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부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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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취재분야

2025-11-08~202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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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의 옛 문양 판화 한곳에… 원주 명주사서 12월 30일까지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티베트 인도에서 쓰였던 다양한 옛 문양 판화를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강원 원주시 치악산에 있는 명주사 고판화박물관(관장 한선학)은 12월 30일까지 특별전 ‘인쇄 문화의 꽃-아시아 문양판화의 세계’를 개최한다. 판화는 다양한 미술작품을 구현하는 수준 높은 예술이다. 하지만 판화로 찍어낸 문양에만 한정해 보면 판화야말로 실생활에 깊이 스며든 생활예술이다. 이번 특별전에 소개되는 판화 문양들도 대다수가 이불보나 책 표지를 만드는 데 이용됐다. 가장 눈길을 끄는 유물은 300여 년 전에 사용되던 조선의 ‘능화판(菱花板)’. 책의 표지에 무늬를 넣기 위해 만들어진 목판으로 단순하면서도 기하학적인 구성이 돋보인다. 당대 유명 판화 생산지인 중국 쑤저우(蘇州)의 타오화우(桃花塢)에서 제작한 문자도 판화도 만날 수 있다. 타오화우 판화는 한반도와 일본 판화 양식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033-761-7885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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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방형 수장고-스마트폰 전시안내 ‘21세기형 박물관’

    자연과 유적, 첨단기술이 결합한 21세기형 박물관. 다음 달 22일 전남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에 개관하는 국립나주박물관(관장 박중환)의 모토다. 국립중앙박물관 산하 지방의 국립박물관으로는 12번째. 국립춘천박물관(2002년)에 이어 11년 만이다. 당초 나주박물관은 효율성 측면에서 논란이 없지 않았다. 차로 40분 정도면 닿을 거리에 국립광주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나주시내에서도 구불구불한 도로를 타고 20분 이상 가야 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 때문에 나주박물관이 가장 염두에 뒀던 대목이 차별성이다. 가까운 광주박물관은 물론이고 다른 박물관과도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박물관 측은 ‘개방형 수장고’와 ‘스마트폰 전시안내시스템’을 강점으로 꼽고 있다. 개방형 수장고란 말 그대로 수장고를 밖에서도 구경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6개 수장고 가운데 2개에 대형 관람창을 설치해 안을 구경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프랑스 케브랑리국립박물관과 영국 빅토리아앤드앨버트박물관에 설치돼 큰 호응을 얻었다. 국내에선 제주시 넥슨컴퓨터박물관이 도입했으나 국공립박물관 중에선 나주박물관이 처음 선보인다. 아울러 나주박물관에선 별도의 단말기 없이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전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근거리무선통신(NFC)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이면 별다른 애플리케이션 설치 없이 외국어 안내까지 가능하다. 현재 나주박물관이 소장한 지정문화재는 중앙박물관에 있던 국보 제295호 ‘나주 신촌리 금동관’ 1점뿐이다. 3000여 점의 다양한 유물을 모았으나 스타급 문화재가 부족하다. 강원표 학예연구사는 “현재 협의하고 있는 유물들이 있어 조속한 시일에 지정문화재가 5점 안팎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당분간 지속적인 특별전으로 이를 상쇄할 계획이다. 박물관 개관일부터 내년 2월 16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천년 목사골, 나주’에는 이 지역과 관련 있는 중량감 있는 유물 200여 점을 초대했다. 본관이 나주인 고려 명장 정지(1347∼1391)의 갑옷(보물 제336호)과 임진왜란 때 나주성을 지키다 포로가 돼 일본에 끌려갔다가 탈출한 노인(魯認·1566∼1622)이 쓴 ‘노인금계일기’(보물 제311호), 나주 미천서원에 배향된 남인의 영수이자 눈썹이 굵고 길기로 유명했던 미수 허목(1595∼1682)의 초상(보물 제1509호) 등이다. 인근에 백제시대 유적인 나주 반남고분군(사적 제513호)과 복암리고분군(사적 제404호)이 포진해 있고 삼국시대에 축조한 자미산성(전남기념물 제88호)도 가까이에 있다. 박물관 옥상에 꾸민 개방 정원에 올라가면 반남고분군 전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박 관장은 “자연 속에서 수천 년 된 유물을 감상하는 힐링의 문화공간으로 자리 매김하겠다”고 밝혔다. 무료. 홈페이지(naju.museum.go.kr) 참조. 061-330-7800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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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회 인촌상 시상식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27회 인촌상 시상식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털볼룸에서 열렸다. 이 상은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에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경성방직과 고려대를 설립한 민족 지도자 인촌 선생의 뜻을 잇기 위해 1987년 제정됐다. 해마다 인촌 선생의 탄생일(10월 11일)에 맞춰 시상식을 열고 있다. 인촌상은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이사장 현승종)와 동아일보사가 제정해 운영한다. 현 이사장은 이날 시상식에서 △서울예술대학교(교육) △한상복 서울대 명예교수(인문사회문학) △조재필 울산과학기술대 교수(자연과학) 등 부문별 수상자에게 상패와 기념메달, 상금 1억 원을 각각 수여했다. 현 이사장은 “세 분은 인촌 선생이 구현하고자 했던 인류애와 공익정신을 헌신적으로 실천해 오신 분들”이라며 “수상을 계기로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더 크게 공헌하시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인촌상운영위원회(위원장 이돈희)는 외부 심사위원 24명을 위촉해 △교육 △언론출판 △산업기술 △인문사회문학 △자연과학 △공공봉사 등 6개 부문에 걸쳐 6월부터 부문별로 세 차례 회의를 열어 최종 후보를 선정한 뒤 수상자를 확정했다. 언론출판과 공공봉사 부문은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이 위원장은 “산업기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했던 이상운 ㈜효성 부회장은 최근 (효성그룹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로 시상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교육 부문에서 수상한 서울예대의 유덕형 총장은 “인촌상 수상은 서울예대가 21세기를 맞아 새로운 글로벌 인재 양성의 장으로 더욱 발전하는 데 큰 격려와 용기가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인문사회문학 분야 수상자인 인류학자 한상복 명예교수는 “인촌의 깊은 뜻이 담긴 상을 수상한 만큼 남은 일생도 후학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연구에 매진하겠다”며 “과분하고 귀중한 상금은 인촌상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도록 전 상금을 인류학 발전에 도움이 되게 쓰겠다”고 말했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수상한 2차전지 소재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조재필 교수는 “젊고 학문적 성과도 부족한 사람을 수상자로 선정해줘 감사하다”며 “현재 전기자동차는 한 번 충전으로 200km 미만밖에 못 가지만 앞으로 700∼800km를 갈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류석춘 연세대 교수는 축사에서 “수상자들은 인촌이 추구한 가치를 오늘에 되살린 모범이 되시는 분들이어서 세월이 지나도 마모되지 않는 인촌 정신의 힘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수상자와 가족, 역대 수상자를 비롯해 각계 인사 350여 명이 참석했으며, 바리톤 공병우 씨와 실내악단 ‘조이 오브 스트링스’가 축하공연을 펼쳤다.정양환·우정렬·최고야 기자 ray@donga.com   :: 주요 참석자 명단 ::▽정계 관계 법조계=김수한 전 국회의장, 이현재 이홍구 고건 이한동 김석수 전 국무총리, (이하 가나다순) 김충식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 박경석 전 국회의원, 박기정 이북5도위원회 위원장,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 이경우 변호사, 이경재 방통위 위원장, 이승환 전 주그리스 대사, 정기동 변호사, 최명해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최시중 전 방통위 위원장 ▽학계 교육계=강상진 연세대 교수, 강원철 고려사이버대 학생처장, 권대봉 고려대 교수, 권세실 서울예대 대외협력지원단장, 권숙인 서울대 교수, 권오상 고려사이버대 교무처장, 김광억 연세대 용재석좌교수, 김병국 고려대 교수, 김병완 고려대사범대부속고 교감, 김병철 고려대 총장, 김상기 고려사이버대 기획예산처장, 김상식 고려대 산학협력단장, 김성중 중앙중 교장, 김성천 중앙대 교수, 김세용 고려대 관리처장, 김종길 고려대 명예교수, 김종필 중앙고 교장, 김중순 고려사이버대 총장, 남상남 동랑예술원 이사,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 도성재 고려대 교무부총장, 마동훈 고려대 대외협력처장, 문옥표 서울대 교수, 박명식 고려중앙학원 본부장, 박부진 서울대 교수, 박정율 고려대 의무기획처장, 박정호 고려대 미래전략실장, 박현수 서울대 교수, 송진원 고려대 연구교학처장, 신승훈 서울예대 홍보디자인센터장, 심길중 서울예대 미디어창작학부장, 안형식 고려대 보건대학원장, 양재룡 인촌장학생동문회장, 염재호 고려대 행정대외부총장, 오명석 서울대 교수, 오영재 고려대 행정대학원장, 오정훈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유병현 고려대 기획예산처장, 유혁 고려대 정보통신대학장 서리, 육정수 배재대 교수, 윤경병 서강대 교수, 윤계섭 동랑예술원 이사, 윤병길 고려대사범대부속고 교장, 이계형 단국대 부총장, 이기흥 동랑예술원 이사장, 이두희 고려대 경영대학장, 이상훈 고려대 보건과학대학장 서리, 이영분 전 건국대 부총장, 이용균 중앙고 교감, 이장규 고려대사범대부속중 교장,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 이재열 고려사이버대 총무처장, 이현락 세종대 석좌교수, 임상혁 동랑예술원 이사, 장승문 중앙중 교감, 전영우 수원과학대 초빙교수, 정구종 동서대 석좌교수, 정낙철 고려대 이과대학장, 정무영 울산과기대 부총장, 정성진 고려중앙학원 이사, 정원주 고려대 정보전산처장,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 정종욱 고려사이버대 연구개발처장, 정철영 서울대 교수, 조무제 울산과기대 총장, 조옥라 서울대 교수, 조운용 서울예대 학생생활연구소장, 진덕규 이화여대 명예교수, 차하순 서강대 명예교수, 최승일 고려대 세종캠퍼스 부총장, 최희조 세종대 석좌교수, 하주화 서울예대 부총장, 한용진 고려대 사범대학장, 한응수 서울예대 부총장, 한준 연세대 교수, 한희철 고려대 의과대학장, 홍순용 동랑예술원 감사, 홍일식 열린사이버대 총장, 황두진 서울예대 공연창작학부장, 황익주 서울대 교수 ▽경제계=권이상 경방 감사, 금동화 전 KIST 원장, 김량 삼양홀딩스 부회장, 김명하 김앤에이엘 회장, 김상열 OCI 부회장, 김선휘 삼양염업 회장, 김원 삼양홀딩스 부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김이환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 김준 경방 대표이사 사장, 김태석 한국은행 공보실장, 김태선 벤처아이 회장, 김한 전북은행장, 박문두 경일상사 대표, 송용덕 호텔롯데 대표이사, 안병모 유창건축사무소 대표이사,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 오명 동부하이텍 대표이사 회장, 오정소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이사장,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 이병연 세화애드컴 대표, 최길선 한국플랜트산업협회 회장, 허재성 한국은행 부총재보, 홍성훈 삼양홀딩스 감사 ▽언론계 출판계 문화계 체육계=강성연 배우, 김광희 동우회 회장, 김기섭 배우, 김달수 울산김씨대종회장, 김병건 동아꿈나무재단 이사장, 김은 인촌기념회 이사, 김정배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김정태 동아꿈나무재단 이사,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 회장, 김준하 전 대한언론인회 이사, 남희석 방송인, 독고영재 배우, 문명호 공정언론시민연대 공동대표, 문영복 전 한국방송광고공사 이사, 박순천 배우, 박오학 전 동아일보 전무, 박용윤 한국박물관회 이사, 박충서 동아꿈나무재단 사무국장, 송충식 경향신문 상무, 신구 배우, 신동호 전 KBS제작단 사장, 안평선 한국방송인회 부회장, 양택조 배우, 양희경 배우, 어경택 화정평화재단 감사, 여영무 뉴스앤피플 대표, 유동근 배우, 윤양중 일민문화재단 이사장, 이대훈 전 동아일보 이사, 이영근 코리아메디케어 고문, 이재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이종석 위암장지연선생기념사업회 회장, 이종세 대한체육회 홍보위원장, 이철승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 이필상 유한재단 이사장, 정동환 배우, 존 배 조각가, 최동욱 라디오서울코리아 대표, 홍원기 대한언론인회 회장}

