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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한 명 이상 있고, 10년 이내에 아이를 셋 이상 둔다고 자필 서약서를 내야 부부가 입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 아파트가 있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나가야 한다. 구병모 소설가(42·사진)는 새 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민음사)에서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고육책으로 내놓은 이 실험공동주택에서 벌어지는 네 가구의 공동육아를 비판적으로 그렸다.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1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구 씨는 “아이를 키우며 육아가 엄마에게 집중되는 현실을 경험하면서 공동육아가 가능한지 질문하게 됐다. 과거 정부에서 ‘가임기 여성 출산 지도’를 발표한 걸 보고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로 여기는 위정자들의 인식을 다시 확인하자 집필에 가속도가 붙었다”고 말했다. ‘위저드 베이커리’ ‘아가미’ ‘파과’ 등 환상성이 짙은 작품을 주로 선보여 온 그는 ‘네 이웃…’에서 현실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네 가정은 공동육아를 하지만 육아의 대부분을 떠맡는 건 엄마들이다. 약국에서 보조원으로 일하며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요진은 반찬 만드는 날 순서가 돌아오면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음식을 한다. 일거리가 없어 집에서 주로 지내는 남편은 요리를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마을 공동육아를 하는 이들이 낸 책을 봐도 엄마들 위주로 아이들을 키우더라고요. 마을이든, 가정이든 집중적으로 육아를 책임지는 사람이 늘 존재하죠. 한 사람이 ‘돌봄 노동’을 전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과 문제에 대해 절망을 갖고 쓴 작품입니다.” 네 부부가 참여하는 공동육아는 점점 균열이 생긴다. 그는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부당함과 불편함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낸다. 산부인과 검사대에서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말아야 하고 워킹맘은 두 배로 일하는 게 당연한 반면 전업주부의 노동은 평가 절하된다. 작품에서는 여성이 가임 기간에 낳은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하는 ‘출산율’ 대신 ‘출생률’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출산율은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의미로 여겨지기 때문이란다. 이런 의미에서 ‘네 이웃…’은 출산과 육아를 둘러싼 현실에 대한 우울한 자화상인 동시에 페미니즘 소설로도 읽힌다. “가정, 이웃을 결코 긍정적으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관념을 전복하는 게 문학의 역할이니까요.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도 단점이 많고 불안정하게 묘사한 건, 결함을 지닌 존재 그 자체가 인간임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1453년 비잔틴 제국 최후의 순간을 깊이 있게 담은 ‘다시 읽는 술탄과 황제’를 만화로 풀어냈다. 대군을 이끌고 온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와 천년 제국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맞선 비잔틴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벌인 치열한 공방전이 실감나게 펼쳐진다. 같은 사건을 술탄과 황제의 시각에서 각각 조명했다. 대규모 전투 장면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가운데 두 리더의 고뇌와 결단도 세밀하게 짚었다. 역사적 사건을 쉽고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저승에서 빨리 데리러 와야 하는디.” 87세의 외할아버지는 오늘도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백수인 28세의 겐토는 할아버지의 말이 진심인지 의아하다. 홀로 돈을 버는 엄마가 할아버지에게 던지는 말에는 점점 날이 선다. 병원에서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고 해도 온 몸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할아버지를 보던 겐토는 문득 할아버지의 간절한 외침을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가 진정 세상을 떠나길 원한다면 도와드려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간병일을 하는 친구에게서 과하게 간병을 하면 환자의 신체 기능이 쇠약해져 죽음에 이른다는 말을 들은 겐토는 할아버지를 밀착 간병하기 시작한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케이크와 차를 냉큼 갖다 드리고 빨래 개기, 청소도 대신 해드린다. 할아버지의 뇌세포를 둔하게 만들기 위해 겐토가 정성을 쏟는 모습은 한 편의 희극 같다. 한데 이런 겐토의 생각은 정면으로 펀치를 맞는다. 단기 요양시설에 간 할아버지가 젊은 여성 도우미의 부축을 받으며 여성의 몸을 더듬는 장면을 목격한 것. 