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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재수사 결과를 어제 발표했지만 여전히 미덥지 못하다. 검찰은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인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이 불법사찰의 비선(秘線)이라고 설명했다. 최초 수사에서는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놓쳤다가 폭로가 있고 나서야 비로소 밝혀내는 검찰의 수사 의지가 의심스럽다. 검찰은 재수사에서도 박 전 차장과 이 전 비서관 이상의 윗선을 규명하지 못했다. 이 전 비서관의 공식 보고라인인 당시 사회정책수석과 대통령실장만 조사하고 권재진 민정수석비서관(현 법무부 장관)은 서면진술서만 받고 끝냈다. 당사자들의 진술만으로 불법사찰 내용이 청와대나 다른 실력자에게 보고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제대로 된 수사라고 할 수 없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임명될 때부터 임기 말 대통령 지키기 인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권 장관은 한 총장의 직속 상관이다. 검찰이 의도적으로 ‘윗선 자르기’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만하다. 여권은 특검을 검토하고 있고 야권은 국정조사(國政調査)와 청문회를 하겠다고 벼른다. 이 역시 검찰이 자초한 것이다. 검찰은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 등의 입막음용으로 류충열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이 준 5000만 원과 이상휘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준 3400만 원의 출처에 대한 의혹도 풀지 못했다. 이들이 기소될 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거액을 자기 돈으로 내놓고 입막음을 시도할 이유가 없다. 돈을 준 사람의 진술에만 의존한 검찰은 무능한 것인가, 수사 의지가 없는 것인가. 검찰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조사한 500건 중 박 전 차장이 사기업의 청탁을 받고 공직감찰 기능을 개인 이익을 위해 이용한 3건에 대해서만 기소했다. 사법부의 수장인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이나 공직자가 아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동향 파악은 월권(越權)이다. 종교인 연예인 기업인 정치인에 대한 사찰 내용 중에는 단순한 동향 파악을 넘어선 것이 있었으나 처벌하지 못했다. 현행법으로 도청과 불법 계좌추적은 처벌할 수 있지만 사찰은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 한 처벌하기 어렵다. ‘불법 사찰 방지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다.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 사찰, 도청, 불법 계좌추적 등은 국민기본권을 보장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용납될 수 없다. 사생활의 비밀은 적법한 수사에 의하지 않고는 침해할 수 없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민간인 사찰 같은 범죄를 엄하게 다뤄야 이른바 국가범죄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이 도박 파문을 계기로 전근대적 종단 운영체계를 고쳐 사찰의 재정 관리를 출가 승려가 아니라 재가(在家) 신도에게 맡긴다. 도박 폭로의 원인이 된 선거 시비를 없애기 위해 주지 등 소임(所任) 승려의 선출제도를 정비하고 승려가 준수할 청규(淸規)를 현대 사회에 맞게 제정할 계획이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어제 밝힌 종단 쇄신 계획은 출발에 불과하다. 약속한 대로 제도를 만들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조계종의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1994년 종단 개혁 이래 가장 높았다. 일부 승려의 일탈이 있었지만 대부분 승려는 수행에 정진하며 깨어 있었다. 형안(炯眼)의 선승들이 들고 일어났고 원로 스님들도 물러나 있지만은 않았다. 이에 자승 스님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응답했으나 불자는 물론이고 국민이 보기엔 미흡하다. 종단 지도부는 기대에 걸맞은 개혁을 이뤄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자승 스님은 2001년 강남 룸살롱 출입에 대해 “10여 년 전 있었던 부적절한 일에 대해서는 향후 종단의 종헌종법 절차에 따라 종도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규명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술자리 후 잠자리까지 있었다는 일각의 의혹에 대해 “그런 잘못은 결코 없었다”고 부인했다. 자승 스님이 본인 입으로 룸살롱 출입은 부적절한 일이었다고 고백한 것도,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성관계 의혹을 부인한 것도 처음이다. 다시는 의혹이 일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사건의 진상이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쇄신책에는 불교계의 고질적인 정치권 유착에 대한 자성(自省)은 포함되지 않았다. 자승 스님과 봉은사 전 주지 명진 스님은 이명박 정권에서 정치권 여야의 대리인인 것처럼 갈등을 빚었다. 총무원의 권력을 쥔 측이나, 밖으로 도는 측이나 모두 10여 년 전 그 룸살롱에 함께 있었다는 것이 외부에 비친 조계종의 부끄러운 초상이다. ‘닭 벼슬만 못한 게 중 벼슬’이라는 절집의 오랜 격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 5일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가 개최한 사부대중 모임에서 한 불자는 “2010년 불교계가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에 반발해 정부 및 여당 관계자 출입금지 푯말을 세우고 지난해 예산을 재배정하자 푯말을 치우는 모습을 보면서 슬픈 생각이 들었다”고 비판했다. 정부 예산을 따오는 일이 종단의 중대사가 되고 정권은 그런 예산으로 종단을 길들이는 일이 앞으로는 없어야 한다. 종교는 종교의 길을 가고, 정치는 정치의 길을 가야 한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 후보가 박근혜 의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제명 필요성을 언급한 것에 대해 “국가관을 이유로 의원을 제명한 적이 있느냐”며 “아주 악질적인 매카시즘(공산주의 마녀사냥)”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여론이 나빠지자 “두 의원이 자진사퇴하지 않으면 자격심사를 통해 의원직을 박탈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한 것과 상충된다. 이 후보의 발언을 계기로 김한길 대표 후보도 ‘색깔론’ ‘공안정국’ 운운하고 나섰다. 이석기 김재연 두 의원은 과거 종북(從北) 활동을 한 적이 있지만 사법적 처벌을 받았고 사면 복권된 이상 국회가 전력(前歷)만으로 의원 자격을 박탈하는 제명을 추진할 수는 없다. 19대 의원들 중에 종북주의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이 사실 두 의원만은 아니다. 민주사회에서 사상이나 정치적 성향만으로 아무나 처벌할 수는 없다. 두 사람이 유독 제명 대상으로 거론되는 것은 종북주의 국가관 때문이 아니라 반(反)민주적 선거조작이라는 부정행위를 통해 의원 배지를 달았기 때문이다. 두 의원의 선거조작 행위가 수사와 재판을 통해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명 절차에 이의를 제기하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국회의 정치적 결정이 꼭 대법원 판결로 사건이 확정되기까지 기다릴 이유는 없다. 이 후보는 두 의원의 제명이 통진당에 표를 던진 유권자의 지지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두 의원의 투표 조작은 그들을 비례대표로 뽑은 통진당 스스로 밝혀낸 것이다. 