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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관심이 옷(패션)에서 음식(요리), 요즘엔 집(인테리어)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다음 순서는 바로 일상 속 공예품이 라고 생각합니다.” 김태훈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 원장은 18일 개막하는 ‘2020 공예주간’의 주제인 ‘생활 속 공예 두기’의 의미에 대해 “코로나19 사태로 타인(他人)의 시선보다 자기 개인의 삶이 더 중요해졌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그동안엔 멋진 집과 자동차, 옷 등 외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에 신경을 썼다면, 이제는 집에서 자신을 위해 즐길 수 있는 공예품에 마음을 두게 됐다는 의미다. ―‘생활 속 공예 두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신영복 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에서 자신은 여름이 제일 싫다고 했습니다. 더위 때문에 곁에 있는 사람을 혐오하게 되는 계절이라는 이유죠. 사회적 거리 두기 시기에 공예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집콕’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나를 귀하게 대접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됩니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통째로 꺼내 먹는 대신 예쁜 접시에 덜어 먹고, 물과 와인, 맥주도 별도의 잔에 마시다 보면 공예생활에 좀더 친숙해지게 됩니다.” ―공예란 무엇인가요. “서울옥션 공예전의 주제가 ‘The Beautiful & The Useful’이었습니다. 생활 속에서 실용적으로 쓰이면서도 심미성을 추구하는 것이 공예입니다. 법정 스님이 쓰신 ‘무소유(無所有)’란 책에서 자신은 책을 포함한 모든 소유욕을 버렸는데, 차를 마실 때 쓰는 다기 한 벌은 꼭 갖고 싶다고 하신 말씀이 인상 깊었습니다.” ―요즘 일반인도 도자, 염색, 한지 공예를 배우는 데 관심이 많은데요. “저도 중장년 남성의 로망인 목공예에 관심이 많습니다. 올해 ‘공예주간’에 전국 425개 공방이 참여합니다. 백화점이나 구청의 문화센터처럼, 전국의 공방 클래스를 동네마다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소책자와 온라인으로 제공하려고 합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역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공예의 생활화, 산업화, 세계화입니다. K팝과 한국영화가 지난 20년간의 노력 끝에 세계시장에 진출했듯이, 공예도 국내시장으로는 협소해 해외로 나가야 합니다. 한국공예가 유럽과 미국에는 많이 소개됐는데, 내년부터는 상하이, 베이징 등에서 열리는 박람회에도 참가해 중국 공예품과 정면으로 겨뤄볼 작정입니다.” ―젊은 세대에게 공예를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최범 미술평론가는 우리가 계승할 것은 ‘전통 공예’가 아니고, ‘공예 전통’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려와 조선시대 공예품을 똑같이 만드는 장인도 필요하지만, 요즘 세대에게도 매력적인 공예 전통을 만들고, 젊은 공예인들이 맘 놓고 활동할 수 있는 산업구조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합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집에서 나만의 분청사기를 만들 수 있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안전한 ‘비대면 택배형 공예체험’이 눈길을 끌고 있다. 경기 의정부시 도자기 공방 ‘고고공방’이 선보인 ‘분청사기 DIY키트’다. 공방에서 반건조된 분청사기 접시를 택배로 보내주면 신청자는 접시 위에 꽃, 물고기, 캐릭터, 반려견 등 원하는 모형의 도안을 올려놓고 뾰족한 도구로 조각한다. 이를 다시 택배를 통해 공방으로 보내면 공방에선 1250도의 전기가마에서 구운 뒤 완성된 분청사기를 신청자에게 다시 보내준다. 유튜브 ‘공예TV’의 ‘슬기로운 공예생활’ 코너에 소개돼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영상의 내용이다. ○ 일상 속 공예문화 ‘생활 속 공예 두기’ 이달 18∼27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이 주최하는 ‘2020 공예주간(Korea Craft Week 2020)’의 주제는 ‘생활 속 공예 두기’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공예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로 만들자는 취지다. 김태훈 KCDF 원장은 “재택근무, 화상강의가 일반화되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크게 늘면서 ‘몸에 좋고, 보기에도 좋은 물품’으로 내 공간을 꾸미는 산업과 예술이 각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9년 조사 결과 국내 공예산업 전체 매출 규모는 4조2537억원으로, 2016년 조사 대비 19.7% 증가했다. 대량 생산된 플라스틱 제품보다는 원목으로 만든 테이블, 찻장, 서랍, 흙으로 만든 도자기와 나무에 옻칠로 만든 공예품, 크리스털로 만든 컵과 주전자, 은으로 만든 다구 등이 관심이 끌고 있다. 올해로 3회째인 ‘공예주간’은 전국 425개의 공방에서 816개의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지난해는 전국 359곳에서 34만 명이 참여했는데, 올해는 규모가 더 커졌다. 또 코로나19로 5월에서 9월로 행사가 연기되면서 비대면으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대폭 늘었다.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는 여성들의 삶과 노동에 쓰였던 공예품을 감상할 수 있는 ‘여가생활(女家生活)’ 전시가 열리고, 서울 종로구 예올북촌가에서 현대 장신구와 스카프 작품을 선보이는 ‘장식하다’가 관람객을 기다린다. 전주한옥마을, 수원화성 공방거리, 보령공예문화예술연구소의 석공예, 군산 예깊미술관의 한국현대공예 울림전, 광주 가가스페이스의 빗자루 공예 등 색다른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10월 중순에 서울 종로구 인사동 KCDF 갤러리에서 열리는 ‘일일유람: 공예의 터전을 찾아서’는 과거와 현재, 산과 바다를 넘어 전국의 공예 장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서울의 자수, 경기의 도자, 강원은 옻, 경상은 나전과 두석(목가구를 장식하는 금속공예), 충청은 모시, 전라는 한지, 담양은 채상(죽세공품), 제주의 말총 등 현대 작가 20여 명의 작품이 전시된다. ○온라인으로도 즐길 수 있는 전통공예 전시장 방문과 체험은 코로나 방역지침에 따라 인원이 제한될 수 있지만, 공예주간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도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선 5월부터 사전행사로 진행된 ‘다함께 차차茶’(전남 장성), 강릉 선교장의 ‘고택향연(古宅饗宴)’, 안동포(삼베) 공예품을 즐기는 ‘풍류정원’(안동) 등도 볼 수 있다. 유튜브 ‘공예TV’에서는 마스크 매듭 만들기, 분청사기 DIY뿐만 아니라 도자기 명장의 작업 풍경을 ASMR(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로 보여주기도 한다. 물레 돌리는 소리, 가마에서 꺼낸 균열이 간 도자기를 깨는 청아한 소리가 일상에 잔잔한 여유를 던져준다. 최재일 KCDF 공예본부장은 “‘생활 속 공예 두기’는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삶에서 우아함을 잃지 않는 방법이자 ‘생존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사람들의 관심이 처음엔 옷(패션)에서 음식(요리), 요즘엔 집(인테리어)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다음 붐을 일으킬 순서는 바로 일상 속 공예품라고 생각합니다.” 김태훈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 원장은 18일 개막하는 ‘2020 공예주간’의 주제인 ‘생활 속 공예두기’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타인(他人)의 시선보다 자기 개인의 삶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동안엔 멋진 집과 자동차, 화려한 옷 등 외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면, 이제는 집 안에서 자신을 위해 즐길 수 있는 공예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KCDF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컵(Cup)’ 전시회에서 만난 김 원장은 “늘 보고, 만지고, 숨 쉬고, 입을 대고 사용하는 것이라면 대량생산된 플라스틱 용기보다, 내 몸을 해치지 않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물건들로 채우고 싶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이번 공예주간의 주제인 ‘생활 속 공예두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국민공모 통해서 선정된 슬로건입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이 ‘사회적 거리두기’ 잖아요. 우리는 역으로 ‘생활 속 공예두기’로 정했습니다. 신영복 선생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에서 자신은 여름이 제일 싫다고 했습니다. 더위 때문에 옆에 있는 동료 재소자들끼리 떨어져 있어야 하고, 사람이 사람을 혐오해야하는 계절이라는 이유죠. 따뜻한 온기를 담은 공예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상 속에서 ‘생활 속 공예두기’를 실천하는 방법은. “제대로 된 그릇과 컵을 쓰는 데서 출발하는 겁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냉장고에서 반찬통째로 거내서 먹고, 물은 생수병을 들고 마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집에서 있는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내가 나를 귀하게 대접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되는 거죠. 물은 컵에, 와인은 와인잔에, 막걸리는 호리병에 담아 마시고, 반찬도 접시에 담아 먹는 게 공예생활의 첫걸음이죠. 우리의 전통 막걸리도 플라스틱 비닐통에 마시기보다는 청자로 된 호리병에서 따라마시면 훨씬 술맛이 좋게 느껴지는 것이 용기의 마법입니다.” ―공예란 무엇인가요. “최근 서울옥션에서 하는 공예전시회를 갔더니 주제가 ‘The Beautiful & The Useful’이었습니다. 실용적으로 쓰는 것이면서 심미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공예라고 생각합니다. 미술품의 경우는 미술관에 전시되는 것인데, 공예는 곁에 두면서 즐기는 것이죠. 공예란 우리의 삶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요즘 성수동과 한남동에 있는 편집숍에 가보면 외국산 테이블, 식탁, 접시 뿐 아니라 국내 작가들의 공예품도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서울옥션, K옥션같은 경매시장에서도 공예품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점점 ‘생활 속 공예두기’ 문화가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김 원장은 생활 속 공예품을 사랑했던 사례로 법정스님을 기억했다. “법정 스님이 쓰신 ‘무소유(無所有)’란 책에 보면 자기는 모든 물욕을 버리고, 책에 대한 욕심까지도 극복을 했는데, 다기(茶器)에 대해서는 욕심만은 버릴 수 없다고 했어요. 당신이 해결한 방법은 새로운 다기가 생겼을 때는 꼭 하나만 유지를 하는 것이었어요. 그동안 자신이 쓰던 옛 다기는 주위에 선물하면서, 다기는 꼭 하나만 소유를 하면서 본인의 물욕을 경계하셨다고 해요. 그런데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쓰신 법정스님이 책보다 다기를 더 사랑하고 갖고 싶어 하셨다는 사실이 굉장히 감명 깊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공예주간이 봄에서 가을로 연기됐는데요.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른 행사진행은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오프라인, 온라인 둘 다 준비 중입니다. 지역에서 공예주간에 참여하는 425개 공방은 개별적으로 행사를 진행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은 비대면 온라인 전시로 바꾸거나 인원을 제한할 예정입니다. 공예주간 행사를 위해 홈페이지에 온라인 영상을 제공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유튜브에도 ‘공예TV’를 개설해 관람객들이 직접 방문을 못하더라도 다양한 공예주간 행사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는 지역에서 공방을 겸하고 있는 예쁜 카페도 소개합니다. 경남 산청군에 ‘파란홍차’라는 공방이 있는데, 인스타그램에 예쁜 카페와 공방으로 소문이 자자한 곳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예쁜 찻잔, 도자기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걸 좋아하는데, 이것도 또한 ‘생활 속 공예두기’ 문화가 확산되는 한 이유입니다.” ―요즘에는 일반인들도 도자나 목공, 염색, 한지공예 등을 배우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일반인을 위한 공예 클래스를 확대시킬 방안은. “요즘 여성들 뿐 아니라 남자들도 공예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목공예는 색소폰 연주와 함께 장년층 남자들에겐 로망이죠. 그런데 일반인들이 어디에서 공예를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이번에 공예주간에 참여하는 공방이 전국 425개인데, 대부분 공방에서 공예 클래스도 진행합니다. 백화점이나 구청의 문화센터처럼, 각 지역에 산재해 있는 공방에서 공예를 배울 수 있는 정보를 좀더 쉽게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전국에 있는 공예 클래스를 조사해서, 동네마다 찾아볼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서 소책자 형태와 온라인 정보로 제공하려고 합니다.” ―직접 배워보고 싶으신 공예가 있으시다면. “목공예를 배워 의자를 만들고 싶습니다. 목공예 중에서는 의자가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탁자는 그냥 두고 쓰는 것이지만, 의자는 사람이 수없이 앉았다 일어서기 때문에 정말 잘 만들지 않으면 금방 무너진다고 해요. 그래서 의자는 설계하고, 만들 때 더욱 더 정밀성이 필요합니다. 목공 장비를 개인적으로 장만하려면 돈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경기도 여주에 전문적인 장비를 갖춘 공예창작지원센터 1호인 경기창작지원센터가 생겼습니다. 그곳엔 전문적인 작가도 이용하지만, 일반인들도 시설을 이용해 배울 수가 있습니다.” ―현재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방향은 어떤 것입니까. “공예의 생활화, 산업화, 세계화입니다. ‘생활화’는 사람들이 대량생산된 플라스틱 용품보다는 멋스러운 공예품을 가까이 두자는 것이고, ‘산업화’는 공예품의 유통망과 판로를 만들어 공예작가들이 맘놓고 창작할 수 있도록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공예의 세계화’는 아무래도 국내 시장으로는 협소하기 때문에 해외로 가야한다는 절대적인 명제입니다. 한때 K팝 가요계나 한국영화, 문학도 국내시장이 협소해서 아무리 잘 만들어도 시장의 한계가 있다는 숙명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외로 진출하기 위한 노력을 20여 년 정도 하다보니까 요즘 결실을 맺으면서 무한대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우리 공예도 해외로 진출해야 인력도 소화되고, 발전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될 것입니다. 세계화로는 우리 공예가 이탈리아 밀라노 위크, 프랑스 메종 오브제, 영국 런던 콜렉트 등 유럽과 미국에는 소개가 많이 됐는데, 정작 전통공예의 본산인 중국에는 진출한 사례가 별로 없습니다. 내년부터는 상하이, 베이징 페어에도 적극 나가서 중국 공예하고도 겨뤄보고 싶습니다.” ―공예산업화 측면에서 국내 공예시장의 규모는. “2018년 공예시장은 4조2537억원 규모로 매년 커지고 있습니다. 공예산업에 참여하는 인구도 많아지고 있죠. 반면 공예인들의 사업규모가 영세한 데다, 50~60대 이상이 많고 젊은이가 적다는 점이 단점입니다. 젊은세대들에게도 우리 공예품이 고루하기 보다는 매력있게 다가서는 제품으로 인식돼야 합니다. 미술평론가 최범 선생은 우리가 계승해야 하는 것은 ‘전통공예’가 아니고, ‘공예전통’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조선시대, 고려시대의 공예품을 똑같이 만드는 장인도 필요하지만, 공예전통을 이어받아 요즘 세대들에게도 시크하고, 핫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죠. 그래야 보다 많은 젊은 인력들이 공예산업에 뛰어드는 산업구조로 개편이 될 수 있습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18일 개막하는 ‘2020 공예주간’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예방을 위해 안전한 ‘비대면 택배형 공예체험’이 눈길을 끌고 있다. 경기 의정부시 도자기 공방 ‘고고공방’이 선보인 ‘분청사기 DIY키트’다. 공방에서 반건조된 분청사기 접시를 택배로 보내주면, 신청자는 접시 위에 꽃, 물고기, 캐릭터, 반려견 등 원하는 모형의 도안을 올려놓고 뾰족한 도구로 조각한다. 이를 다시 택배를 통해 공방으로 보내면, 공방에선 1250도의 전기가마에서 구운 뒤 완성된 분청사기를 신청자에게 다시 보내준다. 