욕조에서 목욕하다 균형을 잃고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할아버지를 일으켜 드리자 “죽을 뻔했어”라며 안도한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성욕을 느끼는 남자이며 생에 강렬하게 집착하고 있던 것이다! 고령의 가족과 함께 사는 이의 심리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안쓰럽다가도 짜증이 나고, 미안해지지만 다시 벌컥 화를 내게 되는 일상이 세밀화처럼 담겼다. 세대 갈등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가족의 입장에서, 또 사회의 일원으로서 고령자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건조하면서도 직설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분명한 건 시간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다는 사실이다. 원제는 ‘Scrap and Build’. 비능률적인 설비를 폐기하고 최신 시설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2015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소설가 이기호는 인터넷 중고나라 사이트에서 헐값에 나온 자기 책을 발견한다. 심지어 더 높은 가격의 책 다섯 권을 사면 자기 책을 무료로 준단다. 코멘트는 이렇다. ‘이기호/병맛 소설, 갈수록 더 한심해지는, 꼴에 저자 사인본.’ 광주에 사는 그는 책을 내놓은 이가 누군지 확인하려 KTX를 타고 경기 고양시 일산까지 달려간다. 작가의 실제 경험일까. 재기발랄한 이야기꾼의 새 소설집은 늘 웃음기 가득했지만 진지한 얼굴로 돌아온 사람 같다. 용산 참사 때 현장에 가지 않았던 크레인 기사, 돈을 돌려받으려 아파트 앞에서 말없이 피켓을 들고 있는 게 전부지만 점점 사람들에게 원인 모를 분노를 느끼게 만드는 남자, 불륜 사실을 고백했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남편을 죽인 여성…. 7개의 단편은 윤리와 수치, 모욕, 조건 없는 환대에 대해 차례로 질문을 던진다.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는 삶 속에서 당신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고. 묵직한 주제를 다루지만, 노련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솜씨는 단숨에 책을 읽어내게 만든다. 찌질한 속내가 드러나고, 한 편의 시트콤 같은 실랑이를 벌이는 풍경이 실감나게 펼쳐져 간혹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작가는 ‘이기호의 말’에서 다시 묻는다. 진실이 눈앞에 도착했을 때 얼마나 뻔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냐고. 그리고 말한다. 자신은 아직 멀었다고. 고해성사 같은 이 문장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노라니 첫 페이지부터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듯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그의 말처럼 책과 소설은 인간에게 윤리와 수치를 가르칠 수 없는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흡입력 있는 이야기의 향연은 세상과 나, 타인을 적어도 한 번쯤은 돌아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면 된 거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올해 4월 열린 남북 예술단 평양공연에서 가수 강산에가 ‘라구요’를 부르자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 ‘라구요’는 남한에서 많은 이들이 즐겨 쓰지만, 실은 중부 사투리다. 표준어는 ‘라고요’다. 복수표준어를 폭넓게 허용하는 북한에서는 둘 다 표준어, 즉 문화어다. ‘까발기다’(표준어 까발리다), ‘또아리’(똬리), ‘수리개’(솔개), ‘아지’(가지)도 남한에서는 사투리지만 북한에서는 문화어다. 동아일보 어문연구팀 기자인 저자는 이처럼 우리말과 글의 이모저모를 세밀하게 짚어냈다. 이 책은 2014년 1월부터 3년 3개월간 본보에 연재했던 ‘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를 엮었다. 순서에 관계없이 손 가는 대로 펼쳐 읽다 보면 상식이 하나둘 쌓인다. ‘헤이즐넛’은 우리말로 개암이다. 그러니까 헤이즐넛 커피는 ‘개암 커피’다. 저자는 표준어를 강요하지 않는다. 말의 주인은 언중(言衆)이기에, 생명력을 유지하는 말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 최상급의 의미로 많이 쓰는 ‘역대급’에서 ‘역대’는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여러 대 또는 그동안’을 뜻하기에 ‘역대 최고급’이 정확한 표현이다. 하지만 이 말이 계속 사용된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단다. ‘자장면’ 뿐 아니라 ‘짜장면’도 표준어가 됐지만 ‘짬뽕’은 상황이 좀 다르다. ‘짬뽕’은 표준어이긴 하지만, 사전에서는 듣기에도 생소한 ‘초마면’으로 순화해 사용하라고 권한다. 중국 음식에서 유래돼 그렇다는데, 서로 다른 것을 뒤섞었다는 뜻으로도 사용하는 ‘짬뽕’이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새삼 의아하다. 말과 글의 뿌리를 파고들고, 새로 태어난 말을 찬찬히 살피며 더 좋은 표현을 고민하는 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우리말의 묘미에 빠져든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다이어트 요리 전문가인 니모(본명 김지영) 씨가 ‘니모의 더 맛있는 다이어트 레시피’(동아일보사·1만6800원·사진)를 출간했다. 저자는 영양가 있고 맛도 좋으면서 칼로리는 낮은 음식을 간단하게 만드는 방법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유명해졌다. 