    • 201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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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北공작원 “원격장치 오작동돼 폭탄 일찍 터져”

    강산이 세 번 바뀌었다. 누군가에게는 잊혀지기에 충분한, 또 어떤 이는 여전히 시리도록 사무칠 시간. 다시 공휴일로 바뀐 한글날은 머나먼 타지에서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웅산 테러’ 3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두 책의 주인공은 일면식도 없거니와 서로를 알지 못한다. 그저 이 테러 사건을 접점으로 이어지는 인물들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한 명은 잔혹한 가해자고, 한 명은 애꿎은 피해자였다. 딱 하나 공통점이 있다. 갈라진 땅 한반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얄궂은 생애를 살았다. 강민철부터 보자. 본명은 강영철. 아웅산 테러를 자행한 북한 특수부대원 3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폭탄은 터뜨렸으나 전두환 대통령이란 목표 제거에는 실패한 채 버마(미얀마) 경찰에 체포됐다.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조사과정에 협력한 점을 참작해 형 집행보류로 목숨을 부지했다. 줄곧 버마 교도소에 갇혀 있다가 2008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책 제목 그대로 테러리스트였다. 사람을 죽이는 데 망설임이 없었고, 조국을 위한 영웅적 행위라고 여겼다. 이후 수감생활 도중 종교에 귀의하며 회개했다지만 범죄 이력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양대 석좌교수인 저자는 그를 둘러싼 환경에 주목한다. 남북 대립의 최전선에 섰다가 결국에는 남북 모두에 버림받은 인생. 그 기구한 운명을 빚어낸 역사를 되짚어본다. 짧은 분량이지만 ‘아웅산…’에는 고급정보가 상당히 많이 담겼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고 주영·주일 대사, 국가정보원 해외담당 차장을 지낸 경력답게 쉽게 접근하기 힘들었던 얘기를 들려준다. 책에 따르면 전 대통령이 목숨을 건진 것은 기존에 알려졌던 것처럼 북한 테러리스트의 착각 때문이 아니었다. 강민철은 동료 수인들에게 원격조종장치가 오작동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한다. 또 자신을 버린 북한을 원망하며 남한행을 희망하기도 했다. 다만 한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는 소개와 달리, 강민철이란 인물에게 대한 내용은 다소 부족해 보인다. 물론 타국 교도소에 갇혀 있던 북한 공작원에 대한 접근이 쉬울 리 없었을 터다. 하지만 자신을 다룬 책에서마저도 그는 중심인물이 되지 못하는 듯했다. 반면 ‘김재익 평전’에는 한 개인의 생애가 오롯이 담겨 있다. 바로 테러 당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으로 해외 순방길에 올랐다가 아웅산에서 순직한 김재익 박사(1938∼1983)를 다뤘다. 세상을 떠난 지 오래건만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은 ‘천재 경제관료’였기에 자료나 증언이 풍성했다. 김 박사는 전 대통령이 “경제는 자네가 대통령”이라며 신임했을 정도로 당대의 경제정책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1980년대 초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서민들이 고통스러워할 때 고군분투해 물가를 안정시킨 주역이었다. 1981년 공정거래위원회를 발족하고, 1983년 경제기획원이 수입자유화 추진 계획을 발표한 것도 그의 공이 컸다.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1982년 금융실명제 실시를 발표하는 선구자적 역할도 했다. 책에 따르면 탁월한 천재였음에도 겸손하고 인간미도 넘쳤다고 한다. 신문기자 출신인 두 저자가 깔끔하게 정리했다. 하지만 공과를 공정히 따져보는 평전으로서의 균형감은 못내 아쉽다. 쿠데타로 거머쥔 권력에 참여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바로 김 박사가 그 정권과 일할 때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경제수석이니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요절한 탓에 관료로서 짊어질 수밖에 없는 멍에와 오욕에서 자유로워진 점을 간과한 측면도 있다. 흑백논리로 그를 폄하해서도 안 되지만 ‘세인트(성인)’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는 식의 찬사로 일관한 점은 과유불급이라 생각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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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독립운동가 백정기 義士 ‘육삼정 의거’ 전모 밝혀져

