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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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5-11-17~2025-12-17
문화 일반51%
인사일반20%
문학/출판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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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생망? 게임처럼 다시 시작”… MZ세대 마음 대변 웹소설-웹툰 인기

    “(과거로) 돌아와서 좋구나.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몸이 근질근질하다.” 네이버 웹소설 플랫폼 시리즈의 ‘광마회귀’는 요즘 국내 웹툰이나 웹소설에서 보통명사로 취급받는 ‘회귀물’ 중 하나다. 제목에도 회귀(回歸·제자리로 돌아간다)가 들어간 이 작품은 무림 고수 이자하가 싸움 끝에 목숨을 잃지만 ‘기연(奇緣·기이한 인연)’을 얻어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는 줄거리. 모든 기억과 경험을 지닌 채 과거에서 다시 시작하니, 미래를 내다볼 수 있고 실력도 쉽게 쌓는다. 말도 안 되는 얘기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2020년부터 연재한 소설은 누적 조회 수가 5000만 회를 넘긴 초대형 히트작이다. 시장 규모가 3조 원에 육박하는 국내 웹툰·웹소설계를 최근 1, 2년 새 회귀물이 휩쓸고 있다. ‘광마회귀’뿐만이 아니다. 시리즈의 종합 10위 안에서 6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웹소설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도 톱10에서 5개가 회귀물이다. 웹툰 역시 엇비슷한 상황. ‘화산귀환’ ‘내가 키운 S급들’ ‘천마육성’ ‘나 혼자 만렙 뉴비’ 등 과거로 돌아갔거나 미래를 알고 있다는 설정의 회귀물이 인기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한 웹툰 제작사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대략 웹소설의 70% 안팎이 회귀물이라 보면 된다”며 “인기 회귀물 웹툰도 대부분 웹소설이 원작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최근 독자들은 회귀물도 세분화해서 부를 정도다. ‘광마회귀’처럼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는 게 ‘본격 회귀물’이라면, 아예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환생 회귀물’이나 다른 사람의 몸에 영혼이 들어가는 ‘빙의 회귀물’ 등 다양한 하위 장르를 낳고 있다. 종전에는 무협소설이나 게임소설이 다수였지만, 최근엔 ‘언니, 이번 생은 내가 왕비야’처럼 여성 독자들이 좋아하는 ‘로맨스 회귀물’도 인기다. 10∼30대가 주로 즐기는 웹툰·웹소설에서 회귀물이 쏟아지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유행어처럼, 현실에 좌절하다 보니 옛날로 돌아가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바람이 담겼다. 이융희 세종사이버대 만화웹툰창작과 겸임교수는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웹소설과 웹툰은 독자의 정서가 적극적이고 빠르게 반영된다”며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면 현재의 정보를 이용해 성공할 수 있다는 MZ세대의 욕망이 투영돼 있다”고 분석했다. 주로 게임하듯 아이템을 모으고 능력치를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도 청년에게 익숙한 코드이기 때문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게임이 생활화된 젊은 세대는 혹시 죽거나 망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치트키’ 등을 이용해 손쉽게 ‘레벨 업’하는 설정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귀물이 웹툰·웹소설에서 인기를 끌면서 다른 영역으로도 확대되는 추세다. 올 4, 5월 방영했던 SBS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도 2번째 인생을 사는 검사를 다룬 동명의 웹소설이 원작. 영화 ‘신과 함께’ 1·2를 만든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가 현재 영화화 중인 작품은 누적 조회 수 1억8000만 회를 넘긴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이다. 이 역시 자신이 읽은 소설에 나온 이야기가 실제로 벌어지며 새로운 삶을 산다는 변형 회귀물 가운데 하나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현실에선 ‘루저’인 청년이 인생을 다시 시작해 세상을 구한다는 설정이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누군가는 현실 도피라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독자의 심리가 반영된 회귀물 유행은 당분간 대중문화 전반으로 널리 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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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생망 되돌리고 싶어”…MZ세대 심정 대변한 회귀물 웹소설 웹툰 인기

    “나는 네가 모르는 미래를 알고 있다.”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 주인공 김독자는 자신에게 맞서는 적에게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선포한 것이다.사실 현실에서 김독자는 패배자로 살아왔다. 중학교 땐 따돌림을 당했고, 입시를 망쳤다. 계약직으로 일하던 그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자신이 완독했던 웹소설 안으로 들어온다. 새로운 세계에서 그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인생을 다시 살아가는 ‘회귀자’로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이 웹소설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조회 수 1억8000만 회를 넘기고 웹툰으로 만들어졌다.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를 만든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가 현재 영화화 중이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현실에선 ‘루저’’인 청년이 인생을 다시 살면서 세상을 구한다는 설정이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캄캄한 미래 앞에서 절망하고 있는 청년들이 이 작품을 보고 희망과 위로를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는 이른바 ‘회귀물’이 국내 웹소설 웹툰 시장을 휩쓸고 있다. 웹소설 플랫폼 네이버 시리즈의 종합 순위 10위 중 6개, 카카오페이지의 종합 순위 10위 중 5개가 회귀물이다. 무림 고수가 환생해 몰락한 문파를 되살리려 고군분투하는 ‘화산귀환’은 4억3000만 회, 청년 시절로 회귀한 사내의 이야기인 ‘광마회귀’는 50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다.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렸다 개업한 병원까지 망하고 부인과 이혼한 외과의사가 회귀하는 ‘메디컬 환생’, 망할 위기에 처한 나라의 왕자가 힘을 길러 회귀하는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처럼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툰도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회귀물은 느닷없이 다른 인물이 되어 한동안 새로운 삶을 사는 ‘빙의’, 아예 새롭게 태어나는 ‘환생’ 등 다양한 변주로 재생산되고 있지만 골격은 비슷하다.회귀물 인기는 최근 부동산, 가상화폐 대란으로 좌절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심정을 대변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융희 세종사이버대 만화웹툰창작과 겸임교수는 “대중문화인 웹소설과 웹툰엔 독자의 욕망이 적극적이고 빠르게 반영된다”며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며 현재를 부정하고, 타임머신을 타듯 과거로 돌아가 투기를 한다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해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MZ세대의 바람이 깊게 담겨 있다”고 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죽어도 다시 시작이 가능하고, 아이템을 모으고 능력치를 올리는 게임을 즐기던 MZ세대의 문화가 웹소설과 웹툰에 반영된 것”이라며 “MZ세대는 게임처럼 삶을 다시 살아 실패했던 과거를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고 했다. 최근엔 회귀물의 인기가 영상 콘텐츠까지 퍼지고 있다. 올 4월 동명의 웹소설을 바탕으로 한 SBS 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는 2번째 인생을 사는 검사의 일대기를 다뤄 최고 시청률 12%를 기록했다. 올 6월 tvN 드라마 ‘환혼’처럼 빙의라는 소재를 적극 활용한 작품도 늘어나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누군가는 젊은 세대가 현실에서 도피하려 한다고 비판할지 모르지만 모든 콘텐츠엔 소비자의 심리가 담겨 있다”며 “회귀물 유행은 대중문화에 널리 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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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줌’ 안에서 좀비처럼 변한 우린 ‘줌비’… 팬데믹 경험 詩로 증언”