저자는 각 장마다 주요 재료 5가지로 만든 레시피를 정리했다. 고구마, 닭가슴살, 견과류, 토마토, 잎채소로는 ‘으깬 고구마 샐러드’, ‘따뜻한 카프레제’ 등을 만들 수 있다. 얇게 두드려 편 닭가슴살로 고구마 스틱을 돌돌 말아 올리브 오일을 살짝 바른 뒤 팬에 익혀 방울토마토, 잎채소, 오리엔탈 드레싱을 곁들이면 ‘닭가슴살 고구마롤’이 된다. 통곡물빵, 달걀, 아보카도, 양파, 당근을 활용해 ‘아보카도 카나페’를 만드는 방법도 소개한다. 오트밀, 콩, 두부, 애호박, 해조류로는 ‘팽이버섯 콩국수’를 할 수 있다. 이들 요리는 모두 1인분 기준으로 500Cal 이하다. 혼밥족이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요리도 담았다. 완조리된 닭가슴살을 잘라 단호박죽과 다진 마늘을 넣어 섞은 뒤 모차렐라 치즈를 올리고 바질 가루를 뿌려 전자레인지에 1분∼1분 20초 정도 돌리면 ‘단호박 그라탕’이 완성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개미’, ‘제3인류’, ‘잠’, ‘나무’ 등으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1위로 꼽힌 저자(57)가 고양이로 돌아왔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 세계를 그린 것. 종교 갈등으로 테러가 수시로 벌어지는 파리에 사는 암고양이 바스테트는 도도하고 엉뚱하며 호기심이 많다. 인간이 자신을 지켜주고 사랑해 주기에 그들에게 자신은 신이라 여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다른 암고양이로 착각했을 때는 상스럽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되자 단박에 고상하다며 자긍심에 부풀어 오른다. 집사 나탈리는 물론이고 물고기, 개, 참새, 거미와도 소통하려 애쓰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어느 날 옆집에 사는 샴고양이 피타고라스를 만난다. 정수리에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 단자가 꽂힌 피타고라스는 인터넷에 접속해 인간의 언어는 물론 각종 지식을 섭렵했다. 피타고라스에게서 역사와 세상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빠져든다. 하지만 테러가 내전으로 격화되고 변종 페스트까지 확산되자 파리는 유령 도시로 변해 쥐가 들끓는다. 살던 집을 잃은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는 고양이 군대를 모아 쥐 떼와 격전을 벌이며 생존을 모색한다. 제3자의 눈을 통해 요지경 인간 세상을 꼬집는 작가의 장기는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파란색, 흰색, 빨간색이 섞인 깃발이 걸린 큰 건물(유치원)에서 나오는 아이들에게 불꽃이 나오는 막대기(총)를 겨눠 쓰러뜨린다. 나탈리는 기분이 좋을 때는 쓰담쓰담해 주지만 함께 사는 앙고라 수고양이 펠릭스의 땅콩(고환)을 떼버려 사랑도 나눌 수 없게 만든다. 초반에는 개성 넘치는 고양이들이 앙증맞은 웃음을 선사하다 전투가 벌어지고 사태가 급물살을 타면서 이야기의 흐름에 가속도가 붙는다. 인간과 고양이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역사도 흥미롭다. ‘내가 믿는 것이 곧 나다’,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내가 내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등 여러 번 곱씹어 보게 되는 문장 역시 눈길을 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헤어볼(몸을 다듬다 삼킨 털이 뭉친 것)을 뱉는 등 고양이의 특징과 움직임을 세밀하게 묘사해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들은 더 반가울 듯하다. 다만 인간뿐 아니라 개, 고양이, 곤충 등 여러 종(種)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수업하듯 직설적으로 표현해 공감하는 데 장애가 되는 점은 아쉽다. 바스테트가 득도(?)의 경지에 이르며 영혼으로 인간과 소통하는 설정도 지나치게 이상적인 느낌이 든다. 말하고 싶은 내용을 에둘러 썼다면 작품의 힘이 더 커졌을 것 같다. 고양이가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는 역사를 소개할 때 한국을 언급하고, 작품을 쓰는 동안 들었던 음악 리스트의 맨 위에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베토벤 소타나’를 배치한 데에서 한국 독자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원제는 ‘내일은 고양이’라는 뜻의 ‘Demain les chats’.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탈북자들의 한국생활을 생생하게 그리며 분단과 통일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장편소설 ‘생각하는 사람들’(산지니·1만4800원·사진)이 출간됐다. 정영선 소설가(55)는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2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분단의 벽을 넘은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차별과 생존의 어려움으로 또 다른 분단을 겪고 있다”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탈북자들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에서 주영은 간판 하나 없는 출판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 만난 국정원 직원에게 인터넷 댓글 달기 업무를 지시받는다. 대선 후 주영은 탈북자들의 남한 정착 교육기관에서 일하게 된다. 중국에서 유학하다 자유를 찾아온 수지, 축구를 하고 싶은 창주 등을 만난다. 