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

신석호 전무

동아닷컴 임원진

구독 46

추천

안녕하세요. 신석호 전무입니다.

kyle@donga.com

취재분야

2025-06-13~2025-07-13
사회일반54%
문학/출판20%
문화 일반13%
남북한 관계10%
정치일반3%
  • 김정은, 이래도 중국에 올인 할 건가[오늘과 내일/신석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대하는 중국과 북한의 행보는 사뭇 달라 보인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끄는 중국은 사건 초기부터 지금까지 방관과 은폐, 늑장 대응으로 일관했다는 국제사회의 지적을 받고 있다. 반면 북한은 지난달 말,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인의 입국을 막는 과감한 방역 조치에 나선 것만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한국 등 보통 나라들이 확진 및 의심 환자를 병원이나 자택에 격리하는 데 비해 북한은 나라 전체를 격리했다고나 할까. 이른바 ‘동원형 정치체제’로 분류되는 두 나라의 다른 대응은 사실 한 가지 핵심적인 공통점에서 나온다. 자유로운 언론, 그리고 약자의 목소리가 권력층에 전달될 언로의 부재 또는 빈곤이다. 초기에 사태를 직감한 의사들을 유언비어 유포자로 낙인하고 언로를 막은 것은 최고지도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무시한 원인 중의 하나다. 북한이 ‘국가 격리’라는 초강수를 둔 것도 변방에서의 바이러스 확산을 중앙이 감지하기 어려운 취약한 정치적 소통 메커니즘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도 바른말을 못할 테니 코로나19라는 글로벌 보건 이슈가 북한 체제에 미치고 있는 정치 경제적 파급효과를 최고지도부가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까? 북한 당국은 거듭 부인하고 있지만 중국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과의 공식 비공식적 물동량이 끊어지면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아랑곳 않던 기름값이 오르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중국발 바이러스가 중국이 그토록 우려했던 ‘대북 제재 효과성’을 키우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영변 핵시설과 대북 제재를 맞바꾸자는 ‘씨도 안 먹힐’ 제안을 할 때, 김정은의 속셈은 ‘중국이 뒤를 봐줄 것’이었을 게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실제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최고 수준으로 강화된 2017년부터 북한의 대중국 무역 의존도는 90%를 넘고 있다. 중국과의 공식 무역과 밀무역, 중국인 관광 등 세 가지 축은 북한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 그럭저럭 핵을 들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 왔다. 핵을 포기하고 정상 국가로서 여러 나라들과 두루 교류하는 정답을 외면한 결과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스스로 초래한 형국이다. 모두 김정은의 자업자득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중국의 숨겨진 후진성과 공산당 정부의 대응 태세를 보았다면 김정은도 ‘아차’ 싶을 것이다. 정상적인 지도자라면 이런 생각에 이르지 않을까. ‘아, 미국과의 대화가 잘 안된다고, 남한에 실망했다고 중국에만 너무 의존하면 안 되겠구나. 믿을 건 동맹밖에 없다지만 지금 북조선은 중국에 너무 민감하고 또 취약하구나.’ 자신의 깨달음이 상호의존(interdependence) 이론의 핵심이라는 것까지 안다면 그야말로 스위스 유학파라 할 만하다. 국제정치학의 자유주의 계보에 속하는 이 이론은 국가 간의 관계를 민감성(sensitivity)과 취약성(vulnerability)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한다. 민감성은 의존관계에 있는 한 나라의 변화가 다른 나라에 미치는 마이너스적 영향을 말한다. 취약성은 일방이 상호의존 관계를 단절할 때 발생하는 비용을 일컫는다. 상대방에 비해 민감성과 취약성이 높을수록 의존적이라는 말인데 지금 북한이 딱 그 꼴이다. 대대로 북한 김씨 일가는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를 하면서 어느 한쪽에 완전히 줄서는 것은 피했다. 하지만 든든한 후원국 소련의 ‘퍼주기’ 원조에 방탕하고 게을러졌고 1990년대 초 소련의 체제 전환과 함께 ‘고난의 행군’이라는 경제위기를 피하지 못했다. 혹시 생전의 아버지가 말하지 않았나?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2-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코로나바이러스가 소환한 대북지원 논쟁[오늘과 내일/신석호]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창궐했던 2003년 봄은 ‘김정일식 개혁개방’의 바람을 타고 남북 교류도 활발하던 때였다. 전년부터 100명 이상의 기부자를 대규모로 평양에 실어 나르던 국내 인도적 지원단체들의 방북 모니터링 활동도 한동안 중단됐다. 북한 내각(한국의 행정부) 산하 보건성이 중심이 된 방역 당국이 4월 중국 베이징을 통한 외국인 입국을 전면 차단하자, 일부 단체들은 부랴부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 들어가려 했지만 그마저 이내 막혔다. 한국 단체들을 초청한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는 노동당 통일전선부 소속으로 남북관계의 활황을 타고 끗발을 날리고 있었다. 남측 인사들의 방북은 국가안전보위부 등 최고 권력기관들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이들은 러시아에서 발이 묶인 한국 단체들에 “보건성이 절대 안 된다고 한다. 들어와도 14일 동안 격리되기 때문에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우는소리를 했다. 실권이 없는 내각, ‘고난의 행군’ 경제난 당시 국가 의료 시스템이 거의 허물어져 껍데기만 남은 보건성이 최고 권력기관들 앞에서 말발을 세우는 보기 드문 순간이었다. 그해 몇 달 동안, 그리고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창궐 당시에도 보건성은 오랜만에 권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힘없는 북한 주민들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위기 상황에서 방역과 치료라는 비싼 혜택은 정확하게 ‘권력과의 거리에 비례하여’ 배분됐다”고 말했다. 김 씨 최고지도자 일가와 특권층이 모여 사는 평양에, 지방에서도 좀 더 권력 자원을 확보한 지역과 사람들을 중심으로 바이러스를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로 국경이 통제된 2015년 북-중 국경 도시에 살았던 이모 씨(여·2017년 탈북)는 “당국이 ‘물 끓여 먹어라’ ‘외부인 접촉하지 마라’ ‘중국 음식 먹지 마라’라고 한 것은 기억이 나지만 거의 무방비 상태로 쏘다녔다. 방역이나 치료의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중앙에서 제대로 된 장비도 약품도 지원받지 못하고 ‘검병’(檢病·우리의 검역) 활동을 해야 하는 지방의 의료진은 노심초사였다. 자신의 담당구역에서 환자가 나오면 책임을 질까 두려워서다. 최근 조선중앙TV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철저한 방역 태세를 대내외에 홍보하고 있지만 ‘정치적 지리적 변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다르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주민들은 치솟는 물가와 부족한 보건 서비스로 이중고를 치르고 있다. kg당 3위안 하던 쌀값은 두 배가 넘는 7위안으로 치솟고 당국이 마스크를 안 쓰면 외출금지를 하는 바람에 가족이 마스크 하나를 돌려쓰고 있다고 전했다. 의심환자 두 명이 나왔다는 소문이 떠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나온 정부의 대북 방역 협력 추진 소식은 인도적 지원에 대한 해묵은 논쟁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정부와 민간을 막론하고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목적과 조건이 없어야 한다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다. 과거 한국 정부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 남북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인도적 지원을 활용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정부 또한 그럴지라도 그건 남북 관계가 단절된 현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하지만 사회적 약자도 혜택을 받아야 하고 투명한 모니터링이 가능해야 한다는 실무적인 글로벌 스탠더드는 양보하기 힘들다. 평양이 아닌 지방, 당 간부가 아닌 시장 꽃제비도 ‘검병’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충분하게 주라. 하지만 지원 물자가 제대로 쓰이는지 사후에라도 반드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며 ‘하지 말란 말이냐’고 할 것이다. 그래도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2-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북한 관광, 그 아찔했던 순간들[오늘과 내일/신석호]

    2002년 6월 29일 오후. 서해에서 제2연평해전이 벌어진 것도 모른 채 중국 베이징에서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 순안공항에 내렸다. 인도적 지원단체의 모니터링을 명분으로 얻은 첫 평양 취재이자 북한 내륙 관광. 입국 전 휴대전화를 인솔자에게 맡긴 뒤 외부 세계와의 연결이 완전 차단된 3박 4일 일정이 시작됐다. 무슨 일이 터지면 오로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취재 환경이었다.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고 평양 시내와 백두산, 묘향산 등을 돌아보는 동안 북한 당국자들은 남한 기자를 밀착 감시했다. 통일전선부 소속 안내원이 바로 옆에 따라붙었고, 5m 근처를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안내원이 빙빙 돌며 우리 둘을 지켜봤다. 기자를 포함해 100명이 넘는 남한 관광객 전체를 어디선가 최고책임자가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3중으로 감시당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당신에게 말을 거는 북한 사람은 모두 고도의 훈련을 받은 대남 공작 요원들이요, 당신이 하는 말과 행동은 모두 상부로 보고될 것’이라는 교육을 단단히 받고 간 터였기 때문에 2007년 11월 마지막 일곱 번째 평양 방문 취재까지 ‘큰일’을 당하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관광하듯 북한 땅을 찾은 일행 중에는 각종 리스크에 노출되어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북한 당국자들에게 김씨 세습 독재 체제를 비판하다 쫓겨날 뻔한 인사들이 대표적이다. 1960년대산 러시아제 고려항공 여객기가 기류를 만나 급전직하하고, 인민대학습당의 낡은 엘리베이터가 내려앉는 장면도 목격했다. 겨울에 무리하게 백두산에 오르던 버스가 벼랑길을 뒷걸음칠 때의 오싹함이란. 2008년 7월 11일 북한군의 총탄에 사망한 박왕자 씨 사건은 가장 심각한 경우였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다는 개성과 금강산 관광이 성사될 경우 과거의 내륙 관광보다는 ‘개인 신변 안전 위험’이 크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핵을 가진 북한과의 관광 재개가 대한민국에 미치는 ‘체제 안전 위험’은 전보다 더 큰 상황이다. 2000년 10월 금강산 관광으로 시작해 2008년 5월 개성공단 취재를 마지막으로 북한을 아홉 차례 방문하는 동안, 함께했던 보통 한국인들이 처음 북한을 방문한 뒤 생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북한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보수 인사들과 북한의 긍정적인 면만 보려고 하는 진보 인사들은 방북 후 생각이 달라질까? 아니었다. 보수 인사들은 더 보수가 되고, 진보 인사들은 더 진보가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함께 금강산을 올랐던 공안검사에서 종교인과 의료인 등 하는 일과 나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북한 개별관광이 실제로 이뤄진다면, 아마도 북한과 대화하고 협력해야 평화롭게 번영할 수 있다는 이 정부 대북정책을 찬성하는 이들이 선두에 설 것이다. 과거의 관찰대로라면 이들은 ‘미국의 고립 압살 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핵을 가지게 되었다’는 북한 당국자들의 거짓말에 ‘격하게’ 공감하고 ‘우리라도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강한 결심을 하고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지금으로선 정부의 제의를 수용하지 않을 것 같은 북한이 만약 전격적으로 이를 수용한다면 자신들이 핵을 가지고도 평화롭게 살고 있다는 점을 최대한 선전하기 위해서일 게다. 남한 사회에 남남갈등의 불꽃을 키우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제재의 유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워싱턴을 무시할 경우 가뜩이나 삐걱거리는 한미관계에 추가 균열이 우려된다. 신변 안전 위험은 잘 교육해 방지하면 된다. 하지만 체제 안전 위험은 둑이 터진 것처럼 되돌릴 길이 없다. 이 정부엔 그것이 위험이 아니라 바라는 바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20-01-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는 김정은[오늘과 내일/신석호]

