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전승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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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정글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합니다. 도시를 산책하고 탐사하는 즐거움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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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3~202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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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9월 7일 개막…“함께 만들고 함께 누리는 도시”

    세계 도시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하는 글로벌 박람회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다음달 7일부터 11월10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돈의문박물관마을,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세운상가 등지에서 열린다. 2017년 ‘공유도시’라는 주제로 제1회 비엔날레가 열린 데 이어 두 번째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집합도시’(Collective City). “함께 만들고 함께 누리는 도시”라는 슬로건도 내걸렸다. 올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는 베를린, 파리, 암스테르담, 뉴욕, 울란바토르, 홍콩 등 전세계 80여개 도시 180여개 기관이 참여한다. 총감독은 건축가 임재용(국내), 미국 시라큐스대 프란시스코 사닌 교수(해외)가 공동으로 맡았다. 지난달 31일 임 총감독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만났다. ―베니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는 ‘건축비엔날레’가 많다. 왜 서울은 ‘도시건축비엔날레’인가. “현재 세계에서 건축비엔날레가 100여 개쯤 된다. 초청되는 작가는 대부분 건축가(architect)다. 건물 베이스의 프로젝트 위주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서울비엔날레는 도시문제를 이야기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다양한 도시 전문가들이 참가한다. 서울은 오래된 도시이기도 하지만, 급속히 발전한 후발 주자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글로벌 플랫폼으로 가장 적당한 도시다.” ―‘집합도시’라는 주제가 좀 어렵다. “원래 도시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였다. 그런데 점점 규모가 커지다보니까 도로, 지하철, 상하수도 시설 같은 시스템이 더 중요해지고, 사람은 거기에 끼여 사는 느낌이 돼 버렸다. 시스템 중심으로 된 도시를 사람 사는 곳으로 다시 바꾸자는 것이다. 도시는 일반시민이 공평하게 누려야 할 공간이지만 그렇지 못한 곳이 많다.” ―‘함께 만들고, 함께 누리는 도시’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도시를 만드는 방식은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만드는 톱다운 방식이었다. 이제는 주민들이 먼저 마을을 만들고 전문가가 지원하는 ‘바텀업’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시민과 전문가, 지자체가 집합적인 노력으로 함께 도시를 만들어나간다면, 결과적으로 도시를 공평하게 누릴 가능성이 커진다. 일례로 콜롬비아의 메데인이라는 도시는 마약과 범죄의 소굴이었는데, 산비탈의 열악한 주거환경에 야외 에스컬레이터를 놓고 커뮤니티 공간을 살리면서 안전한 관광도시로 탈바꿈했다.” ―사람 중심 도시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걷기 편해야 한다. 런던 도심에서는 모든 길이 2차선 도로로 좁다. 이처럼 길 건너편에 보행자의 표정을 읽을 수 있고, 부를 수 있어야 돼야 걷게 된다. 반면 우리나라 신도시의 도로는 왕복 8~10차선 대로다. 공원이나 상업지구로 가려면 횡단보도나 육교를 넘어야 하는데 거의 수백m에 하나씩 있다. 격자형 도로가 끝이 안보이게 펼쳐지면 걸을 엄두가 안 난다. 반면 서울 광화문 도심이 회복된 것은 세종네거리에 지상 횡단보도를 설치되면서부터다. 사람들이 지하보도가 아니라 지상 횡단보도로 건너면서 도시풍경이 확 바뀌었다.”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의 문제점은. “단지마다 펜스로 막아 섬처럼 고립돼 있는 게 문제다. 이 때문에 도시 전체의 길의 풍경이 끊긴다. ‘집합도시’는 도시 내 소통의 문제를 고민한다. 도시계획을 할 때 주거지, 상업지, 공원 부지로 크게 나누지 말고, 잘게 쪼개서 촘촘히 연결해줘야 한다. 10년 전에는 50~60평대 아파트가 유행이었다. 그러나 1인 가구가 전체의 30%에 이르면서 협소주택, 공유주택 등 주거형태의 변화가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도시 구조는 변화하는 데 정책이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요즘엔 ‘숨은 골목찾기’가 트렌드다. “수많은 골목들이 떴다가 지고 있다. 외부인이 유입되고,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벌어지는 패턴이 반복된다. 요즘에는 3,4년을 못 버티는 것 같다. 건물주와 임대인, 지자체가 스마트한 협약을 맺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도 ‘집합도시’의 한 이슈다.”―세운상가 주변 재개발과 도시 제조업 보존도 논란인데. “도시는 생물체 같은 것이다. 무 자르듯이 인위적으로 다 녹지로 만들 수도 없고, 경제적인 이슈와 합의점도 찾아야 한다. 세운상가 주변은 어마어마한 삶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아무리 신축건물이 좋아도, 시간이 주는 위대함도 있다. 이번 비엔날레 기간 동안 세운상가에서는 ‘시장(市場)’이 열린다. 많은 시민들이 한양도성 답사, 영화제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축제처럼 즐기시길 바란다.” 전승훈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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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최강팀에는 ‘헌신하는 캡틴’이 있다

    #1. 2000년 스페인 프로축구팀 FC바르셀로나의 수비수 카를레스 푸욜은 리그 하위 팀인 말라가로 이적당할 위기였다. 센터백이 되기에는 키가 작고 발재간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는 팀 동료들이 상대편에게 최면을 거는 아름답고 리드미컬한 축구를 선보이는 동안, 경기장 여기저기에 몸을 내던지며 동료들 뒤치다꺼리를 했다. 날카로운 슈팅을 온몸으로 막다가 광대뼈가 부서진 적도 있다. 그가 캡틴을 맡은 2008∼2013년 바르사는 프리메라리가 우승 4회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를 기록했다. 스페인 대표팀도 2010년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2. ‘농구의 신’으로 불렸던 마이클 조던은 NBA 데뷔 후 6년 동안 소속팀 시카고 불스를 정상에 올려놓지 못했다. 캡틴이었던 그는 다른 선수들을 배제한 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불스의 공격을 운용했다. 팀 동료들은 조던의 독설과 비난, 조롱을 두려워했다. 결국 빌 카트라이트가 캡틴을 맡은 뒤 불스는 마침내 NBA 타이틀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최근 유벤투스 내한경기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노쇼’가 국내 팬들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흔히 ‘GOAT(Greatest of All Time)’라고 칭송하는 슈퍼스타의 존재에 대해 돌아보게끔 만든 사건이다. 호날두, 리오넬 메시와 같은 스타는 진정한 팀의 리더일까. ‘캡틴 클래스’는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팀을 만든 원동력이 무엇인지 추적한 책이다. 감독, 슈퍼스타 선수, 구단의 든든한 자금력이 원동력이었을까. 월스트리트저널 스포츠 전문기자인 저자는 야구, 축구, 배구, 농구, 미식축구 등 37개 종목에서 철저한 검증을 통해 ‘역사상 최고의 16개 팀’을 뽑았다. 올림픽을 3연패한 쿠바 여자대표팀, FC바르셀로나(2008∼2013년), 브라질 축구대표팀(1958∼1962년), NFL 피츠버그 스틸러스, 뉴질랜드 럭비팀 올블랙스, MLB 뉴욕 양키스, 소련 아이스하키대표팀 등이다. 이렇게 뽑아낸 괴물 ‘엘리트 팀’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조직을 위해 헌신하는 ‘현장의 리더’ 캡틴이 있었다는 점이다. 빌 러셀이 캡틴으로 있었던 보스턴 셀틱스는 1957년부터 12시즌 동안 NBA 8연패를 포함해 10개의 타이틀을 획득했지만, 그의 은퇴 후 평범한 팀으로 전락했다. 뉴질랜드 럭비팀 올블랙스는 벅 셸퍼드가 캡틴을 맡았던 1987∼1990년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반면 우승 청부사 감독이 있어도 캡틴이 부재한 팀은 실패했고, 돈으로 우승을 구매하려 했던 2000년대 초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정책’은 오래가지 못했다. 저자는 20개국 1200여 팀의 선수, 단장, 감독의 인터뷰와 학술논문, 일화, 심리학, 경영학 지식 등을 총동원해 세계 최고의 팀 캡틴의 7가지 자질(Captain Class)을 분석했다. 역사상 위대한 팀들의 캡틴은 뛰어난 스타가 아니었다. 라커룸에서 감동적인 연설도 잘하지 못했다. 스포트라이트도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나 그들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팀원들을 자극했다. 그들은 피를 흘리고 그라운드에 쓰러질 때까지 동료들을 몰아붙였다. 그림자 역할을 하면서 팀 내에서 궂은일을 도맡았다. 때로는 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보이며 팀을 일순간에 변화시키기도 했다. 마이클 조던이나 펠레, 메시, 디마지오 같은 스타는 최고의 캡틴으로 꼽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유의 전설인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경기가 시작되면 감독은 그 결과에서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경기장에서 열한 명의 선수들을 한 팀으로 행동하게 만들 책임이 있는 선수는 클럽 캡틴이다”라고 말했다. 저자는 팀에 영감을 불어넣는 ‘현장 캡틴’의 대담하고 새로운 리더십이 성공을 불러온다는 조직이론을 제시한다. 기업으로 치자면 부서를 운영하는 중간간부에 해당된다. 손에 땀을 쥐도록 생생한 스포츠 현장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흥미진진하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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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성공 거둔 팀들, ‘그들 만의 공통점’이 있다?