돈이 필요해 선거 때마다 댓글 아르바이트를 하고, 북한에 있는 부모가 고위층일지 모른다고 여긴 국정원의 감시를 받는 등 탈북자들의 일상이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실제 정 작가는 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 사무소인 하나원 내 청소년학교에서 2년간 파견교사로 근무했다. 그는 “비 오는 날이면 아이들의 눈이 부어 있었다. 고향 생각에 울어서 그렇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경제협력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경제적인 측면 외에 함께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목사, 민주화운동가, 통일운동가. 늦봄 문익환 선생(1918∼1994·사진)을 수식하는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그는 시인이었다. 다음 달 1일은 선생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기념해 ‘새삼스런 하루’ ‘꿈을 비는 마음’ ‘두 하늘 한 하늘’ 등 5권의 시집과 신문, 잡지에 발표한 시 가운데 70편을 추렸다. 이 시들에는 선생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윤동주 시인과 절친한 친구였던 선생은 ‘스물아홉에 영원이 된’ 친구에게 ‘너마저 늙어 간다면 이 땅의 꽃잎들/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넌 영원한 젊음으로 우리의 핏줄 속에 살아 있으면 되는 거니까’라며 애틋해한다(‘동주야’). 칼날 같은 현실에서 살기 위해 공장 일을 하면서 내달리는 여성을 보며 가슴 아파하고(‘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 인간다운 삶과 민주화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령하듯 염원한다(‘전태일’). 통일을 갈망하는 ‘잠꼬대 아닌 잠꼬대’에서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주장하는 일이라고’ 외친다. 평범한 아들이자 가장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어머니를 그리며 ‘당신 생각을 하며 글썽이는/눈물이야 얼 리 있습니까’(‘어머니4’)라고 읊조리고, 아내와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인생보다 소중한 덤을 한아름 안겨준 데 대해 감사한다(‘덤’). 76년의 생애 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 11년 2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선생은 믿음으로 이를 견뎠다. ‘이른 새벽 창가에 불려 나와 샛별을 쳐다볼 때면/당신의 눈도 맑게 빛나겠지요’(‘당신은 언제나 내 뒤에 계십니다’) 신념을 실천하는 데 두려움도, 거칠 것도 없었지만 사람들을 향한 시선은 따뜻했다. 시대의 요구에 기꺼이 부응하며 뜨겁게 살았던 선생의 자취가 시로 피어났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꾸밈이 없다. 현학적인 말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도 가슴 한구석이 오래도록 찡하다. 생애 처음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이 쓴 시 100편을 김용택 시인(70)이 엮고 한 편 한 편마다 정겹고 솔직한 감상을 담은 ‘엄마의 꽃시’(마음서재·1만3500원)는 그렇다. 전북 임실군 진메마을 고향집에 사는 김 시인은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이들 시를 보니 가슴이 툭 터지며 가락이 흘러 들어와 한달음에 감상글 100편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내에게 한글을 배워 자신의 시를 더듬더듬 읽어내던 모습과 할머니들이 겹쳐졌다고 했다. “호미 들고 홀로 밭에 가며 학교 가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던, 그 어려운 시절을 살아내신 분들이잖아요. 이들 시는 우리 어머니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00편의 시에는 100개의 인생이 담겼다. ‘사십 년 전 내 아들/군대에서 보낸 편지/언젠가는 읽고 싶어/싸움하듯 글 배웠다/…떨리는 가슴으로/이제야 펼쳐본다//콧물 눈물/비 오듯 쏟아내며/사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조남순 ‘사십 년 전 편지’) ‘…사진 속 당신은 늘 청년인데/나는 어느새 당신을 영감이라고 부릅니다//…열심히 공부해서/정갈한 편지 한 장 써 보내겠습니다.’(이경례 ‘영감님께 보내고 싶은 편지’) 모진 시간을 견뎌왔지만 서러운 눈물보다 한글을 알게 됐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희망을 노래하는 모습에 그는 고개가 숙여졌다고 했다. 감상글에서 ‘배정동 시인님, 김금준 시인님, 김용녀 시인님, 박옥남 시인님’이라며 할머니들을 시인으로 호명했다. “살면서 일어난 일을 진솔하게 쓰면 시가 됩니다. 어머니가 ‘꾀꼬리 울음소리 듣고 참깨가 나고 보리타작하는 도리깨 소리 듣고 토란이 난다’고 말씀하시는데, 이게 시예요. 할머니들의 시가 바로 그렇고요. 그분들이야말로 진짜 시인이시죠.” 올해 70세가 되자 그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금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좋아 나이에 얽매이지는 않게 된다고 했다. 매일 아침 1시간 반 정도 강변으로 나가 산책하는 것도 삶의 기쁨 중 하나다. “자연이 변화무쌍해서 하루하루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요즘 찔레꽃이 많이 피어서 한참을 들여다봐요. 새벽에는 소쩍새와 뻐꾸기가 울더라고요.” 아내가 캐 온 쑥을 같이 다듬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쓸데없는 간섭’도 한단다. 이웃들을 대상으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작은 음악회도 연다. 