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은지

위은지 기자

동아일보 디지털랩 전략영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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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부터 히어로콘텐츠와 같은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 기획을 맡고 있습니다. 지면에 비해 제약이 적은 디지털 공간에서 어떻게 독자들에게 기사를 더 효과적이고 흥미롭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wizi@donga.com

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검찰-법원판결44%
사회일반23%
정치일반10%
사건·범죄7%
사법7%
우주/천체3%
정당3%
기타3%
  • 캐버노 인준안 50 대 48 상원 통과… 美대법 무게중심 보수로 기울어져

    고등학생 시절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던 브렛 캐버노 미국 연방대법관 지명자(53)에 대한 인준안이 6일 근소한 차이로 상원을 통과했다. 이날 미 상원 전체회의에 상정된 인준안은 찬성 50표, 반대 48표로 가결됐다. 상원 기록에 따르면 이는 1881년 스탠리 매슈스 대법관 후보자가 24 대 23으로 인준을 통과한 이후 가장 근소한 표 차. 상원(공화당 51석, 민주당 49석) 대다수가 당론에 따라 투표한 가운데 공화당에서 기권이 2표 나왔고, 민주당에서 1표의 찬성이 나왔다. 인준안이 가결된 뒤 캐버노 지명자는 대법원에서 비공개로 취임 선서를 했다. 이날 워싱턴 의사당과 대법원 앞에는 캐버노 지명자의 인준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모여 “부끄러운 줄 알라”고 소리쳤다. 인준안 가결로 정치적 승리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캔자스주 유세장으로 향하는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캐버노 지명자는 훌륭한 대법관이 될 것”이라며 “그가 민주당의 끔찍한 공격을 견뎌낼 수 있어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캐버노 지명자가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크리스틴 포드 팰로앨토대 교수에 대해서는 “(포드가 잘못된 사람을 지목했다는 것에) 100퍼센트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임명된 닐 고서치 대법관(51)에 이어 또 다른 50대 보수 성향의 캐버노 지명자가 대법원에 입성하면서 보수 성향 5 대 진보 성향 4의 ‘보수 우위’ 대법원 구도가 굳어지게 됐다. 한편 이번 인준이 다음 달 6일 중간선거 판세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화당은 이번 논란으로 위기를 느낀 공화당 지지자들이 결집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반면 민주당은 청문회를 지켜보며 분노한 여성들이 트럼프 행정부에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기대한다.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 2018-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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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폼페이오 방북 앞두고…美 재무부, 대북제재 추가 단행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네 번째 평양 방문을 사흘 앞둔 4일(현지 시간) 미 재무부가 독자 대북 제재를 단행했다. ‘연내 종전선언’ 가능성이 논의되는 상황 속에서도 대북 제재를 완화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날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위반 행위를 한 혐의로 터키 기업 한 곳과 터키 기업인 2명, 북한 외교관 1명을 제재 대상으로 추가 지정했다. 제재 대상은 터키의 방산 기업 ‘시아 팰컨 인터네셔널 그룹’과 이 기업의 CEO인 휘세이인 샤힌, 총지배인 에르한 출하, 주몽골북한대사관의 리성은 경제상무참사관이다. 재무부에 따르면 시아 팰컨은 북한과의 무기·사치품 거래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리 참사관은 2018년 초 시아 팰컨 관계자들의 주선으로 터키에서 이들과 무기·사치품 거래에 관련한 무역 협상을 진행한 혐의를 받는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은 북한의 최종적으로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에 깊이 전념하고 있으며, 비핵화가 이뤄지는 그 날까지 계속해서 대북제재를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 2018-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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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캐나다-멕시코産 車 年260만대씩 관세 면제… 새 무역협정 ‘USMCA’ 합의

    미국과 캐나다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을 타결지었다. 미국이 협상 데드라인으로 정한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밤 12시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극적으로 합의에 성공했다. 양국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USMCA)’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1994년 체결된 나프타는 2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미국은 올 8월 멕시코와 먼저 나프타 개정안에 잠정 합의한 뒤 캐나다를 상대로 협상을 벌여 왔다. 미국은 11월 30일로 임기가 끝나는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이 최종 합의안에 서명하려면 늦어도 9월 30일 밤 12시까지는 타결이 이뤄져야 한다며 캐나다를 압박했다. 캐나다가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캐나다를 제외하고 멕시코와 양자 협정을 맺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시한에 구애받지 않겠다”고 맞섰지만 결국 미국과의 힘겨루기에서 밀렸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크리스티나 프릴랜드 캐나다 외교장관은 이날 공동성명에서 “오늘 캐나다와 미국은 멕시코와 함께 새롭고 현대화된 21세기의 무역협정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트뤼도 총리는 공동성명 발표 직전 주재한 긴급 각료회의 후 “오늘은 캐나다에 좋은 날”이라는 짧은 소감을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합의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나프타가 미국에 호의적인 방향으로 개정되지 않으면 이를 폐기하겠다고 위협해 온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라고 후하게 점수를 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 자신의 트위터에 “어제 늦은 밤 캐나다와 굉장한 새로운 무역 협정을 타결했다. 이는 나프타의 부족한 점을 메우는 협정으로 세 나라(미국 멕시코 캐나다) 모두에게 굉장한 협정”이라고 적었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새 무역협정인 USMCA로 자동차 분야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수입 자동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캐나다와 멕시코는 USMCA에 따라 각각 연간 자동차 260만 대에 한해 관세를 면제받는다. 무역확장법 232조에 대해 일정 수준까지 면제해 주는 방식이다. 자동차 생산 원산지 규정도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미(對美) 최대 자동차 수출국인 멕시코와 캐나다가 무역확장법 232조 관련 협의를 사실상 마무리함에 따라 한국 정부도 이번 합의가 우리 기업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일 브리핑에서 “한국산 자동차는 멕시코나 캐나다만큼 미국 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며 “완전 면제가 합리적인지, 또 유럽연합(EU)과 일본은 어떤 입장인지 검토해서 미국과 협상하겠다”고 밝혔다.위은지 wizi@donga.com / 세종=이새샘 기자}

    • 2018-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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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세계 수교 17國뿐인 대만 “유럽유일 바티칸 돌아서나” 불안