    #1. 2000년 스페인 프로축구팀 FC바르셀로나의 수비수 카를로스 푸욜은 리그 하위 팀인 말라가로 이적당할 위기였다. 센터백이 되기에는 키가 작고 발재간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는 팀 동료들이 상대편에게 최면을 거는 아름답고 리드미컬한 축구를 선보이는 동안, 경기장 여기저기에 몸을 내던지며 동료들 뒤치다꺼리를 했다. 날카로운 슈팅을 온몸으로 가로막다가 광대뼈가 부서진 적도 있다. 그가 캡틴을 맡은 2008~2013년 바르샤는 라리가 우승 4회와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를 기록했다. 스페인 대표팀도 2010년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2. ‘농구의 신’으로 불렸던 마이클 조던은 NBA 데뷔 후 6년 동안 소속팀 시카고 불스를 정상에 올려놓지 못했다. 캡틴이었던 그는 다른 선수들을 배제한 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불스의 공격을 운용했다. 팀 동료들은 조던의 독설과 비난, 조롱을 두려워했다. 결국 빌 카트라이트가 캡틴을 맡은 뒤 불스는 마침내 NBA 타이틀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최근 유벤투스 내한경기에서 호날두의 ‘노쇼’가 국내 팬들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흔히 ‘GOAT(Great of All Time)’라고 칭송하는 슈퍼스타의 존재에 대해 돌아보게끔 만든 사건이다. 호날두, 메시와 같은 스타는 진정한 팀의 리더일까. ‘캡틴 클래스’는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팀을 만든 원동력이 무엇인지 추적한 책이다. 감독, 슈퍼스타 선수, 구단의 든든한 자금력이 원동력이었을까. 월스트리트저널 스포츠 전문기자인 저자는 야구, 축구, 배구, 농구, 미식축구 등 37개 종목에서 철저한 검증을 통해 ‘역사상 최고의 16개 팀’을 뽑았다. 올림픽을 3연패한 쿠바 여자대표팀, FC바르셀로나(2008~2013), 브라질 축구대표팀(1958~1962), NFL 피츠버그 스틸러스, 뉴질랜드 럭비팀 올블랙스, MLB 뉴욕 양키스, 소련 아이스하키대표팀 등이다. 이렇게 뽑아낸 괴물 ‘엘리트 팀’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조직을 위해 헌신하는 ‘현장의 리더’ 캡틴이 있었다는 점이다. 빌 러셀이 캡틴으로 있었던 보스턴 셀틱스는 1957년부터 12시즌 동안 NBA 8연패를 포함해 10개의 타이틀을 획득했지만, 그의 은퇴 후 평범한 팀으로 전락했다. 뉴질랜드 럭비팀 올블랙스는 벅 셸퍼드가 캡틴을 맡았던 1987~1990년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반면 우승 청부사 감독이 있어도 캡틴이 부재한 팀은 실패했고, 돈으로 우승을 구매하려했던 2000년대 초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정책’은 오래가지 못했다. 저자는 20개국 1200여 팀의 선수, 단장, 감독의 인터뷰와 학술논문, 일화, 심리학, 경영학 지식 등을 총동원해 세계 최고의 팀 캡틴의 7가지 자질(Captain Class)을 분석했다. 역사상 위대한 팀들의 캡틴은 뛰어난 스타가 아니었다. 라커룸에서 감동적인 연설도 잘 하지 못했다. 스포트라이트도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나 그들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팀원들을 자극했다. 그들은 피를 흘리고 그라운드에 쓰러질 때까지 동료들을 몰아붙였다. 그림자 역할을 하면서 팀 내에서 궂은일을 도맡았다. 때로는 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보이며 팀을 일순간에 변화시키기도 했다. 마이클 조던이나 펠레, 메시, 디마지오 같은 스타는 최고의 캡틴으로 꼽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유의 전설인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경기가 시작되면 감독은 그 결과에서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경기장에서 열한 명의 선수들을 한 팀으로 행동하게 만들 책임이 있는 선수는 클럽 캡틴이다”라고 말했다. 저자는 팀에 영감을 불어넣는 ‘현장 캡틴’의 대담하고 새로운 리더십이 성공을 불러온다는 조직이론을 제시한다. 기업으로 치자면 부서를 운영하는 중간간부에 해당된다. 손에 땀을 쥐도록 생생한 스포츠 현장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흥미진진하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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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각보 예술가 이선희 씨 “한국 전통 꽃살문양, 세계에 통할 현대적 디자인”

    조각보는 천 조각을 이어서 만든 전통 보자기다. 세모, 네모 모양의 자투리 천들이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보자기가 된다. 지난달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KDCF갤러리에서 열린 ‘채윤 이선희 문양시접 조각보전’에서 선보인 작품은 평소 익숙한 세모, 네모꼴의 직선형 조각보와 달랐다. 궁궐이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꽃살문 문양으로 바느질한 화려한 조각보가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작품을 만든 이선희 작가(57·경기도박물관 규방공예학교 강사·사진)는 “2000년도부터 규방공예를 시작했는데 조각보를 ‘흥부 마누라 치맛자락’ 같은 서민적 예술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늘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래서 직선 대신 곡선 모양의 조각 천 시접을 이어 붙여 문양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수년간 아이디어 스케치를 해가며 고민해 왔다. 그러던 중 2016년경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나온 책자를 보다가 무릎을 탁 쳤다.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의 꽃살문 사진이었다. 나무를 통으로 깎아서 만든 꽃살 문양인데, 반복되는 디자인 패턴으로 조각조각 이어붙인 형태가 조각보와 똑 닮았다. ‘아, 이거구나. 이걸 보자기로 만들어야겠구나.’ 그는 경주 기림사로 달려갔다. “새벽에 동틀 때 갔는데, 꽃살문의 모양을 보니까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었어요. 처사가 문을 열어젖히고 있었어요. 처사한테 ‘죄송한데, 꽃살문을 보고 싶어서 왔으니 다시 문을 닫아 달라’고 부탁했죠. 안으로 들어가서 실루엣처럼 창호지로 들어오는 햇살을 보면서 또 한 번 감동했습니다.” 그는 “민가에서는 ‘아(亞)자문’ ‘만(卍)자문’ 같은 기하학적 문살밖에 쓸 수 없었는데, 꽃살문은 조선의 5대 궁궐의 정전과 사찰의 중요한 건물에만 쓰였던 귀한 문양”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명정전, 덕수궁 중화전을 비롯해 내소사, 신흥사, 범어사, 월정사 등 유명 사찰의 매화·국화·연꽃·모란·살구·금강저 꽃살문에서 본뜬 60여 개의 문양시접을 만들었다. 종이접기를 하듯 산 모양, 입술 무늬의 문양시접을 여러 개 바느질해 이어붙이다 보면 매화꽃이 되고, 거북이도 되는 신기함이 그의 조각보 예술이다. 이 작가의 ‘문양시접’은 전통 조각보에 처음으로 곡선 문양을 도입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옛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그는 직접 디자인한 60개의 꽃살문 문양시접을 일반에 공개해 자유롭게 조각보로 만들게 했다. 이 문양시접을 국제보자기 포럼에서도 발표했고, 일본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독창적으로 디자인한 ‘삼잎칠보문양’은 저작권 등록을 하고, 가방과 접시 디자인에 활용한 생활소품도 선보였다. 그는 “한국의 전통 꽃살문양은 세계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현대적인 디자인”이라며 “젊은이들에게 전통을 현대화한 디자인을 개발하면 비전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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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살문 조각보에 눈이 휘둥그레… “갈등 심한 우리 사회에 꼭 필요”