사진과 산문을 모아 책을 내고 내년에 시집도 출간할 예정이다. “글 쓰고 싶은 분들에게 꼭 시골로 오라고 권하고 싶어요. 자연만 자세히 들여다봐도 쓸 게 무궁무진하거든요. 하하.”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가 타계했다. 향년 85세. 뉴욕타임스(NYT)는 고인이 울혈성심부전으로 숨졌다고 22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미국의 유명 문학평론가인 해럴드 블룸은 고인을 코맥 매카시, 토머스 핀천, 돈 드릴로와 함께 ‘미국 현대 문학의 4대 작가’로 꼽았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 1933년 미국의 폴란드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고인은 시카고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이후 프린스턴대, 펜실베이니아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품을 썼다. 고인은 유대인으로서 정체성을 탐구하기보다는 유대계 이민자들이 미국의 중산층이 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변해갔는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탐색했다. 1959년 펴낸 첫 소설집 ‘굿바이, 콜럼버스’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금기를 거부하고 욕망을 긍정하는 유대인 변호사의 성생활을 고백한 ‘포트노이의 불평’(1969년)은 과거 유대계 미국인 소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인물을 선보였다는 호평을 받으며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화자(話者)로 네이선 저커먼을 내세운 3부작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미국의 목가’, ‘휴먼 스테인’은 미국의 현대사가 개인을 어떻게 억압하고 파멸시켰는지를 집요하게 파헤침으로써 인간의 독선과 편견으로 가득 찬 현대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인기 있는 운동선수로, 미국 중상류층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유대계 남성이 1960, 70년대 사회 격변으로 파멸하는 과정을 그린 ‘미국의 목가’는 1998년 그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줬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라 미국에 관해 쓴다”는 고인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문 소설’로 꼽혔다. 또 다른 대표작인 ‘휴먼 스테인’은 피부색이 흰 콜먼 실크 교수가 흑인임을 숨기고 유대인 행세를 하며 성공과 명예를 거머쥐지만 말실수로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몰락하는 내용을 그렸다. 미국역사가협회상을 수상한 ‘미국을 노린 음모’를 비롯해 ‘에브리맨’ ‘네메시스’ ‘죽어가는 짐승’ ‘전락’ ‘울분’ 등 30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정영목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는 고인에 대해 “소설과 개인사가 구분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이는 소설을 쓴다는 것이 곧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계층, 인종, 민족, 국가에 내포된 폭력성과 배타성을 비판하고, 인간이 타자를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함은 결국 자기 파괴로 이어진다는 것을 엄중하게 경고했다. 고인은 자신의 삶을 미국 흑인 권투선수 조 루이스(1914∼1981)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평가했다. “내가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한강 소설가(48)의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두 번째 수상이 불발됐다. 한 작가는 2016년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로 한국인으로는 처음 이 상을 받은 지 2년 만에 ‘흰’(The White Book)이 올해 최종 후보에 올라 두 번째 수상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다. 맨부커상 심사위원회는 2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폴란드 작가인 올가 토카르추크(56)의 ‘플라이츠’(Flights)를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발표했다. ‘플라이츠’는 마음만 먹으면 모든 관계에서 곧바로 떠날 수 있는 현대인의 삶과 쓸쓸함을 그린 작품이다. 2016년 국내에서 출간된 ‘흰’은 강보, 배내옷, 달 등 세상의 흰 것들에 대해 쓴 짧은 글 65편을 담았다. 지난해 영국에서 출간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호흡기내과 전문의인 저자가 24년간 독감, 기관지 염증, 폐렴, 폐결핵 환자를 진료한 과정을 담았다. 기침은 통증처럼 몸에 이상이 있을 때 보내는 신호다. 만성 기침은 콧물이 목 뒤로 넘어가거나, 기관지 천식, 기관지염이 있을 때 나타난다. 기관지 확장증과 역류성 식도염도 요인이 될 수 있다. 기침이 정치 지형에 영향을 미친 적도 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생방송 선거 유세 중 무려 4분간 기침을 해 결국 방송이 중단됐다. 도널드 트럼프를 크게 앞서고 있었지만 심각하게 기침하는 힐러리의 모습은 미국 전역에 공개됐고, 건강 문제로 트럼프 측으로부터 집중 공격받았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폐암으로 숨지는 사람은 1만7400여 명에 이른다. 