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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1931∼2011). 세계건축가연맹 금상 수상자(1999년)이자 프리츠커 건축상 심사위원을 지낸 그는 2009년 3월 제주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에 스페인어로 ‘물의 집’을 뜻하는 ‘카사 델 아구아 갤러리’를 완공해 선보였다. 레고레타는 이 건축물로 2010년 아메리칸 프로퍼티상을 받았다. 이후 다른 작품을 남기지 않고 타계해 이는 그의 유작(遺作)이 됐다.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고요히 들어선 이 레고레타의 유작을 놓고 제주도와 한국 건축 및 미술계가 들끓고 있다. 제주의 대표적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갤러리가 우여곡절 끝에 철거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파트리시아 에스피노사 멕시코 외교장관은 2일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를 재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주한 멕시코대사관은 이날 “카사 델 아구아는 멕시코 현대 건축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유산이기도 하다”며 멕시코 정부의 이 같은 공식 방침을 확인했다. 이에 앞서 마르타 오르티스 데 로사스 주한 멕시코대사는 올해가 한국-멕시코 수교 50주년임을 강조하며 청와대와 정부 관련 부처, 제주도청과 서귀포시청을 찾아가 철거 중단을 요청했다. 국내 건축계와 미술계도 이 건물의 철거에 반대하고 있다. 한국건축가협회는 지난달 23일 발표한 성명에서 “카사 델 아구아 갤러리는 제주가 품고 있는 또 다른 유산임에도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철거한다는 것은 국가의 품격까지 실추시킬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미술협회도 지난달 성명을 발표하고 “아시아에는 일본과 한국 두 곳에 레고레타의 건축물이 있는데 일본 작품은 개인 주택이라 내부가 공개되지 않고 있어 카사 델 아구아는 유일하게 내부가 공개되는 작품”이라며 “눈앞에 보이는 금전적 이득 때문에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잃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카사 델 아구아는 제주컨벤션센터 근처에 짓고 있는 앵커호텔과 콘도 분양을 위해 43억 원을 들여 2층 1279m² 규모로 지은 모델하우스 겸 갤러리다. 호텔이 완공되면 갤러리와 VIP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앵커호텔의 시공사였던 JID가 자금난으로 호텔과 콘도 용지를 부영주택에 팔면서 문제가 생겼다. 부영주택이 이 갤러리를 철거하고 그 대신 공원을 조성하기로 한 것. JID는 호텔 용지를 부영에 넘기면서 이 갤러리는 가격조건이 맞지 않아 팔지 않았다. 하지만 임시건물인 데다 존치 기간이 만료(2011년 6월 30일)돼 법적으로 철거 대상이 됐다. 제주지방법원도 지난달 25일 철거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6일은 카사 델 아구아의 운명에 있어서 결정적인 날이다. 갤러리에서는 현재 철거에 반대하는 한국 조각가 20명이 ‘레고레타-그의 공간을 품다’라는 제목으로 철거를 막기 위한 ‘방패용’ 전시를 하고 있다. 이 전시는 6일 끝나지만 철거 소식을 들은 건축학도들의 방문이 줄을 잇는 데다 서귀포시의 철거작업을 지연시키기 위해 작가들은 이달 말까지 전시를 연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서귀포시는 다음 달 6일 개최되는 세계자연보전총회 이전에 공원을 조성할 수 있도록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를 서둘러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오희범 서귀포시 도시건축과장은 “문제의 건축물은 중문관광단지 환경영향평가 합의 내용에 따라 건축물이 들어설 수 없는 자리에 지어진 임시건물이어서 존치 기간이 만료된 이상 법적으로 철거를 피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부제는 ‘함성호의 반反하고 반惑하는 건축 이야기’. 싫고 좋은 건축물 얘기를 국내외 사례를 들며 풀어냈다. 저자가 반(反)한 건축물 중엔 국립민속박물관과 세종문화회관이 있다. 전자는 ‘밀리터리 멘털리티의 조악한 전통미’를 보여주고, 후자는 ‘궁궐 건축의 기둥 형태를 기괴한 스케일로 뻥튀기하여 육중한 돌로 포장’했다는 것이다. 반면 김중업의 프랑스대사관에 대해선 ‘한국 건축의 형태미를 이처럼 우아하게 표현한 현대 건축은 없다’고 극찬한다. 저자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쳐 오늘에 이른 건축을 잡종과 혼성을 특징으로 하는 ‘슈퍼매너리즘’으로 규정한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4년 뒤에는 문화재도 되는데….” 건축가 김수근이 창간한 국내 최고(最古)의 종합예술전문지 ‘공간(SPACE)’이 폐간 위기에 처했다. 한은주 공간사 편집장은 “모기업인 공간건축이 매년 5억 원씩 지급해오던 지원금을 이달 1일부터 끊기로 결정했다”며 “매년 12억∼17억 원의 비용을 공간사 스스로 마련하기 어려워 폐간을 걱정하고 있다”고 밝혔다.월간 공간은 1966년 11월 고 김수근 당시 공간그룹 대표가 건축 미술 무용 연극 음악을 다루는 종합 문화예술지로 창간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무용가 홍신자 씨와 사물놀이를 처음 소개하며 1960∼80년대 문화계의 담론 형성을 주도했고, 서슬 퍼런 군사 정권 시절이던 1975년에는 국회의사당의 디자인이 군사 정권의 정치적 입김 때문에 졸작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1994년 7월호부터 영문을 병기했으며, 1997년 11월 지금의 영문 제호 ‘SPACE’로 바꿨다. 2008년 1월호부터 국내 잡지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학술정보 제공 기관인 톰슨 로이터의 예술 인문학 인용 색인(A&HCI)에 등재돼 세계적으로도 학술적인 권위를 인정받았다. 