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부장

동아일보 문화부

구독 3

추천

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취재분야

2025-11-07~2025-12-07
칼럼64%
인사일반13%
미국/북미7%
국제일반7%
국제경제3%
국제인물3%
여행3%
  • 100년만에 돌아온 ‘석가삼존도’

    야음을 틈타 강탈당했을 불화는 장황(裝潢·표구)조차 남질 않았다. 서둘러 배접(褙接)으로 끝자락을 다듬었으나 화기(畵記)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입술을 앙다문 석가 존안도 덧칠 흔적이 역력했다. 그래도 이리 돌아온 게 어딘가. 일제강점기 해외로 빼돌린 것으로 추정되는 18세기 조선불화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7일 “미국 버지니아 주 허미티지박물관이 소장하던 ‘석가삼존도(釋迦三尊圖)’를 환수했다”고 밝혔다. 석가모니 좌우로 보현과 문수 양 보살이 시립한 불화는 가로세로 318.5×315cm 크기로 큰 사찰의 대웅전 후불탱화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승희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장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반 활약한 화승 의균(義均)의 화풍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기존에 이런 대형 작품이 없진 않았으나 고려·조선불화에서 처음 발견된 독특한 도상(圖像)이 눈길을 끈다. 석가 정면에 그 십대제자(十大弟子)의 대표 격인 마하가섭(摩訶迦葉)과 아난타(阿難陀)가 앉아 있다. 흔히 가섭·아난존자라 불리는 둘은 불화에 즐겨 등장하나 이리 중앙에 배석한 경우는 없다. 게다가 미소를 머금고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조선 풍속화의 잔향이 짙다. 안 이사장은 “중국 일본불화에서도 이런 해학적 형태를 본 적이 없다”며 “보물 이상 지정문화재가 될 자격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석가삼존도에 화기가 없는 까닭에는 이 불화가 겪은 모진 세월이 배어 있다. 1910년대 누군가 사찰에서 훔치며 출처를 감추려 뜯어버린 것. 명확한 주인을 모르는 불화는 손쉽게 일본으로 밀반출됐고, 이를 사들인 고미술거래상 야마나카상회(山中商會)가 미국으로 가져갔다. 이리저리 떠돌던 불화는 1944년 결국 허미티지박물관에 팔렸다. 전시장소가 협소한 박물관은 오랫동안 불화를 둘둘 말아 수장고 천정에 매달아 놓았다. 해외 박물관 소장 문화재를 ‘기부와 기증’ 방식으로 되찾은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난해 5월 버지니아박물관협회가 공개한 ‘위험에 처한 문화재 10선’에서 불화를 발견한 재단은 매매를 꺼리는 박물관을 공들여 설득했다. 수장고에 묵히지 말고 국내에서 제대로 전시 대접하자고 권했다. 게다가 후원업체인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가 박물관에 기부금을 내고, 박물관은 별도로 한국에 기증하는 모양새로 명분도 살려줬다. 최영창 활용홍보실장은 “앞으로 운영자금이 취약한 해외 박물관들과 적극 협의해 더 많은 문화재를 환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집모양 가야 家形토기 출토

    4세기 중엽 가야 유물로 추정되는 집 모양의 가형토기(家形土器·사진)가 경남 창원시에서 출토됐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야 가형토기 가운데는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로 평가된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원장 신용민)은 6일 “창원시 석동∼소사 도로 개설 구간에 있는 덧널무덤(木槨墓)에서 맞배지붕에 누각 형태를 지닌 토기 1점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정면과 측면 2칸씩으로 이뤄진 토기는 네 면 모두 섬세하게 묘사됐고 앞쪽에는 출입문도 새겨져 있다. 용도는 물이나 술을 담는 주전자로 짐작되며 약 350mL를 담을 수 있다. 이해수 책임연구원은 “토기를 구울 때 하부 기둥이 틀어졌으나 보존 상태가 양호해 당시 집 모양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봄 되면 새롬-희망이와 같이 인사할게요”

    6일 신년 기자회견은 지난해 3월 4일 여야 정치권에 정부조직법 개정을 촉구하는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던 청와대 춘추관 2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렸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여야 정치권을 비판하며 웃음기란 찾아볼 수 없는 굳은 표정으로 담화문만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80여 분간 이어진 기자회견 초반에는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인 탓에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중반을 넘어가며 점차 여유로워졌고 손동작과 농담도 곁들여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짙은 청록색 재킷과는 달리 이날 화사한 연분홍색 재킷을 입었다. 립스틱도 재킷 색상에 맞춰 분홍색이었다. ‘불통’ 이미지를 벗고 부드러운 여성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패션 선택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박 대통령은 이날 한 기자가 퇴근 후 관저 생활을 물으며 ‘국민들이 다 아는 보고서 본다는 것 외에 다른 말씀을 해 달라’고 말하자 “다른 이야기를 하라고 하는데 실제로 보고서 보는 시간이 제일 많다”며 웃음을 띠었다. 박 대통령은 “제가 하는 방식을 모두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취미 따로 있고 국정 따로 있고 이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며 “모든 열정을 담아 자나 깨나 국정 생각을 하고 거기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는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할 때 서울 삼성동 주민들이 선물한 진도개를 언급하며 “새롬이와 희망이가 제가 나갈 때와 다시 들어올 때 꼬리를 흔들며 반겨준다”며 “따뜻한 봄이 되면 같이 나와서 기자 여러분에게 인사하는 시간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동정민 ditto@donga.com·정양환 기자}

    • 2014-01-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자본과 국가의 통제 벗어난 대안사회

