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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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5-11-24~202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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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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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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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언론 “우한硏, 7년전 코로나 유사 바이러스 확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2012년 중국 남서부 윈난성의 버려진 구리 광산 내 박쥐 배설물에서 시작돼 후베이성 우한 바이러스연구소를 거쳐 유출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영국 더타임스 일요판인 선데이타임스는 2012년 4, 5월경 윈난성 쿤밍의 폐광에서 노동자 6명이 박쥐 배설물을 청소한 뒤 폐렴으로 쓰러졌고 이 중 3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당시 환자들은 고열, 호흡곤란 등을 호소했다. 일부 중국 과학자들은 이곳에서 박쥐 배설물 샘플 등을 채취해 2013년 우한 연구소로 보냈다. 이 샘플에서 바이러스를 발견한 우한 연구진이 2016년 이를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의 변종으로 학술지에 소개했다. 우한 연구소의 바이러스 전문가 스정리 연구위원은 올해 2월 유명 과학지 네이처에 “박쥐 배설물에서 유래해 폐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샘플 ‘RaTG13’을 분석한 결과 코로나19와 염기 서열이 96.2% 일치했다”는 논문을 게재했다. 인도 등 다른 나라 연구진은 이 ‘RaTG13’ 바이러스가 바로 윈난성 폐광에서 유래한 바이러스라고 밝혔다. 이에 중국이 오래전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존재 가능성을 알면서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다만 우한 연구소가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에 책임이 있는지는 뚜렷하지 않다. 바이러스가 7년간 4%의 염기 서열이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학자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우한 연구소는 올해 5월 “‘RaTG13’의 염기 서열을 분석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살아있는 표본은 없다. 바이러스 유출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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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변 휴양지發 코로나 집단감염’ 몸살 앓는 美

    미국 남동부 유명 해변 휴양지 방문객이 잇달아 집단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귀가 후 거주 지역에도 바이러스를 전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휴가차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머틀비치를 찾은 수십 명이 웨스트버지니아주 집으로 돌아온 뒤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2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머틀비치를 거쳐 간 휴양객으로 인해 켄터키주에서 3개, 오하이오주에서 1개 이상의 확진자 그룹이 나왔다. 대규모 집단 감염도 발생했다. 지난달 머틀비치를 방문했던 청소년 40여 명이 버지니아주 라우든 카운티 집으로 돌아갔고, 이후 이 카운티의 청소년 100명 이상이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였다. NYT는 “휴양객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지닌 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휴양지를 찾은 청년층과 10대 청소년들이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는 것에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에서는 4일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주 자치정부가 주민 21만 명이 거주하는 세그리아 지구 레리다 일대에 다시 봉쇄령을 발효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지난달 23일에는 독일에서 1500명의 집단 감염이 발생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 귀터슬로 지역 전체에 재봉쇄령이 내려졌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은 의학적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 한 내년 봄까지 전 세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2억∼6억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전했다. 연구진은 해당 시점에 총사망자는 140만∼370만 명에 달하고, 면역력이 지속되지 않을 경우 인구의 90% 이상은 여전히 감염에 취약한 상태일 것으로 예측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파리=김윤종 특파원}

    • 20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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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해변 휴양객 잇달아 확진…귀가 후 지역에 전파 드러나

    미국 남동부 유명 해변 휴양지 방문객이 잇달아 집단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귀가 후 거주 지역에도 바이러스를 전파한 것으로 나타나 본격 휴가철을 맞은 국내에도 경종을 울리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휴가차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머틀비치를 찾은 수십 명이 웨스트버지니아주 집으로 돌아온 뒤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2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휴양객들은 귀가 후 자신이 사는 지역에 다시 바이러스를 전파한 것으로 드러났다. NYT에 따르면 머틀비치를 거쳐간 휴양객으로 인해 켄터키주에서 3개, 오하이오주에서 1개 이상의 확진자 그룹이 나왔다. 대규모 집단 감염도 발생했다. 지난달 머틀비치를 방문했던 청소년 40여 명이 버지니아주 루둔 카운티 집으로 돌아갔고, 이후 이 카운티의 청소년 100명 이상이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였다. NYT는 “휴양객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지닌 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휴양지를 찾은 청년층과 10대 청소년들이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는 것에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미국의 여러 주 정부는 최근 머틀비치를 방문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유나이티드 항공은 여름철 이 도시 노선 운항을 중단했다. 코로나19로 문을 닫았던 머틀비치의 호텔과 관광 명소들은 올해 5월 재개장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코로나19 확진자 평균 연령은 올 3~5월 51.4세에서 6월 40.6세로 낮아져 젊은 층이 증가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는 바이러스 유행 초창기 비교적 감염자 수가 적었지만 6월부터 신규 확진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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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우치 “中 신종 돼지독감, 변이능력 커 우려”

    중국에서 발견된 돼지독감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파돼 세계적으로 유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온 가운데, 세계보건기구(WHO)와 중국 정부가 “이 문제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크리스천 린드마이어 WHO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새로운 바이러스를 파악하기 위해 해당 논문을 주의 깊게 읽어볼 것”이라고 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우리는 모든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CNBC 등에 따르면 미 전염병 권위자인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이날 미 상원 보건위원회에서 이번 돼지독감 바이러스에 대해 “스페인독감 바이러스에 기원을 두고 있는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H1N1) 바이러스의 특징을 갖고 있다”며 “즉각적인 위협은 아니지만 큰 변이 능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H1N1’ 바이러스 종류가 2009년 확산돼 세계적으로 약 28만5000명이 사망했으며 1918년 수천만 명이 사망한 스페인독감의 원인 바이러스 역시 ‘H1N1’ 계열이다. 앞서 중국 국가인플루엔자센터 등이 참여한 중국 연구진은 H1N1 계열의 바이러스가 중국 양돈농장의 노동자 사이에서 퍼졌다는 논문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고 BBC 방송 등이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다만 ‘G4EAH1N1’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 바이러스의 사람 간 전염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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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O, 中 돼지독감 팬데믹 우려에 “면밀히 주시…필요한 모든 조처 할 것”