공간국제학생건축상, 공간국제학생실내건축상을 제정하고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등 예술과 건축 문화 발전에 기여해왔다.창간된 지 46년이 된 공간은 2016년 창간 50년이 넘으면 문화재 등록 신청을 할 계획이었다.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제작된 지 50년 이상이 지난 것으로서 역사 문화 예술 분야에서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있으면 문화재 등록 신청 대상이 된다.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젊은 시절 2년간 공간 편집부에서 근무했다”며 “건축 전문이면서 예술 분야까지 다루는 품위 있는 잡지인 만큼 누군가 인수해 전통을 이어갈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경험을 하고 나니 기억의 소중함을 알겠더군요. 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를 기억할 수 있는 마을로 재건하는 문제를 연구 중입니다.” 이가라시 다로(五十嵐太郞) 일본 도호쿠(東北)대 대학원 공학연구과 교수(45). 그는 지난해 3·11 동일본 대지진으로 대학 건물이 붕괴된 뒤 가건물에서 강의하고 연구한다. 건축사를 전공했고 자신도 대지진의 피해자인 이가라시 교수의 요즘 연구 주제는 ‘재해와 건축’이다. 5∼22일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건축전’도 그가 기획과 감수를 맡았다. 부제는 ‘일본의 건축가들은 대지진 직후 어떻게 대응했는가’다. 전시를 위해 3일 방한한 그는 “지진과 쓰나미는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므로 피해를 봤던 기억을 미래에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대지진 현장에서는 쓰나미에 휩쓸려 온 관광버스가 옥상에 올라앉은 건물과 철골 프레임만 남은 청사 등 몇몇 피해 건물을 보존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파괴된 집을 복원 설계해 그 모형을 지진 피해자들에게 선물하는 건축가도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51개의 작품 중에도 지진과 쓰나미의 잔해를 활용한 것이 많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건축 잔해물이나 파도에 휩쓸려온 흙 등을 콘크리트로 굳혀 고지대 광장을 설계한 작품, 잔해를 이용해 쓰나미 방지 기능을 갖는 모래톱 형태의 지형을 그려낸 작품 등이다.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에 대해 건축가들이 내놓은 제안들도 눈길을 끈다. 지진 잔해로 콘크리트 블록을 쌓아올린 피라미드 안에 후쿠시마 원전을 봉인하고 석관(石棺)으로 만든 작품,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를 신사(神社)로 설계한 작품도 있다. 원자로 건물에 일본식 지붕을 상징물로 얹어 향후 1만 년 이상 원자로를 신사 건물로 사용하자는 제안이다. 그는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 내진기술은 발달했지만 쓰나미에 견디는 건물을 짓는 기술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일본 내에서도 쓰나미에 견디는 건물을 짓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쓰나미가 몰려오면 빨리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3·11이 일본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일본 사회가 조각나 버렸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정부마저 못 믿게 됐으니 각자 알아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개인주자들, 반대로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고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사람들이 혼재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동일본 대지진 1주년인 3월 피해지역인 센다이(仙台)에서 시작됐으며, 2년간 25개국을 돌면서 열린다. 서울에 이어 다음 달 6∼12일에는 여수진남문예회관에서 전시한다. 이가라시 교수는 “3·11 대지진을 맞은 일본을 도와준 여러 나라 분들에게 보답하는 의미를 담아 전시회를 기획했다”며 “일본의 재해 극복 노력이 사회와 건축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한국인 중 많은 사람에게 중국은 ‘알고 싶은’ 나라보다는 ‘알아야 하는’ 나라에 가깝다. 그래서 중국 관련 서적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 책의 미덕은 중국을 색다르게 해석하는 데 있지 않다. 우리가 궁금해하는, 혹은 알아야 하는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다룬다는 데 있다.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자가 될 것인가. 동아시아에 신중화 질서가 등장할까. 중국은 지금과 같은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혹시 옛 소련처럼 붕괴하지는 않을까. 중국이 강대국이 된다면 한국은 그의 속국이 되는 것인가. 이 모든 문제를 놓고 부제처럼 ‘한국의 눈으로 중국 읽기’를 시도한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인간적’이란 건 무엇일까. 저자가 이런 근원적인 물음을 품게 된 동기는 컴퓨터와 ‘누가 더 인간적인가’를 겨뤄야 했기 때문이다. ‘뢰브너상’ 대회는 매년 인공지능 학계를 술렁이게 하는 행사다. 심사위원단은 컴퓨터 단말기를 통해 컴퓨터와 ‘인간 연합군’과 각각 5분간 대화를 나눈 뒤 어느 쪽이 인간인지 결정한다. 심사위원들은 상대가 컴퓨터인지 인간인지 모르는 상태다. 