    “우리가 함께 겪으며 살아나가고 있는 팬데믹(Pandemic)에서 중요한 건 ‘모두’라는 뜻이 담긴 ‘팬(pan)’입니다.” 지난해 1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아니었다. 빨간 머리띠에 노란 코트를 입고 5분 40초 동안 축시를 낭독한 앳된 얼굴의 흑인 여성이었다. 시인 어맨다 고먼(24)은 10만 명도 되지 않던 트위터 팔로어가 취임식 직후 11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고먼은 지난해 12월 다시 주목받았다. 시집 ‘불러줘 우리를, 우리 지닌 것으로(Call Us What We Carry)’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의 아픔과 동시대인을 향한 위로를 담았다’는 평가를 받은 이 시집이 14일 국내에서 출판사 은행나무를 통해 첫선을 보인다. 출간에 맞춰 고먼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가 국내 언론과 인터뷰한 건 처음이다. ―245쪽에 이르는 시집에서 주어를 모두 ‘우리(We)’로 썼네요. “처음엔 주어를 ‘나’로 쓰기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우리’가 돼 있었어요. 우리에겐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수많은 문과 다리와 틈이 있어요. 지금의 고통도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겪고 있죠. 그래서 ‘우리’라는 단어를 많이 썼습니다.” ―캐나다 시인인 앤 카슨(72)의 ‘물어보는 사람은 역사가’라는 문장을 서문에 인용했더군요. “저는 이번 시집을 ‘과거에 대한 심문’이자 ‘우리의 미래를 위한 증언’이라고 여겨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다음 세대는 우리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많을 거예요. 왜 자신들이 이런 지구와 사회를 물려받게 되었는지 묻고 싶어 할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인지 책을 쓰는 동안 증인석에 서서 제가 본 것들을 증언하는 기분을 느꼈어요.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는 목소리가 반드시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시 ‘그동안 우리가 한 것’에서 화상회의 시스템인 ‘줌(Zoom)’ 안에서 좀비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줌비(Zoombie)’라고 표현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제게 (시라는 형식의) 말놀이는 더 깊은 생각을 촉진하기 위한 도구예요. 단어 간 발음의 유사성은 시가 말로 낭송됐을 때 특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죠. 그리고 ‘시가 어떤 식으로 쓰인다’ 식으로 독자들이 가진 기존 인식을 파괴하고 싶었어요. 뭣보다 팬데믹을 겪은 독자들이 시집을 읽고 자신의 경험을 새로이 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할까요.” ―시를 낭송할 때마다 미리 속으로 외우는 문장이 있다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나는 흑인 작가들의 딸이며, 사슬을 끊고 세상을 변화시킨 자유의 투사들의 후손이다. 그들이 나를 부른다.’ (흑인 여성) 조상들을 기억하기 위해 꼭 이 문장을 외우곤 해요. 저를 이 자리, 이 순간에 있게 해준, 저보다 앞서 갔던 이들을 기리는 거죠.” ―미 대통령 취임식 축사를 한 가장 어린 작가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취임식 시 낭송이 제 삶에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칠 줄 몰랐어요. 취임식을 본 사람 중 몇 명이라도 시를 기억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요. 하룻밤 사이에 받은 세계적인 관심은 제게 충격적이었어요.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전혀 후회하지는 않아요. 최근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에도 사진이 실리고, 모델 에이전시 ‘IMG모델’과 계약도 체결했죠.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슈퍼볼에서도 시를 낭송했어요. 중요한 건 이 모든 게 ‘처음’ 있는 일이지만 ‘마지막’은 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여러 차례 2036년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혀 왔어요. “대선 출마는 중학생 때부터 열망해 왔던 일이었어요. 앞으로 14년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어요. 중요한 건 대통령 취임식에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대통령으로 참석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크다면서요. “물론이죠! 한국의 활기차고 창의적인 문화는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요. 한국은 이전부터 문화 강대국이었지만, 그 사실을 이제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어 기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걸그룹은 ‘블랙핑크’란 얘기를 꼭 해야겠네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정말 수도 없이 돌려봤어요. 이번 시집도 한국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어요. 일기 형식으로 쓴 시 ‘그 병사들(혹은 플러머)’은 재미교포 시인 최돈미의 작품들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다른 작품에서도 슬픔과 그리움을 표현할 때에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인 ‘한’이라는 개념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여러분의 일상에 제 언어와 시를 기꺼이 받아줘 감사하단 말을 하고 싶어요. 이번 시집은 병 속에 담긴 메시지이자 팬데믹에 대한 공공의 기억을 보존하려는 시도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되찾음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또한 이 시집은 누군가인 ‘당신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항해를 위해 배에 오를 때, 당신이 읽고 나누고 지니길 바랄게요.”어맨다 고먼지난해 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력 취임식에서 역대 최연소(23세)로 축시 ‘우리가 오를 언덕(The Hill We Climb)’을 낭송해 세계적 스타가 된 흑인 여성 시인.화합과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축시에 대해 당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지금 이 순간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시를 낭송했다”고 극찬했다. 환경 및 인종 젠더 평등을 위한 사회운동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1998년 로스앤젤레스(LA)에서 태어나 중학교 교사인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어린시절 청각 장애를 겪었지만 시를 쓰며 언어장애를 극복했다. 16세에 LA 청년계관시인으로 뽑혔으며, 하버드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2017년 미국에서 처음 제정된 전미청년계관시인으로 뽑혔다. 2021년 미 시사 주간지 타임의 ‘차세대 리더 100인’에 선정됐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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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백에 견주던 ‘조선중기 천재시인’ 최전을 아시나요

    ‘늙은 말 솔뿌리 베었더니/꿈결에 천 리를 다니누나./가을바람에 낙엽 지는 소리 나더니/놀라 일어나자 저녁 해 뉘엿뉘엿해라.’ 조선 중기의 문인 최전(1567∼1588)이 8세 때 지은 시 ‘늙은 말’이다. 한자로 단 20자에 불과한 오언절구(五言絶句)다. 꿈속에서나마 힘차게 천 리 길을 내달리며 질주를 꿈꾸는 나이 든 말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최전은 조선 중기 문인 율곡 이이(1536∼1584)의 제자로, 조선에선 당나라 시인 이백(701∼762)과 견주던 천재 시인이다. 김승룡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는 “당시 사람들은 최전을 ‘신동’이라고 불렀지만 경북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탓에 그동안 최전의 문집을 번역하려는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지역 한시(漢詩) 시인들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총서 ‘지역 고전학 총서’(지식을만드는지식) 1차 10종이 최근 출간됐다. 서울이 아닌 지역 한시를 체계적으로 연구·발간한 기획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우락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학문적으로는 훌륭하지만 연구에서 소외됐던 학자들을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해 번역했다”고 했다. 경기 양주시에서 활동한 시인 김숭겸(1682∼1700)의 ‘관복암 시고’엔 자연에 자신의 심정을 담은 그의 시적 세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경남 양산시에서 주로 머문 구하 스님(1872∼1965)은 ‘금강산 관상록’에서 금강산을 경건하게 묘사한다. 전익구 ‘가암 시집’(경북 예천군), 홍여하 ‘목재 시선’(경북 상주시), 조정규 ‘서천 시문선집’(경남 함안군), 황윤석 ‘이재 시선 1’(전북 고창군), 이근오 ‘죽오 시선’(울산), 하겸진 ‘회봉 화도시선’(경남 진주시)도 지역 학자들의 뛰어난 시집이다. 각 권 1만8800∼3만6800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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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산될뻔한 구찌 ‘경복궁 패션쇼’ 11월 1일 연다