    윤봉길 이봉창 의사와 함께 ‘3의사’로 불리는 독립운동가 구파 백정기(鷗波 白貞基·1896∼1934·사진) 의사가 계획했던 미완의 거사 ‘육삼정 의거’의 전모가 담긴 일본 외무성 문서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올해 80주년을 맞은 육삼정 의거는 1933년 3월 17일 중국 상하이의 음식점 육삼정에서 주중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와 중국국민당 친일파가 비밀 회동하는 현장에 폭탄을 투척하려 했던 거사다. 백 의사와 광복회장을 지낸 청뢰 이강훈(1903∼2003),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된 원심창(1906∼1973)이 실행에 나섰지만 안타깝게도 거사 직전 일본 헌병경찰에 체포됐고, 백 의사는 이듬해 옥에서 순국했다. 이번에 발견된 문서는 일본 도쿄에 있는 외무성 외교사료관에 보관돼 있던 자료들로 모두 263쪽에 이른다. 의거 전후 일제강점기 외무성과 내무성, 총영사관, 헌병경찰이 주고받은 비밀전문 및 사건경위서, 첩보활동 내용, 재판 기록까지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윤봉길 의사가 그 1년 전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백 의사의 ‘도시락 폭탄’을 묘사한 그림도 나온다. 이번 사료를 통해 일제가 얼마나 치밀한 수법으로 독립투사들을 잡아들이려 공을 들였는지 엿볼 수 있다. 일제는 이미 백 의사를 비롯한 가담자들의 신상정보와 은신장소는 물론이고 의거 실행 계획이나 도망 경로까지 사전에 파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육삼정 의거 문서는 근대사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더채널’의 김광만 PD(58)가 오랜 추적 끝에 찾아냈다. 김 PD는 2002년 윤봉길 의사가 총살당하던 생애 마지막을 담은 사진 3장을 발굴했고, 2011년에는 윤 의사의 정확한 처형장을 확인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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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白의사의 도시락폭탄, 윤봉길 의사가 던진 것과 ‘쌍둥이’

    “불공대천의 원수 놈들인 너희에게 무엇을 호소하겠느냐. 너희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것이다. 재판하느라 수고했다. 할 말이 많으나 야수 같은 그대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나.”(1933년 육삼정 의거 선고공판에서 이강훈의 진술 가운데) 그들은 당당했다. 오직 적을 죽이지 못해 아쉬웠을 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강훈은 일제 재판관을 향해 오히려 “수고했다”며 기개를 드러냈고, 백정기 의사는 “모두 내가 주도했으니 자신만 처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폐병을 앓았던 백 의사는 곧 죽을 운명임을 직감하고 동지들이라도 구원하려 했던 것이다. 육삼정 의거는 흔히 실패한 거사로 인식돼 왔다. 가장 큰 목표였던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 공사를 처단하지 못한 데다 관련자 대부분이 검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문서들을 살펴보면 공사를 제거하지는 못했을지언정 의거의 성과는 작지 않다. 1933년 11월 11일 동아일보에 ‘조선인을 중심으로 한 상해의 국제 흑(黑)테로단’으로 크게 소개되며 민족의 자긍심을 높였고, 육삼정에서 벌어진 일제와 중국국민당 친일파의 협잡도 세상에 알렸다. 이호룡 덕성여대 강사는 “백정기 이강훈은 상하이에서 활동하던 대표적인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 독립투사들”이라며 “특히 육삼정 의거는 백범 김구를 비롯한 민족주의 세력이 적극 협력했던 거사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깊다”고 설명했다. 단적인 예가 문서에 나오는 백 의사의 도시락 폭탄이다. 1932년 윤봉길 의사가 투척했던 것과 같은 ‘쌍둥이 폭탄’이다. 백범이 비밀 제조업자에게 의뢰해 만든 도시락 형태의 폭탄 7개 가운데 하나였다. 그 하나를 윤 의사가 먼저 썼고, 나머지를 백범이 아나키스트 독립운동단체였던 남화한인청년연맹의 지도자 정화암(1896∼1981)에게 보냈는데 백 의사가 이것을 쓰려다 체포된 것이다. 일제는 내부 문건에 도시락의 구체적인 모습을 담아놓았다. 가로세로 16.21×10.45cm, 높이 5cm라고 크기까지 묘사했다. 일제로서는 육삼정 의거로 백 의사 세력을 체포한 것은 큰 성과였다. 백 의사는 이미 친일파 이규서 연충열 이종흥을 처단해 일제엔 ‘특급 테러리스트’로 분류돼 있었다. 이강훈 원심창 정화암도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문서에는 관련자들이 어떤 인물인지, 어디에서 은신하고 있는지를 진작부터 치밀하게 감시해왔음이 기록돼 있다. 육삼정 의거와 관련해서도 일제는 밀정을 통해 시기나 방법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보고받았음이 드러났다. 일제가 그린 지도에는 백정기 이강훈이 폭탄 투척을 주도하고 원심창과 우당 이회영(1867∼1932)의 아들인 이규창(1913∼2005)이 망을 본 뒤 함께 도주하는 루트까지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56)는 “회고와 증언만 남아있던 육삼정 의거를 다룬 공식 문서가 나온 것은 최초”라며 “의거 관련 담당 경찰의 비공식 의견까지 포함됐을 정도로 내용이 상세해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육삼정 의거와 관련된 핵심 문서들을 찾은 만큼 학계의 관심은 이 의거를 노출시킨 밀정이 과연 누구였는지에 모아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조직 외곽에 있던 일본인 아나키스트의 밀고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해왔다. 하지만 문서를 보면 일제는 독립운동 세력의 깊숙한 고급정보까지 세세히 파악하고 있어 내부 공모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김명섭 박사는 “육삼정 의거의 가장 큰 미스터리가 밀정의 존재 여부였다”며 “문서에도 밀정에 대한 거론이 나오는 만큼 추후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문서를 찾는 데는 동북역사재단 동북아시민협력사업의 지원을 받은 구파 백정기 의사 기념사업회(회장 유성엽 민주당 의원)의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내년 백 의사의 순국 80주년을 맞는 기념사업회 측이 근대사를 추적해온 김광만 PD와 함께 적극적으로 자료 조사에 나섰다. 유 의원은 “백 의사는 조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큰 인물이나 상대적으로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번 문서 발굴을 의사의 숭고한 뜻을 깊게 새기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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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도권]풍납토성에 백제시대 건축물 들어선 공원 조성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에 옛 백제시대 건축물을 재현한 공원이 만들어진다. 문화재청은 7일 “서울시 및 송파구와 함께 사적 제11호인 ‘서울 풍납동 토성’ 내 미래마을 용지에 ‘풍납 백제 왕성 공원’(가칭)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공원이 만들어질 면적은 2만955m²(약 6350평)로 총 40억 원가량 투입된다. 내년 3월 착공해 연말에 완공할 계획인 이 공원은 약 1700년 전 만들어진 한성백제시기 도로와 건물, 성벽을 재현해 전시한다. 아울러 장기적으로 놀이마당과 운동시설 같은 주민편의시설이 포함된 ‘복합문화센터’도 갖춰 나갈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문화유적과 지역주민이 상생하는 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해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풍납토성 서편에 위치한 미래마을은 당초 단독주택과 상가가 들어섰던 용지로 아파트 신축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굴조사를 벌이다 백제 유적이 확인되며 2000년 개발이 중단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난해까지 발굴조사를 완료한 상태로, 이번 공원 조성은 문화재청과 송파구는 물론이고 서울시의회와 주민대표까지 참여한 보존관리위원회에서 결정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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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양석중 ‘삼층장’

