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자본과 국가의 통제 벗어난 대안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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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체/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지음·정남영 윤영광 옮김/600쪽·2만8000원/사월의책

“다중이 자치 기술을 배우고 영속적인 민주적 사회조직 형태들을 발명하는 과정이 바로 ‘군주 되기’(Becoming-Prince)이다. 다중의 민주주의는 오로지 우리 모두가 공통적인 것을 공유하고 공통적인 것에 참여하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고 실현 가능하다.”

자, 뭔 말인지 알아먹겠는가. 매를 먼저 맞자면, 기자는 이해는커녕 단어조차 한글인가 싶다.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안토니오 네그리와 미국 듀크대 교수인 마이클 하트. 두 저자 이름이야 들어봤지만 이들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여기서 편을 갈라야 한다. ‘제국’(2001년 한국 출간) ‘다중’(2008년)과 같은 전작을 접해 본 독자인가 아닌가. 전자라면 열광하겠으나, 후자라면 얼른 책을 덮으시라.

그래도 아쉬우니 위의 문장이 무슨 얘긴지나 알아보자. 저자들은 21세기 들어 새로운 세계질서가 찾아왔다고 봤다. 바로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전(全) 지구적 권력인 ‘제국(Empire)’이다. 자본이 모든 것을 잠식하는 현상을 일컫는다고 보면 되겠다. 거대한 제국화는 다수의 세계시민을 이에 대항하는 ‘다중(Multitude)’이란 세력으로 변모시킨다. 이런 다중이 자본의 지배와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대안적 사회를 제안하는 방식과 상태를 ‘공통체(Commonwealth)’라 정의한다. 공동체가 아니라 굳이 공통체로 번역한 것은 민영화나 국영화와 달리 자본과 국가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함의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왠지 어디서 들어봄직한 구도 아닌가. 맞다.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상당히 흡사하다. 실제로 이에 뿌리를 둔 저자들의 사상을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공산당선언 2.0’이라 평했다. 슬라보이 지제크도 “현재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자본주의는 파산한 상태다. 두 학자는 새롭게 도래할 세상을 예견했다”고 극찬했다.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릴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념과 상관없이, 국가도 자본도 아닌 제3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만큼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다만 너무 선언적인 데다 해외에선 2008년에 나온 책이라 다소 타이밍이 안 맞는 대목도 보인다. 이 책의 후속작인 ‘선언’은 이미 지난해 국내에 출간됐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공통체#민주주의#자본#다중#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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