    중국에서 발견된 돼지독감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파돼 세계적으로 유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온 가운데 세계보건기구(WHO)와 중국 정부가 “이 문제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크리스턴 린드마이어 WHO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새로운 바이러스를 파악하기 위해 해당 논문을 주의 깊게 읽어볼 것”이라고 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우리는 모든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CNBC 등에 따르면 미 전염병 권위자인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이날 미 상원 보건위원회에서 이번 돼지독감 바이러스에 대해 “스페인독감 바이러스에 기원을 두고 있는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H1N1) 바이러스의 특징을 갖고 있다”며 “즉각적인 위협은 아니지만 큰 변이 능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H1N1’ 바이러스 종류가 2009년 확산돼 세계적으로 약 28만 5000명이 사망했으며, 1918년 수천만 명이 사망한 스페인 독감의 원인 바이러스 역시 ‘H1N1’ 계열이다. 앞서 중국 국가인플루엔자센터 등이 참여한 중국 연구진은 H1N1 계열의 바이러스가 중국 양돈농장의 노동자 사이에서 퍼졌다는 논문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고 BBC 방송 등이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다만 ‘G4EAH1N1’라는 명칭이 붙은 이 바이러스의 사람 간 전염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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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철 물고문 알린 東亞 1면 평생 못잊어”

    “윤상삼 동아일보 기자(1957∼1999)가 마지막에 ‘조사실 바닥에 물기가 있었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답했더니 그대로 신문에 실리더군요.” 1987년 박종철 열사를 검안했던 오연상 원장(63·오연상내과)은 그해 1월 15일 근무하던 중앙대용산병원 진료실에 찾아온 윤 기자를 떠올렸다. 오 원장은 당시 윤 기자에게 경찰의 물고문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증언을 했고, 동아일보가 이를 보도하면서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경찰의 거짓말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이로써 6월 민주항쟁의 서막이 올랐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소중한 인연을 맺은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동감_백년 인연’의 일환으로 오 원장에 대한 감사 행사를 30일 열었다. 오 원장은 1987년 당시 언론 보도 등이 전시된 서울 종로구 신문박물관을 둘러봤다. 당시 박 열사의 시신을 검안한 뒤 오 원장은 기자들 앞에서 “복부 팽만이 심했으며, 폐에서 수포음(水泡音)이 들렸다”고 증언했다. 오 원장은 이날 “의학적으로는 수포음이 물고문과 직접 관계있는 건 아니지만 일반인에게는 물고문을 연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했던 말이었다”고 회고했다. 임채청 동아일보 부사장은 본보가 오 원장을 1987년 12월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던 지면과 오 원장의 과거 사진이 담긴 액자, 창간 100주년 기념 오브제 ‘동아백년 파랑새’ 등을 증정했다. 오 원장이 고교 3학년 시절 유신정권의 언론 탄압을 겪던 동아일보에 낸 격려광고도 액자에 담았다. 이 격려광고 문구는 ‘둔마(鈍馬)의 채찍은 국민이!’, 명의는 ‘중앙고 광고 낸 반’이었다. 오 원장은 “‘중앙고 3학년 7반’이라고 내려다가 혹여 담임선생님이 고초를 겪을까 걱정돼 익명으로 했다”고 회고했다. 본보는 당시 격려광고를 냈던 시민들에게 제공한 기념 메달을 복원해 오 원장에게 선물했다. 유심히 신문박물관의 여러 전시물을 관람하던 오 원장의 발걸음이 1987년 1월 19일자 동아일보 지면 앞에서 멈췄다. 1면 톱 제목은 ‘물고문 도중 질식사’. 동아일보가 6개 면을 고문 관련 고발 기사로 가득 채운 날이었다. 오 원장은 “저 날의 신문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고 했다. 이후 본보는 대대적인 고문 추방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사건의 축소 은폐 조작을 고발했다. “내가 박종철 열사를 살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죄책감이) 커요. 그 일에 관해서는 의사로서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해 6월 29일까지 사태는 수많은 우연들이 거의 기적처럼 진행됐고, 그분의 죽음은 우리나라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의 순수한 의지가 모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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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우리말 맞춤법 왜 어려운 걸까

    지금은 ‘인도유럽어족’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쓰이지만 곱씹어 보면 혁신적인 발상이다. 수천 km 떨어져 사는, 민족도 풍속도 구별되는 사람들의 말을 한 범주로 묶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인도에서 재판관으로 일하던 영국의 학자 윌리엄 존스. 그는 산스크리트어와 그리스어, 라틴어 등을 세심히 연구한 뒤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언어 간의 유사성이 너무나 크다는 결론을 내리고 1785년 이 언어들이 같은 어족에 속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영국 웨일스대 명예교수로 명성 높은 언어학자인 저자는 아기가 말을 배우는 과정부터 10대의 문자메시지에 쓰이는 약어, 속어, 어원, 사라져 가는 언어까지 말과 글에 관한 다양한 얘깃거리를 쉽게 풀어냈다. ‘지구상의 모든 언어가 단 하나의 조상 언어에서 파생한 것일까?’ ‘맞춤법이 어려운 이유는?’ 같은 질문에 답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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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생한 색감-문양 속에 숨은 한민족의 繡

