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北공작원 “원격장치 오작동돼 폭탄 일찍 터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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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테러 30주년… 슬픔은 진행형… 가해자 - 피해자 다룬 책 나란히 출간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라종일 지음/272쪽·1만3000원·창비
◇김재익 평전/고승철 이완배 지음/408쪽·1만8000원/미래를소유한사람들

강산이 세 번 바뀌었다. 누군가에게는 잊혀지기에 충분한, 또 어떤 이는 여전히 시리도록 사무칠 시간. 다시 공휴일로 바뀐 한글날은 머나먼 타지에서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웅산 테러’ 3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두 책의 주인공은 일면식도 없거니와 서로를 알지 못한다. 그저 이 테러 사건을 접점으로 이어지는 인물들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한 명은 잔혹한 가해자고, 한 명은 애꿎은 피해자였다. 딱 하나 공통점이 있다. 갈라진 땅 한반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얄궂은 생애를 살았다.

강민철부터 보자. 본명은 강영철. 아웅산 테러를 자행한 북한 특수부대원 3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폭탄은 터뜨렸으나 전두환 대통령이란 목표 제거에는 실패한 채 버마(미얀마) 경찰에 체포됐다.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조사과정에 협력한 점을 참작해 형 집행보류로 목숨을 부지했다. 줄곧 버마 교도소에 갇혀 있다가 2008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책 제목 그대로 테러리스트였다. 사람을 죽이는 데 망설임이 없었고, 조국을 위한 영웅적 행위라고 여겼다. 이후 수감생활 도중 종교에 귀의하며 회개했다지만 범죄 이력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양대 석좌교수인 저자는 그를 둘러싼 환경에 주목한다. 남북 대립의 최전선에 섰다가 결국에는 남북 모두에 버림받은 인생. 그 기구한 운명을 빚어낸 역사를 되짚어본다.

짧은 분량이지만 ‘아웅산…’에는 고급정보가 상당히 많이 담겼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고 주영·주일 대사, 국가정보원 해외담당 차장을 지낸 경력답게 쉽게 접근하기 힘들었던 얘기를 들려준다. 책에 따르면 전 대통령이 목숨을 건진 것은 기존에 알려졌던 것처럼 북한 테러리스트의 착각 때문이 아니었다. 강민철은 동료 수인들에게 원격조종장치가 오작동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한다. 또 자신을 버린 북한을 원망하며 남한행을 희망하기도 했다.

다만 한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는 소개와 달리, 강민철이란 인물에게 대한 내용은 다소 부족해 보인다. 물론 타국 교도소에 갇혀 있던 북한 공작원에 대한 접근이 쉬울 리 없었을 터다. 하지만 자신을 다룬 책에서마저도 그는 중심인물이 되지 못하는 듯했다.

반면 ‘김재익 평전’에는 한 개인의 생애가 오롯이 담겨 있다. 바로 테러 당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으로 해외 순방길에 올랐다가 아웅산에서 순직한 김재익 박사(1938∼1983)를 다뤘다. 세상을 떠난 지 오래건만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은 ‘천재 경제관료’였기에 자료나 증언이 풍성했다.

김 박사는 전 대통령이 “경제는 자네가 대통령”이라며 신임했을 정도로 당대의 경제정책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1980년대 초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서민들이 고통스러워할 때 고군분투해 물가를 안정시킨 주역이었다. 1981년 공정거래위원회를 발족하고, 1983년 경제기획원이 수입자유화 추진 계획을 발표한 것도 그의 공이 컸다.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1982년 금융실명제 실시를 발표하는 선구자적 역할도 했다. 책에 따르면 탁월한 천재였음에도 겸손하고 인간미도 넘쳤다고 한다. 신문기자 출신인 두 저자가 깔끔하게 정리했다.

하지만 공과를 공정히 따져보는 평전으로서의 균형감은 못내 아쉽다. 쿠데타로 거머쥔 권력에 참여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바로 김 박사가 그 정권과 일할 때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경제수석이니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요절한 탓에 관료로서 짊어질 수밖에 없는 멍에와 오욕에서 자유로워진 점을 간과한 측면도 있다. 흑백논리로 그를 폄하해서도 안 되지만 ‘세인트(성인)’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는 식의 찬사로 일관한 점은 과유불급이라 생각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김재익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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