유튜브 ‘공예TV’의 ‘슬기로운 공예생활’ 코너에서 소개돼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영상의 내용이다. ● 일상 속 공예문화 ‘생활 속 공예두기’ 이달 18~27일까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최하는 ‘2020 공예주간(Korea Craft Week 2020)’의 주제는 ‘생활 속 공예두기’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공예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로 만들자는 취지다. 김태훈 KCDF원장은 “재택근무, 화상강의가 일반화되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대폭 늘어나면서 ‘몸에 좋고, 보기에도 좋은 물품’으로 내 공간을 꾸미는 산업과 예술이 각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8년 전체 공예산업의 매출액은 4조2537억 원으로, 2014년에 비해 4년 만에 1조 원 가까이 성장했다. 대량 생산된 플라스틱 제품보다는 원목으로 만든 테이블, 찻장, 서랍, 흙으로 만든 도자기와 나무에 옻칠로 만든 공예품, 크리스털로 만든 컵과 주전자, 은으로 만든 다구 등이 관심이 끌고 있다. 올해로 3회째인 ‘공예주간’은 전국 425개의 공방에서 816개의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지난해는 전국 359개소에서 34만 명이 참여했는데, 올해는 규모가 더 커졌다. 또 코로나로 5월에서 9월로 행사가 연기되면서 비대면으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대폭 늘었다.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는 여성들의 삶과 노동에 쓰였던 공예품을 감상할 수 있는 ‘여가생활(女家生活)’ 전시가 열리고, 서울 종로구 예올북촌가에서 현대장신구와 스카프 작품을 선보이는 ‘장식하다’가 관람객을 기다린다. 전주한옥마을, 수원화성 공방거리, 보령공예문화예술연구소의 석공예, 군산 예깊미술관의 한국현대공예 울림전, 광주 가가스페이스의 빗자루 공예 등 색다른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10월 중순에 서울 종로구 인사동 KCDF갤러리에서 열리는 ‘일일유람:공예의 터전을 찾아서’는 과거와 현재, 산과 바다를 넘어 전국의 공예장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서울의 자수, 경기의 도자, 강원은 옻, 경상은 나전과 두석(목가구를 장식하는 금속공예), 충청은 모시, 전라는 한지, 담양은 채상(죽세공품), 제주의 말총 등 20여 명의 현대작가 작품이 전시된다. ● 온라인으로도 즐길 수 있는 전통공예 전시장 방문과 체험은 코로나 방역지침에 따라 인원이 제한될 수 있지만, 공예주간 홈페이지(www.kcdf.kr/craftweek)에서 온라인으로도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선 5월부터 사전행사로진행된 ‘다함께 차차茶’(전남 장성), 강릉 선교장의 ‘고택향연(古宅饗宴)’, 안동포(삼베) 공예품을 즐기는 ‘풍류정원’(안동) 등도 볼 수 있다. 유튜브 ‘공예TV’에서는 마스크 매듭 만들기, 분청사기 DIY 뿐만 아니라 도자기 명장의 작업풍경을 ASMR(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로 보여주기도 한다. 물레 돌리는 소리, 가마에서 꺼낸 균열이 간 도자기를 깨는 청아한 소리가 일상에 잔잔한 여유를 던져준다. 최재일 KCDF 공예본부장은 “‘생활 속 공예두기’는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삶에서 우아함을 잃지 않는 방법이자 ‘생존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백화점의 얼굴은 건물 외벽이다. 외벽에 어떤 이미지를 걸어 놓느냐에 따라 백화점의 첫인상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는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백화점 외벽을 고가의 명품 브랜드나 패션모델들로 꾸몄지만, 최근에는 귀엽고 재미있는 표정의 캐릭터들이 차지하고 있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캐릭터를 앞세워 고객과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전국 15개 현대백화점 외벽을 차지하고 있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강아지 캐릭터 ‘흰디(Heendy·사진)’가 대표적이다.》○ 세계적 일러스트 작가와 콜라보로 탄생한 ‘흰디’ 흰디는 지난해 3월 현대백화점 디자인팀 디자이너들이 기획해 만든 강아지 모양의 캐릭터다. 디자인에는 독일 일러스트 작가 크리스토프 니만도 참여했다. 니만은 디자인계에서 세계적인 권위가 있는 ‘뉴욕 아트 디렉터스 클럽 어워드’를 여러 차례 수상할 정도로 작품성과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다. 그가 에르메스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한 적은 있지만, 국내 기업과 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백화점의 영문 이니셜 초성인 ‘H’와 ‘D’를 활용해 이름을 지은 흰디는 영국이 원산지인 웨스트 하이랜드 화이트 테리어 견종을 모델로 만들었다. 흰디는 모든 일에 끼어들기를 좋아하며, 천진난만하고 유머러스한 캐릭터다. 흰디를 기획한 박이랑 현대백화점 영업전략실 디자인팀 총괄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친근함을 줄 수 있도록 강아지를 활용한 캐릭터를 만들게 됐다”며 “이름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을 표현하고자 흰색으로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요즘 백화점을 비롯한 유통업계의 화두는 이미지와 동영상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발달로 고객들이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비주얼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박 총괄은 “흰디는 SNS로 적극 소통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0∼2004년생)를 겨냥해 만들어졌지만, 친근한 반려견 이미지여서 아이부터 중장년층까지 모든 세대에게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백화점을 ‘흰디 테마파크’로 현대백화점은 흰디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온오프라인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핵심 메시지는 ‘재미’와 ‘힐링’이다. 올 5월에는 ‘피크닉’을 주제로 흰디와 친구들이 백화점에서 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거나 꽃구경을 하는 모습을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7월에는 바닷가에서 휴가를 즐기는 흰디로 백화점을 꾸몄다. 9월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친 고객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다. 흰디를 활용한 굿즈(상품)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은 좋다. 현대백화점은 흰디 론칭 이후 동전지갑, 에코백, 손 선풍기, 행주 등 20여 종의 굿즈를 선보였다. 품목별로 1만 개가량 만들어 사은품으로 증정하거나 판매했는데, 대부분의 물량이 3일 안에 소진됐다. 수익금은 유기견 지원에 사용됐다. 현대백화점은 흰디를 활용한 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나선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사회 분위기가 침체돼 있는 상황에서 고객들에게 즐거움과 긍정의 에너지를 전파하겠다는 취지다. 올 10월 흰디가 춤을 추는 15초짜리 짧은 영상을 시작으로, 흰디의 일상을 재미있게 들여다보는 ‘페이크 다큐’, 흰디의 모험을 담은 장편 애니메이션 등을 순차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흰디 디자인에 참여한 독일작가 니만은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흰디를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와 힐링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돼 매우 뜻깊은 작업”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백화점의 얼굴은 건물 외벽이다. 외벽에 어떤 이미지를 걸어 놓느냐에 따라 백화점의 첫인상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는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백화점 외벽을 고가의 명품 브랜드나 패션모델들로 꾸몄지만, 최근에는 귀엽고 재미있는 표정의 캐릭터들이 차지하고 있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캐릭터를 앞세워 고객과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전국 15개 현대백화점 외벽을 차지하고 있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강아지 캐릭터 ‘흰디(Heendy)’가 대표적이다. ●세계적인 일러스트 작가와 콜라보로 탄생한 ‘흰디’흰디는 지난해 3월 현대백화점 디자인팀 디자이너들이 기획해 만든 강아지 모양의 캐릭터다. 디자인에는 독일 일러스트 작가 크리스토프 니만도 참여했다. 니만은 디자인계에서 세계적인 권위가 있는 ‘뉴욕 아트 디렉터스 클럽 어워드’를 여러 차례 수상할 정도로 작품성과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다. 그가 에르메스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한 적은 있지만, 국내 기업과 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백화점의 영문 이니셜 초성인 ‘H’와 ‘D’를 활용해 이름을 지은 흰디는 영국이 원산지인 웨스트 하이랜드 화이트 테리어 견종을 모델로 만들었다. 흰디는 모든 일에 끼어들기를 좋아하며, 천진난만하고 유머러스한 캐릭터다. 흰디를 기획한 박이랑 현대백화점 영업전략실 디자인팀 총괄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친근함을 줄 수 있도록 강아지를 활용한 캐릭터를 만들게 됐다”며 “이름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을 표현하고자 흰색으로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요즘 백화점을 비롯한 유통업계의 화두는 이미지와 동영상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발달로 고객들이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비주얼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박이랑 총괄은 “흰디는 SNS로 적극 소통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0~2004년생)를 겨냥해 만들어졌지만, 친근한 이미지여서 아이부터 중장년층까지 모든 세대에게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백화점을 ‘흰디 테마파크’로현대백화점은 흰디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온오프라인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핵심 메시지는 ‘재미’와 ‘힐링’이다. 지난 5월에는 ‘피크닉’을 주제로 흰디와 친구들이 백화점에서 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거나 꽃구경을 하는 모습을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7월에는 바닷가에서 휴가를 즐기는 흰디로 백화점을 꾸몄다. 9월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친 고객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다. 흰디를 활용한 굿즈(상품)에 대한 고객들 반응은 좋다. 현대백화점은 흰디 론칭 이후 동전지갑, 에코백, 손 선풍기, 행주 등 20여 종의 굿즈를 선보였다. 품목별로 1만개 가량 만들어 사은품으로 증정하거나 판매했는데, 대부분의 물량이 3일 안에 소진됐다. 수익금은 유기견 지원에 사용됐다. 현대백화점은 흰디를 활용한 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나선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사회 분위기가 침체돼 있는 상황에서 고객들에게 즐거움과 긍정의 에너지를 전파하겠다는 취지다. 오는 10월 흰디가 춤을 추는 15초짜리 짧은 영상을 시작으로, 흰디의 일상을 재미있게 들여다보는 ‘페이크 다큐’, 흰디의 모험을 담은 장편 애니메이션 등을 순차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흰디 디자인에 참여한 독일작가 크리스토퍼 니만은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다”며 “흰디를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와 힐링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돼 매우 뜻 깊은 작업”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영문학 수업시간에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있다. 고려대 영문학과 남호성 교수(48)다. 그는 미국 예일대 해스킨스 연구소 시니어 과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수업시간에 행렬과 벡터, 미분과 통계를 가르친다. 왜 이런 일을 할까. 문과대생들은 대학 입학 후 수학을 공부한 적이 없다. 심한 경우 고교 때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들)인 경우도 많다. 그는 이에 대해 “인공지능(AI)에서 가장 핫한 분야가 음성인식 분야”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음성학을 연구하고, 인지심리학을 연구하는 문과대생들도 이제는 반드시 수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도 고교시절 수학을 못해서 문과를 택했고, 영문과는 시험점수에 맞춰 선택한 진로였다. 그런 그가 대학원에서 언어학에 매료됐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학원에서 코딩을 배워 대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다시 미국 예일대로 유학을 떠났다. 그가 속한 해스킨스 연구소는 언어학, 뇌과학, 컴퓨터공학 등을 융합한 세계적인 음성학 연구소. 이곳의 연구원들은 분야에 상관없이 수학과 코딩을 익힌다. 그도 독학으로 수학을 처음부터 배워 나갔다. 14년간 해스킨스 연구소에서 근무한 뒤 모교의 교수가 된 그는 언어공학연구소(NAMZ)부터 꾸렸다. NAMZ는 ‘Novelty at MediaZen’(미디어젠의 새로움)이라는 뜻으로, 자신처럼 수학을 배워 새로운 길을 걷는 문과생들이 더 많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다. 연구원은 영문과 국문과 등 100% 인문계생들로 채워졌다. 처음에는 일대일로 학생을 앉혀놓고 수학을 가르쳤다. 음성학 수업시간에도 수학과 코딩을 가르쳤다. 그 결과 NAMZ는 음성인식기술 분야에서 국내에서 독보적인 특허를 여러 건 보유하게 됐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내비게이션에 탑재된 음성인식 시스템이 이 연구소가 개발해 미디어젠이 상품화한 제품이다. 그는 “인문계 학생들이지만 어떤 컴퓨터공학자들보다 기술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문과생이 왜 수학을 배워야 하나. “지금은 수학과 코딩을 모르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다. 두 눈이 있는 사람에게 수학은 세 번째 눈을 준다. 미국 통계를 보면 수학을 활용하는 직업이 연봉도 더 높다. 디지털디바이드가 현실화하고 있다. 인문계에는 수학이 적성에 안 맞아 온 여학생이 많다. 여학생이 수학과 친하게 해주는 것은 남녀 불평등을 해소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는 귀국 후 인문계의 처참한 현실에 안타까웠다. 학생들은 전공과 관계없이 모두 로스쿨, 고시, 공사,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그가 수학과 코딩을 가르친 후 인문계 졸업생들도 다양한 진로를 택하고 있다. 삼성SDS, 일본 미쓰비시 AI연구소에 취직한 친구도 있고, 매사추세츠공대(MIT), KAIST에서 인공지능을 공부하는 학생도 많다. ―수학은 인문학 자체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까. “심리학, 사회학, 한문학, 국문학 모두 코딩과 AI를 응용하면 전에 볼 수 없던 획기적인 연구성과가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이오 분야다. 미생물, 암 연구 분야는 원래 수학이나 코딩과 전혀 관계없는 분야였다. 그런데 요즘 네이처 사이언스에는 바이오 분야에 AI와 머신러닝이 적용된 훌륭한 논문이 쏟아지고 있다.” ―학교 수학은 왜 어려운가. “우리의 수학교육은 수학이 어디에 쓰이고, 어떻게 필요한지 말을 안 해준다. 내 삶에 유용하고 필요한 수학을 해야 흥미를 느낀다. AI에 필요한 행렬과 벡터, 미분, 통계의 개념은 6개월만 공부하면 누구나 다 이해한다. 그런데 학교교육은 줄 세우기 위해 비비 꼰 수식계산에만 얽매여 있다. 예일대에서 14년 동안 공부했고, 요즘에도 최신 수학을 매일 2시간씩 공부하는 나도 수능 수학시험을 보면 20∼30점밖에 못 맞힐 정도다.” 남 교수는 “한 우물을 파야 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한 사람이 ‘여러 우물’을 파야 한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협업을 하면 융합이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는 “융합은 한 사람 안에서 이뤄져야 제대로 성공한다”며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 대표는 심리학, 인지과학, 컴퓨터공학을 배웠고 이제는 경영까지 한다. 우리도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8월초 제주도로 간 여름휴가 기간 중 제주 구좌읍 송당리에 오픈한 ‘스누피 가든’을 방문했다.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 생긴 또하나의 테마공원이겠거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위로와 힐링을 얻고 왔다. 