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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설민경 씨(26·사진)가 독일 명문 밤베르크 교향악단에 입단했다. 28일 전화로 만난 그는 “이달 15, 16일 이틀간 오디션을 거쳐 바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며 “첫 오디션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좋은 결과를 얻게 돼 ‘멍’하다”고 했다. 밤베르크 교향악단은 독일 중견 악단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명문 악단. 9월 정식 활동을 시작해 1년 뒤 단원 투표를 거쳐 종신단원 여부가 결정된다. 4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그는 예원학교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뒤 독일로 건너가 한스아이슬러 국립음대에서 수학했다. 현재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밟으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멘델스존 아카데미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설 씨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어머니를 꼽았다. 어머니 김미경 씨(55)는 1985년부터 서울시립교향악단 바이올린 파트에서 활동한 베테랑. 그는 “어머니로부터 다양한 지휘자 동료 음악과 함께해 즐겁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며 “어머니처럼 음악을 즐기는 단원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솔직히 ‘레전드’란 얘기를 들으면 어쩔 줄 모르겠어요. 음악은 여전히 힘들어요. 아니, 점점 더 어렵습니다.” 27일 서울 종로구 문호아트홀에서 열린 정경화(70)의 ‘아름다운 저녁(Beau Soir)’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는 숫자 ‘70’ 장식물이 꽂힌 케이크의 등장으로 시작했다.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경화는 26일 칠순을 맞았다. 33번째 정규앨범을 소개하는 자리였건만 ‘바이올린의 거장’은 긴 세월 그가 걸어온 길을 반추하는 듯했다. 6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켜온 그는 “30대에 두 아들을 낳으면서 음악행보에 제약에 생겼지만 음반작업은 꾸준히 했다”며 “매번 혼을 다하다보니 어느새 33번째다. 음반은 녹음할 때마다 새롭고 힘들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저녁’은 프랑크, 드뷔시, 포레 등 프랑스 대표 작곡가의 작품으로만 구성했다. 7년간 정경화와 음악적으로 동고동락해온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함께했다. 프랑스 작곡가 곡으로 완성한 음반은 이번이 세 번째. 정경화는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처음으로 녹음했다. 어릴 때부터 접근하기 어려웠던 곡인데 케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한국판 앨범에는 특별히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실렸다. 1987년 발매한 앨범 ‘콘 아모레’에 수록해 국내에서 사랑받았던 곡을 31년 만에 다시 녹음한 것. 그는 “모든 연주에는 연주자의 감정과 상황이 그대로 녹아 있다”며 “30대와 70대의 정경화가 들려주는 ‘사랑의 인사’가 어떤지 비교해 보시라”고 제안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과거의 연주는 정열적이고 이번 연주는 안정적이고 편하게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음악은 위로예요. 위로를 잘하려면 오로지 듣는 귀, 즉 관중만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관중을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관중을 위로하기 위해 1만 % 최선을 다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솔직히 ‘레전드’란 얘기를 들으면 어쩔 줄 모르겠어요. 음악은 여전히 힘들어요. 아니, 점점 더 어렵습니다.” 27일 서울 종로구 문호아트홀에서 열린 정경화(70)의 ‘아름다운 저녁(Beau Soir)’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는 숫자 ‘70’ 장식물이 꽂힌 케이크의 등장으로 시작했다.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경화는 25일 칠순을 맞았다. 33번째 정규앨범을 소개하는 자리였건만 ‘바이올린의 거장’은 긴 세월 그가 걸어온 길을 반추하는 듯했다. 6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켜온 그는 “30대에 두 아들을 낳으면서 음악행보에 제약에 생겼지만 음반작업은 꾸준히 했다”며 “매번 혼을 다하다보니 어느새 33번째다. 음반은 녹음할 때마다 새롭고 힘들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저녁’은 프랑크, 드뷔시, 포레 등 프랑스 대표 작곡가의 작품으로만 구성했다. 7년 간 정경화와 음악적으로 동고동락해온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함께 했다. 프랑스 작곡가 곡으로 완성한 음반은 이번이 세 번째. 정경화는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처음으로 녹음했다. 어릴 때부터 접근하기 어려웠던 곡인데 케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한국판 앨범에는 특별히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실렸다. 1987년 발매한 앨범 ‘콘 아모레’에 수록해 국내에서 사랑받았던 곡을 32년 만에 다시 녹음한 것. 그는 “모든 연주에는 연주자의 감정과 상황이 그대로 녹아있다”며 “30대와 70대의 정경화가 들려주는 ‘사랑의 인사’가 어떤지 비교해보시라”고 제안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과거의 연주는 정열적이고 이번 연주는 안정적이고 편하게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음악은 위로예요. 위로를 잘 하려면 오로지 듣는 귀, 즉 관중만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관중을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관중을 위로하기 위해 1만% 최선을 다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문화를 알기 전과 후의 삶이 많이 다릅니다. 문화는 우리의 ‘혼줄’입니다. 국민 대부분이 문화를 즐기는 문화 선진국이 됐으면 합니다.” 초허당(草墟堂) 권오춘 씨(81)는 문화계에서 오랫동안 ‘가난한 예술가들의 벗’이라 불려 왔다. 크고 작은 사업을 하며 모은 돈으로 1980년부터 37년간 예술가 350여 명에게 생활비와 자녀 학비 등을 후원했다. 지금까지 지원한 액수가 8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도 3000만 원을 기부했다. 이전에도 2억 원 상당의 객석 40석을 기부했다. 그는 20일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을 만나 “이탈리아 5대 오페라 작곡가의 작품을 기획해 달라”고 제안했는데, 이를 수락하자 공연 예산으로 3000만 원을 지원한 것이다. 초허당이 지난해 말 모교인 동국대에 기증한 그림 도자기 등 미술작품 312점이 다음 달 동국대 일산 바이오메디캠퍼스에 전시된다. 그는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37년간 모은 작품이 새로운 둥지를 찾아 기쁘다”며 “알고 지내던 작가들에게 정성(후원금)을 건네고 받은 작품들”이라고 전했다. 그는 왜 이렇게 문화계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까. 시작은 1980년대 우연히 목격한 부부싸움이었다. “화가인 남편은 ‘예술이 얼마나 중요한데’라며, 아내는 ‘그거 하면 쌀이 나오느냐’며 다투는 모습을 봤어요. 사연을 들어보니 양쪽 모두 일리가 있더군요.” 이후 화가 도예가 조각가들과 교류하며 차츰 예술에 눈을 떴다. 가난한 시골에서 6남매 막내로 태어나 남매 넷을 둔 가장이 되기까지 예술이라고는 모르고 살았던 그였다. 초허당은 “정갈한 마음과 힘든 상황에도 작업을 이어가는 의지에 매료됐다. 작게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남이 볼 땐 부러운 여유였겠지만, 그의 생활이 늘 풍족한 것도 아니었다. 부도 위기도 여러 차례 겪었고 생활비가 쪼들리는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수입의 20%를 늘 후원자금으로 따로 모았다. 큰돈이 아니더라도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가 항상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후원한 예술가 가운데 유명 작가나 대학교수가 된 이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런 이들을 만날 때마다 초허당은 늘 잔소리를 한다고 한다. “세속과 다소 동떨어진 삶에서 참된 감동을 주는 작품이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교수가 되면 금전적 심리적인 이유로 동료들이 하지 못하는 도전적인 작품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초허당은 예술가 후원 외에도 ‘D학점 이상 지방 출신 이공계 학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동국대에 26억 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나눔은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건강 악화와 교통사고를 겪으며 어쩌면 덤으로 얻은 인생”이라며 “꿈이 있으나 경제적인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가진 걸 모두 돌려주고 떠나겠다”고 약속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LG와 함께하는 제14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 바이올린 부문 심사를 맡은 10명의 심사위원은 “각 단계마다 참가자들이 고루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무대였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의 1세대 