    1일 조선중앙TV를 통해 보도된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참석자 단체사진 앞줄 정중앙. ‘혁명 선배’들의 것보다 20%는 커 보이는 붉은색 의자에 비딱하게 앉아 인상을 쓰고 있는 서른여섯 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나에게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1990년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식 개혁과 개방을 거부하며 남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이 말의 뉘앙스는 이번 전원회의 보도문에도 고스란히 배어 있다. 우선 김정은은 경제난의 책임을 고스란히 내각(한국의 행정부)에 돌렸다. 각 공업부문에 “산적되어 있는 폐단과 부진 상태”를 지적하며 “경제사령부로서의 내각이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심각한 실태”를 질타했다. 지난해 8월 건설공사가 늦어지고 있는 수산사업소를 방문해 “이런 문제까지 내가 나와서 대책을 세워야 하느냐”며 불호령을 내린 것과 같은 맥락이다. 김정일 시대에 이어 김정은 시대에도 그 내각을 책임졌던 박봉주는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김정은의 왼쪽 옆자리에 얼어붙은 듯 앉아 있다. 북한의 경제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일성 주석 시절부터 이어져 온 세습 독재의 파행적 경제 운용과 대미 강경 정책이 핵심 원인이라는 진단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김정은은 그러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잘못된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 실제로 생전의 김정일도 내각의 경제적 책임을 누구보다 강조했다. 하지만 뒤로는 노동당과 군 등 권력집단에 특권을 주고 상납을 받는 기형적인 ‘수령경제’를 확장시켜 내각을 속 빈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최고지도자가 말단 경제현장을 찾아가 이런저런 지시를 하고 이를 관영매체로 홍보하는 독특한 통치 수단인 ‘현지지도의 정치’ 역시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시원이다. 회고록 등에는 그가 농수산 사업소 등 현장을 방문해 촘촘히 수치를 읊어대며 현장 반장이 해야 할 만한 구체적인 지시를 늘어놓는 장면이 홍보된다. 북한 말로 ‘위에서 내려 먹인다’고 하는 통치 관행은 최고지도자 이하 간부들의 자율성을 앗아가고 국가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배분시키는 정치적 자충수로 기능했을 뿐이다. 지난해 12월 28일부터 무려 4일 동안 이어진 전원회의 결과 김정은은 핵능력을 강화하면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맞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낡은 길’을 택했다. 경제 분야에 대해서도 선대와 마찬가지로 계획과 시장 사이에 어정쩡한 태도를 드러냈다. ‘자립과 자강’ ‘국가의 집행력과 통제력’을 강조하며 인민과 엘리트에 대한 내핍의 강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의 회복을 암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경제개혁 브랜드인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지속적인 실시를 주장하고 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부총장은 “경제정책 기조의 연구와 실행을 담당해야 할 실무자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의 사망과 함께 그가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등장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이 그가 ‘스위스 유학파’라는 점을 들어 변화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럴까?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도 민주주의의 고향인 영국에서 유학했지만 귀국 후 변화보다는 아버지가 물려준 독재 권력의 유지에 몰두했다. 문제는 독재라는 구조다. 그 구조 안에서는 개인의 다양성과 자유의지가 실질적으로 제약된다. 그런 의미에서 최고지도자 개인의 생각을 바꿔서 북한을 바꾸겠다는 진보 정권들의 대북정책은 ‘희망적 사고’였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북한을 변화시키려는 어떠한 노력도 3대 세습 독재정치 균열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냉전으로 크렘린 궁전의 금고를 바닥나게 해 소련을 무너뜨린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 완화를 거부하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신석호기자 kyle@donga.com}

    • 2020-01-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北 비핵화 놓쳤어도, 교훈은 건지자[오늘과 내일/신석호]

    요즘 송년회에서 만난 한반도 전문가들의 화두는 단연 김정은의 ‘새로운 길’이 무엇이냐다. 스스로 미국에 선포한 연말 시한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북-미 정상회담이 ‘짜잔’ 하고 열릴 가능성은 없는 듯하다. 미국도 북한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을 향해 따로 놀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와 2019년 2월 하노이, 6월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직접 대면하고 비핵화 진정성이 ‘1도 없음’을 파악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들은 ‘달랠 수 없다면 흔들어야 한다’는 지혜를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내부 움직임을 샅샅이 파악하며 체제의 빈틈을 찾는 데 열심이라는 전언이다. ‘레짐 체인지’와 ‘한국에 의한 통일’이 북한 비핵화의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대북정책의 비전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북한은 “생존권과 발전권을 보장하라”며 시위만 하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는커녕 ‘비핵화 로드맵’도 내놓을 생각이 없으면서 한미 군사 동맹을 말하는 적대시 정책 폐기와 제재 완화를 요구하며 급기야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운운했다. 김정은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른 장면이 노동신문에 공개된 10월 16일을 전후해 ‘새로운 길’로 가기 위한 액션 플랜이 시작됐을 것이고 3일 김정은의 삼지연 방문도 그 일환일 것이다. 그 ‘새로운 길’이 뭔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인공위성을 빙자한 장거리 로켓부터 발사해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한다는 ‘무력시위 재개설’에서부터, 중국 및 러시아 등 우방들과 밀착해 살길을 모색한다는 ‘다자외교 강화설’ 등 다양하다. 그 무엇이든 잘될 것 같지 않다. 대화하다 안 통하면 도발하는 버르장머리를 알아버린 트럼프 행정부가 맞장구쳐줄 것 같지 않다. 미국의 압박 앞에 제 앞가림도 벅찬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이라는 리스크를 들고 춤을 출 리도 없다. 분명해진 것은 2018년 1월 1일 김정은의 신년사로 시작된 2년 동안의 비핵화 북-미 대화 국면이 종언을 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애당초 김정은의 지고지순한 목적은 ‘핵을 가지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됐다. 그가 가려는 ‘새로운 길’이 무엇이든 ‘핵을 가진 채 제재 해제를 추구한다’는 쉬운 길이 막히자 ‘핵을 가진 채 제재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큰 틀 안에 있을 것이다. 사건의 흐름은 북한 비핵화를 믿고 기대했던 이상주의자들의 판정패 쪽이다. 반면 권력과 안보를 추구하는 인간, 국가의 숙명을 이야기하는 냉담한 현실주의자들은 이번에도 승리를 거두고 있다. 스위스 유학파 김정은이 비루한 국가 경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개발한 핵을 슬기롭게 포기할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를 유포한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내년엔 또 무슨 궤변을 늘어놓을까. 지난해 3월 평양에 다녀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 세계에 홍보하고 다닌 대통령 특사단은 “상대의 말을 믿지 말고 의도는 모르는 것으로 간주하라. 그 대신 상대방이 처한 상황과 능력에 주목하라”는 현실주의의 가르침을 몰랐거나 아니면 무시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무정부적 국제정치 구조가 제기하는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기만과 사기도 서슴지 않을 수 있는 것이 국가의 특권이라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미국 시카고대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저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에서 “정치적인 계산은 경제적인 계산을 압도한다. 생존하지 못한다면 번영할 수도 없다”고 갈파했다. 시대착오적인 1인 독재정치를 유지하기 위해 핵을 ‘체제 수호의 보검’이라 부르는 김정은 체제가 경제 발전을 위해 핵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말장난일 뿐이었다는 이야기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19-12-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씨 독재가 돼지열병을 만났을 때[오늘과 내일/신석호]