스누피는 미국의 작가 찰스 M 슐츠(1922~2000)가 1950년부터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신문 잡지에 무려 50년간 연재됐던 네 컷짜리 만화 ‘피너츠’(Peanuts)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인 찰리 브라운과 그의 반려견인 스누피, 그리고 여러 친구들이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스토리다. 오프라 윈프리도 “내 어린시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으로 꼽을 정도로 현대 미국인들의 삶과 문화 속에 스며든 만화다. 약 7만9000여편이 나와 있으며, TV드라마 영화로도 제작됐고 75개국에 약 2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돼 전파됐다. 제주 ‘스누피 가든’은 천연의 자연환경에 더한 컨텐츠 스토리텔링의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인가를 다시한번 깨닫게 해준다. ●“일단 오늘 오후는 쉬자!”(Rest this Afternoon)스누피가든은 전시장 입구부터 스누피 그림과 함께 커다란 판넬에 쓰여진 글귀가 손님을 맞는다. ‘어제로부터 배우고, 오늘을 즐기고, 내일을 바라보며. 일단 오늘 오후는 쉬자’(Learn from Yesterday, Live for Today, Look to Tomorrow, Rest this Afternoon) 이 글귀에서 가장 반전 위로를 주는 것은 맨 마지막 문장이다. 인생은 배우고, 즐기고, 준비하는 일상의 긴장과 노력의 연속인데 ‘일단 오늘 오후는 쉬자!’는 것이다. 일상 뿐 아니라 여행도 마찬가지다. 해외여행을 간다하면 그 지역의 유명 박물관, 역사 유적지, 뒷골목, 시장, 카페를 순례하며 사진을 찍다보면 그야말로 정신이 없다. 국내 휴가지에서도 밀린 업무생각, 장마·태풍 걱정, 코로나 걱정에 TV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제주로 휴가 왔으면 오늘 오후는 스누피 친구들이 툭툭 던지는 인생 위로의 말을 음미하면서, 자연 속에서 쉬는데 집중해보자는 슬로건이 맘에 와 닿았다. ‘Rest this Afternoon’은 한국에 최초로 정식으로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7월에 오픈한 ‘스누피 가든’의 주제이자 모티브다. ●“행복은 따뜻한 강아지야!”(Happiness is a warm Puppy)찰리 브라운의 반려견인 스누피는 비글 품종의 개로, 귀여운 외모 뿐 아니라 솔직하고, 위트있는 인생의 철학을 툭툭 던지는 게 매력이다. 쉽고 단순한 말이지만 곱씹어 생각할 수록 인생의 지혜가 느껴지는 스누피 친구들의 대화는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와 힐링을 주는 인용구로도 인터넷에서 인기다. 찰리 브라운이 스누피를 꼭 안고 있는 그림 밑에 “행복은 따뜻한 강아지야!”(Happiness is a warm Puppy)라는 문구가 씌여져 있다. 쌀쌀한 날에 강아지를 안아본 사람은 안다. 그 따뜻한 체온이 내 가슴을 덮혀주고,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는 사실을. 작가인 슐츠는 “행복은 복잡하고 어려운 철학이 아니라, 그냥 포근한 강아지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스누피는 소설가인데다, 화가, 마술사, 야구선수이자 만능스포츠맨으로 다재다능하다. 그런 스누피의 개집 안 풍경은 어떻게 생겼을까? 실제 피너츠 만화 속에는 개집 속이 한번도 그려지지 않았다. 스누피가 던지는 말로 유추할 뿐이다. 그런데 스누피가든의 전시장 안에는 세계최초로 스누피 집 안의 모습을 상상해서 재현해놨다. 책상에는 스누피가 소설을 쓸 때 사용하는 타자기가 놓여 있다. 타자는 스누피의 비서인 우드스탁이 대신 쳐준다. 방 안에는 미니 당구대도 있고, 야구방망이도 있다. 스누피가 그림을 그리는 화실 바닥에는 형형색색의 물감이 묻은 귀여운 강아지 발자국으로 가득하다.●“나는 여행의 위대함을 믿어!”(I‘m a great believer in travel)스누피는 종종 일상을 탈출해 탐험을 즐기고, 때로는 저 머나먼 우주까지 날아다닌다. 자그맣고 사소한 행복과 커다랗고 무한한 우주는 스누피가 상징하는 특별한 주제다. 미항공우주국(NASA)의 마스코트인 스누피는 실제로 달에 처음 간 만화 캐릭터다. 1969년에 미국의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기 전 리허설을 위해 아폴로 10호가 먼저 달로 떠났다. 아폴로 10호의 달 착륙선 이름은 ’스누피‘였고, 사령선 이름은 ’찰리 브라운‘으로 명명됐다. 당시 우주조종사들은 “여기는 스누피, 찰리 브라운 나와라 오버”라고 콜사인(call sign)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우주선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은 만화 속 주인공들처럼 낯선 달에 가서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외로움도 무서움도 느끼지 않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스누피가든 전시장에는 스누피가 빨간색 지부의 개집을 타고 우주로 여행가는 모습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달나라에서 귀환하는 스누피의 시선으로 보는 지구가 환상적이다. 이 때 스누피가 외치는 한마디. “나는 여행의 위대함을 믿어!”(I’m a great believer in travel). 강아지도 여행의 위대함을 알다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려 방콕하며 재택근무, 화상수업를 해야하는 시대에 더욱 그립고 절절한 스누피의 명언이다. ● “길을 잃었을 땐 너의 나침반을 따라가”(When Lost, Follow your compass) 스누피는 늘 개집 안에서 잠을 자지 않고 지붕 위에서 잠을 잔다. 뾰족한 빨간색 지붕 위에 누워 있는 스누피가 그렇게 편안해보일 수 없다. 실제로 작가인 슐츠가 키우던 반려견이 폐소공포증이 있어 사다준 개집에서 안 자고, 늘 밖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그런데 제주 ‘스누피 가든’ 로고 속의 스누피는 제주의 초록색 오름 위에서 누워서 잠을 잔다. 제주 한라산 중산간 지역의 2만5000평 대지에 자리잡은 ‘스누피 가든’ 주변에는 아부오름, 안돌오름, 백약이오름, 비자림과 같은 천연 야생의 제주의 자연이 둘러싸고 있다. 안개와 같은 구름이 수시로 몰려왔다가 비가 내렸다가, 햇볕이 나기도 하고, 겨울에는 눈으로 뒤덮이는 변화무쌍한 기후가 특징이다. 만화 속 스누피는 ‘비글 스카우트’의 대장으로서 낙엽과 물, 바람을 좋아하고 나침반을 들고 산과 들을 탐사하고, 캠핑하는 것을 즐긴다. 스누피가든의 야외정원으로 나서면 스누피가 제주의 나무와 숲, 돌과 연못, 날씨 속에서 탐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야외에 조성된 11개의 에피소드 정원에는 피너츠 사색 들판, 찰리브라운의 야구광장, 비글 스카우트 캠핑장, 호박대왕의 호박밭, 루시의 가드닝 스쿨 등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관람객들은 숲과 호수에서 피너츠와 함께 걸으며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관람객들은 비글 스카우트처럼 작은 폭포를 따라 숲속을 지나고, 나무로 된 어드벤처를 오르고 다리를 건넌다. 스누피 일행이 쉼직한 아기자기한 텐트와 수많은 스누피의 페르소나 인형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 중에서 사진찍기 좋은 명소 두군데를 꼽으라면? 첫 번째는 스누피 레이크다. 잔잔한 호숫가에 스누피와 단둘이 어깨를 기대고 앉아 있는 뒷모습을 사진을 찍으면 그렇게 정다울 수가 없다. 또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스누피 돌하르방’도 커플끼리 사진찍기 좋은 명소다. ●“정원을 가꾸는 것은 내일을 믿는 것”(To plant a garden is to believe in tomorrow) 스누피 가든을 기획한 남해종합건설의 자회사 에스엔가든의 김우석 대표(46)는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에서 조경학 박사학위를 딴 조경전문가다. 남해종합건설 창업주 김응서 회장의 아들인 그는 수년 전부터 제주 10만 평의 땅에 조경용 나무를 심어왔는데, 그 중 2만5000평 규모의 수목원에 스누피 테마파크를 조성했다. 제주 스누피가든에서 만난 그는 요즘 “외모까지 스누피를 닮아간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제주에 자연생태 테마파크를 조성하게 된 계기는. “제가 조경사업을 하기 때문에 수목원을 하려고 가꿔온 숲이었다. 경기 가평의 ‘아침고요 수목원’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때부터 나무를 심었다. 그런데 제주에 오름, 곶자왈과 같은 천연숲 걷기가 유행하면서, 단순히 수목원만으로 관심받는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했다. 수목원에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접목하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스누피 가든을 만들게 된 계기는. “2017년 일본 도쿄 롯본기에 열린 스누피 뮤지엄 전시에 가보고 너무 좋았다. 내가 꿈꾸던 수목원에 스누피 콘텐츠를 접목시키고 싶었다. 피너츠 만화의 IP(지적재산권) 계약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고 일본 소니엔터테인먼트에 연락했더니 홍콩에 있다고 해서 무작정 찾아갔다. 처음엔 중국계 자본이 이미 진출해 있어 안된다고 거절당했다. 포기하지 않고 미국의 피너츠 재단 측 관계자를 소개받아 끊임없이 친분을 쌓고, 작가의 유가족도 접촉한 끝에 공식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작가인 슐츠의 부인이 정원을 매우 좋아하시는데, 제주의 환상적인 자연환경에 스누피가든이 잘 어울릴 것이라고 설득했다. 핀란드의 유명한 무민 캐릭터를 활용한 ‘무민밸리 파크’가 일본의 한 호숫가에서 세워져 성공한 사례도 참조했다.” ―스누피의 매력은 무엇인가? “전세대를 아우르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아이들은 귀여운 강아지만 봐도 좋아한다. 또 취업 경제난 등으로 힘들어하는 젊은 세대는 피너츠에 나오는 친구들의 솔직하고 과하지 않은 인용구에 열광한다. 인터넷에는 위로와 공감을 던지는 ‘스누피 명대사’가 수없이 많이 올라와 있는데, 젊은이들이 열광한다. 피너츠 인용구 1만5000여 편이 실린 두꺼운 책이 있는데, 정말 한 문장도 허투루 넘길 수 없다. 30~40대 부모 관람객도 ‘아이들 놀게 해주려고 왔다가 내가 위로받고 간다’고 피드백을 남긴다. 50대 이상의 세대들은 피너츠를 단순한 만화로 보지 않고, 인생의 철학과 문화적인 메시지와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스누피는 모든 세대에 어울리고, 받아들여지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란 매력이 있다. 스누피 캐릭터는 아동용 문구나 팬시점 뿐 아니라 백화점에서 파는 일상용품에도 잘 어울린다. 할아버지부터 아이들까지, 심지어 아저씨인 내가 스누피 옷을 입어도 과해 보이지 않는 느낌이다.” ● “인생은 한 길만 있지 않아” (Life is rarely all one way)―외국에는 스누피 테마파크가 얼마나 있나. “스누피 IP(지적재산권)를 활용한 사업으로 보통은 캐릭터 상품을 많이 하는데, 우리같은 경우는 로케이션 비즈니스다. 로케이션 IP로는 세계적으로 2,3군데 정도 있다. 미국 미네소타에 ‘캠프 스누피’라는 테마파크가 있다. 또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센타로사시에 작가인 슐츠 뮤지엄이 있다. 작가가 쓰던 물건이랑 원작을 보관한 박물관이다. 이걸 본따서 일본 도쿄에서 롯폰기에 ‘도쿄 스누피 뮤지엄’이 2년간 열리기도 했다. 홍콩에 찰리브라운 카페가 있고, 일본에는 피너츠 호텔, 카페, 아이스크림 가게, 전통찻집 등이 있다. 피너츠는 아니지만 핀란드에는 ‘무민밸리 파크’가 있다. 핀란드의 한 섬에서 여름 3개월만 열리는 데 40만 명이 올 정도로 인기다. 캐릭터 문화에 익숙한 일본이 ‘무민밸리 파크’를 들여와 호숫가에 재연했다. 그걸 보고 ‘IP랑 최근 자연과 엮은 새로운 테마파크 장르’의 구상을 구체화하게 됐다.” ―피너츠와 제주는 어떻게 연결시켰나. “제주 스누피가든은 테마파크랑 수목원을 결합한 새로운 장르의 로케이션 IP다. 원래 피너츠 타운의 주인공들은 미국 중서부 지방의 교외지역에 사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야생자연이 살아 있는 제주의 환경에는 ‘피너츠보다는 스머프 캐릭터가 맞지 않나?’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스누피와 제주를 연결시킬까 많은 고민을 했다. 결국에는 피너츠 안에 ‘자연’이라는 답이 있었다. 제주를 자연으로 해석했다. 피너츠 가이드에도 ‘눈, 비, 바람, 낙엽 등에 주위 자연환경과의 인터액션을 통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명확히 쓰여져 있다. 해안과 산간지대가 섞여 있는 제주도 전체를 고려하기 보다는 스누피가든이 자리잡은 이 지역의 특색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여기는 한라산 정상에서 가까운 중산간 지역이다. 아부오름, 비자림 등 오름과 곶자왈의 야생자연이 살아 있고, 기후가 변화무쌍하다. 오늘도 비가 왔다가 햇볕이 쨍했다가, 수시로 안개가 끼었다 사라진다. 겨울에는 눈도 많이 내리고, 바람도 많이 분다. 비자나무, 육박나무, 팽나무, 하귤나무 등 특색있고 울창한 숲이 있다. 어차리 제주에 오는 사람들은 부산처럼 화려한 곳에서 놀기보다는, 자연을 보면서 힐링하려고 오는 사람들이다. 특히 제주 동부지역은 더 그렇다. 제주 서남권은 가족 중심의 휴양지, 애월은 카페촌이라면 제주 동부 중산간지역은 숲과 자연을 보러오는 곳이다. 화산지대에 넓은 초원과 목장이 펼쳐진 뷰가 있고, 기후가 만들어낸 돌과 흙과 나무가 제주를 느끼게 한다.” ―야외 체험공간은 어떻게 설계했나. “스누피는 낙엽을 좋아하고, 페퍼민트는 담장 그늘에 앉아 있길 좋아한다. 피너츠의 아이들이 소통하는 장소는 항상 언덕과 담장, 나무 밑과 같은 자연이다. 그곳에서 인생 이야기를 한다. 언덕, 야구장 등 피너츠 모티브 컷 속에서 나오는 장면을 재현해 11개의 ‘에피소드 가든’을 만들었다. 그걸 제주 자연 속에 섞어서 테마파크를 만들어, 진짜로 피너츠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갖게 하고 싶었다. 미국 피너츠 재단에서도 제주는 자연이니까 ‘비글 스카우트’가 제일 최적화된 아이템이 아니냐고 조언했다. 비글 스카우트는 도시를 벗어나서 하이킹하고, 나침반을 보고 트레킹하고, 야영하면서 자연을 탐험하는 아이들이다. 스누피는 비글 스카우트의 대장이고, 스누피의 타자치는 비서인 우드스탁이 끌고 다니는 6명은 대원이다. 캠핑장에는 나무로 된 어드벤처 시설과 텐트를 설치하고, 호박밭에는 파밍(농사짓기) 전시를 하고, 루시의 가드닝 센터에는 정원관련 전시가 예정돼 있다.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을 위한 필드 트립, 서머캠프 등의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사랑은 이상한 행동을 하게 만들지”(Love makes you do strange things.)―피너츠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이상형이 바뀌듯이 계속 변한다. 처음에는 루시가 좋았다. 직설적인 성격이지만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주변에 누나든, 동생이든, 친구든 그런 사람은 꼭 있기 때문에 눈에 띄였다. 그 다음에는 패퍼민트 패티가 좋았다. 초록색 스트라이프 패턴 옷이 좋아서 그런 것 같다. 남자답고, 운동도 잘하는데 왠지 불쌍해 보인다. 샐리 브라운은 정말 예쁜데 4차원 같은 엉뚱한 소녀다. 아무리 못돼 보여도, 4차원이어도 예쁜 것은 예쁜 것이다. 그래서 공감이 간다. 엊그제 샐리 조형물을 막 세워놨는데, 어린 소녀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예쁜 샐리랑 정말 잘 어울렸다. 피너츠에서 하나도 버릴 만한 캐릭터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다 주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공감이 간다.” ―피너츠 캐릭터가 공감이 가는 이유는. “작가인 슐츠는 50년 동안 매일 신문에 피너츠를 연재했다. 평일에는 4컷, 주말판엔 10컷을 그렸다.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이발사이니까, 찰리브라운의 아버지도 이발사로 나온다. 자기 옆 동료 이름을 따서 루시를 만들었다. 발렌타인 데이에는 자기가 짝사랑 하던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그리고, 야구팬이라 야구장면을 그리고, 겨울에는 아이스하키를 좋아하니까 하키 장면을 그렸다. 50년 동안 그리다보니 일상과 문화가 다 녹아있다. 그렇다보니까 우리에게 와 닿는게 많을 수 밖에 없다. 피너츠 만화를 연도별로 모아놓은 책이 있는데 오프라 윈프라가 서문을 썼다. 피너츠가 미국 문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자신이 어릴 적에 슐츠 작가 덕분에 비뚤어지지 않고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였다. 미국인들은 50년간 자신의 삶에 녹아든 문화로 피너츠를 생각한다. 피너츠 캐릭터는 밝고, 솔직하고, 위트가 있다. 피너츠는 2~3세대가 돌면서 우주선의 이름이 되기도 하고, 뮤지컬이 되고, 첫 번째 포드광고를 스누피가 하기도 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히어로 만화가 아니라, 수많은 사춘기 청소년들과 똑같이 인생을 고민하는 스누피의 솔직함 덕분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했다. ―피너츠 IP는 어떻게 활용하고 비용을 지불하나. ”‘피너츠’ 아카이브에는 엄청나게 광범위한 소스가 데이터베이스로 정리돼 있다. 예를 들어 검색어에 ‘마스크’ ‘안경’을 넣으면 마스크를 쓰고 어딜 가는 에피소드, 안경을 잃어버린 에피소드 컷이 나온다. 키워드 검색이 가능한 것이 디지털 아카이브 IP의 힘이다. 우리가 필요한 에피소드의 검색어를 넣어 원화 이미지를 얻고, 사용한 만큼의 로열티를 지불한다. 피너츠 재단이 각종 캐릭터 IP(지적재산권)사업만으로 버는 돈이 연간 50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스누피가든의 전시기획은 무브먼트서울과 브랜드아키텍츠(BRAND ARCHITECTS)가 공동으로 진행했다. 