폐암이 사망률 1위인 것은 일찍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단순 흉부 엑스레이 사진으로는 조기에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 다른 암에 비해 공격적인 성질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저자 역시 아버지를 폐암으로 떠나보낸 아픈 기억을 털어놓으며 저선량 흉부 CT 검진을 통해 폐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2주 이상 기침을 계속하면 반드시 단순 흉부 사진 촬영을 하라고 당부한다. 모든 병을 알 수는 없지만 폐결핵 등 혹시 모를 질병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호흡기 질환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찬찬히 안내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몸으로 길어 올린 언어는 단단하다. 따뜻하고 찡한 여운이 오래 머문다. 고향인 전북 전주시에서 5년째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저자가 빚어낸 산문은 그렇다. 18년간 가구점을 하다 가게를 접고 48세에 관광버스를 2년 몰다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됐다. 최근 고대하던 1일 2교대제를 시범 운행 중이지만 격일제로 했던 하루 18시간의 ‘악마적인 노동’은 친절이 마음이 아니라 몸의 문제임을 깨닫게 했다. 배차 시간에 쫓기고 불법 주차 차량을 피해 곡예하듯 정류장에 버스를 댄다. 식사는 물론 용변 해결도 종점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야 한다. 갈 길이 급한데 무릎이 불편해 버스 계단을 뒤뚱뒤뚱 오르는 할머니를 보면 짜증이 치솟는다. 하지만 마음을 밝게 하는 말을 찾아냈다. “아직 젊고만 기어 올라온대요?”(저자) “아이고, 기사님 칠십이 넘어요.”(할머니) 다른 아주머니들이 “여자들 나이 먹으면 다 그리요”라며 한마디씩 거든다. 한참 만에 버스에 오른 할머니가 말한다. “젊었을 때 일을 하도 많이 히서 그리요.” 폐쇄회로(CC)TV 4대가 늘 돌아가고 있어 버스에 떨어진 10원짜리 하나도 가져가지 않는 버스기사일은 정직한 노동이라고 말한다. 석 달에 한 번 보너스에서 8만 원씩 내 운동장 사용료, 비품, 회식비로 쓰는 축구부원들을 보며 돈이 많아야 멋진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님을 알게 된다. 어릴 적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렸던 기억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작은 일에도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다스리려 노력하는 모습은 애잔하게 다가온다.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철학자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글을 읽다 보면 버스 운전기사들이 새롭게 보인다. 그들 역시 감정과 애환, 각각의 역사가 있는 존재임을 환기하게 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대선사 혜암 스님(1920∼2001)의 가르침과 삶을 기리는 회고록 ‘스승 혜암’(376쪽·1만6000원·김영사)이 출간됐다. ‘혜암선사문화진흥회’가 스님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제자와 재가자 등 25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남 장성군에서 태어난 혜암 스님은 17세에 일본으로 유학해 동서양의 종교와 철학을 공부하던 중 출가를 결심하고 귀국했다. 1946년 26세에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 출가해 인곡 스님을 은사로, 효봉 스님을 계사로 해 ‘성관’(性觀)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해인사 원당암 맨 위쪽에는 미소굴이 있다. 혜암 스님의 생전에 주로 머물던 곳으로 유품 전시 공간으로 바뀌었다. 미소굴 앞에는 혜암 스님이 제일 강조했던 ‘공부하다 죽어라’를 친필 글씨로 새긴 비가 서 있다. 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은 “혜암 스님은 출가한 지 백 년이 되었더라도 참선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은 법랍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손수 양말을 꿰매고 호미질을 하며 장작을 패고 풀을 베고 산길을 넓히셨다. 정진 아니면 일, 일 아니면 정진으로 일관하신 분”이라고 덧붙였다. 혜암 스님은 설법을 하는 대상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 한 번은 스님들이 태백산 정상 부근에 간 적이 있었는데 무당들이 굿을 하려고 자리를 펴고 있었다. 혜암 스님은 갑자기 무당에게서 목탁을 빌려오더니 “목탁을 봤으니 반야심경 한 번 하자”며 봉독을 시작했다. 이어 법문을 했다. 법문이 끝나자 무당들은 고개 숙여 큰절을 하며 “좋은 법문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하루 한 끼만 먹고, 눕지 않고 좌선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평생 실천한 혜암 스님은 제자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하며 수행을 당부했다. “용맹정진하다가 죽는 놈 못 봤어. 용맹정진하다 죽는다면 그보다 수지맞는 장사는 없어. 정진하다가 죽을 수만 있거든 죽어버려. 내가 화장해 줄 테니까.” 수행 뒷바라지도 즐거운 마음으로 손수 했다.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은 “정진하던 선방대중이 빵을 먹고 싶다고 하자 혜암 스님은 시장에 나가셔서 당시로는 먹기 힘든 고급 식빵을 사오셨다”고 말했다. 