저자는 ‘인간적인’ 컴퓨터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 기계와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성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기이한 지적 여정을 이 책에 담았다. 그는 결국 2009년 대회에서 ‘가장 인간적인 인간’으로 뽑혔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대제학을 지낸 할아버지는 ‘여러문제연구소장’이었다. 천문 지리 농업 언어 등 다방면에 저술을 남겼고, 부인이 “붓과 벼루는 멀리하고 요리를 가까이 하시려나” 걱정할 정도로 부엌 출입도 잦았다.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냈는데 역시 수학과 천문 분야의 최고수였다. 이런 다빈치적 유전자를 물려받은 이가 풍석 서유구(楓石 徐有구·1764∼1845)다. 풍석은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은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 못지않은 르네상스인이었다. 나이는 두 살 어리고, 1789년 다산에 이어 1790년 과거에 급제했으니 과거시험 기수로는 다산의 한 해 후배가 된다. 두 사람 모두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조선왕조실록에 다산이 38회, 풍석이 62회 등장하는 엘리트 관료였다. 재야로 내쳐진 후 불후의 명작을 남긴 점도 같다. 다산은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며 실학을 집대성했고, 풍석도 관직에서 물러나 집중적인 저술 활동을 했는데 그 기간이 공교롭게도 18년이었다. 다산의 면모를 집대성한 저작이 여유당전서라면, 풍석의 대표작은 ‘조선의 브리태니커’ 임원경제지다. 둘은 여기서부터 다른 길을 걸었다. 다산은 벼슬길에 오른 선비가 나라와 백성을 위해 해야 할 바를 제시한 반면, 풍석은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가 사는 데 필요한 ‘잡학(雜學)’을 집대성하는 데 매달렸다. 벼슬 귀한 선비 집안에서 자란 다산이 경학과 경세학에 몰두하는 동안, 집안 대대로 고위 관료를 배출해낸 경화세족(京華世族)의 자손은 “토갱지병(土羹紙餠·흙국과 종이 떡)의 공허한 말장난이 싫다”며 비주류 실용학을 파고든 것이다. 다산의 저술 활동엔 18명의 제자가 함께했다. 하지만 풍석은 혼자 힘으로 밭 갈고, 옷 해 입고, 집 짓고, 병 고치고, 제사 지내고, 여가를 즐기는 데 필요한 ‘생활의 모든 지식’을 113권 54책 252만7083자에 담았다. 당시 지식인들은 나라 경영이 아닌 잡학 집필은 사대부가 할 일이 아니라고 여겼던 걸까. 다산은 국학 부흥운동이 한창일 무렵인 1930년대 정인보 선생이 동아일보에 실은 글을 시작으로 업적을 재조명받았다. 하지만 임원경제지는 1939년 보성전문(현 고려대)이 전질을 필사하는 작업을 동아일보가 보도하면서 최초로 언론에 공개됐을 뿐 그 전모는 지금껏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번역한 한국고전번역원도 두 손 들 정도로 내용이 방대하고 전문적이어서 완역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출연기관이 포기한 번역 작업의 끝을 본 이들은 41명의 소장학자다. 이들은 ‘임원경제연구소’를 차리고 국문학 한의학 경제학 미학 수학 기계공학 등 전공을 살려 4개의 필사본과 임원경제지가 인용한 853종의 원전을 비교해가며 9년간 매달린 끝에 초벌 번역을 끝내고 최근 개관서를 출간했다. 개관서만 펼쳐 봐도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의 “신기루 속 보물처럼 엿보기도 어려워라”는 독후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연구소는 2014년 500쪽짜리 55권 분량으로 임원경제지를 완간한다는 계획이다. 벼슬길에 오를 때와 내려온 후를 두루 살핀 다산과 풍석 두 문성(文星)이 활약했던 시대가 조선의 르네상스였다. 임원경제지가 완간되는 2014년은 풍석 탄생 250주년이다. 몸소 밭 갈고 물고기 잡으며 천시 받던 공업과 상업에까지 두루 깊은 식견을 보여줬던 열린 지성 풍석과 그가 남긴 저작이 본격적으로 평가받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

1960년대 말 미국 초등학교 교사인 제인 엘리어트 씨가 ‘차별 수업’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살해된 데 충격을 받아서였다. 그는 눈동자 색을 기준으로 학생들을 ‘푸른 눈’과 ‘갈색 눈’ 집단으로 나누었다. 하루는 ‘갈색 눈’ 집단에 “우월하다”며 특혜를 주었고, ‘푸른 눈’ 집단엔 “열등하다”는 딱지를 붙였다. 다음 날엔 집단을 바꾸어 실험했다. 결과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렇더라도 실험 결과가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차별 수업을 받았던 학생들이 10여 년이 지난 후 그 특별했던 수업이 자신들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가도 들려준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일반 건축물과 달리 공공건물은 불특정 다수가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광장 같은 곳이다. 서류를 떼러 오고, 약속 장소로 활용하거나 그냥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이 수평의 광장이라면 신청사는 광장이 벽을 따라 올라간 수직 광장이다.” 2008년 3월 착공한 지 4년여 만인 8월 말 완공되는 서울시 신청사의 원설계자 유걸 아이아크 건축가들 공동대표(72)의 말. 그는 7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신청사의 신관 건물 내부 위쪽에 커다란 원형 공간 3곳을 다목적용으로 띄워 놓은 것도 다양한 사람이 다용도로 활용하는 광장의 콘셉트를 구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업비 3000억 원을 들인 서울시 신청사는 옛 시청 건물을 복원한 본관(지하 4층, 지상 5층)과 삼각형 유리 7000여 장으로 외벽을 지은 신관(지하 5층, 지상 13층)이 앞뒤로 살짝 비켜서서 짝을 이루는 모양새다. 