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림

손효림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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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효림 기자입니다.

aryssong@donga.com

취재분야

2025-11-29~2025-12-29
문화 일반52%
문학/출판23%
연극13%
교육3%
무용3%
산업3%
학술3%
  • [책의 향기]이스트런던에서 이 할아버지를 만난 적 있나요?

    헐렁한 재킷에 약간 짧은 바지를 입은 해맑은 표정의 할아버지가 이스트런던 거리를 느릿느릿 걸어 다닌다. 조지프 마코비치. 그는 평생 영국을 떠난 적이 없다. 하지만 런던에 온 호주인 미국인 브라질인 독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가지 못한 세계를 상상한다. 사진작가인 어스본은 2007년 우연히 마코비치를 만난 후 독특한 분위기에 끌려 사진을 찍다 친구가 됐다. 책은 1927년 이스트런던에서 태어난 마코비치의 생을 주제별 짧은 글과 사진으로 담아냈다. 솔직하고 천진하게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와 꾸밈없는 표정들을 보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가방에 리벳(큰 못)을 박는 일을 20년 동안 한 마코비치는 여자 친구를 사귄 적이 없다. 그래도 괜찮단다. 마차도 봤고, 카메라가 발명된 것도, 프로젝터도 봤기에. 무엇보다 배를 곯은 적이 없다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편견이 없다. 어릴 적에는 영국인만 있었는데 지금은 여러 나라 사람들과 섞여 있어 좋다고 한다. 길가 벽에 그림을 그리는 젊은이들을 보며 말한다. “멋져요. 좀 더 생기가 도는 것 같지 않나요?” 가끔 빠른 변화에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가구점 양장점 뮤직홀이 있던 곳에 들어선 거대한 경기장을 보며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놓는다. 슬플 때는 계속 걷는다. 울어봤자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으므로. 그에게 중요한 물건은 세 가지다. 열쇠, 버스카드, 벨트. 열쇠가 없으면 집 밖에 있어야 하고 버스카드가 없으면 집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바지가 흘러내리면 버스에 태워주지 않을 테니 벨트도 소중하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과 우주를 탐험했던 그는 2013년 눈을 감았다. 자그마한 체구의 그는 특별할 것 없지만 비우고, 성찰하고, 맑게 사는 법을 조용히 알려줬다. 그가 이 말을 들었다면 선한 큰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르겠지만.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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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호근 “남북문제 풀어갈 힘은 논리 아닌 상상력”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을 보니 고대와 미래를 오가더군요. 남북 간 대치 상황을 풀어갈 힘은 논리가 아니라 이런 상상의 미학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장편소설 ‘다시, 빛 속으로: 김사량을 찾아서’(나남)를 출간한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62)는 서울 종로구 관훈클럽 신영기금회관에서 12일 열린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사량(1914∼1950)은 일본어와 한국어로 하층민의 삶을 기록하며 민족의 정체성을 고민한 작가로, 분단 후 인민군 종군작가가 돼 한국 문학사에서 잊혀졌다. 김사량의 질문은 송 교수에게 지금도 유효하다. 김사량이 26세 때 쓴 단편소설 ‘빛 속으로’는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다. “20여 년 전에 김사량의 작품을 만났습니다. 슬프고 비장했습니다. 도쿄제국대 학생이었던 그가 느낀 비애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어요.” 이후 김사량이 쓴 종군기는 전투적 용어로 가득 차 있었다. “10년 만에 김사량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건지, 예술을 총으로 만든 사회주의 체제의 결과물인지…. 그 과정을 상상해 봤습니다.” ‘다시…’는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인 주인공이 아버지 김사량의 행적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를 통해 송 교수는 민족의 정체성 상실과 회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다만, 김사량에 대한 평가는 유보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학자가 왜 학문이 아니라 소설로 이를 풀어냈을까. “논리만으로는 이념적 대치 상황에 대한 해법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남북이 갈라지기 전의 상태, 민족의 원류를 찾아가다 보면 해결점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상상력이 필요한 지점이죠. 이런 의미에서 사회과학이 끝난 지점에 문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 교수는 평창 올림픽에 참가한 외국 선수의 어머니가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똑같더라”고 인터뷰한 것을 보며 무릎을 쳤다고 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부분이잖아요. 남북 문제는 이념보다는 민족적 동질성에 대해 생각해야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송 교수는 지난해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신헌을 그린 소설 ‘강화도’를 내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베이비붐 세대인 그는 베이비부머가 주인공인 소설도 2년 정도 후에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람의 내면을 개성 있는 언어로 그리는 게 어려우면서도 재미있어요. 외로운 작업이지만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낼 때는 행복해요. 올림픽 개회식에서 정선아리랑과 빛을 버무려 멋지게 표현했더라고요. 그런 종합적인 감성을 언어로 전환하고 싶습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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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평창 온 괴짜 할배 “이 아름다운 나라에 핵폭탄을?”