    “다중이 자치 기술을 배우고 영속적인 민주적 사회조직 형태들을 발명하는 과정이 바로 ‘군주 되기’(Becoming-Prince)이다. 다중의 민주주의는 오로지 우리 모두가 공통적인 것을 공유하고 공통적인 것에 참여하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고 실현 가능하다.” 자, 뭔 말인지 알아먹겠는가. 매를 먼저 맞자면, 기자는 이해는커녕 단어조차 한글인가 싶다.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안토니오 네그리와 미국 듀크대 교수인 마이클 하트. 두 저자 이름이야 들어봤지만 이들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여기서 편을 갈라야 한다. ‘제국’(2001년 한국 출간) ‘다중’(2008년)과 같은 전작을 접해 본 독자인가 아닌가. 전자라면 열광하겠으나, 후자라면 얼른 책을 덮으시라. 그래도 아쉬우니 위의 문장이 무슨 얘긴지나 알아보자. 저자들은 21세기 들어 새로운 세계질서가 찾아왔다고 봤다. 바로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전(全) 지구적 권력인 ‘제국(Empire)’이다. 자본이 모든 것을 잠식하는 현상을 일컫는다고 보면 되겠다. 거대한 제국화는 다수의 세계시민을 이에 대항하는 ‘다중(Multitude)’이란 세력으로 변모시킨다. 이런 다중이 자본의 지배와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대안적 사회를 제안하는 방식과 상태를 ‘공통체(Commonwealth)’라 정의한다. 공동체가 아니라 굳이 공통체로 번역한 것은 민영화나 국영화와 달리 자본과 국가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함의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왠지 어디서 들어봄직한 구도 아닌가. 맞다.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상당히 흡사하다. 실제로 이에 뿌리를 둔 저자들의 사상을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공산당선언 2.0’이라 평했다. 슬라보이 지제크도 “현재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자본주의는 파산한 상태다. 두 학자는 새롭게 도래할 세상을 예견했다”고 극찬했다.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릴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념과 상관없이, 국가도 자본도 아닌 제3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만큼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다만 너무 선언적인 데다 해외에선 2008년에 나온 책이라 다소 타이밍이 안 맞는 대목도 보인다. 이 책의 후속작인 ‘선언’은 이미 지난해 국내에 출간됐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조선왕릉 숨겨진 이야기들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에 있는 동구릉(사적 제193호)에는 9능 17위, 즉 9명의 왕·왕비와 17명의 후비가 안장돼 있다. 이 가운데 숭릉(崇陵)은 조선 제18대 왕 현종(1641∼1674)과 비 명성왕후(1642∼1683)의 능을 일컫는다. 특히 이곳 정자각은 조선 왕릉에서 유일하게 팔작지붕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2011년 보물 제1742호로 지정됐다. 능침 주위 유물도 빼어나다. 문석인(文石人)은 온화한 미소를 머금었고, 무석인(武石人)은 절도가 넘친다. 망주석(望柱石·무덤 장식 돌기둥)과 석양, 장명등(長明燈)도 훌륭하다. 그런데 이 석물들 상당수가 ‘재활용’된 것이란 사실이 최근에 밝혀졌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난달 발간한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 4, 5권에 따르면 숙종은 1674년 숭릉을 조성하며 어머니 명성왕후의 뜻을 받들어 효종(1619∼1659)의 옛 영릉(寧陵) 터에 있던 석물을 재사용하도록 명했다. 원래 영릉은 동구릉 내 건원릉(健元陵·태조의 능) 서쪽에 있다가 1673년 현재의 경기 여주시로 옮겨진 상태였다. 당시는 천릉한 영릉에 다시 효종의 비 인선왕후(1618∼1674) 능을 조성한 지 두 달도 채 안 된 시점. 재활용은 ‘백성들이 너무 곤궁해지니 재정 지출을 줄인다’는 의도였다. 옛 영릉에 썼던 석물은 이미 땅 속에 파묻힌 상태였으나 이를 꺼내 개보수해서 사용했다. 재활용 선례가 생기자 이후 다른 여러 왕릉도 이를 따랐다. 1731년 장릉(長陵)을 옮기거나 1856년 인릉(仁陵)과 1864년 예릉(睿陵)을 조성할 때도 옛 석물을 사용했다. 연구소의 황정연 미술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는 “왕릉 규정은 조정에서 엄청난 논란이 벌어지는 대상이라 쉽게 바꿀 수 없다”며 “백성을 걱정한 왕실의 마음이 석물 재활용이란 독특한 전통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동구릉 안에 있는 목릉(穆陵)은 독특한 배치로 눈길을 끈다. 목릉은 조선 왕릉 가운데 유일한 동원삼강릉(同原三岡陵).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이웃한 세 언덕에 왕릉이 만들어졌다. 선조(1552∼1608)와 정비 의인왕후(1555∼1600), 계비 인목왕후(1584∼1632)가 함께 모셔졌다. 마찬가지로 선례가 없던 왕과 왕비 2명의 능이 한 곳에 조성된 까닭이 뭘까. 한마디로 선조가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왕릉 옆에 어느 왕비 혹은 후비가 안장되는가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다. 당대 세력의 역학관계가 작용하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선조는 쉰 살 나이의 자신에게 열여덟 나이로 시집온 인목왕후를 아끼는 마음에 교묘한 정치력으로 이를 관철시켰다. 목릉은 역사적 상징성도 크다. 의인왕후가 승하했을 때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은 뒤여서 국가 운영에 여력이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이전 상·장례를 참고할 의궤를 전부 소실한 상태였다. 이 때문에 당시 실무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1601년 편찬한 ‘(의인왕후)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는 능 조성 의식 절차를 담은 현존 의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여주시로 천릉한 효종과 인선왕후를 모신 영릉도 독특한 배치로는 빠지지 않는다. 조선 유일의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이다. 양옆이 아니라 위아래로 배치됐단 뜻이다. 황 학예사는 “효종 옆자리가 풍수지리적으로 혈(穴)이 너무 나빠 격론 끝에 이런 독특한 구조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는 2006년 시작돼 2009년 첫 보고서를 내놓았다. 2015년까지 8권으로 마무리할 예정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4-01-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입시, 목숨 걸고 공부해도…