    조각보는 천조각을 이어서 만든 전통 보자기다. 네모난 형상, 세모난 모양의 자투리 천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보자기가 된다. 지난달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KDCF갤러리에서 열린 ‘채윤 이선희 문양시접 조각보전’에서 선보인 작품은 평소 익숙한 네모, 세모꼴의 직선형 조각보와 달랐다. 궁궐이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꽃살문 문양으로 바느질한 화려한 조각보가 관람객들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었다. 이 작품을 만든 주인공은 경기도 박물관 규방공예학교 강사인 이선희 작가(57). 2000년부터 전통 규방공예를 시작한 그는 “조각보의 아름다움은 하나하나의 조각들이 어우러지는 조화로움에 있다”며 “계층과 세대갈등이 심각한 요즘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예술작품”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조각보라고 하면 ‘흥부 마누라 치맛자락’을 연상시키는 서민적 예술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늘 아쉬웠다고 한다. 그래서 직선 조각보 대신 곡선모양의 조각천을 이어붙여서 문양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수년간 아이디어 스케치를 해가며 고민해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2016년 경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나온 책자를 보다가 무릎을 탁 쳤다.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의 꽃살문 사진이었다. 나무를 통으로 깎아서 만든 꽃살문양이지만, 반복되는 디자인 패턴으로 조각조각 이어붙인 형태가 조각보와 똑 닮았다. “아, 이거구나. 이걸 보자리로 만들어야겠구나!” 그는 경주 기림사로 달려갔다. “새벽에 아침에 동틀 때 갔는데, 꽃살문의 모양을 보니까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었어요. 처사님이 문을 열어 젖히고 계셨는데, 죄송한데 꽃살문을 보고 싶어서 왔으니까 다시 문을 닫아달라고 부탁했죠. 안으로 들어가서 실루엣처럼 창호지로 들어오는 빛살을 보면서 또한번 감동했습니다.” 그는 “민가에서는 ‘아(亞)자문’ ‘만(卍)자문’ 같은 직선모양의 기하학적 문살 밖에 쓸 수 없었는데, 꽃살문은 조선의 5대 궁궐의 정전과 사찰의 중요한 건물에만 쓰였던 귀한 문양”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명정전, 덕수궁 중화전, 경희궁 숭전전을 비롯해 내소사, 신흥사, 송광사, 범어사, 월정사 등 유명 사찰의 매화·국화·연꽃·모란·살구·금강저 꽃살문 등에서 본뜬 60여개의 문양시접을 만들었다. 종이접기를 하듯 산모양, 입술무늬의 문양시접을 여러개 바느질해 이어붙이다 보면 어느덧 매화꽃이 되고, 불꽃도 되고, 거북이도 되는 신기함이 그의 조각보 예술이다. 이 작가의 ‘문양시접’은 전통 조각보에 처음으로 곡선형태의 문양을 도입한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말 그대로 옛 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역작이다. 그는 자신이 디자인화한 60개의 전통 꽃살문 문양시접을 일반에 공개해 자유롭게 조각보로 만들게 했다. 이 문양시접을 국제보자기 포럼에서도 발표했고, 일본에서도 강의를 하기도 했다. 자신이 독창적으로 디자인한 ‘삼잎칠보문양’은 저작권 등록을 마쳤고, 가방과 접시 등의 디자인에 활용한 생활소품도 선보였다. 그는 “한국의 전통 꽃살문양은 세계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현대적인 디자인”이라며 “외국의 유명 패션회사에서도 꽃살문 디자인을 활용하고 있는 데 우리가 더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삼잎칠보문양을 저작권 등록을 한 이유에 대해 “젊은이들에게 남의 것을 무조건적으로 따라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 전통을 현대화한 디자인을 개발하면 무궁무진한 비전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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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블랙코미디로 버무린 죽음-전쟁의 비극

    구정물 같은 부조리가 블랙코미디처럼 펼쳐진다. 열대야와 함께하기 좋을 해외 소설 2권이 나란히 나왔다. 비정상의 극치를 어린이의 눈으로 묘사한 장편 스릴러 ‘송진’과 전쟁의 희비극을 녹여낸 단편집 ‘그날의 비밀’이다. 송진의 배경은 덴마크 홀데트섬. 이곳에는 목수인 옌스 호더 가족만이 살고 있다. 겉으로는 평화롭게 살아온 듯한 옌스는 아버지와 형, 갓 태어난 아이를 잃으며 두려움과 저장 강박증에 휩싸인다. 소설은 옌스가 왜 이렇게 기괴한 사람이 됐는지를 쫓아간다. 그가 왜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이를 송진으로 방부 처리해 컨테이너에 보관했는지…. 소외된 주인공들이 벌이는 엉뚱하고 짓궂은 사건이 블랙코미디처럼 펼쳐진다. 비극적인 이야기와는 대조적으로 이들을 둘러싼 자연은 아름답기만 하다. 스칸디나비아 최고의 서스펜스·범죄소설에 수여하는 글래스키상 수상작. 그날의 비밀은 2017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은 작품.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짤막한 이야기 16개로 이뤄졌다. 정신병원에서 그림을 그린 화가 수테르, 할리우드 소품 가게에 입고된 나치 군복 등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무수한 조연들의 이야기가 블랙유머로 버무려진다.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은 첫 장에서 독일의 산업과 금융을 대표하는 스물네 명의 기업가들이 히틀러와 괴링을 만나는 장면이다. 나치 정치인들이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해도 기업가들은 놀라지 않는다. ‘부패는 대기업의 회계장부에서 긴축 불가 항목’이기 때문이다. 당시 포로들을 착취해 각종 무기를 생산했던 기업인 구스타프 크루프는 나치에 100만 마르크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쾌척했지만, 전후 유대인 생존자에겐 한 명당 단돈 2250달러를 지불하기로 약속한다. 과거의 얘기는 오늘날에도 재생된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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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해 봤나요, 도심 속 문화가 꽃피는 골목길을

    서울 성수동, 익선동, 연남동, 가로수길, 홍대…. 요즘 도심에서 떠오르는 핫플레이스는 골목길이다. 한옥이나 연립주택을 개조한 카페와 수제맥줏집, 액세서리 공방이 좁은 골목길을 걷는 행인들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널찍한 대로가 많은 대규모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는 이런 골목길의 향취를 느낄 수 없다. ‘골목길 자본론’의 저자 모종린 연세대 교수는 “사람들의 표정이 살아 숨쉬는 오래된 골목과 거리는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 반면 도로가 너무 커 연결성이 없는 신도시는 관광지가 되는 경우가 없다. 대기업 쇼핑몰은 문화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신도시에 오래된 골목길이 없다면? 그렇다면 만들면 되지 않을까! 5월 수원 광교신도시에 들어선 ‘앨리웨이(Alleyway) 광교’는 말 그대로 없는 골목길을 창조했다. 광교호수공원을 바라보고 있는 중앙공원 옆 약 400m의 공간은 ‘우리 동네 문화골목’을 표방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매일 1만 명 이상 찾는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강이나 호숫가에 세워진 대부분의 국내 아파트들이 ‘전 가구 조망권’을 내세워 장벽처럼 빽빽하게 단지를 세우고, 일체형 쇼핑센터를 만들어 수변 경치를 독차지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앨리웨이는 아파트 단지를 호수에서 뒤편으로 밀어내고 앞쪽에 광장과 골목길 등 열린 공간을 만들었다. 주민들이 이곳을 가로질러 자녀들의 등하굣길 등 쇼트컷(지름길)으로 이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려드는 공간이 됐다. 중앙광장에는 세계적인 모던아트 작가 ‘카우스’의 초대형 예술품인 ‘클린 슬레이트’가 서 있고, 곳곳에서 그라피티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이어 골목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사찰음식의 대가인 정관 스님(백양사 천진암 주지)이 요리 클래스를 진행하는 ‘두수고방’과 텃밭, 장독대를 만난다. 또한 서울 성수동 유명 빵집인 ‘밀도’, 전국청년농업인연합과 직거래하는 야채가게 ‘다곳’, 김소영 전 아나운서가 운영하는 동네책방 ‘책발전소’, 식물원과 갤러리, 팝업스토어 등 100여 개의 개성 넘치는 가게를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도심에서는 미세먼지와 비, 더위와 추위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실내 쇼핑몰 건축이 대세였다. 그러나 대형몰은 자동차를 타고 접근할 수밖에 없는 폐쇄공간인 반면, 걸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인 골목길은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앨리웨이를 기획한 네오밸류의 건축사 송옥자 전무는 “골목길에서는 햇빛과 바람, 비를 맞으며 자연과 교감하고 경치를 즐기고 사람들을 만난다”며 “쇼핑몰 대신 골목길을 만드는 것은 모험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야외 공간에서 즐거운 행위를 경험하면서 점점 골목이 가지는 문화의 힘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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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가 있는 골목길…수원의 핫플레이스 ‘앨리웨이 광교’