본관은 시민들을 위한 서울도서관으로, 신관은 공무원들의 사무실과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한다. ―지난달 말 공사용 가림막이 벗겨지고 신청사의 모습이 드러나자 반듯한 석조 건물인 본관과 역동적인 유리벽 건물의 동거가 어색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건축은 과거의 연장이나 과거와의 조화가 아니다. 새로움을 첨가하는 작업이다. 본관 건물이 지어졌던 일제강점기와 지금은 우리의 가치관이나 물리적 환경이 다르다.” ―신관 윗부분이 크게 튀어나와 거대한 파도가 본관을 덮치는 느낌을 준다는 지적이 있다. “가운데 서서 가로막고 있는 구청사 너머로 서울광장과 대화하려다 보니 신관 건물이 안간힘을 써서 고개를 내밀게 됐다. 결과적으로 재미있는 설계 아닌가. 신관이 구청사를 극복하려 애쓰는 모양새인데, 이는 일본과의 과거 청산이 이뤄지지 않아 일본과 관련된 이슈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듯하다.” ―신관 건물의 유리 재료는 에너지 낭비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더운 기운이 위로 빠져나가 환기가 잘되도록 설계했다. 튀어나온 처마가 여름엔 차양 역할을 하고, 겨울엔 해가 낮게 떠 볕이 잘 들어온다. 유리는 현대가 제공하는 가장 좋은 재료다. 가벼워지는 건축의 새 경향을 구현할 수 있는 재료이기도 하다.” 서울시 신청사를 둘러싼 가장 큰 논란거리는 원설계자와 실시 설계자가 다르다는 점. 이는 신청사가 설계 시공 감리를 한꺼번에 맡기는 턴키방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건설사가 제시한 디자인이 전문가들의 심의에서 계속 떨어지자 서울시가 별도의 현상 공모를 통해 유 대표를 설계자로 지정했다. 하지만 유 대표는 콘셉트 디자인을 했고, 이를 건축 과정에서 구현하는 작업은 건설사가 맡았다. 이 때문에 건축물의 ‘호적’인 건축대장엔 유 대표의 이름이 올라가지 않는다. “내가 설계는 했는데 짓지는 않은, 이상한 상황이 돼 버렸다. 실시 설계에서 3차원 설계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측면은 있지만 내 콘셉트는 유지됐다. 시민들이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창의적인 방식으로 신청사를 이용해줬으면 한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고종의 재임 기간은? 저자가 강연에서 물으면 맞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답은 44년간이다. 고종은 일왕 메이지와 비슷한 시기에 왕위에 올랐는데 그때만 해도 양국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조선 추락의 뿌리를 1623년 인조반정 체제에서 찾는다. 그리고 인조반정 이후 유일사상 주자학으로 300년 넘게 집권했던 노론이 집단적으로 매국에 나섰다는 점이 대한제국 멸망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삼국시대보다 더 낯선 근대 100년사를 ‘고종의 오판’ ‘만주 횡도촌’ ‘고종독살설’ ‘망명정부의 탄생’ 등 53개 키워드로 엮었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1957년 소련의 우주선 스푸트니크호 발사로 경악한 미국은 양국의 기술 격차를 따져보다 ‘측정 격차’가 큰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련은 일찌감치 미터법을 채택했고, 미국은 영국의 야드파운드법을 고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사일은 정밀 측정이 핵심이며 우주시대에 허용 오차는 1억분의 1까지로 줄어들어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지금도 미터법을 따르지 않고 있다. 왜일까. 이 책을 보면 의문이 풀린다. 도량형은 과학의 영역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측정의 세계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인 미터법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산물이다. 봉건 영주들은 제각각인 도량형으로 농민을 억압했다. 혁명 세력은 도량형 통일이야말로 구체제를 타도하고 자유와 평등을 구현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파리를 지나는 지구 자오선을 기준으로 기본 길이의 단위 ‘미터’를 만들어냈다. 프랑스는 도량형을 통해 프랑스의 혁명 정신을 세계에 전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터법은 프랑스 군대의 총검 뒤에서 행진했다’.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들은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전제조건으로 1960년대부터 미터법을 따랐다. 미국으로선 기준이 되는 자오선이 파리를 지나는 것이 못마땅한 데다 미터법이 아니어도 잘 살고 있으니 굳이 돈 들여 도량형을 개혁할 필요를 못 느낀 것이다. 도량형의 역사와 최근 진행되는 미터법 개정 작업을 망라한 것으로도 충분한데, 저자는 측정의 정교함보다 ‘왜 측정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후기까지 빼놓지 않았다. 그는 미국과 영국 물리학회 회원이면서 뉴욕 스토니브룩대 철학과 교수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 ‘더 많이 경험하라(Experience More).’ 21∼23일(현지 시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컨벤션&엑시비션센터에서 열린 ‘2012 케이블쇼’는 캐치프레이즈가 무색하지 않게 새로운 TV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는 자리였다. TV 콘텐츠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같은 다양한 스크린에서 즐기는 N스크린, 서버에 저장된 콘텐츠를 여러 기기로 보는 클라우드 TV 등 1년 전만 해도 ‘TV의 미래’로 소개됐던 꿈의 기술들이 이미 현실로 구현돼 있었다. 