영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한 강동석 심사위원장(연세대 음대 교수·사진)은 “모든 단계마다 연주자들이 다른 개성과 역량을 보여줬다”며 “참가자들이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이번 콩쿠르를 좋은 배움의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고 했다. 2009년 국내 최초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10곡)을 5시간 동안 마라톤 연주한 이성주 심사위원(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은 “본선 진출자 6명을 포함해 모든 참가자의 수준이 무척 높았다”며 “이렇게 수준 높은 콩쿠르에 세계의 젊은 음악인들이 더 많이 참가하길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번 콩쿠르에는 강 교수와 이 교수를 비롯해 피호영 성신여대 음대 교수, 쉬잔 게스네 프랑스 파리 시립음악원 교수, 일리야 그루베르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음악원 교수, 후쿤 영국 왕립음악원 교수, 올레흐 크리사 미국 뉴욕 이스트먼 음대 교수, 대니얼 필립스 미 줄리아드 음악원 교수, 슈테판 피카르트 독일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음대 교수, 시미즈 다카시 일본 도쿄예술대학 음악학부 교수 등 총 10명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바이올린의 마스터’라 불리는 크리사 심사위원은 1∼5위를 차지한 한국 연주자에 대해 “재직하고 있는 이스트먼 음대에도 한국 학생이 많다. 모든 일에 성실하고 뛰어나다”며 “이번 결과에 두 배로 기쁘다”고 밝혔다. 후쿤 심사위원은 “참가자들의 연주는 모두 우수한 편이지만 상대적으로 개성 없는 무대 매너는 다소 아쉽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24, 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LG와 함께하는 제14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김동현 씨(19·한국예술종합학교)가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1위로 호명되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기쁨을 드러냈다. 김 씨는 “아쉬움이 많은 무대인데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며 “최근 여러 가지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간의 심적 부담이 싹 날아가는 기분이다. 더욱 정진하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클래식 애호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7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김 씨는 11세부터 본격적으로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걸었다. 당시 멋모르고 나간 콩쿠르 예선에서 탈락한 뒤 싹튼 승부욕이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예원학교를 거쳐 현재 영재 입학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3학년 학생이다. 그는 수상 발표 뒤 어머니와 한참을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눴다. 김 씨는 “지난해 참가한 콩쿠르에서 잇따라 수상에 실패하면서 마음고생을 좀 했다. 어머니도 의기소침한 아들의 모습에 덩달아 힘들어하셨다”며 “어머니께 상을 바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이번 서울국제음악콩쿠르를 준비하면서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마인드컨트롤에 대해 깨달은 바가 크다”며 “곡에 대한 해석과 연습을 충분히 선행하면 무대에서의 평정심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 같다”고 했다. 김 씨는 2012년 금호영재 콘테스트로 데뷔한 뒤 각종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16년 루마니아 제오르제에네스쿠국제바이올린콩쿠르 2위, 2015년 러시아 차이콥스키청소년국제콩쿠르 1위, 2014년 러시아 레오폴트아우어국제바이올린콩쿠르 1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는 “솔리스트, 실내악, 오케스트라 등을 두루 좋아한다”며 “능력이 닿는 범위 안에서 여러 포지셔닝을 경험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강동석 심사위원장은 김 씨의 연주에 대해 “어린 나이답지 않게 완벽한 기교와 성숙하고 여유 넘치는 연주가 돋보였다. 앞으로 가능성이 기대되는 연주자”라고 평가했다. 2위는 이유진(23·커티스음악원), 3위는 김지인(23·연세대), 4위는 정주은(22·한국예술종합학교), 5위는 이유진(20·한국예술종합학교), 6위는 알렉산드라 티르수(26·루마니아·빈시립음대)가 차지했다. 이번 콩쿠르에는 총 10개국 77명이 참가했다. 예비심사를 통과한 9개국 36명(국내 20명, 해외 16명)이 1차를, 24명이 2차 예선을 거쳤다. 준결선에 올라온 12명 가운데 6명이 결선에 올랐다. 결선은 지휘자 장윤성과 인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펼쳐졌다. 입상자에게는 1위 5만 달러(약 5400만 원), 2위 3만 달러, 3위 2만 달러 등 6위까지 상금이 주어지고 국내외 정상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리사이틀 등 다양한 특전이 제공된다. 1, 2위 한국인 남성 입상자에게는 병역특례 혜택이 주어진다. 이날 시상식에는 서정협 서울시 문화본부장, 정창훈 LG아트센터 대표,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주간이 시상자로 참석했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의 1, 2차 예선과 준결선은 유튜브(검색어 ‘seoulcompetition’)에 공개됐으며 결선은 26일 공개된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한국에서 내추럴 시드르(사과 스파클링 와인)를 만들면 어떨까?” 2003년 공대 출신의 프랑스인 남자와 작가인 한국인 여자가 프랑스에서 만나 결혼했다. 엔지니어로 일하던 도미니크 에어케 씨(59)는 농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뒤늦게 프랑스농업학교에서 와인양조를 공부했다. 그리고 아내 신이현 씨(53)와 프랑스 북부 알자스 와이너리에서 내추럴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보다 수준 높은 내추럴와인을 만들기 위해 유럽 전역의 와이너리를 찾아 배움을 청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한국에서 내추럴와인을 만들면 어떨까?” “좋아, 그러면 사과 스파클링 와인인 시드르는 어때? 시드르는 한국 시장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 부부는 2016년 한국에 건너와 반년 동안 전국 농가를 돌며 사과 품종을 연구했다. 즙이 풍부하고 당도가 높은 부사와 새콤하면서 산도가 높은 홍옥을 섞으면 뭔가 특별한 시드르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에어케 씨는 “한국에서 시드르를 만들어보자고 아내에게 강력히 권했다”고 했다. 2016년 말 사과 산지로 유명한 충북 충주시 엄정면에 정착한 두 사람은 남편의 이름을 딴 와인회사 ‘레돔(LESDOM)’을 세웠다. 1년 내내 자연의 변화에 따르는 생명역동 농법으로 사과 농사를 지어 2017년 시험작인 사과 시드르를 완성했다. 동시에 한국 포도 품종인 캠벨로 로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었다. 신 씨는 “캠벨을 자연 발효해 로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었는데 꽃향기 가득한 와인이 탄생했다”며 “7.5도라 술이 약한 이들도 가볍게 즐기기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실험은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에는 머루 캠벨 등 식용 포도가 대부분인데 이들은 와인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프랑스의 와인용 포도 품종 10여 가지를 사과밭 한 모퉁이에 심은 뒤 결과를 보고 있다. “포도를 재배한 뒤 와인용으로 가장 적합한 품종을 가려내 내추럴와인을 만들 거예요. 아울러 사과 품종을 늘려가는 작업도 계획 중입니다.” 레돔 스파클링 로제와인 3만8000원. 레돔 내추럴 시드르 3만2000원.이설 기자 snow@donga.com}

‘미끈하고 럭셔리한 와인을 기대하지 마라. 이것은 진짜 땅에서 키운 진짜 포도로 만든 날것의 와인이다.’(2017 뉴욕 내추럴와인페어) 맛과 멋의 대명사 와인계에 별종이 나타났다. 유기농으로 키운 포도로 화학첨가물을 배제해 만든 내추럴와인이다. 독립영화처럼 기존 평가 잣대를 부정하는 내추럴와인에 기성 와인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전 세계 힙스터들 사이에서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내추럴와인의 세계를 소개한다. #1 서툴지만 당돌한 매력와인1. 시큼하고 달달한 파인애플향이 난다. 와인2. 커피향이 감돈다. 와인3. 알갱이 같은 게 씹힌다. 와인4. 기존에 마시던 와인과 비슷하다. 16일 오후 1시 서울 서초구 봉은사로의 한 빌딩 지하에서 ‘낮술파티’가 열렸다. 주종은 내추럴와인, 행사명은 ‘제2회 살롱오(Salon O)―내추럴와인의 모든 것’. 와인 수입사, 외국인 생산자 19명, 와인 애호가가 함께한 내추럴와인 부흥의 장이었다. 이날 맛본 30여 종의 내추럴와인은 처음엔 아리송하다가 나중엔 설렜다. 향과 맛이 그동안 마시던 와인과 다른데? ‘이게 뭔가’ 싶다가 이내 다음 와인은 어떻게 말을 걸어올지 궁금해졌다. 같은 공간에 있던 이들의 소감도 비슷했다. “재미있고 당돌해서 좋아요. 집술처럼 푸근한 느낌도 들고요. 누구는 ‘마구간 와인’이라고 폄훼하지만 ‘뻔한 맛’의 틀을 깬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김준태 씨·31·직장인) “내추럴와인은 레드, 화이트, 스파클링 모두 목 넘김이 부드러워요. 12∼13도로 기존 와인(13∼15도)보다 도수가 낮고 화학첨가물이 적어서 그런지 술술 넘어갑니다. 숙취도 확실히 덜하고요.”(김수옥 씨·37·레스토랑 ‘주옥’ 매니저)#2 “오직 포도뿐”“포도, 포도, 포도.” 프랑스 아르데슈주에서 와인을 만드는 제랄드 오스트리치 씨(56)는 내추럴와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추럴와인은 1970년 처음 알려졌지만 10년 전부터 유럽의 힙스터들에게 사랑받기 시작했다. 