    성수동, 익선동, 연남동, 가로수길, 홍대…. 요즘 도심에서 떠오르는 핫플레이스는 골목길이다. 한옥이나 연립주택을 개조한 카페와 수제맥줏집, 액세서리 공방이 좁은 골목길을 걷는 행인들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널찍한 대로가 많은 대규모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는 이런 골목길의 향취를 느낄 수 없다. ‘골목길 자본론’의 저자 모종린 연세대 교수는 “사람들의 표정이 살아 숨쉬는 오래된 골목과 거리는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 반면 도로가 너무 커 연결성이 없는 신도시는 관광지가 되는 경우가 없다. 대기업 쇼핑몰은 문화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신도시에 오래된 골목길이 없다면? 그렇다면 만들면 되지 않을까! 5월 수원 광교신도시에 들어선 ‘앨리웨이(Alleyway) 광교’는 말그대로 없는 골목길을 창조했다. ‘우리동네 문화골목’을 표방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매일 1만 명 이상이 찾는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광교호수공원을 바라보고 있는 중앙공원 양쪽으로 400m에 이르는 골목길이 펼쳐진다. 강이나 호수를 바라보는 대부분의 국내 아파트들이 ‘전세대 조망권’을 내세워 장벽처럼 빽빽하게 아파트를 세우고, 일체형 상가를 만드는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아름다운 수변 경치를 우리끼리만 즐기겠다는 폐쇄형 건축 대신, 앨리웨이는 아파트 단지를 호수에서 뒤편으로 멀찍이 밀어내고 앞쪽에 인근 주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광장과 골목길과 같은 오픈 스페이스를 창조했다. 이 골목길은 자녀들의 등하교길, 대중교통을 이용하러 가는 인근 주민들의 숏컷(지름길)으로 활용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려드는 공간이 됐다. 골목길을 천천히 걷다보면 사찰음식의 대가인 정관스님(백양사 천진암 주지)이 요리 클래스를 진행하는 ‘두수고방’과 텃밭, 장독대를 만난다. 또한 서울 성수동 유명 빵집인 ‘밀도’, 전국청년농업인연합과 직거래하는 야채가게 ‘다곳’, 김소영 전 아나운서가 운영하는 동네책방 ‘책발전소’, 아트와 테크놀로지를 체험할 수 있는 스튜디오 ‘크리타’, 식물원과 갤러리, 팝업스토어 등 골목길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개성 있는 100여 개의 작은 상점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상점은 찾아볼 수 없다. 중앙광장에는 세계적인 모던아트 작가 ‘카우스’의 초대형 예술품인 ‘클린 슬레이트’가 서 있고, 곳곳에 그래피티, 팝아트 작품이 그려져 있어 인증샷의 명소가 되고 있다. 또한 5m가 넘는 장대 위에서 고난도 퍼포먼스를 펼치는 호주 공연예술단체 ‘스트레인지 프룻’의 초청 공연과 가수들의 버스킹이 펼쳐지기도 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신도시에는 미세먼지와 비, 더위와 추위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실내 쇼핑몰 건축이 대세였다. 그러나 쇼핑몰은 자동차를 타고 접근할 수밖에 없는 폐쇄공간인 반면, 골목길은 오픈 스페이스로서의 매력이 상당하다. 인사동 쌈지길은 중앙광장을 비워두고 4층짜리 건물을 계단 없이 경사진 길을 비스듬히 올라가며 다양한 공방과 가게를 구경할 수 있도록 세상에 없던 골목길을 만들어낸 바 있다. 앨리웨이를 기획한 네오밸류의 건축사 송옥자 전무는 “골목길을 걷다보면 햇빛과 바람, 비를 맞으며 자연과 교감하고 경치를 즐기고, 사람들을 만난다”며 “쇼핑몰 대신 골목길을 만드는 것은 승부수이기도 하고, 모험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야외공간에 자연스럽게 몰려들어 즐거운 행위를 경험하면서 점점 골목이 가지는 힘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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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부자 아빠’의 충고… “주식은 가짜 재산”

    “2008년 700조 달러 규모에 이르는 파생상품 시장이 붕괴해 세계 경제가 무너질 뻔했다. 그런데 2018년 현재 파생상품 시장은 2배 가까이로 늘어난 1200조 달러다. 우리는 1000조 달러가 넘는 규모의 대붕괴를 목전에 두고 있다.” 전 세계에서 4000만 부 이상 판매된 재테크 밀리언셀러 ‘부자 아빠’ 시리즈를 쓴 저자가 가짜 정보에 속지 않고 진짜 자산을 지키는 법을 알려주는 신작을 펴냈다. 그는 엘리트들이 복잡하게 만들어낸 파생상품이 ‘금융계의 대량살상무기’라고 말한 워런 버핏의 말을 인용해 달러화 대붕괴를 앞둔 위기를 경고한다. 저자는 “자산은 내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는 것이고, 부채는 내 주머니에서 돈을 빼가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한다. 이런 의미에서 저축 계좌나 주식, 채권, 뮤추얼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은 가짜 자산이다. 금융 엘리트가 수익은 대부분 가져가고, 개인 투자자가 투자금과 리스크를 모두 부담하는 “내 주머니에서 돈을 빼가는”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아빠는 늘 “우리 집은 가장 큰 자산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집은 은행의 자산일 뿐이다. ‘좋은 학교에 가서 취직을 하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 빚을 갚고, 주식시장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라’는 통념도 가짜 금융교육의 산물이라고 지적한다. 하루아침에 종이조각이 될 수 있는 ‘정부의 돈’보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대중의 돈’인 전자화폐나 금이 더 신뢰할 만하다고 주장한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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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을 낮춰 주변을 돋보이게… 키 2.1m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의 미학

    도시란 끊임없이 확장되고, 빽빽해져만 간다. 그런데 거꾸로 비우고, 낮춤으로써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물이 있다. 올해 4월. 서울 세종대로 한복판에 있는 성공회대성당 앞을 가로막던 ‘공사 중’ 칸막이가 걷혔을 때 가슴속이 시원해지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마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오렌지색 기와와 한국적 기와지붕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성공회성당의 자태가 온전히 드러났다. 수십 년 동안 그 앞을 지나다녔어도 성공회성당의 파사드(건축물 정면)가 이렇게 아름다웠는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들어선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은 1층 규모로 높이가 평균 2.11m밖에 되지 않는다. 덕수궁 돌담길의 높이와 평행을 이루는 건물의 들어올려진 지붕은 성공회성당 앞마당과 연결되는 작은 광장이 된다. 높이는 그리 높지 않지만 덕수궁과 시청 앞 서울광장, 한국프레스센터, 동아일보 등 세종대로 풍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색다른 도시 전망대 역할을 한다. 아직까지 성공회성당 주차장 지하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온전히 연결된 광장이 아닌 점은 아쉽다. 이 터는 고종이 1897년 환구단을 설치해 하늘에 제사 지내고 대한제국을 선포했던 소공로와 덕수궁 돌담길, 서학당길이 만나는 삼각형 모양의 광장. 고종 장례식 인산 행렬이 지나갔고, 3·1운동과 4·19혁명, 6·10항쟁의 중심지가 됐던 역사적인 장소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1937년 조선총독부 체신국 청사가 세워졌고, 2015년까지 5층짜리 국세청 남대문 별관이 들어서 시야가 가로막혀 있었다. 서울시가 2015년 이 건물 설계를 공모했을 당시 20개국 80개 팀이 응모했다고 한다. 대부분 일부를 광장으로 하고, 일부에 2∼3층의 건물을 세우는 형식이었다. 결국 평균 건물 높이를 낮추고 전시장을 땅속으로 감춘 작품이 당선됐다. 설계자인 조경찬 터미널7아키텍츠 대표는 “4대문 안에서 가장 낮은 건물”이라며 “덕수궁 돌담길과 성공회성당, 서울시의회, 김중업 건축가가 지은 세실극장 등 유서 깊은 건축물을 존중하고 도시의 역사적 풍경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건물을 최대한 낮췄다”고 말했다. 1층 지붕이 워낙 낮아 지하에 무슨 전시공간이 있을까 싶어 실제로 이 전시장에 들어가 본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지하로 내려가면 의외로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지하 3층에 조성된 ‘비움홀’은 세종대로의 공기와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야외광장이다. 이 건물의 정면 입구는 지하 3층 광장에 마련돼 있고, 지하 1·2층에는 전시장과 자료실, 강연장, 테라스 등이 있다. 2000년 ‘베니스 국제 건축비엔날레’의 주제는 ‘덜 미학적인 것이 더 윤리적이다’(Less Aesthetics, More Ethics)였다. 서로 자신의 존재감만 뽐내려 경쟁하는 건축물 속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비움으로써 도시 전체의 풍경을 살리는 검박한 건축에 대한 화두였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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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점 흔들려도 감 오면 거침없이 찰칵… 생생하게 담아야죠”