    대학입시. 이쯤 되면 포기해야 되는 거 아닌가도 싶다. 수십 년째 폐해를 부르짖었지만 그다지 바뀐 게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아이들은 경주마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해도 늦단 소리가 나온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눈에 띄게 벌어졌다. 입시생을 둔 가족의 고통이 거론되면 이젠 무뎌지다 못해 그러려니 모른 척하게 된다. 허나 눈 감는다고 세상이 바뀌랴. ‘경쟁에서 밀리면 끝이다’라는 강박관념이 무슨 사회적 정의인 것처럼 판을 친다. 심지어 이런 교육을 벗어나자는 취지인 대안학교마저 입시 준비에 소홀하면 학부모의 지탄을 받는단다. 웬만했으면 대형 사교육업체 회장이 “목숨 걸고 공부해도 소용없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현실”이라고 개탄했을까. 하지만 저자는 그럴수록 더 속살을 파헤쳐야 한다고 외친다. ‘망국병’이니 ‘신도 못 고친다’는 소리만 할 게 아니라 실제 입시가족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농업농촌사회 분야 민간연구소인 ‘지역아카데미’에서 이사로 활동하는 저자는 프랑스 파리5대학에서 가족사회학을 전공한 학자.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자녀가 있는 ‘중산층’ 스물네 가족에 현미경을 들이댄 심층 인터뷰를 벌였다. 이 책에서 설정한 중산층이란 개념은 의미심장하다. 절반가량이 ‘노원구의 대치동’이라 불리는 서울 중계동과 하계동에 사는 가족들. 나머지는 강남과 서울 근교가 뒤섞여 있다. 저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크게 돈 때문에 포기해야 할 일이 없을 정도”의 경제적 능력과 교육적 열정을 가진 가족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중산층을 정의하는 개념을 너무 단순화(어쩌면 상향화)했다는 논쟁거리를 던져주지만, 그 때문에 입시생 가족의 얽매임 없는 계층적 욕망을 내밀하게 살필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뭣보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입시가족’이란 명제에서 기계적으로 떠오르는 뻔한 구도를 지양한다. 크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식으로 구성된 가족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피해갈 수 없는 교육제도를 맞닥뜨려서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살폈다. 예를 들어, 지방 농촌사회 혹은 서울이라 해도 20세기 가치관 속에서 자랐으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부모는 불가피하게 이중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자식 교육에 모든 걸 거는 옛 가족 구조를 꺼리면서도 현실에서 경쟁에 뒤처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체험했기 때문이다. 자본의 재생산 구조가 경제는 물론이고 학력까지 장악한 시대에 반발과 수긍을 동시에 품은 셈이다. 이런 인식은 당연히 자녀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목적의식을 갖고 나아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안전망으로 보이는 테두리에서 도태되지 않는 것을 욕망하는, 모순적 인식을 배우게 된다. “부모들이 자녀의 대학 진학 문제에 노심초사하는 마음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욕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나온다. 욕망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소망이라는 말로 순화해볼 수 있겠지만 모든 부모들이 인생에 있어 끝내 ‘실현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소망이기에 결국 이것은 욕망이다. 명문대 출신의 최고 학력자의 삶의 궤도 위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하는 향연을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으로 내면화한 욕망인 것이다.” 물론 이 욕망은 당사자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추정컨대 이 땅에 너무나 급박하게 뿌리 내린 자본주의가 잉태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최근 훨씬 더 기형적 구조의 자본주의가 만개한 중국 사회를 보면 입시교육의 폐해가 이루 말로 못 한다. 게다가 책에서도 언급했듯 안정적으로 보였던 서구사회조차 최근 만성적 경기불황과 세계화의 물결 속에 입시 경쟁이 점차 과열되고 있다. 이제 ‘학력 자본’을 향한 전 지구적 혼란은 이미 제어할 수단을 잃어버린 듯한 양상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찾자면, 이런 극단적 치달음이 무쇠처럼 견고했던 벽을 깨뜨리는 창이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근사한 학력을 쌓아도 사는 데 별 소용이 없으니까. 이미 주위에서 명문대를 나와도 백수의 절망에 빠져 사는 젊은이는 쉽사리 발견된다. 이런 갈등이 켜켜이 쌓인다면 새로운 성찰의 시대가 생각보다 이르게 찾아올 수도 있다. 다만 그동안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할 입시생과 가족은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부제인 ‘중산층 가족의 입시 사용법’은 결단코 틀린 얘기다. 지금 시대는 ‘입시의 중산층 가족 사용법’이 더 맞는 소리다. 어쩌면 저자는 언젠가 그들에게 다시 사용 권한이 돌아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았던 걸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2-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월경 중의 속옷은 악귀도 쫓는다?

    ‘월경(月經) 중인 아녀자가 깔고 앉은 빗자루는 도깨비가 된다.’ ‘월경하는 여인네 속옷은 악한 귀신도 쫓는다.’ 경북 지역에서 주로 전해지는 이 민담들은 얼핏 여성의 월경에 신비로운 능력이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사실은 요즘이라면 법적 제재를 가해도 될 만한 불쾌한 속내가 배어 있다. 도깨비가 나타날 정도로 부정하니 행동거지를 조심하라거나 너무 불결해 혼령마저 줄행랑친다는 악의적 의도가 깔려 있다. 이처럼 과거에는 월경을 낮춰보는 시각이 정설인 양 퍼져 있었다. 왜 굳이 여성의 자연스러운 생리현상까지 폄하해야 했을까. 최근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한 학술지 ‘민속학연구’ 제33호에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백민정 위촉연구원이 게재한 논문 ‘월경 경험과 여성의 정체성 인지’에 따르면 이런 풍조는 월경이 남성우월사회에서 여성을 통제하는 도구로 쓰였다. 백 연구원은 2011년 3∼12월 경북 안동시 풍산읍 소산마을에서 68∼91세 여성 19명을 심층 인터뷰해 근대사회 월경의 사회적 의미를 되짚어봤다. 소산마을은 안동김씨 집성촌으로 유서 깊은 반촌(班村). 전통 사회를 들여다보기에 적절한 대상이었다. 그런데 연구 대상들은 고령임에도 하나같이 월경에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초경부터 예외가 아니었다.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초경을 겪은 여성들은 초경혈을 “엉덩이가 깨져서 나는 피”로 착각했다. 이들은 병인 줄 알고 끙끙 앓았으며 숨기려 들었다. A 씨는 장작불에 피를 말리려 했고, B 씨는 지혈에 효험 있다는 술을 들이켰다. 제대로 성교육을 받은 적 없으니 신체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두려움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처녀로 성장해도 월경은 크나큰 고민거리였다. 경제적 이유로 1960년대까지는 생리대 서너 개로 버틴 이들이 많았다. 불편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보관도 골치였다. 보통 뒷간 쪽 멍석에 숨겼는데 쥐가 흩뜨려놓아 혼쭐이 나곤 했다. 월경대가 타인 눈에 띄면 무조건 관리 소홀로 비난받았다. 누가 알까 봐 씻는 것도 눈치를 봤다. 백 연구원은 “가부장제가 월경을 강박관념처럼 감춰야 하는 족쇄로 만들었다”며 “앞으로 월경도 당당한 학술적 연구대상으로 삼아 여성의 신체적 성숙이라는 긍정성을 되찾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2-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희웅 과장 “아제르바이잔 만찬서 아리랑 깜짝연주… 등재 확신”