포도 재배와 양조 과정에서 비료 농약 당분 이산화황 등을 최대한 배제한 와인을 뜻한다. 수천 년 전 포도를 자연 발효시켜 만들던 와인의 원형을 지향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생산과 유통 모두 쉽지 않다. 포도나무에 벌레가 쉽게 끓고 순간 방심하면 식초로 변하기 일쑤라고 한다. 그럼에도 생산자들은 “실패도, 맛의 변화도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라고 말한다. 오스트리치 씨는 “내추럴와인 한 병을 얻기까지 손이 많이 가고 장애물도 많다. 그럼에도 화학첨가물을 쓰는 건 반대”라며 “인간이 바라는 하나의 맛을 위해 다른 가능성을 닫아버려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3 新와인 문화운동해질 무렵 뺨에 홍조가 오른 참가자들이 베레모를 눌러 쓴 남성에게 ‘와인병 사인’을 청했다. 기존 와인계에 맞서며 이름을 알린 프랑스 생산자 알렉상드르 뱅 씨였다. 그의 별명은 ‘내추럴와인 전사(戰士)’. 프랑스 배우이자 감독인 기욤 카네와 함께 영화(‘땅의 아들’)도 촬영 중이다. 뱅 씨 외에 필리프 장봉, 장클로드 라팔뤼, 앙리 밀랑, 세바스티앵 리포 등의 생산자가 유명하다. 내추럴와인은 단순한 와인이 아닌 ‘신(新)와인 문화운동’이라 불린다. 기존 와인계 문법을 무너뜨리는 태도 때문이다. 이들은 환경 파괴, 규격화, 대량화를 반대한다. 트랙터 대신 쟁기와 손으로 농사를 짓고, 생산지와 시간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품평을 비판하며, 기업자본의 대량생산을 배척한다. 뱅 씨는 “소믈리에들은 기계를 해체하듯 심각하게 와인을 맛본 뒤 작은 흠집을 찾는다”며 “와인도 사람처럼 장단점이 있는 생물이다. 자연스러운 흠집을 가리려 황을 먹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덴마크 와인 생산자 안데르스 프레데리크 스텐 씨(36)는 “우리가 지향하는 건 건강한 먹거리, 지구, 사회”라며 “다양한 환경(테루아)을 충실히 반영한 와인이 다양한 취향을 존중하는 사회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4 “실체 없는 사기”내추럴와인에 대한 반대 여론도 거세다. 반대론자들이 내세우는 가장 주된 이유는 맛이 이상한 데다 근거 없이 도덕적 우월감을 내세운다는 것. 미국의 와인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는 “이미 훌륭한 와인들은 최소한의 화학첨가물을 사용한다. 또 필터링 과정에서 화학첨가물은 대부분 사라진다”고 했다. 미국의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과거 자신의 트위터에서 “내추럴와인은 실체 없는 사기”라고 혹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추럴와인의 기세는 만만치 않다. 전 세계 소비량은 전체의 2%에 불과하지만 파리 런던 코펜하겐 등에선 내추럴와인 전문 바가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서도 내추럴와인 붐이 시작됐다. 정식바, 쿠촐로 테라짜, 주옥, 밍글스, 빅나이트, 제로컴플렉스, 라피네 등에서 내추럴와인을 맛볼 수 있다. 가격은 와인숍 3만, 4만 원, 와인바 7만, 8만 원 선. 살롱오 행사를 주관한 파리에서 활동 중인 와인에이전시 비노필 최영선 대표(50)는 “내추럴와인을 마시면서 몸이 건강해졌다. 숙취도 없다”며 “지난 1년간 한국 내추럴와인 소비량이 두 배로 뛰었는데, 향후 시장 점유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5 와인 패러다임 전환상당수 내추럴와인 생산자는 청년층이다. 보르도나 부르고뉴 같은 기득권 생산지에 구애받지 않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어서다. 이들은 “내추럴와인은 삶에 대한 태도다. 올바르게 생산된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 돼라”고 소비자를 유혹한다. 프랑스와 일본에서 지난 10여 년간 안착한 내추럴와인 시장은 더 커질까.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와인을 만드는 필리포 오 씨(38)는 “내추럴와인은 온도와 진동에 특히 민감해 수출과 수입 과정에서 맛이 변하는 일이 잦다. 날씨가 따뜻한 3∼9월엔 수입을 거의 하지 않을 정도”라며 “유통 과정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와인 매거진 ‘디캔터’는 “내추럴와인의 가장 절묘한 전략은 부모 세대가 이해하지 못하되 적당히 팔릴 정도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만난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어쨌거나 내추럴와인은 단순한 와인이 아니다. 콧대 높은 와인계에 일침을 가하는 패러다임 전환이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손지혜 선생요? 외모는 순수하지만 연기는 마농 이상으로 농염해요.” “국윤종 선생님은 인상도, 마음도, 소리도 치명적으로 푸근합니다.” 테너 국윤종 씨(42)와 소프라노 손지혜 씨(37)는 “오페라 주역답지 않게 까다롭지 않고 털털한 파트너”라고 서로를 칭찬했다. 두 사람은 다음 달 5∼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오르는 프랑스 오페라 ‘마농’의 주인공을 맡았다. 이들을 19일 만났다. 프랑스 소설가 아베 프레보의 ‘기사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코의 진실한 이야기’가 원작인 이 오페라는 프랑스 작곡가 쥘 마스네의 대표작. 국립오페라 창단 이래 첫 공연이자 1989년 김자경오페라단 공연 이후 29년 만의 전막(5막) 공연이다. 두 사람은 “마농은 힘들지만 매력 넘치는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극한에 다다른 인간의 정념을 실감나게 묘사하고”(손 씨) “사회 각지의 부정과 비리의 축약판 같은 작품”(국 씨)이라고 했다. 이야기는 소녀 마농이 수녀원을 향하던 중 젊은 귀족 기사 데 그리외를 만나 사랑에 빠지며 시작된다. 데 그리외 아버지의 반대로 두 사람은 ‘사랑의 도피’를 꾀하지만 마농이 부유한 귀족 브레티니를 만나 데 그리외를 버린다. 충격을 받은 데 그리외가 신부가 됐다는 소식에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가는 마농. 하지만 생활고가 닥치자 마농은 데 그리외를 도박장으로 이끌고 둘은 감옥에 가게 된다. 데 그리외는 아버지의 힘으로 풀려나지만 마농은 죽음을 맞는다. 국 씨는 자신과 데 그리외가 많이 닮았다고 했다. “아버지, 마농, 신 등 믿음이 생기면 상대에게 대책 없이 빠져버리는 점이 비슷해요. 하지만 저는 가정을 이뤄 데 그리외처럼 모든 걸 던질 자신은 없습니다.” 반면 손 씨는 거대한 욕망에 이끌려 사치와 향락에 중독된 마농과 자신은 거리가 멀다고 했다. 이에 국 씨가 반문했다. “지혜 씨는 음악적으로 굉장히 용기가 있어요. 치열하게 연구한 뒤 자신 있게 새로운 길에 도전하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농과 닮았어요.” 두 사람은 해외 무대에서 활약하는 정상의 테너와 소프라노. 하지만 걸어온 길은 정반대다. 손 씨는 12세에 성악을 시작해 예원학교와 서울대 성악과를 거친 정통파다. 국 씨는 공대에 진학한 후 군대에 다녀와 뒤늦게 연세대 성악과에 들어갔다. 국 씨는 “시작이 늦다는 불안감에 하루 10시간 넘게 열정적으로 연습했다. 지난 10년간 운이 좋아 해외 무대 등에서 주역을 맡았지만 최근에야 불안감을 조금씩 내려놓게 됐다”고 했다. 손 씨는 “어려서부터 음악만 해 왔기에 열정이 다소 부족했다”며 “서른 살이 넘어 슬럼프를 겪은 후에야 오페라에 재미를 느끼며 열정을 되찾았다”고 했다. 오페라를 준비하다 보면 각종 갈등이 불거지는데 이렇게 분위기 좋은 팀은 처음이라고 한다. 이들은 “연출자 뱅상 부사르가 연주자들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역량을 최대치로 이끌어낸다. 한 번 무대에 올리고 말기엔 아까운 공연”이라며 “우리도 해외처럼 의상, 무대 장식 등을 보관한 뒤 다시 공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바로 무대에서 ‘짠’ 하고 나타나는 단독 공연보다 조금씩 연습하며 동료들과 알아가는 오페라가 좋아요. 살짝 내성적인 면이 있거든요. 어떤 무대에 서든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가닿고 싶어요.”(손 씨) “20대에는 ‘화’가 많았는데 노래를 통해 발산했어요. 무대에 서고 노래하고 사색하며 얻은 단상들을 노트에 기록하고 있어요. 후배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고자 책으로 펴낼 생각입니다.”(국 씨) 4월 5∼8일 목·금 오후 7시 반, 토·일 오후 3시. 1만∼15만 원. 1588-2514 이설 기자 snow@donga.com}

“참가자들이 기교 면에서 모두 높은 수준을 보여줘 놀랐습니다. 다만 개성을 좀 더 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동양권 참가자들이 기교가 훌륭한 반면 유럽이나 미국 쪽 참가자들은 개성이 좀 더 뚜렷한 느낌입니다.” ‘LG와 함께하는 제14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심사위원장을 맡은 강동석 연세대 음악대 교수(64)는 예선 심사를 끝낸 뒤 콩쿠르 수준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올해 바이올린 부문에서 경연을 진행하는 콩쿠르는 14∼17일 열린 1차 예선에서 24명이 2차 예선에 진출했다. 19, 20일 열린 2차 예선에서는 12명이 준결선(21, 22일)에 올랐다. ‘1세대 영재 바이올리니스트’인 강동석 교수 역시 동아음악콩쿠르 출신이다. 8세에 첫 연주회를 가진 뒤 12세에 동아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을 거쳐 커티스음악원에서 ‘바이올린계 미다스의 손’ 이반 갈라미안을 사사했다. “동아음악콩쿠르가 가장 권위 있고 규모가 큰 콩쿠르였어요. 대학생들이 주로 입상했는데 나이가 어려서 주목 받은 기억이 납니다. 무대 위 참가자들을 보면 당시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2003년부터 연세대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과 콩쿠르 심사를 가장 보람 있는 작업으로 꼽았다. 그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당차게 연주하는 젊은 후배들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라며 “학생을 가르치거나 심사를 하다가 내 연주의 실마리가 풀리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두 가지 일 모두 쉽지 않다. 학생들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강 교수는 “교육도 심사도 주관적인 일이라 어깨가 무겁다. 