세계 250개 업체가 참가한 이번 박람회에서 참관인 1만2000여 명의 주목을 끌었던 서비스를 소개한다. 》○ TV는 데이터센터 전시장에서 가장 북적였던 곳은 미국 최대 케이블회사 컴캐스트의 부스였다. 컴캐스트가 이날 선보인 ‘데이뷰’에서 TV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담은 데이터센터에 가까웠다. 닐 스미트 사장은 “시청자들의 생활 전체를 한데 묶어 놓는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데이뷰 서비스는 TV의 기능 외에 각 지역의 교통상황과 날씨 정보, 보안시스템까지 제공한다. 소셜미디어와도 연계돼 TV를 보다가 ‘좋아요’ 버튼을 눌러 친구와 공유할 수도 있다. 일정 관리 기능이 통합돼 있어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엔 “회의가 있는 ○일 ○시에 레드삭스의 경기가 있습니다. 녹화할까요”라는 메시지가 뜬다. 보안카메라를 통해 집 안에 도둑이 들었는지, 아이가 공부를 하고 있는지를 감시할 수도 있다. 데이뷰 서비스는 올해 안에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리모컨을 대체한 아이폰과 아이패드 전시장의 여러 부스에선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리모컨처럼 들고 화면을 조종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애플리케이션으로 채널을 선택하거나 예약 녹화하고 관련 정보도 찾아볼 수 있다. 원하는 영화를 선택하면 관련된 영화들의 리스트가 제시되는 등 리모컨보다 TV 조작이 훨씬 쉬웠다. 스티브 에프로스 미국 케이블방송통신협회 고문은 “TV 콘텐츠가 어떤 기술을 이용해 어떻게 전달되는지는 시청자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시청자들이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셜 시청률 데이터솔루션업체인 소셜가이드는 미국의 220개 인기 채널의 프로그램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얼마나 언급되고 리트윗되는가를 기준으로 일일, 주, 월단위 시청률과 점유율을 계산해낸다. 드라마나 스포츠 등 장르별, 그리고 시리즈의 에피소드별 수치와 순위까지 나온다. 특정 프로그램이 하루 24시간 동안 언제 가장 많이 화제의 대상이 됐는가를 그래프로 확인할 수도 있다. 션 케이시 사장은 “소셜미디어 이용자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여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기존의 시청률 자료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보스턴=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원제 그대로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한 1933년부터 소련의 붉은 군대가 베를린을 함락한 1945년까지 ‘제3제국의 융성과 몰락(The rise and fall of the Third Reich)’을 주관적 해석을 배제한 채 추적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주요 전투를 100장이 넘는 천연색 작전 지도를 곁들여 상술해 놓은 점이 인상적이다. 지도와 140장이 넘는 관련 사진에 달아놓은 꼼꼼한 설명도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저자들은 영국의 군사학자와 합동지휘참모대학의 교관이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다리가 길고 엄청 스타일이 좋아요.”(16세 일본 여학생)“한국인은 다리 길고 멋지고 춤 잘 추고….”(18세 일본 남학생)9인조 걸그룹 ‘소녀시대’가 2010년 일본에 진출했을 때 가장 주목받은 것은 소녀들의 ‘긴 다리’였다. 현지 언론은 소녀시대를 ‘미각(美脚)그룹’으로 소개했고, 누리꾼들은 멤버들의 다리 길이를 소수점 이하 자리까지 계산해 온라인에 게시했다. 소녀시대의 이미지를 베껴 포스터를 만든 ‘미각전설(美脚傳說)’이라는 영화가 출시되기도 했다.왜 다리였을까. 한류 걸그룹의 긴 다리에 대한 선망은 ‘길고 쭉 뻗은 다리’를 여성의 저항성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일본 문화와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윤선희 한양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일본인들의 한국 걸그룹 수용 실태를 분석한 논문 ‘신한류 수용의 문화적 맥락과 여성적 정체성에 대한 문화연구’를 한국방송학보 최신호에 발표했다. 윤 교수는 논문을 위해 지난해 6월부터 3개월간 일본의 10대 남녀 청소년과 이들의 부모 세대인 40대 중년 남녀 등 모두 16명을 심층 인터뷰했다.이들은 한류 걸그룹을 좋아하는 이유로 빼어난 외모를 꼽았다. 17세 여학생은 “케이팝이 (제이팝보다) 댄스 얼굴 성격 체형에서 우위에 있다”고 했고, 18세 남학생은 “한국 아이돌은 다리 길고, 춤 잘 추고, 노래도 잘하는데 일본 아이돌은 그런 점을 모두 갖춘 팀이 없다”고 비교했다.이들은 한국 걸그룹의 외모를 칭찬하면서 “일본 연예인보다 품격이 높아 보인다”(17세 여학생)거나 “친근감이 있으면서도 신과 같은 존재란 생각이 든다”(16세 여학생)고 평가했다. 윤 교수는 이를 근거로 “일본 팬들의 긴 다리에 대한 찬미는 페티시즘으로만 환원할 수 없는 일본의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의미가 포함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굴종의 상징인 무릎 꿇기가 생활화돼 다리가 심하게 휘거나 ‘O’자 형으로 변형된 일본 여성들에게 여성의 저항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긴 다리라는 설명이다. 일본 근대화 초기 잡지에 자주 등장하는 신여성들의 상징도 길고 쭉 뻗은 다리였다.이 밖에 한류 걸그룹은 일본에서 여성적 연대의 계기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케이팝 팬 활동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음악을 같이 듣고, 한국어도 함께 배우는 팬들 간 교류는 일본 팬클럽에선 없는 문화다. 