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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합∼!” 쩌렁쩌렁한 기합 소리와 함께 매트 위에서 유도복을 입은 남자 배우 두 명이 두 팔로 공격하다 뒤엉켰다. 서정주 액션 감독이 “너무 빨라! 대사 하듯이 동작 하나하나가 완전히 몸에 박혀야 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쪽에서는 권투 장갑을 끼고 “퍼퍼벅” 소리를 내며 복싱 미트를 날렵하게 치는가 하면 배드민턴 라켓으로 셔틀콕을 내리치는 동작을 끝없이 반복하는 이도 있었다. 15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동숭길에 자리한 연극 ‘유도소년’ 연습실은 체육관 같았다. 여기저기에서 “헉, 헉” 소리가 들렸다. 복싱 선수 민욱 역을 맡은 이현욱(32)의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다음 달 4일 막이 오르는 ‘유도소년’은 전북체고 유도선수 박경찬이 1997년 전국체전에 참가하는 과정을 풋풋하고 뜨겁게 그린 작품이다. 2014년 초연됐고 이듬해 재공연됐다. 화제 속에 티켓은 매진됐고 당시 박해수, 박훈이 열연해 호평을 받았다. 세 번째인 이번 공연에는 유도 선수 태구 역을 맡은 신창주를 제외하고 모두 새 멤버다. 연습 시작 전 배우들은 두 달 동안 유도, 복싱, 배드민턴 등 역할에 맞춰 개인 레슨을 받았다. ‘유도소년’은 전북체고 유도 선수였던 박경찬 작가가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재준 연출가와 함께 썼다. 이날 박 작가는 “하체부터 들어올려야 해”라며 배우들의 동작을 일일이 바로잡아 주고 있었다. 이 연출가는 “운동하는 장면이 전체의 80%를 차지한다”며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연기 연습을 한 후 오후 7시부터 10시 넘어서까지 액션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출가의 책상에는 ‘유도의 입문’ 책이 놓여 있었다. 배우들은 줄넘기 500개는 단숨에 할 정도란다. 초연, 재연 때 전기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비롯해 유도 국가대표 출신들이 관람했는데 “진짜 선수들 같아서 놀랐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배우들의 손목과 발목에는 온통 근육 테이프와 붕대가 감겨 있었다. 복싱 선수 민욱 역을 맡은 신성민(32)은 “다른 작품에 비해 2, 3배 이상 힘들다. ‘유도소년’은 35세가 넘으면 하기 어렵다고 하던데 그게 무슨 말인지 실감하고 있다”며 웃었다. 경찬 역을 맡은 박정복(34)은 “밥은 하루 한 끼만 먹고 에너지바와 단백질 보충제를 먹으며 몸을 만들고 있다. 땀 흘린 걸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현욱은 “5kg이 빠졌는데 더 빼야 한다. 치기 어렸던 학창 시절과 아날로그 시대의 추억이 생각나, 고되지만 재미있어서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짧은 인터뷰가 끝나고 다시 연습이 시작됐다. 시곗바늘은 밤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박정복은 목 조르기를 당하면서도 “내가 끝났다고 하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랑께!”라는 대사를 외쳤다. 이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한겨울밤 연습실의 공기는 한층 더 후끈해졌다. 3월 4일∼5월 14일 서울 수현재씨어터. 4만4000원. 02-744-4331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영화 ‘대부’의 알 파치노처럼 되기를 소망하는 사내가 있다. 가정과 조직을 지키는 방법은 폭력이라 굳게 믿고 실천하지만 그럴수록 가족과 부하들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3월 26일까지 공연하는 연극 ‘남자충동’은 전남 목포시를 배경으로 주먹이 최고라 여기는 ‘수컷의 삶’을 차지게 풍자한 작품이다. 조광화 연출가의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으로 1997년 초연돼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았다. 주인공 이장정 역의 류승범은 단순하고 우악스러우면서도 천진한 면이 있는 캐릭터를 실감나게 소화한다. 그가 연극무대에 선 것은 ‘비언소’ 이후 14년 만이다. 장정 역에는 박해수가 더블 캐스팅돼 선 굵은 또 다른 캐릭터를 보여준다. 전라도 사투리를 천연덕스럽게 구사하는 류승범은 노름으로 집을 저당 잡힌 아버지, 징글징글한 삶에 이혼하고 떠나버린 어머니 대신 존경받는 가장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장정의 심정을 객석으로 고스란히 전달한다. 자신을 피하는 가족과 부하들을 보며 잠깐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더 센 주먹이 필요하다고 비장하게 다짐하는 모습은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자폐아 여동생 달래에게 한없이 약해지는 그는 정이 뚝뚝 묻어나는 오라비 그 자체다. 때론 아이 같고 때론 ‘양아치’ 같은 표정을 자유자재로 짓는 류승범은 딱 맞는 옷을 입은 듯하다. 그가 내뿜는 거칠고 펄떡이는 에너지는 극을 ‘웃프게’ 만드는 단단한 중심축이다. 장정의 부하들이 다리를 건들거리는 춤을 추며 남자라면 무릇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통념에 부합하기 위해 주먹을 휘두른 경험을 하나씩 토해내는 대목은 주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아버지 역의 김뢰하, 어머니 역의 황영희 등 관록 있는 배우들도 무대를 꽉 채운다. 달래 역의 송상은이 들려주는 놀라울 정도로 맑고 고운 음색은 비정하고 탁한 폭력의 세계와 선명하게 대비된다. 라이브로 연주하는 베이스기타의 묵직하고 끈적끈적한 음색은 감정선을 배가시킨다. ★★★★(★5개 만점). 서울 종로구 대학로 TOM 1관. 4만∼6만 원. 1544-1555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야합~!” 쩌렁쩌렁한 기합 소리와 함께 매트 위에서 유도복을 입은 남자 배우 두 명이 두 팔로 공격하다 뒤엉켰다. 서정주 액션 감독이 “너무 빨라! 대사 하듯이 동작 하나하나가 완전히 몸에 박혀야 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쪽에서는 권투 장갑을 끼고 “퍼퍼벅” 소리를 내며 복싱 미트를 날렵하게 치는가 하면 배드민턴 라켓으로 셔틀콕을 내리치는 동작을 끝없이 반복하는 이도 있었다. 15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동숭길에 자리한 연극 ‘유도소년’ 연습실은 체육관 같았다. 여기저기에서 “헉, 헉” 소리가 들렸다. 복싱 선수 민욱 역을 맡은 이현욱의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다음달 4일 막이 오르는 ‘유도소년’은 전북체고 유도선수 박경찬이 1997년 전국체전에 참가하는 과정을 풋풋하고 뜨겁게 그린 작품이다. 2014년 초연됐고 이듬해 재공연됐다. 화제 속에 티켓은 매진됐고 당시 박해수, 박훈이 열연해 호평을 받았다. 세 번째인 이번 공연에는 유도 선수 태구 역을 맡은 신창주를 제외하고 모두 새 멤버다. 연습 시작 전 배우들은 두 달 동안 유도, 복싱, 배드민턴 등 역할에 맞춰 개인 레슨을 받았다. ‘유도소년’은 전북체고 유도선수였던 박경찬 작가가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재준 연출가와 함께 썼다. 