    지난달 말 인천의 한 북한 음식점을 찾아 두부밥, 명태식해, 언감자떡 등 서민들이 즐겨 먹는 현지 음식들을 맛봤다. 주인도, 종업원도, 단골손님도 탈북자 출신인 허름한 이 식당의 대표 음식은 단연 ‘인조고기밥’이었다. 콩깻묵으로 만든 얇은 피에 밥을 싸서 먹는 것으로 생김새는 유부초밥과 비슷했다. 주인은 “‘고난의 행군’(1990년대 초중반 북한의 경제위기) 당시 북한 사람들을 먹여 살린 고마운 음식”이라며 회상에 잠기는 듯했다. 국가의 배급이 끊어지고 먹을 것이 줄어들자 주민들은 마을을 떠돌던 개, 협동농장에서 키운 돼지와 닭, 오리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배를 채워야 할 가축을 총으로 통제했고 하층민들은 단백질을 섭취할 길이 끊겼다. 그래서 누군가 개발해 장마당에 내놓은 게 바로 인조고기다. 재간 있는 요리사들은 돈도 제법 벌었고, 몇 푼이라도 돈이 있는 자들은 인조고기를 먹고 경제위기를 건넜다. 1990년대 후반부터 경제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주민들이 어려웠던 시기를 추억하며 먹는 간식인 인조고기가 다시 ‘생존을 위한 눈물의 음식’이 될 우려가 나온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중국을 통해 전염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ASF는 이미 전국에 퍼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돼지 씨가 말랐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ASF는 치사율이 100%여서 한때 북한의 장마당에 이 병으로 죽은 돼지고기가 식용으로 쏟아져 나왔다고 소식통들이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13일 “북한은 ASF로 인한 대재앙에 진입하고 있다”며 “단백질의 80% 이상을 돼지고기에서 얻는 주민들의 영양 공급원이 막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비단 주민 건강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 소식통은 “돼지를 키워 생계를 유지해 온 주민들이 한둘이 아닌데 ASF가 돌자 민심이 크게 흉흉해졌다고 한다”며 “과거 한국 농민들이 소를 길러 자식들을 공부시켰는데 소들이 한꺼번에 병사했다고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이런저런 경로로 넘어온 것으로 보이는 ASF로 우리도 비상이다. 휴전선 아래 민통선(민간인통제선) 안에서는 ASF 확산을 막기 위한 돼지 처치 작전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드론과 열감지기 등 최첨단 장비가 동원되고 민관군이 힘을 모은 70여 개 팀이 전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방역 당국은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공개하며 국민들의 협조를 구하고 있다. 이에 비해 북한 당국의 자세는 ‘폐쇄적’ 그 자체다. 한 당국자는 “남북이 손잡고 공동 방역을 하자는 제의를 여러 차례 북한에 했지만 답이 없는 상태”라며 혀를 찼다. 국제기구에도 솔직하게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지 않고 있다. 올해 5월 30일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첫 발생 통보를 한 게 전부다. 북한 당국 자체가 정확한 실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고난의 행군 과정에 ‘자력갱생’이 몸에 익은 북한 주민과 협동농장, 심지어 군대까지 당국의 눈을 피해 몰래 돼지를 키워 생존자금을 조달해 왔다. 당국엔 10마리라고 신고하고 실제로는 30마리를 키우는 식이다. 당국이 방역을 하고 싶어도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폐쇄성과 무능은 20여 년 전 북한 지도부가 소련의 체제 전환으로 인한 고난의 행군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수십만∼수백만 명의 주민이 굶어 죽도록 방치하게 된 핵심 원인이다. 22일 금강산에 올라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호기를 부린 김정은은 죽어가는 돼지로 주민들의 마음에 못이 박히는 현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폐쇄적이고 무능한 체제를 만든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20년 전 굶주림에 죽어간 주민들의 비통한 삶을 한동안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19-10-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핵심 외면한 북한의 잇단 헌법 개정[오늘과 내일/신석호]

    1990년대 초 후원국 소련의 체제 전환으로 경제위기에 빠진 쿠바의 카스트로 정부가 제한적이지만 신속한 개혁과 개방을 통해 역설적으로 기존의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특히 중앙집권적인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수선이 카스트로 형제와 공산당 독재 정치의 개혁과 병행되었다는 점은 오늘날 북한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1989년에 시작해 대략 1994년에 끝나는 한 사이클을 10단계로 나눠보면 이렇다. ①최고지도자가 위기임을 인식(1989년 7월) ②위기임을 엘리트와 인민들에게 천명(1989년 12월) ③관광 등 대외부문을 제한적으로 개방(1990년 1월) ④위기 극복을 위한 인민들의 의견을 수렴(1990년 3월) ⑤공산당 개혁(1990년 5월) ⑥당 대회를 열어 정치 경제 개혁 조치 입안(1991년 10월) ⑦부패한 당 간부들을 숙청(1992년 6월) ⑧헌법을 개정해 정치제도를 개혁(1992년 7월) ⑨분권화 경제 개혁 조치 단행(1993년) ⑩시장화 개혁 조치 단행(1994년). 생산성을 높이고 부족한 달러를 확보하려는 노력과 함께 비대해진 공산당을 개혁하고 당 간부들을 숙청하는 이유는 지극히 정치적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최고 정치기구인 공산당은 경제가 위기에 빠져 자본주의적 시장 메커니즘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작금의 사태에 당연히 먼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읍참(泣斬) 공산당’을 통해 자본주의적 개혁과 개방에 따르는 내부 분란을 막자는 것이다. 헌법의 개정은 공산당 대회의 결의를 제도화하는 핵심적인 과정이다. 1992년 7월 개정된 쿠바 헌법은 종교적 차별을 금지하고 국가와 종교의 분리를 선언했다. 또 전국과 주 단위 대표 선거에 비밀 직접 선거를 허용해 국가 정책 결정에 대한 대중 참여를 확대했다. 이렇게 시작된 쿠바 정치의 개혁은 2018년 4월 동생 라울이 국가평의회 의장(행정수반)직에서 물러나 카스트로 형제 독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1990년대 초 똑같은 이유로 ‘고난의 행군’이라는 이름의 경제위기에 빠진 북한은 쿠바와 비교할 때 더딘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쿠바보다 정치 소통 능력이 떨어지고 권력에 따른 불평등이 심했던 탓에, 북한 최고지도부는 위기의 인식부터 뒤처지기 시작했다. 국가의 대응이 늦어지는 사이 수십만∼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와 2003년 종합시장 도입은 쿠바보다 10년이 늦었고 이에 앞서야 할 7차 노동당대회는 2016년 5월에야 열려 25년 뒤처졌다. 김정은의 경제 개혁 브랜드인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올해 4월 개정된 헌법 33조에 비로소 삽입됐다. 32조에 삽입된 ‘실리를 보장하는 원칙을 확고히 견지한다’는 내용은 시장 활동을 보장한다는 의미라고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설명했다. 아버지 김정일이 시장과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오락가락한 것과는 달리 김정은은 2009년 11월 화폐개혁 실패 이후 시장 메커니즘의 확대를 점진적으로 제도화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문제는 정치다. 1980년 이후 36년 만에 열린 당 대회는 현실 사회주의의 기본인 공산당 집단지도체제의 회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김일성에서 시작된 김씨 일가 세습 독재를 정당화하고 3대인 김정은의 무소불위 개인 독재 권력을 강화하는 거수기였다. 지난달 29일 최고인민회의 제2차 회의에서 올해 두 번째 개정된 헌법 역시 국무위원장 김정은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그쳤다. 3대를 이은 정치와 경제 실정을 반성하기는커녕 개인 독재 절대 권력을 조금이라도 더 강화하려는 행태는 위기 이후 북한이 쿠바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김정은과 노동당이 사반세기 전 쿠바 지도부가 했던 것처럼 인민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읍참’하는 모습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19-09-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일 지소미아 논란, 청년들의 생각은?[한반도를 공부하는 청년들]

    “표결 결과 찬성 53표, 반대 4표, 기권 6표로 본회의에 상정된 9개 항목의 독트린이 최종 합의되었음을 선포합니다.” 17일 오전 경기 양평 블룸비스타호텔 국제회의실. 한반도 문제를 소통하는 비영리 청년 단체인 한반도정책컨센서스 정우진 대표(서울대 정치학과 석사)가 이렇게 선언하자 장내에 모인 청년 80여 명이 큰 박수를 쏟아냈다. 14일부터 3박4일 동안의 릴레이 토론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4년째를 맞는 한정컨의 올해의 주제는 ‘2040, 청년이 그리는 한반도의 미래’였고, 합의된 독트린은 최근 외교안보 현안부터 정부의 대북정책까지 다양한 이슈를 다뤘다. 독트린의 내용은 ‘중립적이고 탈정파적인 회의’를 지향한다는 단체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었다. ‘한일간 군사비밀보호협정(GSOMIA)을 지속시켜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라는 독트린 3항은 유지를 권고하는 가운데 독자적인 군사력 확보 방안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가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독트린 4항은 ‘역내 안보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견해를 명확하게 밝혔다. 독트린의 내용은 ‘4단계 상향식 회의’의 결과물이다. 올해 4월 1차 본회의에서 시작된 논의와 토론이 4차 본회의까지 이어지며 독트린의 형태로 구체화 된 것. 4차 본회의에서도 소위원회와 분과위원회, 상임위원회, 총회를 거치며 발제와 표결이 이어졌다. 18건의 안건이 소위원회에서 발제됐지만 13건만 총회에 올라왔고, 총회에서도 4건이 기각됐다. 사실과 어긋난 주장을 거르기 위해 자체적으로 구성한 ‘팩트체커’들이 각 위원회에서 활동했다. 토론위원(총 62명)으로 참석한 송민석 씨(명지대 정외과 18학번)는 “이번 회의의 절차와 내용에 만족한다. 상향식 합의제도와 숙의방식이 철저하게 적용되었고 내용도 청년이 알아야 할 한반도 이슈 전반을 다루고 있어서 앞으로 진로결정에 큰 도움이 될 것같다”고 말했다. 특정 이슈에 주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참석자들도 자신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개진할 수 있어서 결과에 승복하는 분위기였다. 총회에서 지소미아 유지 독트린에 반대표를 던진 한 참석자는 “한일간 역사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 북핵 저지를 이유로 한-미-일, 북-중-러 대결구도를 강화시키는 것은 일반 국민들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상향식으로 합의된 독트린’의 형태를 강조하는 것은 이름 그대로 1회성 토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 제안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합의된 독트린은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액션플랜으로 통일부를 비롯한 정부 기관에 제출될 예정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사회적 소통을 강조하고 있는 통일부도 큰 관심을 나타냈다. 14일 개막식에는 서호 통일부 차관이 직접 참석해 격려사를 했다. 서 차관은 정부의 지난해 이후 남북관계 개선 성과와 평화경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청년들은 ‘정부가 경제를 낙관하는 근거’ ‘북한 인권 문제에 침묵하는 이유’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도발’ 등 현안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정 대표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이룬 것들을 누리고 있고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압축적으로 해왔던 일들 때문에 놓쳐왔던 부분들을 청년들이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반도 문제 담론과 소통에서 청년의 역할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한반도 문제 담론을 ‘갈등과 대립’이 장악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념적으로 사상적으로 다뤄져 정쟁의 대상이 되었고 청년들은 이런 현상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보다 분명한 수준의 결과물을 원하지요. 그래서 우리 청년들은 기성세대보다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해보자,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합의 수렴의 정신을 견지해야 하는 논의구조를 발전시켜 가고 있습니다.” 행사에는 동아미디어그룹의 청년을 향한 한반도 플랫폼인 우아한(우리 아이들의 아름다운 한반도)에 참여하고 있는 청년들도 다수 참가했다. 부의장을 맡아 팩트체커로 활동한 이수빈 씨(서울대 경영학과 14학번)는 “미래 세대의 주역인 청소년들 또한 주가 되어 남북 교류를 진행해야 한다는 합의 하에, 접경 지역으로의 남북 청소년 캠프 추진, 남북 청소년 교류의 날 지정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안들이 제시되었다”고 소개했다. 박기범 씨(서울대 정치외교학부 15학번)는 “다양한 소속의 다양한 청년들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며 “청년들이 생각하는 민족담론이 기성세대의 것과 다르다고 생각해 왔는데 어떻게 다른지, 민족담론을 넘어서는 국익 우선의 통일정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기회였다”고 말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서현희 우아한 사무국 인턴기자}