    신라인 마음속 용면(龍面·용의 얼굴)을 수놓은 자수 기법은 근대 들어 자취를 감춘 ‘가름이음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재청 한국전통문화대 심연옥 교수(전통미술공예학과 섬유 전공)와 금다운 전통섬유복원연구소 연구원은 고대부터 근대까지 한국 자수 2000년을 관통하는 자수공예기술 역사서인 ‘한국 자수 이천년’을 최근 발간했다. 연구가 충분치 않았던 고대∼조선 중기 자수까지 5년여 연구한 결과를 담았다. 신라 말∼통일신라 초 제작된 ‘신라국헌상지번(新羅國獻上之幡)’은 일본 에이후쿠지(叡福寺) 소장품으로 신라에서 보냈다는 묵서가 함께 발견됐다. 번(幡)은 당간지주에 거는 깃발을 말한다. 백제와 신라의 와당(瓦當)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용의 얼굴과 함께 그 둘레에 서역의 영향을 받은 연주문(連珠紋·점이나 작은 원을 구슬 꿰듯 연결시켜 만든 문양)을 수놓았다. 심 교수는 “선과 면을 채운 기법은 얼핏 ‘사슬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근래에는 사용되지 않는 가름이음수”라고 말했다. 일본 나라 주구지(中宮寺) 소장 ‘천수국만다라수장(天壽國曼茶羅繡帳)’은 622년 사망한 일본 쇼토쿠(聖德) 태자의 극락왕생을 염원하며 제작한 작품이다. 14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선명한 색감과 다양한 도상이 눈길을 끈다. 밑그림을 그린 고마노 가세이쓰(高麗加西溢)는 고구려계 인물임에 틀림없다. 또 다른 제작자인 야마토노아야노 맛켄(東漢末賢)과 아야노 누카코리(漢奴加己利)는 가야계로 추정되며 감독과 지도를 맡은 구라베노하타노 구마((량,양)部秦久麻)는 신라계 인물로 보인다. 이 수장(繡帳)은 미륵사지 석탑에서 출토된 금사 자수 조각과 마찬가지로 ‘이음수’ 기법으로 면을 채웠다. 한국 자수의 역사는 아주 길다. 평양 석암리 낙랑고분에서 운기문(雲氣紋) 자수가 출토됐고, 백제 무령왕릉에서 수습된 왕비의 금동신발 안에서 자수 장식이 발견됐다. 고대 한국의 자수 공예는 국외로 전해질 만큼 선진적이기도 했다. 심 교수는 “고대∼고려시대에 지금은 잘 모르는 굉장한 자수 기법을 많이 사용했다”면서 “예술과 기술의 경계에서 자수는 시대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한 상징체계로 완성됐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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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전에 기뻐하고, 한국인 치료… 대한민국을 구한 영웅들

    ‘BRUXELLES 18000km(벨기에 브뤼셀까지 1만8000km).’ 사진 속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소속 군인이 바라보고 있는 게시판에는 이 같은 거리 표시가 적혀 있다. 촬영 장소는 벨기에군 막사로 추정된다. 바다를 건너온 참전용사가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재치 있게 담은 장면이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조광)는 6·25전쟁 발발 70년을 맞아 미국을 비롯한 각국 참전 군인의 활동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사진 25장을 선별해 22일 공개했다. 국사편찬위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사진들로 유엔군 파병과 대민 지원, 휴전에 이르는 과정에서 각 참전국의 지원 양상이 드러난다. 사진 속 입대 지원서를 작성하는 뉴질랜드 청년은 심각해 보인다. 미군은 구급약을 나눠 주거나 한국인을 치료하고 있고, 캐나다 병사는 전투에 지쳤는지 힘겹게 부축을 받고 있다. 콜롬비아군 병사들이 휴전 소식에 기뻐하는 사진도 있다. 국사편찬위는 “6·25전쟁에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이 전투부대를 파병했고 5개국이 의료 지원을 했으며, 39개국이 물자를 지원하는 등 총 60개국이 대한민국을 도왔다”며 “각국 참전 군인의 기여를 되새기고 평화를 위한 각국의 협력이 필요함을 다시금 확인하고자 사진을 공개했다”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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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쿄 산업유산센터 역사 왜곡” 日전문가도 비판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운영하는 ‘산업유산국민회의’는 일본 정부를 대변해 역사를 왜곡하기 위한 조사를 실행하고 보고서를 작성해온 곳이다.” 일본 시민단체인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의 고바야시 히사토모(小林久公) 감사는 19일 동북아역사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소장 남상구)가 주최한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 전시 내용 검토 및 대응방안 모색’ 세미나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세미나는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재단에서 열렸다. 일본 도쿄에 최근 문을 연 산업유산정보센터는 ‘군함도’를 비롯한 일본 메이지시대 산업유산을 소개하는 곳으로 한국인 등의 강제 동원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5년 7월 일본은 강제노역 시설을 포함한 산업시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가혹한 강제노역을 인정하고 피해자를 기리는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막상 정보센터는 이를 부정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이날 세미나에서 고바야시 감사는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산업을 지탱한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일을 다음 세대에 계승한다’는 설립 취지와 달리 당시 노동자와 노동 실태를 은폐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가 센터를 제대로 운영하도록 향후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카타 미쓰노부(中田光信)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사무국장은 “2018년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는 ‘당사국과의 대화’를 촉구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무시한 채 정보센터의 설치를 강행했다”고 비판했다. 또 “진상규명네트워크가 지난해 11월 ‘산업 노동에 관한 조사’와 관련해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요청서를 제출했으나, 일본 정부는 ‘기존 조사 내용이 충분해 재조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을 했을 뿐”이라며 “일본정부와 산업유산국민회의는 식민지 지배 역사를 부정하고 유네스코의 결의와 권고를 계속해서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전문가들은 이날 세미나에 화상회의 플랫폼을 통해 한국 전문가와 함께 참여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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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박물관 소장 소형 총통 300점 중 16점 가짜일 가능성