이날 박 작가는 “하체부터 들어올려야 해”라며 배우들의 동작을 일일이 바로 잡아주고 있었다. 이 연출가는 “운동하는 장면이 전체의 80%를 차지한다”며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연기 연습을 한 후 오후 7시부터 10시 넘어까지 액션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출가의 책상에는 ‘유도의 입문’ 책이 놓여져 있었다. 배우들은 줄넘기 500개는 단숨에 할 정도란다. 초연, 재연 때 전기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비롯해 유도 국가대표 출신들이 관람했는데 “진짜 선수들 같아서 놀랐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배우들의 손목과 발목에는 온통 근육 테이프와 붕대가 감겨 있었다. 복싱 선수 민욱 역을 맡은 신성민(32)은 “다른 작품에 비해 2, 3배 이상 힘들다. ‘유도소년’은 35세가 넘으면 하기 어렵다고 하던데 그게 무슨 말인지 실감하고 있다”며 웃었다. 경찬 역을 맡은 박정복(34)은 “밥은 하루 한 끼만 먹고 에너지바와 단백질 보충제를 먹으며 몸을 만들고 있다. 땀 흘린 걸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현욱(32)은 “5㎏이 빠졌는데 더 빼야 한다. 치기 어렸던 학창 시절과 아날로그 시대의 추억이 생각나, 고되지만 재미있어서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짧은 인터뷰가 끝나고 다시 연습이 시작됐다. 시계 바늘은 밤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박정복은 목 조르기를 당하면서도 “내가 끝났다고 하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랑께!”라는 대사를 외쳤다. 이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한겨울밤 연습실의 공기는 한층 더 후끈해졌다. 3월 4일~5월 14일, 서울 수현재씨어터, 4만4000원, 02-744-4331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재벌가 아들인 명문대생 태석이 클럽에서 만난 여성과 호텔에 투숙했다 몸싸움이 벌어지고, 여성이 숨진다. 대놓고 돈을 밝히고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속물 변호사가 태석의 변호를 맡아 검사와 팽팽한 게임을 펼친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기시감이 너무 많이 든다. 돈으로 죄를 덮으려는 재벌가 아들의 이야기는 영화, 드라마로 숱하게 변주됐으니. 현재 공연 중인 연극 ‘베헤모스’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뜻밖의 단서를 통해 반전이 일어나며 이야기를 한 번 더 비튼다. 그 때문에 극의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몰입도가 점점 더 높아진다. 그리고 태석, 변호사, 검사 등 인물들의 내면을 파고들며 상처, 욕망, 증오 등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베헤모스는 성경에 나오는 괴물이다. 2014년 KBS에서 단막극으로 방송된 ‘괴물’을 원작으로 만들었다. 100분간 진행되는 연극은 돈과 명예 앞에서 적극적으로, 혹은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괴물이 되어 버린 인간 군상을 보여 주며 되묻는다. 당신은 이들과 얼마나 다르냐고. 만약 다르다면 어디까지 버텨 낼 수 있느냐고. 작품은 관객에게 끝내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을 직시하라고 일갈한다. 씁쓸하지만 그래서 여운이 더 오래 남는다. 크지 않은 무대는 호텔방, 취조실, 검사 사무실, 재벌 회장실 등으로 나눠 짜임새 있게 구성했다. 영상물도 적절히 활용해 극의 전개 속도와 긴장감을 높였다. 배우들은 집중력 있는 연기로 극을 힘 있게 끌고 간다. 정원조, 김도현, 최대훈, 김찬호 등 출연. 4월 2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4만4000∼5만5000원. 02-739-8288 ★★★ (★ 5개 만점)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영국 국립극장의 화제작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국립극장은 NT Live(National Theatre Live) ‘제인 에어’(사진)와 ‘프랑켄슈타인’을 19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중구 해오름극장에서 번갈아 상영한다. NT Live는 영국 국립극장이 화제가 된 연극을 촬영해 각국 공연장과 영화관에서 생중계하거나 상영하는 프로그램이다. 국립극장이 2014년 국내에 처음 도입해 ‘워 호스’ ‘리어왕’ ‘햄릿’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 7편을 소개했다. 이번에 처음 상영하는 ‘제인 에어’는 영화 ‘미스터 홈즈’ ‘패딩턴’ 등에 출연한 배우 매들린 워럴이 제인 에어 역을 맡아 당당하고 진취적인 여성상을 연기한다. 무대는 사다리와 철조물로 구성됐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연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조니 리 밀러가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피조물을 번갈아 연기한 ‘프랑켄슈타인’은 앙코르 공연된다. 두 배우의 폭발적 연기로 화제가 된 작품으로, 2015년 국내에 상영됐을 때 객석 점유율 100%를 기록했다. 영화 ‘트레인스포팅’ ‘더 비치’ 등의 감독인 대니 보일이 연출했다. 1만5000원. 02-2280-4114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혼밥’ ‘혼술’에 이어 ‘혼공’이란 말도 등장했다. 혼자 공연 보는 걸 말한다. 기자도 ‘혼공’족이다. 공연을 담당하기 훨씬 전부터 그랬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공연을 봤다. 한데 보고 싶은 작품이 늘어나면서 서로 시간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혼자 보니 원하는 날짜에, 원하는 배우가 나오는 공연을 보기 수월했다. 더 집중해서 볼 수 있고, 공연장을 나오면서 찬찬히 여운을 음미하는 맛도 있었다. 다만, ‘혼공’은 수다 떨듯 편하게 감상을 나누는 즐거움을 누리기는 어렵다. 가끔 마련되는 ‘관객과의 대화’는 그래서 늘 흥미롭다. 10일 연극 ‘갈매기’(게릴라극장) 공연이 끝난 뒤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여배우인) 아르까디나의 현재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요?”, “(남자 주인공을 연모하는) 마샤 역을 한 배우가 아르까디나 역을 맡으면 어떨까요?” 등 기자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백인백색의 소감. 혼자도 좋고, 함께해도 재미있다. 공연의 세계는 그렇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존경받는 가장, 고거이 내 꿈이여!” 16일 막이 오르는 ‘남자충동’(서울 대학로 TOM 1관)의 주인공 이장정은 외친다. 전남 목포시를 배경으로, 조직폭력배를 이끄는 장정을 통해 힘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뒤틀린 욕망을 풍자했다. 