하지만 무대 위 참가자들은 심사위원보다 몇 배는 더 마음이 무거울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세계 주요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17세 때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재단 및 워싱턴의 메리웨더 포스트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았다. 세계 3대 바이올린 콩쿠르인 몬트리올 콩쿠르, 런던 칼 플레시 콩쿠르, 브뤼셀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차례로 휩쓸었다. “콩쿠르에 참가하는 후배들이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과정에서 느낀 성취와 음악적 성장에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무대 위에서 평가받는 순간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그는 “기교는 완벽한데 감동이 부족한 연주를 종종 경험한다”며 “조급해하지 말고 직간접 경험을 통해 자기 세계를 키워라. 그러면 생명력 있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해외 전화번호를 입력하자 모바일 메신저 친구 목록에 오보이스트 함경(25)의 이름이 새로 떴다. 프로필 사진 속 그는 스탠드 맡에서 고독하게 리드를 다듬고 있었다. 소개 글도 ‘리드 깎는 중, 방해하지 마세요’. 오보에 소리를 좌우하는 리드를 대하는 태도에서 음악에 대한 진한 애정이 묻어났다. “오늘요? 일요일이라 교회 갔다가 정기 연주회에 올릴 곡 연습하고 리드 깎다가 다시 독주회 연습…. 단조롭지만 지금은 이런 생활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아직 새내기니까요.” 29일 국내 독주회를 앞두고 12일 전화로 만난 그는 한국 오보에계에 한 획을 그었다. 2005년 금호영재콘서트 독주회로 데뷔한 뒤 서울예고 1학년 때 독일로 건너가 각종 콩쿠르를 휩쓸었다. 2016년에는 세계 최정상급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에 입단했고, 지난해에는 독일 ARD콩쿠르에서 우승(1위는 없는 2위)했다. 그런데도 그는 스스로를 ‘새내기’라고 표현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한 건 맞지만 이제 입단 2년차예요. 능숙한 선배들과 보조를 맞추려면 적어도 7, 8년은 고시생처럼 생활해야죠. 주 2회 정기연주회를 소화하려면 매달 최소 8, 9곡을 새로 익혀야 합니다. 여기에 독주회 연습까지 겹쳐 ‘커피 연명’하고 있습니다.(웃음)” 한계의 시험대에 오른 듯 아슬아슬한 요즘이지만 종종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온다. 시간이 부족해 머릿속으로 연주하는 법을 익혔고, 단원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며 한층 음악이 깊어짐을 느낀다. 그는 “몸은 힘들지만 매일이 배움으로 인한 환희의 연속”이라며 “진정한 프로의 세계에 들어선 기분”이라고 했다. 함경은 음악인 가족을 뒀다. 아버지는 오보이스트 함일규 중앙대 교수, 어머니는 비올리스트 최정아 씨다. 형 함훈 씨도 플루트를 전공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에 흥미를 못 느끼던 그는 12세 때 오보에를 받아 든 뒤 운명적으로 자신의 악기임을 직감했다. “입술이 부르트도록 오보에를 불었다”던 연습벌레 소년은 10년간 눈부시게 성장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상담을 해오는 후배들에게 조언할 때 ‘이보다 더 뿌듯할 수’가 없어요. 지금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한국 오보에계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쑥스럽지만 저를 보면서 꿈을 키울 수도 있잖아요.” 그는 “이번 독주회에서 앙드레 졸리베와 허버트 하월스 등의 곡을 연주한다”며 “유럽에서 발굴한 주옥같은 곡들을 한국 관객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29일 오후 8시 서울 금호아트홀. 전석 4만 원. 02-6303-1977이설 기자 snow@donga.com}

클래식계는 시간이 유난히 더디게 흐른다. 디지털 음원 시대지만 클래식만큼은 공연장과 CD, LP를 고수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다른 장르에 비해 형식과 음감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최근 이런 분위기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디지털로 클래식 음원이나 공연 정보를 제공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등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최근 이런 흐름은 클래식 지식과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한 ‘클래식 스타트업’이 이끈다. 요즘 ‘클래식매니저’란 앱으로 ‘클알못’(클래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서 ‘클잘알’(클래식을 잘 아는 사람)으로 환골탈태한 이들이 상당하다. 스타트업 ‘아티스츠카드’가 지난해 출시한 클래식매니저는 초보도 쉽게 클래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드뷔시의 ‘달빛’을 음성 검색하면 거의 모든 버전의 음원을 만날 수 있다. 드뷔시의 생애, 해당 곡에 얽힌 일화는 물론이고 악보도 상세하게 제공한다. 아티스츠카드 대표인 정연승 작곡가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자동검색 큐레이션(취사선택)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했다. 클래식매니저는 지금까지 15만 명이 다운로드했다. ‘위드클래식’은 크고 작은 클래식 공연 정보를 아우르는 인터넷 플랫폼이다. 대형 기획사에서 진행하는 공연이 아니더라도 발품을 들여 찾아낸 1인 공연이나 무료 공연, 동네 공연 정보까지 제공한다. 성악을 좋아해 무작정 업계에 뛰어든 웹디자이너 출신 임재한 대표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기획한 공연을 판매하는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오케스트라 게임 음악을 만드는 ‘플래직’과 악기 연주 시 반주 음을 들려주는 ‘포케스트라’를 만든 ‘이스트컨트롤’도 눈에 띄는 클래식 스타트업. 클래식 분야 해설사를 양성하는 ‘모차르트마술피리’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콘텐츠를 기획하는 ‘오르아트’도 있다. 사실 클래식 스타트업이 늘어난 배경에는 한계에 봉착한 클래식계가 찾은 ‘탈출구’의 성격도 있다. ‘클래식에미치다’ 운영자인 안두현 양평필하모닉오케스트라 지휘자는 “갈수록 클래식계 상황이 어렵다 보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전공자가 많다”며 “이들이 활로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다양한 스타트업으로 눈을 돌리는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해외에서도 클래식 스타트업은 이미 대세로 자리 잡았다. 국내 클래식 연주자들의 미발표 음원을 제공하는 스트리밍 서비스 ‘클래시컬 네트워크’는 네덜란드 스타트업 ‘프라임포닉’을 본떠 만들었다. 독일 스트리밍 서비스인 이다지오(Idagio), 세계 연주자들의 구인구직을 돕는 덴마크의 트루링크트(Truelinked), 맞춤형 마우스피스를 판매하는 영국의 SYOS 등이 각광을 받고 있다. 노승림 음악평론가는 “최근 적극적으로 클래식을 소비하려는 애호가들이 등장하며 이들을 겨냥한 다양한 서비스가 시장에 출현한 셈”이라며 “결국 장기적으로 클래식 시장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음악평론가 한정호 씨는 “문화 관련 정부지원금 제도가 늘어나면서 클래식 관련 사회적 기업이 많아진 것도 한몫했다”고 분석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나지막한 언덕과 지붕 위로 내리쪼이는 햇살, 그리고 탁 트인 바다! 봄에 경남 통영에 다녀온 이들은 예외 없이 ‘통영앓이’를 한다. 아예 모를 순 있어도 한 번 겪으면 잊기 힘든 통영의 봄날, 2018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린다. 30일부터 4월 8일까지 통영국제음악당과 통영시 일원에서 열리는 음악제의 주제는 ‘귀향(Returning Home)’. 음악제 개최에 맞춰 통영이 낳은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 선생(1917∼1995)의 유해가 이장되면서 의미를 더하게 됐다. 먼저 ‘귀향’이란 테마와 윤이상 선생이 작곡한 곡들이 눈에 띈다. 30일∼4월 1일 오후 5시 블랙박스에서는 루트거 엥겔스가 재단의 요청으로 만든 음악극 ‘귀향’이 세계 초연된다. 트로이 전쟁 10년과 그 이후 10년이 지나서야 고향으로 돌아온 율리시스의 여정을 윤이상의 삶에 교차시킨 작품이다. 30일 오후 7시 30분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보훔 심포니 오케스트라&정경화’에서는 윤이상이 1981년 발표한 ‘광주여 영원히’가 연주된다. 4월 5일에 세계 초연되는 ‘낙동강의 시’는 유족이 미발표 악보를 발견한 곡으로, 6·25전쟁의 비극적 정서를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올림픽 찬가를 불러 이름을 알린 소프라노 황수미도 세 차례 무대에 오른다. 31일 오후 2시 콘서트홀에서 보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등을, 4월 1일 오전 11시 콘서트홀에서 독일 작곡가 크리스티안 요스트가 재해석한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노래한다. 4월 7일 오후 3시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Ι’에서는 진은숙이 작곡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퍼즐&게임 모음곡’을 들려준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공연도 눈에 띈다. 먼저 백보컬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영화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의 주인공인 리사 피셔가 31일 오후 7시 반 콘서트홀에서 공연한다. 영화 ‘리빙 하바나’의 주인공인 재즈 트럼펫 연주자인 아르투로 산도발은 4월 7일 오후 7시 반 피아니스트 케무엘 로이그, 색소폰 연주자 마이클 터커 등과 협연한다. 이 밖에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피아니스트 케빈 케너,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피아니스트 치몬 바르토, 베네비츠 콰르텟&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첼리스트 양성원&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 대금 연주자 유홍&가곡 이수자 박민희 등 풍성한 공연이 펼쳐진다. 055-650-0400, 이설 기자 snow@donga.com}