    전국 박물관이 소장한 고려 말∼조선 중기 소형 총통(銃筒) 300점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16점은 근래 만들어진 가짜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진주박물관(관장 최영창)의 허일권 김해솔 학예연구사는 최근 발간된 보고서 ‘조선무기 조사연구 보고서1: 소형화약무기’에 게재한 논고 ‘국내 소형 총통류의 형태 변화와 제작 기술’에서 이같이 밝혔다.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인 진주박물관은 2년여에 걸쳐 14∼16세기 소형 총통과 부속품을 조사하고 이 보고서를 발간했다. 연구진은 국립중앙박물관과 육군박물관을 비롯해 19개 기관이 소장한 총통 800여 점을 전수 조사했고, 그 가운데 293점을 X선 형광 분석 기법으로 조사했다. 그중 약 5%에 이르는 유물이 위조품으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짜 판별의 ‘스모킹 건’(결정적 단서)은 총통 재료인 청동합금 내 아연 성분이다. 청동 총통은 구리와 주석, 납이 섞인 합금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분석 결과 세 금속에 아연이 더해진 총통이 15점, 구리와 아연의 합금 재질이 1점 확인됐다. 아연은 다른 금속에 비해 제련하기 어려워 한반도에선 17세기 이후에야 본격 제련했다. 따라서 14∼16세기 제작된 소형 총통에는 아연이 없어야 정상. 아연 성분이 나온 총통은 표면 색상과 형태도 인위적으로 부식시킨 것처럼 독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허일권 학예연구사는 “아연합금 총통은 위작품으로 의심한다”며 “과학적 분석과 명문(銘文) 판독을 종합해 진위를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어느 박물관이 소장한 총통에서 아연 성분이 발견됐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허 연구사는 “아연합금 총통 16점 가운데 지정문화재는 없었다”고 말했다. ‘위조 총통’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1996년에는 국보 274호 ‘별황자총통’이 가짜로 드러났다. 1992년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장을 포함한 일당이 공모해 현대에 위조한 총통을 경남 통영시 한산면 문어포 앞바다에서 인양했다고 하면서 조선시대 유물이라고 발표했던 것. 이 가짜 총통도 아연 성분이 상당히 포함돼 있었다. 연구진은 조선 중기 이후 소형 총통의 진위를 판가름할 수 있는 또 다른 기준도 제시했다. 바로 총통 속에 숨은 ‘형지(型持)’다. 구멍이 뚫린 총신을 주조하려면 쇳물을 담는 바깥 틀뿐 아니라 긴 원통 막대 모양의 안쪽 틀도 필요하다. 주조 뒤 제거하면 빈 공간이 되는 이 안쪽 틀이 정중앙에 위치하도록 정밀하게 고정하는 게 핵심 기술이다. 이 안쪽 틀을 고정하는 철제 받침쇠가 형지다. 형지는 나중에 틀을 제거한 뒤에도 총통 속에 남게 된다. 연구진은 소형 총통을 컴퓨터단층촬영(CT) 한 결과 총신이 긴 조선 중기 소형 총통의 내부에서 ‘W’ ‘M’ ‘L’자 모습의 형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 형지의 형태를 조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데 조사 대상 가운데 10여 점에서는 형지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보고서는 “조선 중기의 기술력으로 형지 없이 주형을 설계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형지가 없는 총통은 표면의 부식 상태도 어색해 가짜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소형 총통에는 격목을 넣는 ‘격목통’이 없었다는 것도 확인했다. 격목은 화약이 폭발해 발사체를 밀어내는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발사체를 넣기 전 밀어 넣는 나무토막이다. 연구진이 CT와 내시경으로 조사해 보니 기존 문헌 기록과는 달리 총열과 약실 사이에 격목통이라고 볼 만한 구경의 변화가 없었다. 보고서는 “소형 총통은 출토된 것보다 전래품이 많아 진위가 논란이었는데, 이번 조사로 과학적 기준이 마련되길 바란다”면서 “대형 화포도 조사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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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유홍준과 떠나는 실크로드 대장정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의 타클라마칸사막 동쪽 누란 유적은 오래전 번성했던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흔적을 보여준다. 모래바람이 이는 이 유적의 소하 묘지에는 나무기둥 아래 배를 뒤집어놓은 모양의 관(棺)들이 놓여 있다. 사람이 죽으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듯 저승으로 간다고 믿었던 것일까. 문화재청장을 지낸 저자의 유명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 신간이다. 시안(西安)에서 허시후이랑(河西回廊)과 둔황(敦煌)까지의 여정을 다룬 중국편 1, 2권에 이어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들과 타클라마칸사막을 탐방한다. 현장법사가 불경을 찾아 지나간 길이자 동서 문명 교역의 중심이면서 탐스러운 과일과 고고학 보물이 넘쳐나는 실크로드의 풍광과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와 함께 여행을 떠난 듯 실감나는 구성과 현장감, 풍부한 정보는 여전하다. 국내 답사기에 비해 다소 ‘맛’이 덜한 건 여정을 느긋하게 짜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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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독립 헌신한 헐버트 박사… 기사-사설 모아 헌정”