    • 2019-08-19
    • 좋아요
    • 코멘트
  • 옆집의 탈북 가족은 안녕하신가요?[오늘과 내일/신석호]

    “기자 학생 양반. 거저 내 한글 쓰기 공부 좀 도와 주시라우. 나만 알고 있는 북한 정보를 조선말(북한말)로 써 드릴 테니 특종으로 내시고 대신 여기(서울 표준말) 표현으로 좀 고쳐 주면 서로 도움이 되지 않겠습네까?” 2000년대 초 북한학 석사과정에서 동문수학하던 한 탈북자 학생 A(당시 40대 남성)가 ‘따끈한 북한 정보’와 ‘현직 기자의 글쓰기 코칭’을 서로 맞교환하자며 이렇게 제안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든든한 북한 출신 정보원을 두게 된 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받아 보고 기대가 실망으로 변했다. 기사로 쓸 만한 새로운 정보는 없었던 반면, ‘조선말’을 고치는 데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걸렸다. 첫 번째는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임했지만 거래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줄 것은 별로 없었고 생업과 가사, 학업의 3중고는 나에게 계속 자선을 베풀 여유를 주지 않았다. A가 느꼈을 막막함을 10여 년 뒤 미국 워싱턴 특파원 부임 초기 간접적이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어려운 일을 말 한마디에 도와주던 지인들이 곁에 없는 조건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막막함이란?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존재론적 안정감’이 저하된 상태는 정착 초기 탈북자들이 훨씬 심했을 것이라는 공감이 밀려왔다. 탈북자들이 한국 생활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는 불편한 진실도 있다. 자유를 찾아 고향을 버린 그들을 굳이 구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대체로 더 잘 정착하는 이들은 북한에서도 권력과 경제력을 누리던 부류다. 노동당 간부 부모를 만나 평양소년학생궁전에서 예술과 스포츠를 배운 이들은 한국에서도 예술가와 체육인으로 잘나갈 수 있다. 변방에서 굶주리던 보통 사람의 자제들은 한국에서도 하층민 신세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인도의 아마르티아 센은 ‘왜 세상은 불평등하고 사람이 굶어 죽느냐’는 질문에 평생을 바쳤다. 1940년대 인도의 대량 아사(餓死·굶어 죽음) 사태를 연구한 그는 그저 ‘먹을 것이 부족해 굶어 죽는다’는 기존 경제학 통념을 깨는 결론에 이른다. 국가적으로 먹을 것이 충분한 상황에서도 정치 경제적 불평등 때문에 일하고 식량을 얻을 권리(entitlement)를 박탈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적게는 수십만에서 많게는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1990년대 초중반 북한 경제위기 ‘고난의 행군’도 대표적인 경우다.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들이 자본주의로 체제 전환을 하면서 달러와 에너지, 식량난에 처한 당시 북한의 변방에는 국가의 배급이 끊어졌다. 시장에서 돈을 벌 능력도 없는 말단 하급 공무원들은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만 쳐다보다 굶어 죽었다. 경제 실정의 책임이 있는 공산당 간부들은 고기를 구워 먹다 남아서 버렸다는 증언들이 있다. 센도 북한 경제난과 기아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자유와 풍요를 찾아 고향을 버리고 남한행을 택했다 관악구 임대아파트에서 굶어 죽은 한모 씨(42·여)와 아들 김모 군(6)의 죽음에 대해서는 뭐라 할지 궁금하다. 분명한 것은 한 씨 모자가 센이 말한 ‘생존을 위한 인타이틀먼트’에서 배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이 고난의 행군 시절 같은 경제위기에 빠진 것도 아니고, 드물게 나오는 아사자들이 북에서 온 사람만은 아니다. 하지만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지적처럼 평양은 이 사건을 내부 선전에 적극 활용할 것이 분명하다. 센은 ‘풍요 속의 아사’라는 비극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개인의 역량(capability)을 키우는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도 이번 사건이 국가에 기대서도, 시장을 통해서도 먹고살 길이 막막한 탈북자들이 없는지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충고할 것이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19-08-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문재인 정부를 향한 김정은의 핵공갈…배경은?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Q. 북한이 25일 새벽 5시경 두 차례에 걸쳐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의 대한민국 영공침범 사건에 이은 이번 사건이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것인지,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양소희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14학번A. 2016년 11월 박근혜 정부 다시 통일연구원은 ‘북한 핵 개발 고도화의 파급영향과 대응방향’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북한은 그해 1월 6일 제4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다음해까지 2년 동안 핵무력 완성을 위한 연쇄 전략도발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보고서의 5장은 북한 핵능력의 강화가 대남정책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다루고 있는데, 2년 8개월이 지났지만 지금 상황에도 시사점이 있는 것 같아 소개해 볼까 합니다. 핵심적으로 보고서는 “유화전략, 평화공세, 군사적 도발 등을 동시에 병행하면서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듯한 태도는 핵무기 고도화에 따른 공격성이 남북관계로 투영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보고서는 아버지 김정일 시대와 아들 김정은 시대의 대남정책 변화를 핵무기 고도화라는 변수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거 김정일 시대에는 대남도발 이후 유화정책으로 전환하는 순차적 강온정책을 구사한 반면, 김정은 정권은 대화공세를 하면서 동시에 무력도발을 하는 강온 병행정책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북관계 악화국면과 갈등상황에서도 대남 도발과 비대칭 위협을 확대함으로써 남북관계의 의제를 ‘정치군사분야’로 유도하는 전술을 취하고 있다”며 “이와 같이 북한은 핵무기 고도화가 이루어질수록 공격적인 대남정책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쉽게 말해 김정은 시대에 들어 북한은 핵 능력이 강화될수록 남한에 대해 대화 제의도, 무력도발도 강화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현재의 상황에 대한 설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말까지 전략도발을 강화한 뒤 11월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으며 2018년부터는 남한과 미국을 상대로 한 과감한 대화 공세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올해 5월 북한 판 이스칸데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하며 다시 대남 무력공세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26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미사일 발사를 ‘무력시위’라고 공표하면서 남한에 대한 노골적인 내정간섭에 나섰습니다. 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발사를 현장에서 지도하면서 “남조선 당국자가 사태 발전 전망의 위험성을 제때에 깨닫고 최신 무기 반입이나 (한미) 군사연습과 같은 자멸적 행위를 중단하라”고 말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아무리 비위가 거슬려도 남조선 당국자는 오늘의 평양발 경고를 무시해 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알려진 것처럼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이 미사일은 발사 후 고도를 스스로 높이고 낮추면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패트리엇과 같은 방어체계의 요격을 피해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거리가 600km를 넘어 핵탄두를 장착해 한반도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수준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한국이 스텔스 기능을 갖춘 F-35 전투기 등을 미국에서 들여온 것에 대한 노골적인 반발로 풀이되므로 쉽게 말해 ‘미제 무기를 들여오고 미국과 군사훈련을 계속하면 핵미사일을 날려버리겠다’는 적나라한 협박인 셈입니다. 정치군사적으로 본다면 ‘핵미사일을 맞지 않으려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우리의 요구대로 정리하라’는 주장인 셈이구요.물론 북한의 이런 협박은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엔 일상적인 것이었습니다만, 그동안 사이가 좋은 척 했던 문재인 정부를 향한 것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것이기도 합니다. 핵을 가진 북한은 남한 정부가 자신과 친하건 소원하건 주인 행세를 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내비친 것이지요. 앞서 소개한 통일연구원 보고서가 ‘핵무기 고도화에 따른 공격성이 남북관계로 투영된 결과’라고 지적한 것과 똑 같은 상황인 셈입니다.북한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핵을 든 대정간섭에 나섰는데도 청와대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정부 당국자는 “매체에 보도된 것이어서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는 태도입니다만, 문맥상 보도는 김정은의 직접 워딩을 전달한 것으로 읽힙니다. 그 내용은 엄연한 내정간섭이며 남한 정부에 대한 협박임을 지적하고 반박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미국과 대화하면서 중국과 러시아를 등에 업은 북한이 이제 남한 정권을 다루려 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겁니다. 대한민국과 북한은 아직도 휴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핵을 가진 북한은 필연적으로 남한을 좌지우지하려 할 것이고 그 대상이 박근혜 정부이건 문재인 정부이건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2019-07-29
    • 좋아요
    • 코멘트
  • 김정은은 웃고 있다[오늘과 내일/신석호]

