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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공지영의 최근작 ‘의자놀이’는 ‘첫 르포르타주’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는 2004년 사형수들을 인터뷰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쓰고, 2009년 한 청각장애학교의 성폭행 사건을 추적해 ‘도가니’를 쓴 이후 첫 르포르타주로 쌍용자동차 해직 노동자들의 사연을 다룬 ‘의자놀이’를 썼다. ‘우리들의…’가 실화에서 영감을 얻어 쓴 소설이라면 ‘도가니’는 실화를 바탕으로 쓴 팩션(faction)이고, ‘의자놀이’는 실화 자체를 지향하는 르포르타주다. ▷르포르타주의 생명은 현장이다. 르포르타주를 쓰기 위해서는 작가가 현장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지영은 쌍용차 사태의 가장 치열한 현장이었다고 할 수 있는 2009년 77일간의 파업에 없었다. 파업을 하는 측과 막는 측의 격심한 폭력 대립을 촉발한 원인에 대해서는 양측의 견해가 엇갈린다. 현장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어느 한편의 주장에 휩쓸리는 것을 막아줄 텐데 불행하게도 공지영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일방적으로 한편의 말만 전달하고 다른 편의 말은 아예 듣지 않았다. 그것은 르포르타주가 추구하는 정신이 아니다. ▷책 표지에는 ‘77일간의 뜨거운 파업의 순간부터 22번째 죽음까지, 작가적 양심으로 써내려간 공지영이 쓴’이라는 광고문구가 있다. 쌍용차 사태를 직접 보지 못한 공지영은 대신 죽은 22명의 사연을 파헤치는 르포르타주를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도 않았다. 22명 중 자살자는 12명으로 줄어든다. 자살자 중에서는 무급휴직자 부부 한 쌍과 정리해고자 한 명, 희망퇴직자 두 명 정도의 사연만 비교적 소상히 나온다. 죽음은 그 하나하나가 귀중한 것인데 나머지 죽음은 숫자로만 거론됐다. 쌍용차 사태와 무관한 죽음까지 포함시킨 그 숫자가 크게 과장됐기 때문일 것이다. ▷공지영은 르포르타주를 쓰기로 결심한 지난해 쌍용차의 새 소유주가 인도 마힌드라사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 그가 복잡한 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까지 분석하면서 쌍용차의 자산 가치를 일부러 낮게 평가해 정리해고 인원을 늘리고 헐값 매각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논란은 금융감독위원회 등의 조사로 이미 문제없음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의자놀이’는 르포르타주가 아니라 정치적 팸플릿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내가 중학생이 되던 무렵인 1976년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최헌의 ‘오동잎’이 히트를 쳤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라디오로만 들을 수 있었고 TV에서는 최헌만 봤다. 내 기억 속에 조용필을 처음 본 것은 1979년 이후다. 조용필이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TV에 나올 수 없었던 4년간은 최헌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1979년 조용필이 ‘창밖의 여자’를 들고 나온 이후 1980년대를 휩쓸기 전까지 남자가수 중에는 그가 최고였다. ▷TV만 틀면 나오던 최헌의 노래가 지겨워지던 1977년 어느날, 하굣길 버스에서 산울림의 ‘아니 벌써’가 흘러나왔다. 처음 듣는 그 노래가 너무 좋아서 끝까지 다 듣느라 집 앞에 내리지 못했다. 사실 ‘아니 벌써’는 새로운 게 아니라 새롭게 들렸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이미 1975년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 같은 곡이 히트를 쳤지만 금세 금지곡이 된 그 곡을 듣지 못했다. 최헌 류의 곡을 트로트 고고라고 부른다. 음악평론가 신현준은 ‘한국팝의 고고학 1970’이란 책에서 “1970년대 중반 신중현과 송창식을 좋아하고 1970년대 후반 산울림과 활주로를 좋아한 사람들에게 이런 곡들은 ‘혐오의 대상’ 이상이 아닐 것이다”고 쓰고 있다. ▷최헌은 사실 그룹사운드 보컬 출신이다. 키보이스와 함께 1970년대 초의 대표적 그룹인 히식스에서, 조용필이 이 땅의 넘버원 기타리스트로 꼽은 김홍탁과 함께 활동했다. 음악평론가 강헌에 따르면 히식스는 보컬을 보강하기 위해 보컬과 세컨드 기타를 함께할 수 있는 멤버를 오디션하게 됐다. 리더인 김홍탁은 5명을 후보에 올려놓았다가 최종적으로 2명을 추렸는데 한 명이 최헌이고 또 한 명이 조용필이었다. 조용필은 비음이어서 허스키 보이스인 최헌이 뽑혔다. ▷유신은 가요에도 영향을 미쳤다. 남진과 나훈아는 1972년 가요 정화(淨化)운동에서 트로트가 왜색으로 몰리면서 TV에서 밀려났다. 그 빈자리를 송창식 등 세시봉 가수들의 포크송이 차지했다. 그룹사운드들은 장발 미니스커트 등 퇴폐풍조 단속에도 불구하고 호텔 고고클럽에서 명맥을 유지했으나 1975년 대마초 단속으로 궤멸됐다. 최헌은 살아남아 솔로로 전향해 성공을 거뒀다. 음악적 평가야 어떠하든 그가 별세한 지금 그 천부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새삼 그리워진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국회에서 의결해 정부로 이송한 ‘내곡동 사저 특별검사법’은 특검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거에 제정된 특검법들은 특검 후보자 추천을 청와대나 국회가 아닌 대한변호사협회나 대법원장이 하도록 했다. 이번 특검법은 국회 선출도 아니고, 민주통합당이 후보자 2명을 전부 추천하게 돼 있다. 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의혹 사건의 고발인이다. 고발인이 추천한 특검 후보 중에서 피조사자가 무조건 한 명을 골라야 하니 공정한 수사를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불만이 나올 만하다. 이런 법률이 국회를 통과한 데는 새누리당의 책임이 크다. 새누리당이 대선 승리를 위해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특검의 정치적 중립성까지 훼손하면서 대통령을 야당의 먹잇감으로 던져줬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법사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 6명이 반대했지만 기권한 새누리당 의원 2명 때문에 통과됐다. 본회의에서도 재석 의원 238명 중 146명이 찬성해 통과됐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든 말든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무책임하다. 역대 9차례 특검법 중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유일하다. 당시 측근비리 특검법에 대한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정국을 마비시켰다. 이번 특검법의 대상은 이 대통령과 가족이 관련된 사건이다. 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수사 회피라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검찰은 올해 6월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 씨와 김인종 전 대통령경호처장 등 관련자 7명 전원을 불기소 처분해 ‘봐주기 수사’라는 논란이 일었다. 이 대통령은 떳떳하다면 가혹한 검증도 받아들여야 한다. 피조사자가 입맛대로 특검을 고를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당이 추천하는 특검을 대범하게 수용하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특검이 무리한 기소를 하면 법원이 최종적으로 퇴짜를 놓을 것이다. 다만 특정 정당이 특검 후보 추천을 독식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은 우려스럽다. 이 대통령이 특검법을 수용할 경우 민주당도 중립적이고 균형 잡힌 인사를 특검으로 추천해야 한다. 특검이 불공정한 수사를 벌인다면 국민의 비난은 민주당에 쏠릴 것이다. 민주당이 내곡동 사저 의혹을 선거 쟁점으로 삼아봐야 이 대통령과 사실상 결별한 새누리당에 타격을 주기도 어렵다. 여야청(與野靑) 모두 동상이몽(同床異夢)에서 깨어나 국민의 의혹 해소를 위해 노력하기 바란다.}