김하윤 무브먼트서울 대표는 ”50년간 소소한 일상주변의 일들을 그린 슐츠의 피너츠 콘텐츠는 다양한 세대의 관람객들이 공감하는 요소를 뽑아내는 테마파크 IP로는 최강의 힘을 갖고 있다“며 ”특히 공격적이거나 강요스럽지 않은, 부드럽고 솔직하게 풀어내는 피너츠의 철학적 인용구를 중심으로 남녀노소를 다 어우르는 전시 포인트를 잡았다“고 말했다. ● ”걱정하는 것은 나쁜 일을 일어나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단지 좋은 일을 즐기는 것을 멈추게 할 뿐이예요“ (Worrying won‘t stop the bad from happening, it just stops you from enjoying the good.) ―스누피 개집 안의 모습을 재현한 것은 처음인가. ”일본 도쿄에서 스누피 뮤지엄 전시를 할 때 일본 잡지에 스누피 집안의 풍경을 상상한 그림이 있었다. 그걸 보고 실제로 재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국 측에 프리젠테이션을 했더니 재밌겠다는 반응이었다. 다른 나라에 있는 피너츠 테마파크에는 외형을 재현한 곳이 많은데, 개집 안의 모습을 실제로 구현해본 것은 처음이다.“ ―얼굴이 스누피를 닮았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하는데. ”어릴 적부터 나는 남들이 안하는 걸 하고 싶다는 성향이 있었다. 그런데 남들과 아예 다른 것은 쉽지만, 다르긴 한데 티가 안나게 조금 다른 느낌을 주기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스누피가 무척 세련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스누피처럼 과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느낌을 원했다. 예전엔 스누피와 전혀 안 닮았었다. 그런데 스누피가든에 몇 년동안 집중하면서 나도 모르게 점점 변해가는 것같다. 나이가 들면서 눈가가 쳐지면서 더 닮아가는 것 같다. 스누피는 자연을 사랑한다. 조경을 전공한 나도 자연의 위대함을 안다. 평소 비염이 있는데 숲에만 들어가면 코가 뻥뚫리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프면 알아서 자연을 찾아간다. 진짜 신기한게 암에 걸리면 다 강원도 산 속으로 가지 않느냐. 자연 속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면 놀랍게도 내 몸이 달라진다. 피너츠 만화도 정신적으로 휴식하게 만들어주는 기능을 한다. 나뭇잎을 관찰하고, 열매를 주워보다보면 나무들이 서로 공생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네 삶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명한 작가들이 자연을 보고 글을 쓰고, 예술가들이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원래 수목원을 하려고 조성한 숲이었습니다. 경기 가평의 ‘아침고요 수목원’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때부터 나무를 심었죠. 그런데 제주에서 오름, 곶자왈과 같은 천연숲 걷기가 유행하면서, 수목원에도 스토리텔링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스누피 가든’을 기획한 남해종합건설의 자회사 에스엔가든의 김우석 대표(46·사진)는 조경학 박사학위를 가진 조경 전문가다. 남해종합건설 창업주 김응서 회장의 아들인 그는 수년 전부터 제주 33만여 m²의 땅에 조경용 나무를 심어 수목원을 만들었다. 그 안에 8만3000m² 규모로 실내외 전시관과 체험시설을 갖춘 스누피 테마파크가 자리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스누피 팬이었던 김 대표는 2017년 일본 도쿄 롯폰기에서 스누피 뮤지엄 전시를 보고 자신의 수목원 꿈을 살릴 콘텐츠가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무작정 일본 소니엔터테인먼트사와 홍콩, 미국에 거주하는 작가의 유가족에게 직접 전화하고 수차례 찾아간 끝에 국내 최초로 공식 라이선스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스누피의 세상을 깊이 연구하면서부터 그는 “얼굴도 스누피를 닮아간다”는 소리도 듣고 있다. 찰리 브라운이라는 소년이 키우는 반려견인 스누피는 외모가 귀여울 뿐 아니라 밝고 솔직하고 위트 넘치는 유머로 인생의 철학을 툭툭 던진다. 스누피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는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와 치유를 주는 인용구로도 인터넷에서 인기있다. 제주 ‘스누피 가든’ 입구에 걸려 있는 “일단 오늘 오후는 쉬자(Rest this Afternoon)!”는 대표적인 모티브. 원래 만화 속 스누피의 대사는 “어제로부터 배우고, 오늘을 즐기고, 내일을 바라보며, 일단 오늘 오후는 쉬자!”다. 어제, 오늘, 내일로 이어지는 일상의 수고를 잠시 내려놓고 제주의 자연 속에서 진정한 휴식을 가져보자는 뜻이다. “행복은 따뜻한 강아지야!”와 같은 인용구에 공감하고, 스누피가 타자 치며 소설을 쓰는 개집 안 풍경을 재현한 전시룸을 구경하다 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스누피는 195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의 작가 찰스 슐츠가 7개 신문에 게재한 4컷 만화인 ‘피너츠(Peanuts)’의 캐릭터. 50년간 드라마, 영화로도 제작되고,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 개발 모델이 되는 등 현대 미국인들에게 녹아든 문화가 됐다. 전 세계 75개국에서 번역돼 캐릭터 상품 지식재산권(IP) 수입만도 연간 5000억 원이 넘는다. “50년간 연재된 피너츠 디지털 아카이브에는 ‘마스크’ ‘안경’ 등 관련 키워드 검색만 하면 수많은 일상의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책에 실린 유명한 인용구만 1만5000편이 넘어요. 이 때문에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이부터, 위트 있는 인생 이야기에서 힐링받는 어른들까지 전 세대가 공감하는 것이 스누피의 매력입니다.” 만화 속에서 스누피는 항상 개집의 빨간색 지붕 위에 누워 잠잔다. 작가가 키우던 반려견 비글이 폐소공포증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제주 ‘스누피 가든’의 로고 속에는 스누피가 제주의 초록색 오름 위에 누워 있다. 비글 스카우트 탐험대장인 스누피가 아부오름, 안돌오름, 백약이오름, 비자림 등 한라산에서 가까운 중산간 지역의 청정지대에서 뛰어노는 듯한 모습이다. 야외에 조성된 11개의 에피소드 정원에는 피너츠 사색 들판, 찰리 브라운의 야구잔디 광장, 비글 스카우트 캠핑장, 호박대왕의 호박밭, 루시의 가드닝 스쿨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관람객들은 숲과 호수에서 피너츠 캐릭터와 함께 걸으며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스누피 모양의 돌하르방도 사진 찍기에 좋은 명소다. 김 대표는 “스누피는 캠핑을 좋아하고, 찰리 브라운과 패티는 나무 아래에서 인생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등 피너츠 친구들은 늘 자연 속에서 서로 소통한다”며 “전 세계에 스누피 카페, 호텔, 놀이공원은 있지만 수목원과 결합된 테마파크는 처음이기 때문에 제주 중산간 지역의 기후와 생태를 그대로 살리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글·사진 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세계 곳곳에는 700만 명의 우리 동포들이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말을 지키고, 우리 춤, 우리노래를 하고 있는 어린이들, 예술가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습니다.”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재외 한민족 동포와 예술인들을 초청하는 ‘세계한민족공연예술축제’가 올해도 8월18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다. 이 축제는 지난해 광복절에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우면당, 남산국악당, 정효아트센터에서 기념식과 초청공연, 축하공연, 강습 등 3박4일 동안 열렸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5개국에서 활동 중인 40여 명의 전통예술인들이 참여했다. ‘세계한민족공연예술축제’를 개최해 온 주인공은 정효국악문화재단의 주재근 대표(48)다. 주 대표는 국립국악고등학교에서 대금을 전공하고, 국악이론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박사), 21년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무원으로 경력을 쌓은 후 현재는 민간예술단체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공연현장과 이론, 행정경험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전통문화예술의 대중화를 이루는 데 힘써왔다. ―세계한민족공연예술축제를 기획하게 된 동기는. “전 세계에 살고 있는 700만 명의 우리 동포들 중에는 19세기 조선이 힘이 없어 이주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아픈 역사도 있습니다. 고국을 떠난 우리 민족은 고려인, 조선족, 제일교포 등으로 불리우며 100년이 훨씬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우리 문화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을 고국이 잊지 않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우리 문화를 더 잘 지키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싶었습니다.” 올해 이 축제는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 19)’로 인해 8월18일 하루만 열리며 국내에서 거주하고 있는 재외동포 예술가들과 국내 명인 명창 등이 무대에 오른다. 재일동포인 민영치(타악), 쿠라시케 우희(무용), 김보경(가야금), 쿠와히로유키(타악), 조선족 예술가인 최민(대금), 윤은화(양금), 북한출신 무용수 최선아, 미국교포 서훈정(판소리)이 출연한다. 또한 국내 명인으로는 문정근(춤), 김영동(대금), 이수현(춤), 산유화어린이민요합창단(민요) 등이 참여한다. ―앞으로 세계한민족공연예술축제는 어떻게 발전해나갈 것인가. “전세계 한민족 예술가들의 네트워킹을 위해 상설적인 ‘한민족공연예술센터’ 건립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 센터를 거점으로 전세계 한민족공연예술가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전세계 태권도 도장을 통해 태권도 보급이 세계화 됐듯이 세계한민족공연예술센터를 통해 국악과 클래식 등 우리 한국음악의 세계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목표이다. 지금은 전통공연예술에 국한하고 있지만 점차적으로 서양음악을 하는 해외 한민족 공연예술가로도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한양대 국악과에서 음악인류학 박사학위를 한 그는 문화체육관광부 공연전통예술과, 국립국악원 등에서 문화예술 진흥정책을 담당해 온 공무원으로 21년간 일한 뒤 퇴직, 우리 음악의 대중화를 연구하고 기획하는 이를 해왔다. 그는 정효아트센터에서 국악계 신인연주자들과 원로급 예술인과의 소통의 장을 만드는 한편, 전통음악은 물론 서양의 클래식까지 한국의 공연문화 발전을 목표로 하는 (사)공연전통예술미래연구원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그는 문체부 공무원 시절 ‘궁궐에서의 국악공연’을 처음 시도하고, 파리만국박람회에 전시됐던 국악기를 112년만에 고국에 귀환시키는 전시를 기획하고, ‘만파식적’ 3D 입체영상을 만드는 등 국악계에 영향을 끼친 굵직한 사업을 추진해왔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예산을 마련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그의 특기다. “2006년 우리 음악을 외국인이나 시민들에게 어떻게 하면 좀더 친근하게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였다. 문득 고종이 100여년 전 주한외교사절들과 연회를 베풀었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주한 외국대사와 부인들을 위한 행사를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런데 보다 많은 주한 외교사절이 오기 위한 유인책이 필요했다. 그때 외국대사와 부인들에게 맞춤 한복을 선물해 주면 모두들 오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결과는 대박이었다. 독일, 일본 등 40개국 60명의 주한 외교사절이 참여했고 이들은 우리의 전통음악과 궁중무용감상과 사물놀이 체험, 전통차와 다과를 즐기고 마지막 순서로 덕수궁 정전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이날 행사는 당일 저녁 9시 메인뉴스에 중요하게 보도됐다. 이를 계기로 2008년부터는 덕수궁은 물론 창덕궁 연경당에서 상설국악공연을 열게 됐다. 그런데 당시에는 궁에서 행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사회분위기였다. 문화재청에서도 일회성 행사는 몰라도 상설공연에는 난색을 표했다. 그래서 고궁활용심의위원회에 참석해 직접 PT를 하며 설득한 끝에 겨우 허가가 떨어졌다.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와 4시에 창덕궁 깊은 곳에 위치한 연경당 공연은 입소문을 타고 최고 감동의 공연 무대로 소문이 났다. 한 영국 회사 임원은 서울에 출장을 수십번 왔지만 갈 곳이 없었는데 대낮에 이렇게 멋진 공연을 본건 본인 인생에서 생애 최고였다고 찬사를 보내주었다. 이렇게 시작된 고궁공연은 문화재청의 ‘고궁달빛기행’ 사업으로도 이어졌다. 또한 고궁공연의 성공에 이어 지역마다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고택(古宅)에서도 공연이 열리게 됐다. 예전 조선조 선비들이 풍류음악을 즐겼던 것처럼 고택에서 우리의 음악과 무용을 즐기는 것이다. 이에 각 지자체와 협력해서 전국의 고택을 선정하여 음악회를 열었는데 주5일제와 맞물려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됐다.” ―대금 연주자에서 공무원이 된 계기는. “국립국악고등학교에서 대금 연주자를 꿈꿨다. 그런데 전문적인 대금 연주자로 국립국악원이나 KBS국악관현악단 단원으로 가는 것보다 대학에서는 국악이론을 전공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전통음악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널리 알리는 일이 연주 한번 하는 것 보다 더욱 가치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졸업 후 1994년 교학사 음악편집 담당으로 입사해 교육과정 개편에 따른 중학교 음악교과서를 새롭게 제작하는 임무를 맡았다. 국악 이론을 전공한 사람으로써 서태지와아이들로 대변되는 시대적 감각에 맡는 신선한 국악을 교과서에 넣을 수 있게 돼 마음이 설렜다. 당시 교과서에 국악과 양악의 비율은 10:90 정도였는데 국악비율을 30%까지 끌어 올렸다. 국악대중가요로 인기를 얻고 있던 ‘꽃분네야’, ‘산도깨비’ 등을 작곡자 허락을 직접 받고 국악관련 사진들로 세련된 사진들로 모두 교체했다. 음악교과서의 혁신이라 할 정도로 바꾸었는데 당시 교과서 저자 중 서양악 전공 교수분이 최종본을 보고 왜이리 국악이 많냐며 자기는 승인 못하겠다고 교과서를 바닥에 내팽겨쳐 버렸다. 그 분이 돌아가자마 마자 담당 과장님께 사직서를 내고 화장실에 가서 세상에서 가장 서럽게 울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국악을 대하는 우리 사회였구나’ 생각을 하니 모든 전통국악을 하는 사람들이 불쌍해 보였다. 그때 다짐하였던 것이 앞으로 국악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기 위한 일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주 대표는 1997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 국가공무원 특채로 학예연구사로 임용됐다. 21년 동안 국립민속악원,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 국악진흥과, 장악과, 국립부산국악원 등 공연, 연구, 진흥 등의 국악의 전반적인 일을 맡았다. 그는 “특히 2006~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전통예술팀에서의 근무는 국립국악원만이 아닌 국악계와 문화예술계 전반을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며 “당시 만들어낸 국악정책과 예산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며 문화예술정책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동아일보와도 인연이 깊다. 2005년 9월27일자 동아일보에 났던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에 전시됐던 국악기가 발견됐다’는 기사를 보고, 이 국악기를 112년 만에 프랑스에서 고국으로 귀환하는 전시를 기획했다. “당시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운영을 맡고 있었는데, 동아일보 기사를 보고 언젠가는 프랑스에 있는 국악기들을 가져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2011년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실 의궤 297권이 돌아와 국가적 이슈가 됐는데, 2012년에 파리만국박람회에 출품된 국악기를 가져오는 것도 또 다른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저하지 않고 무작정 파리 음악박물관으로 달려가 동아일보 사진에서 가야금을 들고 서 있던 필리프 브뤼귀에르씨를 만났다. 국악기 13점을 한국으로 가져가 전시하고 싶다고 하자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 막상 승낙을 받고 보니 예산이 문제었다. 당해연도 예산은 작년에 기획재정부를 통과해 확보해야 하는데 급작스럽게 이루어지다 보니 예산은 전무했다. 일은 저질렀고 포기하면 국제적 신뢰도가 무너지고 해서 협찬을 받으러 뛰어 다녔다. 좋은 일에는 다 길이 있다는 것을 몸소 실감했다. 아시아나항공에서 화물운송을 협찬해 주었고, 우리은행, 프로비스타호텔, 고흥곤국악기등에서 협찬금을 내준 것이다. 공무원이 일을 만들어 땀을 흘려가며 뛰어다는 것을 보고 프로비스타호텔 회장님이 주의깊게 보고 계시다 후에 당신이 설립한 정효국악문화재단에 대표이사를 내게 맡아달라고 부탁하였다.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 출품 국악기의 국내전시는 모든 언론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며 YTN에서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악기 환영식을 실시간으로 생중계 방송을 했다. 2012년 파리만국박람회 전시 성공은 2013년에 1894년 시카고만국박람회에 출품됐던 국악기의 국내전시로 이어졌다. 