    제38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양석중 작가(49)의 ‘삼층장’(사진)이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주요 수상작은 다음과 같다. △국무총리상=달항아리(김경식)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수월관음도(허윤희) △문화재청장상=쌍희자귀갑문발(조숙미)·낙화사계산수도(김유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상=머릿장(김형철)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사장상=금고(원천수)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상=향갑노리개(배인숙) △문화재위원장상=승무북(김기웅) △한국중요무형문화재기능보존협회이사장상=지승정병(홍연화) 시상식은 8일 오후 3시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로비에서 개최되며 수상작 전시전은 28일까지 기획전시실Ⅰ에서 열린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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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첨단과학 발달해도 문화재 감정엔 ‘전문가의 눈’이 최고”

    “전통적인 비취색이 은은한 데다 두께가 얇고 예리합니다. 11세기 초 순청자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요.” “반면 백자는 굽(도자기 바닥 부분)도 이상하고 흙이 어색하게 묻어있네요.” “맞습니다. 입구가 깨진 것도 옛것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훼손한 게 역력합니다.” 2일 오전 인천 중구 인천항 제2국제여객터미널. 도떼기시장이 이럴까. 출국장 3층은 왁자지껄 혼을 쏙 빼놓았다. 보따리 짐을 가득 진 중국인들의 목청 데시벨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구석에 자리한 서너 평 사무실이 바깥 고성에 흔들리는 착각도 들었다. 사무실 입구에 달린 문패는 ‘문화재감정관실’. 이런 환경에서 감정이란 게 과연 가능할까. 하지만 박도화(57) 김현권(45) 감정위원은 일상인 듯 무덤덤했다. 오히려 컴퓨터 모니터에 뜬 타 지역 감정위원들의 대화를 하나라도 놓칠까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날 김포공항과 속초항 여객터미널 감정위원을 연결해 화상 감정까지 벌인 대상은 청자 완(완·사발)과 백자 호(壺·항아리). 한국 여행객이 해외 반출 심사를 의뢰한 유물로 언뜻 보기엔 옛 정취가 가득했다. 하지만 한참 동안 격론을 벌인 끝에 청자는 진짜, 백자는 가짜로 판정 내렸다. 백자는 상관없지만, 청자는 내보낼 수 없다는 결론이다. “고려청자라고 다 보물급은 아닙니다. 이 정도면 시중에서 몇십만 원에 구할 수 있어요. 하지만 가격을 떠나 우리 문화재를 함부로 해외로 내보낼 수는 없는 거잖아요? 엄정한 절차를 거치도록 이중삼중 방어벽을 치는 겁니다.”(박 위원) 국내에 문화재감정관실이 생긴 것은 1968년. 공항과 항구를 통한 문화재 밀반출을 막고자 현재 전국에 19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예전에는 일본 루트가 중요했지만 요즘은 중국 쪽이 가장 신경 쓰인다. 드나드는 사람이 늘다 보니 반출 시도가 부쩍 늘었다. 인천항의 경우 하루 유동인구가 평균 3000명인데, 비상근 3명을 포함해 6명이 모든 걸 관리한다. 최근 중국에서 오는 크루즈 선박이 늘어 밤샘 야근도 부지기수다. 요즘 문화재 감정엔 첨단과학이 많이 쓰인다. 엑스레이 보안검색에서 유물은 상당수가 걸러진다. 꽁꽁 숨겨도 문화재에 따라 색깔별로 드러난다. 도자기는 주로 녹색, 금속유물은 청색 계열로 표시된다. 회화나 고서적은 주황색 톤인데 현대서적과 밀도가 달라 확연히 구분된다. 앞서 실시했던 화상 감정도 2006년 도입돼 오차를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감정위원들은 시대가 흐를수록 ‘육안 감정’이 더 중요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전체 감정관실을 총괄하는 최태희 실장(61)은 “기계적으로 과학적 증거에 의존하면 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게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이다. “재료가 오래된 것은 진품이란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요즘 짝퉁 제조업자들 기술이 얼마나 정교한데요. 중국에선 수천 년 된 폐사지 돌을 조각하거나 옛날 종이와 먹을 구해 그림을 모사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도자기 감정에는 굽이 제일 중요한데, 출토됐다 버려진 굽 파편만 구해다 위는 새로 만들어 붙인 물건도 봤어요.” 여기서 궁금증 하나. 도자기는 왜 굽을 살피는 게 중요할까. 시대와 제조 장소, 자기 형태에 따라 굽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물관 전시를 관람하거나 도록 사진만 봐서는 알 수가 없다. 도자기 바닥을 보여주지는 않으니까. 직접 유물을 보고 연구한 학자들만 구별이 가능하다. 굽 파편을 구해다 붙여도 가짜인 게 들통 나는 것도 이런 연유다. 재밌는 것은 문화재 판정을 대하는 태도가 입출국 때 다르다는 점이다. 나갈 때야 진품이면 반출이 안 되니 진품 판정을 꺼리는 게 당연지사. 그런데 들어올 땐 어떻게든 진짜라는 얘길 듣고 싶어 한다. 반입 때 100년이 넘은 유물로 판정받아야 관세를 물지 않기 때문이다. “1억 원이 넘는 중국 고대 유물”이라고 큰소리 떵떵 치다가 가짜로 밝혀져 수천만 원의 세금을 문 여행객도 있다. 사실 올해 초 일본 쓰시마 섬 도난 불상이 부산항에서 ‘무사통과’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절도범들이 들여오며 복제품으로 신고했으니 감정관실이 나설 근거가 없었던 것. 하지만 논란이 일자 비난은 이들에게 쏟아졌다. 감정위원들은 “대부분 박사학위를 지닌 학자들이지만 모두 계약직 신분”이라며 “자긍심 하나로 버티고 있는데 무책임한 비난은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인천=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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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블랙스완 잡는 법 들고 돌아왔다”

