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림

손효림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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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효림 기자입니다.

aryssong@donga.com

취재분야

2025-11-29~2025-12-29
문화 일반52%
문학/출판23%
연극13%
교육3%
무용3%
산업3%
학술3%
  • 뜨거웠던 광장은 가고… 사랑-가족에 다시 눈뜨다

    “가족, 사랑 등 개인적인 소재를 담담하게 풀어낸 작품이 많았다. 사회 문제를 주로 다뤘던 지난해와 뚜렷하게 차이가 났다.”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8일 열린 2018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에서 심사위원들은 올해 응모작품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올해 응모자는 2260명으로 지난해보다 25%나 껑충 뛰었다. 응모 편수도 6980편으로 17% 증가했다. 부문별로는 시(5174편)와 시조(501편), 단편소설(553편)이 큰 폭으로 늘었다. 중편소설(302편), 동화(238편), 문학평론(19편), 영화평론(38편)도 고르게 증가했다. 희곡(84편)과 시나리오(71편)는 비슷한 수준이었다. 올해도 아르헨티나 멕시코 나이지리아 미국 호주 독일 프랑스 등 해외 곳곳에서 e메일로 작품을 보내왔다. 예심에는 △김경주 김중일 시인(이상 시) △정이현 편혜영 백가흠 손보미 소설가(단편소설) △김도연 소설가, 정여울 조연정 문학평론가(중편소설) △정윤수 영화감독, 조정준 영화사 불 대표(시나리오)가 참여했다. 김중일 시인은 “지난해는 촛불시위, 인공지능 등에 대해 쓴 작품이 많았는데 올해는 가족에 집중한 작품이 다수였다”고 말했다. 김경주 시인은 “부모와 자녀 간 관계보다는 형제간의 갈등을 다룬 경우가 많았다. 개가 등장하는 경우가 놀랄 정도로 늘어 가족의 확장으로 개를 대하는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단편소설 역시 부부 관계, 연인 간 사랑 등이 주를 이뤘다. 편혜영 소설가는 “촛불시위, 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이슈가 해소 국면에 접어들면서 일상적인 소재가 부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이현 소설가는 “생활과 밀착된 담담한 이야기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고 분석했다. 지난해까지 다수를 차지했던 백수, 아르바이트생은 자취를 감췄다. 손보미 소설가는 “특정 직업이 도드라지지 않고 개인 간의 관계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백가흠 소설가는 “극적이거나 전통적인 서사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플롯을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중편소설은 판타지물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김도연 소설가는 “지루하거나 아픈 현실에서 벗어나 이야기가 주는 재미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많았다”고 말했다. 다만, 소재와 관계없이 지금 현실에 의미를 던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여울 문학평론가는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끈질기게 파고드는 시도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연정 문학평론가는 “문장을 실험하고 세련되게 다듬는 등 언어의 미학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시나리오는 육아 분단 스릴러 등 소재가 한층 다양해진 가운데 멜로물의 비중이 커졌다. 조정준 대표는 “사랑을 나누기보다는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정윤수 감독은 “상실과 아픔이 깔려 있지만 신선한 설정이나 아이디어로 재치 있게 문제를 해결하는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고 말했다. 이날 예심 결과 시 23명, 단편소설 9편을 비롯해 중편소설 7편, 시나리오 13편이 본심에 올랐다. 시조 희곡 동화 문학평론 영화평론은 예심 없이 본심을 진행한다. 당선자는 이달 말 개별 통보하며 당선작은 내년 1월 1일자에 게재한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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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 10명중 6명 “지상파 중간광고 반대”

    지상파 방송의 중간광고 도입에 대해 국민 10명 중 6명꼴로 반대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0일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가 한국신문협회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지상파 방송 중간광고 도입이 신문업계에 미치는 영향’ 연구 중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 중간광고 도입에 대해 57.1%가 ‘전혀 혹은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매우 또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답변은 17.8%에 불과했다. 반면 광고인(조사 대상 89명)의 경우 중간광고 도입에 대해 53.9%가 ‘매우 혹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이 중간광고를 도입할 경우 예상되는 추가 수익은 연간 1114억∼1177억 원으로 분석됐다. 반면 신문 광고비는 연간 201억∼216억 원 줄어들어 신문사들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제4기 방통위 주요 정책과제를 6일 발표하면서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 문제를 다시 생각할 때가 됐다고 밝힌 가운데 나왔다. 김 교수가 광고주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지상파 방송에 중간광고가 도입되면 지상파 방송 광고비를 늘리겠다는 답변이 51.7%나 됐다. 지상파 광고비를 늘리기 위해 필요한 재원은 다른 매체의 광고비에서 가져오겠다는 답변이 적지 않았다. 매체별로는 신문·잡지 광고비를 줄이겠다는 비율이 51.9%로 가장 높았다. 케이블TV는 22.2%, 온라인·모바일은 3.7%였다. 김 교수는 “지상파 방송에 중간광고를 지금 당장 도입하는 것은 매체 간 균형발전 측면에서도 무리”라며 “미디어 관련 여러 협회를 대표하는 연구진을 구성해 공동연구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어 중간광고를 도입하더라도 다른 매체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시청을 방해하거나 방송의 공익성을 떨어뜨리는 등 중간광고를 도입할 때 나타날 문제점을 풀어 나갈 장치를 미리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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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매혹적 변주로 재탄생한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가 다시 태어났다. 원작의 배경인 섬은 현대 캐나다의 감옥으로 바뀌었다. 영국 호가스 출판사가 2013년부터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현대 소설로 다시 쓰는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열매를 맺은 작품 중 하나다. 맨부커상 수상작인 ‘눈먼 암살자’를 비롯해 ‘시녀 이야기’ ‘그레이스’ 등으로 유명한 저자는 원작의 정신에 충실하면서도 신선하고 매혹적으로 변주를 해냈다. ‘템페스트’는 밀라노의 대공 프로스페로가 동생 안토니오에게 배신당한 후 섬에서 복수를 꿈꾸다 화해와 용서에 이르는 여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연극 연출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메이크시웨그 연극 축제의 예술 감독 필릭스 필립스는 작품에만 몰두하다 행정 업무를 믿고 맡긴 부하 직원 토니의 배신으로 쫓겨난다. 플레처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에게 셰익스피어 희곡을 가르치게 된 필립스는 12년 후 문화유산부 장관이 된 토니와 맞닥뜨리게 된다. 토니가 교도소의 연극 수업을 보러 온 것. 필립스는 ‘템페스트’를 선보이던 중 절묘한 방법으로 토니가 과거의 잘못을 실토하게 만든다. 극 중 극 형식을 통해 원작의 의미를 곱씹는 것은 물론 연극의 매력을 돋보이게 만든 솜씨는 노련하기 그지없다. 필립스가 재소자들과 캐릭터를 분석하고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남성 재소자들이 요정 아리엘 역을 맡길 거부하자, 아리엘이 연약한 요정이 아니라 천둥, 번개, 태풍을 만들어 사실상 특수 효과를 담당한다며 재소자들을 사로잡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프로스페로가 그랬듯 필립스 역시 복수만을 꿈꾸고 마침내 성공한다. 하지만 복수심은 스스로를 어둠 속에 가둬 두는 것임을 깨닫고 용서를 통해 자유로워진다. ‘더 희귀한 행동은 복수보다는 미덕에 있네’라는 대사는 이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필립스는 연극이 공연하는 순간에만 존재하는 일시적인 것이기에 존중한다고 고백한다. ‘연극’이란 단어를 ‘삶’으로 바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대를 위해 글을 쓴 셰익스피어에게 보내는 근사한 헌사다. 원제는 ‘Hag-Seed’.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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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꼬리를 살랑살랑∼ 강아지는 왜 그럴까