정치에는 머신이 필요하다. 정치에 웬 머신이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영미권 정치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란 책에 이 용어를 그대로 가져다 쓴다. 우리가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하는 것이라고 말할 때 조직에 해당하는 말이 머신이다.결국 민주당과의 단일화로 가나 안철수는 베버식으로 말하자면 카리스마적 지도자 유형이다. 대중의 강력한 추종을 받는 지도자는 대개 카리스마적 지도자다. 박근혜도 이런 지도자 유형에 속한다. 신의 은총이란 뜻의 카리스마는 대체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런 추종을 얻는지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사용된다. 안철수는 홀연히 혜성처럼 떠올랐다. 청춘콘서트나 무릎팍도사만으로 그가 부상한 이유를 다 설명하기 어렵다. 현재 민주당이 겪는 곤경은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등 어느 후보도 박근혜나 안철수에 필적하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데서 비롯된다. 카리스마적 지도자라 할지라도 혼자 정치를 할 수는 없다. 그의 뜻을 실현시킬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이런 조직은 통상 정당을 의미한다. 그러나 안철수가 정당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머신이라는 말이 여기서는 더 적합한 것 같다. 안철수는 아직도 대선 출마 여부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대체로 그의 출마에 우호적인 쪽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민주당의 후보 경선은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당 안팎의 야권에서는 안철수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언론도 그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출마 이후의 상황으로 점차 관심을 돌리는 분위기다. 안철수에 대한 우려는 정치경험이 전무하다는 데 있다. 본인은 나쁜 경험은 없을수록 좋다는 쪽이니까 이런 우려는 안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그도 대선이 10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용할 수 있는 머신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다. 그저 한번 나와보는 대선이 아니라 당선을 목표로 나오는 대선이라면 출마 선언은 그 머신에 대한 구상이 확실히 서고 난 다음이어야 할 것이다. 머신이란 말은 수공업적 명사(名士) 정당 체계로부터 기계공업적 대중 정당 체계로 넘어가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지금 안철수는 장인이 도제 몇 명 데리고 일하듯이 ‘원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출마를 선언하면 도와주겠다는 사람은 줄을 서겠지만 공장 기계처럼 일사불란하게 작동하는 머신을 조직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가 4·11총선 전 신당 창당을 구상했다가 접었을 때 이런 생각은 포기한 것 같다. 그로서는 민주당의 머신을 이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는 책 ‘안철수의 생각’을 통해 자신과 민주당의 정책유사성이 90% 이상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가 지금까지도 출마를 선언하지 않았다는 것은 민주당의 머신을 이용하겠다는 것으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당에서 결정된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의미한다. 단일화의 방식만이 향후의 정치적 동력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과감한 인물이라야 운명을 잡는다 대선은 인물 이전에 판을 봐야 한다. 인물을 볼 때는 최선의 인물만 찾게 되지만 판을 볼 때는 최선과 차선의 인물이 동시에 눈에 들어온다. 가령 박근혜가 최선이라고 보는 사람은 박근혜가 패했을 때 문재인이 차선일지 안철수가 차선일지도 봐야 한다. 친노세력에 끌려다니는 문재인보다는 안철수가 유연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고 정치 경험이 전무한 안철수보다는 문재인이 안정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겠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운명의 신은 여신이다. 만약 당신이 그 여자를 손아귀에 넣고자 한다면 그녀를 과감히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키아벨리는 운명을 잡으려면 신중하기보다 과감해야 한다는 뜻에서 이런 비유를 사용했다. 안철수도 이제 신중하기보다 과감해져야 할 때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중국어로 양고기 꼬치를 의미하는 양러우촨(羊肉串)은 중국 북방 거주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요즘 국내 거주 조선족들이 늘면서 거리의 음식점 간판에서 심심찮게 눈에 띄는 글자가 됐다. 우리말로 읽으려 할 때는 串자가 문제다. 串자는 일본만 해도 꼬치구이란 뜻의 구시야키(串燒) 등으로 많이 쓰이지만 우리말에서는 잘 쓰지 않는 한자다. 串의 한글 발음은 관, 곶, 찬 등으로 다양한데 꼬치를 의미할 때는 찬으로 발음한다. 羊肉串은 양육관이나 양육곶이 아니라 양육찬으로 읽어야 한다.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는 재미동포나 재일동포와는 달리 재중동포보다는 조선족으로 부르는 것이 익숙하다. 러시아와 그 주변국에 거주하는 동포를 고려인(카레이스키)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조선족과 고려인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인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때 간도나 연해주로 이주한 한국인의 후손이 대부분이다. 냉전 시대에 한국이 중국이나 옛 소련과 단절하고 살았기 때문에 그곳 동포들이 낯설어서 조선족 고려인으로 불러왔지만 앞으로는 재중동포 재러시아동포로 바꿔가야 한다. ▷조선족은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랴오닝(遼寧) 등 중국 동북 3성에 주로 거주한다. 그중에서도 지린 성에 가장 많이 산다. 지린 성에는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가 있다. 중국 전체의 소수민족을 위한 5개 자치구와 30개 자치주 가운데 하나로 동북 3성에서 유일하다. 동북 3성은 과거 만주족이 많이 살던 곳으로 만주족자치주 같은 것은 없다. 옌볜자치주 일대는 옛 고구려 선조들이 말을 타고 호령하던 기상이 서린 곳이다. 한민족의 정신적 고향인 백두산(중국명 창바이 산)도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자취도 많이 남아 있다. ▷중국 정부가 옌볜조선족자치주를 지정한 지 어제로 60년이 됐다. 자치주 주민 가운데 조선족 비율은 1953년의 70.5%에서 2010년 36.7%로 크게 감소했다. 한족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 조선족자치주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 기업의 ‘차이나 러시’가 이뤄지면서 조선족이 대거 고용돼 중국 전역으로 흩어졌고 ‘코리안 드림’을 찾아 한국에 온 조선족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족 디아스포라가 자치주 해체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전태일의 분신은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선포하기 2년 전인 1970년에 일어났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화해와 통합 행보 차원에서 전태일 재단을 방문하려다 유족들의 거부와 쌍용차 노동자들의 저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유신은 단순히 과거사가 아닌 모양이다. 작가 공지영은 최근작 ‘의자놀이’에서 자살한 쌍용차 노동자들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 서막처럼 전태일의 죽음을 거론한다.