    화가 지망생에서 성악가로, 포토그래퍼에서 동물보호 운동가로…. 패션 사진작가 김태은(46)이 살아온 인생은 한마디로 단정 짓기 어렵다. 언제나 고독했지만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그는 늘 심장의 두근거림에 충실한 삶을 찾아왔다. 지난주 경기 양평군 서종면에 있는 한 전원주택. 벨을 누르자 흰 털이 부슬부슬한 개와 알록달록한 점박이 무늬 개, 갈색의 다리 짧은 개 등이 한꺼번에 문 앞에 달려와 꼬리를 흔들었다. 반려견 7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김 작가의 집을 방문한 첫 느낌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5분도 안 돼 곧 녀석들의 사랑스러운 애교에 푹 빠져버렸다. “10년 전쯤이었어요. 촬영 팀에서 소품용으로 강아지를 한 마리 샀어요. 그런데 촬영 뒤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강아지를 안 챙기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제가 데려왔지요. 한 손으로 안고 왔던 쪼그만 강아지가 글쎄 50kg이 넘는 대형 견으로 커 버렸지요. 바로 ‘구름이’라는 친구예요.” 그는 요즘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패션화보처럼 멋지게 차려 입은 반려견 사진을 찍는다. 클래식한 인물 초상화처럼 촬영한 견공들은 사실 모두 유기견 출신이다. 울산의 한 보호소에서 안락사 위기에 처한 유기견 200마리를 구조한 동물보호단체를 통해 직접 입양한 아이들이다. “지금은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제게 처음 왔을 때는 볼품이 없었어요. 다들 공포에 질려 있었고, 눈빛이 불안했어요. 최대한 예쁘고, 아름답게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습니다. 인쇄한 사진 위에 제가 직접 수채화로 꽃을 채색해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반려견 패션화보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아름다운 유화처럼 표현된 유기견의 사진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 미술과 음악에서 패션사진으로 김 작가는 초등학생 시절 화실에 다녔다. 그러나 그림에선 특별한 재능을 발견할 수 없었다. 선화예중 시험도 떨어졌다. 이후 로마에 살던 고모의 권유로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고교 1학년 때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을 가 몇 년 뒤 소프라노 조수미가 다녔던 로마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에 입학했다. 당시 신입생 20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당시 한 현지 학생의 “한국에는 음악이 없니? 왜 다 여기 와서 음악을 공부하려 하니?”라는 물음에 그는 충격을 받았다. 자존심이 상해서 그날 밤 국악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꿈을 꿨다. 전공교수로부터는 “너는 성량도 좋고 고음도 잘 나는데, 감정 표현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사랑도 해보고 이별도 해봐야 절절한 노래를 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질책이었다. 결국 그는 성악가로 성공하지 못하고 4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 작가는 20대 중반에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친구 덕에 사진을 접하게 됐다. 그는 “암실에서 처음 사진을 현상했을 때 기분이 짜릿했다. 미술과 음악을 할 때는 쑥스러워 감정 표현을 제대로 못했는데, 카메라를 만나 감정의 ‘퍼텐셜’이 펑 하고 터져 버렸다”고 말했다. 1년 뒤 그는 사진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다시 이탈리아 피렌체로 떠났다. 27세 늦은 나이었지만, 순수 예술사진을 배우는 재미에 심장이 요동쳤다. 그런데 아버지 사업이 망해 유학을 접고 귀국해야 할 사정이 생겼다. 너무나도 슬프고 고독한 시간이었다. ○ 등 뒤의 불꽃과 같은 인스피레이션 위기의 순간,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촬영한 뒤 유럽에 화보 촬영을 온 배우 장동건이었다. 그는 10박 11일간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를 오가며 촬영뿐 아니라 촬영 스태프 식사 주문과 교통편 예약, 통역까지 총괄하는 일을 맡았다. 첫날부터 촬영 팀이 가방을 도둑맞고, 여권을 잃어버리는 등 사고의 연속이었다. 따로 사진 촬영할 시간이 없어 24시간 장동건에게 붙어 틈틈이 찍었다. 잘 때도 찍고, 앉아서 쉴 때도 찍고, 거울 보면서 세수할 때도 찍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처럼 촬영한 패션화보였다. 3개월 뒤 귀국했을 때 김 작가는 스타가 돼 있었다. 장동건의 매력을 거칠지만 자연스럽게 표현한 화보가 패션잡지에 무려 30페이지에 걸쳐 실렸다. 남자 배우의 화보가 패션잡지에 이렇게 많은 분량으로 실린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엔 배우 원빈에게서 연락이 왔다. 장동건 화보집을 보고 배우 원빈이 직접 “이 작가와 찍고 싶다”고 연락했다. 체코 프라하에서 진행된 첫 촬영 날. 그는 원빈에게 “지금 정말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원빈은 “여행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김 작가는 2박 3일간의 원래 일정을 취소한 뒤, 기차표를 끊고 자동차를 렌트해 정처 없이 여행을 떠났다. 기차 칸에서 사진을 찍고, 고속도로의 허름한 호텔에서 잠을 자며 촬영했다. 군대 가기 1년 전 불안한 마음의 배우, 한국에 돌아와서 1년도 안 돼 혼란스러운 포토그래퍼. 두 젊은이의 흔들리는 감정이 카메라 뷰파인더에서 사정없이 부딪쳤다. 그는 목에 하나, 손목에 하나, 어시스트가 멘 중형 카메라까지 3대의 카메라를 저글링하면서 미친 듯이 찍었다. 일본에서 출시돼 대히트한 이 화보집에 대해 그는 “내 인생의 최고의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패션사진 작가들은 뭔가 완벽히 세팅이 돼야만 셔터를 누릅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초점이 맞아야 하고,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저는 초점이 맞지 않아도 셔터를 누르고 싶을 때 어떤 공포도 없이 막 찍습니다. 내 뒤에서 타오르는 불꽃에 충실할 때, 인스피레이션(영감)이 숨쉬는 사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장동건과 원빈의 작업을 시작으로 이영애와 공효진, 이효리, 배두나 등 유명 배우와 화보작업을 이어나갔다. 또한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캘린더 특집 편에도 출연해 1등을 차지했다. 그는 “사진은 기계적인 테크닉만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릴 적부터 그림도 그렸고, 성악도 공부했고, 홀로 고독하게 청춘을 보냈던 다양한 경험이 내 패션사진에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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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문제적 가족’ 심슨네,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다

    “호머 심슨에게는 윤리적으로 존경할 만한 구석이 있다?” 미국의 한적한 소도시 스프링필드에 살고 있는 호머 심슨. 미국 시트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주인공인 그는 맥주를 좋아하고 소파에 누워 TV 시청을 즐기는 전형적인 중년의 가장이다. 원자력발전소 안전관리원으로 일하는 그는 속물 근성과 습관적인 거짓말, 저속한 익살을 즐긴다. ‘심슨 가족’의 캐릭터를 통해 위대한 철학자들의 핵심사상을 엮어낸 철학자 20명의 글을 모았다. 첫 번째 주제는 ‘호머 심슨은 악인(惡人)인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 나오는 인간의 네 가지 성품 유형을 논리적 범주를 통해 고찰한다. “호머는 트림을 하거나 방귀를 뀌거나 엉덩이를 긁거나 정신을 잃을 정도로 먹고 마시는 등 우리 상당수가 피하는 행동을 공공장소에서 서슴없이 한다. 이게 전부라면 호머는 그저 천박한 인간에 불과할 것이다. 요는 호머가 삶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사랑하고 즐기며, 남들의 시선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러한 자질 때문에 호머는 자신의 욕망과 욕구에 노골적으로 솔직해진다. 그는 거침없는 유형의 인간이다.” 저자는 “호머는 미덕의 본보기도 아니지만, 악의적인 사람도 확실히 아니다. 우리가 그에게 보일 수 있는 가장 가혹한 반응은 연민이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사랑을 유지하는 그는 탁월하진 않지만 존경스러운 면을 갖도록 만들어준다”고 평가한다. 호머의 큰아들 바트는 온갖 말썽을 부리는 악동이고, 딸 리사는 스프링필드에서 손꼽히는 영재로 IQ는 156이며 멘사 회원이다. 심슨가의 구성원을 통해 심오한 철학적 주제를 계속 던진다. “니체는 철학계의 악동이고, 바트는 스프링필드의 악동이다. 바트는 전통과 도덕에 반기를 든 니체적 영웅 같은 인물일까? 슬프게도, 바트는 우리 시대에 만연한 데카당스와 허무주의 퇴보의 본보기일지도 모른다!” 똑똑한 딸 리사는 정치,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며 스프링필드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던져준다. 그러나 잘난 척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저자는 리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지식인에 대한 존경심과 적개심이 필요에 따라 채택되는 반지성주의 사회에서 지식이 무용화되고, 전문가 집단이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상황을 묘사한다. 이외에도 성정치학, 마르크스주의와 자본주의, 하이데거, 롤랑바르트와 기호학적인 관점에서 심슨 가족과 이웃들의 세계를 살펴본다. 1989년부터 30년째 방송되는 미국 최장수 시트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는 수많은 대중문화에 대한 패러디가 등장한다. 종교나 인종 갈등, 소득 격차, 전쟁, 페미니즘 등 ‘최고의 현대 풍자극’으로서 심슨 가족을 다룬 수많은 학술서적도 쏟아졌다. 이 책의 편집을 주도한 펜실베이니아 킹스칼리지 철학교수 윌리엄 어윈은 매트릭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헝거게임을 비롯해 슈퍼 히어로를 소재로 한 ‘대중문화와 철학’ 시리즈 발간을 이끌어 온 인물. 그는 “과학이 대중화돼야 하듯이 철학도 대중화돼야 한다”는 신념을 밝혔다. 국내에서도 최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방탄소년단(BTS)의 가사와 뮤직비디오의 상징에 대한 철학적 분석이 유행이다. 미국 스프링필드에 호머 심슨이 있다면, 한국에는 서울 쌍문동에 사는 고길동(‘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꼰대 아버지)이 있다. 연민이란 감정을 자아내는 두 중년 아저씨를 비교한 책이 나오면 반가울 것 같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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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동건·원빈 화보 찍어 유명해진 사진작가, 반려견 패션화보 찍는 사연은…