    살랑살랑 꼬리를 자주 흔드는 강아지 ‘얼’. 신나게 공놀이를 할 때, 향긋한 꽃밭에 앉아 있을 때 얼의 꼬리는 여지없이 춤을 춘다. 배를 살살 긁어줄 때도, 흰눈이 펄펄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오지 아저씨를 보면 얼은 꼬리를 더욱 힘차게 흔든다. 친구 강아지 ‘무치’ ‘쥘’은 얼이 꼬리를 흔드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한다. 하지만 답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데…. 좋아서 입이 떡 벌어진 얼과 고민에 빠진 무치, 쥘의 표정과 몸짓이 생생하고 앙증맞게 그려져 있다. 무치는 드디어 이유를 알아낸다! 과연 무얼까? 아이와 함께 생각해보며 놀이하듯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겨 보자.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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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한강 “전쟁 가능성에 맞서 보통사람 심정 전해”

    한강 소설가(47·사진)가 올해 10월 뉴욕타임스(NYT)에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남한은 전율한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에서 밝혔다. 당시 기고문에는 한반도의 전쟁 시나리오를 언급하는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며 한국인들은 평화만을 생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전쟁은 한반도에서 실행된 일종의 이념적 대리전이었다’고 표현해 논란이 일었던 것과 관련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NYT 기고문은 초고의 3분의 1 이상을 덜어내고 전체적으로 맥락을 다시 다듬은 글이었다고 말했다. NYT에서 붙인 제목과 달리 원문의 제목은 ‘누가 ‘승리’의 시나리오를 말하는가?’였다. 기고문 게재 후 30일간 NYT에 저작권이 묶여 있어 원문을 이제 문학동네에 공개할 수 있게 됐다는 것. 그는 “기고문 청탁을 받은 것은 5월이었지만 당시에는 정중히 사양했다. 그 후 말들의 전쟁이 가속화되면서, 쉽게 전쟁을 말하는 위정자들의 태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마치 한국에는 어떤 위기에도 무감각하고 둔감한 익명의 대중만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국외의 분위기도 염려스러웠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구체적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실감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기고문은 NYT를 읽는 현지 독자들을 향해, 평화를 믿는 사람들이 연대하여 전쟁의 가능성에 맞서기를 침착하게 제안하고자 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실제로 주변에 살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심정을 전하고자 했기에, 나약하고 무력하게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옹호하는 존엄한 사람들로서 한국인들을 묘사하려고 노력했다는 것. ‘대리전’ 논란에 대해서는 “북한의 독재 권력의 부당성은 모두가 당연하게 공유하는 상식적인 전제로서 바탕에 깔려 있으며, 한국전쟁의 성격에 대한 거시적, 복합적인 인식은 북한이라는 구체적 전쟁 발발자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비판적 인식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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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상섭의 단행본 ‘해바라기’ 첫 나들이

    염상섭(1897∼1963)의 첫 창작 단행본인 ‘해바라기’를 비롯해 단편소설집 ‘금반지’가 처음 공개됐다.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리고 있는 ‘염상섭 문학전: 근대를 횡보하며 염상섭을 만나다’에서 이들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924년 출간된 ‘해바라기’는 한국 최초의 여성 화가인 나혜석을 모티브로 신여성의 연애관과 결혼관을 담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출간 1년 전인 1923년 동아일보에 40회로 연재됐다. ‘해바라기’ 단행본은 1924년 8월 10일 발간된 ‘만세전’보다 열흘 먼저 세상에 나왔다. 1926년 출간된 소설집 ‘금반지’에는 ‘전화’ ‘검사국대합실’ ‘고독’ 등 근대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 수록됐다. 전시는 3·1운동부터 4·19혁명까지 역사의 흐름에 맞춰 7개의 주제로 나눠 염상섭의 삶과 문학을 조명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 행적과 ‘만세전’이 탄생한 배경도 소개한다. 일본, 만주, 경성을 오간 자취와 작품세계의 변화도 볼 수 있다. 동아일보 창간 당시 기자였고 여러 신문사에서 기자를 하며 세계 정세와 문물을 일찍 파악해 작품에 반영한 과정도 알 수 있다. 6·25전쟁 때 해군장교로 복무할 당시 군번표를 비롯해 육필원고와 출판계획서, 원고지함, 지갑 등도 전시됐다. 이종호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는 “염상섭은 주류 질서와 늘 긴장 관계를 형성했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문학의 거인이었지만 문단의 주류 실세에 속하지 않으며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25일까지 열리며 무료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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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고지 1만5000장… 등장인물 400명 “많은 이야기가 가슴속에서 꿈틀거렸다”