조광화 씨가 극본을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1997년 초연돼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을 받으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장정 역에는 류승범, 박해수가 더블 캐스팅됐다. 보고 또 보는 이른바 ‘회전문’ 관객을 만들어낸 남성 2인극 뮤지컬인 ‘쓰릴 미’(서울 강남구 백암아트홀)는 올해 10주년을 맞아 김무열, 최재웅, 강필석, 이율 등 초연 멤버가 합류해 14일부터 공연을 시작한다. 희열을 위해 잔인한 범죄를 벌인 미국 명문대 출신 두 친구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박용호 총괄프로듀서는 “10년간의 경험과 색채가 응축돼 밀도가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공연계 비수기로 꼽히는 2, 3월에 다양한 빛깔의 남성미를 앞세운 작품들이 줄줄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2014년 초연돼 주목받은 후 2015년 매진 기록을 세우며 ‘흥행 깡패’로 불리는 연극 ‘유도소년’(대학로 수현재씨어터)도 다음 달 4일부터 관객을 만난다. 고교생 유도선수 경찬이 1997년 전국체전에 출전하기 위해 상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진한 땀 냄새를 물씬 풍긴다. 다음 달 5일 막이 오르는 연극 ‘나쁜 자석’(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은 네 남성의 성장과 우정, 고통과 그 사이에서 싹튼 사랑을 다뤘다. 1950년대와 2010년대를 넘나들며 남성 간 동성애를 조명한 연극 ‘프라이드’(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도 다음 달 21일 무대에 오른다. ‘프라이드’는 2014년 초연과 2015년 재연 때 관객의 99%가 여성일 정도로 여성들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았다. 다시 공연해 달라는 관객들의 요청도 쇄도했다. 남성 2명이 출연하는 창작뮤지컬 ‘라흐마니노프’(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역시 지난해 초연 때 호응을 얻어 추가 공연을 한 데 이어 이달 4일 재공연에 들어갔다. 공연계에서는 기획사들이 주요 관객층인 여성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검증된 작품을 앞세워 침체기를 돌파하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한승원 HJ컬쳐 대표는 “하반기에 어떻게 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아 확실한 작품을 상반기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경향이 심화되면 창작을 위한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침체기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지만, 상황이 개선되면 창작에 활발히 도전해 새로운 명작이 탄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여자, 엄마, 인간 그리고 배우로서 제 인생 전체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연극 ‘메디아’에서 주인공 메디아 역을 맡은 이혜영은 13일 서울 용산구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배우로서 일생일대의 도전”이라고 말했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24일 막이 오르는 이 작품은 메디아가 모든 걸 바쳐 사랑한 남편 이아손이 크레온 왕의 딸과 결혼하기로 하자 복수를 감행하는 내용이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와 함께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로 꼽히는 에우리피데스가 썼다. 이 씨는 “복수를 위해 자식까지 죽이는 이 끔찍한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할지 두려움이 컸지만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사랑, 고통, 복수 등 메디아의 모든 것이 온전히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이아손 역은 하동준, 메디아를 돕는 이웃 나라의 왕 아이게우스 역은 남명렬, 크레온 역은 박완규가 맡았다. 사랑을 나누거나 잔인한 장면이 있어 19세 이상 관람 가능하다. 각색과 연출은 헝가리의 유명 연출가인 알푈디 로베르트 씨가 맡았다. 알푈디 씨는 “‘메디아’는 복수뿐 아니라 사랑과 고통, 책임과 관계를 다룬 이야기”라며 “이는 현대인이 매일 마주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적인 배우를 좋아하는데 이혜영이라는 배우가 딱 그렇다”고 덧붙였다. 유명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 씨가 생애 처음으로 연극 의상에 참여한 점도 눈길을 끈다. 진 씨는 세계적 패션 컬렉션인 프레타포르테 파리에 1993년 한국인 최초로 참가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 유니폼을 디자인했다. ‘메디아’ 극본을 15번이나 읽었다는 진 씨는 “메디아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 검은색으로 고통과 분노를 표현했고, 그녀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식을 죽일 때는 붉은색 저지 소재로 힘없이 늘어진 드레스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2014년 부임했을 때부터 가장 하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김 예술감독은 “배우, 서사, 개념 중심의 연극을 하겠다고 했는데 ‘메디아’는 이 세 가지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말했다. 24일∼4월 2일, 2만∼5만 원. 1644-2003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창작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의 거장이자 천재 피아니스트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러시아)가 창작을 향해 나아가는 고통스러운 여정과 치유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해 초연된 후 올해 다시 무대에 올랐다. 뛰어난 실력으로 주목받던 라흐마니노프가 교향곡 1번에 대해 혹평을 받은 후 3년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등장인물은 라흐마니노프와 그를 치료하러 온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 박사로, 단 두 명이다. 라흐마니노프는 3년간 칩거하며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근다. 달은 그런 라흐마니노프를 한동안 가만히 지켜본다. 시간이 지나며 두 사람은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가고, 내면의 상처가 차츰 수면 위로 떠오른다. 