    화가 지망생에서 성악가로, 포토그래퍼에서 동물보호 운동가로…. 패션 사진작가 김태은(46)이 살아온 인생은 한 마디로 단정 짓기 어렵다. 언제나 고독했지만 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는 남들의 시선보다는 내 마음 속 심장의 두근거림에 충실한 삶을 찾아왔다. 지난 주 경기 양평군 서종면에 있는 한 전원주택. 벨을 누르자 흰털이 부슬부슬한 거대한 개와 알록달록한 점박이 무늬가 달린 날렵한 사냥개, 갈색의 다리 짧은 개 등이 한꺼번에 짖으며 문 앞으로 달려와 꼬리를 흔들었다. 7마리의 크고 작은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는 김 작가의 집을 방문한 첫 느낌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5분도 안돼 곧 덩치 큰 녀석들의 사랑스러운 애교에 푹 빠져버렸다. “10년 전쯤이었어요. 촬영 팀에서 소품용으로 강아지를 한 마리 샀어요. 그런데 촬영 후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강아지를 안 챙기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제가 박스에 담겨진 강아지를 데려왔지요. 그 때부터 꼬였어요, 제 인생이. 한 손으로 안고 왔던 조그만 강아지가 글쎄 50㎏이 넘게 커버렸지요. 얘가 ‘구름이’라는 친구예요.” 김 작가는 요즘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반려견이 패션화보 주인공처럼 멋지게 차려 입힌 사진을 찍는다. 마치 클래식한 미술작품의 인물 초상화처럼 촬영한 견공들은 사실은 모두 유기견 출신이다. 울산의 한 보호소에서 안락사 위기에 처한 200마리의 유기견을 구조한 동물보호단체를 통해 직접 입양한 아이들이다. “지금은 이렇게 고급스런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사실 이 아이들이 제게 처음 왔을 때는 볼품이 없었지요. 다들 공포에 질려 있었고, 눈빛에 불안이 가득했어요. 살도 삐쩍 마르고…. 내 사진에서 만큼은 최대한 예쁘고, 아름답게 꾸며주고 싶었지요. 사진을 화인아트 종이에 인쇄한 뒤에 제가 직접 수채화로 꽃을 채색한 뒤에 스캐닝해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서울 강남구 논현동 모스가든에서 반려견 패션화보 작품을 전시했다. 아름다운 유화처럼 찍힌 유기견의 사진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미술과 음악에서 패션사진으로 김 작가는 초등학생 시절 화실에 다녔다. 그러나 미술에서는 특별한 흥미도 재능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선화예중 시험도 떨어졌다. 미대를 나와서 성악가 남편과 결혼해 이탈리아 로마에 살던 고모가 “태은이는 신체적 조건도 좋고, 목소리도 좋으니까 성악을 시켜봐라”고 권유했다. 결국 17살의 나이에 로마로 유학을 갔다. 어학코스와 성악레슨을 마치고 소프라노 조수미가 다녔던 로마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에 입학했다. 당시 신입생 20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한 이탈리아 학생이 그에게 다가왔다. “너도 한국 사람이니? 한국에는 음악이 없니? 왜 다 여기에 와서 음악을 공부하려고 하니?”라는 물음에 그는 충격을 받았다. 자존심에 상처 입은 마음으로 잠이 들었는데, 국악고등학교에 다시 입학하는 꿈을 꿨다. 열심히 성악을 공부했지만 전공교수로부터 “너는 성량도 좋고, 고음도 잘나고 모든 게 완벽한데, 감정표현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려면 사랑도 해봐야 하고 가슴 아픈 이별도 해봐야 절절한 노래가 나오는데, 그렇지 못한다는 질책이었다. 결국 그는 성악가로서 성공하지 못하고 4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허송세월로 젊음을 낭비하던 그는 20대 중반에 우연히 사진을 접하게 됐다. 패션사진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트로 일하던 친구 덕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 성악, 무용 같은 클래식 예술만 접해왔던 그에게 사진은 짜릿한 신세계였다. 그는 “암실에서 사진을 처음 인화해봤을 때 신비하고 짜릿한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를 때는 쑥스럽고, 부끄러워 감정표현을 하지 못했는데, 카메라라는 기계를 통해 제 감정의 ‘퍼텐셜’이 그야말로 ‘펑’ 터져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제대로 사진을 공부하기 위해 다시 이탈리아 피렌체로 떠났다. 스물일곱 살의 늦은 나이었지만, 뒤늦게 배운 사진의 재미에 심장이 팍팍 요동쳤다. 그러나 이제 행복하게 온 몸을 바쳐 하고 싶은 분야를 겨우 찾았는데, 아버지 사업이 망해 귀국해야 할 사정에 처했다. 너무나도 슬프고 외롭고, 고독한 시간이었다. ●등 뒤의 불꽃과 같은 인스피레이션 위기의 순간, 김 작가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촬영한 뒤 휴식 차 유럽에 화보촬영을 온 배우 장동건이었다. 그는 10박11일간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를 오가며 화보 촬영 뿐 아니라 촬영스태프들의 하루 세끼 식사주문과 교통편 예약, 통역까지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첫날부터 촬영 팀이 가방을 도둑맞고 여권을 잃어버리고, 사건사고의 연속이었다. 따로 사진 촬영할 시간이 없어 24시간 장동건에게 붙어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찍었다. 잘 때도 찍고, 앉아서 쉴 때도 찍고, 거울 보면서 세수할 때도 찍었다. 10박11일간의 다이어리, 다큐멘터리 사진처럼 촬영한 패션화보였다. 3개월 뒤 귀국했을 때 김 작가는 스타가 돼 있었다. 장동건의 거칠지만 자연스럽게 표현된 화보가 패션잡지에 장장 30페이지에 걸쳐 실렸다. 남자 배우의 화보가 패션잡지에 이렇게 많은 지면에 실린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관객 1000만 명이 넘어서며 흥행에 성공한 덕분도 컸다. 그로부터 몇 달 뒤 또 다른 톱스타 배우 원빈이 연락이 왔다. 장동건 화보집을 보고 배우 원빈이 직접 “이 작가와 찍고 싶다”고 연락이 온 것. 체코 프라하에서 진행된 첫 촬영 날. 그는 원빈에게 “지금 이 순간, 정말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원빈은 “여행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김 작가는 2박3일간의 사전에 계획된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그리고 기차표를 끊고 빈티지 자동차를 렌트해, 정처 없이 여행을 떠났다. 기차 칸에서 사진을 찍고, 고속도로의 허름한 호텔에서 잠을 자며 촬영했다. 군대가기 1년 전의 불안한 마음의 톱스타 배우, 한국에 돌아와서 1년도 안돼 혼란스러운 상태의 포토그래퍼. 두 젊은이의 흔들리는 감정이 카메라 뷰파인더에서 사정없이 부딪쳤다. 그는 목에 하나, 손목에 하나, 어시스트가 멘 중형카메라까지 3대의 카메라를 저글링하면서 미친 듯이 찍었다. 두 사람은 마주 보며 달리기도 하고, 소리를 외쳐가며 거침없이 셔터를 눌렀다. 그는 “내 인생의 최고의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패션사진 작가들은 뭔가 완벽히 세팅이 돼야지만 셔터를 누르는 습관이 있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초점이 맞아야 하고,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죠. 조리개 값은 얼마이고, 노출은 몇으로 맞추어야 한다는 공식이 있죠. 그러나 저는 초점이 맞지 않아도 누르고 싶을 때 막 찍습니다. 셔터 누르는데 어떤 공포도 없어요. 내 뒤에서 타오르는 불꽃에 충실할 때, 인스피레이션(영감)이 살아 숨쉬는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장동건과 원빈의 작업 탓에 그는 수많은 소문에 시달렸다. 쟁쟁한 선배 작가들을 제치고 무명의 신인작가가 톱스타와 작업을 했으니 그럴만했다. 그는 이후 이영애와 공효진, 이효리, 배두나, 황정민 등 유명배우와 가작업을 이어나갔다. 또한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캘린더 사진특집 편에도 출연해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사진은 기계적인 테크닉이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림도 그렸고, 음악도 했고, 홀로 고민하면서 청춘을 방황하던 다양한 경험이 제 패션사진에 자연스럽게 담긴 것 같습니다.” 젊음의 요동치던 방황에서 한발 비켜선 그는 요즘 구본창 작가의 사진을 새롭게 보고 있다고 했다. “요즘 구본창 선생님이 하얀 눈밭에 놓은 박스 안에 백구 5마리를 찍은 사진을 보고 너무 좋았어요. 백자 사진도 좋고요. 엄청난 흑백의 콘트라스트로 강렬한 남자 누드를 찍었던 과거의 작품과는 너무 달랐어요.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평온하고, 이성적이고, 차갑고, 따듯한 시선을 가진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예전엔 사진가들이 꽃과 나무를 찍는 게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는 저도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 20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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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아이슬란드 호수 주변 진귀한 자연과 만나다