안거 중에 대중이 두부를 먹고 싶다고 하자 마을로 직접 내려가 두부를 가져온 적도 있다. ‘나는 새로 떨어뜨린다’는 이후락 일행이 동안거를 하던 지리산 칠불암에 찾아와 비구들이 정진하던 선방에서 자겠다며 방을 점거한 적이 있었다. 혜암 스님은 “당장 선방에서 나오라”며 호통 친 후 이후락 일행을 보살들이 지내던 방에 데리고 가 철야정진을 시켰다. 다음 날 이후락은 칠불암을 동양 제일 선원으로 만들어 주겠다며 필요한 것을 물었다. 혜암 스님은 일언지하에 이를 거절했다. 기력이 많이 쇠했던 70대 중반 혜암 스님은 선방에 놓여진 평상 위에서 용맹정진을 하다 떨어진 적도 있었다. 제자들이 가슴을 졸이며 ‘이제 정진을 쉬시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스님은 “끈을 가져와서 나를 평상에 묶어라”고 한 뒤 일주일간의 용맹정진을 마쳤다. 서릿발 같은 기세로 정진하고 청빈한 삶을 실천하며 진리를 찾았던 혜암 스님의 자취는 책 곳곳에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20대 초반에 쓴 생애 첫 소설(‘여름의 흐름’)로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고 50여 년간 꾸준히 작품을 선보인 저자(75)는 취미가 많다. 영화 감상, 낚시, 오토바이·사륜구동차 타기…. 여기까지는 별 생각 없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데 이건 어떤가. 샌드백 차기, 눈 치우기, 소각로 만들기, 소총 엽총 등 각종 총 쏘기, 지역별 물 맛 비교하기…. 저자는 신비롭고 고상한 이미지를 만들려는 생각은 일찌감치 내던지고 꾸밈없이 솔직하게 일상을 보여준다. 급하고 엉뚱하며 다소 냉소적인 성격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행글라이더를 배울 때는 ‘새라기보다는 모기와 비슷한 날개를 짊어지고 뛰어내리는 것이다’고 썼다. 눈 치우기는 중노동이지만 겨울 스포츠로 이만한 게 없다고 한다. 소각로가 자주 망가지자 직접 만든다. 당일 태워야 할 목록에는 ‘매 호 매 호 작문을 겨우 면할 정도인 소설을 왕창 싣고도 시치미를 떼는 문예지’도 있다. 낚시는 사색이 아니라 철저히 승부의 영역이다. 이기지 못하면 분통이 터진다. 송어 떼를 잡을 수 없게 되자 돌을 내던져 송어가 모조리 도망가게 만들 정도다. 수시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글쓰기와 삶에 대해 고찰한 문장을 보노라면 저자의 내공이 느껴진다. 오토바이 타기에 대해 ‘한 점을 응시하고 있으면 전복으로 이어지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눈은 뜨고 있어도 마음으로는 감고 있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고 고백한다. 소각로를 보며 ‘마음속 소각로에 온갖 체험을 던져 넣어 태우고, 그 불꽃을 열정으로 바꿔 부지런히 소설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다채로운 취미는 홀로 글을 써야 하는 소설가의 외로운 숙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 듯하다. 당신에게 취미란 어떤 의미냐고.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가 황금빛 모자이크에 영감을 받았던 이탈리아 라벤나의 산비탈레 성당, ‘햄릿’의 배경이 된 덴마크 코펜하겐 북쪽 크론보르성,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를 허무주의에 천착하게 만든 스위스의 호수마을 렌체어하이데…. 거장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주목을 받고 있다. 북이십일의 문학 브랜드인 아르테에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로 지난달 처음 출간된 ‘셰익스피어’(황광수), ‘니체’(이진우), ‘클림트’(전원경). 이 시리즈는 거장이 성장한 곳을 비롯해 모험을 하고 영감을 받은 곳을 소개함으로써 한 인간으로서 이들의 삶과 함께 작품을 이해하게 한 기획이다. 우리나라 작가 100명이 런던, 파리, 프라하, 빈, 피렌체, 리스본 등 12개국 154개 도시를 다니며 모두 100권의 책을 쓸 예정이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은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한 달 이상 취재여행을 다녀온 후 책을 썼다. 컬러 사진도 풍부하게 실어 이를 감상하는 즐거움도 크다. 원미선 북이십일 문학사업본부장은 “‘셰익스피어’ ‘니체’ ‘클림트’는 초판으로 각각 찍은 3000권이 모두 판매돼 한 달 만에 2쇄 제작에 들어갔다”며 “예상보다 호응이 훨씬 뜨거워 놀랐다”고 말했다. 조만간 ‘푸치니’(유윤종), ‘페소아’(김한민), ‘오스카 와일드’(최옥정)도 내놓을 예정이다. 시리즈가 완간되려면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독자들은 고급스러운 문화여행을 떠난 기분이라며 반기고 있다. 교보문고 홈페이지에는 ‘니체’를 읽은 독자들이 “여행을 하면 철학자가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철학과 여행이 이토록 잘 어울리다니”, “니체가 전해주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알프스가 그리워졌다”고 쓴 글이 올라왔다.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는 “셰익스피어를 전방위적으로 깊숙하게 파고든 느낌이다. 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이렇게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했다. ‘클림트’를 읽은 독자는 “클림트가 살던 장소와 시간을 공유하며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시리즈의 아이디어를 직접 내고 기획한 김영곤 북이십일 대표는 “고전과 명작에 대한 벽이 높다는 점에 착안해 거장이 몸담았던 공간을 새로운 접근 수단으로 선택했다”며 “현장을 누비며 전문가들이 발휘한 역량이 시리즈를 통해 쌓이고 독자들도 삶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우리의 소원은 전쟁’ 등 도발적인 문제 제기로 유명한 장강명 작가(43)가 이번에는 ‘시험을 통한 계급화’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최근 출간한 르포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에서 문학상과 공채를 포함한 시험제도가 한국사회의 계급을 형성하는 메커니즘을 파헤쳤다. 