달이 단순히 라흐마니노프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억눌렀던 아픔과 외로움을 토해내며 서로가 서로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펼쳐진다. 유명한 음악가와 정신의학자가 되고 싶었던 이들의 꿈과 좌절은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건드린다. 배우들은 진폭이 심한 감정의 변화를 매끄럽게 소화했다. 이 작품의 강점은 무엇보다 음악이다. 무대 위에 자리 잡은 피아노와 6개의 현악기가 빚어내는 풍성한 선율은 귀를 즐겁게 만든다. 90분간 진행되는 공연 중간중간 녹아든 라흐마니노프의 명곡은 맹렬하고 뜨겁게 연주돼 클래식 음악 공연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주인공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한 음악 역시 돋보인다. 뮤지컬이 클래식 음악과 접목해 또 다른 색깔의 감동을 선사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 작품이다. 박유덕, 안재영, 김경수, 정동화 출연. 3월 12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3만3000∼6만6000원. 02-588-7708 ★★★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집트인은 나무 관에 석고를 바른 후 채색했어요. 여기 석고 일부가 떨어져 나간 곳에 나무로 된 부분이 보이죠?”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집트 보물전’에서 7일 도슨트(설명자) 안준형 씨의 말에 “색깔이 정말 선명하다!”라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아이다’에 출연하는 윤공주(36) 이정화 씨(29)였다. ‘아이다’는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노예로 끌려온 누비아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윤 씨는 아이다 역을, 이 씨는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 역을 각각 맡았다. 윤 씨는 건강과 안전을 위한 부적인 ‘와제트 눈’을 보자 “‘아이다’ 무대에 크게 나오는 문양이다”라며 반겼다. 이 씨는 금박으로 화려하게 만든 남성 미라 가면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며 “정말 정교하고 고급스럽다”고 말했다. 사람과 동물 미라, 목관, 조각품 등 229점의 유물로 구성된 이번 전시회는 사후세계를 중시했던 이집트인의 정신세계를 조명했다. 윤 씨는 “‘아이다’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이집트 유물 전시관에서 진행되는데, 실제 전시장에 오니 설렌다”며 “고대 이집트가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집트 신화에서 이시스가 갖은 고난을 극복한 왕비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암네리스가 아이다와 라다메스를 벌할 때 ‘이시스의 딸로서 선고하노라’고 외친 대사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집트인이 사후세계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확인하고 나니, 암네리스가 아이다와 라다메스를 지하 감옥에 함께 매장한 것이 실은 엄청난 자비를 베푼 것임을 깨달았다고 입을 모았다. “수천 번 다시 태어나도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한 거잖아요. 그런데 여기, 라다메스는 없을까요?” 윤 씨가 눈을 찡긋거리며 웃었다. 성인 1만3000원, 초등학생 8000원. 4월 9일까지. 1688-9891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북, 징, 목탁 등의 소리가 신명나게 어우러진 가운데 굶주린 여우들이 등장한다. 이들 앞에 나타난 새끼 양 한 마리. 여우들은 양을 잡아먹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결국 물에 빠진 새끼 양을 구하러 나선다. 배우들은 풋풋한 연기를 선보이며 이솝우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공상집단 뚱딴지의 ‘이솝우화’(12일까지)다. 300여 개의 이솝우화 가운데 11개를 엮어 만들었다. 올해로 5주년을 맞는 ‘산울림 고전극장’에서 공연되는 4개 작품 중 하나다. 올해 주제는 ‘그리스 고전, 연극으로 읽다’이다. 임수진 소극장 산울림 극장장은 “진정성 있게 연극을 만드는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시대별 고전을 되짚어 보고자 시작한 기획”이라고 말했다. 임 극장장은 “관객은 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데, 공연을 본 후 고전을 읽어보고 싶다는 반응이 많다”고 덧붙였다. 올해는 ‘이솝우화’와 함께 극단 작은신화의 ‘카논-안티고네’(15∼26일), 맨씨어터의 ‘아이, 아이, 아이’(3월 1∼12일), 창작집단 LAS(라스)의 ‘헤카베’(3월 15∼26일)가 공연된다. ‘이솝우화’의 각색과 연출을 맡은 황이선 씨는 “삶의 어떤 순간이 희열일까 고민하며 가장 자연스러운 것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카논…’은 연극 속에서 펼쳐지는 고대 그리스와 연극을 만드는 현재를 통해 ‘안티고네’를 둘러싼 두 개의 세계가 음악극 카논처럼 평행하게 존재하는 모습을 그렸다. 김정민 연출가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잣대가 사람들을 옭아매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와 현대 사회가 다를 바가 없었다”며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갈등과 대립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는 트로이 전쟁에서 숨진 아킬레우스의 유품을 차지하기 위해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가 벌이는 논쟁과 이후 전개되는 광기를 통해 욕망과 파멸을 그렸다. 그리스어로 ‘아이’는 슬픔으로 탄식하며 울부짖는 소리라는 의미다. ‘헤카베’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연합군의 귀향길을 막아버린 사건에 대한 재판을 통해 법과 질서에 의문을 던진다. 이기쁨 연출가는 “‘헤카베’는 보통 자식을 잃은 어미의 복수로 알려졌는데, 헤카베가 겪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가는 과정을 통해 무엇이 정의인지를 탐색하려 했다”고 말했다. 2만5000원. 02-334-5915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뮤지컬 ‘아이다’가 19일 700회를 맞는다. 2005년 초연 후 이번이 네 번째 시즌이다. 현재 열연 중인 윤공주, 김우형, 아이비를 비롯해 옥주현, 정선아, 차지연, 이석준 등 출연 배우만 120여 명에 이른다. 누적 관객은 67만2000여 명에 달한다. 노예로 잡혀온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의 비극적인 사랑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그린 ‘아이다’의 모든 순간을 함께한 이가 있다. 드러머 김광학 씨(47)다. ‘아이다’는 춤 동작 하나하나가 비트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연습은 물론 오디션 때도 드러머가 있어야 한다. 