    명품 패션 브랜드 구찌가 11월 1일 경복궁에서 패션쇼를 연다. 구찌는 8일 “11월 1일 경복궁에서 ‘구찌 코스모고니’ 컬렉션의 패션쇼를 선보일 예정”이라며 “문화재청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문화재위원회에서 제시한 조건을 맞춰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구찌는 코스모고니 컬렉션 취지를 살려 행사를 열겠다며 경복궁 사용 신청서를 냈다. 약 500명을 초청해 경복궁 근정전을 패션쇼 무대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에 자문해 ‘조건부 가결’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최근 청와대 화보 촬영 논란이 일면서 그 여파로 경복궁 패션쇼를 취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에 문화재청은 내부 논의를 통해 행사를 취소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화재청이 구찌의 경복궁 패션쇼를 취소하지 않기로 결정한 건 이번 행사가 한국의 대표 문화유산을 널리 알릴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구찌가 안전·보존 조치에 관한 철저한 이행계획서를 5일 제출했다는 점을 고려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구찌가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경복궁의 역사문화유산 가치를 높이고 철저한 고증을 하기로 했다. 일반 관람객도 참여할 수 있다는 조건하에 행사를 열기로 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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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조적 어린이 독자 덕에 그림책서 많은 실험”

    “그림책에는 어린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세상의 정수가 담겨 있어요. 그림책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많이 시도하는 이유는 가장 창조적이고 유희적인 어린이 독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3월 한국인 최초로 ‘어린이책의 노벨 문학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그림 작가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이수지 작가(48)가 6일(현지 시간) 열린 시상식에서 말했다. 이날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안데르센상 시상식은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가 주관했다. 이 작가는 6일 발표한 제36회 인촌상에서 언론·문화 부문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그림책 작가가 인촌상을 받는 건 처음이다. 수상자에게 수여되는 덴마크 여왕 메달을 받은 이 작가는 “안데르센상 시상식에 참석하게 돼 영광”이라며 “그림책은 어린이라는 아름다운 독자들에 대한 제 감탄의 마음을 표현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림책은 어떤 형태로든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했다. “그림책의 모든 색과 선, 심지어 그림책이 머금은 공기에마저 어린이가 스며들어 있죠. 아이들은 맑고 또렷해요. 생의 초반에 온몸으로 부딪히며 세상과 만나는 반짝이는 이들에게 경외를 보냅니다. 아이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세상에서 어린이에게 열려 있는 매개체인 그림책이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이 작가는 그림책 작업을 통해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고 있다고 했다. “손끝과 발끝으로 짜릿하게 느껴지는 생의 기쁨을, 아주 진지한 태도로 온 마음을 다해 가장 즐겁게 놀이하는 방법으로 그렸습니다.” 이수지라는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파도야 놀자’(2008년), ‘거울속으로’(2009년), ‘그림자놀이’(2010년)를 설명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제본선을 활용해 ‘경계 3부작’으로 불리는 이 시리즈는 바다와 모래사장, 현실과 거울 등의 경계를 시각화한 작품들로 “책의 물성(物性)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이 작가는 “어린이들은 어떤 도전도 받아들인다. 아이들의 놀이 정신은 그림책의 모든 가능성을 확장해왔다”고 했다. 이날 시상식에선 안토니오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중 여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이 작가의 그림책 ‘여름이 온다’(2021년)를 소개하는 영상도 상영돼 큰 박수를 받았다. 이 작가는 크게 허리를 굽혀 관객들에게 인사하며 “인생을 즐기시기 바란다. 특히 이 여름을”이라고 외쳤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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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체부 운영 ‘정부 유튜브 채널’ 해킹… 관광公-현대미술관도 피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 중인 대한민국 정부 공식 유튜브 채널과 문체부 산하 기관인 한국관광공사, 국립현대미술관의 공식 유튜브 채널이 잇달아 해킹을 당했다. 가상화폐 홍보 영상 재생 등 올 6월과 7월에 발생한 방송사 YTN, SBS 유튜브 공식 채널 해킹 공격과 비슷한 형태를 보였다는 점에서 동일한 주체의 해킹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 일론 머스크 인터뷰 등 가상화폐 영상 재생4일 문체부에 따르면 정부의 정책 등을 홍보하는 대한민국 정부 유튜브 채널은 3일 오전 3시 20분쯤 해킹을 당했다. 채널명이 ‘대한민국 정부’에서 ‘스페이스엑스 인베스트(SpaceX Invest)’로 변경됐고,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엑스 및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인터뷰가 등장하는 가상화폐 관련 영상이 재생됐다. 구독자 수 26만2000명의 대한민국 정부 유튜브 채널은 문체부 국민소통실에서 운영 중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4일 “해킹 당일 오전 6시쯤 피해 사실을 파악하고 7시 20분에 채널을 복구했다”며 “유튜브 채널의 관리자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도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청 사이버수사국 사이버범죄수사과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정부 유튜브 채널 계정에 접속할 수 있는 메일 계정은 총 4개다. 그중 2개는 계약을 맺은 외부 용역업체가 영상 등을 제작해 채널에 올릴 때 사용하는 관리자 권한대행 계정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구글 측으로부터 이들 계정 중 어떤 계정의 보안이 필요하다는 통보는 받지 못한 상태”라고 전했다. 대한민국 정부 유튜브 채널뿐 아니라 문체부 산하 기관의 공식 유튜브 채널들도 해킹을 당했다. ‘범 내려온다’ 뮤직비디오 등으로 유명해진 한국관광공사의 해외홍보 유튜브 채널 ‘이매진 유어 코리아’는 1일과 2일 두 차례에 걸쳐 해킹 공격을 받았다. 두 번 모두 대한민국 정부 유튜브 채널 해킹과 같이 머스크의 인터뷰 및 가상화폐 관련 영상이 재생됐다. 구독자 수 50만9000여 명인 ‘이매진 유어 코리아’는 구글의 자체 해킹 대응으로 3일 오후 9시까지 폐쇄됐다가 4일 현재 정상 운영 중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공식 채널도 지난달 29일 가상화폐 관련 영상이 재생되는 해킹을 당했다가 2시간 만에 복구됐다. 문체부 관계자는 “두 산하기관의 유튜브 채널 해킹 피해와 관련해 5일 경찰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외부 용역업체에 관리 계정 권한 부여 이번에 해킹 피해를 입은 유튜브 채널은 모두 1개의 관리자 계정과 다수의 관리자 권한대행 계정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총 5개 메일 계정 중에 4개가 외부업체가 영상 등을 올릴 때 사용하는 관리자 권한대행 계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해킹 공격 당시) 10개 내외의 메일 계정 중 3개가 외부 하청업체의 관리자 권한대행 계정이었다”며 “해킹 피해를 입은 뒤 구글로부터 외부업체 중 한 곳의 메일 계정에 대한 보안 강화가 필요하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석좌교수는 “정부기관 유튜브 공식 채널 해킹은 금전적 이득을 노렸다기보다는 정부기관의 공신력을 깎아내리려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어 임 교수는 “정부기관의 홈페이지 관리나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관리를 외주업체에 주면 보안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국가적 차원의 투자가 없다면 비슷한 사고가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문체부는 3일 전병극 1차관 주재로 해킹 관련 대책회의를 열어 소속 기관과 산하 공공기관에서 운영 중인 유튜브 등 SNS의 추가 피해 여부 등을 점검했다. 앞으로 시스템 마련 등 사이버 보안관리 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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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 많다고 출산 포기 마세요” 책 ‘난임 전문의 26인이…’ 출간