    “헐버트 박사의 자료를 찾다가 동아일보 사설을 보는 순간 눈물이 솟구칠 것 같았습니다.”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70)은 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회장이 감동한 사설은 조선의 독립과 항일운동에 헌신한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사진)의 서거를 추모한 본보 1949년 8월 12일자 ‘헐버트 옹(翁)을 추모함’이다. 이 사설은 “우리는 은인을 잃었다. 아니 애국자를 잃었다. 우리 한국을 사랑하기를 그의 조국을 사랑하는 것보다 못지않게 사랑하였고…”로 시작해 “옹의 일편단심은 대한민국의 영원한 번영을 통하여 길이 빛날 것이니 평생소원이던 이 땅 흙 속에서 고이 안식하시라”로 끝맺는다. 김 회장은 헐버트 박사의 귀국과 서거, 장례식 관련 자료를 수집하던 2013년 겨울 이 사설이 담긴 신문을 확인했다고 했다. 헐버트 박사가 국빈 자격으로 내한(1949년 7월 29일)한 것을 시작으로, 함께 헤이그 특사로 활약했던 이준 열사(1859∼1907)의 유족을 만난 일, 이승만 대통령과 이시영 부통령이 병원에 입원한 박사를 문병한 일, 서거와 장의(葬儀) 준비 과정, 영결식, 추모 분위기 등이 신문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영결식 기사 제목은 ‘3천만의 애끓는 통곡’이었어요. 구구절절 진심에서 우러나온 글이더군요.” 김 회장은 당시 동아일보 보도를 모아 2015년 박사 서거 66주기 추모 특집 소책자를 만들고 박사 영전에 헌정했다. 그는 “박사 서거 당시 동아일보는 한국의 은인에게 은혜를 갚는 듯한 심정으로 국가원수의 별세를 다루듯 박사의 서거 소식을 다뤘다”면서 “내용이 다른 신문에 비해 압도적으로 상세하고 정확했다”고 말했다. JP모건체이스은행 한국 회장 등을 지낸 김 회장은 대학 시절 헐버트 박사의 ‘대한제국의 종말’을 읽고 감동받아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박사에게 빠져들었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발족(1999년)이나 박사의 전기 ‘파란 눈의 한국혼 헐버트’(2010년) 발간 소식 등을 동아일보가 빼놓지 않고 독자에게 전한 것에도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김 회장은 1962년 전북 전주의 한 중학교에 입학해 선생님의 어깨 너머로 동아일보를 처음 접했다. “그 뒤로 군 복무 3년과 미국 본사 근무 4년을 빼고는 직장과 집에서 평생을 같이했습니다.” 김 회장은 “지난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동아일보가 2년에 걸쳐 3·1운동 현장을 취재 보도한 ‘3·1운동 100년 역사의 현장’ 시리즈 등 독립운동 기사를 눈여겨봤다”면서 “전국 각지의 수많은 독립유공자를 기억해준 걸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목숨을 위협받는 속에서도 남의 나라 독립을 위해 싸운 외국인에게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관련 연구도 충분치 않은 듯싶습니다. 동아일보가 이런 외국인 독립유공자를 언제나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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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적지에 말뚝 박겠다는 레고랜드[현장에서/조종엽]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청동기 유적 위에 테마파크를 만들겠다고 해서 문화재 훼손 논란을 일으킨 강원 춘천시 중도 ‘레고랜드’ 사업자 측이 호텔과 전망타워 기초공사를 위해 유구(遺構)가 있을 확률이 있는 땅속 깊이 콘크리트 말뚝을 박겠다고 나섰다. 4년 전 사업자 측이 스스로 제안한 시공법을 무시한 것이다. 18일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위원회에 따르면 강원도와 강원중도개발공사, 레고랜드 코리아는 레고랜드 터에 들어설 두 건물의 기초 시공법을 바꾸겠다고 지난달 및 이달 17일 두 차례 신청했다. ‘(건물 터가) 연약 지반의 장기 침하 가능성이 높아 파일(pile) 기초 시공을 제안한다’는 것. 지반이 약해 건물 하중을 버티기 어렵기에 파일을 박아 보완하겠다는 얘기다. 문화재위 매장분과위는 두 차례 신청 모두 가부 결정을 보류했다. 매장분과위원장인 이청규 영남대 교수는 1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말뚝을 얼마나 깊고 넓게 박는 것인지, 기존 유구층과의 관계는 어떤지(훼손의 소지는 없는지) 관련 자료 보완을 요구했지만 사업자 측은 두 번째 신청할 때도 이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다”고 보류 사유를 밝혔다. 건물 규모나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길이가 보통 10m 이상인 기초용 말뚝은 수십 m 깊이로 박는다. 이렇게 시공된 수십 개 말뚝이 유구층(유구가 있는 지층)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는 어쩌면 당연하다. 사업자는 두 건물이 들어설 터 아래에는 유구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입증되지 않았다. 말뚝 하단이 닿을 것으로 예상되는 깊이까지 발굴 조사한 적도 없다. 이 위원장은 “중도는 거의 청동기시대 지층까지 발굴했지만 그 아래층에 신석기시대 유구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말뚝이 깊이 내려가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구가 있는지 없는지 파보려면 현재 보존 중인 청동기 유구층을 훼손할 수밖에 없어 문화재 보존 문제가 따른다. 호텔은 6층, 전망타워는 59.8m 높이로 지을 예정이다. 당초 사업자 측은 2016년 4월 땅을 깊이 파지 않고 벌집 모양 구조물을 바닥에 까는 ‘허니셀 기초’ 방식으로 시공하겠다고 문화재위에 보고했다. 4년이 지나 ‘전문가 검토 결과’ 지반이 약하다며 말뚝을 박겠다고 돌변한 셈이다. 지반이 그동안 갑자기 약해진 것일까, 아니면 4년 전 허니셀은 고층 건물에는 잘 쓰이지 않는 시공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업자 측이 건축허가를 받으려고 얼버무린 것일까. 문화재위는 시공 방식 변경을 요청하게 된 경위도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문화재위는 국민을 대신해 문화재를 보호하는 마지막 보루다. 사업자 측은 지난달 공법 변경을 처음 신청할 때 기초적인 건물 배치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화재위, 아니 국민을 대하는 자세를 짐작할 만하다. 방대한 문화재 유존(遺存) 지역에 대규모 건설공사가 허가되는 ‘기적’을 봤으니 ‘말뚝 정도야…’ 한 것은 아니었을까. 조종엽 문화부 기자 jjj@donga.com}