김 씨는 공연은 물론 연습과 오디션까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김 씨를 3일 만났다. 드럼 부스는 무대 아래 홀로 떨어져 있었다. 드럼 부피가 커서 오케스트라 피트에 들어갈 수 없단다. 그는 “‘아이다’는 음악이 강해 에너지를 엄청나게 쏟아내야 한다. 한겨울에도 땀으로 옷이 젖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드러머였던 작은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며 어릴 때부터 스틱을 갖고 놀았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드럼을 치기 시작했고, 해군 군악대에서 복무했다. 제대 후 가수 신성우, 이은미, 박상민, 그룹 코리아나, 빛과소금 등과 함께했다. 1998년 ‘남자 넌센스’에 합류하면서 뮤지컬의 매력에 빠졌다. 그가 참여한 작품은 ‘미스사이공’, ‘시카고’, ‘렌트’, ‘헤어스프레이’, ‘블러드 브러더스’ 등 일일이 꼽기가 벅차다. 결혼 후 아들이 태어나자 고민에 빠졌다. 연봉 600여만 원으로는 생활할 수가 없었다. 때마침 톱가수로부터 같이 작업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마음은 자꾸 뮤지컬로 향했다. 그때 아내가 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해요. 돈은 내가 벌 테니.” 한국무용을 전공한 아내는 예술을 향한 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것. ‘아이다’ 초연을 앞두고 박칼린 당시 음악감독에게서 연락이 왔다. “8개월간 공연하는데, 오디션은 물론 두 달가량 연습할 때도 드럼이 필요하대요. 그러면 1년이 보장되는 거잖아요. 바로 수락했죠.” 우여곡절도 많았다. 초연 때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성북구의 개인 연습실에서 오후 5시에 차로 출발했다. 강남구 LG아트센터까지 공연이 시작하는 오후 8시 전에는 도착할 줄 알았지만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결국 강남구 노보텔 앰배서더 호텔 앞에 차를 버리고 눈길을 질주하다 퀵 서비스 오토바이를 잡아탔다. “자리에 앉자마자 공연이 시작됐어요. 8시 7분이었죠. 네 곡을 연달아 연주한 후 잠깐 드럼 파트가 없을 때 화장실로 달려가 토했어요.” 그 뒤로 공연이 있는 날은 무조건 전철을 탔다. ‘아이다’ 두 번째 시즌 때는 목 디스크로 통증이 심했지만 깁스를 하고 연주했다. 몸살이 올 것 같을 때는 미리 약을 먹었다. 천식이 심했던 아들이 응급실에 갔다는 문자가 와도 연주를 멈출 수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아이다’는 제 공연이에요. 뮤지컬을 계속할 수 있게 저를 붙들어준 작품이고요. 그런데 무대에서 하는 공연을 본 적이 없어요. 부스 내 모니터로만 봤죠. 실제 공연이 어떨지 진짜 궁금해요. 하하.” 3월 18일까지, 6만∼14만 원, 02-577-1987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을 즐기고 정성 들여 화분을 키우는 올리버. 똑똑하고 활발하지만 관계와 애정에 대해 냉소적인 클레어. 이들은 집사처럼 인간을 도와주고 감정을 지닌 로봇인 헬퍼봇이다. 둘 다 오래돼 주인에게 버려진 후 홀로 아파트에 산다.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낡고 버려진 존재를 통해 생의 유한함과 아름다움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감미로운 음악과 짜임새 있는 이야기, 배우들의 열연으로 평일에도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계획한 일정에 따라 살아가는 올리버는 충전기가 고장 나 도움을 요청하는 클레어의 방문에 당황한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한 걸음씩 다가간다. 올리버는 옛 주인을 만나기 위해, 클레어는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 함께 제주도로 떠나는 모험에 나선다. 로봇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인간은 기계보다 차갑다. 오래된 건 가차 없이 버리고, 뜨겁게 사랑하다가도 서로를 지겨워한다. 작품은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남겨놓았다. 정문성(올리버 역)과 전미도(클레어 역)는 다소 뻣뻣한 로봇의 몸짓을 실감나게 연기해 몰입도를 높였다. 턴테이블과 화분, 실 전화기 등 아날로그 소품은 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에서 따뜻함을 선사한다. 몸 여기저기가 점점 고장 나고, 한정된 시간을 마주하는 이들의 모습은 인간과 별 다름이 없다. 예정된 이별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은 인생의 의미를 찬찬히 돌아보게 만든다. 후반부로 갈수록 객석 곳곳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적지 않았다. 인터미션 없이 공연하는 110분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오랜 생명력을 지닐 작고 단단한 뮤지컬이 또 하나 탄생했다. 3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 4만∼6만 원. 02-766-7667 ★★★☆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기타와 제과제빵 기술을 배울 거예요. 바리스타 자격증, 1종 대형보통 면허, 포클레인 기사 자격증도 따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을 막힘없이 줄줄 나열하는 그의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32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친 후 아들과 함께 세계여행을 다녀온 정준일 씨(59)는 그랬다. 그는 ‘대략 난감, ‘꼰대’ 아버지와 지구 한바퀴’라는 책을 아들과 같이 최근 펴냈다. 기자가 계획이 정말 많다고 감탄하자 그가 답했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투자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아이들을 다 키워서 내 임무는 다했으니까, 이제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거예요.” 그는 앞으로 매우 바빠질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들 재인 씨(29)도 “진짜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치며 즐거워했다. 혹자는 그가 대기업을 다녔기에 노후에 생활비 걱정이 없어서 그럴 것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 정 씨는 “돈은 입에 풀칠할 정도만 있으면 된다”며 “중요한 건 하려는 의지”라고 말했다. 은퇴 후의 생활을 떠올릴 때 대부분은 돈 걱정을 한다. 당연히 중요한 문제다. 생활비 걱정만 없어도 고민의 상당 부분이 해결될 것이기에. 은퇴 후 재취업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임에 분명하다. 