    “북한은 핵·미사일 카드를 쥐고 미국과 중국을 쥐락펴락하는데, 한미일 3국 협력체제는 분열 조짐을 보이고….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굳혀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일제 강제징용 배상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촉발한 한일 무역 갈등을 답답한 심경으로 지켜보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에게 SNS로 넋두리를 했다. 그도 그러고 있었는지 10초 만에 답장이 왔다. “옳습니다.” 태 전 공사는 지난해 발간한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노동당과 외무성이 이미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 당시 “인도와 파키스탄처럼 핵실험 동결을 선언하고 장기적으로 남조선과 미국에 북한의 핵에 대한 ‘면역력’을 조성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폭로했다. 돌아보면 맞는 이야기다. 북한은 2017년 말까지 핵·미사일 능력을 최대한 강화한 뒤 2018년부터 2년째 주변국들의 ‘면역력’을 키우는 평화 공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과의 ‘전략적 3각 관계’를 최대한 활용해 재미를 봤다. 미국과 대화해서 몸값을 높인 뒤 경쟁 관계인 중국의 지갑을 열고, 중국과 대화해서 미국을 붙들어 두는 것이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정확히 이런 구도 속에서 지난달 20일 북-중 정상회담과 30일 판문점 북-미 회담이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판문점 회담이 정말 하루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SNS 제의로 이뤄졌을까요? 시진핑 중국 주석이 평양에 가는 문제에 대한 북-중 양국 간 논의가 이뤄지고 있을 즈음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습니다. 두 회담을 한 묶음으로 봐야 합니다.” 김정은은 G2 정상을 북한 땅에 불러들인 외교적 성과를 올해 2월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 이후 커진 국내 정치적 위기 극복에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판문점 월북’ 장면을 대대적으로 선전해 엘리트와 인민들에게 ‘핵을 가졌으니 가능한 일’이라며 선전하고 있을 터다. 중국의 인도적 지원으로 대북제재로 인한 경제 위기에서 한숨 돌리게 됐다. 베이징 소식통은 “시 주석이 가시는데 아무래도 선물이 필요하니까. 우선 식량과 식량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 중심으로 신경을 쓴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경제제재를 풀지 않는 한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여기에 올해 4월 인사에서 샛별처럼 떠오른 김재룡 내각 총리와 리만건 당 조직지도부장은 김정은이 내년 트럼프 대통령 재선 국면에 사용할 대미 강경책을 준비하는 인적 포석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 내각 총리는 군수공업의 메카인 자강도에서 당 위원장을 지냈고 당 조직을 총괄하는 리 조직지도부장은 북한의 미사일 전문가다. 한 전문가는 “핵심적인 국정과제 수행을 위한 엘리트 인사의 전형”이라며 “협상에 실패할 경우 사용할 카드를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평양은 벌써 내년을 준비하고 있는데 김정은의 핵보유국 지위 굳히기를 막아야 할 핵심 당사국인 한국과 일본은 과거의 문제로 싸우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일본을 비난하며 문재인 정부를 돕고 있는 듯하지만 속내도 그럴까? 한일의 싸움에 미국이 전과 같은 중재 역할을 주저하면서 한미일 3각 협력관계, 특히 안보 협력의 이완도 우려되고 있다. 박재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경제 분쟁이 악화되더라도 안보 관계는 훼손되지 않도록 세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갈등의 골이 깊어져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면 북핵 저지에 막대한 차질이 오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글로벌 안보 네트워크에서 한국만 고립된 행위자(node)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는 설명이다. 이야말로 김정은이 진짜 바라는 것 아니겠는가.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19-07-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일 갈등을 대하는 오바마와 트럼프의 차이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2기를 워싱턴 특파원으로 지켜본 것을 지난해 책으로 묶어 내면서 9장의 제목을 ‘역사 문제에 묶인 한미일 유사 동맹’이라고 정했습니다. 2013년 12월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면서 시작된 박근혜 정부와의 갈등은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협정이 나올 때까지 2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양국 정부와 민간이 참여해 국내는 물론 국제무대로까지 비화된 당시 갈등은 태평양 건너 워싱턴에서 절정을 이뤘습니다. 양국 정부와 전문가, 민간단체들은 혼연일체로 워싱턴에서 오바마 행정부 설득에 나섰습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의 잔혹함을 들어 역사적 정당성을 주장했고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 등을 들어 “한국이 자꾸 골대를 옮긴다”고 맞섰습니다. 그것은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습니다. 북한 핵문제에 대응해 양국의 협력이 절실했지만 미국과 한국, 미국과 일본 동맹을 두 축으로 한 한미일 3국 협력관계는 ‘유사동맹’에 불과했습니다.그 2년 동안 한국의 워싱턴 특파원들은 미국의 글로벌 정책이나 대북정책을 취재해야 할 시간 상당부분을 할애해 워싱턴의 한일 역사전쟁을 취재 보도해야 했습니다. 스스로를 ‘종군기자단’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한국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미국인들이 많아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에드 로이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공화당), 마이크 혼다 미 연방 하원의원(민주당), 티머시 휴고 버지니아주 하원의원(공화당), 샤론 블로버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카운티 의장 등이 그들이었습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미국 정치인들이 한국을 지지한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인류 보편적인 가치이자 미국의 가치인 인권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블로버 의장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자 인신매매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라고 잘라 말했습니다.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초당적인 한국 지지에 동참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끔찍하고 지독한(terrible, egregious) 인권 침해”라고 말했습니다. 힐러리도 국무장관 시절인 2012년 모든 공문서에 ‘위안부’(comfort women)라는 일본어 번역 표현 대신 ‘강요된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라는 말을 쓰라고 지시했을 정도였습니다. 두 지도자의 한일 역사문제 인식은 뚜렷했지만, 가장 중요한 아시아의 두 동맹국의 협력관계도 못지않게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미국 내에서 한일 역사갈등 피로감이 커지는 가운데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2014년 12월 “내년(201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라며 “양국이 개방적이고 친근하며 전면적인 협력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미국의 우선순위 과제”라고 말했습니다. 다음해 한일 양국이 위안부 협상의 속도를 내게 된 것도 오바마 행정부의 막후 중재 역할이 컸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최근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촉발된 한일갈등은 당시를 기억나게 합니다. 다시 워싱턴에서 한일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당시와 같은 미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워싱턴을 방문하고 14일 귀국한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기자들에게 “미국 측에 직접적으로 중재 요청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만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12일 미국의 중재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단은 당사국이 직접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히며 미리 선을 그었습니다. 국내에서는 당장은 아니라도 한일 갈등이 장기화되고 한미일 협력관계에 악영향이 오면 트럼프 행정부가 끝내 개입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큰 것으로 보입니다.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위안부 갈등과 무역갈등은 다른 점도 많기 때문입니다. 위안부 문제는 아베 총리의 신사 방문이라는 정치적 행위가 촉발했습니다. 이번 일본의 무역보복은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한 개인청구권이 외교협정(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소멸할 수 없다는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반발적 성격이 강합니다. 미국은 위안부 문제는 인류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이번 문제는 두 국가 간의 외교협정과 사법부 판단차이라는 법률적 문제로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여기에 오바마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성격 차이도 크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행정부 모두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서 대외정책에서 헤게모니(hegemony)를 추구해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오바마 행정부의 헤게모니와 트럼프의 그것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미국 국내정치가 추구하는 자유주의의 가치를 대외적으로 전파하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자유주의적 헤게모니(liberal hegemony)를 유지한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자유주의 가치를 따지지 않는 비자유주의적 헤게모니(illiberal hegemony) 유형이라는 겁니다. 쉽게 말해 오바마의 자유주의적 헤게모니는 대외정책에서 실리뿐 아니라 ‘자유주의 가치’라는 명분을 중시하는 반면, 트럼프의 비자유주의적 헤게모니는 ‘미국의 국가이익’을 무엇보다 우선하며 필요한 경우 자유주의 가치도 버린다는 것이지요.요컨대 오바마 행정부는 인권이나 역사적 정당성 등의 인류 보편적 가치를 들어 위안부 문제에서 한국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강점기 당시 일본 기업의 강제 징용에 대한 한국 사법부의 판단에 근거한 이번 일본의 경제 보복 문제를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국가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한일관계가 악화되면 한미일 협력관계라는 미국의 이익이 악화된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기대인 것 같습니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한일간 역사문제의 정당성이나 자유무역이라는 가치 등을 근거로 한국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기업인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해서 보호무역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그의 ‘미국 우선주의’에 따르면 동북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두 동맹국 간의 복잡한 역사적 갈등관계를 찬찬히 이해하기보다는 일본과 한국 가운데 누가 더 미국의 정치와 경제에 도움이 되는 동맹인지를 우선 고려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의 팽창과 이란과 북한의 핵무장 등을 막는 국제적 이슈에 대해 어느 나라가 더 앞뒤 안 가리고 미국을 지원했는지도 볼 터입니다. 그렇다고 대놓고 일본을 지지하지는 않겠지만 독도나 일본해 표기 문제에서처럼 무개입 원칙을 유지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이런 추론이 사실일 경우 지금부터 정부가 무엇을 하느냐보다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느냐가 워싱턴을 마음을 좌우한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무역 보복이라는 기습을 하고 나온 일본 정부는 이미 사전에 단단히 준비를 한 모양새이기 때문입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2019-07-15
    • 좋아요
    • 코멘트
  • 트럼프·김정은, ‘우린 절친’ 과시했지만…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6월 30일 판문점에서는 역사적인 순간들이 연출됐습니다. 사상 최초로 미국 현직 대통령이 북한 땅을 밟고 한국과 미국,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한 자리에 그것도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만났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정치적 이벤트에 비해 비핵화 협상의 실질적인 진전은 크지 않았습니다. 양측이 2, 3주 내에 실무협상을 재개한다고 합의한 것은 협상국면을 이어나가기 위한 절차적인 측면입니다. 양측이 하노이 회담에서 드러난 비핵화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커다란 인식 차이를 좁혔다는 어떠한 증거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양측이 어제 공개한 발언 외에 물밑에서 어떤 진전을 이루고 있는지 당장 알 수는 없습니다. 배석자가 없는 53분 동안의 북-미 3차 정상회담에서 비밀 거래가 없었다고 본다면, 이번 회담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국내정치적 필요라는 관점에서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양 측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비핵화 협상에 대한 상대방의 실질적인 양보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두 정상이 하루 동안의 소통 결과 판문점에서의 역사적 만남을 연출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두 정상이 ‘토요일 연락, 일요일 만남’을 유독 강조한 것이 증거입니다. 김 위원장은 “어제 아침에 (트럼프) 대통령님께서 (만나자는) 그런 의향을 표시하신 것을 보고 나 역시 깜짝 놀랐다”며 “정식으로 오늘 여기서 만날 것을 제안하신 말씀을 (6월 29일) 오후 늦은 시간에야 알게 되었다”고 구체적으로 경위를 설명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SNS로 메시지를 보냈을 때, 사실 이 자리가지 오시지 않았으면 내가 굉장히 좀 민망한 모습이 됐을 텐데 이렇게 나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고 화답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불렀는데 당신이(김정은 위원장이) 나왔으니 우린 정말 친한 친구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 간 관계에서 예고 없이 갑자기 불러도 만사 제쳐두고 나오는 사람을 진짜 친구로 쳐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저는 두 정상이 친서를 주고받으며 모종의 교감을 했다고 보는 편입니다만, 어쨌든 형식적으로 두 정상은 ‘서로 갑자기 불러도 나오는 사이’라는 점을 세계와 자국 여론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정상이 어제 이벤트로 얻은 국내정치적 이득은 상당합니다. 2020년 재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정상회담을 계기로 거의 모든 국가수반들과 만나 다양한 이슈를 관리(manage)하는 세계의 대통령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무역협상 재개를 합의한데 이어 김 위원장과 비핵화 협상을 재개한다는 성과를 보여준 것이지요. 미중 무역협상 재개로 글로벌 경제의 위기상황을 피했습니다. 한반도에 와서는 “내가 취임하기 전 한반도는 전쟁직전이었다”며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대비해 자신을 ‘평화의 수호자’로 포장하는데 주력했습니다. 김 위원장도 판문점 행보 내내 즐거운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호출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평양에서 진행되어 온 정치적 논란을 어느 정도 불식하는 호재임에 분명합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3월 공개적으로 밝힌 대로 북한 내부에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고, 이 목소리는 하노이 회담 결렬로 더욱 커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주요 회담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과 숙청설이 나도는 상황에 이뤄진 이번 회담은 하노이 회담 결렬이 끝이 아니며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여전히 존중하고 있다는 점을 홍보하는데 대대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입니다.그러나 국내정치를 염두에 둔 정치적 이벤트가 곧바로 국제정치 차원의 비핵화 협상의 진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회담 전에도, 올해 2월 하노이 회담 전에도 양측 실무자들 사이의 실무접촉이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비핵화 조치에 대해서는 합의를 보지 못하고 최고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넘겼습니다. 특히 이번 실무회담에는 하노이 회담까지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이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이 북측 대표로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북핵문제 전문부서인 외무성 라인으로 1994년 제네바 협상과 2005년 9·19공동성명, 2012년 2·29합의가 이뤄지고 깨지는 과정을 지켜봤거나 담당했던 그야말로 베테랑들입니다. 미국으로선 더욱 어려운 상대를 마주해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국제사회는 화려한 정치적 이벤트보다 하노이 회담을 결렬로 이끈 양측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변화하는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영변 핵시설 해체만으로 국제사회의 제제에서 벗어나겠다는 북한, 핵과 미사일뿐만 아니라 모든 대량살상무기(WMD)를 포기하라는 미국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조금이라도 양보를 할 수 있을까요? 양국의 안보문제일 뿐아니라 한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쉽게 해법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속도가 갑자기 빨라질 것 같지도 습니다. 김 위원장이 올해 말까지 인내심을 유지하겠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속도가 아니라 바른 길로 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습니다.신석호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2019-07-01
    • 좋아요
    • 코멘트
  • [전합니다]북한연구학회, 28일 ‘한반도 대전환기’ 주제 하계학술회의 개최