    •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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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東亞와 동갑내기… 내 꿈은 더 좋은 나라”

    “민족정신과 더불어 동아일보와 100년을 함께 살았네요.” ‘현역 100세 교육자’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17일 오전 젊은 시절 7년간(1947∼1954) 교사와 교감으로 재직했던 서울 종로구 중앙중·고교 내 중앙학교 역사관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아일보와 김 교수는 1920년 4월 함께 태어난 동갑내기다. 그에게 동아일보는 다니던 학교(평양 숭실중)가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로 폐교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을 알려줬고, 참배를 피해 한때 자퇴한 그가 평양부립도서관에서 홀로 공부할 때 벗이 됐던 신문이었다. 김 교수는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있으며 급격한 성장 속에 메말라 가는 정신적 가치를 담은 책 50여 권을 썼고, 퇴임 뒤에도 강연을 통해 사회교육에 앞장서 왔다. 김 교수는 1960년 7월 7일 첫 기고 이후 현재도 본보에 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소중한 인연을 맺은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동감_백년 인연’의 일환으로 김 교수에 대한 감사 행사를 이날 열었다.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은 함께 역사관을 둘러본 후 오찬을 같이하며 김 교수의 본보 칼럼과 인터뷰, 사진 등을 모은 책자 ‘백년의 동반자’와 창간 100주년 기념 오브제 ‘동아백년 파랑새’ 등을 증정했다. 중앙중·고교 역사관에서 ‘자랑스러운 중앙인’ 소개를 둘러보면서 김 교수는 “내 제자구먼” 하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김 교수는 저서 ‘백 년을 살아보니’에서 “(중앙중·고교 재직 시절이) 평생에서 가장 학생들과 사랑을 나눈 기간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김 교수와 만난 중앙고 3학년 이시현 군은 “중앙학교의 큰 스승을 뵙게 돼 영광”이라고 했다. 본보 100주년 캠페인 ‘꿈이 뭐예요?’와 관련해 김 교수의 꿈을 물었다. 김 교수의 평생 꿈은 ‘해방된 한민족이 보란 듯이 민족국가를 세우고 세계에서도 모범적이고 풍요롭게 사는 것’이었다. “해방된 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교육에 일생을 바치자고 결심했지요. 저에게 용기와 교훈을 준 스승이 도산 안창호와 인촌 김성수 선생이었습니다. 이제는 속으로 ‘선생님, 못 보시고 돌아가셨는데 바라시던 대로 요즘 우리나라 잘삽니다’라고 합니다. 나 죽고 난 50년 뒤에 내 제자들이 ‘더 좋은 나라가 됐다’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 교수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든 원동력은 민족의식과 교육 열망이었다고 했다. “한국이라는 큰 나무의 뿌리는 암만 봐도 3·1운동 같아요. 어머니가 갓난 나를 업고 교회에 갔는데, 만세운동으로 남편을 잃은 아내들이 울지 않더라는 거예요. 민족의식과 ‘배워서 힘을 길러야 한다’는 의식이 3·1운동에서 싹터 그 힘으로 독립해 나라를 세울 수 있었고, 전쟁의 참화를 겪고 나서도 오늘날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거지요.” 김 교수는 이날도 ‘100세 청년’이었다. “나는 늙었다는 생각을 안 합니다. 항상 미래를 계획합니다. 여러분, 지난날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앞으로 얼마든지 갈 길이 있어요. 멀리, 높이 갈 사람은 짐을 많이 가져가면 안 돼요. 필요 없는 욕심은 버려야 합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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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北출신 포로가 모두 ‘반공’은 아니다”

