”라며 “향후 미술시장과 관련한 제도나 정책을 논의하는 기반을 조성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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