이번 전시 예산 확보는 수월하게 이루어졌는데 신세계에서 지난해 전시를 보고 매년 2억원을 협찬해 주기로 한 것이다.” 그는 2003년 국악박물관에서 신라 ‘만파식적’ 설화를 소재로 한 3D 입체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예산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그는 기획재정부 예산 담당관을 10번 이상 찾아가 읍소한 끝에 1억8000만원의 예산을 받아 ‘만파식적’을 제작할 수 있었다. 이후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에서 3D 입체영상을 만든 것을 보고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 국립진주박물관 등에서도 3D 입체영상을 만들게됐다. ―공무원에게는 예산을 따내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 노하우는. “2018년 10월 국립부산국악원 장악과장으로 근무를 하면서 가장 큰 상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전 직원이 매년 투표하여 직급별로 바람직한 관리자상을 선정 수여하는데 2019년에 바람직한 관리자상을 수상한 것이다. 당시 국립부산국악원에서 심각한 현안이 있었는데 계약직 단원 약 30여명이 2년 경과돼 정규직 전환을 요구한 것이다. 문제를 푸는 방법은 두가지였다. 내가 있을 때 위반한 것이 아니니 그냥 시간끌기 하다 서울로 발령받아 가는 것, 아니면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와 같이 절대적으로 어려운 것이었다. A안, B안등을 마련해 우선 개인적으로 아는 변호사에게 상담을 하여 법적 검토를 끝내고 실행에 들어갔다. 기획재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있는 세종시를 부산에서 하루가 멀다 찾아가고 기획재정부 담당자 카톡으로 매일 같이 메시지를 남겼다. 부산의 오늘 날씨가 어떻고, 재미있는 콩트도 보내고 스토커처럼 매달렸다. 그리고 해당되는 단원들을 앞세워 기획재정부로 찾아가 눈물로 절박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2018년 말 기획재정부 담당자에게 카톡이 왔다. 국립부산국악원 단원 15명 증원하기로 했다는 문자였다. 그대로 심장은 멈추었고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다. 정말 세상은 노력하면 안되는 것이 없구나 라는 인생의 진리를 새삼 알게 됐다.” ―대금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전남 여수의 시골 마을 여선생님 자취방에서 본 베토벤 석고 두상은 아직도 내 인생의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한 학년에 30명 남짓의 한 반밖에 없는 전교생 300여명의 아주 작은 초등학교로 첫 부임한 여선생님은 시골 어린이들에게 연극과 리코더를 가르쳤다. 수많은 별빛이 고요하게 출렁거리는 여수 밤바다 앞에서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등 리코더 합주단의 연습은 각종 대회에서 상으로 이어졌다. 초등학교 6학년때 서울로 전학을 오게 된 뒤 낯설음을 적응하는데도 리코더가 제격이었다. 쉬는 시간 교실 한편에서 시작된 리코더 연주는 장기자랑 때마다 단골로 불려졌고 그 인기는 중학교까지 이어졌다. 당시 진로는 국사 선생님이 되는 것이 목표였는데 음악선생님이 국립국악고등학교 진학을 권해주었다. 국악이라는 거부감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일반 인문계고등학교 보다는 예술계 고등학교에서 즐겁게 청춘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국립국악고등학교가 학비도 없고, 매월 장학금을 준다는 것은 매력적이었다. 입학 후 전공 악기 선택을 하게 되는데 가야금 거문고 등 현악기는 관심이 전혀 없었고 작은 피리 보다는 가로로 비켜 부는 커다란 대금이 근사해 보였다. 대금을 전공으로 선택하고 선배들의 궁중음악부터 민간의 산조음악까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음악들은 클래식이나 가요와는 다른 묘한 매력적인 음악으로 청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세계한민족예술축제를 기획하게 된 데 대해 대학에서 국악학을 전공하면서 해외의 음악교류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국악학의 세계를 가르쳐주신 권오성 교수님은 국악만이 아닌 서양음악학, 인류학, 종교학, 민속학, 언어학 등으로 사고를 넓고 깊게 해 주었다. 제자는 스승이 가는 길을 뒤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은사이신 권 교수님은 중국, 일본, 몽골,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의 음악의 학문적 교류에 이바지하신 분이다. 교수님의 해외 출장이나 세미나, 뒷풀이 자리에서 세계 여러나라의 음악가와 학자들과의 만남은 국제음악교류의 필요성과 안목을 키우게 되었다.” ―가장 안정된 직장으로 꼽히는 공무원은 왜 그만두었나. “2019년 강사법이 통과되자 출강하고 있던 이화여대 한국음악과에서 겸임교수는 9시간 이상 맡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공무원 규정상 4시간 이상 외부출강은 금지돼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21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이제는 사회에서 뜻을 실행하는 시점이라 생각됐다. 2019년 4월30일자로 명예퇴직하고 5월1일자로 민간 최초 국악문화재단인 정효국악문화재단 대표 이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침체 위기의 정효국악문화재단이 지금은 여러 기획공연으로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2020년부터는 국내 최고 권위의 동아국악콩루르가 열리는 장소가 됐다. 앞으로도 여러 기관과 협업하는 문화재단을 지향하고 있다. 2학기부터는 이화여대 초빙교수 외에 한양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로 공연기획론, 홍보마케팅론, 국악학연구방법론, 국악사특강, 국악문헌특강등 여러 강의를 맡고 있다. 국악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이 사회경험을 쌓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공연문화예술정책 마련 및 대안 제시를 위한 사단법인을 지난해 7월에 설립했다.” 주 대표는 올해 5월부터는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전문위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국제교류자문위원, 서울시남산국악당 예술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엘리트 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정책이 변함으로써 체육이 활성화 됐듯이 ‘엘리트 음악에서 생활음악으로’라는 모토를 내건 ‘대한민국생활음악축제’를 계획하고 있다”며 “21년간의 문화예술행정경험을 바탕으로 국가문화브랜드 상승과 온 국민에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문화예술정책 개발 및 활용, 그리고 지역의 균형적 문화발전에 모든 힘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음악의 강국인 우리나라에 아직 국립음악박물관이 없는 것이 아쉽다”며 국립음악박물관 건립 추진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1970년대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고교야구부터 1982년 출범한 KBO 프로야구, 이만기 강호동이 모래판을 뒤집던 천하장사 민속씨름 전성기 시절까지…. 야구와 씨름 중계 전문 캐스터로 활약해 온 이규항 전 KBS 아나운서실장(82)은 유려한 말솜씨와 정확한 우리말 구사로 팬들에게 목소리가 익숙한 ‘전설의 아나운서’다. 그런 그가 35년간 재직해왔던 KBS를 퇴직한 후에 뜻밖에도 불교의 선(禪)과 중도(中道)를 ‘수학의 0’과 ‘음식맛’으로 풀어낸 ‘부처님의 밥맛’(동아시아)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일본에서 ‘0의 행복’이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가톨릭 신자인 그가 불교에 빠져들고, 활발한 저술과 강연활동에 나서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가 인생에서 고비를 맞은 것이 50대 초반이었다. 술을 즐기던 그는 어느 날 음주 도중 심장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쓰러졌다. 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고 회복하던 중 그는 갑자기 ‘아, 이것이 바로 0의 행복이구나!’ 하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법열(法悅·깨달음의 황홀한 기쁨)이 온 것이었다. 그는 “살았구나! 다시 술을 마실 수 있겠구나 하는 기쁨이 아니었다”며 “‘0의 평상심’을 느끼게 해준 병상은 깨달음의 보리수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30년간 불교의 중도, 유교의 중용(中庸) 등 동서양의 종교와 과학, 수학을 연구해 ‘중도’와 ‘중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이 책을 펴냈다. 그가 내놓은 ‘염불(念佛)’에 대한 해석은 흥미롭다. ‘염(念)’자를 풀어보면 ‘지금(今) 마음(心)’이란 뜻으로, 염불은 바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마음자리의 위치를 ‘처음 본래의 마음’으로 이동하는 행위라는 것.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은 ‘공(空) 사상’의 본질이 바로 숫자 ‘0’과 같습니다. 수학시간에 배운 x, y 좌표 평면이 있다면, 우리 마음자리는 시시각각 양수(+)와 음수(―)를 오가고 있지요. 내 경우 음주와 쾌락의 생활에서는 플러스(+)에 있었고, 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있을 때는 마이너스(―)에 있었습니다. 병상에서 내 마음자리가 ‘0’이 되었을 때 비로소 최상의 평안함과 행복감을 느끼게 된 거죠.” 그는 인도 카필라국의 태자였던 석가모니 부처가 깨닫는 과정도 숫자 ‘0’으로 설명한다.“붓다는 29세에 출가한 후 5년 6개월간 몸을 극도로 괴롭히는 고행(苦行) 수행을 합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죠. 이후 고행 수행을 포기하고, 우유죽으로 기운을 차리고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갑니다. 이른바 ‘재수(再修)’를 해서 40일 만에 깨달음을 얻게 되죠. 태자 시절 세속 최고의 ‘단맛’(+)을 보고, 출가 후 고행하며 최고의 ‘쓴맛’(―)을 본 다음, 제3의 세계인 중용(中庸)에서 최고의 행복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중도란 단순히 평균적인 중간값이 아닙니다. 양극단의 플러스와 마이너스 생활을 체험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깊은 깨달음입니다.” 그는 책에서 일상생활에 밀접한 ‘음식의 맛’으로도 중도를 설명한다. 밥맛, 물맛을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최고의 ‘0의 맛’으로 설정하고, 플러스(+) 쪽에 붉은 살 생선, 과일, 해산물을 넣고, 마이너스(―) 쪽에는 김치, 고추, 씀바귀, 고수까지 도표로 꼼꼼하게 정리한 도표는 매우 흥미롭다. “호박 맛을 알게 되면 인생의 철이 든다고 합니다. 호박보다 더 맛없는 인생의 맛을 경험했다는 뜻이죠. 씀바귀나 고추, 보리밥이 마이너스(―) 성질을 갖고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맛과 취향에는 우열이 없죠. 우리 인생에도 플러스의 1세계, 마이너스의 2세계, 0의 제3세계를 무차별심(無差別心)으로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알아야 진정한 0의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불교는 바로 일상의 철학인 셈이죠.” 그는 현직에 있던 시절 KBS한국어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했고, 퇴직 후에도 올바른 우리말 발음법 관련 책 저술과 강의를 계속해오고 있다. ‘표준 한국어 발음사전’(공저) 편찬에 참여한 그는 지금도 ‘걸어다니는 발음사전’으로 불린다. 그는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진행자들이 너무 공격적인 말투가 많아 듣기 괴로울 때가 많다”며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훈민정음’이란 새로운 문자를 가르치고(訓民), 올바른 발음(正音)을 가르친다는 뜻이었는데, 요즘 방송에서는 정확한 우리말 발음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970년대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고교야구부터 1982년 출범한 KBO 프로야구, 이만기 강호동이 모래판을 뒤집던 천하장사 민속씨름 전성기 시절까지…. 야구와 씨름중계 전문캐스터로 활약해 온 이규항 전 KBS아나운서 실장(82)은 유려한 말솜씨와 정확한 우리말 구사로 팬들에게 목소리가 익숙한 ‘전설의 아나운서’다. 그런 그가 35년간 재직해왔던 KBS를 퇴직한 후에 뜻밖에도 불교의 선(禪)과 중도(中道)를 ‘수학의 0’과 ‘음식맛’으로 풀어낸 ‘부처님의 밥맛’(동아시아)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일본에서 ‘0의 행복’이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가톨릭 신자인 그가 불교에 빠져들고, 활발한 저술과 강연활동에 나서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가 인생에서 고비를 맞은 것이 50대 초반이었다. 술을 즐기던 그는 어느날 음주 도중 심장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쓰러졌다. 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고 회복하던 중 그는 갑자기 ‘아, 이것이 바로 0의 행복이구나!’하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법열(法悅·깨달음의 황홀한 기쁨)이 온 것이었다. 그는 “살았구나!, 다시 술을 마실 수 있겠구나 하는 기쁨이 아니었다”며 “‘0의 평상심’을 느끼게 해준 병상은 깨달음의 보리수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30년 간 불교의 중도, 유교의 중용(中庸) 등 동서양의 종교와 과학, 수학을 연구해 ‘중도’와 ‘중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이 책을 펴냈다. 그가 내놓은 ‘염불(念佛)’에 대한 해석은 흥미롭다. ‘염(念)’자를 풀어보면 ‘지금(今) 마음(心)’이란 뜻으로, 염불은 바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마음자리의 위치를 ‘처음 본래의 마음’으로 이동하는 행위라는 것.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은 ‘공(空) 사상’의 본질이 바로 숫자 ‘0’과 같습니다. 수학시간에 배운 x,y 좌표 평면이 있다면, 우리 마음자리는 시시각각 양수(+)와 음수(-)를 오가고 있지요. 내 경우 음주와 쾌락의 생활에서는 플러스(+)에 있었고, 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있을 때는 마이너스(-)에 있었습니다. 병상에서 내 마음자리가 ‘0’이 되었을 때 비로소 최상의 평안함과 행복감을 느끼게 된거죠.” 그는 인도 카필라국의 태자였던 석가모니 부처가 깨닫는 과정도 숫자 ‘0’으로 설명한다. “붓다는 29세에 출가 후 5년6개월간 몸을 극도로 괴롭히는 고행(苦行) 수행을 합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죠. 이후 고행수행을 포기하고, 쌀로 지은 우유죽을 먹으며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갑니다. 이른바 ‘재수(再修)’를 해서 40일만에 깨달음을 얻게 되죠. 태자 시절 세속 최고의 ‘단맛’(+)을 보고, 출가 후 고행하며 최고의 ‘쓴맛’(-)을 본 다음, 제3의 세계인 중용(中庸)에서 최고의 행복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중도란 단순히 평균적인 중간값이 아닙니다. 양극단의 플러스와 마이너스 생활을 체험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깊은 깨달음입니다.” 그는 책에서 일상생활에 밀접한 ‘음식의 맛’으로도 중도를 설명한다. 밥맛, 물맛을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최고의 ‘0의 맛’으로 설정하고, 플러스(+) 쪽에 붉은살 생선, 과일, 해산물을 넣고, 마이너스(-) 쪽에는 김치, 고추, 씀바귀, 고수까지 도표로 꼼꼼하게 정리한 도표는 매우 흥미롭다. “호박 맛을 알게 되면 인생의 철이 든다고 합니다. 호박보다 더 맛없는 인생의 맛을 경험했다는 뜻이죠. 씀바귀나 고추, 보리밥이 마이너스(-) 성질을 갖고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맛과 취향에는 우열이 없죠. 우리 인생에도 플러스의 1세계, 마이너스의 2세계, 0의 제3세계를 무차별심(無差別心)으로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알아야 진정한 0의 행복을 느낄수 있습니다. 불교는 바로 일상의 철학인 셈이죠.” 이 전 아나운서는 “0을 발견한 붓다는 위대한 사상가이자 수학자”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기호를 말할 때는 ‘공일공(010)’으로 읽고, 숫자를 말할 때는 ‘영점일’(0.1)로 읽듯이 부처의 ‘공(空)’사상과 숫자 ‘영(0)’은 같은 말이라는 뜻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득도한 시기는 B.C 6세기입니다. 그로부터 1000년 뒤인 A.D6세기 경에 인도에서 숫자 ‘0’이 발견됩니다. 부처의 ‘공/중도 사상’이 인도인들의 사유를 지배한 결과 0이란 개념이 잉태된 것입니다. 0이 발견된 후 현대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인도에서는 건물의 가장 아랫층을 0층으로 부릅니다. 0층이란 개념은 영국, 프랑스 등 유럽으로 퍼져나갔죠. 0은 다른 숫자가 감히 뺄 수도 나눌 수도 없고, 아무리 큰 숫자도 0에 곱하기만 하면 없어지고 말죠. 