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특별위원장은 박 후보가 쌍용차 노동자들도 만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내가 찾아가고 손 내밀면 화해와 통합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한 독재자의 발상”이라며 “화해를 하려면 먼저 무엇이 다른지 그 거리를 좁혀야 한다”고 말했다. ▷유신은 박정희의 장기집권욕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박정희 자신은 북한으로부터의 안보 위기를 들어 유신을 했다. 후대에 유신을 경제적으로 설명하려는 사람들 중에서 옹호하는 측은 1, 2차 경제개발에 이은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한 정치력 집중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반면 비판하는 측에서는 경제 위기를 폭력적인 노동 탄압을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한다. ▷박근혜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이었던 홍사덕 전 의원은 유신에 대해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옹호했다. 그는 앞서 5·16에 대해서는 “태조의 조선 건국은 정몽주에게 물으면 역성혁명이지만 세종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쿠데타와 혁명은 큰 차이가 없는 말”이라고 했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홍 전 의원의 유신 옹호 발언을 “국민을 무슨 행복한 돼지로 보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나 5·16을 군사혁명이라고 하면서 유신을 비판하기 어렵고, 또 유신을 비판하면서 5·16은 쿠데타가 아니라고 하기 힘들다. 박 후보의 고민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야말로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봤다. 자식이 아버지를 넘어서지 않으면 자식은 아버지의 세계에 머물고 만다. 아버지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가족의 윤리다. 치자(治者)가 되려는 사람이 가족의 윤리에 사로잡혀서는 곤란하다. 박 후보가 5·16과 유신을 자식의 눈으로 바라보는 데서 벗어날 때 국민이 눈에 들어오고 국민통합의 길도 새로 보일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헌법재판소가 ‘인터넷 실명제(實名制)’에 대해 재판관 8명의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인터넷 실명제 시행 이후 불법정보 게시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는 반면, 국내 인터넷 이용자들이 실명제 적용을 받지 않는 해외 사이트로 도피해 국내 사업자들이 역차별 받는 등의 부작용이 많다는 것이 위헌 결정 이유다. 2007년 7월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인터넷 실명제는 인터넷에 글이나 동영상을 올리기 전 본인 여부를 확인하지만 가명으로도 글을 쓸 수 있어 다른 이용자들은 실명을 볼 수 없는 낮은 단계의 실명제다. 익명의 언어폭력이 판치는 사이버 공간에서 최소한의 피해자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도입됐다. 실명제는 대체로 여론의 환영을 받았지만 이후 실명제 적용을 받지 않는 모바일 게시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새로운 통신수단이 대거 등장해 도입 효과가 반감됐다. 네이버 다음 등 국내 포털 사이트에 글을 올리던 누리꾼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해외 기반의 트위터 등 SNS로 몰려갔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본인 인증을 할 수 없는 외국인들은 국내 사이트에 게시물을 올리기가 불가능했다. 본인 인증을 위해 사이트에 제공한 개인 정보가 대량으로 유출돼 이용자들이 피해를 보는 사건도 잇따랐다. 헌법재판소는 인터넷을 실명제 도입 이전 익명의 세계로 돌려보냈다. 실명제 도입은 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유명 연예인 최진실 씨의 자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헌재 결정이 인터넷을 이용해 인격 살인에 해당할 정도의 댓글을 달고 허위사실을 퍼뜨리는 행위를 부추기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다만 누리꾼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실명제가 없어진다고 해서 인터넷상의 익명 불법 게시물이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명예훼손이나 모욕, 흑색선전은 사이버상이든 아니든 형사처벌의 대상이다. 검찰과 경찰의 사이버 수사능력이 5년 전에 비하면 크게 개선돼 익명의 글이라도 대부분 인터넷주소(IP)로 추적할 수 있다. 개인은 어느 정도 보호를 받을 수 있겠지만 국가나 공인을 향한 근거 없는 비판은 미네르바 사건 무죄 판결에서 보듯 처벌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인터넷과 SNS에서 대선 후보에 대한 흑색선전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인터넷과 SNS의 익명성을 보장하면서 어떻게 공론(公論) 형성 과정의 왜곡을 막을 수 있을지가 우리 사회에 주어진 숙제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이 이달에도 내려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곽 교육감은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매수 혐의로 4월 17일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선거범에 대한 확정 판결은 항소심 선고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이뤄져야 하므로 7월 17일이 곽 교육감의 상고심 법정 시한이었다. 하지만 이달 대법원 소부(小部) 마지막 선고일인 23일 재판 목록에 곽 교육감 사건은 들어 있지 않다. 항소심 판결 직후 법정 시한 준수를 당부했던 교원단체총연합회는 19일 대법원의 조속한 판결을 재차 촉구했다. 법원은 검찰이 구속기소한 곽 교육감을 1심에서 벌금 3000만 원을 선고하고 풀어 줘 업무에 복귀시켰다. 항소심에서는 징역형을 선고하고도 법정구속을 하지 않아 교육감 직을 유지하게 했다. 대법원은 확정 판결의 법정 시한을 어겨 곽 교육감의 비정상적 업무수행을 연장시켰다. 곽 교육감은 1, 2심 유죄 판결을 받고서도 자중하기는커녕 ‘대못박기’ 코드 인사를 하고 독선적 정책을 강행해 교육 현장에 혼선을 부르고 있다. 국회는 대법관 4명의 임기가 끝난 지난달 10일까지 신임 대법관 임명동의 절차에 착수하지 않는 늑장을 부렸다. 대법관 공석 사태를 20일 넘게 끌면서 곽 교육감 사건을 맡은 대법원2부는 대법관 정족수 부족으로 재판을 열 수 없었다. 곽 교육감 지지단체는 사후매수죄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고 대법원 판결을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로 미루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법원은 수도 교육 현장의 혼선이 계속되지 않도록 곽 교육감에 대한 사법적 결론을 신속하게 내려야 한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는 그룹 계열사의 돈으로 위장 계열사를 지원해 회사에 수천억 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과 벌금 51억 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법원은 불구속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서는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하더라도 법정 구속은 사실심이 끝나는 2심 판결까지 미루는 경우가 많다. 김 회장에게 집행유예 없는 실형 4년을 선고하고 1심에서 법정 구속한 것은 재벌총수에 대한 과거의 판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중해 보인다. 그동안 재벌총수가 기소된 사건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라는 선고가 공식처럼 되다시피 했다. 