팬들 사이에 이러한 연대가 가능한 이유는 한국 아이돌이 이들에게 역할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응한 일본인들은 “한국 아이돌은 혹독한 훈련을 거쳤기 때문에 프로 의식이 있다”(17세 여학생), “케이팝은 모두 완성된 상태로 데뷔하기 때문에 제이팝이 부족한 느낌이다”(19세 남학생)고 평가했다.논문에 따르면 또래집단뿐만 아니라 가정 내에서 한국의 대중문화를 즐기며 모녀간의 연대감도 강화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윤 교수는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전오이디푸스(pre-oedipus·오이디푸스 전 단계의 어머니와 자녀의 공동체적 관계)적 연대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평가했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타이밍은 좋았다. 저자가 2005년 창간한 허핑턴포스트가 창간 7년 만인 지난달 퓰리처상 수상자를 냈다. 허핑턴포스트 미디어그룹의 회장인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 최고조에 달할 때 이 번역서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 기대한 만큼 실망도 커진다. 여성용 자기계발서여서, 블로그를 기반으로 시작했던 인터넷 신문을 주류 언론 못지않은 영향력 있는 매체로 키워낸 성공담은 빠져 있다. 원저가 나온 해도 허핑턴포스트 창간 이듬해인 2006년이어서 회사 얘기를 길게 할 내용도 없을 때였다. 책의 메시지는 제목 그대로 ‘담대해지라’는 것(원문엔 ‘fearless’로 나온다). 눈길이 가는 부분은 온갖 두려움을 극복해낸 저자의 개인사다. 1950년 그리스 아테네 언론인 집안에서 태어난 저자는 어려서는 큰 키(13세에 177cm)와 긴 코가 콤플렉스였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케임브리지 유니언’이라는 토론 클럽에서 활동할 때는 ‘우스꽝스러운’ 그리스식 이름과 억양 때문에 놀림을 받았다. 1986년 마이클 허핑턴 공화당 상원의원과 결혼하고 1997년 이혼할 때도 그는 두려웠고, 이혼 후 진보진영의 대표 논객으로 정쟁에 뛰어든 뒤로는 온갖 험담을 감당해야 했다.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무소속으로 나갔을 땐 경쟁 후보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지칠 줄 모르는 저자에 대해 “카페인 없는 음료를 마시는 게 어떠냐”며 비아냥댔다. 52세에 블로그의 세계에 눈떠 1년 후 블로거 2명과 허핑턴포스트를 시작하면서 “살아남기 힘들 수밖에 없는 실패작”이라는 혹평에 시달렸다. 하지만 ‘담대’했던 그는 이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자기 이름을 내건 신문사를 알짜배기 회사로 키워낸 뒤 창사 6년 만에 공룡 인터넷 기업 AOL에 3억1500만 달러(약 3560억 원)를 받고 팔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언론인답지 않게 각종 통계를 출처와 연도 없이 인용한 부분은 아쉽다. 책날개의 ‘2012년 온라인 매체로는 최초로 퓰리처상 수상’이라는 문구는 사실과 다르다. 비영리 인터넷 언론 ‘프로퍼블리카’가 온라인 매체로는 처음으로 2010년 이 상을 받았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크라우드소싱이란 대중(crowd)에게 문제의 해결책을 아웃소싱(sourcing)하는 것이다. 크라우드소싱 사이트 ‘이노센티브’는 포천 500대 회사들과 과학자 14만 명을 연결해준다. 옥석이 섞여 있는 외부의 과학자들을 활용하면 엘리트 연구원들이 모인 사내 연구개발(R&D)팀에 의존했을 때보다 문제를 해결할 확률이 30% 높아진다. 유튜브의 성공에도 크라우드소싱의 원리가 작동한다. ‘조회수’로 나타나는 대중의 평가 체계가 없다면 유튜브는 쓸모없는 영상들을 잔뜩 모아놓은 잡동사니에 지나지 않는다. 크라우드소싱은 집단지성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저자는 집단지성의 성공 비결이 ‘대중’이 아닌 ‘다양성’에 있다고 지적한다. 여럿이 모여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구성원들이 서로 이질적이어야 ‘집단지성’도 성립한다는 것이다. 원서가 출간된 게 2008년이다. 광속으로 변화하는 비즈니스 세계를 감안하면 번역본이 늦게 나왔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거북선 도산서원 동의보감 등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사가 추진해온 ‘빅 히스토리 연대표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크로노줌 사이트(www.chronozoomproject.org)’에 들어간다. 빅 히스토리(Big History·거대사) 연대표 프로젝트는 태초의 빅뱅(Big Bang)부터 현재까지 인류 전체의 역사를 하나의 연표에 작성하는 작업. MS는 최근 크로노줌 사이트를 무료로 공개했다. MS의 연구소인 MS리서치의 래인 존슨 수석연구원은 27∼29일 서울 이화여대 LG컨벤션홀과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에서 열리는 제2회 아시아세계사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크로노줌의 작업 현황과 향후 계획을 발표한다. 빅 히스토리는 국가별로 역사를 조망하면서 발생하는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대륙별, 더 나아가 지구 전체를 하나의 역사로 조망하는 새로운 연구 경향이다. 단지 역사 연구의 시공간적 범위를 확대하고 통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주와 지구의 형성, 생명체의 등장과 인간의 출현, 그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호작용까지 모두 포괄한다. 인문학을 넘어 생물학, 진화학, 천체물리학, 유전학 등 자연과학 분야와의 교류가 필수적인 대표적인 융합 학문이다. MS는 137억 년 전 빅뱅부터 현재까지 세계의 주요 문화유산이나 역사적 사건의 내용과 영향, 역사적인 찬반 논쟁, 사진 및 동영상 자료를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다. 