    고향을 떠나 본 적이 없는 핀란드 농부이자 나무 스키를 만드는 노인 그럼프가 생애 처음 비행기를 탔다. 목적지는 한국. 서울의 한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간 손녀 걱정에 밤잠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 뚱뚱한 김 씨 소년과 오렌지색 얼굴에 대걸레 머리를 한 양키 대통령이 핵폭탄을 둘러싸고 말다툼을 하는 곳이다! 핀란드의 유명 작가인 저자는 그럼프의 한국 여행기를 통해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선과 분단의 아픔, 평화에 대한 염원을 유머러스하면서도 가볍지 않게 녹여냈다. 저자는 책을 쓰기 위해 지난해 서울과 평창 겨울올림픽 시설 곳곳을 직접 찾아다녔다. 대표작 ‘괴짜 노인 그럼프’ 시리즈는 인구 500만 명의 핀란드에서 50만 권 이상 판매됐다. 그럼프는 스키 장인인 자신의 집을 대통령이 찾아와도 바쁜 날이라며 시큰둥하게 대할 정도로 주관이 뚜렷한(?) 인물이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에 오른 그럼프는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 소속의 남녀를 만나 올림픽 시설을 둘러보고 집에 초대받는다. 한국은 특이하다. 휴게소는 핀란드의 모든 휴게소를 합친 것보다 크고, 음악이 흐르는 버튼을 설치한 공중화장실은 안마시술소 같다. 음식은 그리 낯설지 않다. 소주는 물을 탄 보드카 맛이고, 막걸리는 핀란드의 발효주 ‘낄유’ 맛과 비슷하다. 피겨스케이트장에서 김연아 선수의 나비 날갯짓 같은 아름다운 몸짓을 보며 아내, 아들들과 TV로 겨울올림픽 경기를 함께 봤던 지난날을 추억한다. 한국에 오기 전 그럼프는 공중에 폭탄이 날아다니거나 길거리에 공격용 소총을 든 남자들은 없는지 염려했다. 이에 대한 손녀의 대답은 ‘쿨’하다. 한국 사람들은 북한의 위협을 속임수로 여기는 것 같고, 김 씨 가족은 늘 화가 난 외삼촌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단다. 뉴스로만 한국을 접한 외국인과 실제 한국에 살아본 외국인의 인식 차이를 선명하게 대비시키는 대목이다. 핀란드도 내전에 이어 소련과의 전쟁(1939∼1944)과 가난을 겪었고 단기간에 농업 국가에서 첨단 기술을 가진 국가로 성장했다. 그럼프는 한국을 찬찬히 접할수록 핀란드와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가슴으로 한국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럼프는 한국 여행을 마친 후 뚱뚱한 김 씨 소년에게 편지를 쓴다. 허풍은 당장 그만두고 나비, 비둘기, 산을 충분히 오랫동안 쳐다보라고. 이 모든 것을 수소폭탄 곤죽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한다. 평창올림픽이 예상치 않게 국제 정치의 각축장이 된 지금, 한반도의 평화와 성공적인 올림픽을 기원하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겨울 스포츠를 사랑하는 그럼프의 회상을 통해 역대 겨울 올림픽과 유명 선수들의 활약, 각종 에피소드를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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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폭력 부르는 문단권력 바로잡아야”… ‘미투’ 바람에 자성론 이는 문학계

    최영미 시인이 문단의 성폭력에 대해 폭로한 후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 기회에 잘못된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문단 권력이 만들어지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런 폭로가 있어야 세상이 변할 수 있다”, “철저히 수사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이문열 소설가가 1994년 펴낸 단편 ‘사로잡힌 악령’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환속한 승려인 시인이 작가를 지망하는 여성들을 농락하고, 순문학계에서 설 자리를 잃자 저항문학의 선두에 선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상황이 바뀌자 저항시인의 탈을 벗어던진다는 내용이다. 당시 이 작품은 가해자로 지목된 원로 시인이 속한 민족문학작가회의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고, 이 씨는 작품의 내용을 일부 수정했다. 현재는 절판된 상태다. 최 시인도 2005년 출간한 시집 ‘돼지들에게’를 통해 우리 사회 지식인의 위선과 탐욕을 비판했다. 문단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출판 관계자는 “여성을 성추행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던 원로 문인 가운데 일부는 반성하고 문단의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성폭력은 권력의 문제인 만큼 문학을 고시처럼 만들어 작품을 심사하는 ‘선생님들’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등단 연도별로 서열을 매기는 것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 시인은 가해자를 법적으로 처벌하고 피해자들이 상담과 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시인은 2016년 계간 ‘21세기 문학’ 가을호에 기고한 ‘질문 있습니다’를 통해 문단 성폭력을 고발했다. 일각에서는 최 시인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이승철 시인은 7일 페이스북에 “자기 체험을 일반화해서 문단 전체에 만연한 이야기로 침소봉대했다. 먼먼 소싯적 얘기를 현재형으로 매도하는 건 조금 납득할 수 없다”고 썼다. 이어 “미투 투사들에 의해 다수의 선량한 문인들이 도매금으로 매도되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문인들은 상황을 주시하면서도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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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미 시인, 문단 성추행 폭로 파장…“터질 게 터졌다”

    최영미 시인이 시 ‘괴물’을 통해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한 것을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문인들 사이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며 자성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반면 “문단 전체를 성추행 집단으로 오해하게 만들었다”며 말하는 이도 있다. 최 시인이 ‘괴물’을 발표한 계간 ‘황해문화’의 편집주간인 김명인 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는 7일 페이스북에 “부끄러운 문단을 해제하자”는 글을 올렸다. 김 교수는 “결국 나도 공범이거나 최소한 방조자였던 것이다. 이른바 문단밥을 먹고 살아온 모든 남성 작가들은 이 문제에 관한 한 전부 ‘잠재적 용의자’이거나 최소한 ‘방조자’였다고 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각종 인맥과 서열 관계, 그로부터 발생하는 크고 작은 미시권력들이 다른 사회집단과 다를 바 없이 촘촘하게 존재하면서, 동시에 ‘자율성’의 이름으로 은폐되거나 보호받는 이 ‘문단’이라는 ‘죽은 시인의 사회’는 이제 해체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대신 독립적인 문인들이 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류근 시인은 페이스북에 가해자로 지목된 원로 시인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했다. 류 시인은 “그의 온갖 비도덕적인 스캔들을 다 감싸 안으며 오늘날 그를 우리나라 문학의 대표로, 한국 문학의 상징으로 옹립하고 우상화한 사람들 지금 무엇하고 있나. 위선과 비겁은 문학의 언어가 아니다”고 말했다. 반면 문단 전체에 성희롱이 만연한 것처럼 비춰질까봐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인은 “이름 있는 남성 문인들은 모두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열심히 노력해서 명성을 얻은 여성 문인들은 성적인 요구에 응한 이들로 오해받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시인은 “가해자로 지목된 원로 시인은 작품을 통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을 고백하고 반성했다. 최영미 시인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상처를 받은 것은 안타깝지만 해당 원로 시인이 한국 문학에 기여한 공로와 그의 작품 세계는 별개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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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계도 ‘미투’…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는” 최영미 폭로詩