    “유산의 원인을 찾으면 40대에도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다.” 교양의학서 ‘난임 전문의 26인이 말하는 임신의 기술’(희망마루)에서 백은찬 분당제일여성병원 원장은 난임 부부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난임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의학적 기술이 발달하고 있는 만큼 아이를 간절히 갖고 싶다면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책은 10년 이상 난임 관련 글을 다양한 매체에 기고해온 프리랜서 언론인이 난임 전문의 26명을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한국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합계출산율)가 지난해 0.81명인 초저출산 시대지만 여전히 아이를 원하는 이들은 많다며 다양한 ‘임신의 기술’을 소개한다. 난임의 원인과 해결법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낸 점이 장점이다. 난임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겐 인터넷 카페에 떠도는 글보다 신뢰성 높은 정보가 될 것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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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문학 서가에서 인생책을 만날지도[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최근 우연히 30대 지인 2명의 책장을 구경하다가 똑같은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오랜 고전도 유명 작가도 아니었다. 그저 어린이 동화. 온라인서점엔 초등 5, 6학년이 읽기에 적합하단 설명이 올라와 있다. 그런데 그들은 “감동적” “강추(강력 추천)”라며 칭찬을 쏟아냈다. 한국 작가 루리의 ‘긴긴밤’이란 책이다. 이야기는 길지 않다. 세상에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이 주인공. 코끼리 고아원에서 지내다 험난한 세상으로 발을 내디딘 노든은 자유와 행복을 맛보다가 어느 날 동물원에 갇힌다. 그곳에서 펭귄과 만나 친구가 된 뒤 둘은 수없는 긴긴밤 동안 얘기를 나눈다. 코뿔소와 펭귄은 마침내 동물원을 빠져나가 바다에 가기로 하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둘은 포기하지 않고 길을 걷는다. 신기하게도 이 동화에 달린 리뷰를 살펴보면 유독 성인 독자들의 호평이 많다. “아이가 좋아해요”류가 아니다. “애 보라고 샀는데 제가 울었어요.” 지난해 2월 출간된 뒤 지금까지 20만 부가 넘게 팔렸는데, 성인 독자들이 서로 추천하며 구매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출판사의 귀띔이다. 만화영화도 어른들이 더 좋아할 때가 많지만, 동화책은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 송수연 아동문학평론가의 평대로 “문학의 영원한 화두인 ‘나는 누구인가’를 다뤘기” 때문일까. 자신의 뿌리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고 싶은 마음은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우린 스스로 누구인지를 묻는 경우가 잦아진다. 그런 원초적인 고민을 건드린 게 성인 독자의 마음에 공명을 울렸을지도. 한 가지 더 눈여겨볼 대목은 이 책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다. 노든은 2018년 아프리카 케냐의 자연보호구역에서 45세로 영원히 잠든 마지막 수컷 북부흰코뿔소 ‘수단’이 모델. 또 루리 작가는 베트남전쟁 때 미군이 투하한 폭탄 탓에 웅덩이가 파이고 빗물이 고인 베트남의 ‘폭탄연못’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도 한다. 환경을 파괴한 인간의 원죄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묻어 있는 점이 어른들의 눈높이를 충족한 것 아닐까. 최근 한 아동문학 작가에게 들은 하소연이 있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아동문학을 아이들만 읽는 작품으로 한정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너무 ‘뻔한 교훈’과 빡빡하게 들이민 ‘학습용 정보’를 전달하려는 목적성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동화책을 하나의 완성된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도 한몫한다. 이수지, 백희나 등 해외에서 극찬받는 작가들의 작품도 우리나라에선 ‘아동도서’로만 취급받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도 이미 알고 있다. 좋은 작품은 독자의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1900∼1944)의 ‘어린 왕자’는 영원한 어른들의 동화다.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57)의 ‘해리포터’ 시리즈에 열광하는 건 성인들이 더하다. 어쩌면 가벼이 넘어갔던 아동문학 중에 우리네 인생을 보듬어줄 숨은 명작이 있었던 건 아닐까. 얼른 서점 아동도서 코너에 가서 책을 펼쳐 봐야겠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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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윤후명’ 짙어질수록 ‘시인 윤상규’의 꿈도 짙어져요

    17세 소년 윤상규는 “평생 시인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서울 용산고 재학 시절, 그는 성균관대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시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대학 입학 때는 “왜 철학과를 지망했느냐”는 질문에 “시를 쓰려고 한다”고 답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대중은 대부분 그를 소설가로만 여긴다. 한 출판사조차 그가 시인으로 등단한 걸 모르고 “소설가로서 시 한 편 써 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다. 희수(喜壽)를 코앞에 앞둔 ‘소설가이자 시인’ 윤후명 작가(76)의 얘기다. 그런 작가가 19일 시집 ‘비단길 편지’(은행나무)를 세상에 선보였다. 2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윤 작가는 왠지 모르게 비장한 모습. 시인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던 열일곱 살 소년처럼 눈빛이 영롱했다. “소설가 윤후명으로 살면 살수록 시인 윤상규가 흐려졌어요. 10대 때 스스로 했던 약속을 일흔이 넘어 지키네요. 윤상규가 아닌 윤후명으로요.” 윤 작가는 1967년 본명인 윤상규로 응모한 시 ‘빙하의 새’로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하지만 1979년 필명 윤후명으로 응모한 단편소설 ‘산역’이 또 다른 신춘문예에서 당선된 뒤 소설가로 사랑받아 왔다. 2017년 출간된 윤후명 전집에서 소설집은 ‘강릉’ ‘둔황의 사랑’ 등 12권이었지만, 시집은 ‘새는 산과 바다를 이끌고’ 1권뿐이었다. 신작 시집을 펴낸 것도 ‘쇠물닭의 책’(서정시학·2012년) 이후 10년 만. 시인을 꿈꾼 청년은 왜 소설에 천착하는 일생을 살았을까. “제가 등단하던 시절만 해도 시와 소설은 함께 못 쓴다는 인식이 강했어요. 둘 다 하겠다고 하면 문단에서 ‘박쥐’라 불렀을 정도였다니까요. 1982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연작소설 ‘둔황의 사랑’이 인기를 끌면서 소설 청탁이 쏟아졌어요. 한참 시를 안 썼습니다.” ‘비단길 편지’에 실린 시 219편에선 60여 년간 쌓아온 필력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어둠이 살얼음처럼 깔린 모래밭은/검푸르게 삶을 휩싼다.’(시 ‘갯메꽃 피는 바닷가’에서) ‘화가들이 드나들며 작업실로 쓰는/옛 면장 집에 하룻밤 묵고/꽃게처럼 뱃시간을 기다린다.”(시 ‘백령도 2’에서) “(젊은 시절) 미쳐서 시를 쓰던 것이 남아서 소설에 영향을 미쳤어요. 하도 오래 소설을 써 오다 보니 시에도 소설이 남는 것 같아요. 해외에는 시와 소설을 함께 쓰는 작가들이 적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시인과 소설가의 구분은 없어져야 할 장벽이라 믿습니다.” 문학적 스승을 향한 헌사도 시에 담겼다. ‘내 물음은 우물 속을 헤매고 있었지/내 얼굴은 우물 속을 헤매고 있었지.”(시 ‘서촌풍경/윤동주네 우물’에서) ‘다만 언젠가 다시 뵐 날이 멀지 않다고 말씀 올립니다/이것이 만남이라는 것이로구나 혼잣말을 하며/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그러나 그러나, 선생님은 가시다’에서) 윤동주(1917∼1945)와 올해 2월 세상을 떠난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에 대한 그리움이 물씬하다. “1969년 출판사 삼중당에서 일하면서 이 선생님의 책을 편집한 적이 있습니다. 소설가로 등단하려고 할 때 혹시 문제가 될까 이 선생님이 심사하지 않는 곳만 일부러 찾아다녔어요. 그런데 인연은 어떻게 할 수 없는지 필명으로 응모해 당선된 신춘문예 심사위원이 이 선생님이었죠.” 작가는 앞으로도 시를 계속 쓸까. 하하 너털웃음 속에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어렸을 때 시를 쓰고 싶었는데 평생 소설을 썼습니다. 쓰다 보면 또 어떤 길로 나아갈지 모르죠. 어쩌면 다음 책엔 제 유고시가 담겨 있을지도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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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삼성 손잡은 구글 안드로이드, 애플을 따돌리다