    일본 만화 ‘드래곤볼’을 기억하는가. 서유기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공상과학(SF) 무협지쯤 되는 이 만화에서 손오공은 사이어라는 외계 행성 출신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손오공을 비롯한 이 별 사람들은 독특한 공통점을 지녔다. 싸움에서 거의 사망 직전에 이르렀다가 회복되면 전보다 훨씬 급상승한 전투력을 얻는다. 나심 탈레브가 말하는 ’안티프래질(Antifragile)’이 딱 사이어인이다. 오케이! 이게 끝이냐고? 솔직히 그렇다. 길게 얘기할 것도 없다. 안티프래질이 무슨 소리인지 알고 싶다면 이 정도면 된다. 하지만 2007년 화제작 ‘블랙 스완’ 이후 “미국 월스트리트의 노스트라다무스”라고 불리는 저자는 이 간단한 얘기를 왜 이리도 두꺼운 책에 길게 설명해 놓았을까. 위에서 설명했지만 안티프래질은 ‘연약한, 부서지기 쉬운’을 뜻하는 영어 단어 프래질(fragile)의 반대 선상에서 설정한 개념이다. 단순히 단단하거나 강인하다는 뜻이 아니다.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를 회복하면서 더욱 강력하게 성장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저자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 히드라가 이 개념에 가장 적합하다고 얘기한다.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이 뱀은 머리 하나를 자르면 2개의 머리가 솟아난다. 위기가 기회를 넘어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셈이다. “바람은 촛불 하나를 꺼뜨리지만 모닥불은 살린다. 무작위성 불확실성 카오스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이런 것들을 피하지 않고 활용하기를 원한다. 불이 되어 바람을 맞이하라. … 우리는 불확실성을 다루면서 겨우 살아남기만을 원하지는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불투명하고 설명할 수 없는 대상을 길들이고, 심지어 지배하고 정복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저자는 용어의 정의보다 굳이 사전에도 없는 신조어를 왜 만들어 냈는지, 그 의도에 초점을 맞춘다. 얼핏 말장난 혹은 뻔한 소리처럼 들리는 안티프래질을 통해 시대의 난국을 극복할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극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현재의 경기침체 역시 헤쳐 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저자가 볼 때, 안티프래질은 이미 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고 능력을 검증받았다. 바로 정·재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권력자’들이다. 안티프래질의 또 다른 특징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안티프래질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연약함이 모여 깨지고 무너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이득을 얻는 이들은 따로 있다. 경제가 불황에 빠졌을 때 오락가락 숨통이 트였다 조였다하는 것은 대부분의 ‘연약한’ 사회 구성원들이다. 진짜배기들은 ‘위협’과 ‘우려’로 긴장의 끈을 조일 뿐, 지나고 보면 그들의 주머니는 더욱 두둑해져 있다. “시스템 내부의 일부 구성 요소는 시스템 전체를 안티프래질하게 만들기 위해 프래질해야 한다. … 슬프지만 실패로부터 나오는 혜택은 다른 사람과 집단에 넘어간다. 마치 개인은 자신이 아니라 더 큰 이익을 위해 실패하기로 미리 정해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이런 계층화와 프래질의 이전을 고려하지 않고 실패를 논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전작 ‘블랙 스완’과 닮은 점이 많다. 똑같진 않아도 이란성 쌍둥이라고나 할까. 과거의 경험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검은 백조와 같은 사건이나 존재가 세상을 뒤바꾼다는 인식이 줄기차게 이어진다. 안티프래질은 바로 이런 면을 예측할 수 있기에 존재적 가치가 커진다. ‘블랙 스완’을 읽지 않았다면 이 책에서 말하려는 바가 꽤 혼란스러울 것 같다. 하지만 ‘블랙 스완’에서 보여 준 예측력이 너무 잘 맞아떨어졌던 탓일까. 이 책은 자신감이 다소 과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저자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부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해리 마코위츠와 조지프 스티글리츠까지 실명을 거론하며 맹비난한다. 심지어 장 폴 사르트르마저 “비겁한 겁쟁이”로 부르는 대목은 옳고 그름을 떠나 상당히 거슬린다. 그렇다고 이 책이 매력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일단 주장도 문장도 시원시원하다. 동의하건 안 하건 색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다만 심신이 허약해서 그런가. 깨어짐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쩝, 안티프래질 되기는 영 글렀나 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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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나는 중공군을 보는 그늘진 북녘의 노인들

    사진 속 평안북도 만포 기차역은 중공군을 떠나보내는 인파로 가득했다. 학생들은 열심히 깃발을 흔들어 댔지만 뒤편에 선 노인네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다. 억지로 동원된 기색이 역력한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공군을 보며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강홍빈)이 최근 학술총서 ‘체코슬로바키아 중립국감독위원단이 본 정전 후 남과 북’을 펴냈다. 1953∼1956년 체코 중감위원단이 찍은 사진 240여 장과 관련 논문 세 편을 실었다. 당시 한반도의 정황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당시 체코는 1953년 1차 중감위원단 파견 때 300명이나 요원을 보낼 정도로 중립국 감시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공산국가였던 체코와 폴란드는 ‘모스크바의 하수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가브리엘 욘손 스웨덴 스톡홀름대 교수도 “실제로도 두 나라 대표단은 공공연히 북한과 중공 측을 지원하고, 남한에서 정보 수집 활동을 벌였다”고 전했다. 책에 실린 사진에서도 그런 경향은 뚜렷하다. 북한에서 벌어진 다양한 정치행사를 담은 사진이 월등히 많다. 하지만 이를 통해 당시 북한이 얼마나 체제 선전에 열성적이었는지도 알 수 있다. 중공군을 떠나보내는 노인의 미묘한 표정이 담긴 사진처럼 이념에 휘둘린 민초의 비감이 느껴지는 사진도 상당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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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문화체육관광부 外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장 노태강 △10·27법난피해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사무처장 도재경 △감사관실 서광철 △기획조정실 강지은 △문화콘텐츠산업실 최진 △문화정책국 강은아 김미라 △예술국 강성태 △관광국 김동욱 △미디어정책국 김파중 △체육국 이승훈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검역본부 동식물위생연구부장 백종호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장 이길배 ◇중소기업청 ▽서기관 △기획조정관실 김광재 ◇기초과학연구원(IBS) ▽그룹리더 △원자제어 저차원전자계 연구단 조문호 최희철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 황대희 ◇SBS △부장급 편집2부장 김용철 △부장급 경제부장 차병준 △차장급 보도제작부장 노흥석 △부국장급 논설위원 김영환 ◇MTN△편집국 경제금융부장 여한구 △증권부장 유일한 △건설부동산부장 겸 산업2부장 박호진 △마케팅본부 방송사업팀 부장 정익 ◇서울경제 △편집국장 고진갑 △한국아이닷컴 대표이사 조상현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변호사 김진한 ◇건국대 △대외협력처장 이철규 △공과대학 부학장 김형섭 △성관 기숙사 관장 최승철 △연구윤리센터장 정기웅 △문과대학 행정실장 고해웅 △예술디자인대학 행정실장 유송실 ◇상명대 ▽서울캠퍼스 △총장실 정책실장 순희자 △총장실장 권찬호 △평생교육원장 박재근}

    • 2013-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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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바늘귀 들어가기 비유는 낙타가 아니라 밧줄?