    주교 임명권 문제로 갈등을 빚어 왔던 중국과 바티칸이 지난달 22일 예비 합의안에 서명하면서 최근 ‘단교 사태’를 겪고 있는 대만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바티칸이 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할 경우 유럽 유일의 대만 수교국인 바티칸이 대만과 단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합의안에는 중국 정부가 교황의 승인을 받지 않고 임명한 중국 주교 7명을 바티칸이 인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만 외교부는 지난달 26일 “바티칸과의 관계는 안정적”이라고 밝히면서도 “중국으로부터 압력이 있는지 면밀히 살펴볼 것”이라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또 2년간 리모델링 중이었던 주대만 바티칸대사관을 재개장하고, 14일 바티칸에서 열리는 시성식에 천젠런(陳建仁) 부총통을 특사로 파견하기로 했다. 유럽의 유일한 수교국을 잃지 않으려는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고 나선 것이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취임한 2016년 이후 엘살바도르, 파나마 등 5개국이 대만과 외교 관계를 끊는 ‘단교 도미노’가 있었다. 이들 5개 나라는 대만과 단교한 후 중국과 수교했다. 잇따른 단교 사태에 대만 못지않게 민감한 나라는 미국이다. 현재 대만 수교국은 17개 나라로 대부분 남태평양 섬나라와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이다. 남중국해에 군사기지를 건설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주도권을 노리고 있는 중국의 남하를 막고, 미국의 앞마당인 중앙아메리카에 중국이 영향력을 뻗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 입장에선 대만 수교국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달 초 코리 가드너 미 공화당 상원의원, 에드 마키 민주당 상원의원 등은 대만과 단교하는 국가에 미국의 원조를 축소한다는 내용을 담은 ‘대만 동맹국 국제보호법’을 발의했다. 이어 미 정부는 최근 대만과 단교한 도미니카공화국, 엘살바도르, 파나마 등 3개국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하는 이례적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달 25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서반구 국가들은 팽창주의적인 외국 세력의 침략으로부터 독립을 지키는 데 전념할 것”이라고 중국을 향해 간접적으로 경고했다.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투자’와 ‘관광객’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무기를 휘두르고 있다. 올 5월 대만과 단교한 도미니카공화국은 단교 직전 중국으로부터 약 31억 달러 규모의 투자와 차관을 받았다. 대만 외교부는 8월 엘살바도르가 단교를 선언한 이유에 대해 “엘살바도르가 2019년 대선에 자금을 지원하고 항구 건설에 투자할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중국은 2011년부터 남태평양 11개 섬나라에 약 13억 달러에 달하는 차관을 제공하는 등 해양 자원이 풍부한 태평양 지역에서의 세력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한국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갈등을 겪었을 때처럼 팔라우, 바티칸 등 대만 수교국에 단체 관광객을 보내지 않는 방식으로 압박을 넣어 왔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불법 이민자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중앙아메리카 국가 입장에서는 중국이 대안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대만 수교국인 온두라스의 후안 에르난데스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전임 행정부가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로 약속했지만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투자가 줄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이 올해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에 지원한 금액은 2016년에 비해 3분의 1가량 줄었다. 게다가 미국의 불법 이민자 단속으로 국경을 넘지 못한 이민자들이 중앙아메리카로 몰리면서 각 국가에 부담이 되는 상황이다. 에르난데스 대통령은 “중남미 지역에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다른 나라들도 엘살바도르와 파나마의 전례를 따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 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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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北 더 많이 해체할 것”… 김정은, 구체적 약속 전달한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 시간) 비핵화를 두고 북한과 “시간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못 박은 것은 비핵화 시간표를 따르기 위해 북한에 끌려다니는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좋은 위치에 있다”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그들(북한)이 당신에게 그것(시간 싸움)을 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북한 비핵화가 오래 걸린다고 지적하는 이들에게) 나는 ‘세상 모든 시간이 나에게 있다’고 말했다”고 덧붙여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한 비핵화 협상은 미국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섰음을 내비쳤다.○ 北, 사찰 검증 수용 입장 전했을 가능성 제기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시간표에 구애받지 않겠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외교가는 북한이 핵시설 사찰과 검증을 수용하겠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전달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과 열린 자세를 전달받은 미국 또한 핵 물질 및 핵시설 신고 방식에 있어 일괄 신고를 고수했던 기존 입장에서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이나 영변 핵시설, 개별 미사일 등으로 쪼개 각기 신고로 선회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이 ‘특정한 시설, 특정한 무기’에 대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시간을 벌어 주는 자충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3년은 앞서 미국이 언급했던 비핵화 타임라인에서 늦춰진 것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남북 정상이 1년 내 비핵화에 합의했다”고 몇 차례 언급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19일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인 2021년 1월까지로 비핵화 시점을 확인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6일 “대선 후보 시절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이 북한과 길고 성과 없는 협상을 해 북한이 군비를 확장하게 내버려뒀다고 비판했다”고 지적했다.○ 안보리 회의 주재한 트럼프, 대북 제재 유지 강조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까지 직접 주재하면서 대북 제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내놓기 전까지 압박 강도를 유지하는 ‘선 비핵화, 후 체제 보장’ 원칙을 전 세계에 거듭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뉴욕 유엔본부에서 주재한 안보리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한반도와 역내, 세계의 안전은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의 완전한 준수에 달려 있다”면서 “북한과 협상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진전이 계속되려면 비핵화가 일어날 때까지 안보리 기존 결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선박 간 옮겨 싣기 방식으로 안보리 제재 위반 사례가 발견되고 있는데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제재를 결의해 온 안보리 회의를 주재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북한과 본격적인 협상 국면에 접어들고 있지만 비핵화 속도를 내는 데 지렛대로 쓸 대북 제재의 고삐를 직접 틀어쥔 것이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하면서 제재를 느슨하게 풀어 주고 있는 정황이 발견되고 있는 데다 남북이 정상회담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 재개를 합의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은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비핵화 협상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음을 암시했다. 그는 “북한은 더 많이 해체할 것이다. 스스로 앞서 나가고 싶진 않지만 여러분이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보리 회의에서도 “언론에서 멀리 떨어진 뒤편에서 많은 일이 매우 긍정적인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약속한 미사일 기지 해체와 영변 핵시설 폐기 등 핵 동결 조치 외에 기존 핵에 대한 추가적인 조치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 신나리·위은지 기자}

    • 201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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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 코스비, 美서 유명인사 첫 ‘미투 유죄’

    “정의를 구현할 시간이 됐습니다. 코스비 씨, (당신이 저지른) 모든 것이 당신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25일(현지 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몽고메리카운티법원 A재판정. 스티븐 오닐 판사는 ‘미국 국민 아빠’로 통했던 유명 코미디언 겸 배우 빌 코스비(81)의 성폭행 혐의를 인정해 3∼10년의 징역형을 선고하며 이같이 말했다. 코스비는 2004년 템플대 직원이던 앤드리아 콘스탠드(45·여)에게 약을 먹여 기절시키고 성폭행한 혐의 등 3건의 성폭행 혐의로 기소됐는데 ‘3∼10년 징역형’ 판결은 3년 복역 후 가석방을 신청할 수 있으나 신청이 기각되면 10년간 복역해야 한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추가로 2만5000달러(약 28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고, 코스비를 ‘성폭력 흉악범’으로 등록한다고 판결했다. 코스비 측은 고령을 이유로 가택연금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피고석에 말없이 앉아 있던 코스비는 선고가 끝나자 재킷을 벗고 시계를 풀었다. 수갑을 찬 그는 곧바로 몽고메리카운티 교정시설에 구금됐다. 코스비는 지난해 시작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 이후 처음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유명 인사라고 미 언론은 전했다. 코스비는 1980년대 ‘코스비 쇼’에서 모범적인 아버지상인 클리프 헉스터블 박사 역을 맡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피해 여성 중 한 명인 콘스탠드는 판결 전 재판부에 보낸 편지를 통해 “자신감 넘치고, 밝은 미래를 꿈꾸는 젊은 여성이던 나는 중년의 여성이 돼버렸고, 15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치유될 수 없다”며 “코스비가 아름답고 건강한 젊은 영혼을 파괴했다”고 호소했다. 코스비의 또 다른 성폭행 피해자인 슈퍼모델 출신 재니스 디킨슨도 재판을 지켜본 뒤 “이번 판결은 타당하고 공정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피해 여성 33명의 변호를 맡은 글로리아 올레드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여성에게 약을 먹이고 성폭력을 가하는 것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유명 인사, 부자, 권력자들에게 전달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반면 코스비 측 앤드루 와이엇 대변인은 판결 직후 “미국 역사에서 가장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재판”이라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 2018-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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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매 진단 주변에 알리자… 삶이 더 풍요로워졌어요”

    치매 환자인 시도타니 도시유키(志度谷利幸·69) 씨는 “치매 진단을 받은 뒤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2년 전까지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해 왔던 그는 부인 히사미(久美·70) 씨와 함께 일본 가가와(香川)현 아야가와(綾川)정에 살고 있다. 40년 전 개발된 뉴타운인 이곳 주민 대부분은 1947∼1949년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단카이(團塊) 세대’다. 시도타니 씨는 아침 일찍 이웃들과 라디오 체조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비슷한 나이대의 친구들과 같이 농사일을 하거나 탁구를 치기도 한다. 그는 5년 전 의사에게 ‘초기 알츠하이머형 치매’ 진단을 받았을 때를 회상했다. 시도타니 씨는 “나는 원래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치매 진단을 받은 뒤 첫 6개월은 정말 우울했다”며 “내 인지 기능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실내 마감공사 일을 했던 그는 현장에 들어가기 전에 도면을 확인하면 작업 중간에 도면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쉽게 일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치매에 걸린 뒤로는 도면이 잘 생각나지 않아 작업 도중 여러 번 확인하고 있다. 고객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2년 전부터 큰 규모의 주문은 받지 않는다. 그는 “다음에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생각하니 두려웠다”고 말했다. 일이 줄어든 이후 개를 산책시키며 시간을 보냈던 시도타니 씨는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지역 사회와의 연결고리가 부족하다고 느끼던 차에 이웃이 중증 환자, 장애인 등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지역 포괄지원센터 방문을 권유했다. 센터에서 만난 미이 유키코(三井雪子·70) 씨는 시도타니 씨를 위해 자발적으로 ‘이쿠이쿠 히로바(育育廣場)’라는 동아리를 조직했다. ‘건강한 사람과 치매 환자 모두에게 친화적인 공동체를 만들자’는 목표를 가진 이 동아리에는 시도타니 씨의 일상생활을 돕기 위해 같은 동네에 사는 70대 이웃 15명이 참여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 오전 2시간 동안 지역 보육지원 센터의 빈 교실에 모여 다양한 활동을 한다. 서로의 농사일을 도와주기도 한다.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 이들은 계단식 의자를 만들고 있었다. 나뭇조각 톱질을 마친 시도타니 씨는 자신의 톱질 기술을 뽐냈다. 동아리 회원들은 인사를 주고받을 때 서로의 건강 상태를 꼼꼼히 살피는 등 서로를 도왔다. 미이 씨는 이 활동이 치매에 걸리지 않은 구성원들도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도 언젠가 치매에 걸릴 수 있다”며 “치매 환자를 도우면서 동시에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시도타니 씨는 자신이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야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회원들에게 조언했다. 그는 “나는 치매 진단을 받은 직후부터 이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며 “그렇게 해야 주변 사람들에게 치매 증상에 대해 둘러댈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점점 무언가를 깜빡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는 어려움 없이 삶을 즐길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그 병에 익숙해질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기타무라 유키코 기자번역·정리=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 201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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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각국의 치매 대응은?… 네덜란드 호헤베이크 치매환자 마을 조성