한데 퇴직 후 몰아닥치는 그 기나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미리 계획하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공무원인 한 지인은 정년퇴직을 하면 연금이 나와 다행이지만 어떻게 지낼지는 아득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나는 그 많은 은퇴자들이 즐긴다는 등산도 좋아하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인생 2막을 활기차게 지내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혼자 즐기는 무언가가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배를 만들거나 악기를 배우고, 봉사활동을 다니기도 한다. 국내 혹은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이도 있다. 70세 가까운 한 남성은 배낭 하나를 메고 네팔, 남미 등을 누비며 트레킹을 했다. 영어는 ‘헬로’, 스페인어는 ‘올라(안녕)’밖에 모르지만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50대 후반의 여성도 있었다. “용감하다”는 기자의 칭찬에 돌아온 그녀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내가 어느 세월에 영어, 스페인어를 배워서 떠나겠어. 공부 다 하고 나면 다리에 힘 빠져서 못 걸어. 산티아고 길 걸어보니 ‘올라’ 한마디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다 되더라.” 되새겨 볼수록 무릎을 치게 된다. 이들은 유스호스텔의 도미토리룸을 이용하고 밥을 직접 해 먹으며 그다지 많지 않은 경비로 여행을 했다. 취미라는 게 은퇴했다고 해서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관심 가는 분야를 파악해 미리 조금씩 해 봐야 여유가 있을 때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먹고살기 바빠 즐길거리를 만들 겨를이 없었다고 항변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손효림 문화부 기자 aryssong@donga.com}

참호처럼 꾸민 공연장은 99개의 객석이 무대를 에워싸며 ‘ㄷ’자로 배치돼 배우의 숨소리가 그대로 전해진다. 귓전을 세게 때리는 총소리는 마치 전쟁터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이석준 박훈 오종혁 등이 출연하는 연극 ‘벙커 트릴로지’다. 이 작품은 현재 서울 종로구의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데 유료 객석 점유율이 평균 80%에 이른다. 어수선한 정국에, 경기 침체까지 이어지며 공연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서도 관객들의 발길이 몰려드는 공연이 주목받고 있다. ‘벙커…’는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아서 왕의 전설을 녹인 ‘모르가나’, 희랍극 아가멤논을 변주한 ‘아가멤논’, 셰익스피어 비극을 모티브로 다룬 ‘맥베스’ 등 독립된 3개의 에피소드를 각각 70분간 공연한다. 전쟁의 참상과 광기를 담은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돼 몰입도를 높인다. 제작사인 아이엠컬처의 김민경 실장은 “재관람카드를 만들어 할인해주는데, 출연하는 배우별로 9번 본 경우도 많고 54번이나 본 관객도 있다”라고 말했다. 조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을 지키기 위한 희생과 복수를 다룬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명동예술극장)은 티켓 대부분이 판매된 상황이다. 2015년 동아연극상 대상 수상작으로 재공연을 기다렸던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부모의 사랑과 신의 같은 보편적 가치를 선 굵게 그려내 중장년층 남성 관객이 많은 편이다”라고 했다. 연극 ‘하녀들’(30스튜디오)과 ‘갈매기’(게릴라극장)는 관객들의 요청으로 다음 달 앙코르 공연에 들어간다.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가 출연하는 ‘하녀들’은 6∼22일 공연됐는데, 보조석까지 합쳐 72석이 꽉 차며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이에 2월 3일부터 19일까지 다시 공연하기로 했다. 2월 5일까지 공연되는 ‘갈매기’ 역시 젊고 감각적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인기가 이어져 2월 9일부터 26일까지 연장 공연을 하기로 했다. 18일 막을 올린 창작 뮤지컬 ‘영웅’(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이번이 8번째 공연으로 반응이 예상보다 뜨겁다. 뮤지컬은 현장에서 표를 사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촛불집회가 있었던 21일에는 현장 판매가 이어지면서 매진됐고, 이후에도 구매 문의가 계속됐다. 설 연휴에도 좌석 대부분이 찼다. 윤호진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는 “자녀를 데리고 오는 부모들이 많고, 촛불집회 후 함께 오는 중장년층도 상당수여서 커튼콜 때 발광다이오드(LED) 촛불을 흔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연계에서는 완성도 높은 작품에 대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장은 “꾸준히 공연을 보려는 이들은 존재하지만 제작 여건이 악화되면서 이들을 만족시킬 만한 작품이 줄고 있다”며 “작품성이 뛰어나거나 티켓 파워를 지닌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에 관객이 몰리면서 이런 작품이 도드라져 보인다”라고 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상식을 지키며 사는 삶이 과연 가능할까. 연극 ‘도토리’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지적장애를 지닌 일렬이와 삼렬이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다 출소한다. 이들이 감옥에서 세뇌 당하듯 새긴 문구는 ‘남의 물건은 절대로 손대지 않겠다’는 것. 일렬이는 등산하는 사람들에게 멧돼지 먹이인 도토리를 가져가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인다. 삼렬이는 호박잎을 따 식당에 대준다. 극단 목화를 창단한 오태석 씨가 극본을 쓰고 연출한 ‘도토리’는 토속적인 정취 속에 흥이 묻어나오는 오 씨 특유의 색깔이 선명한 작품이다. 지난해 초연됐고, 이번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호박밭 주인이 덤으로 호박을 아무리 안겨줘도 절대 받지 않는 삼렬이, 도토리에 손대지 말라고 거듭 당부하며 멧돼지를 위하는 일렬이의 고지식할 정도로 일관된 행동은 선한 웃음을 자아낸다. 두 사람을 둘러싸고 형사, 검사의 딸 경자, 경자 엄마 등이 벌이는 소동은 한바탕 신명나는 굿판을 보는 듯하다. 이야기의 전개는 압축되거나 생략돼 어찌 돌아가는 영문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을 때도 종종 있다. 출연 비중으로 보자면 일렬이와 삼렬이를 딱히 주인공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해되면 되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냥 즐기면 된다. 자유로운 몸놀림 속에 직접 만든 소품을 들고 춤추듯 움직이는 배우들의 몸짓은 흥겹다. 도토리가 멧돼지의 똥을 거름 삼아 참나무로 자라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은 해학적이다. 