    성서(바이블)는 종교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텍스트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렸고, 팔리는 책이다. 성서에 바탕을 둔 많은 문장과 에피소드가 문학과 철학 역사 곳곳에서 끊임없이 인용되고 재생산된다. 하지만 또 그만큼 자주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경전도 드물다. 예를 들어 동성애나 낙태 논쟁을 보자. 찬반 진영은 물과 기름처럼 극단적으로 갈리는 마당에,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말이 옳다는 주장의 근거로 양쪽 다 성경을 제시한다. 그만큼 시각과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여지가 많다. 더 놀라운 것은 성서를 제대로 다 읽은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미국 버지니아 커먼웰스대 종교학과 교수인 저자에 따르면 전문가들도 완독을 버거워한단다. 성서 읽기가 어려운 이유는 워낙 복잡하고 버전도 다양한 탓이다. 첫 출발은 고대 히브리어로 쓰인 유대교의 성서였으나 이후 그리스어와 라틴어, 독일어와 영어로 여러 언어를 거치며 시대마다 성서는 조금씩 바뀌어 왔다. 게다가 성서는 신이나 천재적 작가 한 명이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책이 아니다. 저자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헤밍웨이가 어느 저녁 모히토(칵테일의 일종)를 마시고 단숨에 써버린 단편소설이라기보다는 역사를 살아간 이들 여럿이 함께 작업한 ‘위키피디아’인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성서에 오류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예를 들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가능성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할 가능성보다 작다”에서 낙타는 사실 ‘밧줄’을 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어 낙타(kamelos)와 밧줄(kamilos)을 혼동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설도 있다. 예루살렘에 ‘바늘귀’라는 이름을 지닌 좁은 문이 있었는데 여길 통과하려면 낙타가 짐을 다 내려놓고 무릎으로 기어야 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단어 하나를 놓고도 헷갈리는 일이 벌어지는 게 성경이다. 모순도 없지 않다. 대표적 사례가 이혼이다. 성서의 말라기에는 이혼을 금한다고 나오는데, 에스라에는 오히려 조장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각자 시대에 따라 집필한 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말라기에는 이혼당하고 사회적 경제적 약자로 추락하는 여성들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담겼다. 그런데 에스라 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강제 이주를 당해 타 문화권 아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그 때문에 안타깝지만 민족 혈통을 지키기 위해 이민족 아내와 이혼하라는 뜻이었다. “성서의 역사는 일어난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보도로서 기록된 것이 아니다. 오늘날 기자나 역사가들의 기록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성서는 신앙의 책으로서, 삶의 모든 경험을 신앙의 눈으로 해석한 신앙인들이 쓰고 베끼고 편집한 것이다.” 성서를 둘러싼 오해도 흥미로운 게 많다. 아담과 이브의 에덴동산 추방 때문에 뱀을 악마(사탄)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짙은데, 성경은 단 한 줄도 뱀을 악마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세가 장대에 매달았던 뱀은 치유의 능력을 지닌 이로운 존재였다. 악마의 상징이 된 숫자 ‘666’은 네로 황제를 그리스어를 이용해 암호로 표시한 것이다. 그런데 초기 성서 필사본은 라틴어로 만든 탓에 ‘616’으로 표시했다. ‘가장 오래된 교양’은 제목처럼 교양 정보가 넘치는 책이다. 교인이 아니어도 배우는 게 꽤 많다. 무엇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애쓰는 저자의 균형감이 탄복할 만하다. 다만 성경 입문자를 위한 안내서라고 보기에는 생각보다 수준이 높다. 종교에 대한 지식이 얕아서인지 지도를 손에 쥐고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 그렇지, 신의 말씀에 다가가는 일이 쉬울 리가 있나.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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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사쿠라 교수 “출신배경 다른 사할린 한인들 김치로 통했다”

    “서로 다른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지녔고 심지어 말도 잘 안 통하는 사할린 한인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김치였다.” 아사쿠라 도시오(朝倉敏夫·63·사진)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 교수가 러시아 사할린 지방의 한인사회 음식문화를 연구한 논문 ‘사할린의 김치에 대한 고찰’에서 김치가 이 지역 한인들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나아가 이들을 한민족으로 융합하게 만드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아사쿠라 교수는 이런 내용을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주최로 26일 열리는 유네스코 무형유산자문기구 국제심포지엄 ‘김치와 김장문화’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논문에 따르면 사할린 지방 전체 한인동포는 약 3만 명으로, 그 구성이 매우 다양하다. 일제강점기에 끌려와 이 땅에 뿌리내린 ‘화태치’(약 60%)가 가장 많고, 옛 소련 스탈린 시절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다가 돌아온 ‘큰땅뱅이’와 북한에서 벌목장이나 광산에 일하러 왔다 눌러앉은 ‘북선치’가 나머지를 이룬다. 여기에 일부 남한과 북한 국적 거주자, 중국 조선족까지 일부 뒤섞여 있다. 아사쿠라 교수가 보기에 이곳 한인들은 생김새 외엔 공통점이 많지 않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중국과 한반도에서 몇 대를 거치면서 각기 다른 생활방식을 형성한 탓이다. 하지만 음식문화만큼은 같은 핏줄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식탁에 김치를 빼놓지 않고, 함께 김장을 담그며, 나물을 즐기는 전통은 같은 틀로 찍어낸 듯 닮았다. 재밌는 것은 사할린 김치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여러 지역 문화가 함께 버무려져 현재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일제 패망 직후 이 지역 김치는 러시아식 샐러드에 가까웠다. 양배추를 주재료로 양념을 약하게 해 맛이 밍밍했다. 경상도 출신이 많아 김장에 생선을 넣는 풍습은 이어졌는데 현지에서 조달하기 쉬운 연어를 많이 썼다. 그러다 1960년대 이후엔 북한 사람이 대거 유입되며 북한식 백김치를 많이 담갔다. 소련이 무너진 뒤에는 한국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고춧가루도 듬뿍 넣고 소도 제대로 만들기 시작했다. 현재 사할린 한인 가정에서 50% 이상이 김치냉장고를 쓰는 것도 한국에서 전파된 유행이다. 한국에서 들여오는 고춧가루나 양념은 현지에서 최상품으로 치지만 고가여서 중국산을 많이 이용한다. 놀라운 것은 이런 한국식 김치가 현재 사할린 시장에서 현지 러시아인들에게 가장 잘 팔리는 음식으로 대접받는다는 점이다. 과거 ‘마늘냄새 난다’며 인종 비하의 대상이 됐던 김치가 이제는 러시아인들의 선호식품으로 바뀌었다. 아사쿠라 교수는 “한국의 경제력이 급상승하고 한류문화가 확산되면서 김치나 나물이 수준 높은 고급 요리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문화적 변화는 사할린 동포들에게 자긍심으로 이어졌다. 아사쿠라 교수의 인터뷰에 응한 많은 한인들은 출신과 상관없이 김치를 ‘민족의 피’라며 자랑스러워했다. A 씨는 “이름도 바뀌고 한글도 잊었지만 김치 맛은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과거 김치라면 눈살을 찌푸리던 러시아인들이 김장을 배우려 하는 걸 보면 매우 뿌듯하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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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승길 길동무 꼭두, 유럽 4개국 나들이

    ‘저승 가는 우리네 넋의 길동무, 꼭두가 유럽인과 조우하다.’ 꼭두는 한국의 전통 상례 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장식품이다. 망자를 모시는 상여를 장식하는 나무 조각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동물 모양으로 만들어진 꼭두에는 세상을 떠나는 이를 위로하고 지켜 주며 가는 길을 안내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엄격한 형식에 얽매이기보다는 편안하면서도 해학적인 분위기가 물씬하다. 한국적 정서가 오롯한 꼭두가 27일부터 유럽 4개국 순회 전시에 나선다. 동숭아트센터 꼭두박물관(관장 김옥랑)은 독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그라시 박물관에서 조선 후기 상여와 꼭두 유물 76점을 소개하는 기획전 ‘꼭두, 영혼의 동반자’가 개최된다고 22일 밝혔다. 독일 전시회는 11월 15일까지 열리며, 이후 △헝가리 부다페스트(주헝가리 한국문화원·11월 22일∼12월 20일) △벨기에 브뤼셀(주벨기에 한국문화원·내년 1월 17일∼2월 28일) △프랑스 파리(유네스코본부 전시장·내년 4월 14∼18일)로 이어진다. 이번 순회전은 지난해 7∼9월 영국 런던의 주영 한국문화원에서 런던 올림픽을 기념해 열렸던 특별전 ‘꼭두, 또 다른 여행길의 동반자’가 현지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대영박물관의 존 스튜어트 아시아 담당 큐레이터는 “한국의 전통 문화유산인 꼭두를 소개한 놀랍고도 짜임새 있는 전시”라며 “대영박물관에서도 조만간 기획 전시로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유럽 여러 곳에서 전시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유럽에서는 꼭두라는 목공예품 자체의 조형적 아름다움은 물론 꼭두가 지닌 영성(靈性)에 큰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꼭두에는 ‘이쪽과 저쪽의 경계’라는 의미가 내재돼 있다. 망자를 현세에서 저승으로 이어 주는 매개체에 담긴 해학과 여유가 강렬한 인상을 전해 준 것이다. 김옥랑 관장은 “우리 조상의 전통적 평민문화에 밴 독특한 세계관과 미적 감수성을 유럽에 선보일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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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화내는 것도 소통의 기술