    성범죄 피해 사실을 적극 알리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문화계로도 확산되고 있다. 6일에는 최영미 시인(57)이 계간 ‘황해문화’ 지난해 겨울호에 게재한 ‘괴물’이라는 제목의 시가 온라인을 달궜다. 시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K의 충고를 깜빡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Me too/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로 시작한다. 이어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내가 소리쳤다/“이 교활한 늙은이야!”/감히 삼십 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고 썼다. 문제가 된 작가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삼십 년 선배’ ‘100권의 시집을 펴낸’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라며 암시적으로 표현했다. 당사자로 지목된 원로 시인은 “30년 전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후배 문인을 격려하는 취지에서 한 행동이 오늘날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최 시인은 이날 방송에 출연해 “구차한 변명이다. 상습범이다. 너무나 많이 성추행하는 것을 목격했고 피해자가 셀 수 없이 많다”고 반박했다. 최 시인은 이어 “(문단에서) 나를 성희롱 성추행한 사람도 수십 명이었다”며 “독신의 젊은 여성이 그들의 타깃으로, 성적인 요구를 거절하면 원고 청탁을 하지 않고 비평도 실어주지 않는 방식으로 복수해 작가 생명이 끝나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문단 내 성폭력 아카이브’ 트위터 계정에는 “문학이란 이름으로 입냄새 술냄새 담배 쩔은 내 풍기는 역겨운 입들. 계속해서 다양한 폭로와 논의와 담론이 나와야 한다” “그분 말고도 이미 거물, 괴물이 된 작가들의 행태는 끼리끼리 두둔하며 감춰져 왔습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성추문 전력이 있는 감태준 시인(71)이 신임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선출된 사실도 5일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감 시인은 2007년 중앙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논란으로 해임됐다. 하지만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감 시인은 해임처분 취소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이에 앞서 2016년에는 트위터를 통해 성폭력 문인을 실명으로 고발하는 일이 이어져 시인과 소설가 10여 명이 언급됐다. 영화계에서는 여성 영화감독 B 씨가 2015년 여성 영화감독 A 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최근 페이스북에 ‘#미투’를 달고 폭로했다. A 씨는 술에 취해 B 씨에게 유사성행위를 했고 뒤늦게 이를 안 B 씨는 준유사강간 혐의로 A 씨를 고소했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A 씨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A 씨를 6일 제명했다. 민주평화당 유성엽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실에 따르면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계 성폭력 실태조사를 한 결과 여성 응답자 391명 가운데 11.5%가 강제 성관계를 요구받았다고 답했다. 영진위는 김기덕 감독이 여배우의 뺨을 때리고 대본에 없던 베드신 연기를 강제했다는 폭로가 지난해 나오자 처음 영화계 전반의 실태 조사를 했다. 성폭력 피해 사례 가운데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 음담패설이 35.1%로 가장 많았다. 술을 따르게 하거나 옆자리에 앉도록 강요하고(29.7%), 가해자가 가슴 엉덩이 등 특정 신체 부위를 응시한 경우(26.4%)도 상당수였다. 일각에서는 사실 관계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2016년 문단 성폭력 폭로 당시 가해자로 지목된 박진성 시인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부산 동아대 손모 교수는 2016년 6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진범은 이후 밝혀졌다. 손효림 aryssong@donga.com·최고야·장선희 기자 정정보도문본보는 2018. 6. 3. 제목의 기사 등에서 ‘영화 뫼비우스에서 중도하차한 여배우가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하였다는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위 여배우는 김기덕이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으므로 이를 바로 잡습니다.}

    • 201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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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미 시인의 ‘괴물’은 누굴까…‘#MeToo’ 문화계로 확산

    성범죄 피해 사실을 적극 알리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문화계로도 확산되고 있다. 6일에는 최영미 시인(57)이 지난해 12월 계간 ‘황해문화’ 겨울호에 게재한 ‘괴물’이라는 제목의 시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달궜다. 시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K의 충고를 깜빡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Me too/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로 시작한다. 이어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내가 소리쳤다/“이 교활한 늙은이야!”/감히 삼십 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고 썼다. 문제가 된 작가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삼십 년 선배’ ‘100권의 시집을 펴낸’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라며 존재를 암시적으로 표현했다. 이 시에 대해 ‘문단 내 성폭력 아카이브’ 트위터 계정에는 “문학이란 이름으로 입냄새 술냄새 담배 쩔은 내 풍기는 역겨운 입들”이라며 “계속해서 다양한 폭로와 논의와 담론이 나와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분 말고도 이미 거물, 괴물이 된 작가들의 행태는 끼리끼리 두둔하며 감춰져 왔습니다”라는 글도 이어졌다. 이와 함께 성추문 전력이 있는 감태준 시인(71)이 신임 한국시인협회장에 선출된 사실이 5일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감 시인은 2007년 중앙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논란으로 해임됐다. 하지만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감 시인은 해임처분 취소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이에 앞서 2016년에는 트위터를 통해 성폭력 문인을 실명으로 고발하는 일이 이어져 시인과 소설가 10여 명이 언급되기도 했다. 영화계에서는 여성 영화감독 B 씨가 2015년 여성 영화감독 A 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최근 페이스북에 해시태그 ‘미투’를 달고 폭로했다. A 씨는 술에 취해 B 씨의 신체 일부를 만지며 유사 성행위를 했고 뒤늦게 이를 안 B 씨는 준유사강간 혐의로 A 씨를 고소했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A 씨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A 씨를 6일 제명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크고 작은 일들을 당해도 침묵할 수밖에 없던 이들이 하나둘 나서며 물꼬가 터졌다. 주변을 봐도 피해자들은 영화판의 힘없는 ‘을’들인 경우가 많아 씁쓸하다”고 털어놨다. 여성영화인모임은 이달 중 회의를 거쳐 영화인들을 위한 성평등센터를 열 계획이다. 채윤희 여성영화인모임 대표는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 성소수자 모두를 아우르고, 향후 추가로 피해 사례가 접수된 영화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사실 관계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2016년 문단 성폭력 폭로 당시 가해자로 지목된 박진성 시인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역시 가해자로 지목된 부산 동아대 손모 교수(당시 34세)는 2016년 6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진범은 이후 밝혀졌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 2018-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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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겉치레 없는 부코스키의 인생… 자유로움이란 이런 것