    “6·25전쟁에 대한 반공주의적 연구는 전쟁을 냉전 대결 구도에서만 인식하면서 전쟁 이면의 복합성을 간과한 한계가 있다.”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57)는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17일 열리는 학술회의 ‘6·25전쟁 한강선 전투와 전쟁 70주년 성찰’의 발표 자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한국정치외교사학회와 한국전쟁학회(이상 회장 조성훈 군사편찬연구소장)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공동 개최한다. 김 교수는 ‘6·25전쟁사 70년의 역사정치학: 승전을 위한 선전을 넘어서’에서 공산주의에 반대하던 북한군 출신 전쟁포로라는 뜻으로 쓰이는 ‘반공 포로’보다 ‘송환 불원 포로’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고 했다. 반공 사상보다는 단순히 고향이 남쪽이어서 북쪽으로의 송환을 원하지 않은 포로도 있었다는 것. 중립국을 선택한 포로들은 공산주의와 반공주의를 거부한 ‘제3의 이데올로기’를 선택했다는 생각 역시 소설 ‘광장’ 등의 영향으로 생긴 통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나중에 미국 등 에 밀입국할 것을 염두에 두고 중립국을 선택했다는 증언이 있는 것을 볼 때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떠났다는 것이다. 1950년 12월 4일 부서진 대동강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남하하는 피란민을 촬영해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 ‘Flight of Refugees Across Wrecked Bridge in Korea’ 역시 남쪽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고 봤다. 김 교수는 1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사진은 선전용으로 활용됐지만 피란민 가운데는 원폭 투하와 폭격에 대한 공포로 안전한 곳을 찾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이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북한 측은 이 같은 주장의 연장선에서 ‘한국군은 미군의 괴뢰일 뿐’이라고 선전하면서 군사정전위에서 우리 군 소장이 유엔군사령부 수석대표를 맡자 위원회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전협정 서명은 원래 국가 정상이 아니라 군 사령관이 하는 것이고,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국군과 다른 참전국 군 사령관을 대표해서 서명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6·25전쟁 연구는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후기수정주의 등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것이 미국학계의 냉전사 연구를 분류할 때 적합한 방법이라고 보면서 공산주의, 반공주의, 반(反)반공주의로 나눠 볼 것을 제안했다. 그는 “반공주의적 6·25전쟁 연구는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의 의미가 있었지만 도그마가 되면서 계승, 발전되지 못했고 공산주의적 시각이 주도권을 잡는 경향이 나타났다”면서 “반(反)반공주의 역시 공산주의적 선전은 비판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승전과 체제 선전을 위해 가려진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학술대회에서는 이 밖에 6·25전쟁 당시 한강선방어작전, 김포반도전투, 제2차 서울 수복 전투의 의미를 재조명한 발표 등이 있을 예정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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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을 고스란히 담아간 사무라이

    “이곳은 공청도(公淸道·현 충청도) 비인(庇仁·현 서천군) 땅입니다.”(조선 관리) “비로소 귀국의 이름을 듣고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걱정을 놓았습니다.”(표류한 일본 무사) 예기치 않은 운명은 역사에 뜻밖의 흔적을 남긴다. 1819년 일본 규슈(九州) 남단 사쓰마(薩摩)번(현 가고시마·鹿兒島현)의 중급 무사 야스다 요시카타(安田義方)가 탄 배가 표류하다가 조선 비인현의 한 섬에 도착했다. 야스다는 일본으로 돌아가기까지 6개월 동안 조선에서 있었던 일과 대화(필담)를 기록한 ‘조선표류일기’를 남겼다. 19세기 초 조선의 모습을 담은 이 책이 최근 국내 출간(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김윤미 부경대 연구교수 번역·소명출판)됐다. 책에서는 야스다가 그린 다양한 그림 37장이 먼저 눈에 띈다. 조선의 다양한 인물과 물건을 예리하게 관찰해 그렸다. 비인현감의 행렬뿐 아니라 조선의 배(船), 각종 관(冠), 쌀가마니, 도끼, 초가집, 칼, 창, 돗자리, 교자, 담뱃대, 일산(日傘) 등이 그대로 담겼다. 그림에는 ‘조선도(朝鮮刀): 길이가 7, 8척 정도였다. 칼자루부터 칼집 끝까지 금으로 수를 놓았다’는 식으로 설명을 달았다. 일본으로 귀환하기까지 거친 여러 포구도 배가 다니는 해로와 함께 사실적으로 그렸다. 역자는 “문인화의 전통이 강한 조선의 양반이었다면 산수화 한 폭에 담았을 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한 점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했다. 야스다의 기록은 편견이 없고 집요할 정도였다. 밥상을 받아도 음식의 종류와 수량을 적었으며 “나는 (술) 6잔을 마셨고, 히다카(동료 이름)는 7잔을 마셨다”고 썼다. 역자는 “야스다의 눈에 비친 조선의 관인은 의젓하고 당당하며, 보통 사람도 생업에 충실한 모습”이라고 밝혔다. 당시 조선과 일본은 우호적인 관계를 200년 넘게 지속하고 있었다. 조선 관리들은 야스다 일행을 경계하면서도 환대했다. 법에 따라 일행의 상륙을 가능한 한 막고, 지명과 거리에 대한 물음에는 제대로 답하지 않았지만 필담과 시, 술, 음식을 나누며 교분을 쌓았다. 이들의 귀환에 앞서 명주와 베, 지필묵, 청심환 등 선물과 식량을 여러 차례 보내주기도 했다. 일본으로 향하기 위해 부산에 도착한 야스다는 임진왜란을 떠올렸다. “선대 주군(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께서 사천(泗川)에서 고전하다가 대승을 거둔 날이 실로 이백 년 전의 오늘이었다. 우리들은 표류하여 부산포에 이르렀으나 옛날의 전장이 또한 이곳에서 가까이 있다고 한다. 이에 우러러보고 고개 숙여 생각하니 감개가 비장하여 칼과 창을 어루만져 보고, 눈물을 뿌리며 시를 지었다.” 야스다가 표착 직후 다가오는 배에 탄 이들이 조선 사람이라는 걸 금세 알아봤던 것도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잡혀간 조선 도공(陶工)의 후손들을 일본에서 봤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선인들이) 나에시로가와(苗代川) 마을에 살았다. 지금도 여전히 복식과 수염, 두발을 바꾸지 않고 있다”고 썼다. 야스다의 표류는 시공간적으로 묘하다. 그가 표착한 비인현은 그보다 400년 전인 1419년 왜구의 습격을 받아 조선의 대마도 정벌을 촉발한 곳이기도 하다. 야스다의 표류보다 3년 앞선 1816년에는 조선 서해안을 탐사하던 영국 배가 정박했다가 성경으로 추정되는 책을 조선 관리들에게 건네고 떠났다. 사쓰마번은 약 50년 뒤 메이지유신을 주도하며 일본을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감)의 길로 이끌었고, 일본 제국 해군의 주축이 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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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러시아가 ‘몽골의 지배’로 얻은 것