클래식 샛별들의 ‘현의 노래’가 펼쳐진다. 동아일보사와 서울시가 공동 주최하는 ‘LG와 함께하는 제14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가 14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는 서울에서 열리는 유일한 국제음악콩쿠르다. 1996년 시작한 콩쿠르는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부문을 해마다 한 부문씩 번갈아 개최한다. 올해는 바이올린 차례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는 역대 입상자의 면면만 살펴봐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건반 위의 완벽주의자로 불리는 아비람 라이케르트 서울대 교수, 네덜란드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리비우 프루나루 악장, 거장 지휘자 겸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가 “아네조피 무터의 뒤를 이을 바이올린의 여제”라고 극찬한 백주영 서울대 교수, 젊은 클래식 스타 클라라 주미 강(바이올린) 등 그간 배출한 수많은 입상자들이 국제무대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번 콩쿠르에는 10개국 77명이 참가 신청을 했다. 이 가운데 예비심사를 통과한 9개국 36명이 경쟁을 벌인다. 참가자는 세계적인 콩쿠르 상위 입상자 출신이 많다. 다민 김(프랑스)은 2009 프랑스 아비뇽 국제바이올린콩쿠르 3위 수상자이고, 시노야마 하루나(일본)는 2016년 독일 레오폴트 모차르트 아우구스부르크 국제바이올린콩쿠르 특별상 수상자다. 아라이 다카모리(일본)도 2008 일본 오사카 국제음악콩쿠르 2위 수상자. 지난해 오스트리아 베토벤 국제바이올린콩쿠르 2위 수상자인 구리하라 잇세이(일본)와 독일 펠릭스 멘델스존 콩쿠르 3위에 오른 다비드 페트를리크(프랑스)도 출전한다. 한국인으로는 2016년 영국 예후디 메뉴인 국제콩쿠르 4위 수상자인 김지인, 2012년 이탈리아 리피체르 국제바이올린콩쿠르 2위와 특별상, 지난해 오스트리아 브람스 국제바이올린콩쿠르 바딤레핀 특별상을 받은 김재원 등이 참가한다. 2016년 루마니아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바이올린콩쿠르 2위 수상자인 김동현과 2010년 오스트리아 프리츠 크라이슬러 국제바이올린콩쿠르 특별상을 받은 박성미도 눈에 띈다. 심사위원은 강동석(연세대 음악대학 교수), 이성주(한국종합예술학교 음악원 교수), 피호영(성신여대 음악대학 교수) 등 한국 국적 심사위원 3명과 쉬잔 게스네(프랑스), 일리야 그루베르트(네덜란드), 후쿤(프랑스), 올레흐 크리사(미국), 대니얼 필립스(미국), 슈테판 피카르트(독일), 시미즈 다카시(일본) 등 총 10명을 초빙했다. 입상자에게는 1위 5만 달러(약 5300만 원), 2위 3만 달러, 3위 2만 달러 등 6위까지 상금을 준다. 국내외 정상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리사이틀 등 다양한 특전도 제공한다. 2위 이상 한국인 입상자에게는 병역특례 혜택이 주어진다. ▽대회 일정 △1차 예선: 14∼17일 △2차 예선: 19, 20일 △준결선: 21, 22일 △결선 및 시상: 24, 25일. 입장료: 2만∼5만 원. 02-361-1415, 이설 기자 snow@donga.com}

한국을 강타한 미투운동은 미국으로부터 옮겨 붙은 걸까. 전문가들은 ‘노’라며 고개를 젓는다. ‘알파걸 신화’에 가려 조용히 쌓아온 분노에 미국의 미투는 불씨를 지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학업 운동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남성을 능가하는 높은 성취욕과 자신감을 가진 여성.’ 2006년 ‘알파걸’이라는 미국의 신조어가 한국으로 날아들었다. 하버드대 아동심리학자인 댄 킨들런 교수가 10대 소녀들의 변화상을 담아 만든 용어였다. 비슷한 시기 한국 사회에도 알파걸이 탄생했다. 현재의 2030, 넓게는 40대 초중반까지 아우르는 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뚜렷한 성차별을 겪지 않았다. 가정에서 귀한 반찬 앞에 아들딸이 평등했고, 교실에선 ‘30분 더 공부하면 내 남편 직업이 바뀐다’류의 교훈이 사라졌다. 1986년 부천경찰서 문귀동 성고문 사건,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증언, 1992년 서울대 신모 교수 성희롱 사건 등을 계기로 이어진 여성운동은 잠시 숨을 골랐다. 양성평등은 상당 부분 진전을 이뤘다는 인식이 퍼졌다. 반면 뛰어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위기의식은 도드라졌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꽤 오랜 기간 알파걸 신화 속에 살았다. 하지만 이는 거대한 착각이었다. 한국 여성의 성평등 의식은 눈부시게 성장했지만 사회구조는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한국판 미투운동은 역설적으로 ‘알파걸의 반란’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알파걸은 착각이었다 “누구도 저를 알파걸로 대해 주지 않았어요.” 주부 손지민 씨(35)는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아이’였다.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했고 미술과 체육 시간에도 학우들보다 돋보였다. 2007년 명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침대 맡에서 셰릴 샌드버그, 힐러리 클린턴의 책에 밑줄을 그으며 남다른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여성의 성평등 의식은 눈부시게 성장했지만 사회구조는 전근대에 가까웠어요. 남자 상사는 ‘비키니 입으면 예쁘겠다’는 말을 예사로 내뱉었고, 회식 후 노래방에서 탬버린을 흔들어야 했죠.” 그는 “일상적으로 이어지는 음담패설 등 여성을 비하하는 분위기와 말대답을 하면 별종으로 취급하는 권위의식에 크게 실망했다”고 토로했다. 홍보대행사에 다니는 홍모 씨(33)도 비슷한 무력감을 느꼈다. 사회 핵심 구성원인 4050세대 남성들 일부는 예사로 여성 동료의 외모를 품평하고 비교했다. 군대문화가 조직에서도 그대로 재현되는 것 같았다. 그는 “밥자리, 술자리에서 숱하게 성희롱, 성추행에 노출됐지만 모두가 ‘하하호호’ 하는 분위기에서 ‘똑 부러지는 대응’은 쉽지 않았다”며 “가부장적인 문화에 젖어 점차 약자의 위치에 익숙해졌다”고 했다. 오히려 알파걸 신화가 굴레로 작용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10년 차 기자인 이모 씨(34)는 “‘여성들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졌다고 주장하면서 왜 성폭력을 ‘당했다’고 하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알파걸이라는 굴레를 악용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강남역’ ‘촛불’ ‘SNS’ 가정에서의 성역할 갈등도 이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2세, 5세 자녀를 둔 직장인 김유경 씨(37)는 맞벌이를 하면서도 가정에서는 전통 질서에 따라야 했다. 똑같이 직장생활을 하는데 명절에 기차표를 끊거나 부모님 생신을 챙기는 일은 늘 김 씨의 몫이었다. 그는 “사회가 현대여성과 전통여성의 불리한 부분만 떠맡기고선 ‘나 몰라라’ 하는 것 같았다”며 “이따금 참을 수 없는 억울함이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여러 문제가 겹치며 여성들 사이에 ‘뭔가 잘못됐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사회문제로 발돋움하지 못했다. 여성 대통령의 탄생과 일부 여성 리더의 신화에 보편적 여성문제가 가렸기 때문이다. 2016년 ‘여혐’과 ‘남혐’ 논란 분위기를 타고 이들은 결속을 다졌다. 그리고 2016년 5월 강남역 살해사건을 기점으로 들끊던 분노가 폭발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살아남아서다행이다’라는 연대의 해시태그가 넘쳐났다. 한샘 성폭력 사건이 처음 알려진 네이트 판 게시판, 직장인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 등 온라인 공간에는 성폭력 관련 상담글이 쏟아졌다. 온라인에서 연대한 이들은 같은 해 말 촛불집회를 통해 한 단계 성장했다. 뭉치면 잘못된 정치·사회 현상을 직접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웠고, 이때의 경험은 미투운동의 밑거름이 됐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강남역 사건으로 일상의 공포를 자각하고 촛불집회를 통해 실질적 변화를 절감한 알파걸들이 SNS를 무기로 미투운동을 주도했다”고 분석했다. ○ 정치권력 지형까지 흔들 전문가들은 “미투는 기존에 볼 수 없던 새로운 형식의 운동”이라고 입을 모은다. 큰 틀에선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대중운동이지만 어디서 또 폭발할지, 어디로 향할지,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은 안갯속이란 것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형성된 진보 진영 우세의 정치 지형, 친문(친문재인)-비문(비문재인) 등 여권 내부의 권력 지형에도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판 내부의 ‘주군(主君) 문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인 전 지사 피해자와 지난해 대선 경선 캠프에서 근무한 이들은 8일 캠프 내 성폭력과 물리적 폭력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이 교수는 캠프 인사들이 문제를 알고도 묵살했던 배경에 대해 “현재 정치판은 선수가 무너지면 캠프 식구 모두가 일자리를 잃는 구조”라며 “이로 인해 맹목적 순종과 비민주적 분위기가 만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앞으로 (비서를 수족 부리듯 하는) 가신 구조의 정치 지형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며 “이 지점이 미투운동의 본질이자 강력한 힘”이라고 했다.