    체면 따위는 진작 걷어찬 인생이다. 술 잠 섹스 같은 본능적 욕구를 써내려 가는데 거침이 없다. 소설 ‘우체국’, ‘팩토텀’, ‘여자들’ 등으로 유명한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저자(1920∼1994)가 인터뷰와 낭독회를 위해 1978년 프랑스, 독일을 방문한 여정을 담은 이 에세이는 그렇다. 막노동을 하며 글을 쓴 저자는 작가로 유명해지자 유럽에 가게 된다. 하지만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프랑스 출판사에서 마련했다는 비행기표는 요금이 지불되지 않았고, 술에 절어 사는 그는 나흘 동안 인터뷰가 열두 건이나 잡혀 있는지 몰랐다. 오전에 역류하는 맥주를 삼켜 가며 인터뷰하는 그의 답변은 이렇다. “내 글은 내가 아는 한 어떤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뭘 중요하게 생각하냐고요? 좋은 와인, 원활한 배설, 아침에 늦게까지 늘어지게 자기.” 유명한 프랑스 TV 방송에 출연해 병나발을 불고 말을 마구 뱉어내다 진행자가 그의 입을 막고 “닥쳐요!”라고 소리치기에 이른다. 다음 날 프랑스 신문은 그에 대한 욕으로 도배된다. 물론 그는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좌충우돌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에피소드들이 툭툭 튀어나와 웃음이 터진다. 그는 어린 아이 같다. 니스 해변에서 상반신을 노출한 여성을 훔쳐보다 여자 친구 린다 리에게 핀잔을 듣지만 쿨하게 인정한다. 소심한 데다 상대방의 사생활을 존중하기에 대놓고 여자를 보지 못한다는 것. 낭송회 자리를 꽉 채운 독자들의 열기에 긴장해 린다의 손을 꼭 붙잡고, 성당 구경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내키지 않지만 기꺼이 따라나서는 모습은 천진하다. 당시 촬영한 사진 87장 속의 그는 장난꾸러기처럼 보이다가도 철학자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함께 실린 시에도 여행의 고단함과 자신을 향한 환호에 대한 어리둥절함, 린다에 대한 애틋함이 진하게 배어 있다. 세상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 충실했던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비할 데 없는 자유로움에 어느새 젖어든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원제는 ‘Shakespeare Never Did This’.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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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글로 베풀었다는 건 오만” 시인의 손사래

    “나눌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하고 있어요.” 최근 만난 유안진 시인(77·사진)의 말이다. 산문집 ‘지란지교를 꿈꾸며’, 시집 ‘다보탑을 줍다’ ‘둥근 세모꼴’ 등 글을 통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다독여온 그가 아닌가. 그는 고개를 저으며 “글로 무언가를 베풀었다고 여기는 건 오만”이라고 말했다. 그가 세상과 나눈 건 적지 않다. 상금과 인세 등을 모아 아프리카에 우물 10개를 만들었다. 강연 요청이 들어오면 대중교통을 몇 번씩 갈아타며 먼 곳까지 다녀온다. 이유는 같다.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하느님이 이 땅에 나를 보낸 이유를 매일 여쭤보고 있다”고 했다. 더 많이 가지려는 이들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그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의 산문집 ‘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가 최근 출간됐다. 감사하고 기쁠 때뿐 아니라 화나고 짜증나는 순간까지 일상의 소회를 솔직하게 담았다. 시인은 손사래 치지만 그의 글은 위로가 됐다. 이전부터 그랬듯이.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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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차기 교황 뽑는 자리, 반전의 결과는?

    성역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는 일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당선을 놓고 숨 가쁜 접전이 벌어지는 선거 역시 그렇다.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는 이 두 가지 요소가 완벽히 결합돼 있다.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된 ‘에니그마’ ‘아크 엔젤’을 비롯해 ‘폼페이’ ‘임페리움’ 등으로 유명한 저자의 선택은 이번에도 영리했다. 교황이 선종하자 전 세계에서 온 추기경 118명이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에 모여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 회의를 시작한다. 냉정하고 지적인 진보주의자 벨리니 추기경(이탈리아인), 다양성을 중시하는 아데예미 추기경(나이지리아인), 행사 때 라틴어 사용을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수주의자 테데스코 추기경(이탈리아인), 두뇌 회전이 빠르고 언론 매체를 잘 활용하는 트랑블레 추기경(프랑스계 캐나다인)이 유력한 후보로 부상한다. 선출 과정은 엄숙하게 진행되지만 추기경들도 인간이다. 출신 대륙별, 이념 성향별로 특정 추기경을 지지하는 집단이 형성된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의미심장하게 해석된다. 선종한 교황의 빡빡한 일정을 모두 공개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젊은 추기경을 선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콘클라베 관리 임무를 맡은 로멜리 추기경이 준비한 기도문 대신 즉석에서 감명 깊은 기도를 올리자 교황을 꿈꾼다는 말이 퍼진다. 투표가 거듭되고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마다 긴장감이 고조된다. 후보군의 범위가 좁혀지는 듯하지만 돌발 변수가 터져 나오고, 순위는 요동치기 시작한다. 예측할 수 없는 전개는 궁금증을 자아내며 결말을 확인하게 만든다. 소설이지만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콘클라베의 전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해 비밀의 공간을 엿보는 듯한 재미도 쏠쏠하다. 어떤 체격의 교황이 선출될지 알 수 없기에 교황용 제의와 어깨 망토를 대, 중, 소 세 가지로 준비하고 단화도 사이즈별로 10여 개를 갖춰놓는다는 것. 더불어 종교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며 믿음과 실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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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30000호]황순원 등 ‘문단의 별’ 무더기 배출한 동아신춘문예