    사단법인 북한연구학회(회장 양문수)는 28일 오후 1시 강원 춘천시 강원대60주년기념관에서 ‘한반도 대전환기: 북한의 선택, 가능성과 한계’를 주제로 하계학술회의를 연다.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다시 커지는 상황에 북한의 선택지들이 무엇인지, 그 가능성과 한계를 확인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양문수 회장(북한대학원대 부총장)은 “(지금과 같은 상황일수록) 북한을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19-06-26
    • 좋아요
    • 코멘트
  • 우리가 통일할 수 있다고 말하려면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남한이 주도하는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주변 강대국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통일 과정에 파생되는 문제들을 감당할 수 있다는 증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들일까요?”우아한(우리 아이들의 & 아름다운 한반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SNUKOA) 소속 강서연 씨(서울대 중문과 18학번)가 올해 4월 이런 질문을 해왔습니다. 너무 중요하고 근본적인 질문이어서 지난해 11월 런칭 이후 우아한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두 모아 보기로 했습니다. 6월 중순 40여 명의 전문가들에게 메일을 보낸 결과 모두 아홉 명이 구체적인 답변을 해 오셨습니다. 너무 소중한 의견들이라서 오늘 제가 종합해서 핵심을 전달해 드리고 25일부터 4일 동안 주제별 의견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우아한 사상 처음 있는 ‘전문가 콜라보’입니다.먼저 우리가 통일을 할 수 있는 이념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남북한은 서로 상대방의 국체를 인정하지 않고 수복과 통일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남북한을 두 나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진심으로 우리가 통일을 원한다면 국제사회가 수긍할 수 있는 통일전략을 수립해 공개해야만 한다”며 “중국이 수십 년에 걸쳐 국제사회를 집요하게 설득하고 압박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얻어낸 것처럼 우리도 ‘원 코리아(One Korea)’ 원칙을 다시 재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안준형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도 “한반도 통일에 대한 국제적 지지와 협력을 유도함에 있어 그 출발점은 국제적 차원에서 활용 가능한 ‘하나의 한국’(One Korea)론을 체계화하고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전수미 경희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변호사)도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를 대비해 1966년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 규정한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 남북한이 당사자라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미리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이념적 근거가 수립되면 통일에 수반되는 과제별로 우리의 능력을 미리 보여주어 국제사회에 믿음과 신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안세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민족의 저력과 시너지를 부각시키는 것”이라며 “북한 내 우수한 인력과 노동력이 남한의 자본 및 기술과 결합할 때 누릴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켜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통일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북한의 경제 발전을 지원할 수 있는 한국의 경제적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박재적 한국외대 교수는 다섯 가지의 과제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했습니다. ①북한이 보유하였던 생화학 무기 처리 ②북한 지역 안정화 ③북한의 핵처리 ④난민문제, 이행기 정의 실현 ⑤북한 인프라 개발, 북쪽 주민의 연금, 복지, 일자리 창출, 교육, 주거 문제 등입니다.(항목별 준비과제는 26일 우아한에 소개합니다)홍규덕 숙명여대 교수는 “우리가 한반도라는 좁은 지형 내부의 문제 뿐 아니라, 지역 문제, 특히 국경을 넘어 발생하는 다양한 도전과제 해결에 적극 참여하고 때론 희생을 감수하고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이 과정에 주변국들의 안보우려 해소와 신뢰구축은 필수적입니다. 오경섭 연구위원은 “통일한국이 주변국들에게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고 역내 평화와 안정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수미 교수도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와 같은 주변국과 지속적인 대화를 통한 신뢰구축으로 남한주도의 통일이 각 국의 발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구축에 이바지 할 거라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이 모든 과정을 미리 보여준 사례가 바로 독일의 통일입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독일 통일의 사례를 예로 들면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국가의 완성도를 높이는 중장기적 노력이 필요하고 북한주민들에게 매력적인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김상국 독일 국립베를린자유대 교수는 “한반도 통일이 주변 강대국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주변국에게 현 분단 상황보다는 통일이 그들에게 더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공해야 한다”며 “독일의 경우 강력한 경제력과 뛰어난 외교역량이 바탕이 된 가운데 통일을 하겠다는 양국 국민의 지지와 결단이 강대국을 설득시켰다”고 지적했습니다.전수미 교수는 “3대 세습을 하고 있는 북한의 경우 예상보다 시스템이 구축되어있어 정권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의견과 자체의 취약성으로 인해 붕괴할 것이라는 시각이 공존한다”며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고려해서 준비해야 하며 찾아올 수 있는 통일의 기회를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2019-06-24
    • 좋아요
    • 코멘트
  • 기로에 선 시진핑 대북정책[오늘과 내일/신석호]

    2013년 6월 7,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휴양지 랜초미라지에서는 집권 2기를 시작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막 취임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첫 정상회담이 열렸다. 북한이 3차 핵실험(2월 12일)을 실시한 지 넉 달이 채 안 된 시점에 만난 두 정상은 북핵 문제 대응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토머스 도닐런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8일 두 정상의 합의사항을 브리핑하면서 북핵 문제를 가장 먼저 거론했다. 공식 발표 내용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양국이 공동 노력한다는 다소 진부한 내용이었다. 합의사항의 ‘앙꼬’를 전한 것은 며칠 뒤 뉴욕타임스(NYT)였다. 시 주석이 “김정은의 태도가 변화할 때까지 직접적으로 포용 또는 간여하지(engage) 않겠다”고 오바마 대통령과 약속했다는 내용이었다.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시 주석은 한동안 약속을 성실하게 지켰다. 북한이 2015년 말까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 이렇다 할 전략도발을 하지 않았지만, 북-중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다. 2016년부터 2년 동안 이어진 북한의 핵무력 완성 국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 주석은 2017년 말까지 박근혜 대통령을 여덟 차례, 문재인 대통령을 세 차례나 만났다. 하지만 상황은 지난해부터 급반전됐다. 김정은이 신년사 이후 대미 대남 평화공세에 나서자 시 주석은 올해 1월까지 네 차례 김정은을 중국으로 불러들였다. 이에 대한 답방 형식인 20일 평양 방문을 통해 시 주석은 6년 전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 ‘랜초미라지 약속’에서 최종적으로 벗어나는 꼴이 됐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이자 북한 핵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을 배제하는 실례까지 범했다.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적어도 4월 초까지 중국 외교부는 시 주석이 일본을 방문하는 길에 한국과 북한을 차례로 들러 동북아 3국을 두루 배려하는 모양새를 그렸다. 이번 방북이 급하게 결정되었다기보다 방남이 급하게 취소됐다고 보는 것이 옳다. 무엇이 시 주석을 조급하게 만들었을까.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은 최근 출간한 ‘북한, 생존의 길을 찾아서’를 통해 북한이 미국, 중국과의 ‘전략적 삼각관계’를 활용해 핵을 개발하고 생존의 길을 모색해 왔다고 지적했다. 1993년 1차 북핵 위기를 통해 미국과의 직접대화 길을 뚫자 한중 수교 이후 멀어지던 중국의 관심도 되돌렸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접대화 카드를 흔들어 시 주석을 결국 평양까지 불러들인 것도 마찬가지다. 오바마에서 트럼프로 미 행정부가 바뀐 것도 요인이다.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강조하며 중국의 선의에 기댔던 오바마 대통령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전부터 “중국이 우리를 호구로 보고 있다”고 비난하며 무역과 기술, 대만 문제 등에서 중국을 강하게 몰아붙이고 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러시아와 함께 전통적인 북-중-러 3각 동맹 강화에 나선 중국에 미국과 싸우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는 한국은 눈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6년 전보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됐다는 점을 상기하면 ‘랜초미라지 약속’을 벗어던진 시 주석의 대북 포용정책은 퇴행적이라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영변만 내놓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벗어나겠다’는 김정은 식 계산법을 인정하면 ‘핵을 가진 평화(nuclear peace)’라는 평양의 전략목표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 한때 6자회담을 주도하며 북핵 문제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중국이 ‘중국 배후론’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