오묘하고도 도도한 자연의 섭리를 이렇게도 유쾌하게 표현할 수 있구나 싶다.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는 ‘상식’을 지키는 존재가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이라는 설정은 이런 상식을 실천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세상임을 역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따뜻함이 스며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일렬이와 삼렬이를 도우려는 형사, 검사 아빠가 지은 죄를 대신 사죄하려는 경자, 딸과 함께 티베트로 가 삼보일배를 하며 죄를 씻으려는 경자 엄마의 행동이 그렇다. 물론 이들의 행동은 비현실적이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한데 따지고 보면 세상살이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도 그 중심에는 자연이, 그리고 사람이 있음을 넌지시 일러준다. 송영광, 정지영, 김봉현, 이병용 등 출연.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월 5일까지. 2만∼4만 원. 02-745-3967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주말과 겹쳐 다소 짧게 여겨지는 설 연휴(27∼30일)다. 집에만 머무르기보다 공연장을 찾아 조금은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게다가 설 연휴를 겨냥해 할인을 해주는 공연이 적지 않아 부담은 덜고 추억도 쌓을 수 있다. 평소 보고 싶었던 작품이 있다면 설 연휴를 적극 활용해 보자. 유쾌하게 또는 묵직하게 연극 ‘꽃의 비밀’은 네 명의 여성들이 보험금을 타기 위해 각자의 남편으로 변장하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작품이다. 주부들이 겪는 각종 에피소드가 펼쳐지며 웃음을 유발한다. 배종옥 소유진 이선주 구혜령 등이 출연해 망가지는 아줌마로 열연한다. 남녀 모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극본과 연출을 이야기꾼 장진이 맡아 ‘장진식 코미디’를 맛볼 수 있다. 30일까지 회차별로 30장을 한정해 20% 할인해 준다. 서울 종로구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3만3000∼5만5000원. 1544-1555 ‘인간’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을 무대에 옮긴 작품이다. 핵폭탄으로 지구가 사라지고 유일하게 생존한 남녀가 인류가 존속해야 하는지 여부를 놓고 팽팽한 논쟁을 벌인다. 논리적이지만 고지식한 남자와 에너지 넘치고 감성적인 여자의 충돌이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28∼30일 공연을 가족·친구 할인(20%·3명 이상)으로 예매하면 모자를 증정한다. 고명환 오용 안유진 김나미 등이 출연한다.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3만4000∼4만9000원, 1577-3363 제1차 세계대전 참호를 배경으로 고전과 신화를 전쟁 상황에 맞춰 각색한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된 ‘벙커 트릴로지’도 주목할 만하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을 변주한 ‘모르가나’는 전쟁의 참담한 실상과 엇갈린 감정을 그린다. 희랍극 ‘아가멤논’을 모티브로 전쟁의 고독과 광기를 드러내고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죄의식을 비춘다. 이석준 박훈 오종혁 신성민 등이 무대에 선다.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3만 원. 02-541-2929풍성한 사람이야기 라인업 뮤지컬 ‘아이다’는 30일까지 열리는 공연에 대해 30% 할인해준다.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의 암네리스 공주, 두 여인의 사랑을 받지만 아이다를 선택해 함께 비극을 맞는 라다메스 장군의 이야기를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로 그려냈다. 900개의 고정 조명과 800여 벌의 의상이 눈을 황홀하게 만든다. 록, 가스펠,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세련되게 풀어낸 것도 강점이다. 토니상 음악상과 그래미상 베스트 뮤지컬 앨범상을 수상했다. 윤공주 장은아 김우형 민우혁 아이비 이정화 등이 출연한다. 서울 샤롯데씨어터, 6만∼14만 원. 02-577-1987 뮤지컬 ‘보디가드’ 역시 30일까지 열리는 공연 티켓을 30%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다. 케빈 코스트너와 휘트니 휴스턴이 출연했던 동명의 영화를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최고의 여가수 레이첼에게 의문의 협박 편지가 날아들자 그의 매니저는 전직 대통령 경호원이었던 프랭크에게 레이첼의 경호를 맡긴다. 레이첼은 답답할 정도로 원칙을 지키며 모든 것을 통제하는 프랭크에게 불만을 느끼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지켜주는 모습에 점점 이끌린다. 풍성한 볼거리와 함께 ‘I will always love you’ ‘I have nothing’ 등 익숙한 노래의 선율을 즐길 수 있다. 정선아 양파 손승연 박성웅 이종혁 등이 출연한다. 서울 LG아트센터, 6만∼14만 원. 1544-1555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기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작은 무대가 그립다면 뮤지컬 ‘빨래’를 추천한다. 서점에서 일하는 나영, 꿈을 찾아 한국에 온 몽골 청년 솔롱고는 고단한 서울살이에 지쳐가지만 차츰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부조리하고 팍팍한 현실에 맞서다 상처를 입을 때도 있지만 묵묵히 견디고 내일을 꿈꾸는 평범한 이들의 모습은 포근한 위안을 준다. 2005년 초연된 후 지금까지 공연되고 있는 저력 있는 작품이다. 29일까지 열리는 공연을 예매하면 20%(동반 3명) 할인해 준다. 강연정 강지혜 이준혁 노희찬 등 출연. 서울 종로구 동양예술극장 1관, 5만 원. 02-928-3362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유명하지도 않은 ‘신영숙’이라는 맛집을 찾아주는 단골손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최근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 역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신영숙의 말이다. 개성 있는 소감은 수상자를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배우는 스태프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를 얹을 뿐입니다”라는 황정민의 ‘숟가락’론이 아직도 회자되듯. 23일 제53회 동아연극상 시상식에서 연기상 수상자인 김문희는 ‘베서니’의 크리스탈 역에 대해 “크리스탈처럼 ‘정신줄’을 놓으면 노숙자로 전락할 수 있겠다는 위기감 속에 내가 아주 작아져 있을 때 했던 작품”이라며 “계속 연기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신인연출상 수상자 이경성(‘그녀를 말해요’)은 “삶과 연극 사이에 더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지도록 몸과 마음을 다잡겠다”고 했다. 