통진당은 두 의원의 제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정도면 국회는 제명 절차에 착수할 충분한 근거를 확보한 것으로 볼 만하다. 헌법 제64조에 따른 의원 제명은 어떤 행위가 대상이 되는지 제한을 두지 않는다. 의원 제명은 국회의 전적인 자율에 속한다. 의원이 되기 전 행위는 어떤 것도 문제 삼을 수 없다는 주장은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자율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의원이 되는 과정의 반민주성 때문에 제명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회가 형식논리에 구애되지 않고 자율성을 충분히 발휘해 판단할 일이다. 이석기 김재연 두 사람이 이름모를 보통 서민으로 살아간다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그 생각만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은 헌법을 준수하겠다는 선서를 한다. 헌법의 근본이념인 자유민주주의 체제, 그리고 인권 보호를 지키겠다는 약속이다. 북한의 3대 세습이나 주민의 인권 유린, 핵무기 개발과 남(南)을 향한 도발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위협이며 헌법적 가치를 부인하는 것이다. 북의 체제와 도발을 감싸거나 편드는 발언과 행보는 헌법의 테두리를 벗어난다. 의원의 국가관을 검증하는 것은 이해찬 후보의 주장처럼 매카시즘이 아니라 유권자의 권리이자 의무다.이석기 김재연 임수경의 非상식 뻗치기 이런 관점에서 통진당의 두 의원과 민주당 임수경 의원이 최근에 한 발언은 헌법의 기본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볼 소지가 다분하다. 이석기 의원은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전술에 따라 결성된 민족민주혁명당의 경기남부위원장을 지냈으면서도 과거 활동을 반성한 적이 없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북한 인권과 3대 세습, 북핵 문제에 대한 생각을 밝혀달라는 질문에 ‘색깔론’ 운운하며 답변을 회피했다. 종북 논란에 대해서는 “종북보다 종미(從美)가 더 큰 문제”라고 되받았다. 대한민국은 미국 등 자유민주국가들과 가치관을 공유해 번영의 기적을 이뤄냈다. 그 덕에 재(財)테크를 해 부자로 사는 사람이 미국보다 주민을 굶겨 죽이는 북한을 따르는 종북이 더 낫다고 강변하는 게 과연 정상인가. 김재연 의원은 방송 출연에서 ‘연평도 포격처럼 북한이 공격해도 우리가 참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맞불을 놓으면서 전쟁을 일으켜선 안 된다”고 답했다. 그는 “북한 체제를 인정하지 말고 거부하자는 것은 전쟁하자는 얘기”라는 말도 했다. 김 의원의 발언은 우리가 주권과 영토를 스스로 지키는 자주국가임을 포기하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북한을 의식해 그런 말을 한 것이라면 ‘나는 종북주의자’라고 자백한 셈이다. 임수경 의원은 탈북자와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을 ‘변절자’라고 비하했다. 김일성 김정일의 폭압에 견디다 못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북한을 탈출한 사람과 북한인권운동가가 변절자라면 김일성주의에 대한 지조를 지키는 것이 옳다는 얘기 아닌가. 임 의원은 1989년 자신의 불법 방북을 ‘통일운동이자 민주화운동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면서 2000년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에 명예회복 신청을 했으니 민주주의가 물구나무를 서야 할 판이다. 반인륜 독재자 김일성을 아버지라 부른 것도 민주화운동이었단 말인가.}
임수경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의원이 한 탈북자 출신 대학생과 시비가 붙어 “근본도, 개념도 없는 탈북자 ××들이 굴러 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 개겨?” “너 하태경(새누리당 의원) 하고 북한 인권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지. 그 변절자 ××,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거야” 등 험한 말을 내뱉었다. 임 의원은 파장이 커지자 사과했다. 그러나 탈북자들과 북한 인권 운동을 두루 칭해 변절이나 이상한 짓으로 여기는 그의 사고방식이 해명된 것은 아니다. 그가 여전히 주사파의 이념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임 의원은 1989년 6월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참가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3년 5개월을 복역했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로 선정됐을 당시부터 민주당 내에서조차 “임종석 전 사무총장의 아바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임 전 사무총장은 1989년 주사파가 장악한 전대협의 의장으로 임 의원의 방북을 기획, 실행했다. 임 의원이 방북 당시 다녔던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는 통합진보당 주사파의 산실(産室)로 이석기 의원 등 경기동부연합의 주력이 졸업했다. 임 의원과 17대 의원을 지낸 임 전 사무총장은 김대중 대통령 집권 당시인 1999년 복권됐지만 둘 다 공개적으로 전향을 선언한 적이 없다. 임 의원은 운동권에서는 ‘통일의 꽃’으로 칭송받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방북은 동유럽에서 공산주의가 무너져가던 시기에 북한 체제를 연명시키는 데 이용됐다. 그도 1990년대 북한 주민이 숱하게 굶어죽고 탈북 행렬이 줄을 잇는 북한 체제의 실상을 듣고 보았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온 탈북자들과, 북한의 실상을 보고 북한 인권 운동가로 돌아선 전향자들을 비하한 것은 주사파의 본색을 부지불식간에 드러낸 것이 아닐까.정치권 내 주사파 종북세력을 통진당만의 문제로 국한하는 것은 협소한 시각이다. 김경재 전 민주당 의원은 2010년 “민주당에 주사파 세력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북한 지하당 ‘왕재산’을 조직하고 활동을 주도한 혐의로 민주당 출신 국회의장의 보좌관이 구속됐다. 하태경 의원은 ‘왕재산’ 사건 이후 “과거에 주사파 386들이 정치권에 진출할 때 민주노동당(통진당의 전신)에 많이 들어갔지만 민주당에도 적지 않게 들어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차제에 민주당 내 주사파 종북세력의 실체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

아내로부터 “날 생각하면 무지개색 중에 무슨 색이 떠올라”라는 문자가 왔다. ‘바빠 죽겠는데 웬 뜬금없는 질문이야’라고 속으로 불평하며 별 생각없이 “빨강”이라는 답신을 보냈다. 잠시 뒤 싸한 분위기 감도는 문자가 도착했다. “한번 더 기회 줄테니 다시 생각해봐.” 아내의 질문은 요새 기혼여성들이 남편들에게 유행처럼 물어보는 것이다. 빨강은 그저 마누라, 주황은 애인 같은, 노랑은 동생 같은, 초록은 친구 같은, 파랑은 편안한, 남색은 지적인, 보라는 섹시한 마누라를 의미한단다. ▷통합진보당 김재연 비례대표 당선자가 19대 국회에 입성하면서 보라색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재킷뿐이었다면 그저 그랬을 텐데 검은 재킷과 보라색 미니스커트의 세련된 매치가 눈길을 끌었다.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라면 절대 그렇게 입지 못했을 것이다. 87학번인 이 전 대표는 ‘진보의 붉은 장미’로 불리긴 하지만 어딘지 1980년대 운동권 여학생 출신의 칙칙함이 남아있다. 99학번인 김 의원에게는 그런 게 없다. 과연 신세대 메트로폴리탄 주사파라고나 할까. ▷보라색은 통진당의 상징색이다. 그래서 김 의원이 보라색 미니스커트를 입었을 것이다. 본래 진보의 상징색은 빨강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 응원 열기에 빨강이 전국을 휩쓸었다. 그때 한국 사회의 빨강에 대한 금기가 깨졌다느니 어쩌니 했다. 그래도 그해 대선에 출마한 노무현 후보와 열린우리당은 감히 빨강을 쓰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노랑이었고 지금 민주통합당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상징색은 주황이었다. 