집행유예를 위해서는 선고형이 징역 3년 이하여야 한다. 실제로 2003년 최태원 SK그룹 회장, 2006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2008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이 모두 1심이나 2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번 판결을 내린 서경환 부장판사는 “2009년 도입한 양형기준에 따라 기업총수의 경영 공백 우려나 경제발전 기여 공로 등은 집행유예를 위한 참작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법원은 올해 2월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 대한 1심에서 이 양형 기준을 처음 적용해 집행유예 없는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과거 대기업 총수에 대한 사법적 잣대는 엄정하기는커녕 구부러지기 일쑤였다. 법원은 검찰이 구속 기소를 해도 보석으로 석방하거나, 1심과 2심에서 연거푸 형을 깎아줘 징역형을 선고하고도 집행유예로 풀어줬다. 재벌총수들은 칭병(稱病)을 하며 환자복 차림에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나와 형량 감경(減輕)을 위한 분위기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법원과 전관예우로 연결된 로펌과 변호사들이 사건을 맡아 막대한 수임료를 챙겼다. 법경(法經) 유착에 따른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였다. 정치권에선 경제범죄의 법정 최소형을 높여 법관이 재량으로 형을 줄여주더라도 아예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게 만드는 방법으로 재벌총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경제범죄를 재벌총수만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피고인에 따라서는 불가피하게 집행유예를 선고해야 할 경우도 없지 않을 텐데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법원의 봐주기 판결만큼이나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내리는 판결도 바람직하지 않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도 김 회장과 비슷한 혐의로 기소돼 있다. 대기업들이 너무 위축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당하게 준법 경영에 나서 기업의 체질을 선진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검찰에 출두한 것은 법원이 발부한 체포동의요구서가 국회에 접수된 지 3시간이 약간 지나서다. 박 원내대표는 검찰 출두 1시간 반 전에야 출두하겠다고 검찰에 전격 통보했다. 그동안 세 차례나 검찰의 소환 통보에 불응하며 버티다 체포동의요구서가 접수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출두했다. 여론의 압박을 피하고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체포동의안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박 원내대표의 계산대로 검찰은 그를 체포해 조사할 필요가 없어져 체포영장을 철회했고 체포동의안도 백지화됐다. 검찰은 박 원내대표를 한두 차례 더 소환할 방침이라고 밝혔으나 박 원내대표가 응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박 원대대표는 ‘기소할 테면 기소하라. 법원에서 판단을 구하겠다’는 태세다. 범죄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를 검찰이 단 한번 조사하는 것만으로 구속영장 신청 또는 기소할 만큼 증거를 확보하기는 어렵다. 박 원내대표가 결백을 자신한다면 검찰의 추가 소환에 불응할 이유가 없다. 검찰은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의 경우 자진 출두해 검찰 조사를 받았음에도 혐의가 중하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비록 정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기는 했지만 부결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았다. 박 원내대표는 저축은행들로부터 수사와 관련해 8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박 원내대표에 대해서도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면 구속영장 신청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야당 원내대표에게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법 집행이야말로 법치의 실천이다. 민주당은 박 원내대표가 검찰에 출두한 직후 8월 4일부터 임시국회를 소집하자는 요구서를 국회에 냈다. 의석수로 보면 민주당은 단독으로 임시국회를 소집할 수 있다. 그러나 7월 임시국회에 이어 하루도 쉬지 않고 임시국회를 여는 것은 박 원내대표의 구속을 막기 위한 방탄(防彈)국회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며칠이라도 휴회기를 둬 박 원내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될 경우 그 발부 여부를 바로 법원이 판단하게 하는 것이 옳다. 박 원내대표의 체포영장에 기재된 범죄 혐의에 대한 판단은 최종적으로 사법부에서 가릴 수밖에 없다. 검찰이 유죄판결을 받아내는 데 실패한다면 대선을 앞두고 ‘야당 탄압’이라는 비판에 몰릴 것이다. 검찰은 진실과 증거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우리 말의 한(恨)은 외국어로 쉽게 번역되지 않는다. 독일어로 직업을 뜻하는 ‘Beruf’도 그런 말이다. 프랑스 사회과학 잡지에서 독일어 Beruf를 프랑스어 ‘Travail’로 번역하면 의미가 안 통한다는 지적을 본 적이 있다. Beruf는 직업을 하나님의 부름에 응하는 것으로 보는 개신교 전통에서 나온 말이다. 가톨릭 국가 프랑스에는 그런 직업관이 없다. 노동시간은 되도록 줄이고 휴가에서 삶의 보람을 찾자는 것이 프랑스인들의 생각이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유명한 ‘직업으로서의 정치’란 책을 썼다. 여기서의 직업이 바로 Beruf다. 최근엔 ‘소명으로서의 정치’로 번역한 책도 나왔다. 직업으로 번역하든 소명으로 번역하든 뭔가 부족하다. Beruf는 글자 수에 제한받지 않는다면 ‘소명으로서의 직업’이 정확하다. 큰 의사는 나라를 고친다 직업을 소명으로 보는 관점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어쩌다 보니 자기 직업을 갖는 것이지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는 생각으로 직업을 택하지는 않는다. 안철수가 살아온 길은 달랐다. 안철수는 의대에 진학했으나 돈 잘 버는 임상의의 길을 버리고 연구의의 길을 택했다. 의사에서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로 변신한 것은 꼭 필요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던 백신 프로그램을 새벽마다 일어나 개발한 결과다. 그가 경영에 뛰어든 것은 안철수연구소를 공적기업으로 만들어 그 운영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각계의 인식 부족으로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중국의 쑨원(孫文)은 ‘소의치병(小醫治病), 중의치인(中醫治人), 대의치국(大醫治國)’이라고 했다. 작은 의사는 병을 고치고, 중간 의사는 사회를 고치고, 큰 의사는 나라를 고친다는 뜻이다. 안철수가 정치의 길에 들어선다면 그것도 정치를 소명으로 느낄 때다. 그가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밝힌 정책 단상은 나이브한 게 많아 100가지도 더 시비를 붙고 싶을 정도다. 그럼에도 그가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국민의 지지 속에서 정치적 소명의 유무를 확인하려는 신중함을 보이는 데는 공감한다. 동양 유교사상에도 명(命)이란 개념이 있다. 공자는 지천명(知天命) 외천명(畏天命)을 말했다. 천명이 실제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아닐 테고, 인내천(人乃天)이니 백성(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일 게다. 