장 작가를 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11년간 기자생활을 한 경험을 발휘해 문학상 심사 현장과 삼성그룹 필기시험장, 사법고시 존치 반대 집회장 등을 누비며 60명 이상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는 “유사신분제 사회인 한국을 떠받치는 기둥은 시험”이라고 잘라 말했다. 문학상 공모전 4관왕(한겨레문학상, 수림문학상, 제주4·3평화문학상, 문학동네작가상)에 언론사 시험, 대기업 공채까지 합격했던 그가 아닌가. “한국에서 소설가가 되려면 왜 시험 같은 공모전을 통과해야 하는지 궁금해서 취재를 시작했어요. 부조리한 구조에서 제가 현재의 위치에 온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고요.” 그러나 현실은 예상과는 좀 달랐다. 문학상은 문단 권력자가 당선자를 고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이 살벌할 정도로 팽팽하게 설전을 벌이는 모습에 그는 “내가 그 작품을 썼다면 울면서 뛰쳐나갔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문학상용 작품’이 따로 있다는 것도 허상이었다. 그는 지금 한국사회의 시험제도는 온 나라의 젊음과 재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과거제도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나이는 평균 36.4세로, 10대 중반부터 공부했다고 치면 20여 년 걸린 셈입니다. 60, 70대까지 시험을 준비하는 장수생도 있었고요.” 19세기 후반에는 응시자가 20만 명을 넘었지만 최종 합격자는 한 해 30여 명이었다. 하지만 선발된 이들은 과학기술과 경제, 국제 정세에 취약했다. 그는 “중국의 과거제도를 받아들인 한국과 베트남이 근대화에 뒤처지고 과거제도가 뿌리 내리지 않은 일본이 승승장구한 역사가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제도를 둘러싼 풍경은 2011년부터 5년간 국가 공무원 시험 응시자 127만여 명에 합격자는 2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오늘날과 다르지 않다. 색종이를 접어 오린 뒤 펼치면 어떤 모양이 나올지 유추하는 대기업의 필기시험 문제, ‘쌈’이 바늘 몇 개인지 묻는 공무원 시험문제처럼 ‘선발’을 위한 시험이 공고하게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사법고시생이 로스쿨생을 바퀴벌레에 빗대 ‘로퀴벌레’라 부르고, 로스쿨생은 사법고시생을 ‘사시충’이라 비하하는 것도 시험을 두고 벌어지는 살벌한 현실이다. “시험이 유능한 사람을 못 뽑는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합격자는 영원히 합격자로, 불합격자는 영원히 불합격자로 구분 지으며 신분 격차를 너무 크게 가른다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는 문학상은 필요하지만 현 제도로는 튀는 작가나, 심사위원은 이해가 안 돼도 독자들이 환호하는 작가를 뽑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누군가를 발탁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크 저커버그, 조앤 K 롤링처럼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그는 현재 범죄 관련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다. 비인간적인 경제구조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그리는 소설집 ‘산 자들’(가제)에 담을 단편도 쓰고 있다. “소설만큼 제게 강렬한 짜릿함을 주는 건 없어요. 소설과 르포를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을 꾸준히 던지고 싶습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안미옥 시인(34)과 이주란 소설가(34)가 계간 ‘21세기 문학’이 주관하는 제25회 김준성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안 씨의 시집 ‘온’(창비)과 이 씨의 소설집 ‘모두 다른 아버지’(민음사). 상금은 시, 소설 각각 1000만 원. 시상식은 31일 오후 7시 반 서울 서대문구 시집전문책방 ‘위트앤시니컬’에서 열린다. 김준성문학상은 2007년 작고한 소설가이자 기업인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한 프랑스의 피에르 리시엥 프로듀서 겸 평론가(사진)가 5일(현지시간) 별세했다고 뤼미에르 기념관이 밝혔다. 향년 82세. ‘칸의 대부’로 불리는 고인은 칸 국제영화제 자문위원을 지냈다. 임권택, 이창동, 봉준호, 홍상수 감독이 칸 영화제에 진출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고 신상옥 감독의 영화 3편도 칸 영화제 클래식에 초대했다.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극장전’에서 공동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다. 고인은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해 한국 영화를 눈여겨 본 뒤 해외에 알리는 등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어 왔다. 고인은 한국 영화에 대해 “열정과 폭발력을 지녔다”고 평가하며 애정 어린 비판도 아끼지 않았다. 쿠엔틴 타란티노, 클린드 이스트우드 감독의 실력을 알아보고 이들이 칸 영화제 진출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