빨강을 써야 할 정당들은 빨강을 쓰지 못하는데 세상이 바뀌어 보수인 새누리당이 빨강을 상징색으로 쓴다. ▷빨강은 열정 정열을 나타낸다. 그런데 기혼여성들이 남편들로부터 닮았다는 소리를 가장 듣기 싫어하는 색이 빨강이다. ‘빨강은 그저 마누라’라나. 어쩌다 빨강이 이렇게 됐는지 모르지만 새누리당이 빨강을 쓸 정도니 빨강이 진부해진 것은 틀림없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부산대 강연에서 색깔론을 비판했다. 그러나 요새 빨갱이는 빨강을 쓰지 않는다. 빨강과 파랑이 섞인 보라나, 빨강과 노랑이 섞인 주황을 쓴다. 안 교수도 보라나 주황 속에 숨겨진 빨강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어제 날짜로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김재연 두 비례대표 당선자가 국회의원이 됐다. 통진당이 밟고 있는 제명 절차가 끝나도 이들은 당원 자격만 잃을 뿐, 의원 신분은 유지된다. 당내 경선 부정행위에 대한 수사와 재판 결과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공직선거법의 관련 규정 미비로 당선무효형의 처벌을 이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국회법의 징계규정도 의원이 되기 전의 활동은 징계할 수 없다. 남은 방법은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 찬성에 의한 제명이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은 어제 국회의 자격심사와 뒤이은 제명 절차에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버티기로 작정한 두 의원에게 자진 사퇴 촉구 정도로 압박이 될지 의문이다. 자진 사퇴하지 않으면 제명 절차를 밟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이해찬 의원은 “국가 기밀을 악용할 우려가 있는 의원들(통진당 주사파)을 안보 등과 직결된 사안을 다루는 주요 상임위에 배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의원들도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국방위와 외교통상통일위 배정을 희망하지 않고 있다. 그렇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는 남아 있다. 민주당은 4·11총선을 앞두고 통진당과 연대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내걸었다. 범야권 공동정책 합의문의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20개 약속’ 중에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포함해 인권을 탄압하는 반민주악법을 개폐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민주당은 이 약속을 앞으로도 유지할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김종빈 전 검찰총장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 때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국보법 폐지가 안 되니까 검찰의 국보법 적용을 무력화하려 했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장은 2006년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려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불구속 지휘를 내리자 반발해 사퇴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쌓여온 것이 오늘날 통진당 사태로 결실을 맺게 됐다”는 그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서구의 극좌파 정당들은 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 붕괴 이후 비빌 언덕이 없어졌지만 국내 주사파 종북 세력은 북한 호전 집단의 엄호를 받고 있다. 북한이 남한 국가체제의 전복을 시도할 수 있는 현실적인 힘으로 존재하는 한 국보법이 필요하다. 민주당이 수권(受權) 자격이 있는 정당임을 인정받으려면 주사파 의원들의 활동을 제한하고 특히 선거 부정에 연루된 사람들은 국회에서 축출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나아가 국가보안법 폐지 정책합의를 이제라도 철회하기 바란다.}

불교의 선(禪)을 일본에서는 젠, 중국에서 찬이라고 발음한다. 그런데 서양에는 젠은 있어도 선이나 찬은 없다. 대학시절 동양철학 교재를 아직도 갖고 있다. 영어로 된 이 책의 불교 편에 선불교를 소개하는 장이 있는데 Zen과 Zazen이라는 말이 나온다. Zen과 Zazen은 선과 좌선(坐禪)을 일본 발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Seon(선)이나 Chamseon(참선)은 없다.한국 선의 세계화 아득하기만 지난해 여름 프랑스에 들렀다가 일본 불교 조동종(曹洞宗) 선사 데시마루 다이센(弟子丸泰仙·1914∼1982)의 전기가 나왔기에 샀다. 유럽 서점의 불교서적 코너는 대개 티베트 불교의 책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선불교 책이 모처럼 코너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어 반가웠다. 데시마루는 젠을 유럽에 확산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의 최초의 전기가 프랑스인 제자들에 의해 ‘Sensei(‘선생’의 일본 발음)’라는 제목으로 나온 것이다. 데시마루는 은사 사와키 고도(澤木興道)의 유언을 받들어 프랑스로 건너갔다. 은사는 1965년 입적하면서 “인도에서 불교가 죽자 달마가 불교를 가지고 동쪽으로 왔다. 일본의 불교가 죽었으니 너는 서쪽으로 가서 그곳에서 법을 전하라”는 말을 남겼다. 데시마루가 1967년 파리 북역에 첫발을 디뎠을 때 나이 53세. 프랑스어는 전혀 할 줄 몰랐고 영어만 아주 조금 할 줄 알았다. 무일푼의 그가 가진 것은 가사 한 벌과 은사의 노트 한 권, 그리고 좌선용 방석뿐이었다. 선사 데시마루가 파리의 거리에서, 남프랑스 해변에서 직접 보여준 묵조선(默照禪)의 수행법은 프랑스인의 눈길과 마음을 끌었다. 앙드레 말로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같은 지성인이 데시마루와 교류했고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는 자신의 무용단에 그의 좌선 수업을 받도록 했다. 일본 불교학자 스즈키 다이세쓰 데이타로(鈴木大拙貞太郞)가 영어로 쓴 선불교 서적들이 20세기 전반부터 서양에 널리 읽힌 덕도 봤을 것이다. 한국 조계종의 현대적 출발은 1947년 성철 스님 등이 중심이 된 봉암사 결사에서 비롯된다. 봉암사 결사와 이후 1950년대의 불교 정화운동은 일제강점기에 조동종 등 일본 불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대처(帶妻·처를 둠) 관행을 몰아내고 독신 전통을 되살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 조계종은 동아시아 선불교 중에서 전통에 가장 충실하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세계 속에서는 조계종이 아니라 조동종이 선불교를 대표한다. 세계 불교 중에서 선불교의 비중도 큰 것이 아니지만 그마저도 일본 젠이 대표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도 숭산 스님(1927∼2004) 같은, 시대를 뛰어넘는 글로벌 선사가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 교포를 상대로 포교를 하다가 뜻한 바 있어 1972년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세탁소 수리공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곳 대학생들에게 조계종의 간화선(看話禪)을 전파했다. 하버드대 출신의 현각 등이 다 그의 제자들이다. 우리들끼리 독신 전통이 대처 전통보다 훌륭하다느니, 조계종의 간화선이 조동종의 묵조선보다 뛰어나다느니 아무리 떠들어 봐야 밖에서는 알아주지 않는다. 한국 선에 일본 젠을 뛰어넘는 우수성이 정말 있다면 그것을 서양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에게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래야 한국 선의 세계화, 불교의 한류화가 가능하다. 그래야 제이팝을 능가하는 케이팝처럼 젠 스타일을 능가하는 선 스타일이 나올 수 있다. 