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바뀔 것이란 의견도 있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정치인을 검증할 때 주변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한 잣대로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장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성 관련 잡음에 휘말린 전력이 드러날 경우 공천에서 탈락할 공산이 크다. ○ ‘펜스 룰’은 답이 아니다 미투운동이 확산되면서 애초에 여성과 문제 될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이른바 ‘펜스 룰’을 따르려는 남성이 늘고 있다. 펜스 룰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지만 많은 남성들은 ‘펜스 룰을 지키는 게 속 편하다’고 푸념한다. 유통업체에 다니는 이모 씨(40)는 “혹시 모를 무고에 대비해 펜스 룰을 지키고 있다”며 “타인(여성)의 평등과 기회 보장을 위해 스스로를 보호할 권리를 포기하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40대 후반 조모 씨는 “남성들 사이에서 ‘집무실 문은 활짝 열고, 남성과 여성 직원의 회식 장소를 따로 잡으라’는 매뉴얼이 돌고 있다”며 “농담 섞인 내용이지만 일견 일리가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펜스 룰은 미투운동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속 가능한 미투운동을 위해선 남성들의 참여와 지지가 필수적”이라며 “이를 위해선 ‘위드유’를 외치는 남성이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드유’를 지지하는 한주석 씨(39)는 “얼마 전 아내가 직장에서 겪은 성폭력 경험담을 듣고선 소스라치게 놀랐다”며 “먼 나라 일인 줄 알았는데 성폭력 이슈를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고 했다. ‘한국 남자가 부끄러운 한국 남자’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미투를 지지하는 남성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각계 핵심 위치에 오른 민주화세대 남성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운동권이었다가 1990년대 초반 제도권에 진입한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정치적으로 평등을 추구하면서도 사회·문화적으로 가부장적인 면모를 보인다는 평가다. 서구 문화의 세례를 받은 3040세대와 달리 젠더 감수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비판도 있다. 안 전 지사를 비롯한 미투운동 가해자 대부분이 이 세대에 속한다. 한 수도권 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성역할과 유교질서가 동시에 무너지는 현실에서 기성세대 남성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다”며 “미투운동이 성공하려면 이들의 적응을 돕고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판 앙시앵 레짐 종언 전문가들은 미투운동이 새 시대를 향한 물꼬를 텄다고 입을 모은다. 사안이 심각하고 비교적 명확한 여성문제가 ‘한국판 앙시앵 레짐(구체제) 종언’의 포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실제 검찰과 문화계 내 성폭력 폭로로 시작한 미투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번지고 있다. 홍익대 커뮤니티에는 군대식 신입생 길들이기 관행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한 언론사 직원은 상사의 언어폭력을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젠더문제에 비교적 무감한 1020세대는 미투운동을 여성문제가 아닌 계급문제로 받아들인다는 시각도 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의 미투운동은 여성문제뿐 아니라 계층갈등, 권위주의, 성차별 등 다양한 구태에 대한 고발로 이어지고 있다”며 “한국판 ‘앙시앵 레짐 종언’의 성격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미투운동은 계급운동의 색깔이 짙다는 점에서 분야를 가리지 않는 사회변혁 운동으로 번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숙영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외신에서 “한국은 인종문제가 없는 대신에 계급갈등이 심각한 편이다. 이 때문에 밀레니얼 세대를 비롯한 저임금 노동자나 청년들은 미투운동을 계급운동의 연장선으로 본다”며 “주류 남성 중심의 각종 억압에 맞서 성별을 뛰어넘은 결속이 이뤄지고 있다”고 풀이했다.이설 snow@donga.com·이세형 기자}

비올리스트 박경민(28·사진)이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입단했다. 5일 클래식 전문지인 ‘슬리페디스크’에 따르면 박 씨는 지난달 15일 베를린필에 합류해 2년간 수습 단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1995년 바이올리니스트 홍나리 씨가 입단한 이래 베를린필에 입단한 두 번째 한국인으로 확인됐다. 7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뒤 11세에 비올라로 전향한 박 씨는 13세 때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떠나 빈 국립음대에서 수학했다. 2010년 동아 음악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독일 ARD 국제콩쿠르에서 2위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14년 금호아트홀 선정 ‘라이징 스타’로 뽑혔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영국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54)는 ‘읽고 쓰면서 노래하는 사람’이다. 그냥 취미로 읽고 쓰는 게 아니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철학 석사,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지력(知力)을 바탕으로 음악과 삶에 대한 단상을 칼럼과 책에 담아낸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박사 테너’. 그런 그가 올해 한국을 3번이나 찾는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신설한 ‘올해의 음악가’ 제도 첫 주자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6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IBK무대에서 서울시향 단원들과 협연한다. 10, 11일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벤저민 브리튼의 ‘테너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녹턴’을 공연한다. 7월과 11월에도 공연이 예정돼 있다. 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그는 “지난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클래식 음악의 미래’ 콘퍼런스에서 당시 서울시향 상임작곡가였던 진은숙 씨를 만나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보스트리지는 “음악가가 집중 조명받을 수 있는 장기적 기회를 얻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며 “하나하나 공연에 최선을 다하면 장기적 성취로 이어질 거라고 믿는다”고 기대했다. 그가 음악에 빠져든 건 10대 시절 한 교사가 들려준 슈베르트의 ‘마왕’ 음반이 계기였다. 쓸쓸하게 읊조리다 광폭하게 휘몰아치는 전설의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1925∼2012)의 음색에 단박에 사로잡힌 것. 이후 우연히 만난 우상은 뜻밖에도 개인 레슨을 제안했고, 2년 뒤 그는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겨울 나그네’로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다. “1994년 호주에서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 무대에 섰어요.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면서 아마추어로 공연하던 때였죠. 그때 성악가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예술가로 변신한 뒤 오히려 자유롭고 풍부한 글쓰기가 가능해졌어요.” 그는 음악계에서 ‘슈베르트의 심연에 가닿은 성악가”란 평가를 듣는다. 해당 곡이 처음 소비되던 당대의 맥락을, 성배를 찾듯 치열하게 고민해 노래에 반영한다. 슈베르트 대표곡 ‘겨울 나그네’ 24곡을 분석한 저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그 여정을 집대성한 결과다. 보스트리지 특유의 ‘노래를 부를 때 큰 키로 움츠러드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평가하는 해외 평단의 반응에 대해서도 슬쩍 물어봤다. “‘표현’과 ‘자제’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건 오랜 과제예요. 너무 몰입했다 싶으면 자제하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죠. 이런 표현의 문제를 포함해 저는 늘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요즘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소프라노 마르헤이트 호니흐에게 개인 레슨을 받는걸요.” 6일 ‘2018 실내악 시리즈 Ⅰ’ 1만∼5만 원. 10, 11일 ‘2018 올해의 음악가 이안 보스트리지’ ①, ② 1만∼9만 원. 1588-1210이설 기자 snow@donga.com}