    3일 저녁 아제르바이잔 바쿠. 제8차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가 시작된 지 이틀째 날, 아제르바이잔 문화부 장관이 주최한 만찬이 열렸다. 아직 ‘김장, 한국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 등재(5일)가 결정되기 전이라 한국대표단은 다소 긴장한 상태였다. 그런데 세계 정부 관계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갑자기 한 바이올린 연주자가 ‘아리랑’을 연주하는 게 아닌가. 지난해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깜짝 쇼였다. “벅차오르던 감동이 잊히지 않습니다. 대표단 모두 일어나 손을 잡고 아리랑을 합창했어요. 참석자들이 환호와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왠지 아침 담벼락에서 까치를 마주한 기분이랄까요. 순간 ‘아, 김장문화도 별 탈 없겠다’ 싶었어요.”(박희웅 문화재청 국제교류과장·50) 18일 오후 서울 세종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난 박 과장과 홍진욱 외교부 공공외교정책과장(47)은 잠시 회상에 젖은 듯 먼 곳을 응시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아리랑과 올해 김장까지 등재 현장에서 발로 뛴 주역이다. 당시 상황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처음 위원회 심사에 올라간 등재명칭이 ‘퇴짜’를 맞았기 때문. 한 위원국이 ‘김치를 먹는 문화가 한국만 있느냐’며 국가(in the Republic of Korea)를 표기하길 요구했다. 이번에 함께 등재된 ‘중국의 주산(珠算)’과 ‘일본의 와쇼쿠(和食)’처럼. “요청국은 중국으로 추정됩니다. 이전부터 조선족을 근거로 김장문화 단독 등재를 주시해 왔거든요. 우린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이미 이의 제기를 예상하고 바로 수정 절차를 진행했거든요. 그 대신 ‘김장’은 한국의 김치 담그는 문화라고 박아버렸잖아요. 다른 나라에서 김치 담그는 건 김장이 아닌 셈입니다.”(홍 과장) 게다가 이번 위원회는 무형문화유산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자리기도 했다. 이미 알려졌듯 한국과 중국, 일본은 1997년 협약 채택 때부터 적극 참여해 발언권이 세다. 중국과 일본은 정치·역사적 역학관계 탓에 서로 견제도 심하고 다른 나라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면에 한국은 상대적으로 호응이 좋다. 한국은 인도와 함께 ‘조정국’ ‘중재국’ 대접을 받는다. “2014년은 한국에 길한 해가 될 겁니다. 현재 정부간위원회 위원국(22개국)인 중국, 일본이 내년 임기가 만료되거든요. 6월 선거에서 (2008∼2012년 위원국이던) 한국이 다시 위원국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지 분위기만 보자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한 자리는 우리가 차지할 겁니다.”(박 과장) 두 사람은 앞으로도 정신없이 바쁠 것 같다. 한국은 무형문화유산에서 내년 ‘농악(풍물놀이)’, 2015년 ‘제주해녀문화’와 ‘줄다리기’ 등재를 노린다. 한 해 1국가 1유산이 원칙이나 줄다리기는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와 공동등재라 비켜갈 수 있다. 홍 과장은 “등재 노하우가 적은 세 나라는 일종의 공적개발원조(ODA)라며 고마워한다”며 “우리 등재도 소중하지만 해외 유산의 등재에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2-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신임 문화재청장에 도자기 권위자 나선화씨

    나선화 ‘생명과 평화의 길’ 상임이사(64·사진)가 신임 문화재청장으로 내정됐다. 청와대는 24일 “나 이사는 전문성과 경험이 뛰어나고 관련 인사들과의 교류 및 소통도 활발해 각종 현안을 원만히 해결해 나갈 적임자로 기대돼 신임 청장으로 발탁했다”고 밝혔다. 전임 변영섭 청장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청장이다. 나 내정자는 숙명여고와 이화여대 사학과를 나와 1976년부터 이화여대박물관 학예실장을 30여 년간 지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도자사(陶瓷史) 연구자로 1985∼86년 경기 광주시 조선백자 가마터 발굴에 참여했다. 전남 영암군 구림리에 있는 옹기가마를 발굴해 당시 민속품으로 치부되던 옹기를 도자미술사의 연구 대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이기도 하다. 나 내정자는 1992∼99년 한-러 공동 발해문화유적 조사단 책임연구원을 지내며 연해주 지역 고고학 발굴에 오랫동안 참여했다. 2005∼2013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지냈으며 한국큐레이터포럼 회장과 한국박물관학회 이사, 인천시 문화재위원을 역임했다. 현장에서는 ‘여걸’로 불릴 정도로 강단을 지녔으면서도 상당히 합리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나 내정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요새 문화재계가 상당한 진통을 겪었는데 국민이 문화재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되찾고 관련 종사자들이 활력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2-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수도권]경복궁-창경궁 겨울철 첫 야간개방