절집 내부 알량한 권력 넘어서라 부처님 오신 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조계종이 시끄럽다. 절집의 관심이 밖보다는 너무 안으로만 향한 것도 갈등의 먼 원인 중 하나다. 데시마루는 일본 불교가 타락했다고 진단한 뒤, 유럽에서 출발해 미국을 거쳐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일본 불교를 개혁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유럽으로 떠났다. 절집 내부의 알량한 권력을 갖고 다투기보다는 세계를 향해 이런 결기를 펼쳐 보이는 스님들이 많아질 때 절집도 변할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서울시가 여름철을 전후해 사무실 내에서 간소한 복장 착용을 권하는 ‘쿨비즈 운동’을 추진하면서 특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6∼8월 석 달을 ‘슈퍼 쿨비즈’ 기간으로 정해 민원부서 외에서는 반바지와 샌들 착용을 허용한다. 시는 다음 달 5일 환경의 날을 맞아 서울역사 RTO홀에서 ‘서울이 먼저 옷을 벗다’를 주제로 쿨비즈 패션쇼도 연다. 이 행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모델로 참가한다. ▷쿨비즈니 슈퍼 쿨비즈니 하는 말은 다 일본에서 온 것이다. 2005년 당시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환경장관에게 ‘여름철 복장 간소화에 의한 냉방 절약’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고이케 장관은 이후 사무실 냉방 온도를 28도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재킷과 넥타이를 착용하지 말고 일하자는 운동을 벌였다. 환경성은 이 운동에 이름을 붙여주기 위해 공모를 통해 쿨비즈를 선정했다. 쿨(cool)은 차갑다 또는 멋있다는 뜻이고 비즈(biz)는 비즈니스의 준말이다. ▷일본 환경성은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여파로 사상 최악의 전력난이 예상되자 기존의 쿨비즈를 더욱 철저히 한 슈퍼 쿨비즈 운동을 시작했다. 그 전해까지만 해도 노타이나 노재킷까지만 허용됐으나 폴로셔츠와 청바지까지 추가됐다. 구두 대신 운동화도 인정하고 사무실에서만 신는 조건으로 샌들도 허용했다. 지방자치단체 가운데서는 반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출근을 허용하는 파격적인 시도 생겼다. ▷서울시 방침은 ‘원전(原電) 하나 줄이기’ 운동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2014년까지 에너지 절약과 태양광 발전을 유도해 시 전체로 ‘영광 5호기’ 발전량만큼의 전기 사용을 줄이겠다는 것이 박 시장의 목표다. 한국 정부는 쿨비즈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지 1996년부터 노타이 노재킷을 권장했다. 그러나 쿨비즈는 몰라도 슈퍼 쿨비즈는 정도가 심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 시장이 다리의 시커먼 체모(體毛)를 드러내고 반바지와 샌들 차림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프랑스에서는 최근 프랑수아 올랑드 신임 대통령의 내각에 주택장관으로 입각한 세실 뒤플로 녹색당 대표가 청바지 차림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했다고 언론이 떠들썩했다. 공무원 복장의 편의와 예의 사이에 타협점이 있을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17일 ‘법관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사용할 때 유의할 사항’이라는 권고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해 11월 공직자윤리위는 페이스북 등에서 법관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으로 정치적 편향 발언을 한 법관들이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한 것인지에 대한 검토를 요청받고 판단을 보류했다. 그 대신 SNS의 신중한 사용을 권고하고 법관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사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작업을 벌였다. 이 가이드라인은 사회적 정치적 쟁점에 대해 법관이 SNS에서 의견 표명을 하는 경우 자기절제와 균형적인 사고로 품위를 유지하고, 법관이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지 말고,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처신하라는 내용을 담았다. 공직자윤리위의 권고는 대법원장에게 법관윤리강령의 구체적 적용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법원은 지난해에는 가이드라인이 없어 물의를 빚은 법관들이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한 것인지 판단하지 않았다. 이제 가이드라인이 정해진 만큼 지키지 않는 법관은 필요하다면 징계 절차에 회부해야 할 것이다. 판사들의 SNS에서 ‘가카새끼 짬뽕’이나 ‘가카의 빅엿’처럼 중고교생의 품위에도 맞지 않는 표현이 사라질지 지켜볼 일이다. 공직자윤리위의 권고는 상당히 완곡하다. 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지난해 ‘연방 법관이나 재판연구관은 SNS를 사용하지 않기 바란다’고 한 발언의 수준에 못 미친다. 공직자윤리위가 강조했듯이 SNS는 그 특성을 잘 이해하고 사용법을 숙지하지 않으면 사용자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는 법관은 SNS 사용을 신중히 하는 데서 나아가 SNS 사용 자체를 자제함이 옳다. 공직자윤리위의 권고는 SNS를 친밀한 사람들끼리의 의사소통 수단으로만 볼 수 없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페이스북은 싸이월드와는 달리 친구관계를 맺지 않더라도 누구나 접속해서 볼 수 있는 개방성이 성공의 비결이다. 트위터는 리트윗이란 기능을 통해 자신이 팔로잉(following)하지 않는 사람의 의견도 볼 수 있는 구조다. 소설가 이외수나 공지영, 조국 서울대 교수, 그리고 김제동 등 일부 연예인은 트위터에서 수십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리면서 웬만한 언론 못지않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만큼 메시지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할 것이다. 법관의 SNS 가이드라인 제정은 미디어의 발전과 그에 필요한 규제의 불일치를 메우는 변화의 시작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끄럽게도 고아 수출국 1위다. 연도별 통계로는 몇 해 전부터 중국 인도 등 인구대국에 선두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인구 비율로 보면 여전히 세계 1위다. 6·25전쟁 이후 지금까지 공식 비공식적으로 20만 명 이상의 고아가 해외에 입양된 것으로 추정된다. 1950년대는 입양아의 대부분이 전쟁고아였으나 이후 주로 미혼모의 자녀가 입양됐다. ▷한국 아이들의 해외 입양 누적 통계를 보면 미국으로의 입양이 가장 많다. 그 다음이 유럽이다. 유럽 개별 국가로는 프랑스가 가장 많다. 해외 한인 입양아 중 프랑스에서 최초의 장관급 각료가 나왔다. 플뢰르 펠르랭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 담당 장관이다. 한국명 김종숙. 생후 6개월 만에 프랑스로 보내졌다. 국립행정학교(ENA)를 나와 최상위 졸업생들이 들어가는 감사원에서 일했다. 그는 버려진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중요한 일은 우연히 일어난다’는 깨달음으로 극복했다. ▷유럽은 아시아계에 미국보다 훨씬 배타적인 곳이다. 미국처럼 아시아계 이민자 가족의 2, 3세가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차라리 외모는 동양인이지만 사고방식은 유럽인이나 다름없는 입양아들이 정관계에 진입하기가 더 용이하다. 2009년 독일에서 베트남 입양아 출신의 필리프 뢰슬러가 보건장관으로 입각해 화제가 됐다. 그는 독일 최초의 비(非)유럽계 각료였다. 프랑스에서는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취임 후 라시다 다티 법무장관이 북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최초로 입각했다. 