    ‘국내 최초, 그리고 최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수식어다. 동아일보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1925년 신춘문예 제도를 도입했다. ‘임꺽정’으로 유명한 홍명희 당시 편집국장 겸 학예부장이 주도했다. 이에 앞서 1923년부터 문예작품 현상 공모에 나섰다. 이후 신춘문예가 정기적인 공모제도로 자리 잡았다. 신춘문예는 첫해부터 동요 ‘낮에 나온 반달’ ‘퐁당퐁당’의 가사를 쓴 아동문학가 윤석중(동화 ‘올빼미의 눈’)을 발굴했다. 1933년 황순원(시)에 이어 1936년에는 서정주(시), 김동리 정비석(이상 소설)이 한꺼번에 수상했다. 한수산 안도현 장정일, 아동문학가 이오덕 정채봉, 극작가 이강백 역시 본보 신춘문예 출신이다. 현기영 조성기 정진규 오탁번 송기원 남진우 역시 본보에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본보 신춘문예가 명실상부한 문학계 스타들의 등용문이 된 것이다. 신춘문예는 변화와 도전에도 과감하게 나섰다. 1979년 중편소설 부문을 신설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편 부문 첫 당선자는 ‘새하곡’을 쓴 이문열이었다. 이문열은 “고전만을 강조하던 다른 신문의 신춘문예 심사와 달리 동아일보는 실험적인 정신의 소설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시대의 흐름에도 한 걸음 앞서갔다. 세기말 젊은이들의 허무주의적 감성을 대변한 기형도를 1985년 ‘안개’로 당선시켰다. 1995년에는 중편 부문에 은희경의 ‘이중주’, 전경린의 ‘사막의 달’이 공동 당선됐고, 이들은 세차게 몰아친 여성 작가 돌풍의 주역이 됐다. 함정임 정끝별 조경란 등도 본보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며 문학계의 변화를 이끌었다. 2000년대 들어 당선된 천운영 윤성희 박주영 김언수 손보미도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본보 신춘문예 출신의 영화, 미술, 방송계 인사도 많다. 이창동 감독은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됐고 유홍준 김병종은 미술평론부문, ‘용의 눈물’의 작가 이환경은 시나리오 부문으로 등단했다. 자매지인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서는 박완서를 비롯해 남지심 이남희가 배출됐다. 한편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는 심훈의 ‘상록수’가 당선됐다. ‘상록수’는 그해 9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며 농촌계몽운동의 횃불이 됐다. 은희경은 “아무 인맥도 없는 사람이 무턱대고 할 수 있는 게 신춘문예”라고 말했다. 전경린은 “역대 당선자 이름을 확인하며 황금 계보에 놀랐다”고 감탄했다. 2018 신춘문예에도 모두 2260명이 6980편의 작품을 응모해 뜨거운 열기가 계속되고 있음을 증명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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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스시 연대기’ 저자 러귄 별세

    판타지 문학의 대가인 미국 작가 어설러 K 러귄(사진)이 22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이 쓴 ‘어스시 연대기’는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와 함께 세계 3대 판타지 문학으로 꼽힌다. 고인의 작품은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으며 전 세계에서 수백만 권이 판매됐다. 단편집 ‘바람의 열두 방향’에 수록된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 나오는 가상도시 ‘오멜라스’는 가수 방탄소년단의 ‘봄날’ 뮤직비디오에 등장해 국내 팬들의 눈길을 끌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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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극한의 추위… 수면 위로 드러난 인간의 날선 본성

    시작부터 독하다. 사내들은 술집에서 상스러운 욕설을 주고받고, 몸싸움을 벌이다가 벽돌로 머리를 가격해 피가 뿜어져 나온다. 한 사내는 소년을 두들겨 팬 후 아무렇지 않게 성폭행한다. 1859년 영국에서 출발해 북극으로 고래잡이를 나간 포경선에 탄 두 남자 섬너와 드랙스를 중심으로 생존을 둘러싼 몸부림이 펼쳐진다. 전직 군의관인 섬너는 선박의, 원초적 욕구를 해결하는 데 도덕이나 법 따위는 안중에 없는 드랙스는 작살수다. 선장 브라운리는 3년 전 난파 사고로 선원들이 죽거나 불구가 된 배에서 멀쩡하게 살아남은 유일한 인물이다. 초반 항해는 순조롭다. 북극의 얼음을 뚫고 바다표범과 고래를 사냥한 뒤 칼로 배를 갈라 순식간에 지방층을 떼어내는 광경은 영상을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하지만 연이어 사건이 터진다. 성폭행을 당하고도 범인에 대해 입을 다무는 사환 소년이 시체로 발견되며 선원들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게다가 배의 항해 목적은 따로 있었다. 고래잡이 수익이 줄어들자 선주 백스터가 막대한 보험금을 타기 위해 선장, 일등항해사와 짜고 사고로 위장해 배를 가라앉히기로 한 것. 그러나 일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소년의 죽음을 시작으로 선원들 간에 충돌이 벌어지고, 이내 살인으로 치닫는다. 피부를 새카맣게 얼려버리는 극한의 추위 속에 목숨을 부지하려 사투를 벌이는 사내들의 행동은 짐승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아니, 짐승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자비하다. 작가는 한계 상황에서 제어 장치 없이 터져 나오는 인간의 폭력성과 생존 본능을 치밀하게 써내려갔다. 휘몰아치듯 내달리는 전개는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다. 돌발 상황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결말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눈을 떼기 어렵다. 책을 덮고 나면 찐득한 소금기에 전 사내들의 체취와 비릿한 피비린내가 한동안 코끝을 맴도는 듯하다. 긴 하드코어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다고 할까. 인간이란 존재의 바닥 깊숙한 곳까지 현미경을 바짝 들이댄 소설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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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완서를 다시 읽다’ 산문집 재출간… ‘박완서를 보고 듣다’ 25일 낭독 공연