    • 2019-06-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시진핑 주석의 방북 택일 추적기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지난해 이후 북핵 대화 국면에서 종종 ‘서울의 베이징 외교 소식통’들을 만날 때마다, 단연 주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 시점이었습니다. 시 주석은 올해 1월까지 모두 네 차례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베이징 등으로 불러들였지만, 약속한 평양 답방은 미루어왔습니다. 소식통의 전언을 시기적으로 복기하면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최고지도자인 시 주석의 평양 방문 시기를 놓고 매우 오랜 시간 고민을 거듭해 왔습니다.지난해 9월 초 소식통을 만났을 때 역시 시 주석의 방북설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앞두고 싱가포르 북-미 1차 정상회담 이후 공전 상태였던 비핵화 대화가 다시 활로를 모색하던 시기였습니다. 김 위원장이 이미 3월과 5월, 6월 세 차례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을 만난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히 시 주석이 평양을 방문해 회담 진전을 위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파다했습니다.하지만 소식통들은 이런 관측을 부인했습니다. 시 주석은 아직 한 번도 평양에 가겠다는 의시표시를 한 적이 없고, 시 주석이 평양에 간다는 해외언론들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 소식통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베이징에서는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판단이 더 강합니다. 싱가포르 회담이 끝난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회담이 빨리 진전되지 않는 원인을 중국에 돌렸습니다. 이른바 ‘중국 배후론’이죠. 이런 가운데 시 주석이 평양에 가게 되면 중국이 스스로 배후론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모양새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오히려 내년(2019년)은 중국과 북한이 국교를 수립한지 70주년이 되니 이를 기념하는 명분으로 방북하는 것이 옳다는 기류가 많습니다.”실제로 시 주석은 지난해 방북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1월 8일 김 위원장을 다시 한번 베이징에 불러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북-중 양국 공조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2월 말 하노이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담이 결렬로 끝났지만 시 주석은 역시 방북 카드를 쓰지 않았습니다. 4월 1일 만난 베이징 소식통에게 다시 전망을 요청했습니다.“하나도 정보 없이 분석하는 겁니다. 6월에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가 있잖아요?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되면 일본에 가시게 될 겁니다. 아베 총리가 지난해 중국을 방문했고 중일 관계가 좋아지는 상황입니다. 일본에 가는데 한국에 안 오면 한국 분들 서운해 하시잖아요. 문재인 대통령도 중국을 방문하신 상황이고. 한국에 오시게 되면 북한 안 찾아가면 서운하겠지요. 그런 이유로 6월 중에 동북아 3국 방문이 이뤄지지 않을까 합니다.”시 주석이 20일과 21일 평양을 방문한다고 17일 오후 북한과 중국이 동시에 발표하면서 이 소식통의 ‘정보 없는 분석’은 맞아 떨어졌습니다. 시 주석이 한국도 방문할 것이란 전망만 빼고 말이죠. 어제 양국 발표를 두고 다양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 지도부가 시 주석의 평양 방문을 놓고 지난해부터 고민해 왔으며 올해 성사를 목표로 고민해 왔다는 점입니다. G20 일본 회의를 계기로 하는 것이 유력한 선택지였고, 최근 그것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무역과 5G 기술 전쟁 등 다방면에 걸친 미-중 패권전쟁의 심화 과정에 이뤄지는 시 주석의 이번 방북은 하노이 회담 이후 공전상태인 북-미 비핵화 대화와 남북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크게 보면 시 주석의 이번 방북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과 중국, 러시아와의 전통적인 우방관계를 강화하는 수순으로 볼 수 있습니다. 4월 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이은 14년만의 중국 최고지도자 방북은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적한 ‘중국 배후론’을 사실상 공개적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시 주석은 이달 초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북한 비핵화와 북한의 안전보장 및 경제 발전을 맞교환해야 한다”고 언급했고 쑹타오 대외연락부장은 어제 “중국은 북한이 새로운 전략 노선을 실시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새로운 전략 노선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언급한 “정전협상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계를 평화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1월 8일 북-중 4차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한반도 정세 관리와 비핵화 협상 과정을 공동으로 연구·조정해 나가는 문제와 관련해 심도 깊고 솔직한 의사소통을 진행했다”고 밝힌 대목과도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요컨대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은 중국 및 러시아와의 동맹관계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국과 일본의 3각 동맹 및 협력관계의 이해를 저해하는 것이지요. 이미 중국과 러시아는 대규모 인도적 식량 지원 및 비공식 에너지 지원 등을 통해 미국이 이끄는 국제사회의 제재 레짐을 완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중러 3국의 최근 정상 간 대화는 이를 위한 정치적 스크럼을 강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경제와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미국이 중국이 가진 대북 레버리지를 더 활용해 달라고 요구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의 노력에 적지 않은 차질이 예상되고 있습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2019-06-18
    • 좋아요
    • 코멘트
  • 지금 평양에 ‘조문정치’ 할 여유는 있을까?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북한의 김대중 대통령 조의방문단 일행 6명이 서울에 온 2009년 8월 21일 저녁. 청와대 주변에는 “조문단이 검은색 서류가방을 들고 왔는데 거기에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가 들어있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취재에 들어갔지만 확인이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북한의 장거리미사일(ICBM) 발사(4월 5일)에 이은 2차 핵실험(5월 25일)의 여파로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이 정상회담을 카드로 남북관계를 반전시키는 ‘조문정치’를 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소문을 근거로 섣불리 기사를 쓰기는 어려웠습니다.하지만 북한의 ‘조문정치’는 가능성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23일 청와대 방문을 자청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은 “저희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는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이 잘 실천되면, 앞으로 북남 수뇌들이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말씀하습니다”라며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의 자서전인 ‘대통령의 시간: 2008-2013’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평양으로 돌아간 김양건 부장은 28일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남북 정상회담을 원한다”고 정식으로 요청을 해왔습니다.이렇게 시작된 남북 정상회담 논의는 그 해 10월 김양건 부장과 임태희 당시 노동부장관의 싱가포르 비밀접촉(10월 17일)으로 급물살을 탔지만 통일부와 통전부간 개성회담(11월 7, 14일)에서 최종 결렬되게 됩니다. 남북간에 서로 조건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과정에 이명박 정부 내에 대화와 원칙을 놓고 대북정책의 노선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조문정치’로 시작된 이명박 정부의 첫 남북대화는 그렇게 결실을 맺지 못하고 다음해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침몰하게 됩니다.10일 오후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별세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버전의 ‘조문정치’ 가능성을 둘러싼 다양한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도 관혼상제를 중시하는 나라입니다. 고인은 2000년 6월 평양에서의 첫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습니다. 2011년 12월 26일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빈소를 방문해 상주인 김정은 위원장을 처음으로 만났다는 점에서 어떤 형식으로건 조의를 표할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관심은 어떤 형식과 수위인지에 모아집니다. 고위급 인사가 조문단을 이끌고 올수록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김 위원장의 의중을 읽을 수 있고, 조문단이 오지 않고 김 위원장이나 대남조직 명의의 조전만 온다면 그 반대일 것이라고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이 10일 말했습니다.10년 전 당시와 지금 상황을 비교해보면 북한이 조문단을 보내거나 조의는 전하겠지만 당시처럼 적극적인 ‘조문정치’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북한은 올해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미대화의 다리를 놓은 문재인 정부에 불편한 심기를 공개적으로 표시해왔습니다. 나아가 “중재자요 촉진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되라”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북한이 남북대화를 통해 한국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야 할 상황인 것은 같습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아들에게 권좌를 물려주는 권력세습을 완성하기 위해 달러와 식량이 절실했습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겹겹이 제재에 가로막힌 지금의 북한도 달러와 식량이 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도 미국의 허락 없이는 제재를 우회해 대북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평양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10년 전은 북한이 전략도발로 한국과 국제사회의 우려를 키운 상황에서 우연하게 찾아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대화 재개의 계기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문정치’라는 표현이 어울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문재인 정부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경색된 북-미, 남북관계를 되살리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북한으로서는 굳이 조문을 대화 재개의 계기로 삼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10년 전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보다는 남북관계가 위축되었지만 김양건과 같이 오랫동안 남북관계를 실행해 온 베테랑 엘리트들이 살아 있었고 통전부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등 조직들도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평양에서는 대미라인과 동시에 대남라인에 대한 일제 검열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통전부장에서 물러난 뒤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김성혜 통전부 통일전선책략실장 등에 대한 검열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아태와 민화협 등은 대남 사업을 전면 중단하고 문을 닫아건 상황입니다.곧 공개될 것으로 보이는 북한의 이번 조문 및 조의 형식과 수위는 안팎으로 불편한 북한의 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19-06-11
    • 좋아요
    • 코멘트
  • 숙청도 할아버지 따라하기? 김정은식 스타일? [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최근 두 명의 탈북자 출신 기자가 북한 평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숙청 바람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먼저 동아일보의 주성하 기자가 지난달 30일 ‘서울과 평양사이’ 칼럼에서 여섯 사람을 거론했습니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 간여했던 김성혜 통전부 통일전선책략실장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고, 박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은 가족과 함께 지방으로 추방되었으며,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과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도 취조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미국통인 한성렬 외무성 부상이 총살됐다는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책임을 지고 통전부장 자리에서 내려온 김영철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사단의 몰락이라는 것입니다. 다음날인 31일자 조선일보 1, 3면을 통해 김명성 기자는 ‘북한 소식통’을 소스로 한발 더 나갔습니다. 김영철은 자강도 노역형에 처해졌고 김혁철은 총살되었으며 김성혜와 신혜영(하노이 김정은 통영사)은 정치범수용소에 보내졌다는 겁니다.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도 근신에 처해졌다며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이후 처음으로 노동신문에 “반당, 반혁명, 준엄한 심판” 등의 표현이 등장했다고 함께 전했습니다. 저 역시 2월 28일 하노이 북-미 2차 회담이 결렬되는 그 순간부터 상당한 기간 동안 평양에서 ‘수령의 잘못’을 대신 짊어질 엘리트 숙청 바람이 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fact)이라고 할만한 것은 김영철이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자리를 유지하면서 통전부장 자리에서는 내려왔다는 4월 24일 국정원 국회 보고가 전부입니다. 청와대와 통일부 등이 김혁철 처형 등 보도에 대해 신중한 반응인 가운데, 3일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김영철이 김정은과 함께 군 예술공연 관람을 했다고 전했고 ‘김영철의 자강도 노역형’ 보도의 신빙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그를 포함해 다른 인사들의 현재 상황이 확인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북한 당국이 최근 밖으로 통하는 문을 꽁꽁 닫아놓고 지난해 이후 북-미, 남-북 대화의 전 과정을 철저하게 ‘총화’ 및 ‘검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방북했던 한 해외동포 단체 관계자는 “아태(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도 완전히 닫혔다. 연말까지 남북관계는 어려울 것”이라며 평양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전했습니다만 숙청설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북미 대화도 올 스톱 상황입니다. 하노이 책임자들에 대한 조사와 숙청이 진행되고 있음을 추할 수 있는 이론적이고 역사적인 근거들은 많습니다. 소련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현실사회주의의 역사는 숙청이 그들의 일반적인 정치 현상임을 말해줍니다. 미국의 공산주의 연구가이자 민주당 전략가로 불리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1956년 펴낸 ‘영구 숙청: 소련 전체주의의 정치’라는 책에서 숙청이 소련 전체주의 체제 전반에 역동성과 동기를 부여해 주는 정치적 수단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당원 개개인에 대한 객관적인 성과평가가 어려운 상황에서 숙청은 소련 공산당이 주기적으로 엘리트를 순환하며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행위라는 비교적 가치중립적인 설명입니다. 브레진스키의 연구 등을 이론적 자원으로 북한의 숙청을 연구한 허정범은 2005년 12월 경남대 북한대학원에 제출한 ‘북한의 숙청 연구-기능과 유형을 중심으로’에서 북한의 숙청에는 더한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에서의 숙청은 조선노동당이 권력을 유지하는 것에서 나아가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권력의 획득과 유지, 공고화, 심지어 권력 승계에 성공적으로 활용한 측면이 있다”며 “북한의 역사는 곧 숙청의 역사”라고 썼습니다. 허정범은 1948년 북한 건국이후 김씨 부자에 의해 자행된 다양한 숙청을 ①정권 장악형 ②권력 유지형 ②후계 구축형이라는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6·25전쟁 이후 소련파와 연안파(중국파), 남로당파에 대한 김일성의 숙청은 권력 장악형 숙청입니다. 1956년 8월 전원회의 숙청 사건은 김일성의 권력 유지형 숙청입니다. 1967년의 갑산파 숙청, 1969년의 군부 숙청의 경우 김정일에게 권좌를 물려주기 위한 후계 구축형 숙청으로 분류됩니다. 소련 등에서의 ‘공산당 권력 유지’라는 다소 공적인 목적과 달리 북한에서 숙청은 김 씨 일가 세습체제의 수립과 유지, 승계라는 ‘사적 이익’에 활용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럼 누군가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의 책임을 김정은 대신 짊어진다면, 이번 숙청은 어느 부류에 들어가게 될까요? ①과 ②사이에 정도에 해당하는 ‘권력 공고화를 위한 숙청’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집권 8년째, 외형적으로는 김정은이 북한의 권력을 장악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나이나 권력기반, 개인적인 자질, 자신의 지도 사상이나 조직 구축 등을 고려할 때 아직은 완전한 권력 장악이 아닌 권력의 공고화 단계라고 보는 것입니다. 결국 김정은은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한 모멸의 책임을 엘리트들에게 전가하면서 혹시나 자기를 비웃고 깔볼 수 있는 여타 엘리트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숙청의 목표는 당사자들이 아니라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다른 엘리트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고모부 장성택을 죽여 권력 장악의 마지막 수순을 밟았던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김정은의 상황 인식에 따라 이번 숙청의 범위나 강도가 더 넓고 강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만, 모든 것이 향후 대남, 대미 전략에 연동이 될 것으로 봅니다. 김정은은 올해 말까지를 명시해 ‘미국의 변화를 기다겠다’고 한 상황입니다. 할아버지 김일성은 숙청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만들고 유지하고 아들 김정일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모든 부문에서 할아버지 따라하기를 하고 있는 김정은은 숙청의 기술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까요. 북한 현대사를 관찰하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생긴 셈인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숙청이란 수단은 같지만 과거와 지금의 정치적 맥락과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항일투사로서의 경력을 통치의 전면에 내세운 김일성과 그의 손자라는 이유만으로 권력을 3대째 물려받은 김정은은 정당성 차원에서부터 같은 위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2019-06-03
    • 좋아요
    • 코멘트
  • 北이 부족한 달러 실탄 계속 쏘아대는 이유는?[신석호 기자의 우아한]