    “태양이 산자락 뒤로 저무는 그 순간 불가사의한 광채가 호수와 대지, 그리고 그 주변을 비춘다. 북쪽에 있는 둥지를 찾아가는 아비새의 날갯짓과 호숫가에서 노니는 붉은목지느러미발도요의 울음소리가 온 세상에 드리워진 깊은 정적을 깰 뿐이다.” 아이슬란드의 물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맑고 깨끗하며 산은 날마다 자신의 색을 바꾼다. 이 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인 미바튼은 아이슬란드어로 ‘모기 호수’란 뜻. 2000년 전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이 만들어낸 수백 개의 웅덩이, 유사 분화구, 가파른 절벽과 협곡이 미바튼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저자가 12년 동안 호수 근처에 살며 쓴 이 책은 아이슬란드의 진귀한 자연과 생태계를 직접 목격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1974년에 설립된 미바튼 자연연구소는 100년 동안 호수에 살고 있는 새와 물고기 개체에 대한 데이터를 작성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자의 남편인 아르니 에르나손은 생물학자로, 미바튼 자연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에르나손이 섬세한 수채화로 그린 물고기, 새, 곤충 그림은 책을 보석처럼 빛나게 해준다. 저자는 이곳에서 멸종된 둥근 녹조류 ‘구슬똥’처럼 아이슬란드의 자연도 커다란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경고를 함께 던진다. 2017년 아이슬란드 문학상(논픽션 부문)과 여성문학상을 수상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9-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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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심 속 수행센터…한국 불교명상 세계화에 앞장

    청정한 마음으로 정신을 집중하는 명상으로 부처님에게 다가서고자 하는 도심 속 사찰 참불선원. 참불선원은 도심 속에서 산중의 스님들처럼 오로지 수행으로만 포교하는 독특한 사찰이다. 도심 속 포교당의 역할에는 충실하지만 접근 방법이 수행 위주로만 진행되어 이처럼 큰 성공을 거두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조명받고 있는 불교수행법 명상을 통하여 참불선원은 우리도 부처님같이 청정한 마음으로 수행하며 깨달음을 향한 수행을 바탕으로 나와 이웃을 위한 자리이타의 정신을 실천하는 곳이다.명상으로 한국 대표 수행센터로 성장한 참불선원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 시대에 맞는 방법으로 널리 펴는 선원.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세계명상센터 참불선원(선원장 각산 스님)이 그곳이다. 명상은 서구 사회에서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으로 자리 잡고, 글로벌 기업들도 명상을 주요 경영전략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교육현장과 의료산업에도 광범위하게 활용하여 큰 성과를 내고 있다. 참불선원은 한국 불교의 수행법을 기반으로 초기 불교의 수행법을 통합한 새로운 명상법으로 서울 강남은 물론 전국적으로 명상을 대중화하는 선원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명상입문에서 명상불교대학, 선불교대학원, 참선아카데미와 4박 5일 집중수행, 도심 속에서 한 달간 지속되는 안거수행에 이르기까지 명상수행의 체계화를 통하여 그동안 전문적인 명상수행에 목말라 하던 불교신자와 일반인들에게 큰 호응을 받아왔다. 개원 후 지금까지 2만여 명에 가까운 졸업생을 배출하며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명상센터로서의 위상을 가져왔다. 호주의 아잔브람 스님과 태국의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받는 아잔간하 스님, 대만의 심도선사 등 세계적인 수행승들을 국내로 초청하여 명상수행의 세계적인 트렌드를 국내에 소개하고 교류의 장을 만들어 냄으로써, 한국불교명상의 세계화에 기여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한국 불교명상 세계화 도전 참불선원은 한국 불교명상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 2016년 시작된 세계명상대전을 시작으로 세계명상힐링캠프와 2019년 DMZ 세계평화명상대전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정신문화를 세계화하기 위한 국제적인 행사를 진행하여 왔고 국내 명상인구의 저변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해 왔다. 세계명상대전과 힐링캠프가 국내에서 개최된 행사라면 올해 3월 미국 측 초청으로 이루어진 로스앤젤레스(LA) 명상힐링캠프는 한국불교명상의 해외진출을 위한 첫 번째 행사로 진행되어 남방불교 수행법 위주로 확산된 미국 사회에 한국 불교명상의 새바람을 일으켜 큰 호응을 받았다. 3박 4일간 집중수행의 형태로 진행된 캠프에는 재미동포뿐 아니라 현지 미국인들의 참여도 줄을 이어 한국 불교명상의 해외 진출에도 큰 가능성을 보인 행사로 평가받는다. 영주 한국명상수련원 건립추진 우리 국민들의 정신교육을 담당할 경북 영주의 한국명상수련원도 주목받고 있다. 국가공무원들은 물론 기업체 임직원들의 기업명상에서 청소년들의 정신교육 함양을 위한 전문 수행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한국명상수련원은 참불선원이 명상의 대중화를 위한 큰 보폭의 계획으로 추진되고 있다. 올해 3월 4일 영주시와 사업 양해각서를 체결하였고, 4월 3일에는 참불선원 명예회장인 김태호 전 경남지사와 주호영 국회의원, 그리고 상임추진위원장을 맡은 임정혁 전 법무연수원장 등 각계각층이 참여한 한국명상수련원 건립 추진위원회 발족식을 봉행하고 본격적인 사업추진에 나서 건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경남 지역에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누구라도 명상수행을 할 수 있는 수행공간을 마련하는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통하여 새로운 한류문화 콘텐츠를 세계화하는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돼 앞으로의 진행상황에 관심이 집중된다. 참불선원은 명상의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인재 양성에도 적극적이다. 불교 신자뿐 아니라 일반인 누구라도 명상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각종 명상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한편 이를 운영할 전문가를 양성하는 커리큘럼을 직접 운영(참선아카데미) 중이며 이를 통하여 명상을 대중화하는 차원을 넘어 명상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실제 운영인력을 양성하고자 애쓰고 있다. 부처님법에 따라 수행하기를 원하는 불교 신자뿐 아니라 일반인 누구라도 찾아 명상수행을 할 수 있는 곳. 참불선원의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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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춤축제연맹 총회 13일 개막

    국제춤축제연맹은 13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집행위원회 회의 및 세계총회를 개최한다. 2년마다 열리는 국제춤축제연맹 세계총회에서는 75개 연맹국의 춤 관련 임원 및 지역 대표가 한국을 방문해 7일간 천안과 서울에서 국제춤축제의 발전방안과 개선방향 제시를 위한 토의를 진행한다. 구본영 천안시장이 총재를 맡고 있는 국제춤축제연맹은 매년 전 세계에서 열리는 춤축제 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상호협력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2012년 10월 공식 출범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8-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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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층 깊어진 ‘흥’과 ‘한’… 퓨전국악 시대 다시 열다