이런 연유로 0은 수학의 세계에서 가장 뒤늦게 편입됐으면서도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적인 숫자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수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인 0은 불교적 세계관으로 가능했습니다.” 이 전 아나운서는 재직시절 KBS한국어연구회 회장으로서 퇴직 후에도 올바른 우리말 발음법 관련 책과 강의도 계속해오고 있다. ‘표준 한국어 발음사전’(공저) 편찬에 참여한 그는 지금도 ‘걸어다니는 발음사전’으로 불린다. 그는 특히 표의문자로서 동음이의어가 많은 한글의 경우 장단음(長短音) 구분을 잘 해줘야 명확하게 뜻을 전달하고, 리드미컬한 우리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요즘 TV뉴스에서 ‘일본에게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이럴 때는 ‘사’자를 장음으로 발음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를 단음으로 짧게 발음하면 일본에게 ‘먹는 사과’(apple)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 돼 우스꽝스럽게 돼버리고 말죠. 전세계 공영방송에서는 국민들에게 교육용으로 표준어 발음을 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는데, 요즘 우리 TV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진행자들이 너무 공격적인 말투, 거친 비속어를 많이 써 TV소리가 듣기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이 전 아나운서는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훈민정음’이란 새로운 문자를 가르치고(훈민·訓民), 올바른 발음(정음·正音)을 가르친다는 뜻”이라며 “한글이란 말에서 ‘문자’만 가르치고, 정확한 우리말 발음과 음악성 교육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은 한국어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대자연의 위대함을 담다.’ 삼성전자의 셰프컬렉션 냉장고는 미슐랭 스타 셰프들의 인사이트를 반영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삼성전자는 최근 셰프컬렉션의 외관과 내부를 완전히 바꾼 ‘뉴 셰프컬렉션’ 제품을 새로 내놨다.》뉴 셰프컬렉션은 밀레니얼 감각의 명품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해 유럽지역 전문업체와 협업을 진행하고, 소비자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마레 블루, 세라 블랙, 혼드 네이비, 혼드 베이지, 혼드 라이트 실버 등 5가지 도어 패널을 선보였다. 개인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어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예술작품을 빚는 장인 정신을 추구했다는 평가다. 특히 ‘마레 블루(MARE BLUE)’는 명품 자동차 브랜드인 ‘마세라티’, 유명 주방가구 브랜드 ‘보피’ 등과 협업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금속 가공 전문업체 ‘데카스텔리’와 컬래버레이션(협업)한 작품이다. 심해의 고요한 울림과 밝은 생명력, 해수면에 내려앉은 빛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웠다. 인상파 화가의 작품처럼 빛이 반사되는 정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섬세한 터치로 일상 속에서 다양한 영감을 선사한다. 데카스텔리가 글로벌 가전제품과 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데카스텔리의 장인들이 패널 하나하나를 수작업으로 완성했기 때문에 같은 패턴이 하나도 없다. 마레 블루 컬러의 셰프컬렉션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바위의 질감을 세심하게 구현한 ‘세라 블랙(CERA BLACK)’은 자연의 풍경을 집 안으로 고스란히 들여온 느낌이다. 차별화된 편안함과 묵직함이 느껴지는 세라 블랙은 스페인 발렌시아산 100% 천연 세라믹으로 제작됐다. 천연 재료로 만들었기 때문에 친환경적인 것은 물론이고 스크래치에 매우 강한 탁월한 내구성을 자랑한다. 입체적인 질감이 느껴지는 ‘혼드 시리즈’는 메탈 특유의 서늘함은 덜고 따뜻함을 더했다. 우아한 베이지, 신비로운 네이비, 모던한 라이트 실버의 세 가지 폭넓은 컬러로 원하는 감성을 담아 주방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셰프컬렉션은 5가지 다채로운 패널 소재는 물론이고 냉장고 도어 모서리에 있는 ‘엣지 프레임’까지 원하는 대로 조합할 수 있다. 패널을 액자 속 예술작품처럼 담을 수 있는 엣지 프레임은 황금빛 코퍼와 다크 크롬 중 소비자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뉴 셰프컬렉션은 도어 패널뿐만 아니라 더 깊고 넓어 보이는 ‘블랙 글라스’로 내부 디자인까지 새롭게 업그레이드했다. 기존의 복잡한 선반 구조를 과감히 제거한 여백의 미가 돋보인다. 도어를 여는 순간 자연광이 반사되면서 시원한 공간감을 경험할 수 있다. 외부 패널뿐 아니라 내부 수납 구조까지 보관 식품과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맞춤형으로 선택할 수 있다. 특히 ‘비스포크 수납존’은 195만 건의 소비자 식품 구매 패턴을 빅데이터로 분석해 사용자에 따라 보관 식품이나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 개발됐다. 이재승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부사장)은 “뉴 셰프컬렉션은 보다 진화한 개인 맞춤형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비스포크 개념을 외부에서 내부까지 확장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뉴 셰프컬렉션은 비스포크 냉장고, 그랑데 AI(인공지능) 세탁기·건조기에 이어 삼성전자의 세 번째 프로젝트 프리즘(맞춤형 가전) 제품이다. 뉴 셰프컬렉션은 도어 패널(5종)과 엣지 프레임(2종), 비스포크 수납존(5종), 정수기 등 편의 기능 구성(3종)에 따라 소비자가 선택 가능한 조합이 총 150가지에 이른다. 양혜순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상무는 “기존 셰프컬렉션이 중장년층을 겨냥했다면 뉴 셰프컬렉션은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을 뺏을 수 있도록 연구했다”며 “일반적인 양산 제품이 아니라 예술적 개념을 냉장고에 들여온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최하림 시인 10주기를 맞아 국제한인문학회(회장 박형준)가 주최하는 제20회 전국학술대회가 11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기아자동차 BEAT360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는 최하림 시인의 고향인 신안군의 박우량 군수와 최하림 시인의 아내 장숙희 여사 및 유족, 그리고 그의 시를 사랑하는 제자 및 후배시인과 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인의 시세계를 조명하는 다채로운 산문과 논문 발표로 이루어졌다. 이번 학술대회는 그의 시세계 및 문화 평론가로서의 면모, 제자 및 후배 문인들의 회고를 통해 이제까지 산발적으로 전개돼온 최하림 시인의 생애를 총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학술대회는 산문 발표와 논문 발표로 진행됐다. 산문발표에는 그와 각별한 인연을 맺은 후배 시인들인 김선태, 임동확과 제자 시인들인 이승희, 이병률, 이향희, 이원, 그리고 유족인 따님 최승린 소설가가 참여하여 최하림 시인을 추모했다. 최하림은 한국시사에서 순수와 참여 사이에 새로운 대안으로 중용의 미학, 풍경의 시학을 펼쳐냈고, 시작 초기에는 고향인 신안군과 목포를 중심으로 연극 활동을 펼치는 등 문화기획자로서도 탁월한 활동을 남겼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이후에도 ‘산문시대’ 동인, 미술 평론 및 시론가로서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최하림 시인은 서울예술대학 문창과에 1984년 9월부터 1987년까지 약 4년간 출강을 하였는데, 그때 만난 제자들이 장석남, 이기인, 이승희, 이병률, 이향희, 이원 등이다. 최하림 시인의 서울예대 첫 제자인 장석남은 “내 생애에서 가장 큰 그늘”이었던 선생님이 ‘참 나’를 깨우쳐 준 과정을 마당가 한 모퉁이에 심은 배추꽃의 피어남을 통해 담백하면서 절절하게 표현했다. 이기인은 선생님께서 새로 이사 간 집에 마당 울타리로 삼기 위해 측백나무 40그루를 사러 가던 길에 동행하면서 느낀 소회를 통해 삶의 자양분으로 시가 일어서고 “고통을 행복으로 만드는 사람의 가련한 애씀”이 시라는 것을 전했다. 이승희는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고 자연과 사물을 대하는 마음”으로 개인과 사회의 균형을 취하시던 시인을 회고했다. 이병률은 “엄격했던 하지만 따뜻했던” 선생님의 시 수업 시간과 선생님의 조언으로 시동인을 만들어 활동하던 시기를 회상했다. 이원은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두 달 전인 2010년 2월 18일에 북한강변에서 열렸던 ‘최하림 시 전집’ 출간 기념회 풍경과 “시인의 초상”을 갖고 계셨던 선생님의 모습을 전달했다. 방송드라마 작가인 이향희는 “글이 돈이 된다는 것은 꽃과 같은 것이다”라는 선생님의 격려를 통해 방송드라마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사연과 수십 명의 제자들이 그렇게 남몰래 선생님께 선물을 받았음을 들려주었다. 제자 시인들은 최하림 시인의 제자로서 그의 문학세계에 젖줄을 댄 나이테에서 흘러나온 사랑과 말씀 덕분에 간신히 삶을 배우고 시를 쓸 수 있었음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선생님에게 배운 것은 나이테 같은 것이다. 나무 안에서 생겨나고 있는 나이테. 그 느낌에 가 닿으면, 선생님의 시를 읽는 순간처럼, ”넉넉하다 할 수는 없겠지만/허기는 면할 수 있을 것 같“(‘저녁 시간’)은 둥금이 내게서 감지되고는 한다. 내가 기억하는 한, 선생님은 애써 구부리시는 예가 없었다. 당신에게 찾아온 병에 대해서도 창 밖 소나무를 보듯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시인의 초상’을 갖고 계셨다.” (이원, ‘선생님은 거기 계시다’ 부분) 후배 문인들인 김선태, 임동확의 글에서는 선배 시인으로서 후배 문인들을 대하던 최하림의 따뜻한 풍모와 함께 개인과 시대 사이에서 고민하던 선생님의 시 세계에 대한 체험적인 회고담을 엿볼 수 있다. 김선태는 최하림 선생님이 문학 청년 시절을 보냈던 1950년대 중반에서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의 목포 문단의 분위기를 전했다. 아울러 고향 후배 문인으로서 최하림 기념 사업을 향후 어떻게 전개해야 하는지 그 대안에 대해 진실하고 명료한 방향성을 갖고 제안했다. 임동확은 문학은 일종의 무의식과 같으며 억압이 지나친 시대를 만나면 복류(伏流)하다가 분출할 기회를 갖는 물과 같다는 최하림 시인의 말을 들려준다. 임동확은 선생님의 ‘순수주의’가 지닌 내면적인 ‘침묵의 말’, ‘정적의 소리’가 또한 공동체의 운명과 함께 하는 역사성을 포함하고 있는 ‘역사주의’와 궤를 같이 하고 있음을 짚어준다. 유족을 대표하여 아버지 최하림 선생님을 회고하는 글을 준 따님 최승린 작가의 글도 가슴을 울렸다. “시인 최하림이 아닌, 내 아버지 최하림에 대한 나만의 그림”을 담은 따님의 글은 선생님의 시가 “기도”였음을,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날아올라 하늘에 닿는 것”이라는 것을 따뜻하게 전해준다. 이어진 논문 발표에서는 최하림 시인의 작품 세계를 짚어보는 총 7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박시영(광주 선명학교 교사), 김익균(동국대 강사), 박옥순(한국교통대 강사), 박슬기(한림대 교수), 김춘식(동국대교수), 최현식(인하대 교수), 손현숙(고려대 강사) 등 총 7명의 학자들이 최하림 시인의 생애와 문학적 연대기, 시론 및 역사 의식, 그리고 후기 시에서 보이는 바라봄과 내면 의식, 물 이미지 등 그의 시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 논문 발표에서도 알 수 있듯 최하림 시인은 내면적으로 윤동주와 그리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김수영과 닮았다. 최하림의 시와 글에는 윤동주처럼 작은 것에도 부끄러워하고 물에 비친 자신에게서 세상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는 모습이 어른거린다. 또한 시론 활동이나 우리 미술평을 통해 사회와 역사에 대해 비판적인 의식을 지닌 김수영 같은 지사적인 면모와 아울러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사랑을 담아냈다. 이번 학술대회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최하림의 10주기인 4월 말에 개최하려던 학술대회가 미뤄졌다가 개최됐다. 한편 국제한인문학회는 최하림 시인의 기일에 맞춰 지난 4월에 선생님을 추모하는 후배 문인들과 제자 문인들이 엮은 소산문집 ‘나는 뭐라 말해야 할까요?’를 발간한 바 있으며, 이번 학술대회에 발표된 논문을 중심으로 내년에 기념논문집을 발간할 예정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울 종로구 서촌의 한 골목에서 만난 그녀의 치마에는 ‘태평장춘’(太平長春)’이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태평’은 나라가 안정되어 아무 걱정없이 평안하다는 뜻이고, ‘장춘’은 어느 때나 늘 봄빛 같다는 말이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조선왕실 궁중보자기 유물에 새겨진 글씨였다. 궁중보자기에는 한 쌍의 봉황, 모란꽃, 석류와 같은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에서 제니와 로제 씨가 입은 봉황무늬 크롭탑, 분홍색 도포에 새겨진 무늬가 바로 이 문양이예요. 조선왕실 궁중보자기 유물에서 새겨진 패턴이죠.” 한복브랜드 단하주단의 대표 디자이너 단하 씨(30). 4인조 걸그룹 블랙핑크의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공개된지 8일 만에 최단기간 조회수 2억회를 돌파하는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서 그는 가장 힙한 한복디자이너로 떠올랐다. 블랙핑크는 네 명의 멤버 모두가 샤넬(제니), 생로랑(로제), 셀린(리사), 버버리(지수) 등 명품 패션하우스를 대표하는 뮤즈다. 이번 뮤직비디오에서도 알렉산더 맥퀸 2020 리조트 컬렉션, 샤넬 S/S 2020 의상 등 화려한 명품 컬렉션을 선보인다. 미국 패션잡지 보그는 ‘럭셔리 컬렉션 런웨이 패션을 담은 화려한 오락물’이라고 평할 정도다. 그런데 마지막 하이라이트 군무 장면에서 블랙핑크는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블랙핑크의 패션 하나하나를 분석하는 전세계 매체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또한 지난달 26일(미국 현지시간) 미국 NBC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복 의상만 입고 춤을 췄다. 미국 패션잡지 엘르는 “4명의 소녀들이 한국 전통의상인 한복에 현대적인 분위기를 가미해 개성있는 스타일로 연출한 장면에 가장 큰 관심이 쏠렸다”고 보도했다. 유튜브에선 블랙핑크의 개량한복을 입은 해외 팬들의 커버댄스 영상이 벌써부터 쏟아지고 있다. 7일 서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단하 씨는 “갑자기 쏟아진 글로벌한 관심이 아직도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뮤직비디오가 나온 후 해외에서의 반응은. “블랙핑크가 입은 한복은 원래 저희 회사 온라인숍에서 팔던 제품이다. 뮤직비디오 공개 후 온라인숍에서 한복을 구매하려는 해외팬들의 방문이 하루에 3000~4000명 씩 이어지고 있다. 있다. 미국 쪽이 50% 이상이고, 나머지는 유럽과 중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지역 팬들이다. 팬클럽이나 현지 편집숍 같은 곳에서 단체로 대량구매 주문도 들어온다. 그동안 동양여성의 전통의상이라고 하면 ‘기모노’를 떠올렸는데, 이제는 ‘한복’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진 게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블랙핑크가 입은 한복은 어떤 옷인가. “제니 씨가 입은 분홍색 의상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입고 다니던 겉옷인 ‘도포’다. 한복에서여자 저고리, 치마 만들 때 잘 쓰는 ‘노방’이라는 소재로 만든 투명한 시스루 옷이다. 단하주단 온라인숍에서 52만 원에 팔리는 옷인데, YG에서 구매해 간 후 무대에서 춤출 때 편하도록 리폼을 했다. 총 길이 74cm인 도포의 하단을 잘라 배를 드러내는 짧은 자켓으로 연출했고, 남은 천은 아래에 둘러 치마처럼 표현했다. 도포 위에 덧입은 배자는 겨울에 방한용으로 입는 조끼다. 로제 씨가 입은 크롭탑(14만 원)은 조선시대 여성 속옷인 ‘가슴가리개’를 밖으로 노출한 의상이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조선시대 궁중보자기에서 사용된 봉황문 무늬를 새겨 넣어 우아한 느낌을 주었다. 그 위에 입은 검은색 겉옷은 ‘철릭’(88만 원)으로, 조선시대 무관들이 입었던 공복이다. 원래 철릭은 붉은색이나 다양한 색이 있었는데, 검은색은 잘 입지 않았다. 제가 특이하 검정색으로 만들었다. YG측에서 블랙과 핑크색 의상을 주로 골라서 사간 것 같다.(웃음)” ―YG나 블랙핑크 하고는 어떤 인연이 있었나. “YG스타일리스트가 저희 회사 홈페이지나 인스타그램을 보고 연락을 주신 것 같다. 블랙핑크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기 2주 전 쯤인 6월 초 쯤에 YG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한복진흥센터에서 주최하는 신진 한복디자이너 공모전에 서류를 접수하기 위해 원주에 다녀오던 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YG측에서 여러 가지 옷을 검토한 후에 구매해갔다. 사람들은 제가 금수저로 태어나 인맥 넓어 누군가가 YG에 꽂아준 줄 안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아무런 네트워크도 없는, 설립한지 2년차 밖에 안되는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젊은 디자이너일 뿐이다. 