《미국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과 한국의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화려한 경력에서 공통점을 찾기 힘든 두 사람이지만 연결고리가 하나 있다. 한미 양국을 각각 뒤흔들고 있는 ‘미투(#MeToo) 운동’의 진원(震源)이라는 점이다. 와인스틴은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촉발된 미투 캠페인의 핵심 타깃이었다. 안 전 검찰국장은 그로부터 100일을 조금 넘긴 올해 1월 말 시작돼 문화예술계 등을 강타하고 있는 한국판 미투의 도화선이었다. 양국의 미투 운동은 권력이나 특정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남성 ‘갑’을 상대로 ‘을’의 위치에 있는 여성이 피해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고 법에 호소하는 등의 기본 구조는 비슷하다. 다만 미투 운동이 본격화되는 양상과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 등에서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 여기에 미국은 해당 분야에서 정상급 인지도를 갖고 있는 인사들이 주도하는 반면 한국에선 상대적으로 인지도 높은 인사들이 나서기를 꺼린다. 법률적인 환경과 문화적인 배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투의 진원, 미국은 할리우드 vs 한국은 검찰 미국의 미투 운동은 2006년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양상으로 확대된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 뉴욕타임스가 지난해 10월 와인스틴이 여배우와 여직원들을 상대로 갖가지 성추행 및 성희롱을 한 사실을 보도하면서부터다. 이후 앤젤리나 졸리, 귀네스 팰트로, 애슐리 저드 등 세계적인 스타 여배우들이 성추행을 당한 과거를 털어놓으며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로 미투 운동이 확산됐다. 한국의 미투 운동은 2016년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관련 분야의 관심을 촉구하는 수준에 머물면서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현재와 같은 폭발력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서지현 검사의 폭로’다. 술 취한 검찰 고위 간부로부터 상갓집에서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을 당했고,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려 하자 보복성 인사 조치를 당했다는 서 검사의 폭로 이후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 전반에서 들불처럼 번졌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검찰은 사법정의를 실천하는 게 목적인 국가기관인 만큼 윤리 수준에서도 국민들의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문화예술계처럼 대중적인 관심이 늘 집중되는 분야는 아니지만) 검찰 내 고위 인사가 성추행을 저질렀고, 피해자가 이를 방송에서 자세히 밝힌 건 사회적으로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다양한 권력 남용과 불공정 수사 의혹 등으로 검찰이란 조직 자체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쌓여 있었던 점도 배경으로 작용했다. ○ 미국은 정상급 스타가 주도하지만 한국은 아직… 미투 운동을 주도하는 인사들의 면면도 차이가 있다. 미국에선 와인스틴이 배우와 회사 직원 등 주변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졸리, 팰트로, 저드 등 글로벌 스타들이 앞장섰다. 이들은 과거 자신이 당했던 피해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나아가 조직적인 미투 운동 지지 움직임을 펼쳤다. 한국에선 아직까지는 정상급 스타나 유명 인사들이 나서기를 꺼리고 있다. 고은 씨의 성추문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 정도가 그나마 대중적으로 익숙한 이름이다. 문화예술계 안팎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높지 않았던 과거에 성희롱과 성추행이 더 심하고 훨씬 많았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공공연한 비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유명 여성 문화예술인들이 미투 운동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선 한국이 아직까지 성폭력과 여성 지위 향상 같은 이슈를 자유롭게 논의하기 어려운 분위기임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유명 인사들의 경우 자칫 자신이 갖고 있는 특권이나 지위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에선 연예인들이 어떤 정치적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을 지지하는 연대가 존재하고 이어 사회적인 목소리가 만들어지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는 지적이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의 경우 양성평등과 차별 방지에 대한 교육이나 논의의 역사가 길다”며 “한국에 비해 여성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도 적다”고 말했다. 이어 “정상급의 여자 배우들이 할리우드 권력자(와인스틴)를 대상으로 정면 대결을 펼칠 수 있다는 것도 사회적으로 이런 문제 제기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한국 미투 운동의 걸림돌, ‘명예훼손법’ 한미 양국의 미투 운동이 다르게 진행되는 이유 중 하나는 피해자들의 대응 태도에서 비롯됐다. 미국은 소송 등에 적극 나서는 반면 한국은 당사자 사과를 요구하는 수준에 머무는 등 소극적인 대응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차이는 국내에만 있는 법률적인 제약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허위사실이 아닌 진실을 폭로해도 처벌받을 수 있도록 한 형법 제307조(‘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발목을 잡고 있다. 이 법은 공개적으로 사실을 밝혀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비방할 목적이 더해진 경우 정보통신망법 제70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도 있다. 결국 피해자들이 성폭력 사실을 알리고 싶어도 이런 법들에 저촉돼 역고소를 당할까 봐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피해자 발언의 사실 여부와 명예훼손의 조각 사유인 공익은 그 성격과 기준이 불분명한데 공개적인 폭로는 명예훼손 구성 요건에 분명히 해당해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은 1964년 명예훼손 처벌법을 위헌 처분한 ‘개리슨 대 루이지애나’ 사건 이후 대부분 주에서 명예훼손 처벌 조항을 폐지했다. 매사추세츠주, 미네소타주, 몬태나주, 뉴햄프셔주 등 4개 주만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그만큼 피해자들이 자유롭게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투 운동, 일반으로 확대 중 미국의 미투 운동은 유명 여성인사들 중심에서 일반인들로 확대되는 추세다. ‘타임스 업(Time‘s Up·한 시대가 끝났다)’ 단체 결성이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 1월 1일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각계 여성 300여 명이 모여 결성한 타임스 업은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블루칼라와 저소득층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방지와 지원 활동도 활발하다. 타임스 업에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물론이고 법조계 인사들도 참여하고 있다. 특히 법조계에선 자원봉사 형태로 무료 법률 상담을 해준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이라 법적 대응에 나서기 어려운 피해자들을 돕는 데도 적극적이다. 필요할 경우 소송비 지원 같은 활동도 가능하다. 현재까지 마련된 기금 규모도 2000만 달러(약 216억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 교수는 “미국의 경우 여성 성폭력에 대응하는 문화가 강한 데다 최근 유명인들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이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관련 움직임이 확장되기 용이한 여건”이라며 “당분간 미투 움직임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한국에서도 앞으로 미투 운동은 법조계, 문화계를 넘어 일반 직장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익명 게시판에는 이미 직장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글이 수백 건 올라와 있다. “직장 상사가 좋은 노래라며 보내온 뮤직비디오를 틀어보니 낯 뜨거운 영상이 튀어나왔다”거나 “회식할 때 내 허벅지를 주무르더니 다음 날 딸 같아서 그랬다고 말하더라”는 식이다. 하지만 미국처럼 조직화되지 못하고 개인의 고발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한편 최근 확산 일로에 있는 미투 운동의 실상을 접하면서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잖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성폭력이 만연해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가해자의 잘못된 과시욕과 피해자의 피해의식, 방관자의 무관심 등이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석정호 연세대 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많은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심리를 왜곡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변화에 대한 믿음을 갖기 시작하면서 성희롱을 쉬쉬하던 일반 기업에서도 ‘작은 미투 운동’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관대했던 佛, 길거리서 집적대면 과징금 12만 원▼성폭력 고발 목표 같지만 나라마다 상황 제각각현재 미투 운동은 전 세계적인 사회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양상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프랑스는 그동안 남성들의 유혹에 관대해 상대적으로 성에 대해 자유롭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이후 프랑스 전역에서 미투 운동을 지지하며 남성들의 성희롱을 규탄하는 여성들의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성의 40% 이상이 동의하지 않은 신체적 접촉이나 성희롱 발언을 경험했고, 심지어 10%는 성폭행을 당한 경험도 있다는 충격적인 조사가 계속해서 공개됐다. 