    치매는 전 세계가 마주한 고민이다.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는 인구 고령화 추세로 2050년 세계 치매 환자 수가 현재 수준(약 5000만 명)에서 3배 이상으로 증가한 1억520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WTO에 따르면 치매 환자 관리에 드는 사회적 비용은 연간 8180억 달러(약 916조 원)에 이른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가 넘는 금액이다. 2030년에는 이 비용이 2배 이상으로 증가해 2조 달러(약 2240조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치매의 날(9월 21일)을 맞아 주요국들의 치매 대응책을 소개한다. 2009년 ‘국가치매전략’을 시행한 영국은 치매 문제를 세계 최초로 국가적 어젠다로 설정해 적극 대응하고 있다. 치매 치료제 개발 투자와 동시에 치매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개선하고, 치매 환자와 간병인의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국 치매협회는 런던을 2022년까지 ‘치매 친화 수도’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도 2012년 시행된 ‘국가 알츠하이머 프로젝트법(NAPA)’에 따라 2025년까지 치매 예방과 치료 방법을 찾는다는 국가적 목표를 세웠다. 올해 예산에 연구비로 19억 달러(약 2조1280억 원)를 책정했으며 내년에는 4억 달러 더 늘어난 23억 달러(약 2조5800억 원)의 예산이 배정될 예정이다. 치매 대응 선진국 중 하나인 일본은 지역사회 곳곳에 치매 관리 인력을 배치하고 있다. 치매총괄센터를 컨트롤타워로 두고 지역사회 시설과 사회보장체계가 연결된 형태다. 주민과 직접 만나는 의료시설이나 치매카페에서 발병 사실을 조기에 발견해 센터와 연계하면 적절한 돌봄 서비스가 환자에게 제공된다. 센터에서는 병의 진행 단계에 따라 상이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조정한다. 치매 환자들이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곳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외곽에 있는 호헤베이크 마을이다. 치매 환자 150여 명이 모여 사는 이 마을의 목표는 환자들이 ‘발병 이전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마을에선 환자들이 먹고 자는 것은 물론이고 쇼핑이나 요리 등 일상생활의 전반을 스스로 해결한다. 보호자의 간병 부담을 줄이면서 치매 진행 속도까지 늦추는 묘안이다. 이 마을엔 250여 명의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도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은 평소 슈퍼마켓 직원이나 미용사 등으로 생활하다 환자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만 나선다. 치매 환자의 일상생활 수행 능력은 최대화하고 간병인의 개입은 최소화하는 게 원칙이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 201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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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며느리 잡는 차례상? 과일-송편으로 충분… 전 안올려도 돼요

    ‘하아! 이 망할 놈의 유교 같으니라고….’ 이 땅 위의 한국인들은 추석 때마다 마음 한 편으로 조그맣게 이런 말을 읊조렸을지 모른다. 몇 시간 동안 막히는 고속도로를 뚫고 도착한 선산에서 윙윙대는 벌들과 싸워가며 예초기를 밀 때, 언제나 친정은 뒷전으로 하고 시가부터 찾아가 추석의 하이라이트를 보내야 할 때, 얼굴도 모르는 남편의 조상님을 위해 환갑이 넘어서까지 차례상을 차려야 할 때, 이들은 생각한다. ‘유교 때문에 내가 죽겠다….’ 초등학생인 시동생을 ‘도련님∼’ 하고 불러야 하는 며느리는 마치 몸종이 된 기분이 든다. 추석이 끝난 뒤 분노를 쏟아내는 아내를 보는 남편들도 생각한다. ‘어머니, 왜 저를 유교 문화권에 낳으셨나요….’ 하지만 유교 전문가들은 억울하다. 한국인에게 유교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현실이. 사실 조상님들의 ‘본심’은 그게 아닌데 본뜻을 살리지 못한 잘못된 예법이 중구난방으로 전해져 마치 무조건 따라야 할 형식처럼 돼 버렸단 것이다. 조상을 공경하며 가족 모두 화목한 추석이 되기 위한 우리의 예(禮)는 무엇일까. 동아일보가 창간 98주년을 맞아 진행한 ‘새로 쓰는 우리 예절 신예기(新禮記)’ 시리즈 속에서 답을 찾아봤다. ▽추석 차례, 안 지내도 그만=본래 유교에서는 기제사(고인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만 지낼 뿐 명절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차례상 문화는 명절날 자손들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죄송해 조상께도 음식을 올리면서 생겼다. 여기에 조선 후기 너도 나도 양반 경쟁을 벌이면서 차례상이 제사상 이상으로 복잡해졌다는 것. 집안 전통상 차례 지내기가 관례라면 과일과 송편으로도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전 부치다 싸우면 바보=명절 기간 최고로 힘든 노동 중 하나는 ‘전 부치기’다. 보통 차례상에 올리기 위해 만드는 경우가 많다. 유교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잘못 전해진 예법의 대표적 예다. “제발 제사상에 전 좀 올리지 마세요. 유교에서는 제사상에 기름 쓰는 음식 안 올려요. 그건 절(사찰)법이라고요. 전 부치다 이혼한다는데, 조상님은 전 안 드신다니까요.”(방동민 성균관 석전대제보존회 사무국장) ▽제사상 과일 위치, 집집마다 달라요=제사상을 차릴 때 흔히 ‘홍동백서(붉은색 음식은 동쪽, 흰색 음식은 서쪽에 놓음)’라는 말을 쓰지만 이는 정해진 게 아니다. 예서에는 ‘과일’이라고만 나와 있을 뿐 과일의 종류나 놓는 위치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 제사상 차림은 가가례(家家禮·각 집안의 예법)에 따르면 된다. ▽장남 혼자 제사 책임? 오해예요=장남만 제사를 지내야 한다거나, 음식은 한 집이 책임져야 한다거나, 여자는 음식만 만들 뿐 제사상에 절을 올려서는 안 된다는 것 모두 잘못 전해진 것들이다. 과거 조상들은 형제마다 각자 음식을 준비해 오거나 제사 일부를 나눠 맡는 ‘분할봉사’를 했다. 종갓집에서는 지금도 제사 때 반드시 두 번째 술잔을 맏며느리에게 올리게 해 여성의 존재를 존중한다. ▽명절 때 방문 순서 번갈아 가면 어때요=직장인 신재민 씨(39)는 “결혼 초 명절 때마다 늘 우리집(시가)부터 먼저 가는 관행 때문에 아내의 불만이 많았다”며 “몇 년 전부터 한 해씩 처가와 번갈아 먼저 가기로 했는데 서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양가 중 자녀가 한 명뿐이거나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 등 좀 더 외로운 부모 쪽을 먼저 찾아 배려하는 것도 좋다. ▽임신부·난임 부부 각별히 배려해야=추석 때 만난 친지 가운데 임신부 혹은 난임 부부 등 특별한 상황의 가족이 있다면 말과 행동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임신부의 배를 함부로 만지거나 ‘딸이 최고’ 혹은 ‘아들이 최고’ 등 왈가왈부하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다.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자꾸 출산 계획을 묻거나 ‘불임엔 뭐가 좋다더라’식의 조언도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명절 때 가족여행, 서로 배려해야=만약 추석 연휴에 부모 친지 등과 가족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여행 중 서로에게 ‘고맙다’ ‘수고한다’ ‘즐겁다’는 말을 많이 하면 좋다. 부모님에게 아이를 맡기고 젊은 부부만 관광을 다닌다거나 ‘이 코스 누가 짰느냐’, ‘음식이 별로다’, ‘애 엄마 수영복이 그게 뭐냐’ 같은 말이 오가면 즐거운 여행에서 기분만 상할 수 있다. 나이에 따른 각자의 체력과 취향을 고려해 움직이는 센스도 필요하다. 유교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명절이든 제사든, 조상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은 ‘공경의 마음’과 ‘자손들의 화목’이라는 것이다.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서연구실장은 “조상들은 제사나 차례에서 ‘많이’ 준비하는 것보다 ‘마음과 정성’을 중요하게 여겼다”며 “우물물만 떠놔도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게 진짜다”라고 말했다. 놀러 가서 차례를 지내든, 해외에서 지내든 이번 추석엔 예의 본질을 잊지 말자. 유교에서 ‘숭조돈종(조상을 숭상하고 일가가 돈독하게 지내는 것)’은 떼어놓을 수 없는 ‘세트메뉴’다.임우선 imsun@donga.com·위은지 기자}