    북한이 올해 초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현금이 아니라 두 배 값에 해당하는 쌀과 비료를 주겠다는 정부 제안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의 대량 현금 대북 송금(벌크 캐시) 금지 조항을 우회하기 위해 ‘친절한’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인데, 북한은 식량 보다 현금을 원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통일부는 관련 보도를 부인했습니다.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전제조건인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자체가 무산된 상황입니다. 북한의 요구가 사실이라면 김 씨 3대 세습독재 체제 고유의 ‘체면 차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자신들 입장에서는 당연하게 받아야 할 거래의 대가를 마치 받을 수 없는 것을 돌려받는 것처럼 보이는 방식은 핵보유국을 자처하는 북한의 체면, 그리고 그 나라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체면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그래서 북한은 지난해 이후 한국 민간단체들의 인도적 지원 제의도 “구걸하라는 것이냐”며 거부하고 있고, 한국 정부도 이를 감안해 91억 원의 식량을 국제기구를 우회해 지급하려 하고 있습니다. 체면을 제외하더라도 북한 당국이 달러를 필요로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겹겹이 제재에 막혀 달러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최근 북한경제 전문가들은 그 이면에 더 구체적인 이유를 찾아냈습니다. 제제로 들어오는 달러는 줄어들었지만, 경제의 현상유지를 위해서 전과 다름없이 달러를 쓰며 물건을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달러화(dollarization)가 심화된 북한 원의 대 달러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서 당국이 시장에 달러를 풀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우선 수입을 위한 지출 문제입니다. 김석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5월 22일 국민대학교 한반도미래연구원과 북한연구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일반 가정도 벌이가 줄어들면 일단 저금해 둔 돈을 써서 생활규모를 유지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지금 그동안 축장해놓은 달러를 풀면서 경제의 크기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국가적으로 외화소득이 줄어들고 있지만 외화지출은 유지하면서 상당한 수준의 상품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는 겁니다. 벌어놓은 외화를 축내면서 당장의 경제적 고통을 모면하는 전략입니다. 실제로 북한은 2017년 중국에 17억3000만 달러 어치를 수출하고 32억5000만 달러 어치를 수입했습니다. 심화된 제재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한 지난해에는 2억1000만 달러 어치를 수출하는데 그친 반면, 수입은 22억2000만 달러 어치로 크게 줄이지 않았습니다(중국 해관 통계를 인용한 것으로 중국의 대 북한 원유 공급은 제외한 것입니다). 제재 속에서도 북한의 시장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는 이유는 이렇게 들어온 수입품이 공급측면을 버텨주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현재 쌀값은 1kg당 5000 북한 원 수준입니다. 현재 달러 당 8000 북한 원에 유지되고 있는 환율도 마찬가지입니다. 김 위원은 “북한으로 유입된 외화의 대부분은 북한 돈으로 환전되지 않기 때문에 시장 환전은 소규모 주변적 거래에 불과하다”며 “외화 수급보다는 북한의 통화량이 시장 환율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고 현재 북한 통화량도 관리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통화량이 유지되기 때문에 달러 환율도 관리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올해 2월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 인플레이션에 관한 연구: 시장가격 변동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연욱 NH투자증권 부장은 “북한 원으로 달러를 사려는 사람에게도 정부가 출혈을 감수하고 8000원대라는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자본주의 국가들이 환율 방어에 나서는 것처럼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달러를 더 쓰고 있다는 말입니다. 현재 북한은 경제의 외형을 최대한 제재 이전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부족한 달러를 풀어 쓰고 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하지만 여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수입이 줄어든 가정이 전처럼 지출을 계속하면 언젠가는 통장잔고가 바닥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결단을 내리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지 않는 상태에서 외화지출을 계속한다면 1997년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외환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김 박사는 올해 장형수 교수와 쓴 다른 논문에서 2018년 말 북한의 외화보유액을 25~58억 달러로 추정했습니다.2016년까지 증가세였다가 유엔 대북 제재가 강화된 2017년부터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결국 북한이 언제쯤 비핵화 결단을 내릴 것인지는 언제쯤 달러보유액이 바닥날 것이냐는 근본적인 물음에 닿아 있습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올해 말과 내년 말 등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이 언제까지나 모아놓은 달러를 쓰면서 지금의 경제규모와 체면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 2019-05-27
    • 좋아요
    •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