이에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는 성희롱과 추행을 바로잡겠다며 낯선 여성에게 외설적인 발언을 하거나 길을 막거나 쫓아가는 이른바 ‘캣콜링(cat-calling)’ 행위에 90유로(약 12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영국은 정치권에서 미투 운동이 태풍급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장관이나 의원의 여성 비서진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가 이어지면서 테리사 메이 내각이 휘청거릴 정도다. 메이 총리의 정치적 동지로 국무조정실장 겸 수석비서 역할을 한 데이미언 그린 영국 부총리가 컴퓨터에 음란물이 들어 있고 여성 활동가의 무릎을 만졌다는 의혹에 결국 물러났다. 마이클 팰런 국방장관은 2002년 여기자를 성희롱한 사건으로 사임했고, 마크 가니에이 국제통상부 각외장관(수석차관)은 여비서에게 성인용품 가게에서 전동 자위기구 두 개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영국 의회는 비서진이 성희롱 사실을 편하게 고발할 수 있는 기구를 마련하고, 성희롱이나 괴롭힘을 가한 사실이 드러나는 의원은 의원직을 박탈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영국 의회 행동지침을 마련 중이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미투 운동이 진행 중이지만 파장은 다른 선진 외국에 비해서 ‘찻잔 속 태풍’ 수준이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伊藤詩織) 씨가 지난해 5월 실명으로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일본판 미투 운동은 시작됐다. 이토 씨는 2015년 4월 취업 상담을 위해 야마구치 노리유키(山口敬之) 당시 TBS 워싱턴 지국장을 만났다가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처녀냐’고 묻는 등 상식 이하의 태도를 보이거나 야마구치 지국장을 불기소 처분하는 등 기대를 밑도는 반응으로 일관했다. 이에 이토 씨는 ‘블랙박스’라는 책을 내고 주일 특파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열며 전면전에 나섰다. 현재 야마구치 전 지국장을 상대로 1000만 엔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후 작가이자 블로거인 하추 씨가 광고 대기업 덴쓰에서 일할 당시 밤에 선배 사원의 집에 불려갔다는 등의 피해를 고백했고, 연출가인 이치하라 미키야(市原幹也) 씨가 과거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고백하고 사죄했다. 하지만 한국이나 미국처럼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는 2015년 후생노동성 조사에서 일하는 여성의 3분의 1이 성추행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을 정도로 선진국치고는 아직 성추행에 대한 의식이 낮은 편이다. 화합을 강조하며 내부 폭로를 막는 사회적 분위기도 미투 운동의 확산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이세형 turtle@donga.com·이설·김상훈 기자·파리=동정민 ditto@donga.com/도쿄=장원재 특파원}

“외모는 팝가수, 실력은 정통 소프라노.”(세인트루이스 투데이) “21세기형 디바.”(이브닝 스탠더드) 호주 출신 소프라노 다니엘 드 니스(39)에 대한 평가다. 그의 공연 영상을 본 뒤 서면 인터뷰 답변지를 읽었다. 행간마다 활기, 긍정, 기대가 담긴 답은 꼭 그의 무대 같았다. “특유의 활달함으로 어떤 무대든 관객을 장악한다”는 외신의 평가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클래식, 뮤지컬, TV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연해왔습니다. 18세기 모차르트부터 레너드 번스타인의 뮤지컬까지 소화할 수 있다는 걸 한국 관객에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15일 오후 8시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첫 내한무대 ‘소프라노 다니엘 드 니스&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모차르트에서 브로드웨이까지’에 오른다. 모차르트 아리아,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중 ‘방금 들린 그대의 음성’, 레너드 번스타인의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와 ‘피터팬’ 등을 부른다. “루이지 아르디티의 ‘입맞춤’은 무대에서 처음 부르는 곡이라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모차르트 ‘돈 조반니’ 중 ‘그 배신자를 피해요’는 2017년 드레스덴에서 돈나 엘비라 역을 맡아 처음 공연했는데, 제가 정말 사랑하는 곡입니다.” 네덜란드와 스리랑카 혈통을 이어받은 그는 아역스타 출신이다. 9세에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로 호주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했고, 미국에 건너간 뒤에는 TV어린이쇼 호스트로 16세에 에미상을 받았다. 오페라뿐 아니라 뮤지컬, 방송, 영화 등을 넘나든다. “본질은 ‘무대’예요. 내 한계를 넘어섰을 때 밀려드는 쾌감은 오페라든 뮤지컬이든 TV쇼든 똑같죠. 다양한 장르를 통해 더 많은 분들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나누길 기대합니다.”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장르는 뮤지컬이다. 그는 “뮤지컬은 그 자체로 빠르게 고전이 되어가고 있다”며 “목소리의 변화에 따라 그에 맞는 장르에 주력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했다. 데뷔 후 30년간 그의 인생은 ‘돌격 무대로’였다. 임신 7개월까지 공연했고 출산 후 바로 관객과 만났다. 지금도 대부분의 시간을 달릴 채비를 하며 보낸다. “어디에 도달했다는 기분은 느껴본 적이 없어요. 더 나아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뿐이죠. 요즘엔 조금은 멈출 용기가 생겨서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제 아들이 저를 멈추게 하죠.(웃음)” 그는 꽤 많은 한국인 친구를 만났는데 비슷한 문화권(스리랑카)이라 더 끌렸던 것 같다며 이번 공연을 통해 한국을 보다 깊이 알고 싶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한국인이 ‘차 맛’에 새롭게 눈뜨기 시작했다. 2016년 여름 시작한 밀크티 열풍이 ‘티 룸(Tea Room·차 전문점)’과 ‘애프터눈 티 문화’로 옮겨 붙고 있다. 이전까지 새로 개업하는 카페 10개 가운데 1개에 불과하던 차 전문점 비율이 최근 3, 4개로 늘었다. 차 관련 서적과 티 소믈리에 강좌도 2016년보다 3배 이상 껑충 뛰었다. 업계에서는 요즘 차 문화를 선도하는 이들은 ‘밀덕(밀크티 덕후)’과 ‘40대 언니들’로 보고 있다. 직장인 김미정 씨(34)는 지난해 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떠돌던 사진 한 장에 영혼을 빼앗겼다. ‘말간’ 살구빛 액체가 든 아빠 스킨 같은 병엔 ‘보틀 밀크티(Bottle Milktea·병 밀크티)’란 라벨이 붙어 있었다. “유제품을 좋아하는데 어떤 우유보다 구미가 강하게 당겼어요. 꽃 향도 나고 어릴 적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던 분유 우유 같기도 하고….” 이후 김 씨는 가루 밀크티, 액상 밀크티에 빠져들었고, 지난달부터 동네 티 룸에서 차 전반을 배우고 있다. 밀크티 열풍은 시각적 즐거움에서 출발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참기름 병’ ‘화장품 병’ ‘곰돌이 병’ 등으로 불리며 아기자기한 모양새가 여성들의 사랑을 차지했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유행도 한몫했다. 최근엔 지난해에 비하면 대중적인 인기는 기세가 한풀 꺾이는 모양새. 하지만 좀 더 전문적이거나 깊게 차 전반에 빠져드는 ‘밀덕’이 많아졌다. 밀크티 전문점인 ‘소셜클럽’의 장재욱 대표(28)는 “밀크티로 시작해 차 세계에 매료된 이들이 적지 않다”며 “다만 프레르, 로네펠트 등 브랜드 티 룸과 개인이 운영하는 티 룸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주역인 40대 여성은 ‘혼족’ ‘욜로’ ‘배움’이란 트렌드에 반응하며 차 문화를 이끌고 있다. 이모 씨(43)는 요즘 한 달에 한 번 중세시대 귀부인으로 변신한다. 동대문에서 장만한 공단 이브닝드레스로 ‘드레스 업’한 뒤 친구들과 티 룸에서 정례 모임을 갖는다. “보기만 해도 황홀한 3단 트레이에 담긴 디저트와 차, 그리고 수다를 즐겨요. 자신에게 좋은 시간을 선물해야 인생도 좋은 시간으로 메워지지 않을까요?” 이 씨 등 덕후들이 꼽는 차 문화의 매력은 정서적인 안정감이다. 이 씨는 “2000년대 초반 열정적으로 스타벅스에 가던 친구들과 이젠 ‘힙’한 티 룸에 가서 특유의 분위기를 만끽한다”며 “따뜻하고 평화로운 카페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같은 느낌을 즐길 수 있는 매개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차 문화는 다소 ‘어른’의 영역으로 인식돼 왔다. 일본 대만과 달리 산지가 늦게 발달한 점도 대중적인 확장을 더디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광복 뒤 급격한 경제성장의 열차를 탔던 한국은 ‘빨리빨리’ 타 먹는 믹스커피 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천천히 음미하던 조선의 차 문화가 밀리는 형국이었다고 본다. 미국 차 브랜드인 ‘스티븐스미스티’의 장호식 대표도 “2016년 스타벅스가 출시한 티 브랜드 ‘티바나’가 대박을 친 후 차에 대한 인식이 빠른 속도로 바뀌었다”며 “커피 일색이었던 한국 음료시장이 다변화하고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티 전문점 ‘카페샌드박’ 대표이자 티 소믈리에인 박혜정 씨는 “영국 차 문화는 오후 시간대 사교의 성격이 짙고 일본의 차 문화는 외양적인 격식을 중시 여기는 측면이 강하다”며 “한국은 엄마들이 자녀를 교육기관에 보낸 뒤 ‘오전 11시 티타임’을 갖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어 어떤 성격의 차 문화가 만들어질지 흥미롭다”고 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