    조선 영·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권력자들의 이전투구와 백성들의 곤궁한 삶을 설화와 신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10권짜리 대하소설 ‘반야’(문이당)가 완간됐다. ‘왕인’ ‘매구할매’ ‘불꽃섬’ 등을 쓴 송은일 소설가(53·사진)가 12년 만에 완성한 작품이다. 원고지로 1만5000여 장 분량이다. 영조의 큰아들 효장세자의 죽음을 다섯 살 때 예견할 정도로 뛰어난 신기(神氣)를 지닌 무녀 반야가 주인공이다. 송 작가는 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이들과 세상의 주인이 되려는 무리, 현실 세상의 권력자들이 거세게 충돌하는 가운데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인간의 고통과 생명력을 역동적으로 그리려 애썼다”고 말했다. 2007년 두 권으로 된 ‘반야’를 출간한 송 작가는 많은 이야기들이 가슴속에 꿈틀거리며 더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고 했다. 영·정조 시대는 궁에서 무녀를 불러들이는 분위기가 남아 있는 데다 돌림병이 유난히 잦아 1년에 100만여 명이 죽어 나간 기록이 있어 고통과 죽음, 신화적 요소를 녹이기에 적합하다고 봤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주인공을 무녀로 정한 이유에 대해 송 작가는 “친구들과 무당을 찾아다니며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다 보니 무녀가 어떤 존재인지 궁금증이 커지면서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반야는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신분에 관계없이 사람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 역사와 판타지가 결합된 ‘반야’는 주요 인물만 40여 명에 이르고, 잠깐 등장하는 인물까지 합치면 400명이 넘을 것으로 송 작가는 추산했다. 후반부로 가면 악인들이 잔인한 방식으로 처단되지만 권선징악을 강조한 건 아니라고 했다. 작가는 “애달프고 따뜻한 이야기로, 드라마틱하고 말초적인 요소도 들어 있다. 열린 마음으로 읽는다면 고요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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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도서관에 날개를]강남 한복판에 ‘청학동식 서당’

    “아버지는 내 몸을 낳으시고, 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셨네∼.” 서울 강남구 자곡로에 지난달 29일 문을 연 ‘못골 한옥 어린이 도서관’에서 한복을 입은 어린이 20명이 ‘사자소학’을 낭송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한옥 5개 동 가운데 사랑채인 ‘율현관’에서 열린 ‘못골서당’에서 청학동 출신 서재옥 훈장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두 손을 가슴 아래 가지런히 모으고 “정립(正立), 정좌(正坐)”라고 말하며 조용히 일어나고 앉는 법을 연습했다. 공손하게 인사하는 예절도 익혔다. 서 훈장은 “인사법은 자기의 인격을 표현한다”고 강조했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 윤증의 고택을 재현해 만든 이곳은 대지면적 3704m²(약 1122평), 건축면적 373m²(약 113평) 규모로, 안채는 자료실과 열람실, 사랑채는 멀티미디어실과 전통문화프로그램실 등으로 구성됐다. 도서관을 만든 강남구(구청장 신연희)는 “책을 읽고 인성을 키우며 전통문화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널찍한 앞마당과 뒤뜰에서는 제기차기, 투호놀이 등을 할 수 있다. 채소를 키우며 농사 체험을 할 수 있는 텃밭도 있다. 운영을 맡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은 ‘못골서당’과 구연동화를 들려주는 ‘화롯불 동화’, 독서상식을 키우는 프로그램을 매주 연다. 인형극, 북콘서트, 한옥건축캠프도 진행할 계획이다. ‘못골서당’에 온 김민송 양(8)은 “바닥에 오래 앉았더니 다리가 저린다”면서도 “사자성어를 처음 접했는데, 예전에 익힌 한자가 떠올라 즐거웠다”고 말했다. 배서연 양(8)도 “처음 한자를 배워서 재미있었다. 또 오고 싶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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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정한 문학은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탄생하는 것”

    문학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요즘, 문학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승우 소설가(58)와 일본의 유명 문학평론가 와카마쓰 에이스케 씨(49)가 최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작가는 2015년 강연회 참석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와카마쓰 씨를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대화가 매우 잘 통하는 걸 느꼈고, 이후 매년 한 차례 대담을 나누고 있다. 대담집은 내년에 일본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이 작가의 작품 가운데 ‘식물들의 사생활’ ‘한낮의 시선’ ‘생의 이면’ ‘미궁에 대한 추측’ 등 4권이 일본에서 출간됐다. 이날 와카마쓰 씨는 일본어로 번역된 ‘한낮의 시선’을 손에 들고 있었다. 결핵에 걸린 ‘나’가 요양을 하던 중 잊고 있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아버지와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내용이다. 와카마쓰 씨는 “진정성을 담은 이야기가 마음속 깊숙이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읽는 이 한 명 한 명에게 각각 다른 색깔로 다가가 의미가 더 깊어지고, 때로는 인생을 바꾸게 만드는 게 문학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청소년기에 읽었던 세계문학전집이 내 인생관을 만들었다”며 “진정한 문학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태어나고 열매가 맺어지듯 작가 안에서 이야기가 영글고 흘러넘칠 때 비로소 ‘탄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와카마쓰 씨는 “문학 작품을 읽는 건 살아 있는 생명을 읽는 것과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들은 문학 작품이 완성되는 시점은 작가가 집필을 마쳤을 때가 아니라, 독자에게 서서히 스며들 때라고 했다. 이 작가는 “제대로 된 독서는 의미를 창작하는 경험을 가능케 한다. 독자들이 사유하고 이미지를 떠올리는 수고로움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 좋은 문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험을 한 독자들은 국경과 시간을 초월해 연결된다는 것. 와카마쓰 씨는 “릴케의 작품을 중심으로 이 작가와 나, 많은 이들이 문학적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의미로 연결된 공동체는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에 결국 문학은 사람들이 서로를 소외시키지 않는 역할도 한다고 분석했다. 이를 위해 이 작가는 “내 안의 어떤 것과 연결돼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내는 경험처럼 다른 매체가 끼어들 수 없고, 문학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한국과 일본도 문학을 통해 연결되고 자주 교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와카마쓰 씨는 윤동주의 시를 언급하며 “일본의 어떤 고전문학을 읽었을 때보다 그리움의 감정을 강렬하게 느꼈다. 한국에서 정신적 고향을 발견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헤아리다보면 타인의 감정도 섬세하게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기에 문학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정신적으로 깊이 교감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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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달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숨가쁜 추격전