    칭기즈칸의 손자 바투(1207∼1256)는 유럽 원정군을 이끌고 동유럽을 휩쓴 뒤 1243년 흑해와 카스피해 일대의 초원에 킵차크 칸국(汗國·한국)을 세웠다. 이즈음부터 1480년까지, 몽골이 러시아 대부분을 지배한 시기를 러시아인은 ‘타타르의 멍에’라고 부른다. 타타르는 몽골과는 다른 유목민 부족으로 몽골 제국에 편입됐는데, 서방 세계에서는 몽골이 타타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멍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지배는 상당히 가혹했다. 정복 과정에서 약탈과 학살, 파괴가 자행됐고 이후에도 징세와 징병을 통한 착취가 벌어졌다. 그러나 지배와 피지배 관계는 일면적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킵차크 칸국을 연구한 미국 역사학자의 이 책은 ‘멍에’를 가리키는 사료 이면에 은폐된 교류와 몽골족이 러시아에 미친 복합적인 영향을 좇는다. 저자에 따르면 원나라 황실이 어느 정도 한족의 문화에 물들어 갔던 것과 달리 킵차크 칸국에서 몽골인은 생활 방식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 나라는 몽골족의 힘의 근원이 되는 초원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몽골 울루스(ulus·영토, 국가, 백성, 영지를 뜻하는 몽골어)에 포함되지 않는 여러 러시아 공국(公國)을 오랫동안 지배했다. 저자는 당시 러시아가 몽골인이 육성한 국제 상업의 혜택을 입었다고 봤다. 또 몽골의 보호 아래 러시아 정교회는 물질적 측면에서 거대하게 성장했다. 킵차크 칸국은 러시아를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같은 동유럽의 적으로부터 방어했다. 훗날 모스크바 공국이 몽골의 군사 재정 관료 모델을 활용하기도 했다. 킵차크 칸국의 멸망과 함께 여러 러시아 공국을 통합한 모스크바 공국의 ‘차르’는 기독교 제국의 황제이면서 ‘킵차크 칸의 정통 후계자’라는 지위를 가졌다. 그러나 동시대 사료에서 모스크바 공국이 킵차크 칸국을 계승했다는 개념은 잘 확인되지 않는다. 이는 러시아인이 몽골과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부분은 최대한 기록에 남기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중세 기독교도와 무슬림 사이에 생겨난 우호적 사건들이 종교적인 이유에서 감춰졌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른바 ‘침묵의 이데올로기’다. 부제는 ‘중세 러시아를 강타한 몽골의 충격’.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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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리에서 보는 신라-백제-가야의 말 갑옷

    옛 신라와 가야, 백제 지역에서 출토된 말 갑옷 18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12일부터 8월 23일까지 경북 경주시 경주박물관에서 특별전 ‘말, 갑옷을 입다’를 공동 개최한다. 먼저 눈에 띄는 건 2009년 경주 쪽샘지구에서 완전한 형태로 출토된 말 갑옷이다. 보존 처리에만 10년 걸렸다. 실물과 이를 복제해 말 모형에 입힌 재현품(사진)이 함께 전시된다. 1992년 경남 함안군 마갑총에서 역시 완전한 모습으로 나온 가야시대 말 갑옷도 말 투구와 좌우측 말 갑옷이 최초로 함께 전시된다. 이 유물은 최근 보물로 지정됐다. 1934년 경주시 황남동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확인된 말 갑옷과 경주시 계림로 1호 고분에서 1973년 출토된 말 갑옷이 발굴 이후 처음 공개된다. 백제 지역인 공주 공산성에서 출토된 한국 최초의 옻칠한 가죽 말 갑옷과 말 투구도 볼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고대 중장기병(철기병) 모습이 영상으로 소개되며, 도기기마인물형각배(국보) 등 관련 유물 140여 점도 전시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막기 위해 경주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을 받지만 하루 300명까지는 현장에서도 신청을 받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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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MZ 파주 대성동 마을서 구석기 시대 뗀석기 발견

    비무장지대(DMZ)에 있는 경기 파주시 대성동 마을에서 구석기시대 뗀석기가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국립문화재연구소를 중심으로 구성된 비무장지대 실태조사단이 5월 26∼29일 진행한 첫 실태조사에서 구석기시대 뗀석기 2점을 수습했다고 9일 밝혔다. 석기는 마을 남쪽 구릉 일대에서 확인됐으며, 그중 찌르개(사진·위 끝이 날카로우며 아래로 내려올수록 폭이 넓어지는 모양의 도구)는 마름모꼴로, 큰 몸돌에서 떼어낸 돌조각을 이용해 만든 것이다. 양쪽 가장자리 날 부분은 잔손질해 대칭을 이뤘다. 나머지 한 점은 찍개(자갈돌이나 모난 돌의 가장자리를 떼 날을 세운 석기) 종류의 깨진 조각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석기가 수습된 지역은 구릉 정상부로, 규암 석재가 다수 확인되고 있어 유물의 추가 수습과 유적 확인을 위해 추가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구석기시대 뗀석기 유물은 2004년 개성공업지구 문화유적 남북공동조사 당시에도 1점이 발견된 적이 있다. 이 밖에도 고려시대의 수막새, 상감청자 조각, 용머리 장식 조각을 비롯해 통일신라∼조선시대의 유물이 확인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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