지난해 10월에 캐나다 밴쿠버 패션위크에 선 적이 있는데, 제니와 로제 씨가 입은 한복도 그 때 출품됐던 작품이다. 아마도 YG스타일리스트가 그 패션쇼를 눈여겨보고 연락을 주신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단아 씨는 대학에서 중어중문학과를 전공한 후 제주도 카지노에서 딜러와 영업직으로 일했던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이후 온라인 한복 대여사업을 시작한 그는 조선궁중복식연구원에서 조경숙 명인에게 전통한복과 궁중한복 제작법을 사사했다. 현재는 성균관대 의상학과에서 전통복식 궁중복식 연구 석박사 통합과정에 재학 중이다. 한복진흥센터에서 지원하는 신진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으며, 직원이 4명인 한복 브랜드 ‘단하주단’을 운영하고 있다. ―블랙핑크 뮤직비디오를 봤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블랙핑크가 엄청나게 많은 의상을 입고 뮤비를 찍었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최종편집본이 나오기 까지 블랙핑크가 저희 옷을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뮤비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YG에서도 진짜 극소수의 관계자들만 안다고 한다. 의상을 준비한 스타일리스트 팀도 최종 편집에 어떤 의상이 들어간지 모른다고 하더라. 뮤비가 공개되는 날 가슴을 졸이면서 카운트다운을 하면서 기다렸다. 뮤비 마지막 군무 장면에서 우리 한복을 입고 나오는 걸을 보고 직원들끼리 다같이 소리지르고, 하이파이브하고 난리가 났다. 미국 컴백무대인 지미 팰런쇼에서도 한복을 입고 나와서 더더욱 임팩트가 컸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과 방탄소년단(BTS)이 한복을 즐겨 입은 영향으로 한복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킹덤’이 나온 후 아마존에서는 한국의 전통모자인 ‘갓’을 구매하려는 열풍이 불었다. 최근 BTS의 멤버 슈가도 솔로곡 ‘대취타’에서 한복을 입고 나온다. 김민경 한복진흥센터장은 “최근 구글 트렌드에서는 ‘한복(hanbok)’이라는 키워드 검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며 “K팝이나 드라마는 한글로 전세계 팬들과 소통하기 때문에, 패션도 우리 고유의 한복을 당당히 내세우며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배꼽티’처럼 보이는 한복이 생소하다는 반응도 있다. “걸그룹이 본격적으로 한복을 입고 격렬한 댄스를 춘 것이 처음이다. 한복으로서는 노출이 심한 편이어서 더욱 그런 논란이 벌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해외에서는 반응이 좋다. 전통의상을 리디자인한 패션 중에 가장 힙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국내에서와 달리 세계 젊은이들에게 한복이 화려한 파티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같다. 만약 우리가 판매하는 한복의 원형 그대로 블랙핑크가 입고 나왔으면 이슈가 덜 됐을 것 같다. 오히려 무대에서 댄스 퍼포먼스형으로 커스텀(재가공)됐기 때문에 눈에 더 잘 띄고, 시너지 효과를 낸 것 같다. 한복은 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오랜세월 동안 다양한 유행을 겪었다. 특정시대 한복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이것도 새로운 한복의 유행이라고 자유롭게 생각하면 좋겠다. 해외에서 한복이 댄스 파티의상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한복 디자인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대학 졸업 후 20대 중반부터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캐리어에 한복을 싸가지고 다녔다. 미국이나 유럽의 관광지에 가서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기를 좋아했다. 한복을 여러벌 싸갈 수 없기 때문에 치마를 양면으로 제작했다. 한 쪽은 빨강, 다른 쪽은 파랑색으로 만들면 한 벌로 두벌의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한복을 만들 줄 모르니까 원단을 사다가 한복집에서 맞춰서 입고 다녔다. 이후 내가 직접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궁중복식연구원에서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해외에 가면 한복의 실루엣이 아름답다며 함께 사진 찍어달라, 어디서 살 수 있느냐, 내가 편집샵을 운영하는 데 납품해줄 수 있느냐는 문의가 쏟아졌다. 인스타그램에서 한복입은 사진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온라인 한복 대여숍을 열었다. 투잡으로 하다가 한복 대여사업 수입이 월급보다 훨씬 많아서 직장을 그만두고 2018년에 단하주단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블랙핑크 옷에 있는 궁중보자기 봉황문은 어떤 무늬인가. “영국에는 리버티 원단, 해리스트위드 원단처럼 각 나라를 대표하는 원단 패턴이 있는데, 우리나라도 충분히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원단 텍스타일 디자인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해왔다. 성균관대 의상학과 박사과정에 다니면서 공부하던 중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궁중보자기를 발견했다. ’태평장춘‘이라는 글씨의 뜻도 좋고, 봉황, 모란꽃, 석류, 불수문, 복숭아 문양이 아름다웠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서 궁중보자기 유물을 본 따서 하나하나 손으로 그렸고, 그걸 디지털화해서 리디자인한 후 특허를 냈다.” ―요즘엔 20대 여성들이 평소 나들이에도 한복을 많이 입는다. “예전에는 한복은 설날, 추석과 같은 특별한 명절에만 입는 옷이었는데, 요즘에는 한복이 일상생활에서도 자기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이 됐다. 외국인 관광객 뿐 아니라 국내의 젊은이들도 한복차림을 하고 익선동, 전주한옥마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으로 올린다. 고객들은 여고생부터 40대 후반까지 다양하다. 우리 온라인숍에서는 ‘허리치마’가 대표상품인데, 맞주름 바느질을 했기 때문에 속옷에 와이어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퍼지는 효과가 있다. 랩형식으로 둘러 입으면 되기 때문에 허리 사이즈 24~35인치까지 모두 입을 수 있다. 워낙 편하면서도, 화려하게 차려입은 효과가 나서 최고 인기상품이다. 지난해 허리치마로 크라우드 펀딩을 했는데 한달만에 4000만원 이상이 펀딩이 됐다.” 단하 대표는 ‘업사이클링 한복’으로도 유명하다. 버려진 웨딩드레스를 한복으로 고쳐 입는다거나, 플라스틱을 재생해서 만든 원단으로 한복을 만드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업사이클링 한복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언젠가 웨딩샵에서 입지도 않는 드레스가 무수히 버려지는 장면을 봤다. 웨딩드레스에 쓰이는 원단은 고급 실크와 레이스로 엄청난 재료비와 공임이 들어간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혼식 드레스를 찾을 때 항상 ‘신상품’을 먼저 찾는다. 그래서 반시즌만 지나도 유행이 지났다고 버려지는 드레스가 많다. 한번도 입지 않았는데도. 그런 웨딩 드레스를 해체해서 하나의 원단을 만들어 전통한복으로 재탄생시켜서 서촌의 ‘풍류관’에서 전시를 한 적이 있다. 웨딩드레스의 실크와 한복의 비단은 같은 소재인데다, 웨딩드레스가 흰색이라 다양한 색깔로 변화시키고 실험할 수 있어 무척 재밌는 재활용 과정이었다. 올해 9월에는 웨딩드레스를 업사이클링한 원단으로 왕의 복식인 곤룡포를 모티브로 한 신한복을 만들어 전시할 예정이다. 또한 자연섬유와 페트병에서 추출한 원사를 섞어서 만든 리사이클 원단으로 사람에게도 친환경적인 한복을 만드는 작업도 꾸준히 할 계획이다.” ―앞으로의 포부는. “중국에 상하이탕이라는 명품브랜드가 있다. 중국 전통의상인 치파오를 판매하는 브랜드다. 상당히 고가인데 전세계 주요 백화점에 다 입점돼 있다. 우리 한복브랜드도 K팝 열풍을 타고 세계에 많이 알려져서 백화점 1층에 샤넬 옆에 명품브랜드로 입점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K팝과 드라마의 한류 열풍 덕분에 글로벌 패션시장에서 ‘한복’이 가장 핫한 의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4인조 걸그룹 블랙핑크가 최근 발표한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는 발매 8일 차에 최단기간 유튜브 조회수 2억 뷰를 달성해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특히 블랙핑크는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미국 NBC TV ‘더 투나이트 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서 한국 전통의 봉황 문양이 새겨진 저고리와 한복 치마를 입고 등장해 전 세계에서 동시 접속한 팬 21만 명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유튜브에선 블랙핑크의 개량한복을 입은 해외 팬들의 커버댄스 영상이 벌써부터 쏟아지고 있다. 블랙핑크의 한복을 만든 주인공은 ‘단하주단’ 대표인 단하 씨(30). 7일 서울 종로구 서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갑자기 쏟아진 관심이 아직도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뮤직비디오가 나온 후 해외에서의 반응은…. “블랙핑크가 입은 한복은 원래 저희 회사 온라인숍에서 팔던 제품이다. 뮤직비디오 공개 후 온라인숍에서 한복을 구매하려는 해외 팬들의 방문이 하루에 3000∼4000명씩 이어지고 있다. 미국 쪽이 절반 이상이고, 나머지는 유럽과 아시아 지역 팬들이다.” ―블랙핑크 무대의상으로 개량된 한복은 어떤 옷인가. “제니 씨가 입은 분홍색 의상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입고 다니던 겉옷인 ‘도포’다. 단하주단 온라인숍에서 52만 원에 팔리는 옷인데, YG에서 무대에서 춤출 때 편하도록 손질을 했다. 총길이 74cm인 도포의 하단을 잘라 배를 드러내는 짧은 재킷으로 연출했고, 남은 천은 아래에 둘러 치마처럼 표현했다. 로제 씨가 입은 크롭톱(14만 원)은 조선시대 여성 속옷인 ‘가슴가리개’를 밖으로 노출한 의상이다. 조선시대 궁중보자기에서 사용된 봉황문을 새겨 넣었다. 그 위에 입은 검은색 철릭(88만 원)은 무관들이 입던 공복이다.” ―국내에서는 ‘배꼽티’ 같은 한복이 생소하다는 반응도 있다.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해 남성그룹은 한복을 입은 뮤직비디오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걸그룹이 한복을 입고 격렬한 댄스를 추는 것은 처음이어서 그런 것 같다. 한복은 시대마다 유행이 있다. 세계인들에게 한복이 무대나 파티에 어울리는 의상으로 이미지를 가져가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김민경 한복진흥센터장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 히트를 친 후 아마존에서 ‘갓’이 인기리에 팔리고,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가 한복을 입으면서 구글에서는 ‘한복(hanbok)’이라는 키워드 검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소개했다. 단하 씨는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후 제주도 카지노에서 딜러로 일했던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이후 온라인 한복 대여사업으로 성공한 그는 조선궁중복식연구원에서 조경숙 명인에게 한복디자인을 정통으로 배웠다. 현재 성균관대 의상학과에서 전통복식 궁중복식 연구 석·박사 통합과정에 재학 중이다. ―블랙핑크와는 어떤 인연이 있었나. “사람들은 제가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줄 안다. 그러나 저는 인맥도 없는 2년 차 스타트업 디자이너일 뿐이다. 블랙핑크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기 2주 전쯤인가 YG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블랙핑크가 입은 한복은 지난해 10월 캐나다 밴쿠버 패션위크에 출품했던 작품인데, YG 스타일리스트가 이를 눈여겨봤던 게 아닐까 추측을 해본다. 최종 편집본에서 한복 의상 장면이 삭제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순간 직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앞으로의 포부는…. “20대 중반부터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한복을 가져가 사진 찍길 좋아했다. 외국인들은 의상이 무척 예쁘다고 하면서도 ‘기모노’냐고 묻기 일쑤였다. 더 많은 K팝 스타와의 협업을 통해 동양 전통의상의 대명사가 ‘한복’이 되길 기대한다. 세계 곳곳의 유명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중국의 고급 치파오 브랜드 ‘상하이탕’처럼, 우리가 만든 한복도 전 세계 백화점에서 명품 브랜드로 대접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광역자치단체에서 부시장, 부지사를 지낸 ‘행정의 달인들’이 후배 공무원들을 위해 저마다 간직해온 노하우를 풀어놓는다. 그것도 공무원 교육기관이 아니라 ‘공공문장 바로쓰기 운동’을 펴고 있는 공익법인에서다. 8~10일 서울 인사동 KCDF갤러리 교육장에서 진행되는 이 강의의 주인공은 권영규 전 서울시 부시장, 이재율 전 경기도 부지사, 전성수 전 인천시 부시장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개하기로 한 것을 ‘글 바르게 펴는 일은 세상 착하게 하는 일’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우리글진흥원의 김광시 이사장의 동참 요청에 따른 것이다. 서울시 공직자 출신인 김 이사장이 ‘세상 착하게 하는 일’에 나서줄 것을 권 부시장에서 요청했고, 권 부시장은 역시 서울시 출신인 전 부시장을 추천했고, 전 부시장은 이 부지사를 모셔왔다. ‘평생 경험의 나눔’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세 사람은 모두 행정고시 출신으로서 청와대에서 근무했으며 수도권 행정 협의를 맡았던 공통점이 있다. 권, 전 부시장은 서울시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이 맡은 강좌는 ‘행정의 달인들과 함께하는 실무 보고서 작성’. 권 부시장은 ‘칭찬받는 보고법’, 이 부지사는 ‘보고와 행정’, 전 부시장은 ‘정책보고서 작성과 실체’와 ‘보고서 실제로 써보고 피드백받기’이다. 수도권 ‘행정의 달인’이니 사실상 전국 최고의 달인들이 모인 셈이다. “공무원은 시민 행복을 디자인하는 사람이고, 얼마든지 즐겁고 창의적으로 공직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싶습니다.”(권영규 전 서울시 부시장) “무한돌봄, 골든타임 등 경기도에 재직하면서 펼친 행정을 중심으로 외로운 결정과 잘못된 보고, 지방자치의 발전 의미의 중요성을 말해주려고 한다.”(이재율 전 경기도 부지사) “공직에 있는 동안 매일 자문자답했던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답하고, 공급자 관점을 벗어나 시민·수요자 관점에서 공감·소통하는 노하우를 들려주려고 한다”(전성수 전 인천시 부시장)<보고하기 전, 최종 체크리스트>○메시지가 분명하고, 핵심을 앞 부분에 배치했는지○동일한 내용이 중복되어 있는 것은 없는지○각종 제시된 통계가 정확한지, 상호일치하는지○표기된 어휘나 외국어 등의 오탈자는 없는지○고객의 관점에서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은 없는지○분량이 한쪽이 넘는 경우, 더 줄일 수는 없는지○본 자료가 외부로 나가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없는지<보고의 타이밍>○언제까지 보고 드리면 되는지 ‘기한’ 반드시 확인○조금 부족하더라도 적시가 더 중요○장기간 검토가 필요한 경우, 필히 ‘중간보고’○나쁜 보고일수록 빨리!(이재율 전 경기도 부지사의 특강 ‘보고와 행정’) 3일짜리 보고서 교육에는 이들 외에도 허남식 전 행안부 서기관, 이코노미스트 편집장을 지내고 재정경제원 경제홍보기획단 등에서 근무한 백우진 글쟁이 대표까지 가세해 민관을 아우르는 ‘대한민국 최고의 보고서 작성 교육’인 셈이다. 공무원 대상으로 한 특강은 7월 이후 매월 이어진다. 우리글진흥원은 2011년 전현직 언론인과 작가, 시인, 광고인 등이 쉽고 바른 언어로 우리 사회의 소통을 촉진하고, 정직한 사회를 만들자며 결성한 공익법인이다. 우리 문화의 뿌리인 글과 말이 오염·훼손되지 않도록 공공문장 바로쓰기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공공문장 감수, 공직자 국어능력 향상교육, 공공문장 바로세우기, 영세자영업자나 소상공인,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글쓰기 교육 등의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울 광화문 광장에 거대한 ‘달항아리’가 등장했다. 6·25전쟁 70주년을 기념해 강익중 작가와 UN참전국 어린이 1만2000명이 협업해 만든 설치미술 작품 ‘광화문 아리랑’이다. 높이 8m에 이르는 정육면체 형태에는 4면에 달항아리가 그려져 있다. 위 아래 두 개의 그릇이 모여 달항아리 형상을 이루는데, 6·25 70주년을 상징하는 뜻에서 70초마다 90도씩 회전하며 움직이는 키네틱 조각이다. ‘달항아리’ 작가로 유명한 재미 설치작가 강익중은 2007년 12월에는 광화문 복원공사 현장에 2611개의 베니어합판에 달항아리를 그려넣어 모자이크처럼 엮은 대형 가림막을 선보인 바 있다. 강익중 작가는 “위쪽과 아래쪽을 별도로 만든 뒤 불가마를 통과해서 제작되는 달항아리는 너와 나, 남과 북, 나아가 전 세계를 연결하고 화합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달항아리는 둥그런 몸체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조선시대의 40cm~50cm의 대형백자 항아리를 일컫는 말이다. 항아리의 희고 깨끗한 살결과 둥근 생김새가 보름달을 연상시킨다하여 붙여진 것이다. 17세기 후반 무렵부터 18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달항아리는 순백의 아름다움으로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들로부터 흠모와 찬탄의 대상이 돼왔다. 