    ‘마션’의 작가가 달나라 이야기로 돌아왔다. 주인공은 달에 건설된 도시 아르테미스에 사는 최하층 짐꾼 여성 재즈 바샤라.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으로 용접공인 아버지를 따라 여섯 살 때 아르테미스로 와 20년을 산 재즈는 집세도 감당하기 어려워 불법 밀수업을 한다. 수학 천재지만 학창시절 영재반에 들어가길 거부했다. 용접하는 데 미분은 필요 없다는 게 이유다. 재즈에게 단골 고객인 엄청난 자산가 트론이 비밀스러운 제안을 한다. 사업 확장을 위해 필요하다며 특정 기계들을 망가뜨려 달라고 한 것. 망설이던 재즈는 거액을 주겠다는 말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수락한다. 몸만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캡슐형 집에,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을 이용하는 삶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이다. 임무를 거의 다 이행해 가던 재즈는 결국 발각돼 도망자 신세가 된다. 열일곱 살 때 대형 사고를 친 재즈를 주시하며 지구로 추방할 기회를 노리는 보안책임자 루디가 바짝 추격해 온다. 한데 트론이 살해되고 누군가가 재즈의 목숨을 노리면서 상황은 꼬여만 간다. 재즈의 뛰어난 두뇌와 순발력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는 건 이 때부터로, 거대한 음모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고뭉치에 욕설을 입에 달고 살고, 돈벌이에만 골몰하지만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괴짜 재즈는 흥미로운 캐릭터다. 궁금증을 더하며 고속으로 질주하는 전개에, 재즈가 네온 가스관을 터뜨려 추격자들의 의식을 잃게 만드는 등 각종 과학적 지식이 정교하게 결합돼 지적으로도 즐거운 자극을 만끽할 수 있다. 중력이 지구의 6분의 1이어서 재즈가 3m 정도는 쉽게 점프해 위기를 모면하거나, 물이 귀해 호텔 샤워실에서도 물 20L를 계속 정수해 써야 하는 등 달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벌어지는 상황도 생생하게 묘사했다. 관광 명소인 아폴로 11호가 착륙한 지점과 주위 풍광도 하나하나 소개해 달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과학에 관심이 많은 이에게는 혀끝을 사로잡는 요리 같은 책이 될 듯하다. 영화 ‘마션’의 제작사와 제작진이 이 책도 영화화하기로 했다. 원제는 ‘Artemis’.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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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성-김제 이어 고흥에… 조정래의 3번째 문학관

    조정래 소설가(74)와 아버지인 조종현 시조시인(1906∼1989), 아내 김초혜 시인(74)의 문학 세계를 조명한 ‘조종현 조정래 김초혜 가족문학관’이 전남 고흥군에 30일 문을 열었다. 고흥은 조 시인의 고향이다. 조 소설가에게는 이번 문학관이 조정래태백산맥문학관(전남 보성군), 조정래아리랑문학관(전북 김제시)에 이어 세 번째다. 4남 4녀 중 차남인 그는 “교과서에도 실렸던 아버지의 문학이 잊혀지는 게 가슴 아팠다. 영원한 문학성을 볼 수 있는 집을 고흥군에서 지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작가별로 마련된 3개 전시실에는 육필 원고와 편지 등 1274개 자료가 있다. 전남 순천시 선암사에서 출가해 만해 한용운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조 시인은 이후 환속해 국어교사가 됐다. 이날 김훈 소설가는 축사에서 조 시인의 ‘욕심쟁이’, ‘영하 18도’를 낭송하며 “인간 사랑과 생명 존중을 노래했던 조 시인의 작품은 소설 ‘태백산맥’의 씨앗이 됐다”고 말했다. 조 소설가는 이를 수긍하며 “‘태백산맥’의 주인공 김범우가 아버지 생김새 그대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직선으로 선암사 주지가 된 아버지는 절이 소유한 논을 소작농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려 했는데, 여순사건 후 빨갱이로 몰려 극심한 고문을 받으셨다. 평생 가난 속에 독립과 문학을 위해 사신 아버지에게 효도하고 싶었는데 ‘태백산맥’을 다 쓰기 전에 암 투병을 하다 돌아가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가족문학관이 개관하기까지의 우여곡절도 밝혔다. 그의 이름을 딴 문학관이 2개나 돼, 김 시인이 “사람들이 당신을 ‘문학관에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며 반대했다는 것. 고민하던 그는 가족문학관 건립을 제안한 박병종 고흥군수에게 생애 가장 긴 편지(원고지 30장)를 보내 거절했다. 하지만 형제들이 가족문학관을 지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면서 김 시인이 의견을 굽혔다고 전했다. 가족문학관에는 한옥으로 된 조 소설가의 집필실이 내년 5월 완공된다. 그는 국가의 역할을 다룬 3권짜리 소설 ‘천 년의 질문’을 2019년 출간한 후 매달 마지막 주에는 3개 문학관에서 이틀씩 보내겠다고 밝혔다. 그는 “열심히 글을 쓰고 독자들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세금으로 문학관을 지어준 데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흥=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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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도서관에 날개를]“평창 올림픽 마스코트는?” 퀴즈 맞히며 올림픽 알아가요