상은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벅찬 감정을 자기만의 언어로 풀어냈을 때, 듣는 이의 마음은 촉촉하고 따스해진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초점 없이 처연한 눈빛, 고통을 안으로 삭이기만 하는 모습. 위안부 할머니를 둘러싼 차가운 현실을 그린 연극 ‘하나코’에서 한분이 할머니 역을 맡은 예수정 씨(62)의 연기는 보는 이를 더 아프게 만든다. 2015년 초연돼 극찬을 받은 ‘하나코’가 다음 달 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공간아울에서 막이 오른다. 위안부 생활을 함께 하다 헤어진 동생을 찾기 위해 캄보디아로 떠나는 한분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로도 제작된 ‘해무’를 비롯해 ‘가족의 왈츠’ 등을 쓴 김민정 극작가가 집필했다. 예 씨와 캄보디아에 사는 렌 할머니 역을 맡은 전국향 씨(54)를 20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예 씨는 “연출을 맡은 한태숙 선생님이 렌 할머니 역을 누구와 하고 싶은지 묻기에 곧바로 국향이를 추천했다”고 말했다. 연극 ‘과부들’을 함께 했는데 전 씨의 연기력과 친화력이 인상 깊었다는 이유에서다. 전 씨는 수줍은 표정으로 “초연 배우 전원이 다시 모일 정도로 작품에 대한 마음이 애틋하다”고 말했다. 전 씨는 렌 할머니 연기를 위해 캄보디아인에게 캄보디아어를 배우고 대사를 녹음해 듣고 또 들었다. 이번 공연에는 2015년 12월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도 반영했다. 예 씨는 “초연을 하던 중 합의가 체결됐지만 공연을 그대로 진행해야 했다”며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연기를 하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헤아려 보려 애쓰고 있다. “70년 동안 그늘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았기에 모든 게 안으로 녹아들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감정을 꾹꾹 눌러 응축하려고 해요.”(예 씨) 전 씨는 간신히 떠올린 우리말 단어를 외마디 비명처럼 토해내고, 좀처럼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렌 할머니의 안타까움을 절절하게 표현한다. “렌 할머니는 우리말과 기억을 잊은 게 아니라 지웠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살 수 있었을 테니까요.”(전 씨) ‘하나코’는 각자 처한 입장에 따른 셈법으로 위안부 할머니에게 다가가는 냉혹한 현실을 정면으로 비춘다. 캄보디아로 함께 취재를 떠난 언론사 PD는 할머니들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계속 카메라를 들이댄다. 여성학자 역시 일본에서 증언하기 싫다는 한분이 할머니에게 약속된 일정임을 강조한다. “위안부 문제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저를 비롯해 다들 죄인이죠. 평생 그늘에서 고통받으신 그분들을, 연극을 통해서라도 양지로 모셔오고 싶어요.”(예 씨) 예 씨는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 어머니 역을 맡았던 고 정애란 씨의 딸이고, 탤런트 한진희 씨의 처제다. 예 씨의 딸은 연극 연출가의 길을 걷고 있다. “시어머니가 ‘야야, 그게 돈을 주나 명예를 주나. 니 그거 왜 하노’ 하세요.(웃음) 작품을 할 때마다 인생에 대해 배우고, 밥도 먹고 사니 얼마나 좋아요.”(예 씨) 전 씨는 최근 남편인 배우 신현종 씨와 함께 제1회 임홍식 배우상을 받았다. 2015년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공연하다 숨진 임 씨를 기려 만든 상이다. 전 씨는 “마음이 무거웠다”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이어 그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돼 한편으로는 따뜻함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나코’는 올해 하반기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이들은 “몸이 힘들어도 좋으니 더 많은 나라를 다니며 ‘하나코’를 공연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2월 19일까지. 3만 원. 02-589-1066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여성 혼자 아이를 키우기가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지를 보여주는 ‘베서니’를 하는 동안 이를 변화시킬 방법을 찾으려 애썼던 그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강량원 연출가(극단 동 대표)는 23일 서울 종로구 동숭길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열린 제53회 동아연극상 시상식에서 ‘베서니’로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베서니’는 주인공 크리스탈 역을 맡은 김문희가 연기상을 수상해 3관왕에 올랐다. 김 씨는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있는 연극을 하는 선후배처럼 힘 있게 연기하겠다”고 말했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로 작품상을 공동 수상한 박근형 연출가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예술을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모든…’은 군대를 배경으로 폐쇄적 국가 시스템을 비판했다. ‘괴벨스극장’의 괴벨스 역, ‘국물 있사옵니다’의 김상범 역으로 연기상을 받은 박완규는 “연극을 통해 목소리를 내는 배우가 되겠다”고 밝혔다. 박상봉은 ‘모든…’과 ‘불역쾌재’로 시청각디자인상을 받았다. 유인촌신인연기상은 문숙경(‘위대한 놀이’의 쌍둥이 역)과 손상규(‘겨울이야기’의 레온테스 역, ‘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의 니콜라이 역)가 수상했다. 이경성 연출가는 ‘그녀를 말해요’로 신인연출상을 받았다. 구자혜 극작가 겸 연출가는 ‘Commercial, Definitely―마카다미아, 검열, 사과, 그리고 맨스플레인’으로 새개념연극상을 받았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방옥 동국대 교수는 “지난해부터 불거진 검열 사태에 대해 연극계는 적극적으로 저항했으며 특히 젊은 세대의 약진은 신선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주간은 축사에서 “혹독한 상황에서도 틀을 깨는 연극 정신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 분들에게 동아연극상이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구자흥 한일연극교류협의회장, 최치림 동아연극상 운영위원장, 협찬사인 KT 류준형 경영홍보담당 상무,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 고선웅 연출가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