    후발 주자가 선발 주자를 따라가긴 쉽지 않다. 뒤늦게 출발한 사람은 열심히 뛰어도 먼저 출발한 사람이 ‘퍼스트 펭귄’으로서 앞서간다. 상대방 뒤꽁무니만 쳐다보다 지치기 마련이다. 어떻게 후발 주자는 선발 주자를 역전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인 구글 안드로이드가 애플 전용 OS인 iOS를 따라잡은 과정을 세세히 기록한 경제경영서다. 2010년 안드로이드에 합류한 개발자인 저자는 수십 명의 안드로이드 전현직 직원들을 인터뷰해 안드로이드의 역사를 썼다. 2007년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이른바 ‘멘붕’에 빠졌다. 안드로이드 개발자들마저 “소비자로서 반해 버렸다” “당장 하나 갖고 싶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안드로이드는 iOS에 비해 성능이 떨어졌다. 하드웨어(아이폰)에 소프트웨어(iOS)를 탑재해 함께 파는 애플의 전략에 맞서기 쉽지 않았다. 안드로이드는 타사와의 ‘협력’을 선택했다. 애플의 경쟁사들에 안드로이드를 적극적으로 팔아 iOS와 경쟁을 하자는 것이었다. 가장 눈에 들어온 기업이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가 안드로이드와 처음 계약을 맺은 회사는 아니었지만 가장 전력을 다한 회사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그 결과 지난해 기준 전체 스마트폰 OS 중 안드로이드의 점유율은 72%에 달했다. 27%를 차지한 iOS를 훌쩍 뛰어 넘은 것. “삼성은 스마트폰 사업을 위해 안드로이드에 모든 걸 걸었어요. 스마트폰을 만드는 다른 회사들이 아무런 비용도 쓰지 않을 때 삼성은 안드로이드와의 공동 마케팅에 큰 비용을 지출했습니다.”(안드로이드 사업개발 담당 임원) 책을 읽으며 소프트웨어가 아닌 기업으로서의 안드로이드를 살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디지털일안반사(DSLR) 카메라용 OS를 만들기 위해 2003년 설립된 스타트업 포토팜이 안드로이드로 이름을 바꾼 뒤 스마트폰 OS 사업에 뛰어들고, 2005년 안드로이드가 구글에 인수된 뒤에도 독립성을 유지하며 개발을 지속한 에피소드도 흥미진진하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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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출범 4년만에 폐지…“현실적인 문제로 유지 어려워”

    배우 문성근이 이사장인 평창국제평화영화제(PIPFF)가 출범 4년 만에 폐지된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사무국은 26일 ‘평창국제평화영화제, 4년간의 여정 막 내린다’는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4년간 평화·공존·번영을 주제로 열린 평창국제평화영화제가 예산을 지원하던 지자체의 현실적인 문제로 더는 유지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가 폐지를 공식화한 건 강원도가 최근 평창영화제 측에 지원 중단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강원도비 73억 원, 평창군비 11억5000만 원 등 총 84억5000만 원이 투입됐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취임 직후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등에 대해 “타당성 없는 보조금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 꼭 필요한 곳에 도민 혈세를 쓰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문순 전 지사 재임 기간 이뤄진 사업들에 대한 타당성을 제기한 것이다. 강원도는 평창영화제에 지원하던 예산을 도민 피부에 와 닿은 다른 사업에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일회성 행사 예산을 줄여 더 많은 순수예술인과 단체의 창작 활동 등을 돕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국제영화제는 지자체장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우리 영화인들은 한국영화계와 한국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일부 지자체장의 반문화적·근시안적 행태를 성토하며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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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운증후군 향한 시선강박증… 그림으로 사라져”

    “(인기가) 딸 덕분이지?” “그래, 다 네 덕이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토포하우스에서 24일 만난 배우 겸 화가 정은혜 씨(32)와 어머니 장차현실 씨(58)는 옥신각신하는 척 웃었다. 정 씨의 그림에세이 ‘은혜 씨의 포옹’(이야기장수) 출간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연 모녀는 눈에 애정이 듬뿍했다. 책 발문은 어머니가 썼다. 정 씨는 “엄마는 뭐든 잘하는 멋진 사람”이라며 “태어나게 해줘 고맙다”고 했다. 정 씨는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주인공 영옥(한지민)의 다운증후군을 가진 쌍둥이언니 영희 역으로 주목받았다. 장 씨는 실제 다운증후군을 지닌 딸에 대해 “태어난 뒤 3개월 동안은 장애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블랙홀에 떨어지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정 씨는 불편해하는 친구들의 시선 탓에 누군가 쳐다보면 불안한 강박증이 생겨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관뒀다. “자기만의 방에, 동굴에 들어갔어요. 방에서 내지르는 괴성에 가족은 손만 꼭 잡고 눈물을 흘렸어요.”(장 씨) 희망을 열어준 건 그림이었다. 만화가인 어머니를 따라 화실에서 청소하다 붓을 잡았다. 2016년부터 경기 양평에서 ‘니얼굴 은혜씨’란 간판을 걸고 캐리커처를 그렸다. 정 씨는 “그림을 그리며 시선강박증이 사라졌다”고 했다. 장 씨는 “은혜 마음의 병은 사람 때문에 생겼지만, 치유 역시 사람 덕에 가능했다”고 했다. 그림에세이에는 정 씨가 그린 캐리커처 약 4000점 가운데 그가 특히 좋아하는 그림들을 담았다. 배우 한지민 김우빈 등 사람들과 포옹한 모습이 많다. 30일까지 이곳에서 여는 개인전 제목도 ‘포옹전’. “오랜만에 보는 사람,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포옹하죠.”(정 씨) “포옹은 사람과 사람의 경계를 허무는 몸짓이에요.”(장 씨)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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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심이 커서 힘 빡 주고 추리소설 썼죠”