    살다 보면 명언까진 아니어도 은근히 실생활과 잘 맞아떨어지는 말이 있다. ‘입이 보살’이라든가 ‘패션의 완성은 외모’처럼.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도 그중 하나일 성싶다. 현실에서는 갈등이 생겼을 때 강하게 반응해야 해결되는 경우가 잦다. 민원창구나 소비자센터에 가면 이런 경우를 꽤 본다. 하지만 이 명제(?)에는 두 가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일단 자신의 대화 능력을 반성해야 한다. 성질을 내지 않고서는 그만큼 의견 전달을 하지 못한다는 뜻일 수 있으니까. 반대로 상대방 역시 일관성 없는 태도를 고민해 봐야 한다. 화낸다고 들어줄 거면 그냥 해줬어도 되지 않을까. 원칙이 흐릿한 대응은 상대의 불신만 키울 뿐이다. 일본 도쿠야마(德山) 공업고등전문학교 철학과 교수인 저자가 볼 때 이런 상황이 자주 목도되는 이유는 현대인들이 ‘화(怒)’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분노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잘 모르거니와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할지도 익숙하지 않다. 화라고 하면 부정적인 느낌이 강해서, 참거나 삭이거나 표현하지 않는 걸 미덕으로 받아들인다.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특히 그런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다. 동양도 본디 화를 나쁘게 본 것은 아니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화 역시 인간의 감정 가운데 하나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했다. 불공정한 일이 벌어졌을 때 분명하게 항의하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당연하게 여겨지고 또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화가 “인간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에너지”로 “적절하게 표출해야 육체도 정신도 사회도 건강해진다”고 조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적절함’이다. 무작정 언성 높이고 성질부리는 건 제대로 화내는 게 아니다.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이성을 잃는 하책(下策)이다. 진짜 분노할 줄 아는 이는 그럴 때일수록 목소리를 낮추고 냉정해진다. 핵심을 명료하게 전달하되 끝까지 굽히지 않는다. 진짜로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대목은 화의 명분과 정당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분노의 최고수’였던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엄격한 자기절제로 비폭력을 지켰기에 주장하는 바를 관철시켰다. 화내지 않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의 일본이 그렇다. 대표적인 사례가 후쿠시마 원전과 신사 참배 문제다. 원전의 경우 정부가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무책임한 대응을 일삼는데 어찌 이리 차분할 수 있나. 신사 참배 역시 극우세력이 A급 전범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을 국민이 좌시하면서 사태를 악화시켰다. “몇십 년이 넘도록 미해결인 상태로 이 문제를 방치하는 정치가들은 나태하고 태만할 뿐만 아니라 책임의식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70년이 지나도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을 만든 주범, 이른바 A급 전범이라고 해야 하는 우유부단한 정치가에게는 단호히 화를 낼 필요가 있다.” 사실 저자와는 올해 초 인터뷰를 했던 인연이 있다. ‘인생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가 국내에 번역 출간된 게 계기였는데, 오가와 교수는 종합상사 직원, 시청 공무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래서일까. 확실히 공자 왈 맹자 왈만 읊는 ‘먹물’과는 다르다. 너무 단정 짓는 대목도 있지만, 이렇게 통쾌한 철학책 만나기도 쉽지 않다. 주위에 자주 ‘버럭’ 하는 이가 있다면 꼭 권하시길. 뻔한 화 다스리는 법보다 100배 낫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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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양의 시대에도 경주는 살아 있었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이 신라의 수도 서라벌이 아닌 조선시대 경주에 초점을 맞춘 특별전 ‘조선시대의 경주’를 연다. 천년고도 경주는 불국사 석굴암처럼 곳곳에 세계적인 역사 유적이 즐비하지만 신라 시기만 주목받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경주, 고려 성종 6년(987년)에 동경(東京)이란 명칭이 붙여진 이후에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던 공간이다. 박물관은 특히 조선 500년 동안 사상과 문화가 꽃을 피웠던 대목에 주목했다. 1465년 ‘금오신화’를 경주에서 썼던 매월당 김시습(1435∼1493)과 경주 김씨로 신라 금석문을 연구했던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관련 자료를 소개한다. 1672년 창건한 경주 옥산서원(사적 제154호)에 모셔진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1491∼1553)의 저술과 친필도 볼 수 있다. 임진왜란도 빼놓을 수 없는 역사다. 1592년부터 2년에 걸쳐 왜적과 네 차례나 공방을 주고받은 ‘경주성 전투’가 대표적이다. 임진왜란 전후 시절 경주 부윤의 갑옷과 투구, 보물 제884호인 ‘삼안총(三眼銃)’, 신무기 포탄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전시한다.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문화재도 적지 않다. 조선시대 경주를 오가는 사신의 관사인 ‘동경관(東京館)’의 현판과 이곳에 모셔졌던 ‘전패(殿牌·왕의 위패)’, 경주 김씨 사당 ‘숭혜전(崇惠殿)’에 보관됐던 의례용 가마를 만날 수 있다.11월 10일까지. 무료. 054-740-7500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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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첨성대 일부 균열… 정밀 안전진단 실시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인 경주 첨성대(慶州 瞻星臺·국보 제31호)가 정밀구조 안전진단에 들어간다. 문화재청은 17일 “올해 정기점검 결과 발견된 첨성대의 일부 균열과 지대석(址臺石) 침하 현상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정밀구조 안전진단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안전진단 결과에 따라 전문가 자문 및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수 보강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신라 7세기 선덕여왕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첨성대는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겪으며 일부 균열이 생기고 몸통의 돌들 사이가 벌어지는 현상이 발견돼 왔다. 이 때문에 몇 년 전부터 첨성대의 안전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관계자는 “2008년부터 상시 계측을 진행했으나 구조변동을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최근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확실하게 점검하는 차원에서 안전진단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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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즐거운 추석]박물관-궁궐 체험 공짜 ‘절씨구’