    박완서 소설가(1931∼2011·사진)의 7주기를 추모하는 낭독 공연이 열리고 산문집 2권도 재출간됐다. 문학동네는 박 작가의 7주기(22일)를 앞두고 산문집 ‘한 길 사람 속’과 ‘나를 닮은 목소리로’를 다시 펴냈다. 박완서 산문집 시리즈 8, 9권으로 작가가 1990년대에 쓴 글이다. 박 작가의 맏딸인 호원숙 작가가 원고를 감수했다. 표지는 박 작가의 유품 사진을 이미지로 만든 것으로, ‘한 길…’은 손녀 김지상 씨가, ‘나를…’은 호 작가가 촬영했다. ‘한 길…’에서는 1990년대 초중반 호황기에 대한 소회와 유럽, 아프리카, 중국 등을 여행하며 느낀 감상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나를…’은 1998년 출간한 ‘어른 노릇 사람 노릇’을 다시 편집한 책이다. 작품 세계의 뿌리가 된 고향을 비롯해 가족, 변해가는 세상을 한층 깊어진 시선으로 바라봤다. 외환위기가 닥친 후 출간돼 당시 많은 독자들에게 위로를 건넸다. 장편소설 ‘그 남자네 집’을 주제로 한 동명의 낭독 공연도 25일 오전 10시 반 경기 구리시 구리아트홀 코스모스대극장에서 열린다. 이 소설은 6·25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서울을 배경으로 첫사랑의 아스라한 감정을 그린 작품이다. 낭독 공연은 노래와 음악이 가미돼 뮤지컬처럼 진행된다. 무료이며 초대권이 있어야 입장할 수 있다. 초대권은 구리시 인창도서관 안내데스크에서 1인당 최대 4장까지 선착순으로 배포한다. 구리시는 2012년부터 매년 박 작가를 추모하는 낭독 공연을 열고 있다. 구리는 박 작가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이다. 구리시는 2020년 개관을 목표로 박완서문학관을 설립할 예정이다. 호 작가는 “많은 분들이 어머니를 기억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어머니의 글을 다시 읽을 때면 예전에는 몰랐던 의미를 발견하고 어머니가 글 속에서 살아 계신다는 걸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공연 문의 031-550-8456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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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쓰는 작가로 한국문단 빛내주길”

    “아파도 슬퍼도 글을 썼던 순간의 감각이 지금도 제 몸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이를 기억하며 열심히 밥을 먹듯 시를 쓰겠습니다. 지쳐 쓰러지더라도 종이 위에 끈질기게 머무르겠습니다.”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새해를 시작한 변선우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16일 열렸다. 변 씨를 비롯해 최유안(중편소설) 강석희(단편소설) 신준희(시조) 유지영(동화) 이수진(희곡) 김경원(시나리오) 김예솔비(영화평론) 김정현 씨(문학평론) 등 9명이 상패와 상금을 받았다. 수상자들은 벅찬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수진 씨는 “동경했던 선생님들 앞에서 수상 소감을 말할 수 있게 돼 정말 감사하다. ‘성덕’(성공한 덕후)이 됐다”며 활짝 웃었다. 김정현 씨는 “텍스트는 나 자신을 확인시켜주는 유일한 고유함으로, 그들과 함께 울었다”고 말했다. 수상자들은 지금부터 시작임을 잘 알고 있었다. 김경원 씨는 “활자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제 글이 멋진 영상으로 춤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예솔비 씨는 “글쓰기는 늘 미완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무한한 생성과 변화의 현장”이라며 “영화가 제게 줬던 위안의 감각을 떠올리며 아름다운 미완성을 위해 계속 써 나가겠다”고 말했다. 작가로서의 각오도 다졌다. 강석희 씨는 “등단을 소망했지만 오래 쓰는 작가가 되겠다는 마지막 꿈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신준희 씨는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과 같은 시조를 잘 지을 수 있도록 쓰고 또 쓰겠다”고 밝혔다. 유지영 씨는 “빠르게 변하는 사회와 아이들에게 발맞춰, 살아있는 동화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인 구효서 소설가는 격려사에서 “등단할 때의 붕 뜬 이 기분을 평생 기억하며 버텨야 한다. 내가 대단한 작품을 쓰고, 내 글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고 끝까지 작품 활동을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그는 웃으며 “어서 와, 문단은 처음이지?”라고 환영 인사를 건네 폭소를 자아냈다.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주간은 축사에서 “당선자들의 재능과 끈기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며 “과감한 도전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한국 문단에 싱그러운 활력을 불어넣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심사위원인 오정희 은희경 소설가, 김혜순 시인, 조강석 문학평론가, 이근배 이우걸 시조시인, 송재찬 동화작가, 이정향 영화감독, 주필호 주피터필름 대표, 조정준 영화사 불 대표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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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통 속에서 더 빛나는 삶… 그가 떠난 자리, 글이 남았다