내가 보는 안철수는 출마 의도를 숨기고 효과를 극대화하는 출마시기만 저울질할 사람이 아니다. 10년도 전에 동아일보에 초청돼 강연을 한 안철수를 보고 단번에 매료됐다. 그 반듯한 모습과 바른 생각에 ‘젊은 퇴계가 살아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해봤다. 올 3월 서울대 강연에는 휴가를 내고 찾아갔다. 청춘콘서트를 들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가슴에 와닿는 말이 많아 학생들처럼 받아 적기에 바빴다. ‘당신도 틀릴 수 있다’ 얼마 전 운동을 나갔다가 개천 돌 사이에 잉어가 걸려 파닥거리는 모습을 봤다. 불쌍해서 깊은 물로 보내주려고 꼬리를 잡으려 하니 도무지 잡히지 않았다. 답답해하던 행인 하나가 내려와 잉어의 대가리 부분을 두 손으로 안아 쥐니까 잉어가 가만히 있어 옮길 수 있었다. 정치에도 정치의 격물(格物)이 있다. 방법을 모르면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된다. 안철수가 정치의 격물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의 성질도 모르면서 불장난한다는 격한 반응까지 있다. 일단은 안철수는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실수를 통해서도 배우는 현명한 사람이니까 빠른 시간에 정치의 격물을 배울 것이라 믿고 싶다. 출마하려면 이제 최대한 빨리 하라. 안철수는 소통을 강조하면서 ‘내가 틀릴 수 있다(I may be wrong)’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높이 평가했다. 우리에게도 대선 전까지 ‘당신이 틀릴 수 있다(You may be wrong)’고 말할 기회를 충분히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대선이 4개월 3주밖에 안 남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저축은행들로부터 1억 원이 넘는 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19일 검찰의 1차 소환 통보에 이어 어제 2차 통보에도 불응했다. 국회의원에게 회기 중 불체포특권은 있지만 검찰 수사를 거부할 특권은 없다. 19대 국회 들어 의원들이 과거 수사 회피 수단으로 이용한 불체포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한데도 그는 법(法) 위에 있는지 움쩍도 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어제 의원총회를 열고 대검 중수부 폐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검찰총장 국회출석 의무화를 규정한 검찰개혁 법안을 제출했다. 민주당 검찰개혁 법안의 대략적인 내용은 오래전에 다 알려진 것이다. 하필 박 원내대표의 소환일자에 맞춰 이를 제출한 것은 그를 엄호하기 위한 포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이 입법권을 동원해 검찰의 정당한 수사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야당 탄압”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검찰은 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을 구속했고, 이 대통령을 15년간 보좌한 김희중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 오문철 전 보해저축은행 대표로부터 박 원내대표에게 돈을 줬다는 진술을 받아낸 이상 그를 조사할 수밖에 없다. 조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직무유기다. 검찰은 박 원내대표가 2차 소환까지 불응한 만큼 체포영장이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이 정도다. 현재 열리고 있는 국회는 다음 달 3일로 끝난다. 국회가 연이어 임시국회를 연다면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하든 박 원내대표를 지키기 위한 방탄(防彈)국회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새누리당은 정두언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이후 강한 역풍(逆風)을 맞았다. 민주당이 박 원내대표 체포를 막기 위해 방탄국회를 열거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다면 여론의 질타를 각오해야 한다. 박 원내대표의 행보는 정 의원보다도 비겁하다.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긴 했지만 정 의원은 “배달 사고”라고 혐의를 부인하면서도 검찰에 나가 조사를 받았다. 박 원내대표가 국회에 방어막을 치고 버틸수록 국민의 의혹은 커질 것이다. 결백하다면 지금이라도 스스로 검찰에 나가 조사를 받고 법정투쟁을 벌여 재판에서 무죄를 받으면 될 것 아닌가.}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은 13일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의원총회에서 회의장 구석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고 회의를 지켜봤다. 지도부가 정리한 의총의 결론은 ‘박심(朴心)’ 그대로였다. 정 의원에게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것 이상의 가시적 조치를 요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출당(黜黨) 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도, 체포동의안 부결에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는 이한구 원내대표의 사퇴 보류도 대체로 박 의원의 뜻과 같았다. 박 의원을 뺀 새누리당 의원 148명이 정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 때와 이후 보인 모습은 우왕좌왕(右往左往) 그 자체였다. 체포동의안에 반대한 새누리당 의원 중 일부는 11일 정 의원 체포동의안을 처리하기 직전에 가진 의총에서 박 의원의 대선후보 캠프 공보단장인 윤상현 의원이 반대 발언을 하자 부결이 박 의원의 뜻인 줄 오해하고 동조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박심에 따라 춤추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현상이다. 박 의원이 정 의원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은 13일 의총 직전 ‘복도 발언’이 처음이고 유일하다. 박 의원은 “정 의원은 평소 쇄신을 강조해온 분이니까 평소 신념답게 당당하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의총에서는 사태 수습 방안에 대해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이후 최고위원회의를 거쳐 내려진 결론은 박 의원이 복도에서 말한 취지 그대로였다. 박 의원은 이 원내대표의 거취와 관련해 정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되고 이 원내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힌 11일 밤 이미 “이 원내대표가 사퇴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당내에서는 사퇴 번복은 모양새가 좋지 않고 명분도 없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통합당의 전략적 투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국민의 불신을 초래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원내대표는 7월 임시국회가 끝날 때까지 조건부 복귀로 결론이 났다. 지금 새누리당은 ‘박근혜당’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박 의원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최근 결론이 난 대선후보 경선 룰도 비박(非朴) 주자들이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끈질기게 요구했음에도 박 의원의 뜻을 따라 현행대로 유지됐다. 파이낸셜타임스지 칼럼니스트인 팀 하퍼드는 저서 ‘어댑트’에서 “오늘날 사회는 아무리 똑똑하고 지혜롭고 용기 있는 리더라도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고 했다. 지도자 말 한마디에 당 전체의 의견이 왔다 갔다 하는 정당이 걱정스럽다. 