아시아계는 이번에 한국계 장관이 처음이다. ▷성공한 입양인의 그늘에 훨씬 더 많은 입양인들의 실패가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에서 스웨덴으로 입양된 한국 여아 수잔은 남동생으로부터 “이 중국 애와는 같이 살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펠르랭 장관은 “나는 째진 눈을 갖고 있지만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당찬 여성이다. 프랑스 언론은 ‘가시가 있는 장미’라고 표현했다. 그의 성공은 이를 악물고 산 결과인지 모른다. 유럽의 한인 입양아 중에는 부적응으로 사회의 낙오자가 되는 이들이 적지 않고 목숨까지 끊는 일도 있다. 펠르랭 장관처럼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 낯선 땅에서 그저 평범하게 살아주는 것만도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은 불교 화엄경에 나오는 말이다. 화엄경은 세계를 이(理)와 사(事)의 두 차원으로 나눠 설명한다. 이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판단이며, 사판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 대한 판단이다. 서양철학의 본질과 현상, 유교 성리학의 이기(理氣)와 비슷한 개념쌍이라고 볼 수 있다. 화엄경은 ‘이와 사가 둘이 아니다’라고 가르치면서 원융(圓融)의 세계관을 펼쳐 보인다. ▷‘이판사판’이 합성어로 막다른 궁지에 몰린다는 뜻이 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다. 억불숭유(抑佛崇儒)정책에 따라 천민으로 전락한 승려들이 살아갈 길은 깊은 산속으로 은둔하거나 관가에서 필요로 하는 잡역에 종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산속에서 수행을 이어간 승려를 이판승, 종이를 만들어 공급하거나 산성을 축조해 지킴으로써 연명한 승려를 사판승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판승이든 사판승이든 당시 승려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끝장을 의미했으므로 이판사판이란 말이 생겼다. ▷조계종에서 쫓겨난 한 전직 승려가 조계사 전 주지 토진 스님 등 승려 8명의 도박 동영상을 폭로한 데 이어 ‘에라 이판사판이다’는 식으로 현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봉은사 전 주지 명진 스님 등이 2001년 서울 강남의 최고급 룸살롱인 ‘신밧드’를 드나들었다고 폭로했다. 신밧드 사건은 불교계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명진 스님 스스로도 인정했다. 다만 술자리 후 여종업원들과 잠자리가 있었는지는 확인된 것이 없다. 그러나 스님들이 룸살롱에서 승복을 입은 채 여종업원들과 17년산 발렌타인 위스키 3병을 비웠다는 당시 목격자의 증언만으로도 외부인들에게는 충격이다. ▷오늘날 이판승하면 선방에서 수행하는 수도승, 사판승하면 절 살림을 맡는 주지 등 행정승을 말한다. 겉으로는 이판승을 사판승보다 더 높이 받들어 모시는 것 같으면서도 실속은 사판승이 챙기는 절이 많다. 승려 도박 장면이 몰래 촬영돼 누출된 것도 백양사 주지 자리를 둘러싼 파벌 싸움이 원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판승 사판승의 길이 본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이판승만이 뛰어난 사판승이 될 수 있다. 수행의 내공 없이 절 살림만 하는 승려들이 신도들의 시줏돈이 귀한 줄 모르고 도박판을 벌이고 룸살롱을 드나든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지난 주말 서울광장의 ‘광우병 소 수입 중단 촛불집회’에는 1000여 명이 모였다. 4년 전인 2008년 이맘때 평일에도 평균 1만여 명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일대 거리를 메우던 것에 비하면 한산할 정도다. 이번에는 주말 1000여 명, 평일 100여 명 정도만 참석했다. 교복을 입은 촛불 소녀도, 유모차를 앞세우고 나온 주부도 보이지 않았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바에는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연예인도 없었다. 4년 전 광우병 사태를 주동했던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 다 죽을 것처럼 선동했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사실이 아님을 깨닫는 ‘학습효과’가 생긴 것이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도 4년 전처럼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트위터 검색 순위를 보면 광우병에 대한 정부 대응을 비판한 글과 광우병 선동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는 글이 엇비슷하게 나왔다. 소비자들도 큰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롯데마트는 광우병 발생 소식이 전해진 직후 미국산 쇠고기 판매를 중단했다가 이달 12일부터 재개했다. 지난달 25일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 소식이 전해지자 문성근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권한대행은 광우병 촛불시위를 재연(再演)해 총선 패배 이후 수세 국면을 반전할 기회로 삼으려 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선출된 이후 내놓은 일성도 광우병 촛불시위 참가 독려였다. 북한도 광우병 촛불을 다시 지피려 안간힘을 썼다. 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대외용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 등은 2일 서울광장에서 4년 만의 광우병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후 일제히 반정부 촛불투쟁 선동에 나섰다. 그러나 ‘어게인(again) 2008년’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지난 주말 촛불집회는 미국 광우병 민관합동 현지조사단이 11일 귀국해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공식 발표한 뒤 처음으로 열린 것인데도 미지근했다. 정부도 ‘값싼 쇠고기를 제공하겠다’며 의욕이 앞섰던 2008년보다 신중한 대응을 했다. 이 역시 학습효과라고 할 것이다. 국민과 정부 모두 4년 전 경험에서 배운 바가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4년 전 촛불시위를 주도한 사람들 중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공개적으로 사과한 사람이 아직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조계종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의 의원이자 조계사 주지인 토진 스님이 5일 갑자기 사표를 냈다. ‘조계종 1번지’로 불리는 조계사는 조계종 총무원 직할 교구의 본사다. 그 전날 ‘불교닷컴’이라는 불교계 인터넷 언론은 토진 스님을 포함한 승려 8명이 지난달 23일 전남 장성의 백양사관광호텔에서 억대 도박판을 벌인 사실을 폭로했다. 현장을 몰래 찍은 동영상에는 이들이 한 방에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며 도박을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밤늦게 술과 안주도 배달돼 왔다. 이들이 도박을 한 날은 입적한 백양사 전 방장 지종 스님의 49재 전날이었다. ▷지난해 조계종이 내건 화두는 ‘자정과 쇄신’이었다. 불교계가 정치권력에 흔들리지 않는 자존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불교 내부의 자정과 쇄신이 선행돼야 한다며 으뜸 과제로 불교 본연의 모습을 확립하는 수행(修行) 결사를 꼽았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두웠던가. 조계종 총무원 코앞에 위치한 조계사의 주지와 부주지가 동시에 도박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파장이 컸는지 이번 사건으로 총무원 부·실장 6명이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다. ▷불교계 일각에서는 도박 그 자체보다 비밀리에 호텔 방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13시간에 걸쳐 도박판을 촬영한 과정을 더 문제 삼고 있다. 