    중학교 시절 빌보드 차트를 복사해 보며 팝음악의 세계를 동경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몇 해 전 쿠바에 갔을 때 아바나의 한적한 동네 젊은이들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직접 연주하면서 춤을 추던 모습은 큰 행복으로 다가왔다. 또한 브라질에 갔을 때는 방탄소년단의 음반이 우리 돈으로 약 5만 원이나 되는 고가에 팔리고 있는 것도 보았다. 케이팝은 이제 세계 팝음악의 한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게 됐다. 그 경쟁력을 갖추기까지 약 20년 동안의 노력과 시행착오가 있었음을 국악계도 기억했으면 한다. 이제 국악도 보다 큰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 시장에 나설 때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월드뮤직이라 할 수 있는 ‘퓨전국악’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친숙해졌다. 국악기가 주인공이되 서양 악기와의 협연을 통해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선보인 앨범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퓨전국악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당시 해금 연주자 정수년의 음반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은 첫 번째 퓨전국악의 인기를 꽃피웠다. 강상구가 작곡한 타이틀곡의 큰 히트에 힘입어 앨범은 단숨에 수만 장이 팔렸고, 국악곡으로는 보기 드물게 광고에까지 쓰였다. 해금 명인 정수년의 연주력이 빛난 이 앨범은 퓨전국악의 수준 높은 음악성을 처음 알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05년 무렵부터 퓨전국악의 인기는 시들어갔다. 국악기로 서양의 유명 음악을 반주하는 듯한, 무르익지 못한 실력으로 앨범을 양산한 것도 큰 이유였다. 사실 퓨전국악이란 장르는 그 태생적 특성 때문에 국악과 여러 가지 요소를 섞을 순 있지만 잘 정리되지 않으면 이도 저도 아닌 ‘잡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작년부터 수준 높은 퓨전국악 음반들이 다시 발매되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은 것은 예전처럼 양악기를 배경으로 국악기 혼자 노는 듯한 동떨어진 느낌이 아니라, 자기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음악적 설득력이 뚜렷한 음반들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악기도 다양해졌다. 소위 해금이 뜬 이후 지나치게 해금 음반이 많이 나왔지만, 지금은 생황, 거문고, 가야금에서 국악앙상블과 국악가곡까지 다양해진 것도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다. 또한 전통을 충분히 익힌 중견 연주자의 작품과 당대의 음악적 흐름을 호흡하며 자란 젊은 뮤지션들, 그리고 뚝심 있는 몇몇 국악전문 음반사의 노력에 힘입어 퓨전국악은 다시금 부흥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대금·소금 연주자 한충은의 앨범 ‘숲’은 한국형 월드뮤직과 크로스오버의 모범답안을 제시한다. 리얼그룹과 아카펠라로 절묘하게 풀어낸 ‘진도아리랑’에선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다. 유럽의 특급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 음반 속에는 우리의 ‘흥’과 ‘한’이 공존한다. 가야금 연주자 류지연의 ‘영훈 Meets 지연: 광화문연가 그리고 가야금연가’ 앨범은 가수 이문세의 히트곡을 가야금으로 재해석한 기획력이 매우 뛰어나다. 천재 작곡가 이영훈이 빚어낸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선율들이 류지연의 정갈하고 영롱한 가야금 연주로 다시 피어나고 있다. 생황 연주자 김계희는 ‘笙(생)의 노래’를 통해 안정감 있는 연주를 들려준다. 서양에서 ‘마우스 오르간’으로 불리는 생황은 국악기 가운데 유일하게 화음을 내는 경쟁력이 큰 악기다. 민요에서 이국적인 색채를 담은 창작곡까지 애잔하고 구슬픈 생황의 독특한 음색을 표현하고 있다. 가야금 연주자 백은선의 앨범 ‘바람의 악사’는 퓨전이란 의미에 매우 적합한 앨범이다. 가야금과 기타가 주를 이루는데, 두 악기의 궁합이 의외로 잘 맞는다. 퓨전국악에서 집시 스윙재즈까지, 앨범 전체에서 느껴지는 ‘밝은 슬픔’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직 이러한 앨범들이 놀라운 판매고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한 걸음씩 계속 앞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더불어 이제 우리 색깔이 오롯이 담겨 있는 퓨전국악이 ‘케이비트(K-Beat)’가 되어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리기를 간절히 바란다.송기철 음악평론가·KBS 쿨 FM ‘송기철의 심야식당’ 진행자}

    • 2018-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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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회 연속 전석 매진 행렬…이해제 연출가 8년만의 복귀작 ‘달걀의 모든 얼굴’

    창작연극 ‘달걀의 모든 얼굴’이 지난 6일 개막 이후 5회 연속 전석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로의 소문난 이야기꾼 이해제 연출가의 8년만 복귀작인 이 연극은 안면인식 장애를 모티프로 인간의 탐욕, 탐욕이 만들어낸 아이러니와 해학을 짜릿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인 1940년대를 배경으로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주인공 장 총재를 두고 목숨을 걸고 유언장을 고치려는 심복들의 통쾌한 반란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해제 연출은 안면인식 장애를 모티프로 인간의 탐욕과 탐욕이 만들어낸 아이러니를 풍자와 해학을 곁들여 풀어낸다. 이 연극의 흥행돌풍은 윤유선, 김정영, 전배수, 정석용, 신승환 양현민, 장성범, 손우현, 박정원, 김승화 등 내로라하는 실력파 배우들의 힘이다. 이들은 대부분 1인 다역을 소화하며 러닝타임을 꽉 채운다. 연극 ‘톡톡’, ‘웃음의 대학’, ‘앙리 할아버지와 나’ 등 대학로 수작 연극을 탄생시킨 이해제 연출가는 이번 연극에서도 짜릿한 연극성과 풍자와 해학이 담긴 메시지도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제작진과 배우들은 “매진 행렬에 감사드린다. 남은 공연도 최선을 다해 더 좋은 무대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달걀의 모든 얼굴’은 15일까지 대학로 아름다운 극장에서 공연한다. 이후 20일부터 22일까지 3일 동안 총 5회에 걸쳐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티켓은 인터파크를 통해 예매할 수 있다. 전석 3만원.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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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국제영재올림피아드 출전한 한국 학생들 전원 수상 쾌거

    한국기술지원단(단장 오창호)은 지난 11일부터 16일까지 미국 뉴욕 오스웨고에서 열린 국제 영재올림피아드(Genius Olympiad)에 출전한 한국대표단 전원이 수상에 성공했다고 18일 밝혔다. 과학 분야 금상 수상팀은 청심국제고등학교 강마리(18), 이하은(17), 대전대신고등학교 김영민(18), 서울국제학교 허지혜(14) 3팀이며, 동상 수상은 대구국제학교 이도경(17)이 수상했다. 특별상은 노스런던컬리지에잇스쿨(NLCS) 제주 김운영(18), 천안고등학교 이현중(16)이 수상했다. 과학 부문에서 금상을 받은 강마리(18), 이하은(17) 학생은 “효과적인 One-step 다방향 걷기 재활의 제안” 연구를 통해 재활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게임형식의 프로그램을 시연하여 환자의 흥미 유발과 재활치료 효과를 높이는 보조 장애 환자들을 위한 재활 시스템을 제안 하여 심사위원들의 많은 관심과 호평을 받았다. 또한 김영민 학생(18)은 클로로필을 겔(gel) 형태로 만들어 산성토양에 처리함으로써 토양의 pH가 중성화가 되는 것을 확인하였고, 중금속 유출예방 효과도 살펴보아 클로로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선보였다. 허지혜 학생(14)은 그래핀을 이용한 투명 플렉시블 정전기 하베스팅 소자를 연구하여 차별성 있는 에너지 하베스팅 방법의 제안에 대해 심사위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동상을 수상한 이도경(17) 학생은 GMO 밀가루, Gluten-Free 밀가루 그리고 일반 밀가루에서 녹말과 단백질을 분리한 후, 이를 이용한 친환경적인 식품 유해세균의 억제방안에 대해 논의 한 작품으로 생활에 밀접한 작품으로 동상을 수상 하였다. 특별상을 받은 김운영(18) 학생은 심층학습알고리즘을 사용하여 원숭이의 시각 뉴런에 발생하는 신경반응을 분석연구를, 이현중(16) 학생은 식물의 다양한 구조 및 식물 추출액을 이용한 수중 녹조제거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지구 수중 환경에 대한 문제를 환경자원에서 찾는 학생다운 탐구를 진행하였다. 인솔을 담담했던 융합인재연구소(STEA) 김영미(40) 대표는 청소년들이 글로벌한 시각으로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과학뿐만이 아닌 예술, 공학 등 여러 분야의 융합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해결책을 찾기 위해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접근과 여러 분야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이 대회를 참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올해로 8회에 이르는 Genius Olympiad는 “Lets build a better future together” 라는 슬로건으로 2011년부터 오스웨고 뉴욕주립대와 미국 테라과학교육재단이 주최·주관하는 국제 과학경진대회이다. 이번 대회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72개 나라에서 1285여명의 학생들이 과학을 비롯한 다섯 개 분야에 참가하여 역대급 가장 큰 대회로 진행 되었다. 또한 Genius Olympiad 최우수작품 6개 팀이 올해 대전에서 열리는 Expo Sciences Asia 2018(ESA 2018)에 초대되어 한국 학생들과의 교류가 이루어 질 예정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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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집들이 선물

    어느새 짙어진 초록, 풀내음 가득한 산책길에 작고 귀여운 집주인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잘 꾸민 새봄 집들이에 선물이 빠지면 안 되겠죠. 덩치 큰 손님들이 미리 준비해 간 땅콩 선물이 무척 마음에 드는 모양입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18-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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