백자 달항아리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기”라고 찬사를 보냈고 세계적 도예가인 버나드 리치도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라며 예술적 가치를 인정한 바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에는 피겨 여왕 김연아가 달항아리 모양의 성화대에 불을 붙여 지구촌 70억 여명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달항아리의 매력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서울 강남구 언주로 갤러리나우에서 30일까지 진행되는 ‘우리는 왜 달항아리에 매료되는가’. 강익중, 구본창, 김용진, 석철주, 신철, 오만철, 이용순, 전병현, 최영욱 등 9인의 대표적인 달항아리 작가가 참여했다. 전통 달항아리를 재현하는 도자기 작가부터 달항아리를 캔버스에 그리고, 사진으로 촬영하고, 철심과 도자부조, 한지부조로 달항아리를 형상화하는 등 달항아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다양한 작품이 전시된다.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이 사진작가 구본창의 달항아리 사진이다. 구본창은 1989년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도예가인 루시 리에(Lucie Rie)의 사진을 보고 달항아리에 매료됐다고 한다. “사진 속 루시 리에 옆에 놓여 있는 조선시대 백자를 본 순간, 그 큰 볼륨감과 완만한 선에 감동하게 됐고, 시간의 상처에 긁힌 흔적들과 하얀 속살같은 표면은 머나먼 고향을 떠나 낯선 외국인의 옆에 놓여 있는 백자의 서글픔을 강하게 느끼게 했다.” 이후 구본창은 유럽, 일본 등 전세계를 돌면서 박물관 수장고나 개인 컬렉션 유리장 속에 있는 조선백자 달항아리를 찾아다녔다. 그는 “한 사람의 인물사진을 촬영하듯 달항아리를 찍었다. 단순한 도자기 이상의 혼을 가진 그릇으로서 느껴졌다. 우리의 마음을 담고, 만든 이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용기(容器)로서 내면의 기운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달항아리는 아무런 무늬나 그림도 없이 순수한 흰색으로 된 둥근 항아리다. 고려청자는 물론 중국, 일본의 도자기가 발전할 수록 정교한 무늬와 그림을 담았던 것과 정반대의 길로 갔다. 무심한 듯 텅빈 항아리가 오히려 꽉찬 느낌을 준다. 백자 달항아리는 어떤 용도에 쓰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렇게 희고 큰 항아리에 고추장이나 간장을 담았을 리는 없을 듯하다. 왕실에서 의식용으로 사용했거나, 감상용 예술작품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미술사학자 최순우는 투명한 유약 아래 흰빛과 일그러진 원이 어우러진 달항아리의 ‘무심한 아름다움’에서 한국미의 뿌리를 보았다. 수화 김환기도 달항아리의 불가사의한 미감에 심취해 여러 점의 그림을 남겼다. 그는 이러한 글을 남겼다. “내 뜰에는 한 아름 되는 백자 항아리가 놓여 있다. 달밤일 때면 항아리가 흡수하는 월광으로 온통 달이 꽉 차 있는 것 같다. 한 아름 되는 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촉감이 동한다. 싸늘한 사기로되 따사로운 김이 오른다. 사람이 어떻게 흙에다가 체온을 넣었을까.” 실제로 지난 달 전남 장성의 희뫼요에 갔을 때 한옥 집 마루에 놓인 달항아리가 무척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달항아리가 실내에만 놓여져 있을 줄 알았는데, 뜰에 놓여 있는 흰색 달항아리에 꽃이 담겨 있는 풍경은 한옥의 선과 무척 잘 어울렸다. 밤에 둥근 달이 떠올랐을 때 그 아름다움은 절정에 달했다. 도예가인 신철 작가는 불가마에서 굽는 전통방식으로 1000점이 넘는 달항아리를 만들어왔다. 그는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어머니의 지극한 성품에 비유했다. “고려청자가 아무 공간에서나 잘 어울리지 못하는 귀족적인 미라면 달항아리는 어느 공간 어느 자리에 놓아도 함께 화합이 가능한 친숙함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 놓여진 공간감이 건축의 공간만큼이나 여유로움을 발하는 것도 달항아리만의 미덕이다. 어머니의 성품이다.” 파리의 에펠탑은 ‘라 담 드 페르’(La Dame de Fer)라는 애칭이 있다. 철로 만든 ‘귀부인’이라는 뜻이다. 에펠탑은 거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세련되고, 우아한 곡선미를 자랑한다. A자 모습으로 생긴 자태가 완만한 곡선으로 길게 하늘로 솟아 있으면서, 아랫 부분의 둥그런 아치형는 풍성한 드레스를 연상케 한다. 철골로 짜여진 구조는 바람을 통하게 하면서 기하학적 무늬를 만들어낸다. 마치 모자를 쓰고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로 성장을 하고 센 강에 외출하러 나온 귀부인의 자태를 보는 듯한 광경이다. 달항아리의 곡선도 한복을 입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조선의 귀부인을 연상시킨다. 에펠탑이 정교하게 수학적으로 계산된 공학의 산물이라면, 달항아리는 사람의 얼굴처럼, 사람의 몸매처럼 자연스럽다. 달항아리는 둥근 모양이지만 완벽한 원은 아니다. 마치 보름달이 되기 직전 이지러진 달의 모양이다. 완벽한 원은 폐쇄적인 느낌이 들지만, 달항아리는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라져 무궁무진한 감상의 즐거움을 준다. “달항아리는 두 개의 그릇을 합쳐 만들게 됩니다. 접착면인 허리 부분이 불속에서 서로 충돌하면서 생동감 있는 조형성을 만들어 내지요. 그릇이 포개지면서 물레방향이 어긋나서 벌어지는 양상입니다. 불속에서 그릇의 흙은 물레방향으로 운동을 하게 마련입니다. 보름달 직전의 이지러진 모습이 생겨나는 이유죠.” (신철 도예가) 재미 작가 강익중이 광화문에 설치한 대형 달항아리 작품도 위 아래가 구분돼서 돌아간다. 달항아리의 제작방식을 잘 이해하고 있는 작가의 현대적인 재해석인 셈이다. 각각 따로였던 두 개의 그릇이 만나 불에서 구워지면 보름달 같은 하나의 원을 이루는 것이다. 달항아리는 또한 입구가 넓고 받침대 부분이 작다. 때문에 보름달이 공중에 붕 뜬 것 같은 입체감을 준다. 최영욱 작가는 달항아리 표면의 무수히 많은 빙열(氷裂·도자기 표면의 균열)을 마치 도를 닦듯이 반복해서 그려낸다. 그는 “나는 달항아리를 그리는 것이 아니다. 달항아리처럼 살고 싶은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달항아리와 조용히 만나본 적이 있는가. 지극히 단순해 보이지만 극도로 세련된 그 피조물을 먹먹히 보고 있노라면 그건 이미 내 안에 들어와 내가 되어 버렸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가를 그는 이미 나에게 말해주고 있다. 내가 그린 ‘Karma’는 선에 그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선은 도자기의 빙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길이다. 갈라지면서 이어지듯 만났다 헤어지고 비슷한 듯하며 다르고, 다른 듯 하면서도 하나로 아우러진다.” 달항아리 작가인 도예가 권대섭 씨는 “달항아리는 입체에서도 제일 추상이다. 저는 전통을 잇고 싶어서가 아니라, 가장 현대적이기 때문에, 가장 미니멀하기 때문에, 가장 완벽한 추상이기 때문에 달항아리를 한다”고 말했다. 권대섭 도예가의 말처럼 달항아리는 끊임없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고 있는 대상이다. 김용진은 철사를 침처럼 세워서 달항아리의 모습을 재현해냈다. 그의 작업은 무한한 반복으로 얻어내는 결과다. 이주은 미술평론가는 그의 작업에 대해 “반복은 무의미가 아니다. 평범한 반복 속에 인간의 존재 이유가 담겨 있으며, 창조의 가능성이 내재돼 있다”고 말한다. ●달항아리 도자기, 그림, 사진 중에 어느 것이 가장 비쌀까달항아리를 집에 소장하고 싶은데, 도자기는 너무 비싸지 않을까? 국내외에 현존하는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는 20여 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해 5월 홍콩에서 열린 미술품경매장에서 과거 일본으로 반출됐던 ‘달항아리’가 약 25억원에 낙찰돼 팔렸다. 현대 작가들이 만든 달항아리도 수백~수천만원 대에 팔린다. 권대섭 작가의 달항아리는 2018년 10월 영국 런던 경매에서 5만2500파운드(약 7700만원)에 낙찰됐다. 이번 갤러리 나우에서 전시된 신철, 이용순 작가의 지름 40cm 이상의 달항아리는 약 1000~1200만원 대의 가격에 거래된다. 그렇다면 달항아리를 그린 사진과 그림은? 실제 도자기 달항아리보다 싸지 않다. 구본창의 달항아리 사진은 1300~2300만원, 최영욱의 달항아리 그림 ‘Karma’는 2100~4800만원의 가격표가 붙어 있다. 강익중이 그린 모자이크 작품 ‘Happy World’는 6000만원, 평면에 철심을 세워 달항아리를 재현한 김용진의 작품도 2500~6000만원 가량이다. 전통 골동품 달항아리가 아닌 이상, 달항아리의 미감(美感)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가의 독창적 감각에 많은 값어치가 붙는 셈이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중앙중고등학교교우회(회장 채정석)는 제112회 개교기념일(6월20일)을 맞아 한국어 연구에 공로가 큰 이규항(82) 전 KBS아나운서실장과 국내외 의료봉사활동에 평생을 바쳐 온 김종수(67) 서울대병원 명예교수를 제33회 ‘자랑스러운 중앙인’으로 19일 선정했다. ‘전설의 아나운서’로 불렸던 이 교우(48회 졸업)는 KBS 제2대 한국어 연구회장을 역임했으며 ‘표준 한국어 발음 사전’(공저) ‘재미있는 한국어의 미학’ 등의 저서로 한국어 연구에 기여한 공로로 1993년 한글날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는 1961년 KBS에 입사해 야구와 씨름 전문 캐스터로 활동하며 정확한 국어 구사와 유려한 말솜씨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983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천하장사 대회 결승전을 비롯해 이만기, 강호동의 민속씨름 전성기 시절의 주요 경기를 생중계했다. 또한 1970년대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고교야구는 물론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 이후 정확하고 깔끔한 중계로 야구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야구 이론에도 해박해 1977년 국내 최초로 출간한 야구 번역서인 ‘미국야구’는 야구인 이광환씨가 제주도에 세운 ‘야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1968년에는 ‘네 잎 크로바’라는 노래로 당시 문화공보가 주관했던 무궁화대상에서 남자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단법인 보라매후원회 회장인 김종수 교우(62회 졸업)는 서울대 의대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서울시보라매병원 교수를 역임하며 평생 의료봉사에 헌신해왔다. 김 교우는 2002년부터 국내외 저소득층, 난치환자 등 총 700명에 대한 진료를 지원했으며, 2011년부터 몽골·키르기즈스탄 지역의 보건의료 환경개선 지원사업을 벌여왔다. 또한 2015년 메르스 의료진 지원사업을 펼친 데 이어 올해는 코로나19 관련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과 서울 은평구 보건소에 의료용품을 지원하고, 본인이 직접 2개월간 중랑구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의료봉사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김 교우는 국내외 의료취약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한 공로로 2015년 ‘보령의료 봉사상’ ‘몽골 북극성 훈장’, 2017년 서울시봉사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한편 올해 신설된 평생공로상의 제1회 수상자로는 김강희 교우(53회 졸업)가 선정됐다. 김 교우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계원장학회 이사장직을 역임하며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펼쳐왔다. ‘자랑스러운 중앙인’ 시상식은 12월3일 중앙중고교우회 정기총회 및 송년회에서 열린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된 뒤 히트상품의 반열에 오른 제품들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SNS를 주도하는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의 반응을 살피며 제품을 기획하는 일이 필수적인 절차로 자리 잡아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뚜레쥬르가 빙그레 ‘메로나’와 컬래버레이션해 지난달 출시한 ‘뚜레쥬르×메로나’가 대표적인 사례다. ‘가성비’를 넘어 ‘가잼비’로1992년 출시된 빙그레 ‘메로나’는 여름 대표 빙과로 30년 가까이 사랑받는 장수 제품이다. 그런데 최근 SNS에서 ‘올 때 메로나’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면서 또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인터넷 유머글에서 유래한 이 말은 ‘집에 올 때 뭔가 사오라’는 인사말이다. “여동생이 혼자 집에 있었는데. 택배 아저씨한테 전화가 왔답니다. 택배 곧 도착한다고∼ 그리고 바로 언니한테 전화 왔대요∼ 집에 가는 길이라고∼ 동생이 언니한테 문자를 보낸다는 게∼ 그만 택배 아저씨한테…꾹꾹꾹. ‘올 때, 메로나∼’ 잠시 후 택배 아저씨 띵동∼ 문 열자 보이는 건 한 손엔 택배 또∼한 손엔 메로나∼.” 뚜레쥬르에서 ‘MZ세대 4인방’으로 불리는 베이커리본부의 김정(R&D), 정수진(상품기획), 전초롱(디자인), 한다운(마케팅) 씨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여름을 맞아 생기발랄하고 유머러스한 이미지의 메로나 아이스크림과 뚜레쥬르 빵을 접목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 결과 여름 한정판으로 출시된 제품들이 ‘올 때 메로나 빵’ ‘리얼 멜론 인 메로나’ 등이다. ‘얼려 먹는 메로나 아이스박스’는 멜론 맛 시트에 우유 크림과 멜론 크림을 발라 차갑게 먹는 아이스 디저트. 스틱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메로나 아이스박스가 나오는 슬라이딩 방식의 제품 패키지가 젊은 세대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고 인증 동영상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상품기획자 정수진 씨는 “더위로 지치기 쉬운 여름철을 대비해 정말 쿨하고 시원한 여름 디저트를 기획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평균 연령 29세인 ‘MZ세대 4인방’은 스스로를 ‘포노 사피엔스’로 규정한다.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고, 놀이처럼 일하는 신인류라는 의미다. 이들은 두 계절 정도를 앞서 산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9개월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해 제품을 탄생시킨다. ‘가성비’를 넘어 ‘가잼비’(가격 대비 재미)를 추구하는 MZ세대의 감성을 파악하고, 미래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다. 디자이너 전초롱 씨는 메로나 아이스크림을 손에 든 식빵 모양의 캐릭터를 개발해 SNS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편의점에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가 문득 빵 캐릭터가 메로나를 한가득 사들고 기분 좋게 걸어가는 모습이 떠올랐다”고 귀띔했다. ‘올 때 메로나’ 네이밍 과정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다운 씨는 “제 또래들은 일상적으로 쓰는 표현인데 모르는 분들이 많아 의사결정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며 “결국은 내부 투표까지 진행했는데, 다행히 ‘올 때 메로나’가 압도적인 호응을 얻어 제품명과 콘셉트 타이틀로 사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뚜레쥬르의 SNS 통한 히트상품 전략뚜레쥬르가 메로나와 협업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재미’였다. 이들은 빙그레가 바나나 우유 모양 왕관을 쓴 왕위계승자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라는 캐릭터와 메로나 아이스크림을 의인화한 ‘옹떼 메로나 부르쟝 공작’ 캐릭터를 만들어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있는 모습에 주목했다. 제품 출시 이후에는 빙그레와 공동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한 씨는 “빙그레 측에서 ‘옹떼 메로나 부르쟝’이 뚜레쥬르 메로나 제품으로 생일파티를 하는 사진을 게시했는데, 지금까지 진행한 SNS 마케팅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어 희열을 느꼈다”고 말했다. ‘리얼 멜론 인 메로나 생크림’ 케이크를 개발한 김정 씨는 “메로나의 시원한 맛을 냉장 온도의 크림 케이크에서 구현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멜론 모양을 내기 위해 케이크 겉면에 한층 한층 크림의 결을 살리는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뚜레쥬르는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한 상품 개발을 통해 올 상반기에 100만 개 이상 팔리는 히트 제품을 연이어 탄생시켰다. SNS에서 잇자국 인증샷을 유행시킨 ‘리얼 브라우니’, ‘겉꿀속치’(겉은 꿀, 속은 치즈라는 의미)라는 별명을 얻은 ‘치즈방앗간’ ‘몽블랑의 정석’ 등 히트 제품들은 업계에 유사 제품 출시 경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정 씨는 “우리가 좋아해야 고객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맛은 기본이고 재미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MZ세대의 ‘감성’을 뼛속까지 읽으려 한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