당내 민주주의도 못하는 정당이 국가 전체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할 수 있겠는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박 의원이 새누리당의 대선 예비 후보로서 압도적 지지를 받는다고 해도 당에서 한 사람 목소리만 들려서는 안 된다. 다양한 목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들이 공명(共鳴)해야 울림이 커질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솔로몬저축은행 등으로부터 7억여 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어제 영장 실질심사를 받았다. 이 전 의원은 법원에서 저축은행 피해자들에게 넥타이를 잡히는 봉변을 당했다. 정권 초부터 이 전 의원이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지만 이 전 의원과 이 대통령은 듣지 않았다. 형제 스스로 정권 말기의 불행을 자초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2007년 대선 직전 이 전 의원과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의 만남을 주선했다. 정 의원은 이 전 의원이 돈을 받는 자리에 동석해 영장에 공범으로 적시됐다. 이 전 의원이 받은 3억 원은 대선자금이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구속 수감 중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도 건설 시행업체 파이시티로부터 받은 8억 원 중 일부를 2007년 대선 때 여론조사나 정세 분석 목적으로 썼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이 끝난 뒤 선거비용으로 327억 원을 사용했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어떤 후보도 법정선거비용 한도액을 넘어서 대선을 치렀다고 신고하지는 않는다. 불법 대선자금은 대선 후보들의 아킬레스건이다. 이 대통령은 2009년 신년사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불법 대선자금과 절연하고 탄생한 정권”이라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대통령 자신이 모른다고 불법 자금이 없었다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과거처럼 재벌들에게 돈을 거둬 나눠주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측근들이 보고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받아 선거비용으로 쓴 돈이 있었을 것이다. 캠프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받은 돈일수록 투명하게 쓰이지도 않고 집권 후 부패와 비리의 싹이 된다. 검찰은 또 다른 불법 대선자금이 있었는지도 수사해야 한다. 대선 주자들은 이 전 의원을 보며 앞으로 5년 뒤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대선 후보 캠프는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돈에 쪼들리기 마련이고, 기업은 유력 후보에게 ‘보험’을 들고 싶어 한다. 후보가 모르게, 혹은 모른 척 묵인하는 가운데 은밀한 거래가 이뤄지기 쉽다. 대선 주자들이 역대 정권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선거캠프를 차리는 지금부터 주변을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5년 뒤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정부가 4·11총선 과정에서 금품을 주고 조직을 동원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무소속 박주선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4일 국회에 제출했다. 여야는 19대 국회 개원을 전후해 불체포특권 포기, 연금 폐지, 겸직 금지 등 쇄신안을 앞다퉈 내놓으며 ‘밥값 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여야는 쇄신 경쟁이 쇼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박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처리해야 옳다. 과거 정치권은 정부가 체포동의안을 제출하면 회기 중일 때는 표결 처리를 계속 연기하고 회기 중이 아닐 때는 방탄 국회를 여는 방법으로 제 식구를 보호했다. 18대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된 것은 학교 공금 81억 원을 횡령한 강성종 민주당 의원 딱 한 건이었다. 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회의 시간에 최루탄을 터뜨리는 폭거를 저지르고, 검찰의 8차례 소환에 불응했는데도 체포되지 않았다. 박 의원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3차례 구속 기소됐으나 법원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은 삼종삼금(三縱三擒)의 억울한 전력이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억울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불법으로 공천 경선 선거인단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전 동장(洞長)이 투신자살을 하고 평범한 가정주부가 구속돼 옥고를 치렀다. 검찰은 박 의원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죄질이 나쁘다고 보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박 의원은 판결 당시 법정에 나왔지만 불체포특권 덕분에 법정 구속되지 않았다. 법원은 직접 체포동의요구서를 작성해 정부를 통해 국회에 제출했다. 이 정도라면 국회가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켜 주는 것이 사리에 맞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체포동의안을) 1심 재판부에서 보냈는데 박 의원이 항소를 한 상황이라 1심 재판부가 보내면 무효라는 말이 있었다”고 말했다. 법적으로는 난센스 같은 발언이다. 과거 같은 민주당 소속이었던 박 의원을 감싸면서 가능한 한 체포동의안 처리를 연기시켜 보려는 의도 같다. 박 의원이 체포된다고 해서 국회 운영에 지장을 초래할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불체포특권은 본래 권위주의 정권의 부당한 체포로부터 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등장했다. 그러나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로는 정부가 이를 남용할 여지가 거의 없어지고 오히려 정부에 대한 의회의 상대적 우위로 이 특권이 남용돼 범법 의원의 과(過)보호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박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는 19대 국회 특권 내려놓기의 시험대다.}

국회의원 자격심사를 독일에서는 위임심사(Mandatpr¨ufung)라고 한다. 의원은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주권의 일부를 위임받는다. 그 위임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심사한다고 해서 위임심사다. 자격심사라는 말보다 대의민주주의 이념을 훨씬 잘 담고 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비례대표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는 이들에게 국민의 위임이 있는지, 그래서 의원 자격이 있는지 심사하는 것이다. 비례대표는 정당이 스스로 결정한다. 그러나 두 의원의 경우 이들을 비례대표로 정했던 바로 그 정당이 위임의 부당성을 문제삼고 있다. 이보다 더 똑떨어지는 자격심사의 대상이 어디 있겠는가. 3권 중 자율성 가장 큰 국회의 책무 헌법의 의원 자격심사 규정은 1948년 제헌 과정에서 제1단계 헌법초안에는 없었으나 유진오 초안에 들어가 제헌헌법으로 확정되고 현행 헌법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진오가 이 규정을 넣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1967년 12월 14일자 동아일보에 당시의 신민당 당수 유진오가 “의원 자격심사는 그 기준을 법률로 제한하고 있지 않으므로 선거부정에 대한 (자격 유무) 판단도 가능하다”고 밝힌 기사가 나온다. 