    2000년 8월 서울 서대문구 신촌 뤼미에르 빌딩. 한 오피스텔에서 여대생 민소림이 숨진 채 발견된다. 빌딩 폐쇄회로(CC)TV엔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성이 찍혔고, 방엔 신원 미상자의 DNA가 남았다. 친구와 주민, 전과자 등 1000명도 넘게 용의선상에 올랐지만 끝내 범인은 잡지 못했다. 22년 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강수대)는 이 사건을 재수사하기로 하는데…. 22일 출간된 두 권짜리 장편소설 ‘재수사’(은행나무·사진)를 쓴 장강명 작가(47)는 이날 전화인터뷰에서 “야심이 커서 힘을 ‘빡’ 주고 쓴 작품”이라며 “오래 쓰다 보니 분량이 가장 긴 소설이 됐다”며 웃었다. 지금껏 그가 쓴 긴 장편은 200자 원고지로 1750장인 ‘우리의 소원은 전쟁’(위즈덤하우스·2016년). ‘재수사’는 3100장이다. 해마다 한 권 이상 책을 냈던 그가 6년 만에 장편을 내놓은 이유가 납득됐다. “2019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1600장가량 되는 1권을 갈아엎을 정도로 슬럼프도 겪었다”고 했다. “강수대에서 일한 적 있거나 지금도 범인을 쫓는 현직 형사들을 인터뷰했어요. 묵직한 내용을 담고 싶었는데 재능이 없어서 고생했습니다, 하하.” 소설은 살인범의 회고록과 강수대 막내 형사 연지혜의 수사가 교차되며 전개된다. 살인범은 회고록을 통해 범행 이유를 비롯해 범행을 저지른 후 사이렌 소리만 나면 경찰이 잡아갈까 벌벌 떨다가 이내 마음을 놓은 22년의 세월을 고백한다. 연지혜는 2022년 재수사를 하며 당시 민소림이 가입한 도스토옙스키 독서 모임에 대한 수사가 미진했다는 점을 발견하고 이를 파고든다. 소설은 술술 읽히는 흥미진진한 추리극의 틀을 갖췄지만 사회적 고민도 상당하다. 살인범은 자신을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라스콜리니코프처럼 현재 사법체계가 올바른지 질문을 던진다. 댓글로 여론을 조작하는 이야기를 담은 ‘댓글부대’(은행나무·2015년)나 청년들이 해외로 떠나는 세태를 반영한 ‘한국이 싫어서’(민음사·2015년)에서 보여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번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작품 배경이 뤼미에르 빌딩인 것도 눈에 띈다. 소설은 인류의 ‘계몽주의’(뤼미에르)에 대한 철학적 고민까지 이어간다. 작가는 ‘르 메이에르 빌딩’에 산 적이 있고 연작소설집 ‘뤼미에르 피플’(한겨레출판사·2012년)을 냈다. 그는 “‘재수사’ 속 빌딩 이름은 우연”이라고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고 봐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몰라 공허해하고요. 2022년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단어는 ‘공허’와 ‘불안’이 아닐까요. 그런 우리에게 새로운 사상과 생각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목소리엔 긴 숙제를 끝낸 듯 홀가분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는 벌써부터 또 다른 숙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올해 10월과 내년에 에세이를 한 권씩 출간할 계획입니다. 공상과학(SF) 단편소설집 ‘육식성’(가제)과 장편소설 ‘할루엘라’(가제)도 준비하고 있어요. 보다 긴 호흡으로 글을 쓰고 싶어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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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젠 웹소설 표지 삽화까지… 中, 도넘은 베끼기

    최근 중국 웹소설 작가들이 한국 인기 웹소설의 표지 삽화를 제목만 바꿔치기해 무단으로 도용하는 실태가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웹소설 업계는 현재 최소 수백 개의 표지 삽화가 중국 웹소설 플랫폼에서 불법 도용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 웹소설 플랫폼 두웨싱쿵(讀樂星空)에 올라온 웹소설 ‘섭정왕의 마음을 읽다(讀心后發現攝政王過分悶騷)’의 표지는 네이버웹소설에 연재 중인 한국 웹소설 ‘동백꽃 스며들어, 눈’의 삽화를 불법 도용해 만들었다. 제목만 다를 뿐 황제가 황후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은 물론이고 구도와 색감이 정확히 일치한다. 해당 삽화는 국내 웹소설 일러스트레이터 이랑이 직접 그려 저작권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 웹소설 작가가 상업적 이용 허가를 구하지 않은 채 불법적으로 표지 삽화를 베껴 쓴 사례다. 이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중국 웹소설 플랫폼 A1웨두왕(A1閱讀網)에 올라온 웹소설 ‘환생한 아내가 유혹한다(重生后薄少的小甛妻太會(료,요))’의 표지 삽화는 카카오페이지에 연재 중인 국내 웹소설 ‘격렬한 청혼’을 그대로 베꼈다. A1웨두왕에 게재된 ‘악역 여주인공이 집착한다(我成了反派女主的追求對象)’의 표지 역시 2018년부터 1년여간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돼 미국 일본 등에 수출됐던 ‘악녀는 두 번 산다’의 삽화와 일치한다. 지난해 기준 중국 웹소설 시장 규모는 약 5조 원에 이를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내 저작권 및 저작권료 지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보니 한국 웹소설 표지 삽화에 대해 상업적 이용 허가를 받거나 저작권료를 전혀 지불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베껴 쓰고 있다. 이융희 세종사이버대 만화웹툰창작과 겸임교수는 “작가나 소규모 제작사에서 대응할 게 아니라 플랫폼 기업들이 공동 대응해 국내 웹소설 창작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한국 콘텐츠 불법 도용 사례가 늘면서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중화권 등에서 불법 번역된 웹툰 콘텐츠를 감시하는 ‘글로벌 불법 유통 대응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간 영어 및 중국어권 내 불법 유통된 번역 웹툰 224만7664건을 적발하고 이 가운데 11만1889건을 차단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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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국제아동도서전, 제2의 이수지-백희나 발굴 기대”[인사이드&인사이트]