    “정선아리랑, 백호 하면 연상되는 게 뭘까요?” 28일 경기 양평군 지평초등학교를 찾은 ‘책 읽는 버스’에서 김명근 강사(25)가 3학년 학생들에게 퀴즈를 냈다. 27명의 학생이 평창 겨울올림픽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며 경기 종목, 마스코트의 의미 등에 대해 익힌 후였다. 김 강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저요!” “저요!”를 외쳤다. 김 강사가 가리킨 남학생이 “‘수호랑’이에요”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정답이었다. 상품은 초코바. 환호가 울렸다. ‘올림픽 성화가 채화된 곳은?’ ‘장애인이 참가하는 올림픽을 가리키는 말은?’ ‘평창 올림픽 홍보대사는 누구’ 등 퀴즈가 이어지자 아이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다.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KB국민은행과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마련한 이 날 행사에서는 독서 프로그램과 함께 평창 올림픽을 알리는 수업이 진행됐다. ‘작은도서관…’이 이달 1일부터 평창 올림픽 홍보에 나섰기 때문이다. 독서를 통해 지식을 얻듯이 올림픽의 역사와 종목, 올림픽 정신을 익혀 상식을 넓히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책 읽는 버스’도 ‘2018 동계올림픽 개최 도시 평창’ ‘2018 빙상경기 개최도시 강릉’이라는 문구를 붙이고 새로 단장했다. 책버스는 광주, 충남 서산시 등 찾아가는 곳마다 평창 올림픽 영상을 상영하고 안내 책자도 나눠주고 있다. 이날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호랑과 반다비가 하얗게 눈 내린 숲속에서 크로스컨트리스키, 스노보드 등을 타는 장면을 봤다. “무서울 것 같아” “뽀로로가 사는 곳 같아”는 반응이 나왔다. 올림픽 선서를 큰소리로 함께 읽기도 했다. 마지막 순서는 수호랑과 반다비 색칠하기. 아이들은 마음에 드는 색연필을 골라 열심히 칠하고 친구의 작품을 구경하기도 했다. 5, 6학년 학생들은 ‘진주성을 나는 비차’를 쓴 박형섭 작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전교생은 수호랑과 반다비 모양의 마우스패드를 선물 받았다. 3학년 김동준 군은 “친구들이 퀴즈를 재빠르게 맞혀서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3학년 임서은 양은 “평창 올림픽에 관심이 별로 없었는데 이제 올림픽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며 웃었다. 교사들은 독서와 올림픽을 결합한 프로그램이 신선하다며 반겼다. 홍태화 지평초등학교장은 “겨울올림픽은 여름올림픽에 비해 학생들에게 생소한 종목이 많은데 이번 수업이 평창 올림픽을 좀 더 친근하게 여기게 만든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양평=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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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범신 “작가인생 44년, 독자앞에 서는 게 이렇게 긴장되긴 처음”

    그의 왼쪽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인터뷰를 한다고 생각하니 많이 긴장되더라고요.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아침에 일어나보니 눈에 실핏줄이 터져 있었어요.” 44년째 작가 생활을 하며 숱하게 인터뷰를 해 온 소설가 박범신 씨(71)는 민망한 듯 웃음을 지었다. 43번째 소설 ‘유리’(은행나무·사진) 출간을 맞아 27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그랬다. 지난해 10월 성추문 논란에 휩싸인 후 공식 활동을 재개한 그는 단어 하나를 말할 때도 한참 동안 생각했다. 당시 모임에 참석한 이들 사이에서는 엇갈린 주장이 나왔다. “사실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더 조심하고 더 삼가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자들에게 받았던 과분한 축복에 비하면 작은 형벌이니까요….”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동아시아 일대를 부유한 방랑자의 여정을 그린 ‘유리’는 지난해 3월부터 7월까지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됐다. 구독자는 9만여 명에 이르렀다. 지난해 10월 한국과 대만에서 동시에 출간할 예정이었지만 논란이 일면서 연기됐다. ‘유리’는 ‘유리걸식(流離乞食)’에서 딴 이름. 구렁이, 은여우, 원숭이, 햄스터가 유리와 여정을 함께하고 대화도 나누는 판타지적 분위기에, 개개인의 삶이 역사적 사건과 숨 가쁘게 맞물리면서 읽는 이를 빠져들게 만든다. 그는 퇴고를 거듭하고 위안부 여성의 고통과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담아 200여 페이지를 더 썼다. 작품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이 밝아지며 말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추가 원고를 썼던 8월은 지난 1년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잊고 글쓰기에만 몰입할 수 있었으니까요.” 후반부에 위안부 출신의 점순을 등장시킨 건 유리가 정처 없이 떠돈 동아시아 일대에서 당시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던 존재가 위안부였기 때문이다. 유리가 간절히 찾아다닌 소녀 ‘붉은댕기’는 위안부로 끌려가 유리와 헤어지게 된다. “점순은 ‘붉은댕기’의 현신이에요. 유리와 마지막에 서로 위로를 주고받게 하고 싶었어요.” 그는 젊은이들에게 지난 백 년 동안 극심한 수난을 겪은 우리 역사를 무겁지 않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당시는 소통이 불가능했던 ‘짐승의 시대’였죠. 유리가 동물들과 대화하게 되는 건 제대로 된 말을 나눌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을 가상 국가 이름으로 바꾼 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상상력에 제한을 받지 않기 위해 만든 장치고요.” 그는 소설이 정글과도 같기에 쓸 때마다 자주 길을 잃어버리고 최소한 두세 번은 위기를 맞는다고 했다. 하지만 ‘유리’는 앞부분을 시작하자마자 길이 확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과 내가 한 덩어리가 된 것 같았어요. 내 속에서 뿜어져 나온 것을 춤추듯 써내려가는 경험을 하며 비로소 작가가 됐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유리’는 일제강점기부터 유신 시대까지의 역사를 비춘다. 그는 ‘유리’의 아버지가 살았던 1800년대 후반과 유신 시대 이후의 한국 사회를 다루는 작품을 각각 써서 3부작을 완성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포털 사이트에 처음 소설을 연재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적극적이다. “후배들이 설 수 있는 자리를 넓혀 주고 싶어요. 자신이 쓴 문장이 소중하면 길거리든 어디에서든 보여주며 독자들을 찾아 나서야죠.” 문장 역시 여전히 감수성과 예민함으로 충만하다. “의도한 건 아니에요. 새로운 작품을 쓰려면 지금까지의 작품을 부정해야 하니까요. 저는 미완의 작가예요.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도 모르고요.” 완전히 새로운 출발을 진지하게 말하는 그는 영원한 ‘청년 작가’였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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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神 vs 과학… 댄 브라운, 인류의 운명을 묻다