    한가위 하면 고향에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즐기는 행복한 시간을 떠올리지만, 막상 여유가 생기면 음주나 고스톱으로 시간을 보내기 십상이다. 아이들이야 어디든 놀러가자 아우성이지만, 사람도 많고 명절이랍시고 비싸기만 해 갈 곳이 마땅찮다. 하지만 눈 밝은 사람들은 안다. 국립박물관이나 궁궐을 찾으면 공짜로 즐길 거리가 꽤 푸짐하다. TV 앞에 늘어져 핀잔 듣지 말고 100점짜리 추석을 보낼 계획을 짜 보자.○ 박물관으로 오세요! 서울 경복궁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은 명절 때 최고의 ‘핫 플레이스(hot place)’다. 해마다 다양한 민속행사를 준비해 많은 인파가 몰린다. 올해도 18일부터 22일까지 특집프로그램 ‘추석 명절-풍요로움을 이웃과 함께 나눠요’로 관람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19일부터 3일간 오후 2시 박물관 앞마당에서는 노래자랑대회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아리랑을 불러요’가 열린다. 3대 가족 4인이거나 다문화가정 가족 4인에게 참가 자격을 주는데, 아리랑이나 아리랑에 상응하는 각국 전통민요를 부르면 된다. 순위를 가려 전통시장 상품권 같은 선물을 준다. 다채로운 공연도 많다. 18일 국악그룹 ‘호연’의 타악기 공연을 시작으로 19일에는 페루음악단 ‘잉카엠파이어’의 민속음악 공연과 양주 소놀이굿, 강강술래 및 달맞이 민요 공연이 펼쳐진다. 강강술래와 비슷한 여성 군무인 ‘영덕 월월이청청’(20일)과 무언극 퍼포먼스 ‘광대들의 수다’(21일), 고성오광대 탈춤공연(22일)이 차례로 이어진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북청 사자탈 만들기’는 야외 놀이마당에서 아이들이 직접 사자탈을 만드는 데 참가할 수 있고, 탈을 쓰고 탈춤도 배울 기회를 제공한다. ‘거북놀이’는 경기 이천지역에서 전해지는 전통놀이로 대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수수 잎을 덮어 거북을 만든 다음 지신밟기를 한다. 이 밖에 승경도놀이와 제기차기 팽이치기 윷놀이 굴렁쇠놀이도 아이들을 기다린다. 외국의 추석 문화도 경험할 수 있다. 21, 22일 볕들재 온누리방에서는 베트남의 추석 ‘쭝투’를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20, 21일 다문화 음식 판매 부스에서는 중국 일본 필리핀 베트남의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다. 02-3704-3114 국립중앙박물관은 추석 다음 날인 20일 오후 3시부터 박물관문화재단 주최로 무료 야외공연 ‘2013 한가위한마당’을 개최한다. 올해는 김승일무용단이 전통무용 특집 ‘월야청청-풍류’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민속춤을 소개한다. 강강술래와 부채춤은 물론이고 살풀이춤과 진도북춤도 만날 수 있다. 진도북춤은 양손에 북채를 쥐고 장구를 치듯 잔가락을 많이 활용해 신명나면서도 섬세한 맛이 있다. 1544-5955○ 궁릉으로 가세요! 문화재청은 올해 역시 궁궐과 종묘, 조선 왕릉을 추석(19일) 하루 무료로 개방한다. 18일과 20일에는 한복을 입은 관람객에 한하여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창덕궁 후원은 예외다. 서울 덕수궁에서는 19, 20일 오후 3시부터 경기민요 공연이 열린다. ‘덕수궁 가무별감, 얼씨구! 좋다! 잘한다!’라는 제목의 이번 공연은 1시간 동안 즉조당 앞뜰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02-751-0740 경기 구리시 동구릉(031-563-2909)과 남양주시 광릉(031-257-7105), 홍유릉(031-591-7043)에서는 18∼20일 추석을 맞이해 민속놀이 체험 행사가 준비됐다. 투호나 윷놀이를 즐길 수 있고, 방문객들에게 전통차도 나눠 준다. 경기 여주군 세종대왕릉과 충남 금산군 칠백의총, 충남 아산시 현충사도 오전 9시부터 전통민속놀이를 펼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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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경진 교수 “청주 운천동 신라사적비, 7세기말 아닌 나말여초 건립”

    7세기 말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청주 운천동 신라사적비’(충북 유형문화재 제134호)가 이보다 200여 년 후인 나말여초 시기에 건립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사적비는 신라가 통일전쟁을 벌일 당시 이미 ‘삼한일통(三韓一統)’ 의식이 형성돼 있었다는 시각을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로 간주돼 왔기 때문에 이 주장은 학계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윤경진 경상대 사학과 교수(48)는 최근 수선사학회 학술지 ‘사림’에 발표한 논문 ‘청주 운천동 사적비의 건립 시기에 대한 재검토’에서 “비문에 실린 글들을 분석한 결과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692) 때보다는 태조 왕건(877∼943)이 고려를 창건할 무렵에 비가 세워졌다고 보는 게 훨씬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가 사적비의 건립 시기를 나말여초로 보는 이유는 크게 3가지다. 먼저 비문에 제작 관계자로 등장하는 ‘천인아간(天仁阿干)’의 표기 방식이다. 천인은 사람 이름이고, 아간은 신라 관등제도 17등급 가운데 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직위를 뜻한다. 그런데 7세기 신라의 인명 기재 방식은 ‘관직+관등+이름’의 순이었다. 천인아간처럼 ‘이름+관등’을 적는 것은 신라 말기 지방사회에서 쓰던 스타일이다. 비문에 나오는 ‘사해(四海)’도 7세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사해는 중국 황제가 천하를 거론할 때 쓰는 용어다. 비에는 ‘천덕(天德·왕의 덕)이 사해로 펼쳐졌다’고 나오는데, 이는 당나라와 사대 외교관계였던 신라에서 기피하던 표현이다. 당시 신라는 ‘사해’ 대신 ‘사방(四方)’이나 ‘사변(四邊)’을 썼다. 윤 교수는 “반면 독립적 세계관을 펼쳤던 고려가 세운 ‘광조사 진철대사 보월승공탑비’(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85호)나 ‘무위사 선각대사 편광탑비’(보물 제507호)에는 사해가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하도낙서(河圖洛書)’에 관한 언급도 마찬가지다. 하도는 중국 고대 전설의 제왕 복희(伏羲)가 황하에서 얻은 그림, 낙서는 중국의 성인(聖人)인 하우(夏禹)가 낙수에서 얻은 글을 일컫는다. 모두 새로운 천하가 탄생할 때 건국의 상징으로 쓴다. 그런데 신문왕은 둘째 치고 문무왕도 통일은 했어도 나라를 세운 건 아니다. 창업군주인 고려 태조로 봐야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윤 교수는 비문의 ‘수공(垂拱) 2년’이란 중국 연호만으로 해당 연도인 686년(신문왕 6년) 즈음에 사적비가 세워졌다고 보는 기존 학설은 틀렸다고 본다. 보통 이런 비에는 관련 건물을 중창하며 내력을 적는 경우가 많다. 명확하지는 않으나 이는 어떤 건물이 처음 세워진 시기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다. 최연식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47)는 “논란이 컸던 사적비 제작 시기에 대한 의미 있는 문제 제기”라며 “다만 비문 판독이 완전치 않아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건립 시점의 조정이 불가피한 만큼 삼한일통의식도 다시금 고찰할 필요가 있다는 게 윤 교수의 지적이다. 삼한일통의식이란 신라가 고구려, 백제와 전쟁을 벌일 때 하나의 나라로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지녔다는 인식을 말한다. 이런 의식이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는지, 통일신라시대가 무르익은 후대에 만들어졌는지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사적비는 전자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결정적 근거로 자주 거론해 왔다. 이유는 비에 나오는 ‘민합삼한이광지(民合三韓而廣地·삼한의 백성이 하나로 합쳐지고 땅은 넓어지다)’라는 문장 때문이다. 통일 직후인 신문왕 때 이처럼 통일의지가 명확한 글을 새길 정도라면, 이런 세계관이 이전부터 있었다고 보는 게 옳다는 게 주류의 시각이었다. 하지만 사적비의 건립 시기가 달라지면 이 같은 논리는 설득력을 잃게 된다. 고려 역시 후삼국을 통일하며 삼한일통을 표방했다. 윤선태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48)는 “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논문”이라며 “다만 한 가지 증거만으로 삼한일통의식 전체를 뒤집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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