그해 6·8총선은 3선 개헌을 염두에 둔 민주공화당의 무리수로 인해 1960년 3·15 정·부통령 선거 이래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선거 부정이 심했다. 유진오는 국회의 자격심사로 부정 당선 의원을 제명하는 절차를 놓고 공화당 당수 김종필과 대립했다. 유진오의 생각은 분명하다. 박정희 정권 치하의 검찰과 법원을 믿을 수도 없었지만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을 기다리자면 자격 없는 의원들로 국회 임기가 다 지나가버릴 수 있으니 사법 처벌과는 별개로 국회에서 자격심사를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정종섭 서울대 헌법학 교수에 따르면 법원의 재판에 의해서는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지만 국회의 자격심사로는 의원직을 상실할 수 있다. 사법적 확정과 자격심사는 별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 의회가 독립된 심사권을 갖고 있다. 의원 자격심사와 징계는 국회의 자율성을 규정한 헌법 조항에 근거를 두고 있다. 국회는 분립된 삼권(三權)의 상호 견제 속에서 상대적으로 자율성이 크다. 대통령과 법관은 흠결이 생길 때 자진사퇴하지 않으면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는다. 그러나 국회는 해산도 탄핵도 당하지 않는다. 그 대신 국회는 스스로 자격심사나 징계를 통해 구성원(의원)의 흠결을 제거해야 한다. 자격심사나 징계에 대해서는 처분을 받은 의원이 법원에 제소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 남용을 막기 위해 제명은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이라는 최고로 강화된 다수결을 택하고 있다. 이것이 의원 자격심사의 헌법적 구조다.통진당, 당 존립 위한 선택 선행해야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통진당의 최종 제명·출당 여부가 아직 안갯속이다. 통진당 의원총회에서 구당권파(이석기 지지파)와 신당권파 사이에 캐스팅보트를 쥔 김제남 의원의 입장이 분명치 않다. 국회가 두 의원의 자격을 심사하기 위해서는 통진당의 제명·출당 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민주통합당은 통진당의 결정이 없으면 자격심사를 할 수 없다는 소극적 자세다. 새누리당 의석수만으로는 자격상실을 이끌어낼 수 없다. 이 의원은 3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반대집회에서 한 농민에게 멱살을 잡혀 쫓겨나는 곤욕을 치렀다.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북으로 가라” “한국 사람이 아니다” “당장 나가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통진당은 민심을 바로 읽어야 한다. 통진당이 경선 부정에 연루된 비례대표 의원과 후보 의원의 제명·출당에 실패한다면 앞으로는 정당의 존립 자체가 논란의 초점이 될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오늘 개원하는 국회에서 다룰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의 범위를 놓고 여야가 맞서고 있다. 새누리당은 불법사찰을 이명박 정부뿐 아니라 노무현 김대중 정부 때 것까지 포함시켜 조사하되 청와대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청와대는 당연히 포함돼야 하며 조사 대상 시기는 이명박 정부에 국한해야 한다고 맞선다. 양쪽 다 자기들에게 유리한 대로 국정조사를 진행하자는 심산이다. 검찰의 두 차례 불법사찰 수사가 국민의 불신을 받고 국조(國調)로 직행한 것은 누가 봐도 의혹의 냄새가 나는 청와대의 개입 여부를 검찰이 눙치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검찰이 확보한 ‘공직윤리지원관실 업무추진 지휘체계’라는 문건에 대통령과 대통령실장이 사찰 내용을 보고받았음을 시사하는 문구가 들어 있다. 불법사찰 증거인멸 과정에 대통령민정수석실이 개입해 입막음용 돈까지 줬다는 폭로와 관봉(官封)이라고 찍힌 돈까지 나왔다. 청와대는 최우선적으로 조사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한 일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총리실 조사심의관실이 똑같이 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올해 4월 현 정부의 사찰문건이라고 폭로한 2619건 가운데 80% 이상은 노 정부 때 작성된 것이다.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의혹을 폭로한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노 정부에서는 조사심의관실 소속으로 똑같은 사찰 업무를 수행했다. 사법적 처벌을 위한 공소시효는 다했을지라도 국조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노무현 김대중 정부 때의 사찰도 포함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민주당에는 이해찬 대표가 친노세력을, 박지원 원내대표가 DJ세력을 대표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과거사를 정리한다며 유신과 광복 전후,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100년도 더 지난 구한말 동학혁명까지 들춰냈다. 이에 비하면 두 정부 때의 사찰은 과거사라고 부를 수도 없다. 김대중 정부 때의 도청으로 국가정보원장 2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사찰이 계속됐다는 데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공무원도 아닌 재계나 종교계의 민간인이 사찰의 대상이 됐다. 사생활의 비밀은 적법한 수사에 의하지 않고는 침해할 수 없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데 사법부 수장이나 유력 국회의원이 정보 수집의 대상이 됐다. 여야는 정략을 떠나 불법사찰을 완전히 단절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각오로 이번 국조에 임해야 한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정초한 이론가인 사이이드 꾸틉이 1966년 이집트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는 죄명(罪名)이었다. 나세르로 대표되는 아랍 민족주의와 꾸틉으로 대표되는 이슬람 급진주의의 대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꾸틉의 뒤를 이어 파키스탄에서는 마울라나 마우두디, 이란에서는 루홀라 호메이니가 등장했다. 이 세 사람이 이슬람의 종교적 비전을 대중 정치운동의 기반으로 만든 주역이다. ▷꾸틉은 1950년 무슬림형제단에 가입했다. 1952년 나세르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종식시켰을 때 무슬림형제단은 이를 ‘이집트 민중의 아들들에 의한 정권 장악’으로 환영했다. 꾸틉 그 자신 나세르의 혁명위원회에 참여했다. 그러나 나세르는 곧 무슬림형제단의 대중적 인기가 자신의 집권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고 1954년 무슬림형제단의 활동을 금지했다. 두 집단의 기나긴 대립이 시작됐다. 이집트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1928년 창립된 무슬림형제단의 이념은 낡은 것으로 드러났다. 무슬림형제단은 새로운 정치상황에 부응할 이념을 만들어내야 했다. 꾸틉이 그 중심인물이었다. ▷지난해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로 나세르 이래 계속된 군사정권이 무너진 이후 처음 실시된 이집트 대통령선거에서 무슬림형제단 출신의 무함마드 무르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966년 꾸틉의 처형, 즉 아랍민족주의에 당한 이슬람 급진주의의 패배를 뒤집는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무슬림형제단은 지난해 반정부 시위가 진행 중일 때에는 정치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올해 3월 총선에 참여해 다수당이 됐다. 총선 직후에는 대선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다시 이를 뒤집고 대선에서 후보를 내놓아 승리했다. ▷이집트 군부의 거부가 만만치 않다. 군부는 지난주 무슬림형제단과 급진 이슬람세력인 살라피가 60% 이상을 장악한 의회를 해산하고 대통령의 군 통수권 등을 박탈하는 임시헌법을 발효시켰다. 