동영상을 검찰에 제공하고 도박 혐의로 고발한 성호 스님은 전부터 조계사 측과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분명 세력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폭로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지만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억대 도박은 승속을 떠나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부도덕한 일이다. 더구나 일반인보다 막중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스님들로서는 어떤 연유로 잘못이 드러났든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야호선(野狐禪)’은 진실되게 참선도 하지 않으면서 깨달은 듯 남을 속이는 사람을 여우에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조계종이 선, 그중에서도 간화선을 위주로 하다 보니 스님이 득도(得道)한 것인지 아닌지 외부에서 알기 어렵다. 스스로 득도했다고 주장하면서 무애(無애)의 경지에 들어간 듯 식육(食肉) 음주(飮酒) 도박 등을 거리낌 없이 하는 승려들이 존재한다. 계(戒) 율(律) 선(禪)은 같이 가는 것이다. 계와 율을 지키지 않는 선은 선이라고 할 수 없다.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지난해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부인 다니엘 미테랑이 타계했다. 정치적으로 남편보다 더 열성적인 활동가였던 그는 귀빈 접견 등의 대통령 부인 역할은 했지만 엘리제궁에 들어가지 않고 자택에 남아 자기 활동을 계속했다. 미테랑 대통령은 엘리제궁의 주인이 되기 전 숨겨놓은 애인과의 사이에 딸이 있었다. 미테랑 대통령은 다니엘의 암묵적 동의 아래 애인과 딸을 계속 만났다. 다니엘은 끝까지 부부 생활을 깨지 않았지만 마지막 휴식처로는 남편 옆자리가 아니라 친정 가족들이 안치된 묘지를 선택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째인 2007년 10월 세실리아 여사는 남편과 이혼을 선언하고 대통령 부인 자리를 떠났다. 그는 2005년 한 이벤트 기획자와 사랑에 빠져 남편 곁을 떠났다가 대통령에 도전한 사르코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다시 가정으로 돌아왔으나 대통령 부인 자리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옛 남자에게 돌아갔다. 홀아비가 된 사르코지에게 야심적인 모델 겸 가수 출신 카를라 브루니가 접근해 대통령 부인 자리를 차지했다. 사르코지는 재임 중 이혼과 재혼을 한 프랑스의 첫 대통령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에겐 부인이 없고 동거녀 발레리 트리르바일레가 있다. 트리르바일레는 주간 ‘파리 마치’ 기자이면서 TV 채널 ‘디렉트 위트(Direct 8)’의 정치대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일부에서는 차갑고 도도한 인상을 가진 그가 상층 부르주아지 출신이라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실은 지체부자유자인 부친과 시립스케이트장 요금 수납원인 모친을 둔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 그는 2005년 취재를 위해 올랑드를 만났다가 동거에 들어갔다. 당시 올랑드는 30년 가까이 동거한 세골렌 루아얄 2007년 사회당 대선후보와 별거 상태였다. ▷동거 관계가 흔한 프랑스이지만 대통령의 동거녀는 처음이다. 그는 자신의 위치가 정식 아내가 아니어서 독립적인 만큼 하던 일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트리르바일레라는 성을 준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는 “국가의 돈으로 살고 싶지 않다”며 “대통령 부인은 두 번째 역할”이라고 규정했다. 프랑스 대통령 부인의 모습이 사람마다 변화무쌍하다. 그가 동거녀 영부인이라는 새 조합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자기 직분(職分)의 한계를 넘어선 행위를 참월이라고 부른다. 논어 팔일(八佾)편에 공자가 노나라의 실력자 계씨(季氏)를 탓하여 이르기를 “팔일무(八佾舞)를 추게 하다니, 이것을 용서한다면 용서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말한 대목이 있다. 팔일무는 천자(天子)를 위해 64명이 8명씩 8열로 추는 춤으로서 제후(諸侯)는 6열, 대부(大夫)는 4열, 사(士)는 2열로 추도록 돼 있다. 계씨가 일개 대부의 신분으로 천자의 팔일무를 추게 했으니 공자가 참월이라고 분개한 것이다. 국회, 돌아올 수 없는 다리 건너다 공자는 법(法)이 아니라 예(禮)의 위반을 말했다. 현대 정치에서도 법에 명확한 금지는 없어도 각 기관이 지켜야 할 직분의 내적 한계가 있다.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통과를 주도한 국회법은 여야가 다투는 쟁점 입법의 의결정족수를 5분의 3으로 높인 것으로 원칙적으로 해서는 안 되고, 한다면 헌법 개정으로나 해야 할 일을 국회 입법으로 해버린 현대판 참월에 해당한다. 헌법은 “국회는 헌법과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일반정족수를 정해놓고 강화된 특별정족수는 헌법에, 완화된 특별정족수는 법률로 정하고 있다. 개정 국회법에 따르면 소수당이 반대하는 쟁점법안은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에서 각 단계마다 재적의원 5분의 3의 찬성을 얻어야 통과한다. 헌법만이 강화된 특별정족수를 규정한 정신을 훼손한 것이다. 이것은 현 국회의 차기 이후 모든 국회에 대한 참월이기도 하다. 비단 문을 닫는 현 국회가 차기 이후 국회의 의사 진행 규칙을 정했다는 점에서, 즉 남의 일을 자기가 했다는 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현 국회는 일반정족수로 재적의원 5분의 3을 의결했지만 차기 이후의 국회가 일반정족수로 돌아오려면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에서 각각 5분의 3으로 의결해야 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어떤 정당도 혼자 국회 의석의 5분의 3을 차지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힘들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국회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버렸다. 재적의원 5분의 3은 60%를 의미한다. 60이 50을 대신하는 것은 민주주의 일반 원칙에 대한 참월이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100, 즉 만장일치 합의다. 그러나 50에서 100으로 갈수록 합의에 드는 비용이 증가한다. 50은 정당성의 요건을 맞추면서도 비용을 최소화하는 숫자다. 그러나 비용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과반은 항구적인 과반이 아니라 잠정적인 과반이다. 현재의 다수당은 미래의 소수당이 되고 현재의 소수당은 미래의 다수당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현재의 과반에 승복하는 것이다. 물론 소수자 보호가 특별히 필요한 경우 비용 증가를 감수하고서라도 합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그런 예외는 헌법만이 정하고 있다.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개정 국회법 조장(助長)이란 말은 춘추시대 어리석은 송나라 사람이 묘목이 자라지 않는 것을 걱정해서 그것을 뽑아 올리고는 ‘내가 묘목을 도와서 자라게 했다’고 말한 데서 유래한다. 성장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결국 묘목을 말라죽게 해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몸싸움을 방지하고 대화의 정치를 조장한다는 취지로 개정된 새 국회법이 어느 다수당도 혼자서 결정적 입법을 하지 못할 국회를 만들었다.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은 의회에서 과반을 차지해 독자 입법권을 얻기 위해 기를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총선에서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한국만이 처하게 될 이 독특한 정치적 상황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현 국회 다수당의 원내수장인 황 대표다. 