    이번엔 인류의 시작과 끝이다. ‘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 ‘로스트 심벌’ ‘인페르노’ 등으로 유명한 저자(53)가 4년 만에 내민 카드다. 배경은 스페인이다. 로버트 랭던 하버드대 교수는 천재 컴퓨터 과학자인 제자 에드먼드 커시의 초청으로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향한다. 유럽의 금융 위기를 예측하고, 자신이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유럽연합을 위기에서 구해내 ‘예언자’로 불리는 커시가 중대한 내용을 발표하는 행사에 참석한 것. 이에 앞서 커시로부터 발표 내용을 미리 들은 저명한 종교 지도자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유명 인사들이 미술관에 모인 가운데 커시는 인류의 기원과 미래에 대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릴 내용을 밝히려 하지만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숨진다. 랭던의 활약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기존 작품에서 그랬던 것처럼 명석한 미녀가 동행한다. 구겐하임 미술관장이자 스페인 왕자의 약혼녀인 암브라 비달이다. 랭던은 커시가 밝히려 했던 내용을 찾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들을 돕는 이는 또 있다. 커시가 만든 인공지능 ‘윈스턴’은 랭던과 비달이 왕실 경호원들을 따돌리고 헬리콥터와 자율 주행 기능 자동차로 바르셀로나에 있는 커시의 집과 연구소로 이동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안내한다. 이처럼 이야기의 기본 구조는 전작과 동일하다. 하지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전개는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부터 읽는 이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새로운 장소에서 펼쳐지는 예술과 지식의 향연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나카야 후지코의 ‘안개 조각’, 제니 홀저의 ‘빌바오를 위한 설치’, 이브 클랭의 ‘수영장’ 등 ‘랭던 시리즈’에 처음 등장한 현대 미술 작품은 신선함을 선사한다. 커시의 발표 내용이 담긴 컴퓨터에 접근하기 위해 47개 글자로 된 암호를 찾아내는 과정 역시 익숙한 설정이지만 풍성한 지적 즐거움을 안겨준다. 마드리드 왕궁과 몬세라트 수도원,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카사밀라 등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세밀하게 묘사돼 스페인 곳곳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커시의 죽음을 둘러싸고 터져 나오는 속보가 인터넷사이트인 컨스피러시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상황은 지금 사회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반영한다. 다만 랭던이 마침내 암호를 풀어 커시가 발표하려던 내용이 밝혀지는 순간부터 팽팽했던 긴장의 끈은 다소 느슨해진다. 기자가 과학 분야에 조예가 깊지 않지만 소설이라 하더라도 커시의 발견이 전 세계와 종교계를 뒤흔들 만큼 파괴력을 지녔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집필을 위해 5년간 찰스 다윈, 스티븐 호킹, 에너지와 생명의 관계에 대해 연구한 제러미 잉글랜드 등 유명 과학자들의 이론을 파고들었다고 한다. ‘천사와 악마’, ‘인페르노’에서 다뤘던 종교와 과학의 불꽃 튀는 대결을 이번 책에서 클라이맥스로 치닫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를 위해 신과 과학이 정면승부를 펼치는 구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승부의 과정과 결과가 아주 새롭지만은 않기에 맹렬하게 질주하던 자동차가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힘에 부치는 인상을 준다. 마지막 순간까지 마련해 놓은 반전 장치는 인공지능의 한계와 도덕성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의 역할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원제는 ‘Origin’.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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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문청’이 따로 있나

    신춘문예 원고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마감은 다음 달 1일. 해외에 거주하는 경우 원고를 e메일로 접수하는데, 70대 응모자 두 명이 눈에 띄었다. 한 지원자는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의 격려 말씀이 평생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아 정년퇴임 후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다. 새로운 분야여서 힘도 들었지만 헤밍웨이가 말하는 ‘글 쓰는 즐거움’이란 말의 뜻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됐다”고 밝혔다. 또 다른 지원자는 “젊은 시절부터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꿈을 꿨는데 생의 귀로에서 결단을 내렸다. 남에게 속살을 내보이는 것 같은 부끄러움이 앞서지만 삶의 마지막 언덕에서 가슴에 용기를 간직하고 싶다”고 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글을 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계속 생각하게 만들었다. “글을 쓸 때 진이 빠지고 고독하지만 그 모든 게 다 좋다”며 미소 짓던 김숨 소설가(43)가 떠오르기도 했다. 쓰고 싶은 무언가가 가슴속에 꿈틀거리고 실제 이를 써내려간다면 그는 이미 작가가 아닐까. 세상이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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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녀 구분 없이 집안일 하고 아이 돌보는 동남아, 잠재력 무궁무진”