    • 201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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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발 차례상에 전 올리지 마세요, 조상님은 안 드신다니까요”

    “추석을 어떻게 보내느냐고요? 정말 아무것도 안 해요. 차례도 지내지 않고…. 아버지 모시고 가족들이랑 근교로 나들이나 갈까 해요.” 19일 서울 경복궁 옆 카페에서 만난 이치억 성균관대 유교철학문화컨텐츠연구소 연구원(42·사진)은 추석 계획을 묻자 싱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연구원은 퇴계 이황의 17대 종손이다. 10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이황이 누군가? 조선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인물 아닌가. 그런 뼈대 있는 가문의 자손이 차례를 안 지낸다고? “추석엔 원래 차례를 지내는 게 아니에요. 추석은 성묘가 중심인데, 저희는 묘가 워낙 많아 일부는 (벌초) 대행을 맡겼어요. 그리고 성묘는 양력으로 10월 셋째 주 일요일을 ‘묘사(墓祀)일’로 정해 그때 친지들이 모여요. 그러니 추석은 그냥 평범한 연휴나 다를 게 없죠.” 종갓집답지 않은 이 오붓한 추석은 십수 년 전 이 연구원의 부친이자 이황의 16대 종손인 이근필 옹(86)의 결단에서 시작됐다. “아버지는 무척 열린 분이세요. 예법을 그냥 답습하지 않고 그 의미가 뭔지 계속 고민하셨죠. 집안 어르신들도 변화를 거부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고요.” 퇴계 종가의 제사상은 단출하기로도 유명하다. ‘간소하게 차리라’는 집안 어른들의 가르침 때문이다. 한 때는 1년에 20번 가까이 제사를 지냈지만 현재는 그 횟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만약 집안 어른이 자손들에게 조선시대의 제사 형식을 고수하라고 한다면 그 제사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자손들이 등을 돌려 아예 없어지고 말 거에요. 예(禮)란 언어와 같아서 사람들과 소통하면 살아남지만, 그렇지 못하면 사라지고 말죠. 시대와 정서에 맞는 변화가 필요해요.” 제사가 있을 때는 이 연구원도 부엌에 들어간다. “음식 만들기엔 소질이 없지만 설거지는 제가 해요(웃음).” 할아버지, 할머니는 설거지를 하는 증손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단 한번도 뭐라 한 적이 없었다. “원래 예에는 원형(原型)이 없어요. 처음부터 정해진 형식이 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마음을 따라 하다보니 어떤 시점에 정형화된 것이죠. 우리가 전통이라고 믿는 제사도 조선시대 어느 시점에 정형화된 것인데 그게 원형이라며 따를 필요는 없다고 봐요. 형식보다 중요한 건 예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에요.” 그는 “우린 평소 조상을 너무 잊고 산다”며 “명절만이라도 ‘나’라는 한 사람의 뿌리인 조상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 가족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내도 남편도 힘든 명절은 그만…“과일-송편으로 충분” ▼‘하아! 이 망할 놈의 유교 같으니라고….’ 이 땅 위의 한국인들은 추석 때마다 마음 한 켠으로 조그맣게 이런 말을 읊조렸을지 모른다. 몇 시간 동안 막히는 고속도로를 뚫고 도착한 선산에서 윙윙대는 벌들과 싸워가며 예초기를 밀 때, 언제나 친정은 뒷전으로 하고 시댁부터 찾아가 추석의 하이라이트를 보내야 할 때, 얼굴도 모르는 남편의 조상님을 위해 환갑이 넘어서까지 차례상을 차려야 할 때, 이들은 생각한다. ‘유교 때문에 내가 죽겠다….’ 초등학생인 시동생을 ‘도련님~’하고 불러야 하는 며느리는 마치 몸종이 된 기분이 든다. 추석이 끝난 뒤 분노를 쏟아내는 아내를 보는 남편들도 생각한다. ‘어머니, 왜 저를 유교 문화권에 낳으셨나요….’ 하지만 유교전문가들은 억울하다. 한국인에게 유교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현실이. 사실 조상님들의 ‘본심’은 그게 아닌데 본 뜻을 살리지 못한 잘못된 예법이 중구난방으로 전해져 마치 무조건 따라야 할 형식처럼 돼 버렸단 것이다. 조상을 공경하며 가족 모두 화목한 추석이 되기 위한 우리의 예(禮)는 무엇일까. 동아일보가 창간 98주년을 맞아 진행한 ‘새로 쓰는 우리 예절 신예기(新禮記)’ 시리즈 속에서 답을 찾아봤다. ▽추석 차례, 안 지내도 그만=본래 유교에서는 기제사(고인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만 지낼 뿐 명절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차례상 문화는 명절 날 자손들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죄송해 조상께도 음식을 올리면서 생겼다. 여기에 조선 후기 너도 나도 양반 경쟁을 벌이면서 차례상이 제사상 이상으로 복잡해졌다는 것. 집안 전통상 차례 지내기가 관례라면 과일과 송편으로도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전 부치다 싸우면 바보=명절 기간 최고로 힘든 노동 중 하나는 ‘전 부치기’다. 보통 차례상에 올리기 위해 만드는 경우가 많다. 유교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잘못 전해진 예법의 대표적 예다. “제발 제사상에 전 좀 올리지 마세요. 유교에서는 제사상에 기름 쓰는 음식 안 올려요. 그건 절(사찰)법이라고요. 전 부치다 이혼한다는 데, 조상님은 전 안 드신다니까요.” (방동민 성균관 석전대제보존회 사무국장) ▽제사상 과일 위치, 집집마다 달라요=제사상을 차릴 때 흔히 ‘홍동백서(붉은색 음식은 동쪽, 흰색 음식은 서쪽에 놓음)’라는 말을 쓰지만 이는 정해진 게 아니다. 예서에는 ‘과일’이라고만 나와 있을 뿐 과일의 종류나 놓는 위치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 제사상 차림은 가가례(家家禮·각 집안마다의 예법)에 따르면 된다. ▽장남 혼자 제사 책임? 오해에요=장남만 제사를 지내야 한다거나, 음식은 한 집이 책임져야 한다거나, 여자는 음식만 만들 뿐 제사상에 절을 올려서는 안 된다는 것 모두 잘못 전해진 관념이다. 과거 조상들은 형제마다 각자 음식을 준비해오거나 제사 일부를 나눠 맡는 ‘분할봉사’를 했다. 종갓집에서는 지금도 제사 때 반드시 두 번째 술잔을 맏며느리에게 올리게 해 여성의 존재를 존중한다. ▽명절 때 방문 순서 번갈아 가면 어때요=직장인 신재민 씨(39)는 “결혼 초 명절 때마다 늘 우리집(시댁)부터 먼저 가는 관행 때문에 아내 불만이 많았다”며 “몇 년 전부터 한 해씩 친정과 번갈아 먼저 가기로 했는데 서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양가 중 자녀가 한 명 뿐이거나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 등 좀 더 외로운 부모 쪽을 먼저 찾아 배려하는 것도 좋다. ▽임신부·난임부부 각별히 배려해야=추석 때 만난 친지 가운데 임신부 혹은 난임부부 등 특별한 상황의 가족이 있다면 말과 행동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임신부의 배를 함부로 만지거나 ‘딸이 최고’ 혹은 ‘아들이 최고’ 등 왈가왈부하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다.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자꾸 출산 계획을 묻거나 ‘불임엔 뭐가 좋다더라’ 식의 조언도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명절 때 가족여행, 서로 배려해야=만약 추석 연휴에 부모님·친지 등과 가족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여행 중 서로에게 ‘고맙다’ ‘수고한다’ ‘즐겁다’는 말을 많이 하면 좋다. 부모님에게 아이를 맡기고 젊은 부부만 관광을 다닌다거나 ‘이 코스 누가 짰냐’, ‘음식이 별로다’, ‘애 엄마 수영복이 그게 뭐냐’ 같은 말이 오가면 좋자고 간 여행에서 기분만 상할 수 있다. 나이에 따른 각자의 체력과 취향을 고려해 움직이는 센스도 필요하다. 유교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명절이든 제사든, 조상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은 ‘공경의 마음’과 ‘자손들의 화목’이라는 것이다.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서연구실장은 “조상들은 제사나 차례에서 ‘많이’ 준비하는 것보다 ‘마음과 정성’을 중요하게 여겼다”며 “우물물만 떠놔도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게 진짜다”고 말했다. 놀러가서 차례를 지내든, 해외에서 지내든 이번 추석엔 예의 본질을 잊지 말자. 유교에서 ‘숭조돈종(조상을 숭상하고 일가가 돈독하게 지내는 것)’은 떼어놓을 수 없는 ‘세트메뉴’다. ▼ 독자들의 가장 많은 호응 얻은 ‘신예기’ 시리즈는? ▼동아일보가 창간 98주년을 맞아 연재한 ‘새로 쓰는 우리 예절 신예기(新禮記)’가 17일자로 마무리됐다. 총 30회 연재된 기사의 온라인 조회수를 합하면 3400만 건에 달했다. 댓글도 5만 개 가까이 달려 독자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전통적인 관혼상제를 비롯해 직장과 공공장소 등 일상 전반에 걸친 불합리한 관습과 예법을 바꿔나가자는 신예기 시리즈는 변화한 시대에 적합한 예법을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줬다는 반응이 많았다. 가장 많은 호응을 얻은 △여름철 복장 예절(21회· 조회수 422만 회)을 비롯해 △휴가철 숙박업소 이용 예절 △교사와 학부모 간 카톡 예절 △차례상 등 제사 예법 △친·외가 간 차별적 상조제도 등이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직접적인 제도 개선도 이어졌다. 올 4월 신예기 4회에서 지적한 불평등한 친인척 호칭 문제는 여성가족부의 ‘3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16~2020)’에 반영됐다. 정부는 양성 평등 관점에서 남편의 동생을 ‘도련님’이나 ‘아가씨’로 높여 부르는 반면 아내의 동생은 ‘처남’ ‘처제’로 낮춰 부르는 관행을 고쳐 나갈 방침이다. 또 친가와 외가를 차별하는 기업의 상조 복지 제도 문제를 지적한 신예기 2회 보도 이후 청와대 청원이 이어지면서 일부 기업은 기존의 차별적 상조복지 제도를 바꿨다. 친조부모 상에만 휴가와 조의금·장례용품을 지원하던 롯데제과는 올 4월 외조부모상도 친조부모상과 동일한 혜택을 주도록 제도를 고쳤다. 또 SK이노베이션과 현대중공업도 노사간 임단협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 개선할 방침이다. 본보 독자위원회 위원인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거시적 담론, 속보 경쟁에 치우친 기존 보도와 달리 누구나 불편하게 생각하지만 쉽게 문제 제기하지 못하는 일상의 문제들을 감각적으로 끌어낸 새로운 방식의 기사였다”고 평가했다.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위은지 기자 wizi@donga.com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1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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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폼페이오 “북한과 더디긴 하지만 꾸준한 진전 이뤄와”