    서울 경복궁과 창경궁이 내년 2월 14일 정월대보름을 전후해서 처음으로 겨울철 야간 개방에 나선다. 문화재청은 24일 “창경궁은 2월 11∼16일, 경복궁은 2월 12∼17일 6일간 오후 6∼9시에 특별 개방한다”고 밝혔다. 경복궁과 창경궁 1일 최대 관람인원은 각각 1500명과 1700명이며, 더 많은 국민이 관람할 수 있게 입장권 구매는 1인당 2장으로 제한한다. 인터넷 예매는 2월 초부터 옥션티켓(ticket.auction.co.kr)에서 가능하며, 장애인 50명(보호자 1명 포함)과 부모와 동반한 6세 이하 유아는 무료다. 입장권 가격은 경복궁 3000원, 창경궁 1000원이다. 경복궁관리소(02-3700-3900∼3901)와 창경궁관리소(02-2172-0104)로 문의하면 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2-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상식의 재구성]신화 속 기린은 우리가 아는 기린이 아니다

    요즘 세대는 기린이라면 ‘런닝맨’에 나오는 배우 이광수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키가 크고 날씬한 체구가 아프리카 초식동물(giraffe)을 닮았다고 생긴 별명이다. 원래 기린은 목이 긴 짐승을 일컫는 게 아니었다. 동양에서 기린(麒麟)은 머리에 뿔이 나고 오색 빛깔 털을 지닌 상상의 동물이다. 용, 거북, 봉황과 함께 사영수(四靈獸·신령한 네 동물)로 꼽히는데, 태평성대에 모습을 드러내는 길한 동물로 여겨졌다. 기린이 기린이라 불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중국 명나라 영락제(1360∼1424) 때 동아프리카를 다녀온 환관 정화(鄭和)가 이 동물을 황제에게 바치며 처음 기린이라 소개했다. 성군이 나라를 다스려 기린이 나타났다는 ‘아부’였던 셈. 엄청난 돈을 쓴 항해가 쓸데없진 않았다는 면피용이기도 했다. 근대에 들어 기린이란 명칭은 일본에서 쓰기 시작했다. 20세기 초 이시카와 지요마스라는 동물학자가 정화의 고사를 인용해 공식 명칭으로 사용했다. 지금도 한국 일본 대만은 기린이라 부른다. 그런데 막상 근거를 제공한 중국에서는 이 동물을 ‘장경록(長頸鹿·목이 긴 사슴)이라 부른다. 신화 속 기린도 성품이 온화하다. 중국 옛 문헌 ‘시경(詩經)’이나 ‘광아(廣雅)’에는 “짐승은 보통 발 있으면 차고 뿔 있으면 부딪치려 하나, 기린만은 어진 성품으로 그렇지 않다”거나 “인을 머금고 의를 품어 걸음걸이가 법도에 맞다”고 묘사했다. 유교 사상에서는 기린을 공자(孔子)에 빗댄다. 공자의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홀연히 나타나 위대한 현인의 출현을 예고했다고 한다. 진짜 기린은 결코 예능 프로그램처럼 ‘배신의 아이콘’이 아니다. 물론 배우도 실제 성격이야 다르겠지만.(자료: ‘한자의 모험’(비아북)·한국문화재보호재단)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2-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서울 공간사옥 문화재 등록 예고

    문화재청은 20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있는 ‘서울 공간사옥’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공간사옥은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설계해 1971년 착공됐다. 문화재 등록을 위해 앞으로 30일간 의견수렴 및 검토 과정,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치게 된다.}

    • 2013-12-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죽은 엄마와 화해하려… 부엌으로 간 종군기자

    엄마가 돌아가셨다. 그 순간, 모든 게 무너져 내린다. 단지 삶이 아니라 세상 전체가. 울음도 나오질 않는다. 좀 더 찾아뵐 것을, 좀 더 잘 모실 것을. 하물며 속 썩인 일이 잦았다면 죄책감은 몇 곱절로 커진다. 하물며 저자는, 어머니가 죽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어머니는 정신질환자에 알코올중독자였다. 미국 일간지 뉴스데이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하며 1997년 퓰리처상도 받았던 저자는 문득 자신이 치러야 할 ‘전쟁’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목숨을 걸고 분쟁지역을 뛰었지만 어쩌면 그건 타인의 싸움이었다. 한때 누구보다 사랑했으나, 또 한때 누구보다 미워했던 엄마.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응어리는 목 끝까지 차 있었다. 그 씻김굿을 위해 저자는 엄마의 요리책을 꺼내 들었다. 왜 하필 부엌이냐고? 그곳은 저자에게 어머니와의 사랑이 차올랐던 공간이자 그 애정이 사그라진 장소였다. 아들은 엄마가 정성껏 차려낸 음식을 먹으며 행복을 만끽했다. 허나 불지불식간 찾아온 병은 엄마를 부엌에서 내몰았다. 흥미도 재능도 순식간에 지워졌다. 차갑게 식어버린 냄비. 모자 관계도 얼어붙었다. 죽음이 일상인 전쟁터를 전전한 것도 그 결핍이 자신을 극한으로 내몬 결과였던가. 저자가 엄마의 요리 레시피를 쫓아간 건 바로 그 상실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었다. “나는 엄마를 되찾아올 한 가지 방도를 찾았다. 당장 내 집 부엌으로 달려가서 엄마의 요리들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 엄마의 돼지갈비, 초콜릿 크리스피, 딸기 아이스크림…. 어쩌면 그 음식들이 내 기억에서 거의 사라져버린, 내가 잊고만 싶어 했던 과거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어줄지 모른다.” 물론 쉽지 않았다. 처음엔 엄마의 방식을 무조건 지키려는 강박관념에 요리 자체를 즐기지 못했다. 당시 저자는 아내와 아기를 가지려 간절히 노력 중이었다. 그들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음식을 만들며 그는 천천히 변화한다. 사랑하는 이 앞에 식탁을 차려 내는 게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그 옛날, 엄마가 자신에게 그랬듯이. 참 애잔한 책이다. 글 전체를 관통하는 회한이 읽는 내내 가슴을 저민다. 어머니의 정신병은 저자의 인생과 가족 모두를 엉망으로 휘저어 놓았다. 그 감당할 수 없던 현실은 감수성 예민한 10대의 분노를 엄마에게 쏟아 붓게 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안다. 그게 왜 엄마 탓인가. 따지고 보면 가장 힘든 건 엄마였을 텐데. 그런 과거와 화해하는 일은 어떤 전투보다 치열하고 애달팠다. 신파로 흐를 수 있었던 레퍼토리를 담담한 문체로 풀어낸 점도 높이 살 만하다. 저자는 현 시점 얘기는 과거형으로 쓰면서 옛 추억은 현재형을 고수한다. 명확한 의도야 알 수 없으나, 꽈리처럼 뒤섞여 서로를 지탱하는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어느 순간 저자는 깨닫는다. 엄마의 방식을 더이상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요리법은 재료 몇 g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시켜 먹거나 외식도 괜찮다. 진짜 핵심은 우리 앞에 마주 앉은 그들, 그리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엄마로부터 그 마지막 선물을 건네받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2-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문화 단신]국외소재문화재재단 外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영구대여 형식으로 국내에 환수된 ‘겸재정선화첩’을 주제로 특별강연회를 연다. 27일 이태호 명지대 교수를 시작으로 박은순 덕성여대 교수(내년 1월 3일)와 조인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10일), 박정애 중앙대 강사(17일)가 매주 금요일 오후 2시 박물관 강당에서 강연을 펼친다. 02-6902-0756■국립중앙도서관은 20일 오후 2시 서울 반포동 도서관 지도자료실 내 세미나실에서 ‘대한제국칙령 제41호 속 석도(石島)는 독도(獨島)다’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연다.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www.nl.go.kr)의 ‘도서관 소식―행사 안내’에서 신청하면 된다. 무료. 02-590-0505}