    “동남아시아에서는 남녀가 집안일과 육아를 동등하게 나눠서 해요.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도 거리낌이 없죠.” 김이재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45)는 중국의 대안으로 동남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요즘, 동남아시아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년 넘게 동남아시아를 연구해온 그가 쓴 ‘펑키 동남아’(시공사·2012년)는 인도네시아 최대 출판사이자 서점 프랜차이즈인 그라메디아에서 최근 출간됐다. ‘과일의 왕’ 두리안을 비롯해 동남아시아의 음식과 문화, 종교적 다양성을 조명한 이 책의 인도네시아판 제목은 ‘해피 여미 저니(Happy Yummy Journey·행복하고 맛있는 여행·사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여러 곳을 누비며 보고 느낀 점을 다채로운 사진과 함께 엮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잘 몰랐던 동남아시아의 잠재력과 문화적 가치를 흥미롭게 풀어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거의 없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건설 현장, 전자제품 판매점에서 일하는 여성을 쉽게 볼 수 있답니다. 모계 사회인 미낭카바우족의 속담 중에 ‘천국은 어머니의 발바닥에 있다’는 말이 있어요. 어머니가 편안하고 행복해야 천국처럼 좋은 곳이 될 수 있다는 의미죠.” 말레이시아의 무슬림 남성은 손님이 오면 직접 음식을 내오고, 퇴근 후 곧바로 집으로 와 아이를 돌본다고 한다. 필리핀은 이혼, 피임, 낙태를 금지하고 있지만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 별로 없단다. “미국인 사업가 짐 톰프슨(1906∼1967년 실종)이 태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만들어 실크의 고급화와 세계화에 앞장섰듯, 태국은 외국인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태국 짠타부리 면, 인도네시아의 고기 요리 렌당 등 현지 음식도 눈길을 끈다. “동남아시아는 자원이 풍부하고 개방적이어서 경제적으로 협력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행복지수와 출산율도 높아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현재 ‘자바의 파리’로 불리는 인도네시아의 반둥에 대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천혜의 기후 조건과 문화·사회적 인프라를 갖춘 반둥은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를 꿈꾸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실제 모습과 가치를 널리 알리고 싶어요. 힘들고 지칠 때 동남아시아를 떠올리면 너무나 행복해지거든요!”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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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문학의 별’이 된 그들… 시작은 東亞 신춘문예

    황순원 김동리 정비석 서정주 기형도 이문열 한수산 안도현 은희경 전경린…. ‘한국 문학의 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는 것이다. 1923년 시작된 동아일보 신춘문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며 문단을 이끈 이들을 대거 발굴해 왔다. 작가들은 전통과 권위를 갖춘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는 게 무엇보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입을 모은다. 대가들도 수줍게 포부를 밝힌 풋풋한 시절이 있었다. 1979년 신설된 중편소설 부문에 ‘새하곡’으로 당선된 이문열 소설가(69)는 당시 인터뷰에서 “작품을 다듬을 시간도 없어서 전혀 자신이 없었다. 가작 정도만 되더라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에 과분한 지우(知遇)를 입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안도현 시인(56)은 1984년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됐다는 소식에 환호하며 이렇게 다짐했다. “당선되면 들뜨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저곳 알려서 축축하게 술을 사겠노라고 큰소리를 치고 싶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몹쓸 열병으로 겨울 들판을 다시는 헤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까. 헤맴은 지금부터일 것이다.” 동아일보 신춘문예는 시대를 한걸음 앞서간다는 평가는 받는다. 세기말 상실감에 가득 찬 젊은이들의 감성을 대변한 기형도 시인(1960∼1989)을 1985년 시 ‘안개’로 발탁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당선 인터뷰에서도 허무주의적 색채를 짙게 드러냈다. “어둡고 길었던 습작 시절이 한꺼번에 내 의식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기쁨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모든 사물들이 무겁게 보인다. 좀처럼 열릴 것 같지 않던 문의 열쇠를 쥐여줘 감사하다.” 1995년에는 중편 부문에 은희경의 ‘이중주’, 전경린의 ‘사막의 달’을 공동 당선시키며 여성 작가들의 돌풍을 예고했다. 당시 은희경 소설가(58)는 “출판사를 그만둔 후 쓴 소설이 바로 당선의 영예를 안게 된 것은 그만큼 내면에 쌓여있던 말들이 많았던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전경린 소설가(54)는 “닫힌 삶을 사는 여성들이 과감하게 새 길을 열어젖히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밝혔다. 1996년 단편 ‘불란서 안경원’으로 당선된 조경란 소설가(48)는 “오감을 활짝 열어젖히고, 이 좁고 어두운 방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내디뎌 보고 싶다”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발굴한 천운영 윤성희 박주영 김언수도 비중 있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2018년 신춘문예 작품은 12월 1일(금)까지 공모한다. 중편소설 당선작은 ‘동아 인산(仁山)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해 지난해보다 1000만 원이 늘어난 3000만 원을 수여한다. 국내 종합지의 신춘문예 상금 중 최고액이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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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철근 역사소설 ‘나의 징비록’ 출간