이런 입법을 주도해 놓고도 하회탈 웃음을 짓는 그를 보면서 역사 앞에 죄를 짓는지도 모르는 결정을 참으로 태연히 해치운다는 인상을 갖지 않을 수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면서 국민이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 검찰은 어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 전 차관은 파이시티로부터 인허가 청탁과 함께 수억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파이시티로부터 7억여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이미 구속 수감됐다. 박 전 차관과 최 전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다.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은 검찰에 소환되지는 않았지만 구속된 보좌관의 뇌물 비리 때문에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검찰과 이 의원의 신경전이 어떤 결말을 지을지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공기업 임직원들은 대통령이 강조한 ‘공공기관 선진화’를 비웃듯이 뭉칫돈을 챙겼다. 그중에서도 원자력발전소를 거느린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납품 비리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보더라도 원전은 부품 하나만 잘못 작동돼도 국가적 재앙을 몰고 올 수 있다. 돈을 먹을 데가 따로 있지, 어떻게 원전 부품을 납품 받으면서 줄줄이 뒷돈을 챙겼단 말인가. 검찰은 한수원 비리에 김종신 사장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고 있다. 김 사장은 노무현 정권 말기에 임명됐지만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 실세의 도움으로 5년 가까이 장수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수원을 감독하는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는가. 감사원도 손을 놓고 있었단 말인가. 공기업 사장을 선거 공신이나 연줄로 앉히다 보니 부패가 더 깊어진 것은 아닌지 깊은 자성이 필요하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안에 정보와 사정 기능을 두고 있으면서도 공공 부문의 기둥이 썩는 줄을 그리도 몰랐단 말인가. 국민은 참을 수 없는 울분을 느낀다. 이 대통령은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했지만 정말 그렇게 자신할 만큼 순진했던 것인지, 그렇게 말하면 국민이 믿어주고 아무 탈이 없을 것으로 판단한 것인지 궁금하다. 드러난 부패만 보더라도 이 정권을 만들어준 국민을 배신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더니, 지금 보수는 힘을 하나로 합치지도 못하면서 이 정권은 부패로 물들고 있다. 이 길로 계속 간다면 정권을 내줄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종북(從北)세력까지 ‘정권 심판’ 기치를 들고 공동정권 창출 운운하고 나서는 토양이 바로 부패임을 모른단 말인가. 이 대통령은 정권 부패를 스스로 다 쓸어내야 한다. 집권 기간에 생긴 부패를 스스로 단죄함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열어야 한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동아일보 및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발언은 나름의 근거를 갖고 한 얘기인 이상 고소가 취하되지 않아 검찰 조사로 이어진다면 경찰 조직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청장은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으로 유족에 의해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다. 그는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재임하던 2010년 3월 “노 전 대통령이 차명계좌가 발견돼 자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해 8월 국회 경찰청장 인사청문회에서 이 발언이 문제되자 “더 이상 제가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대답을 거부한 이후 줄곧 함구했다. 조 청장의 발언은 유족이 고소를 취하하면 자신도 얘기를 하지 않겠다며 고소 취하를 종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경찰 총수가 애초에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다면 몰라도 지금 와서 유족을 압박하며 거래하는 행태를 드러내는 것은 비겁해 보인다. 검찰은 유족의 고소 이후 1년 9개월이 지나도록 조 청장을 조사하지 않았다. 그가 곧 경찰청장 자리에서 물러나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가는 만큼 검찰은 퇴임 후에라도 조사에 나서야 한다. 노 전 대통령 유족 역시 조 청장에 대한 고소가 단순히 결백을 강조하기 위한 정치적인 제스처가 아니었다면 진실 규명을 위해 고소를 취하하지 말고 검찰 조사에 협조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여기서 조 청장과 타협해 대충 접고 넘어가면 뒤가 구린 것처럼 비치고 어떤 식으로든 다시 문제가 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 딸 정연 씨의 미국 아파트 구입자금과 관련한 의혹은 올 2월 다시 제기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의 진실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쪽은 조 청장이나 경찰이 아니라 검찰일 것이다. 박연차 게이트 의혹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은 조 청장의 발언에 대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언급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자살 이후 공소권이 없다는 이유로 수사기록을 덮어 버렸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고소 고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진실을 영원히 묻어둘 수는 없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정치적 공방의 소재가 될 바에야 이번에 확실히 진실을 밝히고 넘어가는 것이 옳다.}
대법원 전원재판부는 2009년 6월과 7월 시국선언문의 형식으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들에 대해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전교조의 시국선언은 2009년 5월부터 시작된 일련의 시국선언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반(反)이명박 전선의 구축’이라는 뚜렷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 사건은 1심에서 유무죄 판결이 엇갈려 혼선을 빚었다. 2010년 5월 항소심에서 첫 유죄판결을 받은 교사들이 상고한 뒤 대법원이 2년 가까이 끌어오다 이번에 최종 판결을 내렸다. 전교조는 2009년 당시 교사 1만6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6월 민주항쟁의 소중한 가치가 더 이상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은 ‘과거 군사정권을 떠올리게 하는 공권력의 남용으로 민주주의의 보루인 언론 집회 표현 결사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이명박 정권의 독선적 정국 운영에서 비롯됐다’는 내용을 담았다. 초중고교 교사는 국공립학교의 경우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한다. 