    • 2013-12-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말띠 여자 팔자 세다? 조선시대 말띠 왕비 수두룩

    임신 9개월차에 접어든 회사원 이모 씨(30)는 요즘 고민이 크다. 예정일이 내년 설날쯤인데 먼 일가친척까지 내년이 ‘청(靑)말띠’라고 성화가 심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다니는 병원에 제왕절개를 해서라도 말띠는 피하겠다는 산모가 여럿”이라고 말했다. 2014년은 갑오년(甲午年) 말의 해다. 벌써부터 ‘청말띠’라고 시끌시끌하다. 여성이 말띠면 팔자가 세다는 속담이 있는데, 그중 푸른 말은 유독 드세다는 입소문이 자자하다. 12간지의 일곱 번째 동물인 말이 띠가 되면 여성은 정말 그리도 박복할까. 이는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우리 전통적 가치관과도 맞지 않다. 20일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는 국제융합학술대회 ‘한중일 문화 속의 말’에서 발표하는 천진기 관장의 글 ‘백마 탄 초인이 있어’에 따르면 이 속설은 일본에서 들어온 습속이다. 실제로 한국과 중국 문헌이나 사료에는 이런 구절을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조선왕조를 보면 말띠 왕비가 수두룩하다. 정현왕후(1462∼1530)와 인열왕후(1594∼1635), 인선왕후(1618∼1674), 명성왕후(1642∼1683·조선 현종의 비)는 모두 말띠였다. 대한제국 순정효황후(1894∼1966)도 마찬가지다. 천 관장은 “당시 그런 속설을 믿었다면 사주팔자를 엄격히 따졌던 왕실에서 간택했을 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이 고약한 속설은 일제강점기에 전해졌다. 일본은 말해에 태어난 사람은 기질이 세다고 여겼다. 특히 말띠 여성은 시집가면 남편을 깔고 앉는다고 혼약을 꺼리는 풍조가 만연했다. 이것이 20세기 초 한반도에 퍼지며 마치 우리 고유의 통념인 것처럼 여겨지게 됐다. 물론 한국에서도 말은 강인한 생동감의 상징이었다. 경북 영천시 어은동에서 출토된 청동유물을 보면 마형대구(馬形帶鉤)가 눈에 띈다. 팽팽한 체구에 갈기를 세워 말의 활동성을 잘 표현했다. 스키타이 문화의 영향으로 추정되는 이 문화재를 보면 한반도에서 말을 얼마나 오래전부터 영물로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기’ 조선전에는 위만조선이 말 5000필을 중국 한나라에 보내려 한 대목이 나와 이미 가축으로도 친숙했음을 보여준다. 세시풍속에서도 말은 치성의 대상이었다. 음력 정월 첫 ‘말날’ 상오일(上午日)은 말에게 제사를 지내고 숭상하는 날이었다. 이날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는 풍속도 있다. 천 관장은 “맛있다의 ‘맛’과 말의 발음이 비슷한 것에서 유래됐다”고 설명했다. 시월상달(10월) 말날에는 붉은 팥떡을 해 마구간에 차려 놓고 고사를 지냈다. 말을 대한 한국인의 사랑은 지금도 이어진다. 승용차 브랜드를 보면 ‘포니(조랑말)’ ‘갤로퍼(질주하는 말)’ ‘에쿠우스(말을 뜻하는 라틴어)’처럼 말을 상징하는 게 꽤 된다. 말표 고무신이나 운동화도 추억하는 이가 많다. 천 관장은 “활력과 건강의 상징인 말띠는 자랑스러워할 일이지 나쁠 게 없다”고 강조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2-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문화 단신]한국사회학회 外