앞으로 무르시 대통령과 군부의 갈등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무르시 대통령이 정치 경제 사회에 시대착오적인 종교적 제약을 가할 수도 있고, 군부가 철권으로 민주적 절차를 방해할 수도 있다. 양극단을 제어할 열쇠는 이집트 국민이 쥐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민노총은 올해 5월 발간한 조합원 대상의 학습자료에서 김정은 북한 세습정권 체제에 대해 “(김정일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가장 훌륭한 지도자를 후계자로 내세운 것”이라며 “그런 문제(세습)로만 후계를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체제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시각”이라고 주장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라며 당 행사 때 애국가 제창을 검토하는 통진당 비상대책위원회를 비판했다. 통진당의 최대주주인 민노총엔 범주사파 경기동부연합과 가까운 세력이 40%가량이나 되고 이 의원은 통진당 내 경기동부연합의 수뇌다. 민노총 내 주사파들이 내부적으로 북한 세습을 정당화하는 교육을 하는 동안 이 의원은 대중의 이목을 끄는 지위를 활용해 대한민국 정체성에 대한 금기를 깨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발언이 문제 되자 “애국가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변명했지만 애국가를 불편해하는 마음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스탈린은 수령 절대주의를 실현했지만 수령을 세습하는 일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북의 수령 세습은 세계의 극좌파 이론가들에게서조차 조롱당한다. 수령 세습, 그것도 3대째 이어지는 세습은 세계에 유일무이하게 북한에서만 벌어지고 있다. 민노총의 학습자료는 북한 주민들마저 내심으로 비웃을 북한 정권의 선전 논리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애국가는 엄연한 우리나라 국가다. 애국가는 국기인 태극기와 달리 관련 법률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국가로 불렸고 2010년 대통령령으로 제정된 ‘국민의례 규정’에서도 국가로 명기됐다. 이 의원의 애국가 시비는 대한민국을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은 주사파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통진당은 올해 1월 창당대회에서 애국가 대신 운동권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민주통합당은 이 의원의 발언에 대해 “국회의원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며 비판했다. 이 의원은 비례대표 경선 부정과 선거비용 부풀리기에 이어 자신이 운영한 여론조사업체의 후보 단일화 여론 조작으로 민주당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민주당은 이 의원에게 자진 사퇴나 요구하는 책임회피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체제를 흔드는 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아울러 통진당이 종북주의를 청산하지 않는 한 ‘연대 불가’라고 선을 확실하게 그어야 대선에서 수권 자격이 있는 야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흔히 사상의 자유만큼 소중한 자유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은 그보다 더 소중한 자유가 있다. 거주 이전의 자유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행동은 그곳을 떠나는 것이다. 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가르쳐준 것은 뜻밖에도 위르겐 몰트만이라는 독일 개신교 신학자였다. 동독 주민의 ‘떠나겠다’와 ‘남겠다’2010년 프랑스 특파원 시절 파리 7구의 미국인 교회에 초청된 몰트만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독일 신학의 마지막 거장으로 꼽히는 몰트만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사상의 자유 이전에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었다. 거주 이전의 자유는 사상의 자유가 없는 곳에서 그 사상을 지키는 긴급피난(緊急避難)적 성격을 갖고 태어났다.독일에서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의 보편적 통치가 무너지고 개신교로 개종한 제후가 등장해 황제와 갈등을 빚었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종교는 황제가 아니라 제후가 결정한다는 화의가 성립했다. 그러나 여전히 종교는 신민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제후가 결정하는 것이었다. 대신 신민에게 주어진 것이 자신의 종교가 허용되는 지역으로 이주하는 권리였다. 이것이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화의다. 신민이 제후의 종교를 따르지 않아도 되는 신앙의 자유, 오늘날 표현으로 사상의 자유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서 비로소 확립됐다. 영국 청교도가 국교회의 지배를 거부하고 신대륙으로 떠나 미국 건국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프랑스의 위그노 교도가 가톨릭 군주의 압제를 피해 프로이센 등으로 집단 망명할 수 있었던 것도 최소한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거주 이전의 자유는 종교 개혁 시대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소중한 권리다. 나는 2009년 10월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취재하기 위해 옛 동독 도시 라이프치히에 있었다. 동독을 무너뜨린 월요 시위가 시작된 곳이 바로 라이프치히다. 20년 전의 시위 장면이 도심 건물 벽면을 스크린 삼아 저녁 내내 반복해서 영상으로 비췄다. 시위대가 ‘우리는 떠나고 싶다(Wir wollen raus)’고 외치는 모습이 보였다. 당초 시위대가 원한 것은 동독을 떠나는 소극적인 것이었다. 딱딱한 표현을 빌리자면 거주 이전의 자유였다. 이미 많은 동독 주민이 자유화의 바람으로 통제가 느슨해진 체코로, 폴란드로, 헝가리로 떠나 그곳 외국대사관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영상 속 구호는 어느 사이 ‘우리는 남아 있겠다(Wir bleiben hier)’로 바뀌었다. 동독의 진정한 위기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동독에서 내보내주기만 해달라던 사람들이 생각을 바꿔 남겠다고 했을 때 단순히 출국 완화 조치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태가 다가왔다. 동독 공산당 독재가 무너졌다.탈북자는 떠날 권리 거부된 사람거주 이전의 자유는 한반도의 북쪽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요구되는 권리다. 살던 곳을 떠날 자유는 그 밖의 모든 자유가 거부된 인간에게 남겨져야 할 마지막 자유다. 탈북자란 다름아닌 이 자유마저 거부된 사람들을 말한다. 그것이 거부되자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한 이들이다. 누가 이들의 탈출을, 또 이들의 탈출을 돕는 행위를 변절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사상의 자유는 본래 ‘내심(內心)의 자유’나 ‘침묵할 자유’처럼 비겁한 자유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사상의 자유는 사상을 표현하고 그 사상에 따라 살 자유를 말한다. 그것이 거부될 때는 떠나겠다는 자세다. 종북이 내심이나 침묵에 머무르는 한 아무도 위험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표현이나 행동으로 나타나니까 위험한 것이다. 진정한 사상의 자유를 추구하는 종북주의자라면 비겁하게 숨지 말고 자기의 사상을 드러내던가, 그게 용납되지 않으면 그 사상을 따라 살 수 있는 곳으로 떠나면 된다. 우리 사회는 북한과 달리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