사립학교의 교원도 사립학교법에 따라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 보장을 받는 대신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닌다. 이에 따라 교사들은 대학교수들과 달리 정당 가입과 선거운동이 금지돼 있다. 대법원은 교사의 정치적인 중립이 교육 현장뿐 아니라 현장 밖에서도 지켜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직 독자적인 세계관이나 정치관이 형성돼 있지 않은 미성년자를 교육하는 교사들은 교육 현장 밖에서의 활동도 잠재적인 교육 과정으로 생각하고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교사에게도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공무원과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선언한 헌법 정신에 비춰 그 자유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 의사를 집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명백한 정치활동으로 볼 수 있다. 전교조도 이제는 대법원 판결에 승복해야 한다. 시도교육청은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에 대해 징계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등 일부 좌파 교육감들은 그동안 시국선언 교사를 징계하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요구를 거부하고 징계 처분을 미뤄왔다.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계속 징계를 미룬다면 직무 유기에 해당한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탁월한 연설가였다. 그는 문서 작성이라면 질색하는 타입이었지만 딱 하나 예외가 있었다. 연설문이다. 이언 커쇼의 책 ‘히틀러’에는 ‘히틀러는 직접 원고를 썼는데 한번 썼다 하면 며칠을 밤늦게까지 방에 틀어박혀서 몰두했다. 3명의 비서가 히틀러가 불러주는 내용을 바로 타자기로 쳤고 히틀러는 그 내용을 다시 꼼꼼히 손질했다’고 나와 있다. 히틀러는 강력한 충격을 줄 만한 제스처를 찾기 위해 사전에 자신의 제스처를 사진으로 찍어 연구했다.▷소련의 스탈린은 훌륭한 연설가가 아니었다. 말주변이 없어서 연설할 때는 미리 쓴 원고를 자꾸 쳐다보면서 읽는 ‘책 읽기’ 연설을 했다. 연설의 내용도 진부했다. 박진감 넘치는 히틀러의 연설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는 외모에도 자신이 없어 사진 찍는 쪽보다 초상을 그리는 쪽을 더 좋아했다. 사진도 대개 조작된 것이다. 그의 사진이나 초상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경직돼 보이는 이유다. 독재라고 해도 독일의 서방적 전통과 소련의 동방적 전통에는 차이가 크다.▷북한 김정은은 15일 김일성 100주년 생일 기념 열병식에서 처음으로 공개 군중 연설을 했다. 김정은의 역할모델은 아버지 김정일보다 할아버지 김일성이다. 김정일이 했던 공개 연설은 1992년 인민군 열병식에서 “영웅적 조선인민국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라고 말한 것이 알려진 전부다. ‘은둔형 예술가’ 기질의 김정일은 연설을 잘하지 못할 바에야 아예 하지 않는다는 주의였는지 모른다. 반면에 김일성은 광복 직후 평양에서의 귀국 연설을 시작으로 해방 정국에서 수시로 연설을 했고 말년까지도 신년사를 직접 낭독했다.▷김정은은 연설에서 김일성의 목소리를 닮은 중저음을 흉내 내려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연설 마지막에 ‘앞으로’라고 외치며 오른쪽 검지로 내리긋는 제스처도 김일성이 자주 사용한 것이다. 연설하면서 몸을 좌우로 흔드는 것도 긴장해서가 아니라 김일성을 흉내 낸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목소리와 제스처만 비슷했지 김일성의 카리스마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스탈린식의 ‘책 읽기’ 연설에 가까웠다. 흰색 망토를 휘날리는 백마부대를 등장시킨 것은 김일성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적통의 손자가 물려받았다는 무대효과를 내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4·11총선 직전 나꼼수 멤버가 서울시청 앞에서 벌인 ‘조(남성 성기를 뜻하는 단어에서 받침 ㅈ을 뺀 것) 퍼포먼스’와 낸시랭이라는 여성 행위예술가의 도심 비키니 투표 독려 행위는 다른 날 다른 곳에서 벌어진 퍼포먼스이지만 암수나사처럼 하나로 결합되는 장면이다.남성 관음증 부추기는 나꼼수 나꼼수가 허위사실 유포죄로 감방에 간 정봉주를 위해 지지자 여성들에게 비키니 사진 응원을 촉구한 일이 없었다면 그 두 장면을 하나로 엮는 자유연상(free association)은 불가능했다. 외신에서 간혹 보는 모피 반대 누드 시위야 벗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투표 독려에 왜 비키니인지는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비키니를 입고, ‘앙’이라고 쓴 깜찍한 팻말을 들고, 다른 일도 아니고 투표를 독려하는 정치시민 낸시랭을 봤을 때 성욕 불만족의 정봉주가 원했던 것이 저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번쩍 들 수밖에 없었다. 그 인기를 보면 나꼼수는 정치의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꽃미남’ 얼굴과 식스팩 복근을 한 자기만족적인 나르시시스트 케이팝 아이돌과는 달리 나꼼수는 전통적인 마초들이다. 이 마초들은 비키니를 원한다. 또 다른 정치 스타인 안철수 서울대 교수처럼 앵그리버드로 돼지 인형을 때리는 놀이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는 부류다. 언젠가 영화 잡지에서 본 글이 생각난다. 1960, 70년대 포르노 영화를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분석한 글로, 포르노가 성(性) 해방의 결과로 태어났지만 주로 남성을 관객으로 상정해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비판한 내용이었다. 여성의 시선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포르노는 거의 없고 남성의 관음증(觀淫症)을 충족시키는 포르노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나꼼수의 ‘정봉주 비키니 응원’ 촉구에 부응해 옷을 벗는 여성들은 물론 스스로의 결정으로 벗는 것이다. 그런 자발적인 노출은 성 해방의 이벤트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포르노에서처럼 남성의 관음증만 충족하는 반(反)페미니즘이 구조화돼 있다. 성에 관한 한 모든 남녀는 어느 한편의 당사자다. 나 역시 한 남성이라 중립적일 수 없다. 묘한 것은 여성단체와 나꼼수에 환호했던 여성들의 반응이다. 강용석 의원의 여성 아나운서 비하 발언에 격렬하게 반응했던 이들이 ‘정봉주를 위한 비키니’에 대해서는 잠시 들고일어나는가 했더니 흉내만 내고 흐지부지 주저앉고 말았다. 경쟁하듯 벗기기에 열중하는 사회에서 그 정도는 재미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마초가 가학성을 띠면 폭력이 되고 더 이상 재미로 봐줄 수 없다. 김용민이 쏟아낸 외설 막말을 여기서 다시 떠올리는 것은 그 자체가 기분 나빠 그만두겠다. 그가 부활절 예배에 참석하고 안수기도를 받는 장면 앞에서는 외설과 경건의 세계를 거리낌 없이 넘나드는 이중성에 섬뜩함마저 느껴졌다.나꼼수에 약한 여성단체와 정치인 여성단체의 반응은 김용민에 대해서도 미지근했다. 여성단체연합 등이 비판 성명을 내긴 했지만 분노로 끓어올랐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한국에서 여성운동은 정치적 당파성(黨派性)과 성적 당파성이 충돌할 때 대부분 정치적 당파성을 앞세워 왔다. 그것이 정치적 진보파의 숨겨진 성적 파시즘에 관대한 여성운동의 한 단면이다. 그리고 한국 여성운동의 선두세대에 김용민을 서울 노원갑 후보로 결정한 한명숙 민주통합당 전 대표가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나꼼수를 선거 운동에 모시기 바빴다. 대권 후보로 꼽히는 문재인 후보는 김용민 외설 논란이 한창인 유세 막판에 나꼼수를 부산에 초빙했다. 이해찬 고문은 김용민의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가 김용민과 나꼼수가 강공으로 나오자 자신의 주장을 부인했다. 해괴한 일탈을 꾸짖기는커녕 그 비정상적 인기에 빌붙어 보려고 필사적이었던 정치인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