    ■ 한국사회학회(회장 정진성 서울대 교수)는 20, 21일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에서 ‘한국사회의 변화와 사회학의 대응’을 주제로 후기사회학대회를 연다. 각 사회학 분과를 아울러 총 15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되며 일본 중국 대만 러시아 학자들도 발표와 토론에 참석한다. 한국사회학회는 또 후기사회학대회에 맞추어 사회학 총서(다산출판사)를 출간한다. 02-722-8747■ 소설가 신경숙, 은희경, 김연수와 시인 이병률, 문학평론가 이형철이 태풍 하이옌으로 고통받는 필리핀 어린이 돕기에 나선다. 이들은 20일 오후 7시 이화여대 교육문화홀에서 열리는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주최 ‘살라맛뽀(필리핀말로 ‘고맙습니다’라는 뜻)’ 낭독회에 참석해 자신의 작품을 육성으로 들려준다. 유니세프 홈페이지에서 3만 원 이상 기부한 사람들이 초청 대상이다. 02-735-2315}

    • 2013-12-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농부의 땀 밴 농기구, 이제는 보물이 되다

    2008년 어느 날, 민속학자인 김광언 인하대 명예교수는 농협농업박물관에 찾아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포천에 엄청난 물건이 있으니 얼른 가보시게. 그리 완벽한 ‘겨리쟁기’(사진)는 생전 처음 봤네.” 겨리쟁기란 경기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던 소 두 마리가 끄는 쟁기다. 대부분 소 한 마리가 끌던 호리쟁기를 썼기 때문에 겨리쟁기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부리나케 포천을 찾았던 김재균 농업박물관장은 당시 입을 다물지 못했단다. 100년 넘은 겨리쟁기가 완벽한 상태로 남아있었기 때문. 하지만 소장자는 “선친이 땅을 일구던 땀이 밴 유품”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로부터 5년. 농업박물관 1층 홀 중앙에 전시된 겨리쟁기를 볼 수 있다. 오래도록 정성을 들인 박물관에 감읍해 소장자가 이달 초 기증했다. 박물관은 그 뜻을 높이 사 이 겨리쟁기를 박물관의 ‘농업보물 제1호’로 지정했다. 17일부터 서울 중구 충정로 농업박물관이 개최하는 특별전 ‘농기구, 보물이 되다’에 전시되는 농기구 50여 점은 농촌에선 흔한 물건이라는 선입견 탓에 저평가돼 온 것이다. 막상 전시장에 가보면 생각이 바뀐다. 세월의 향취가 그득한 농기구들의 자태는 웬만한 문화재 못지않다. 특히 박물관이 자체 선정한 농업보물 10점은 쉽게 보기 힘든 ‘작품’이다. 강원 산간마을에서 김치나 감자를 보관한 ‘나무 독’이나 나무가 휘어진 모양새를 자연스럽게 살린 세 칸짜리 ‘구유’는 미술품 같다. 내년 3월 30일까지. 무료. 02-2080-5727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2-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인사]문화체육관광부 外

    ◇문화체육관광부 △운영지원과장 이영열 △출판인쇄산업과장 정향미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파견 이선영 ◇산업통상자원부 ▽원장 △국가기술표준 성시헌 ▽국장 △표준정책 안종일 △제품안전〃 김정환 △적합성〃 이상진 ▽과장 △전자전기 심진수 △지원총괄 최광국 △표준정책 유동주 △제품안전〃 전민영 △시험인증〃 김동호 △기술규제〃 임헌진 △국제표준 정기원 △전자정보통신〃 박인수 △기계소재건설〃 박주승 △에너지환경〃 최철우 △문화서비스〃 김용주 △제품시장관리 장금영 △제품안전정보 정승희 △전기통신제품안전 송양회 △생활제품안전 정의식 △적합성평가 정민화 △인증산업진흥 김영찬 △계량측정제도 최미애 △무역기술장벽협상 윤종구 △기술규제조정 이석우 △기술규제협력 최철호 ◇산림청 △산림이용국장 최병암 △산지관리과장 이종건 △국유림관리〃 박원희 △산림환경보호〃 김용관 ◇한국감정원 ▽처실장 △미래정보전략 한숙렬 △감사 정덕양 △연구개발 박기석 ▽지역본부장 △경기 김원식 △호남 김병복 ▽지점장 △중부 윤일채 △동부 조주현 △성남 박동준 △일산 장종권 △강릉 김남수 △청주 최기연 △사상 최규성 △울산 김종휘 △진주 손형배 △제주 정상규 △동부지점장 권우상 ◇한국원자력의학원 △경영기획본부장 최원영 ◇한국석유관리원 △경영기획처장 김동길 △경영관리〃 정충섭 △사업기획〃 신성철 △사업관리〃 류승현 △석유기술연구소장 하종한 △감사실장 송흥옥 △수도권본부장 김중호 △수도권북부〃 이병길 △호남〃 오영권 △영남〃 김진우 △대구경북〃 강동수 △직무감찰팀장 도재정 ◇한국저작권위원회 △종합민원센터장 강대오 ▽팀장 △기획홍보 현영민 △등록 주성훈 △법제연구 김찬동 △교육연수 김정묵 △원격교육 박인기 ◇동서발전 ▽1직급 을 △인재경영실 조동준 △건설처 강수진 △국내사업실 노용균 △해외사업실 경석영 △당진화력 정필식 △동해화력 박정순 △EWP RC 권기범 ▽2직급 △기획처 김낙교 △경영지원처 김만복 △인재경영실 김승현 △감사실 신정국 은성호 △동반성장센터 강용주 △자원전략실 조영권 △발전처 김태규 이갑주 △건설처 이준우 △국내사업실 김용대 △안전품질실 송하경 △당진화력 이철홍 △울산화력 권혁만 장봉익 △STX전력 이상훈 △동부발전당진 전기종 ◇밀워드브라운 미디어리서치 △CS사업부문 총괄 부사장 김지연 △뉴비즈 전략실장 박종백 △경영지원실장 이태종 △CS사업 1본부장 이영미 △〃 2본부장 이제욱 ◇서강대 △융합소프트웨어연계전공주임 정성원 △한국발전과국제개발협력연계전공주임 김동택 △영미어문학전공주임 유원호 △서강대-㈜케이엠더블유산학연구소장 윤상원 ◇한림대 △기획처장 전호성 ◇한국기자협회 △총괄본부장 김용만 △대외협력본부장 이영재 △행정담당 부국장 이원희 △편집국 부국장 김미정 △기획부장 김동기 △편집국장 직무대행 김성후 ◇아시아타임즈 △편집국 생활경제부장 권태욱}