    2박 3일간의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막을 내린 가운데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19일(현지 시간) 북한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더디긴 하지만 꾸준한 진전을 만들어왔다”고 평가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이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걸 늘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 곳(북한)에 있는 나의 카운터파트들과 자주 대화한다”며 “그것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고 우리가 조용히 (대화를) 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계는 좋다”며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진전을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거둔 성과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지난 48시간동안 성공적인 대화를 이뤄냈다”며 “우리는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한 요소를 현장에서 검증하는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딛게 됐다. 그것은 좋은 일”라고 말했다. 위은지기자 wizi@donga.com}

    • 201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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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YT “北 ‘우리민족끼리’ 과시… 핵포기 실마리 안 보여

    주요 외신은 남북 정상회담 소식을 상세히 전하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이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질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18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는 “김 위원장이 워싱턴이 확신할 수 있는 수준의 비핵화 행보를 취하는 데 동의할지가 이번 정상회담의 관건”이라고 전했다. NYT는 “만약 문 대통령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갖도록 유도해 내지 못한다면 한반도가 지난해와 같은 긴장 국면으로 퇴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문 대통령이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교착 국면을 풀어내려 한다”며 “김 위원장의 비핵화 진정성에 자신의 평판을 걸었다”고 분석했다.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북-미 비핵화 협상을 주선해온 문 대통령의 신뢰성이 김 위원장의 태도에 따라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매체들은 평양 시민들이 문 대통령을 극진히 환대했지만 실질적인 비핵화 관련 성과와는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이날 군중은 김 위원장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애착과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대한 지지를 과시하기 위해 동원된 것이 분명했다”며 “민족적 동일성은 강조됐지만 핵무기 포기에 대해선 실마리가 잘 보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CNN은 “시각적 화려함을 넘어선 합의가 나올지는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WP는 “지구상에서 가장 억압적인 정권이 연출한 환영 행사였지만, 문 대통령은 일부 시민과 악수하며 진정으로 감동을 받은 듯했다”고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영국 BBC는 문 대통령 부부가 김 위원장 부부를 공항에서 만나 악수하는 모습을 웹사이트 첫 화면에 게재했다. NYT와 WP 등 미국 유력지들은 남북 정상회담 소식을 웹사이트 첫 화면에 비중 있게 배치하지는 않았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같은 날 “이번 평양 정상회담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는 남북 관계 발전을 가속화하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한반도의 대화 국면은 올해 굉장한 진전을 보여 왔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한기재 record@donga.com·위은지 기자}

    • 201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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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性소수자 배려 나선 대만… 도시 곳곳 성중립 화장실