    《“한국 아동도서는 해외에서 문학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어요. 하지만 국내에선 교육적인 관점에서만 다뤄져요. 그림책도 아이부터 성인까지 즐길 수 있지만 국내에선 교육 도서로만 여겨지고 있고요. 한국에 국제아동도서전이 생긴다면 이런 인식이 바뀌지 않을까요.”이수지 그림책 작가(48)는 이르면 2024년 부산에서 열릴 한국 첫 국제아동도서전의 의미에 대해 11일 이렇게 말했다. 올해 이 작가는 ‘어린이책의 노벨 문학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을 한국 작가 최초로 수상했다.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영국 런던 캠버웰예술대에서 북아트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해외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02년)는 그가 2001년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계약한 작품. 2008년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올해의 그림책으로 꼽은 ‘파도야 놀자’(2009년)도 미국에서 먼저 출간돼 유명해졌다.》 이 작가는 “해외 아동도서전에서 자비를 들여 홀로 작품을 소개하고 계약하며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며 “국제아동도서전이 한국에 신설돼 아동문학과 작가들이 제대로 인정받고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상과 제도도 마련되면 좋겠다”고 했다.○ 평가 못받은 작가들 주목 받을 기회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이르면 2024년 ‘부산 국제아동도서전’을 만들어 매년 개최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출판계가 기대로 들썩이고 있다. 국제아동도서전은 국내 아동문학 작가들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해외 유명 아동문학 출판사와 평론가들이 한국을 찾아 국내 작가가 해외에 소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내 아동문학계의 기반이 빈약한 탓에 해외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내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작가들이 주목받을 기회도 늘어난다. 작가들이 작업하는 데도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그림책 제작에는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이 걸린다. 이 때문에 유명하지 않은 작가는 생활고로 작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백희나 작가는 2004년 발간한 베스트셀러 그림책 ‘구름빵’(한솔교육)이 큰 인기를 끌며 뮤지컬, 문구, 장난감 등 다양한 2차 저작물을 낳았지만 작가가 실제로 손에 쥔 돈은 계약금을 포함해 20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백 작가는 2020년 세계적인 아동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받은 뒤에야 금전적 어려움이 해결됐다. 심향분 전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한국지부(KBBY) 회장은 “한국 아동문학 작가는 해외에서 상을 받아야만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고 여기는데 국내 아동문학 시장이 탄탄해진다면 이런 상황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2의 이수지, 백희나’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한국 아동문학이 수출 효자 도서로 더 탄탄하게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8, 2019년 도서저작권 수출에서 그림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39.7%로 문학책(13.3%)의 3배 가까이 된다. 아동 분야 도서저작권 수출은 2019년 1158건으로 2017년(565건)에 비해 2배로 늘었다. 한국은 교육열이 높은 덕에 아동문학책의 수준이 빼어나다. 이에 한국 아동문학책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런 흐름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지은 비룡소 편집주간은 “국제아동도서전은 세계 유명 아동문학 출판사들이 총집결해 한국 작가와 작품을 만나러 오는 수출의 장”이라며 “국제아동도서전 신설은 세계 아동도서 저작권 거래를 활성화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여 독자들의 관심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식재산권 거래의 장 만들 것” 아동문학은 그림 비중이 높아 글 위주인 성인문학 작품에 비해 언어 장벽이 낮다. 국제아동도서전을 통해 한국 아동문학 작품을 해외에 적극 알리면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을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아동문학이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실제 한국 아동문학이 해외에서 이룬 성과는 빼어나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에서 권위 있는 상을 받은 문학 작품 8개 중 영국 추리작가협회가 주관하는 대거상 번역추리소설상을 받은 윤고은 작가의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민음사)을 제외하면 7개가 아동문학이다. 이명애 작가는 ‘내일은 맑겠습니다’(2020년·문학동네)로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 황금사과상을, 이지은 작가는 ‘이파라파냐무냐무’(2020년·사계절)로 볼로냐 라가치상 코믹스-유아 그림책 부문을 수상했다. 최덕규 그림책 작가는 “한국에서 국제아동도서전이 열리면 한국 작가의 작품을 해외 출판사에 더 많이 소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동도서는 지식재산권(IP) 확장에도 유리하다. 그림책에 담긴 일러스트를 비롯해 책을 기반으로 만든 영상 콘텐츠, 등장인물을 활용한 퍼즐 등 다양한 부가 상품을 만들 수 있다. 부산 국제아동도서전을 추진하는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는 “아동도서는 놀이와 학습에 사용하는 각종 도구에 IP를 활용할 수 있다”며 “국제아동도서전을 IP가 활발하게 거래되는 장으로 만들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아동문학계 지원 병행해 내실 기해야”일각에서는 국제아동도서전 개최가 기대한 만큼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그림책 작가는 “한국 아동문학이 최근 해외에서 연달아 성과를 내자 작가들을 행사에 초청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막상 행사 현장에 가보면 주최 측 담당자들이 아동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내실 있게 국제아동도서전을 추진해야 한다는 당부가 나온다. 이수지 작가는 “해외 아동문학도서전이 각각 가진 특성을 면밀히 분석해 한국 국제아동도서전만이 지니는 강점을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국제아동도서전을 개최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아동문학 작가와 출판사에 대한 꾸준한 지원도 함께 진행돼야 한국 아동문학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제아동도서전과 관련해 공청회 등을 열어 출판계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아동문학 작가 및 해당 분야 실무자들과 지속적으로 논의해 국제아동도서전을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할지에 대한 세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호재 문화부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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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목욕탕서 ‘전범국 민낯’ 마주한 두 일본인

    “일본인에게는 이름을 가르쳐 주고 싶지 않아요. 미안해요.” 2019년 9월 부산 동래구에 있는 한 온천에서 몸집이 자그마한 한국 할머니는 일본인 저자들에게 대뜸 이렇게 쏘아붙였다. 당시 한국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로 반일 감정이 극에 치달았던 시기. 할머니는 “한국은 일본에게 고약한 일을 당했다. 나쁜 짓을 했다면 사과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며 화를 냈다. 저자들은 “일본 정부 때문에 한국인이 화가 나는 건 당연하다. 역사를 왜곡하거나 잊은 척하는 것은 죄가 무겁다”고 말했지만 할머니는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배려는 이들이 역사의 상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저자들이 동래온천에서 할머니를 만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이들은 ‘목욕탕 마니아’다. 한국과 일본, 태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목욕탕을 경험한다. 활기가 넘치는 탈의실, 우스갯소리로 흥겨워하는 아주머니들, 온몸이 노글노글 풀리는 탕에 대한 묘사는 따뜻함이 넘친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들여다보는 성찰도 담겨, 역사서로서도 품격을 지녔다. 일본 사무카와에 있는 최초의 공중목욕탕 ‘스즈란탕’에 갔을 때도 두 사람은 숨겨진 일제의 그림자를 마주한다. 이 지역에 일제가 독가스를 생산하던 공장이 있었다는 얘기를 우연히 듣는다. 어렵게 사료를 뒤져 징용으로 끌려온 이들의 회고록을 찾아내 전쟁의 민낯을 파고든다. 태국 힌닷 온천은 정글에서 노천탕을 즐기는 천혜의 휴양지. 하지만 이 온천이 일제가 지은 군용시설이란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온천을 오고 가는 철도도 그 땅을 침략하기 위해 일제가 건설했다. 우연히 다른 여행객이 “일본인이냐”고 물었을 때, 무심코 “일본이라 죄송하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국인에게 저자들은 참 고마운 존재다. 이런 이들만 있다면 양국 갈등은 진작 해소됐을 터. 하지만 혐한 서적이 일본 서점을 뒤덮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또다시 씁쓸해진다. 그래도 두 저자가 “저항하는 태도를 지켜 나가자”고 다짐하는 모습에 진한 박수를 보낸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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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3차례 공작… 변절 밀정 고발한 백범의 숨가쁜 분투