    “터무니없는 죽음도 악다구니 같은 억센 슬픔의 순간이 지나가면 곧 일상이 돼.” 정미경 소설가(1960∼2017)의 유고 소설 ‘당신의 아주 먼 섬’(문학동네)에서 중년의 정모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해 1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작가가 남은 이들에게 건네는 말 같다. 고인의 1주기(18일)를 맞아 장편소설 ‘당신의…’와 소설집 ‘새벽까지 희미하게’(창비)가 나란히 출간됐다. ‘당신의…’는 습작 원고 더미에 묻혀 있다 고인의 작업실을 정리하던 남편 김병종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65)가 발견해 펴낸 것. 섬들이 포도알처럼 흩어져 있는 풍경이 펼쳐진 한 섬에서 상처 입은 이들이 치유되는 과정을 생동감 있게 그렸다. 오토바이 사고로 친구를 잃은 고교생 이우는 어머니 연수의 고향인 섬에서 연수의 친구 정모와 지낸다. 둘은 바다를 보며 느릿느릿 걷고, 버려진 소금창고를 도서관으로 만들며 차츰 힘을 얻는다. 간암 진단을 받은 지 한 달 만에 눈을 감은 고인은 이 작품을 쓸 때 몸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삶과 죽음을 응시한 문장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문다. “죽는다는 건 영혼이 우주 저 멀리로 날아가는 게 아니라 데칼코마니처럼 여전히 곁에 있는 것 같아”라고 읊조리는 이우의 말이 그렇다. ‘어떤 하루는, 떠올리면 언제라도 눈물이 날 것이라는 걸 미리 알게 한다’는 문장은 빛나는 순간을 돌아보는 고인의 모습을 그려 보게 만든다. 김 교수는 발문을 통해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토해냈다. 그는 15일 전화 인터뷰에서 ‘당신의…’ 원고를 발견하고도 출간을 망설였다고 했다. “정 작가는 문장을 숱하게 고쳐 쓴 뒤에야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는 완벽주의자예요. 글을 출력해 책 더미에 뒀다는 건 수정하려 했다는 걸 의미해요. 갑작스레 떠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지만요….” 고민 끝에 책을 내기로 한 건 인생 자체가 미완이기에 예술 역시 미완인 채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정 작가는 펄쩍 뛰며 고치려고 했겠지만 색다른 시도라고 여기고 출간했어요. 아마 곁에 있었다면 곱게 눈을 흘긴 채 따라 줬을 거라 생각해 봅니다.” ‘새벽까지…’는 ‘못’, ‘목 놓아 우네’, ‘장마’ 등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 5개를 묶었다. 더 많이 소유하려다 좌절한 남성과 처음부터 욕망을 내려놓은 여성(‘못’), 잘못 보낸 문자메시지로 이어져 깊은 고민까지 털어놓는 남녀(‘목 놓아 우네’) 등 아등바등 살아가고, 때로 속물스럽기도 한 이들을 통해 인간과 삶의 복잡다단한 이면을 정교하게 짜내려갔다. 추모 산문과 해설에서 문인들은 ‘이데올로기를 현실의 삶으로 끌어들여 생생한 피와 살을 부여할 줄 아는 작가’(정지아 소설가), ‘삶의 세부를 치밀하고 견고하게 새겨 넣는 작가’(백지연 문학평론가)로 고인을 기억했다. 김 교수는 18일 서울 서초구의 작은 교회에서 가족들과 조용히 추모 예배를 올릴 예정이다. 당초 문학, 미술을 결합한 전시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작업을 할수록 사무치는 그리움에 너무 힘겨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당신의…’에서 정모는 염전의 소금 꽃을 가리키며 말한다. “징허게 모인 기운이 터져 나오면 그게 꽃이다.” 고인은 온 힘을 다해 글을 자아냈다. 그의 작품들은 그렇게 터져 나왔다.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처럼.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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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전쟁의 기억은 삶에 어떤 자국을 남기는가