    4일 기자가 찾은 대만 타이베이(臺北)의 사회적 기업가 인큐베이팅 시설 ‘소셜 이노베이션 랩’에는 세 종류의 화장실이 있다. 남성, 여성, 그리고 ‘성별 평등’ 화장실이다. 성별 평등 화장실은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같은 성소수자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게 하려는 배려에서 만들어졌다. 대만에선 101층의 고층빌딩 ‘타이베이101’ 같은 관광 명소뿐 아니라 일부 대학과 고교에서도 이런 성 중립 화장실을 볼 수 있다. 유엔 회원국이 아닌 대만은 지난해 유엔개발계획(UNDP) 공식에 따라 성불평등지수(GII)를 자체 계산한 결과 2015년 기준으로 0.058이 나왔다고 발표했다. 지수가 0에 가까울수록 남녀가 평등하다는 의미다. 같은 해 기준 한국(0.067), 싱가포르(0.067), 일본(0.118)보다 성불평등 정도가 낮았다는 것이다. UNDP가 14일 발표한 ‘2018 GII’에서 아시아 1위를 한 한국(0.063)보다 낮은 수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교문화권에 속하는 대만이 양성평등 수준을 빠르게 올릴 수 있었던 데에는 ‘3분의 1 성별 쿼터제’가 큰 역할을 했다. 대만 정부는 2005년부터 입법원(한국의 국회 격)과 정부 기관 등의 의사결정 과정에 여성을 3분의 1 이상 포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1998년 19.1%였던 입법원 여성 의원 비율이 2018년 현재 38.1%까지 높아졌다. 한국의 여성 의원 비율이 17%, 일본 중의원 여성 비율이 10.1%인 점을 감안하면 높은 수치다. 덴마크(37.4%), 영국(32%·하원)보다도 높다. 대만은 지방의회(34.6%)와 감사기관인 감찰원(48.3%), 공무원 채용 기관인 고시원(42.1%) 등도 쿼터제를 충실히 지키고 있다. 2016년엔 차이잉원(蔡英文)이 첫 여성 총통으로 취임했다. 장완치(張琬琪) 대만여성센터 연구위원은 “차이 총통은 부모 등 가족의 후광을 입지 않은 아시아 최초의 여성 최고 지도자”라며 “성별 쿼터제 시행 후 가장 큰 변화는 ‘정치는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깨진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은 아시아 국가 중 성소수자 이슈 논의가 활발한 편이다. 대만은 11월 있을 지방선거 때 동성혼 합법화와 관련한 국민투표를 함께 치를 예정이다. 판윈(范雲) 대만국립대 사회학과 교수는 “2004년 도입된 양성평등교육법의 영향으로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 동성혼 찬성 여론이 많아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대만의 양성평등교육법은 초중고교에서 매 학기 4시간의 양성평등 관련 수업을 필수로 가르치게 하고 있다. 수업 내용은 학교별로 다를 수 있지만 사회의 성차별과 성소수자 문제 등을 대부분 가르친다. 대만의 대표적인 여성 단체 ‘어웨이크닝 파운데이션’은 성폭력 대처 방안뿐 아니라 성소수자의 정의, 동성결혼 등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브로슈어를 중고교 교사들에게 교육 참고자료로 나눠주고 있다. 고교 재학 시절 양성평등 교육을 받았다는 20대 남성 짱웨이환(臧威環) 씨는 “대만이 가부장적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교육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온 이주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대만국립박물관은 2014년부터 ‘이주민 대사(大使)’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주여성들을 도슨트(작품 해설자) 자원봉사자로 활용해 이들의 모국어로 박물관 투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 10명의 이주여성이 도슨트로 활동 중이다. 이곳에서 4년째 봉사활동 중인 인도네시아 출신 여성 린다 진디아와티 씨(42)는 “인도네시아어로 사람의 눈을 뜻하는 ‘마타’가 대만 토착어로도 같은 뜻이라고 설명하면 관광객들은 마치 고향 박물관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국립고궁박물관 등 대만 내 다른 박물관들도 이 프로그램 운영과 관련해 조언을 구할 예정이다. 대만이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계도 있다. ‘3분의 1 성별 쿼터제’는 권고일 뿐 의무가 아니어서 기업 등 민간 부문에서는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성인 차이 총통이 이끄는 현 내각조차 여성 비율이 20%에 미치지 못한다. 가부장제가 뿌리 깊은 사회여서 여전히 가정 내에 ‘가사와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이 존재하는 것도 현실이다. 대만 교육기관에서 일하는 40대 여성 훙싱루(洪幸如) 씨는 “대만 월급 수준(약 3만 대만달러·약 109만 원)에 비해 베이비시터(약 2만 대만달러·약 73만 원) 등 육아 비용이 비싸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결국 여성이 일을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만 정부는 ‘가족 친화적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공 보육 시설을 확충하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관련 정책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 대만 내 이주여성 돕는 단체들 ▼“처음엔 언어 때문에 고생했어요. 하지만 방문객들에게 모국의 문화와 연관 지어 설명할 수 있어 기쁩니다.” 5일 타이베이 대만국립박물관에서 만난 린다 친디아와티 씨(42)는 10년 전 대만에 온 인도네시아 출신 결혼이주여성이다. 4년째 그는 주말마다 인도네시아 전통 의상 ‘케바야’를 입고 이곳을 찾는 인도네시아 관광객들에게 모국어로 박물관 소장 유물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박물관 교육을 통해 대만 역사와 문화를 배우면서 대만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만에는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이주 여성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결혼이주여성이거나 가정부, 간병인으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만 이민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대만 내 동남아 출신 결혼이주여성은 약 16만 명, 여성 이주노동자는 25만 명가량이다. 이들을 위해 대만의 여러 단체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만국립박물관은 2014년부터 ‘이주민 대사(大使)’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이주여성들을 도슨트(작품 해설자) 자원봉사자로 활용해 이들의 모국어로 박물관 투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친디아와티 씨를 포함해 10명의 이주여성이 이곳에서 도슨트로 활동 중이다. 친디아와티 씨는 “인도네시아어로 사람의 눈을 뜻하는 ‘마타’가 대만 토착어에서도 같은 뜻이라고 설명해 주면 관광객들은 마치 고향 박물관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국립고궁박물관 등 대만 내 다른 박물관들도 이 프로그램 운영과 관련해 자문을 구할 예정이다. 이주여성의 인권 보장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여성단체들도 있다. 대만 내 성매매·가정폭력 피해 여성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비정부기구(NGO) ‘가든 오브 호프 파운데이션’은 2012년부터 인신매매나 성폭력 피해 이주여성을 돕고 있다. 피해 유형에 따라 법률적 지원을 하거나 쉼터를 제공한다. 지난해 여성 이주노동자 4276명이 이 단체의 도움을 받았다. 2000년대부터 여성 이주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주장해 온 대만의 대표적인 여성인권단체 ‘어웨이크닝 파운데이션’은 최근 가정부, 간병인 등 가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친츠팡 어웨이크닝 파운데이션 소장은 “가정 내에서 근무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며 “이로 인해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 심지어 성폭력에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타이베이=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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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北보다 南비핵화에 더 관심있는듯”

    “지금 김정은은 북한의 비핵화보다 남한의 비핵화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한반도 정세,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한국과 영국 간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처음 방한한 사이먼 맥도널드 영국 외교차관(57)은 13일 서울 중구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의 현 상황을 이렇게 평가했다. 영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구성원이기도 한 맥도널드 차관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핵개발을 멈췄다고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북한이 이를 입증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이 자신들이 해야 할 일(비핵화 조치)을 제대로 안 하고 있다는 취지다. 그는 18일부터 사흘간 열릴 예정인 제3차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영국은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한다”며 “개입 정책은 (비핵화 논의에서) 중요한 요소이며 이번 회담도 바로 그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과의 경험을 토대로 볼 때 압박정책 역시 중요하다. 개입과 압박이 대북정책에 혼합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가 (북한이 원하는 대로) 완화되려면 북한의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그들(북한)의 좋은 말들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에 대해 유엔 안보리 내에서 합의된 사항은 없다”며 “안보리 차원에서 북한과 함께 이에 대해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비핵화 이행 과정에서 ‘영국의 3대 역할’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의 논의 진행 △평양 주재 영국대사관을 통한 정보 제공 △보유한 비핵화 기술 제공 등을 꼽았다. 특히 그는 “우리는 (비핵화 관련) 전문 지식을 한국에 제공했다”고 말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실제로 영국이 어떤 구체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대신 그는 “우리는 다양한 당사자에 제의해놓은 것이 있다”며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받아들여졌는지, 또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 협상을 이끌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상 스타일과 관련해서 그는 “협상 과정이 (최고결정권자인) 대통령에게 매우 의존적인 새로운 협상 스타일”이라며 “이것이 효과적인지에 대해서 지금 평가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 2018-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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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노스 “北 ICBM 이동식 발사차량 시설 해체”

    북한이 지난해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동식 발사차량(TEL) 관련 구조물이 해체됐다고 12일 미국 스팀슨센터 산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가 보도했다. 이는 북한이 미국 측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요청한 가운데 나온 움직임이어서 주목된다. 38노스가 이달 1일 촬영한 위성사진에 따르면 평안남도 평성시의 ‘3월16일 자동차공장’ 내부에 설치되어 있던 계단 모양의 임시 시설 골조가 강화 패드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제거됐다. 지난달 8일 촬영된 위성사진에서 이 시설의 지붕이 제거된 것이 포착된 이후 약 한 달 만이다. 38노스 조지프 버뮤데스 연구원에 따르면 이 시설은 지난해 11월 28일 북한이 화성-15형을 발사하는 데 사용한 미사일 이동식 발사차량을 개조하고 테스트하는 데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설은 지난해 10월 중순 건설됐다. 이 시설에서는 미사일 발사 이후 올해 초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4∼6월 구조 변경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이 수차례 포착됐다. 그러다 지난달 들어 시설 해체 작업에 돌입한 것은 북한이 미국에 정상회담을 요청하기 전 ‘작은 성의’를 보인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 2018-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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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 속옷 - 30년 양복… 기부품일까요 폐품일까요