    임진왜란 당시 전장과 조정에서 벌어진 일들을 두루 조명한 역사소설 ‘나의 징비록’(이채)이 출간됐다. 강철근 사단법인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장이 쓴 이 소설은 한산도 대첩, 평양성 탈환을 비롯해 조정 내부의 갈등, 명과의 외교 관계, 순절한 의병 등 역사적 사실을 재해석해 풀어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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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절망이 영혼을 잠식할 때, 낯선 곳으로 가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있다. 숨쉬는 것마저 힘든 이 절망감을 어찌 해야 할까.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유명 소설 ‘파이 이야기’를 쓴 저자는 15년 만에 내놓은 새 소설을 통해 일단 낯선 곳으로 떠나라고 제안한다. 작품은 시대를 달리해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세 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904년 포르투갈에 사는 토마스는 일주일 사이 아들과 아내를 병으로 잃고, 아버지마저 숨지자 세상에 대한 저항감에 1년째 뒤로 걷는 중이다. 국립 고미술박물관에서 학예사 보조로 일하는 그는 17세기 율리시스 신부가 노예무역을 하던 앙골라에서 쓴 일기를 발견하고 강렬하게 이끌린다. 참혹한 상황에 처한 노예들에게 세례를 해야 하는 신부의 고통과 복잡한 심경은 일기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신부가 만든 십자고상이 포르투갈 북쪽 높은 산에 있는 성당들 중 하나에 있음을 파악한 그는 십자고상을 찾아 떠난다. 1938년 12월 마지막 날 밤, 포르투갈의 병원에 근무하는 병리학자 에우제비우는 ‘마리아’라는 이름의 두 여성을 차례로 맞는다. 첫 번째 ‘마리아’는 사랑하는 아내로, 둘은 언제나 그랬듯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에 대해 한바탕 신나게 대화를 나눈다. 두 번째 ‘마리아’는 가방에 60년간 살았던 남편의 시신을 담아와 부검해 달라고 요청한다. 죽음의 이유가 아니라, 남편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고 싶다며. 1981년 캐나다 상원의원 피터는 40여 년을 함께했던 아내를 떠나보냈다. 미국에서 침팬지 보호소를 방문한 그는 충만하고 진솔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침팬지 ‘오도’를 만난다. 피터는 거액을 주고 ‘오도’를 구입한 뒤 할아버지의 고향인 포르투갈로 건너가 ‘오도’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저자 특유의 글쓰기는 여전하다. 에우제비우가 부검한 남성의 몸에서는 사과, 달걀, 진흙덩어리, 부젓가락 한 쌍 등이 쏟아져 나온다. 그가 살아오며 접했던 물건들이다. 마지막으로 흉부와 복부를 열자 새끼 곰 한 마리를 안은 침팬지가 나타난다. 피터는 ‘오도’와 바위를 오르다 멸종된 이베리아 코뿔소를 발견한다. 세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 소재는 서로 맞물리며 연결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포르투갈의 북쪽에는 높은 산이 없다는 사실도 내비친다. 한 편의 마술쇼를 보는 듯, 흥미롭고 때때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이야기를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여러 생각이 든다. 인간이 한없이 약해졌을 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존재한다고 믿는 그 무언가일 수도 있고, 눈빛만으로도 교감하는 동물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낯선 곳에 던져져 먹거리, 잠잘 곳, 온몸을 가렵게 만드는 이 잡기 등 원초적인 욕망을 해결하려 낑낑거릴 때만큼은 상실감을 잊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살이란 건 이성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아니 이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환상 같은 여러 일들은 이를 상징한다. 저자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며 읽는 이를 한껏 매혹시킨 뒤 묵직한 의미를 툭툭 던진다. 인간과 동물, 세상에 대한 온기가 담긴 이야기에는 힘겨워하는 이들의 등을 토닥여 주는 듯한 손길이 느껴진다.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지금, 마음을 녹여주는 책이다. 원제는 ‘The High Mountains Of Portugal’.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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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독 속 옷짓는 名匠 흠모”… “사물의 가장 깊은 곳 들여다봐”

    《 김숨 소설가(43)가 제20회 동리문학상 수상자로, 송재학 시인(62)이 제10회 목월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김 씨의 장편 ‘바느질하는 여자’와 송 씨의 시집 ‘검은색’이다. 동리·목월문학상은 경북 경주 출신인 소설가 김동리(1913∼1995)와 시인 박목월(1916∼1978)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경주시와 경북도, 한국수력원자력이 공동 주최하고, 동리·목월기념사업회가 주관한다. 상금은 각각 7000만 원. 시상식은 12월 8일 오후 6시 더케이호텔경주에서 열린다. 》  ▼ 동리문학상 김숨 ‘바느질하는 여자’ ▼전통기법 누비 바느질로 한복 만드는 名匠의 굴곡진 삶 그려“고독 속에서 절대적인 시간을 필요로 하는 바느질을 통해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를 흠모해 왔어요. 숨은 명장들에게 눈길이 갔고요.”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13일 만난 김숨 소설가는 장편 ‘바느질하는 여자’를 쓴 계기를 이렇게 말했다. ‘바느질…’은 전통 기법인 누비 바느질로 한복을 만드는 수덕과 두 딸 금택, 화순의 굴곡진 삶을 그렸다. 수덕은 저고리 한 벌을 만드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리는 고된 작업에 손가락이 휘어지고, 오장육부마저 약해지지만 바늘을 놓지 않는다. 집요하게 자기 길을 가는 수덕의 모습은 천연 염색 기법과 명주에 풀을 먹이고 다듬이질하는 법에 대한 치밀한 묘사와 어우러져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소설을 위해 8개월간 서울과 경주를 오가며 누비 바느질에 대해 배웠다. 고요한 가운데 바느질과 운명처럼 얽힌 여러 여인의 평탄치 않은 삶이 펼쳐지며 은근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인내심 강하고 명민한 수덕은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옷을 완성했을 때 황홀감을 느껴요. 예술가죠.” 그는 작품 속 여인들이 바느질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처럼 자신과 글쓰기의 인연도 그러하다며 조용히 웃었다. 매일 글을 쓰며 꾸준히 작품을 내는 그의 모습이 곁눈 한 번 주지 않고 한 땀 한 땀 뜨며 옷을 짓는 수덕과 겹쳐졌다. ▼ 목월문학상 송재학 ‘검은색’ ▼검은색 통해 삶의 본질 봐… 향토적 언어로 자기만의 스타일 구축검은색은 모든 빛을 다 받아들이지만 스스로는 아무것도 내보내지 않는다. 송재학 시인은 검은색을 통해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반추를 거듭한 결과를 시집 ‘검은색’에서 강렬한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로 토해냈다. 대구에 사는 그는 13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고교 시절 목월 선생님의 자작시 해설집 ‘보랏빛 소묘’를 보고 또 봤다. 하염없는 괴로움 속에서 시의 언어를 건져 올리는데, 이런 저를 문학이 다정하게 포옹해주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향가의 주술성과 서정성에 매료돼 시인이 된 그는 ‘검은색’에서 김시습의 고전 소설 ‘만복사저포기’, 가야금 산조 등을 녹여내며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담아냈다. 티베트 등 실크로드를 오가며 접했던 생동감 넘치는 풍경과 철학적 사유도 써 내려갔다. 몸과 마음이 풍경 속에 어우러져 연대를 이루는 경험을 귀중하게 여긴다고 했다. 그는 깊은 성찰의 결과를 향토적 언어로 풀어내며 자기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검은색은 사물의 가장 깊고 무거운 곳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물 속으로 들어가 본질을 파악하려고 애씁니다. 전율을 느끼며 통점에 시가 맺힐 때 문학의 세계로 더 깊숙이 다가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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