    전쟁은 인간의 본성을 슬플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만든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포로로 잡혔다 살아남은 후 영웅이 된 외과의사 도리고를 중심으로 전쟁 속에 던져진 인간 군상을 처연하게 비춘다. 저자의 아버지가 실제 일본군 전쟁포로로 철도 건설에 동원됐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이야기는 일본군 포로로 태국∼미얀마를 잇는 ‘죽음의 철도’ 라인에서 참상을 겪었던 청년 도리고와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후 명성을 얻어 존경을 받는 70대 도리고의 현재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전장으로 떠나기 전 도리고가 고모부의 새 아내 에이미와 은밀하게 나눈 사랑도 비중 있게 그렸다. 비가 쏟아지는 정글에서 벌거벗다시피한 채 나무를 베어내고 철도가 들어설 길을 닦는 포로들. 공사 기일을 맞추기 위해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극한의 작업에 내몰린 이들은 온갖 질병에 걸려 수없이 죽어나간다. 도리고는 시체를 묻을 구덩이를 파기보다는 살아 있는 포로들에게 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병든 이들을 돌보는 것도 의사인 도리고의 몫이다. 포로들은 이런 도리고를 ‘큰형님’이라 부르며 의지하고 따른다. 하지만 도리고는 성자가 아니다. 포로들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스스로도 잘 안다. 부하들에게 등 떠밀려 희망의 상징이 된 도리고는 어렵게 확보한 쇠고기 스테이크 앞에서 흘러내리는 침을 간신히 삼키며 이를 병사들에게 내준다. 그렇게 신화 하나를 추가하려 애쓴다. 도리고는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자신을 향한 칭송에 “미덕은 잘 차려입고서 갈채를 기다리는 허영이었다”고 건조하게 내뱉는다. 그는 공개석상에서는 위스키에, 비밀스러운 곳에서는 여자에 탐닉하는 남자일 뿐이기에. 에이미와 함께한 격정의 순간과 사회적으로 성공한 도리고의 현재 모습은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였던 철도 공사 현장의 비극을 또렷하게 부각시킨다. 군인에게 구타당하는 포로를 보며 다른 이들은 동료가 죽든 매질이 끝나든 어느 쪽으로든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전에는 저녁 식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끔찍한 장면들을 묘사한 전쟁소설이지만 감정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도록 자극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세상과 삶은 모순덩어리임을 시종일관 담담하게 써내려갈 뿐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볼 때 목이 칼로 자르기 쉬운지 어려운지부터 파악하는 고타 대령은 나카무라 소령과 함께 밤이면 일본 시 하이쿠를 읊으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살기 위해 일본군 밑에서 부역한 조선인 최상민은 전쟁이 끝나자 처형된다. 반면 고타와 나카무라는 처벌을 받지 않은 것은 물론, 선(禪) 명상가가 되고 노인에게 식사를 가져다주는 봉사활동을 하며 ‘착한 사람’으로 지낸다. 전쟁의 기억은 도리고를 끝없이 철도 공사 현장으로 데려다 놓는다. 작가는 전쟁으로 상징되는 상처가 인간에게 어떤 자국을 남기는지를 응시한다. 그리고 말한다. ‘행복한 사람에게는 과거가 없고 불행한 사람에게는 과거만 있다.’ 2014년 맨부커상 수상작. 원제는 ‘The Narrow Road To The Deep North’. 그림을 통해 19세기 영국 식민지였던 호주의 잔인한 현실과 기억을 조명한 저자의 장편소설 ‘굴드의 물고기 책’도 함께 출간됐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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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단편소설의 시대… 갈림길에 선 중편

    “중편소설을 쓸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문예지에서 청탁하는 건 대부분 단편소설이니까요.” 처음 쓴 중편소설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로 제42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손홍규 소설가(43)의 말이다. 한국은 단편소설이 특히 발달한 나라로 꼽힌다. 권영민 문학평론가(단국대 석좌교수)는 “외국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단편을 잘 쓰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서사적인 구조를 갖춰 좀 더 긴 분량으로 단편을 많이 쓴다”고 설명했다. 외국의 단편은 반짝이는 순간을 포착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에서는 밀도 있는 이야기를 담으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 중편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짧은 분량의 책을 선호하는 독자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중편이 각광받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반면 장편과 단편 사이에서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고 예상하는 이도 있다. 손 씨는 “중편을 써보니 단편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미학적 시도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들은 ‘꿈을…’에 대해 “장편이 추구하는 서사의 역사성과 단편에서 강조하는 상황성을 절묘하게 조합하며 중편다운 무게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여러 장르에서 다채로운 작품이 나올 때 독자들의 선택지도 넓어진다. 중편이 한국 소설의 토양을 풍요롭게 만들지 그 미래가 사뭇 궁금해진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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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민가 두 여성의 애증에 비친 이탈리아 민낯

    이탈리아의 유명 소설가 엘레나 페란테가 쓴 ‘나폴리 4부작’의 마지막 책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한길사)가 최근 출간됐다. 두 여성인 엘레나, 릴라의 유년기와 사춘기(‘나의 눈부신 친구’), 청년기(‘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중년기(‘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를 그린 1∼3권에 이어 4권은 노년기를 담았다. ‘나폴리 4부작’(사진)은 엘레나와 릴라의 우정과 애증을 비롯해 여성들이 겪는 모순과 보편적 경험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강렬한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며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폴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엘레나와 릴라는 절친한 친구인 동시에 라이벌이다. 엘레나는 똑똑하고 매혹적이지만 악한 면도 지닌 릴라와 마음을 나누다가도 갈등을 겪는다. 나폴리를 떠난 엘레나는 작가로 성공하고 명문가 출신인 대학교수와 결혼한다. 나폴리에 남은 릴라는 공장에서 일하며 아이를 키운다. 어린 시절을 공유했지만 각자 다른 길을 갔던 둘은 나폴리에서 다시 만난다. 이들은 우정을 회복하지만 동갑내기인 두 딸들을 비교하게 되면서 어린 시절 느꼈던 복잡한 감정 속으로 빠져든다. 격동의 이탈리아 근현대사도 엘레나와 릴라의 삶과 맞물리며 펼쳐진다. 개개인의 내면을 깊숙하게 파헤치는 가운데 폭력과 부패, 불평등에 짓눌려 가는 사회의 민낯도 가감 없이 그렸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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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환 추기경 2월 9주기… 경북 군위에 기념공원 개장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을 기리는 공원이 다음 달 16일 선종 9주기에 맞춰 개장할 예정이다. 7일 경북 군위군에 따르면 김 추기경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군위읍 용대리에 조성하는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 공사가 최근 마무리됐다. 공원 규모는 3만여 m²다. 공원은 김 추기경이 어린 시절 살던 옛집과 추모 전시관, 추모 정원, 십자가의 길, 평화의 숲, 잔디광장 등으로 구성됐다. 옛집에 딸린 우물과 옹기를 굽던 옹기굴도 복원했다. 공원에서 약 500m 떨어진 옛 군위초등학교 용대분교 자리에는 청소년 수련원이 새로 들어섰다. 대구에서 태어난 김 추기경은 네 살 때 가족과 함께 군위로 이사해 보통학교를 다니며 약 8년간을 살았다. 추기경은 1993년 폐가가 된 옛집을 찾아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추기경이 어릴 적 살던 집을 직접 그린 뒤 ‘김수환 옛집’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2018-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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