    ■ 기증하는 중고품은 친한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세요기부는 사랑입니다. 그 형태가 돈이든, 물건이든, 재능이든, 내가 가진 걸 나눠 남을 도우려는 마음은 아름답죠. 하지만 제가 일하는 곳에서 마주하는 기부의 현실은 종종 실망스럽습니다. 어디서 일하냐고요? 전 기부물품으로 들어온 재활용품을 분류하는 작업장에서 일해요. 쓸 수 있는 물건을 남과 나누고, 재활용으로 환경도 보호한다는 점에서 물품 기부는 계속 늘어납니다. 문제는 들어오는 물건 중 반 이상은 사실상 ‘쓰레기’에 가깝다는 점이에요. 오늘도 입던 속옷을 빨지도 않고 보낸 분부터 구멍 난 양말, 색 바랜 수건, 학원 이름이 적힌 태권도 도복을 보낸 분까지 있네요. 도시락통을 여니 썩은 음식물이 들어 있고 텀블러엔 음료 자국이 그대로고요. 분류작업을 하다 기증된 옷 속에 딸려온 커터 칼에 손이 베인 적도 있어요. 이 정도면 기부물품이라기보다는 폐품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중고품을 기증할 때 뭘 보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내 친한 친구에게 주는 물건’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기부의 예절이 자리 잡으면 우리도 선진국처럼 재활용 문화가 발달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 “어려운 아이 도왔다” 사진까지 공개하는 ‘후원 갑질’ 이제 그만 기부물품이 담긴 상자를 여니 30년 전에나 팔렸을 법한 펑퍼짐한 은갈치색 정장 한 벌이 나타났다. 목 부분에 색조 화장품이 묻은 흰색 맨투맨 티셔츠, 소변 자국 때문인지 사타구니 부분이 노랗게 변한 남색바지도 나왔다. 아…. 이걸 어떻게 다시 쓸 수 있겠나. 안타깝게도 쓰레기로 분류되는 기증품만 자꾸 쌓여갔다. 지난달 30일 본보 기자가 서울 성동구의 재사용작업장 의류분류장을 찾아 직접 기증 의류를 분류해봤다. 10년 전에 비해 국내 기부문화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지만 그 질에 있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날 들어온 의류는 2만 점 이상. 하지만 10점 중 7점 이상이 ‘폐기물’로 실려 나갔다. 물건 재사용을 통해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아름다운 가게’에는 지난해 2200만 점의 중고기부물품이 들어왔다. 3년 전에 비해 20%가량 늘어난 수치다. 물건을 보내온 기증자 수는 더욱 빠르게 늘어 지난해 기준 46만 명을 넘어섰다. 3년 전에 대비 2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물품을 기부하면 기부영수증을 받을 수 있고 소득공제가 가능하다 보니 폭발적으로 기증이 늘었단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쓸모없는 물건이 태반이다 보니 폐기율은 3년 전 45∼55%에서 최근 70%까지 늘어난 상태다. 권태경 아름다운가게 되살림팀 간사는 “한 번만 씻거나 세탁해서 보냈으면 쓸 수 있는 물건들이 참 많은데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많은 물건이 버려지는 형편”이라고 아쉬워했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헌옷 수거함’도 최근 쓰레기통처럼 전락해 없애는 추세”라고 말했다. 배려가 부족한 기부는 물품 기부에서만 관찰되는 게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금전이나 재능을 기부할 때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무심한 경우가 많다. 올해 초 학교에서 끝내 울음을 터뜨린 초등학생 A 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A 군을 후원하는 지역의 한 독지가가 지역 인터넷에 김 군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A 군 친구들 사이에 그가 ‘후원 아동’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독지가는 김 군이 조손 가정에 이르게 된 개인사는 물론이고 얼굴과 학교, 이름까지 그대로 노출했다. A 군을 담당하는 복지사는 “아이들은 감수성이 예민해 친구들에게 ‘후원 아동’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후원자들이 자신의 후원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이런 걸 노출하면 정말 난감하다”고 말했다. ‘나는 기부자’라는 기분에 도취돼 자칫 기부를 받는 이들의 자존감에 오히려 상처를 주는, 이른바 ‘기부 갑질’을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부자뿐 아니라 기부를 받는 자선단체도 올바른 기부문화를 위한 ‘기부예절’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 소위 ‘빈곤 포르노’라 부르는, 빈곤이나 질병으로 곤경에 처한 이들의 상황을 자극적으로 등장시켜 경쟁적으로 후원금을 얻어내는 광고 방식이 대표적이다. 직장인 지모 씨(36)는 “길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을 가로막고 ‘스티커 붙여주세요’를 외치며 기부단체 홍보를 하는 것도 불편한 기부문화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한상욱 밀알복지재단 굿윌본부장은 “기부 물품 분류·판매를 발달장애인들이 담당하기 때문에 기부 그 자체가 장애인들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셈”이라며 “기부자들이 직접 매장에 와 현장을 보면 기쁨도 커지고 더 좋은 기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위은지 wizi@donga.com·이지훈 기자  ○ 당신이 제안하는 이 시대의 ‘신예기’는 무엇인가요. ‘newmanner@donga.com’이나 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이 느낀 불합리한 예법을 제보해 주세요. 카카오톡에서는 상단의 돋보기 표시를 클릭한 뒤 ‘동아일보’를 검색, 친구 추가하면 일대일 채팅창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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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멍난 양말, 빨지않은 속옷도 기부…친구에게 줄 수 있나요?

    기부는 사랑입니다. 그 형태가 돈이든, 물건이든, 재능이든, 내가 가진 걸 나눠 남을 도우려는 마음은 아름답죠. 하지만 제가 일하는 곳에서 마주하는 기부의 현실은 종종 실망스럽습니다. 어디서 일하냐고요? 전 기부물품으로 들어온 재활용품을 분류하는 작업장에서 일해요. 쓸 수 있는 물건을 남과 나누고, 재활용으로 환경도 보호한단 점에서 물품 기부는 계속 늘어납니다. 문제는 들어오는 물건 중 반 이상은 사실상 ‘쓰레기’에 가깝다는 점이에요. 오늘도 입던 속옷을 빨지도 않고 보낸 분부터 구멍 난 양말, 색 바랜 수건, 학원 이름이 적힌 태권도 도복을 보낸 분까지 있네요. 도시락통을 여니 썩은 음식물이 들어있고 텀블러엔 음료 자국이 그대로고요. 분류작업을 하다 기증된 옷 속에 딸려온 커터 칼에 손이 베인 적도 있어요. 이 정도면 기부물품이라기보다는 폐품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중고품을 기증할 때 뭘 보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내 친한 친구에게 주는 물건’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기부의 예절이 자리 잡으면 우리도 선진국처럼 재활용 문화가 발달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기부물품이 담긴 상자를 여니 30년 전에나 팔렸을 법한 펑퍼짐한 은갈치색 정장 한 벌이 나타났다. 목 부분에 색조 화장품이 묻은 흰색 맨투맨 티셔츠, 소변자국 때문인지 사타구니 부분이 노랗게 변한 남색바지도 나왔다. 아…. 이걸 어떻게 다시 쓸수 있겠나. 안타깝게도 쓰레기로 분류되는 기증품만 자꾸 쌓여갔다. 지난달 30일 본보 기자가 서울 성동구의 재사용작업장 의류분류장을 찾아 직접 기증 의류를 분류해봤다. 10년 전에 비해 국내 기부문화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지만 그 질에 있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날 들어온 의류는 약 2만 점 이상. 하지만 10점 중 7점 이상이 ‘폐기물’로 실려 나갔다. 물건 재사용을 통해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아름다운 가게’에는 지난해 2200만점의 중고기부물품이 들어왔다. 3년 전에 비해 20%가량 늘어난 수치다. 물건을 보내온 기증자 수는 더욱 빠르게 늘어 지난해 기준 46만 명을 넘어섰다. 3년 전에 대비 2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물품을 기부하면 기부영수증을 받을 수 있고 소득공제가 가능하다보니 폭발적으로 기증이 늘었단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쓸모없는 물건이 태반이다 보니 폐기율은 3년 전 45~55%에서 최근 70%까지 늘어난 상태다. 권태경 아름다운가게 되살림팀 간사는 “한 번만 씻거나 세탁해서 보냈으면 쓸 수 있는 물건들이 참 많은데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많은 물건이 버려지는 형편”이라고 아쉬워했다. 서울 한 구청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헌옷 수거함’도 최근 쓰레기통처럼 전락해 없애는 추세”라고 말했다. 배려가 부족한 기부는 물품 기부에서만 관찰되는 게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금전이나 재능을 기부할 때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무심한 경우가 많다. 올 초 학교에서 끝내 울음을 터뜨린 초등학생 A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A군을 후원하는 지역의 한 독지가가 지역 인터넷에 김 군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A군 친구들 사이에 그가 ‘후원 아동’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독지가는 김 군이 조손 가정에 이르게 된 개인사는 물론 얼굴과 학교, 이름까지 그대로 노출했다. A군을 담당하는 복지사는 “아이들은 감수성이 예민해 친구들에게 ‘후원 아동’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후원자들이 자신의 후원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이런 걸 노출하면 정말 난감하다”고 말했다. ‘나는 기부자’라는 기분에 도취돼 자칫 기부를 받는 이들의 자존감에 오히려 상처를 주는, 이른바 ‘기부 갑질’을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부자 뿐 아니라 기부를 받는 자선단체도 올바른 기부문화를 위한 ‘기부예절’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 소위 ‘빈곤 포르노’라 부르는, 빈곤이나 질병으로 곤경에 처한 이들의 상황을 자극적으로 등장시켜 경쟁적으로 후원금을 얻어내는 광고방식이 대표적이다. 직장인 지모(36)씨는 “길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을 가로막고 ‘스티커 붙여주세요’를 외치며 기부단체 홍보를 하는 것도 불편한 기부문화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아란 아름다운재단 나눔사업국장은 “선진국 수준으로 기부문화가 끌어올려지려면 기부를 하는 이나 받는 이 모두 기부의 예절을 고민해야 한다”며 “나의 기부가 어떻게 세상을 바꿔나갈지 고민하고 소통하는 것까지가 기부의 일부”라고 말했다. 한상욱 밀알복지재단 굿윌본부장은 “기부 물품 분류·판매를 발달장애인들이 담당하기 때문에 기부 그 자체가 장애인들의 일자리창출에 기여하는 셈”이라며 “기부자들이 직접 매장에 와 현장을 보면 기쁨도 커지고 더 좋은 기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 2018-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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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항서 감독도 당했다…축구팬들 감쪽같이 속인 SNS ‘가짜 계정’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도 당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유명 인사를 사칭한 ‘가짜 계정’이 기승을 부리면서 이름을 도용당한 인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박 감독은 29일(현지 시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남자 축구 4강전에서 한국에 패배하자 페이스북 ‘가짜 계정’이 박 감독 명의로 사과문을 올리는 해프닝을 겪었다. 이 계정은 경기 직후 “오늘 경기를 이기지 못한 것에 대해 모든 베트남 팬들에게 사과한다. 선수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싸웠다”며 “이 경기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영어로 사과문을 썼다. 이 글을 읽은 베트남 축구팬 수천 명이 박 감독을 응원하는 댓글을 달았다. 31일 현재 8000개 안팎의 댓글이 달렸다. SNS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박 감독은 가짜 사과문이 게시됐다는 소식을 듣고 피해를 막기 위해 페이스북에 가짜 계정 삭제를 요청했다. 13만6000여 명이 팔로우하고 있는 이 계정은 지난해 10월 박 감독이 베트남 축구팀을 맡은 뒤부터 꾸준히 글을 올리며 축구 팬들을 감쪽같이 속였다. 31일 현재까지 계정은 삭제되지 않았다. 그리스 출신의 원로 영화감독 코스타 가브라스는 SNS상에 퍼진 가짜 뉴스 때문에 자신의 부고 기사를 접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AP통신은 30일 그리스 문화장관 트위터 계정을 인용해 “가브라스 감독이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계정이 이탈리아 기자가 SNS의 취약성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가짜로 밝혀지자 AP는 즉각 기사를 취소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도 최근 자신을 사칭한 트위터 계정이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에 대해 조언하는 트윗을 올리는 일을 경험했다. 버핏 회장은 30일 CNBC방송에 “만약 사칭자가 좋은 조언을 올린다면 내가 그 공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며 쿨한 반응을 보였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 2018-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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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의 결함 인정했던 남자 위해 울고 있다” 그레이엄, 눈물의 매케인 추모사