한국 역사의 경우 거북선 도산서원 동의보감 일성록 수원화성 등 5가지를 시험판(비공개)에 담았으며, 북한의 역사란은 공백으로 남겨 두었다. 조지형 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장은 “인류 역사를 한 번에 조망하도록 가시화함으로써 거대사적 관점에서 사람들이 세상을 인식하도록 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MS는 빅 히스토리의 창시자인 데이비드 크리스천 호주 매쿼리대 교수 겸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공동으로 미국의 각 대학에 빅 히스토리 수업을 도입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빅 히스토리를 교양필수 과목으로 지정한 미국 도미니칸대의 사례도 소개된다. ‘아시아의 글로벌 교환 네트워크’와 ‘아시아의 대안적 근대성’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아시아세계사학회가 주최하고 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가 주관하며 동아일보가 후원한다. 데니스 플린 미국 퍼시픽대 교수가 ‘1590년대 전후 한국의 동아시아 교역-글로벌 수입과 수출의 모형화’, 근대성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아리프 딜릭 미국 듀크대 명예교수가 ‘근대성을 역사적으로 생각하기’,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이 ‘외계충격 대재난설과 새로운 역사해설’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다. 이 밖에 △유럽과 아시아에서 나타난 합병과 관련한 다양한 논점들을 다루는 ‘근대 세계에서의 합병 비교 연구’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혹은 아시아 내에서 발생했던 다양한 형태의 이주를 분석하는 ‘이주와 디아스포라’ △‘재스민 혁명: 일본과 남한, 중국, 대만, 그리고 아랍의 경험’ △‘실크로드와 몽골, 그리고 문화적 연결’ 등을 주제로 20여 개국 학자들이 참여해 1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한다.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너무 잘생겼기 때문일까. 검은 베레모에 쿠바산 시가 몬테크리스토를 물고 있는 그를 우리는 티셔츠, 열쇠고리, 심지어는 여자 속옷을 통해 질리지도 않고 소비한다. 그에 관한 책들도 아르헨티나의 의사로 안락한 삶을 버리고 남미 여기저기서 게릴라 투쟁을 벌인 무장 혁명가의 드라마틱한 인생에만 주목하기 일쑤다. 그러나 영국 런던정경대 경제사학과 박사인 저자는 체 게바라에게서 ‘스타일’을 벗겨낸 뒤 중남미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 이후 쿠바 경제의 밑그림을 그린 경제 관료로서 게바라의 면모를 조명했다. 게바라는 피델 카스트로 혁명 정부의 2인자로서 자본주의 쿠바를 사회주의 체제로 바꿔놓는 중심 역할을 담당했다. 산업부흥부장으로 토지개혁과 산업 국유화를, 국립은행 총재로 화폐개혁을, 산업부 장관으로 예산재정 시스템을 도입했다. 저자가 게바라 혁명 경제학의 핵심으로 소개하는 것이 소비에트 모델과 시장 사회주의 모델의 대안으로 제시한 예산재정 시스템이다. 소비에트 모델의 집중화와 관료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집중적 요소를 줄이고 노동자들의 자율을 보장하는 계획관리 체제다. 그는 자본주의를 배척하면서도 선진 자본주의의 기술을 도입하는 유연함을 보였고, 전자공학과 자동화가 생산력 발전에 기여할 것을 내다볼 줄도 알았다. 쿠바 경제사에서 게바라의 기여도를 재평가하는 작업은 쿠바 혁명을 실패로 규정하는 ‘쿠바학 연구자(Cubanologist)’들의 결론을 반박하는 것이 된다. “게바라의 지도 아래 쿠바 경제는 안정을 되찾고 산업을 다각화했으며 성장을 달성했다”고 평가한 저자는 쿠바 혁명의 성과를 긍정하는 ‘쿠바주의자(Cubanist)’의 전형이다. 쿠바 정부의 문헌과 게바라의 혁명 동지 60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토대로 내놓은 이 책은 쿠바 경제사를 내재적으로 접근한 한계를 드러내지만 쿠바주의자들의 논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공자(孔子) 전성시대다. 문화혁명의 광풍 속에 ‘비림비공(批林批孔·린뱌오와 공자 비판)’의 표적이 됐던 ‘반동’ 공자는 21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부활했다. 공자 죽이기에 나섰던 중국 정부는 블록버스터 영화 ‘공자, 춘추전국시대’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공자의 집과 사당도 새로 단장했다. 한국에선 고전 읽기 붐의 선두에 공자가 있다. ‘논어’를 소재로 한 인문서 외에 ‘공자, 경영을 논하다’ ‘마케팅을 공자에게 배우다’ 같은 경영서적까지 나왔다.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는 역사학자 이덕일 씨가 “공자의 말과 삶에 현재적 역사성을 부여하려는 시도” 끝에 나온 책이다. 은(殷)나라의 후예로 노(魯)나라에서 태어나 주(周)나라로 돌아가자고 주창하다 은나라 사람으로 세상을 뜨기까지 학자와 정치가로 살아온 공자의 일생을 ‘논어(論語)’ 20편의 구절로 따라간다. 한국사학자인 저자는 공자의 여러 면모를 설명하면서 그와 연관된 한국사 속의 인물을 불러낸다. ‘학이시습(學而時習·배우고 때로 익히다)’에서 호학(好學)군주 정조를, ‘선부후교(先富後敎·부유하게 한 후 가르친다)’에서 애민군주 세종의 식위민천(食爲民天·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을 언급하는 식이다. 제5편 ‘공야장(公冶長)’의 ‘불여호학(不如好學·배움을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을 설명하는 대목에선 조선 중후기의 시인 김득신(1604∼1684)이 나온다. 김득신은 ‘사기(史記)’의 ‘백이열전(伯夷列傳)’을 11만3000번 읽은 공부벌레였다. 