    • 2013-12-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15만점 해외 한국문화재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매사냥 장면을 담은 ‘곤명전렵도(昆明전獵圖·사진)’는 단원 김홍도(1745∼?)가 그린 소중한 우리 문화재다. 하지만 환관 출신 서화가 이병직(1896∼1973)이 일제강점기인 1937년 서울에서 경매에 내놓은 이후에 행방이 묘연했다. 이 그림이 이역만리에 있는 미국 플로리다대 ‘새뮤얼 한 박물관’에 있음이 최근 밝혀졌다. 6·25전쟁 때 미8군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이 1998년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박물관에는 오원 장승업(1843∼1897)의 ‘고사아집도(高士雅集圖)’와 고려 청자상감버들무늬매병 같은 보물급 여럿이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세계 각지에 산재한 한국문화재가 15만 점이 넘는 것으로 파악한다. 해외 박물관 소장 유물만 5만 점 가까이 된다. 독일 함부르크민속박물관의 3500여 점을 필두로 미국 스미스소니언국립자연사박물관과 영국 대영박물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이 각각 3000점 내외를 소장하고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13, 14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이를 어떻게 더 잘 관리하고 더 많이 알릴 수 있을지 고심하는 자리였다. 최응천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해외에 있는 문화재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선결과제로 꼽았다. 해외 기관들과 공동연구, 보존관리를 진행해 체계적인 정보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설명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2-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새싹 모양의 春, 힘들다는 뜻도 숨어있다는데…

    옛날 얘기 하나. 한 아이가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웠다. 첫 글자 하늘 천(天)이 나오자 질문을 쏟아냈다. 하늘은 왜 파란지, 왜 태양은 뜨고 지는지…. 끊임없이 묻고 훈장은 대답했더니 10년이 지났다. 드디어 배우게 된 땅 지(地). 아, 청소년이 돼도 습벽은 바뀌질 않았다. 또 한번 강산이 바뀌었다. 스승은 걱정이 컸다. “천자문을 언제 다 배우누?” 이미 청년으로 장성한 제자는 웃었다. “하늘과 땅을 깨쳤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전래동화의 한 자락이지만 교훈은 깊다. 글을 배운다는 건 세상의 이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하물며 한문은 한 자 한 자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녔다. 실제로 화담 서경덕(1489∼1546)은 벽에 글자를 붙이고 골똘히 사색한 뒤 다음 글자로 넘어갔단다. 요즘 시절이라면 요령이 부족하다며 질타 받을 일이겠다. 허나 글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진지하다 못해 경이롭다. 한학자 청명 임창순(1914∼1999)이 개창한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의 연구원인 저자는 이런 자세가 맘에 들었나 보다. ‘봄 춘(春)’부터 ‘풀이할 역(譯)’까지 한자 22개를 키워드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때로는 그 한자의 생김새와 연원을, 때로는 글자에 얽힌 역사와 문화 혹은 신변잡기를 능수능란하게 이어간다. 그런 의미에서 책 제목은 ‘한자의 모험’보다 ‘한자의 유랑’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 저자의 뒤춤을 졸래졸래 따라나서 보자. 알다시피 한문은 원래 바탕이 상형문자다. 글자에 사물의 모양새가 담겼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春도 고자(古字)를 보면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과 닮았다. 그런데 그 속엔 둔 또는 준으로 읽히는 屯이 들어있다. 이 글자는 준비한다거나 어렵다는 뜻도 있다. 봄을 맞는다는 건 새로운 출발을 대비하는 일이며, 뭔가를 시작하는 건 힘들다는 속내가 배어 있다. 글자 풀이도 재미있지만, 문자에 담긴 역사성도 흥미롭다. 임금 제(帝)가 그렇다. 황제란 칭호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진시황이다. 왕과 제는 천양지차다. “왕이 현실적 권력관계의 정점에 서 있는 인간을 가리키는 반면, 제는 하늘의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중국을 통일한 그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올라 권력을 누리려 했다. 그런 시황은 중앙권력 강화를 도모하며 ‘한문의 통일’도 주도했다. 당시 한자는 지역마다 중구난방으로 달랐다. 하지만 일사불란한 정부 시스템을 갖추려면 명령을 전달하는 용어가 일관돼야 한다. 결국 진 제국이 글자의 표준화를 도입함으로써 한자는 “사물과 이어지던 탯줄을 잘리고” 언어의 추상성을 획득하게 됐다. ‘서성(書聖)’이라 불리는 왕희지(307∼365)의 이름 중간에서 따온 ‘복희씨 희(羲)’자로 풀어낸 한중일 한자 삼국지도 눈여겨볼 만하다. 왕희지는 종이에 붓으로 글을 쓰는 후한 시대 글씨를 예술로 승화시킨 핵심 인물이다. 중국에서도 서예는 왕희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한다. 왕희지의 기풍은 한국에선 석봉 한호(1543∼1605), 일본의 오노노 도후(小野道風·894∼966)로 이어져 꽃을 피웠다. 복희는 고대 중국의 시조 중 하나이니, 중국의 한자가 동아시아로 퍼져 각자 고유한 문화를 형성하는 씨앗이 됐음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참고로 오노노는 빗속에서 개구리의 몸부림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인물. 화투의 비광이다. ‘한자의 모험’은 참 색다른 책이다. 그저 보아 넘기던 글자 하나를 두고 역사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겨우 10년 한자 공부 했을 뿐”이라지만, 그 공력이 여간 아니다. 다만 배움이 얕아서인지 쉽게 쓴 것 같은데 뭔 소린지 멍해질 때가 종종 있었다. 저자는 다 아는 얘기겠지만 살짝 눈높이를 낮춰줬더라면 어땠을까. 이제 보니 왜 유랑이 아니라 모험인지 알겠다. 이 행군, 녹록지 않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12-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