    “그는 실패를 많이 했지만, 절대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제가 지금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그는 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28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상원 회의장.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이 서있던 연설대의 오른쪽 책상은 검은 벨벳 천으로 덮여있었다. 주인을 잃은 책상 위엔 흰색 장미가 꽂힌 화병이 놓여 있었다. 그레이엄 의원은 막역한 동료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생전에 앉아 토론을 벌였던 그 책상 옆에 서서 ‘눈물의 추도사’를 읽어 내려갔다. “(추도사에 대해) 고민했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추도사를) 시작하려 합니다.” 잠긴 목소리로 어렵게 말문을 뗀 그레이엄 의원은 “전혀 즐거운 기분이 아니지만 재밌게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며 매케인 의원이 했던 ‘터무니없는 농담’을 소개했다. 그는 자신이 차고 온 해군 사관학교 넥타이를 가리키며 “생전에 매케인은 ‘린지, 당신이 나와 같이 해군 사관학교를 다녔다면 내가 뒤에서 5등이 아니라 6등이었을 것’이라고 농담했다”며 “매케인은 좋아하는 상대에게 그만큼 창피를 주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매케인 의원과 함께 그가 5년 반 동안 수감되어 있었던 베트남 하노이 수용소를 찾았던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수용소 벽에는 수감자들이 배구를 하고, 선글라스를 쓰고 햇빛 아래 앉아있는 사진들이 붙어있었다”며 “나는 ‘존, 그때 그렇게 나쁘진 않았나 보네요’라고 농담했더니 매케인은 ‘나는 그렇게 기억하지 않는다’고 웃으며 대답했다”고 전했다. 추모사 중 눈물을 보인 그는 “나는 완벽했던 남자를 위해 우는 것이 아니라 고결했으며, 항상 자신의 결함을 기꺼이 인정했던 한 남자를 위해 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케인의 삶에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망쳤다’고 말해도 괜찮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존은 우리에게 ‘지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며 2008년 매케인 의원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 오바마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를 승복하며 했던 대선날 밤 연설을 언급했다. 그는 “그날 밤 ‘오바마 후보가 이제 나의 대통령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상처를 받은 그 순간에 국가를 치유했다”며 “나 자신이 다치는 것보다 대의가 더 훌륭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덧붙였다. 그레이엄 의원은 “당분간 외로운 여행을 하게 될 것 같다”며 “존이 떠나 생긴 공백은 내가 채울 수 있는 것 이상”이라며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이어 “당신이 조국을 돕고 싶다면 존 매케인처럼 행동하라”며 “우리 마음속엔 모두들 ‘작은 존 매케인’이 살고 있고, 작은 존 매케인들이 모여 조국을 더 훌륭한 나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고 추모사를 마무리했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 2018-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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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매케인, 美 의회의사당 안치…의원직 승계는 누가?

    25일(현지 시간) 세상을 떠난 미국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거물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애리조나)의 유해가 31일 미국 의회의사당 중앙에 있는 로툰다 홀에 안치됐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26일 트위터를 통해 “폴 라이언 공화당 하원의장 및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와 논의한 결과, 매케인 의원의 유해를 의회의사당 로툰다 홀에 안치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알리게 되어 영광이다”라고 밝혔다. 로툰다 홀에 유해가 안치되는 것은 미국에서 매우 영예로운 일로 꼽힌다. 오직 전직 대통령 그리고 군 사령관, 상·하원 의원 중 의회 차원의 결의나 의회 지도자들의 동의를 얻은 사람만이 이 같은 영예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1852년 헨리 클레이 전 하원의장이 처음으로 로툰다 홀에 안치된 이후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등 지금까지 31명의 미국인이 이 곳에 안치됐다. 올 2월 별세한 ‘20세기 최고의 복음 전도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가장 최근 사례다. 제2차 세계전쟁과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한 신원을 알 수 없는 군인들의 추도식도 이 곳에서 열린 적 있다. 매케인 의원이 떠난 뒤 그의 빈 자리를 채울 상원의원 후임 지명 문제도 주목을 받고 있다.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인물은 매케인 의원의 부인 신디 매케인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덕 듀시 애리조나 주지사가 5월 매케인 부부를 방문한 적이 있어 이러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듀시 주지사는 애리조나 주 법에 따라 공화당원 중 매케인 의원의 후임을 지명할 권한을 갖고 있다. 2016년 당선된 매케인 의원의 잔여 임기가 4년 남은 가운데 듀시 주지사가 임명한 후임 인사가 2년간 의원직을 수행하고, 2020년 선거에서 당선된 자가 2022년까지 남은 2년 임기를 채운다. 한편 26일 워싱턴포스트(WP)는 매케인 의원과 잦은 마찰이 있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의 삶을 기리는 공식 성명을 내자는 백악관 참모들의 건의를 거절했다고 전했다. 익명의 소식통에 따르면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과 존 켈리 비서실장 등 참모들은 매케인 의원의 군 복무와 의정 활동을 기리고 그를 ‘영웅’으로 칭하는 백악관 성명서를 미리 준비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서 대신 간단한 트윗을 쓰고 싶다며 이를 반려했다고 WP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트위터를 통해 “매케인 의원의 가족에게 가장 깊은 연민과 존경을 전한다. 우리의 마음과 기도가 함께할 것”이라는 두 문장의 애도 메시지만 남겼다. 위은지기자 wizi@donga.com}

    • 201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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