    1938년 5월 7일 중국 창사의 조선혁명당 당사인 난무팅(남목청)에 한 청년이 들이닥쳐 권총을 난사했다. 그 총알 하나가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곧장 병원으로 실려 간 백범의 상태를 보고 의사는 “가망이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3시간 뒤에도 백범은 숨을 거두지 않았고, 치료를 받아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다. 한 달 뒤 퇴원한 백범의 몸에는 탄환이 그대로 남았다고 한다. 당시 백범을 저격한 이는 조선혁명당원인 이운환. 백범은 이운환 배후에 밀정인 박창세가 있을 것으로 봤다. 이운환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 일제가 암살을 사주했단 의심이다. 백범은 “내 심장에는 조선 놈이 쏜 왜적의 탄환이 아직도 박혀 있다. 단군 할배의 피를 가진 놈이면 왜적의 개질을 하는 놈이라도 나를 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제국의 암살자들’은 1935∼1938년 세 차례에 걸쳐 백범을 암살하려 했던 사건을 다뤘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인 저자는 백범을 암살하기 위해 일제가 벌인 비밀공작을 담은 문서를 일본 야마구치현 문서관에서 확인했다. 책은 저자가 이를 바탕으로 쓴 논문 ‘일제의 김구 암살 공작과 밀정’을 재구성했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논문과 달리, 한때 변절자가 돼버린 밀정들과 백범의 지난한 분투를 영화 ‘암살’(2015년)처럼 생생하게 그려냈다. 1935년 1월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밀정이 된 오대근은 “백범이 중국 난징에 머문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중국 공작원 2명과 난징으로 간다. 하지만 오대근은 “백범이 난징에 오지 않았다”는 후속 첩보를 입수하곤 혼란에 빠진다. 이는 백범이 일부러 가짜 정보를 흘려 암살 계획을 무용지물로 만든 것이었다. ‘도조 히데키와 제2차 세계대전’은 일제를 또 다른 측면에서 살펴본다. 일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6년 동안 관련 사료를 추적해 일제 영웅으로 추앙받다 패전 뒤 처형당한 도조 히데키(1884∼1948)의 삶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봤다. 도조는 1936년 군의 정치 개입을 강화하고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해 일본 제국주의 전쟁을 이끈 장본인. 1942년 총리 겸 육군참모총장까지 되며 일본을 파국으로 이끈다. 하지만 저자는 도조의 성패를 개인이 벌인 일탈로 봐선 안 되며, 일본 군국주의가 만든 산물이란 점을 강조한다. 정치인을 꿈꿨던 도조가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 건, 군인 출신들이 국가 지도층을 장악하고 있는 당시 정세로 인한 것이었다. 그런 도조는 죽음 직전, 시 ‘홀로 길게 드리운 서리 내린 밤의 그림자’를 언급했다고 한다. 사형 선고를 받은 그가 인생을 달빛에 비친 그림자로 비유한 시를 떠올린 이유가 뭘까. 여기엔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인생을 긍정하기보다는 허무함에 가득 찼던 도조의 심경이 담겼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1948년 12월 23일 도조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약 6개월 뒤인 1949년 6월 26일 백범은 안두희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 같은 시대를 살다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난 두 사람. 8·15 광복절을 맞아 그들은 어찌 이리도 다른 인생을 살게 됐는지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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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은 시대 다른 삶을 산 백범 김구와 일제 전범 도조 히데키

    1938년 5월 7일 중국 창사의 조선혁명당 당사인 난무팅(남목청)에 한 청년이 들이닥쳐 권총을 난사했다. 그 총알 하나가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곧장 병원으로 실려 간 백범의 상태를 보고 의사는 “가망이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3시간 뒤에도 백범은 숨을 거두지 않았고, 치료를 받아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다. 한 달 뒤 퇴원한 백범의 몸에는 탄환이 그대로 남았다고 한다. 당시 백범을 저격한 이는 조선혁명당원인 이운환. 백범은 이운환 배후에 밀정인 박창세가 있을 것으로 봤다. 이운환의 단독범행이 아니라 일제가 암살을 사주했단 의심이다. 백범은 “내 심장에는 조선 놈이 쏜 왜적의 탄환이 아직도 박혀 있다. 단군 할배의 피를 가진 놈이면 왜적의 개질을 하는 놈이라도 나를 해하지 못 한다”고 했다. 신간 ‘제국의 암살자들’은 1935~1938년 세 차례에 걸쳐 백범을 암살하려 했던 사건을 다뤘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인 저자는 백범을 암살하기 위해 일제가 벌인 비밀공작을 담은 문서를 일본 야마구치 현 문서관에서 확인했다. 책은 저자가 이를 바탕으로 쓴 논문 ‘일제의 김구 암살 공작과 밀정’을 재구성했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논문과 달리, 한때 변절자가 돼버린 밀정들과 백범의 지난한 분투를 영화 ‘암살’(2015년)처럼 생생하게 그려냈다. 1935년 1월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밀정이 된 오대근은 “백범이 중국 난징에 머문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중국 공작원 2명과 난징으로 간다. 하지만 오대근은 “백범이 난징에 오지 않았다”는 후속 첩보를 입수하곤 혼란에 빠진다. 이는 백범이 일부러 가짜 정보를 흘려 암살 계획을 무용지물로 만든 것이었다. 신간 ‘도조 히데키와 제2차 세계대전’은 일제를 또 다른 측면에서 살펴본다. 일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6년 동안 관련 사료를 추적해 일제 영웅으로 추앙받다 패전 뒤 처형당한 도조 히데키(1884~1948)의 삶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봤다. 도조는 1936년 군의 정치 개입을 강화하고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해 일제 제국주의 전쟁을 이끈 장본인. 1942년 수상 겸 육군참모총장까지 되며 일본을 파국으로 이끈다. 하지만 저자는 도조의 성패를 개인이 벌인 일탈로 봐선 안 되며, 일본 군국주의가 만든 산물이란 점을 강조한다. 정치인을 꿈꿨던 도조가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 건, 군인 출신들이 국가 지도층을 장악하고 있는 당시 정세로 인한 것이었다. 그런 도조는 죽음 직전, 시 ‘홀로 길게 드리운 서리 내린 밤의 그림자’를 언급했다고 한다. 사형선고를 받은 그가 인생을 달빛에 비친 그림자로 비유한 시를 떠올린 이유가 뭘까. 여기엔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인생을 긍정하기보다는 허무함에 가득 찼던 도조의 심경이 담겼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1948년 12월 23일 도조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약 6개월 뒤인 1949년 6월 26일 백범은 안두희의 총에 맞아 쓰려졌다. 같은 시대를 살다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난 두 사람. 8·15 광복절을 맞아 그들은 어찌 이리도 다른 인생을 살게 됐는지 되짚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이호재기자 hoho@donga.com}

    • 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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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섯 부처와 보살이 한 폭에… 조선불화 희귀본 소개

    국내에서 손꼽히는 고려·조선 불교회화 전문가인 정우택 동국대 명예교수(69·사진)가 한국 불화로는 보기 드문 ‘육불회도(六佛會圖)’를 소개하는 책을 펴냈다. 최근 출간한 ‘한국불교회화명품선’ 3번째 시리즈인 ‘육불회도’(동아시아미술연구소)는 조선 전기 불화로 일본 미에현에 있는 세이라이지(西來寺)가 소장한 불화를 다뤘다. 1613년 기증받은 뒤 사찰에서 단 한 번도 밖으로 나간 적 없는 작품을 1994년 정 교수가 확인했다. 아미타여래와 석가여래, 약사여래, 치성광여래, 미륵여래, 지장보살이 한 폭에 담겨 육불회도라는 이름이 달린 이 양식은 일본 불화는 여러 점이 있으나 조선 불화에선 유례를 찾기 힘들다. 정 교수는 “구성이 치밀하고 채색이 조화를 이뤄 당시 불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한국불교회화명품선 시리즈는 2020년 일본 혼가쿠지(本岳寺)가 소장한 ‘석가탄생도’를 시작으로 3권까지 이어졌다. 책 1권당 하나의 작품을 다루는 방식으로 앞으로 불화의 명품 40점을 엄선해 소개할 예정이다. 200부만 출간된 한국불교회화명품선은 한국미술연구소 홈페이지나 전화로 구매할 수 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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