제15편 ‘위령공(衛靈公)’의 ‘인불양사(仁不讓師·인에 대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는 공자도 비판의 대상이 될 정도로 자유로웠던 ‘공자학단’의 학풍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여기서 반어적으로 나오는 인물이 조선 후기의 문신 윤휴(1617∼1680)다. 주자학을 절대적인 사상으로 떠받들던 시기에 윤휴는 “천하의 이치를 어찌 주자 혼자 알고 나는 모른다는 말이냐”고 반박하다 사형을 당했다. 저자가 가장 많이 언급하는 인물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이다. 당시 조선은 군약신강(君弱臣强)의 나라였고 2500년 전 공자가 살았던 노나라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저자는 ‘위령공’편의 ‘유교무류(有敎無類)’를 ‘가르치는 데는 계급이 없다’로 해석하고 공자가 평등사상을 옹호했다고 지적했다. 다산도 논어 주석서인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에서 ‘하늘이 사람을 내릴 때는 귀천의 구별을 두지 않았으며… 가르침이 있으면(有敎) 모두 같다(皆同). 이것이 무류(無類)다’고 했다. ‘예기(禮記)’의 ‘가정맹호(苛政猛虎·가혹한 정치는 범보다 무섭다)’에선 다산의 시 ‘애절양(哀絶陽)’이 나온다. 순조 3년(1803년) 생후 3일 된 아이가 군포(軍布)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전에게 소를 빼앗겼다는 기막힌 이야기를 듣고 쓴 시다. 책 말미에 제1편 학이(學而)부터 제20편 요왈(堯曰)까지 논어 20편의 원문이 나온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요즘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세상 돌아가는 얘기며 정치판 얘기를 단골메뉴로 꺼낸다. ‘왜 그렇게 정치가 개판이냐, 진흙탕이냐.’ 그런 자리에선 치명적으로 비판을 잘하는 사람이 그날의 스타가 되곤 한다. 이럴 땐 최소한 땅이 꺼질 듯 한숨을 크게 내쉬며 ‘큰일이야, 나라꼴… 이러면 안 되는데’ 한마디쯤 해야 어울리게 돼 있다.내 경우를 들여다봐도 마찬가지다. 나는 요즘 매일 방송국을 왔다갔다 한다. MBC에서 ‘지금은 라디오시대’라는 두 시간짜리 생방송을 최유라 씨와 함께 진행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방송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다. 노조에 가입되어 있는 직원들은 파업하는 동안 책상을 비워놓고 있다. 요즘은 비노조원이 방송 일을 떠맡는 방식으로 대충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나는 애매한 입장이다. 옳다 그르다 판단을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방송국 비정규 임시계약직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궁금해서 동료 직원들한테 묻고 싶지만 제대로 묻지도 못한다. 내 앞, 내 옆에 있는 동료들이 회사 편인지, 노조 편인지 알아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동료한테 ‘야! 넌 회사 쪽이냐, 노조 쪽이냐? 파업 편이냐, 노(no) 파업 쪽이냐?’ 대놓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요즘은 아예 무슨 얘기가 있다 해도 소곤소곤 수준에서 끝이 난다. 이것이 요즘 내 주변의 정치풍속도다.어찌해서 임시직이라고 자기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파업 중인데 할 말이 없겠는가. 무임금 무노동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는데 어찌 할 말이 없고 안타깝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도 나는 입을 다물고 있다.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방송에 몸담고 있는 이상 내 개인 생각이든 속생각이든 정치에 관련된 얘기든 밖으로 드러내선 안 된다.이런 때에 며칠 전 동아일보로부터 이번 선거에 대해 한 말씀 써 달라는 정중한 원고청탁을 받았다. 나는 할 말이 없다며 즉시 사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정치색을 드러낼 수 없는 소위 공인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질기다. 할 말이 없다는 내용의 글도 환영한단다. 나는 ‘아! 그럼 이참에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해왔던 얘기나 털어놔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건 아니다.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우리 정치는 글렀어, 만날 싸움질이나 하고 만날 흙탕질이야’ 흥분을 하지만 나는 좀 다른 구석이 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꼭 그런 건 아닌데’를 마음속으로 되뇌곤 한다. 이건 그냥 내 생각이다. 광복 이후에 태어나서 이승만 시대부터 지금의 이명박 시대까지 쭉 살아오며 느낀 거다.우리나라 국민처럼 정치에 잘 대처하는 국민도 없고 우리나라 정치인처럼 혼신을 다해 정치를 잘하는 경우도 없다. 그 방면엔 단연 세계 최고다. 국회에서 방방 날며 치고받고 할 때도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 얼마나 애국심이 강하면 저토록 방방 날아다니며 팔다리를 휘두르실까.’ 동아일보 독자들이여! 믿어주시라. 나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 추호도 어느 한편에서만 들어주십사하는 생각이 전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보수도 오케이, 진보도 웰컴이다. 총선거가 코앞이다. 아무나 당선돼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하나같이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말 그대로 애국 청년들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 최고! 쭉쭉 나가라!가수 조영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